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03:07:41

대항해시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에이 사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내용은 대항해시대 시리즈 문서를,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1편에 대한 내용은 대항해시대(게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유럽사 관련 정보
파일:Megellán.jpg
언어별 명칭
한국어
세계사 교과서
신항로 개척 시대
영어 The Age of Discovery
스페인어 Era de los descubrimientos
한자 大航海時代
중국어 地理大发现(지리대발견)
일본어 大航海時代(だいこうかいじだい)
1. 개요2. 배경들
2.1. 포르투갈의 경우2.2. 스페인의 경우2.3. 기술력2.4. 향신료
3. 연표4. 경과 및 쇠퇴5. 목숨을 건 항해6. 의의7. 관련 문서8.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
8.1. 게임8.2. 영화8.3. 소설8.4. 만화
9. 기타

1. 개요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 다양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시대를 말한다.[1]

대체로 포르투갈엔히크 왕자를 주축으로 한 15세기 초중반의 해외진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럽-아메리카 항로의 개척,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남단을 통한 인도항로의 개척, 그리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가 이루어진 15세기 말~16세기 초반에 정점에 달하였다.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한 식민제국 건설, 영국네덜란드동인도 회사 설립을 끝으로 대항해시대는 막을 내리고 유럽은 식민지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는 근대 제국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본래 대항해시대를 뜻하는 '에이지 오브 디스커버리(Age of Discovery)'는 직역하면 '발견의 시대'라는 뜻인데, 이는 오롯이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투영된 말이다. 즉,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유럽인들이 자신들 입장에서 붙인 명칭일 뿐이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다른 여러 지역의 피해 국가 입장에서는 침략을 위한 발판 개척[2]일 뿐이라는 점이다. 또 이를 번역한 '대항해시대'는 일본어 '大航海時代(다이코우카이지다이)'를 중역한 말이다. 따라서 최근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 등지에는 대항해시대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비교적 중립적이라 할 수 있는 '신항로 개척'으로 용어를 바꾸고 있는 추세이다. 검인정화 이전 중등과정 국정 사회교과서도 제5차교육과정 중인 1989년 '지리상의 발견'을 '신항로 발견'으로 바꿨다.

2. 배경들

2.1. 포르투갈의 경우

대항해시대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의 지리적 입지 조건은 유럽 최대의 해상무역권이었던 지중해와, 그 다음가는 북해발트해 그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렇다고 농업이라도 잘 되냐면 그건 또 아니라 농지는 척박하니 결국 상업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포르투갈은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도 상업 부르주아 세력이 강성했는데, 이는 포르투갈 왕위계승전쟁에서 전통귀족세력이 지지한 카스티야가 패하고, 상업 부르주아 세력이 후원한 아비스 왕조가 들어섰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업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탄생한 아비스 왕조는 자연스레 해양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엔히크 왕자가 특별히 바다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국내 내부적으로 바다로 나아가야 할 정치적·경제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허나 당시 포르투갈의 국력으로는 유럽 대륙 안쪽으로 나아가기가 벅찼던 것이 사실. 결국 포르투갈이 갈 수 있었던 곳은 대서양아프리카 뿐이었다.

2.2. 스페인의 경우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달리 서지중해를 접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지중해 해상무역권 쟁탈에 일찌감치 참여하고 있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아라곤 왕국인데, 아라곤은 발레아레스 제도를 점령하고 이를 발판으로 지중해 각지로 뻗어나가 아테네 공국을 접수하더니 시칠리아나폴리 왕국의 왕위까지 장악하여 지중해에 아라곤 해상국가를 완성시켜, 베네치아, 제노바와 함께 지중해 3대 세력으로 거듭나려고 했지만...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무너뜨리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직후 아테네 공국까지 꿀꺽하며 아라곤의 동지중해 레반트 무역을 차단시켰다. 이후 오스만 세력은 중부 지중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베네치아의 영토였던 크레타 섬을 점령하면서 유럽 지중해 국가들의 해상무역권은 완전 날아가 버렸다. 오스만에 적대적이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까지 박살난 이후에는 아예 해상 패권 자체가 오스만으로 넘어가버린 상황.[3]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국왕간 혼인에 따른 국가통합으로 탄생한 스페인으로서 이는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당장 오스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라곤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해양 부르주아지 세력은 왕가에 지속적으로 빼앗긴 지중해를 되찾던가, 아니면 이를 대신할 새로운 무역루트를 개척하게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시점에 이미 포르투갈은 인도로 다가가는 중이어서 스페인의 상업 부르주아지들은 포르투갈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자신들도 이에 따라 신항로 개척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2.3. 기술력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럽인들에게 원양항해는 이때가 최초였다. 원양항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은 전무했고, 현지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거의 없었다. 중국이나 인도의 존재는 그 당시에도 알려져있긴 했으나 몇몇 여행기에서 전해오는 오래되고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였고, 아메리카는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었다.

그러나 과거 이슬람과의 교류를 통해 전래된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사분의 같은 각종 측정기구들은 태양과 별의 위치보다도 더 정확하게 방위를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며, 또한 그들의 원양항해술을 배울 수 있었다. 변방에 위치해 먹고 살려면 바깥으로 나아가야 했던 포르투갈은 가장 이에 관심을 보였고, 포르투갈의 1세기에 걸친 서아프리카 항해로 어느 정도 대양 항해를 위한 항해술과 해도 제작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원양항해 능력과 때마침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항해술은 급속도로 발달, 카락캐러밸같은 본격적인 대양 항해용 선박들이 등장하였다. 후에 이는 다시 갤리온으로 이어져 어느새 유럽인들의 대양항해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한다. 정리하자면 수요에 의해 기술이 맞춰 발전한다는 말에 따라,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은 원양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이는 후에 발전할 원양항해술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동방의 강성한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필연적으로 대양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을 따라 원양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덕분에 대항해시대가 찾아올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유럽 세력은 좁은 유럽에서 넓은 세계로 시야를 확장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는 후에 산업 혁명제국주의의 바탕이 된다.

2.4. 향신료

대항해시대의 발생 원인 중 하나로 향신료(특히 후추)를 꼽기도 하는데, 비록 중반 이후부터는 너도나도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어 수요보다 공급이 배로 급증하는 바람에 향신료 무역이 시들해져버리긴 했지만 대항해시대를 열게 만든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4]

향신료가 고가의 사치품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당시 유럽의 향신료 무역은 인도-이슬람-베네치아를 거치는 독점에 독점을 거듭한 중개무역 형태였기 때문으로,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동방의 향신료는 귀중품 취급받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랬던 향신료가 오스만 제국의 성립 이후, 단순히 비싼 사치품에서 구하는것이 한없이 불가능한 물건으로 바뀌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에 '돌아서 인도에 가면 그 비싸고 구하지도 못하는 향신료를 (비교적)거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것.

이는 국왕, 귀족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만한 요소가 되었고 덕분에 많은 탐험가들이 신항로 개척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향신료는 대항해시대 자체를 열게 만든 기폭제 역할이었으며, 대항해시대 중반부터는 개척된 항로를 바탕으로 무역이 과열되어 향신료는 예전의 메리트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부터는 새로 유럽인들의 시각에 들어오게 된 아메리카 대륙의 , , 노예, 설탕과 같은 것들이 향신료 위치를 대신하였다.

3. 연표

일본의 역사학자 마스다 요시오(増田 義郎)[5]는 자신의 저서에서 대항해시대의 시작과 끝을 포르투갈의 세우타 공략(1415년)부터 세묜 데즈뇨프의 베링 해협 최초 항해(1648년)까지로 규정했다. 반면 비투스 베링, 제임스 쿡을 대항해시대의 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 경과 및 쇠퇴

대항해시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바하마 상륙과 카리브 지역 탐험을 마치고 몇 명의 원주민들을 납치하여 본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원주민들의 존재를 확인한 유럽인들은 미지의 신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대륙과 새로운 항로의 등장은 그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 결과 국가 단위로 행해진 탐사가 크게 벌어졌고 곧 이는 국가 간의 충돌을 야기했으며 이를 중재하기 위해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신대륙인 아메리카와 함께 유럽인들의 원래 목적이었던 인도로의 항로 개척도 충실히 이루어져 바스코 다 가마는 1498년, 드디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도달하였고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는 더나아가 말라카까지 정복하여 동남아시아 진출로의 교두보까지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일련의 성과로 무역의 판도는 마침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된 탐험으로 드디어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인도가 아닌 또다른 대륙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게 되었다.

아메리카와 인도가 다른 지역임이 알려지고 향신료 원산지인 인도와 동남아시아로의 진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유럽인들은 '그렇다면 아메리카와 인도 사이에 또 뭐가 있단 말인가?'라는 궁금증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태평양이며, 태평양의 발견과 함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끄는 함대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마치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대항해시대 동안 항해를 통해 이루어진 발견의 전부이며, 뒤이어는 내륙 탐험 및 정복의 역사가 주를 이룬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마야 문명, 잉카 제국, 아즈텍이 차례대로 멸망하고 중남미 아메리카는 브라질을 제외하고[8]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렇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눈을 대양으로 빠르게 돌린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머쥐자, 북해의 영국네덜란드도 이에 동참하게 된다. 이 두 나라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양자 간의 합의인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간단히 무시해버렸고 몇 차례의 분쟁과 전쟁을 걸쳐 앞선 두 나라가 얻어낸 영토와 이권을 어느 정도 뺏어오는 데에 성공한다. 이들은 해상 무역과 거점 확보를 총괄하는 동인도회사를 각각 설치하여 본격적인 범세계적 무역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양쪽 모두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다 벌어진 충돌에서 영국이 승리, 이는 대영제국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대항해시대는 수십 년에 걸친 탐험과 개척, 정복 끝에 유럽인들이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명들을 발견하여 더이상 새롭게 찾아나갈 곳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끝나게 된다. 이쯤되자 거의 유럽에서 먹고 살만한 나라들은 대부분 대양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막대한 은으로 인한 가격 혁명과 이로 인한 신흥 자본 세력의 대두, 봉건 세력의 몰락과 함께 유럽은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앞서 말한 제국주의로의 발전과 연관되어서, 이 대항해시대는 유럽인들이 다른 세계, 문명에 비해 자신들이 더욱 발전했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백인 우월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로 연결되는 시발점이 된다.

5. 목숨을 건 항해

각종 창작물에서의 묘사로 인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시대로, 미지의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것은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바다와 항해에 관한 작품들은 그때부터 수 없이 많이 등장했다. Antonio Pigafetta, George Best, Richard Hakluyt 같은 사람들이 이미 16세기에 항해기를 출판했으며 소설로도 The Life, Adventures & Piracies of the Famous Captain Singleton(1720),The Adventures of Roderick Random(1748)등 진작부터 해양 소설이 출판되었다. 또한 해적에 관한 낭만적인 묘사 역시 18세기가 원조다. 영국에서 출판된 A General History of the Pyrates(1724)가 처음인데 이 책에서 이미 검은 수염, 졸리 로저, 앤 보니, 윌리엄 키드 등 오늘날 유명한 해적들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다 담고 있었고, 오늘날 캐리비안의 해적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도 이미 이 때부터였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해서, 당대의 항해자들은 불과 한강 유람선 크기[9]범선에 십수명의 선원을 태우고 바람에만 의존해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몇 달씩 육지 구경도 못 했다.

당시 범선 항해에서 선원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쥐, 괴혈병이 아닌 무풍지대였다. 차라리 맞바람이라도 불면 돛을 이용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만[10] 바람이 안 불면 그냥 망망대해에서 선장과 동료선원들과 함께 사이좋게 천천히 말라죽어 갈 뿐[11]이었다. 이렇게 무풍지대에서 선원들이 전원 사망한 후 선박은 사람없이, 바람이 안 부니 해류를 따라 떠다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유령선의 모티브가 되었다.

질병 통제가 잘 될리가 없는 협소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생활했기 때문에 선원들은 당연히 질병에 매우 취약했다. 특히 당시 위생 관념상, 각종 질병의 창궐을 막기 위해선 주기적인 목욕과 신선한 야채 공급이 필수인 것조차 몰랐으므로 이를 대처하기도 힘들었다. 수많은 선원들이 질병에 시달리면서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는 거의 18세기가 되어서야 제임스 쿡이 선원들에게 강제로라도 절인 양배추를 먹이고 찬물 목욕을[12] 시키면서 해결되었다.

당시 식량은 비스킷, 염장고기, 썩은 물에 불과했다. 비스킷은 돌처럼 딱딱한데다 곰팡이가 피었고 가장자리는 쥐가 갉아먹은 것에 불과했다. 썩은 물에는 죽은 쥐가 떠다니고 있었다[13]. 그런 썩은 물조차 부족해 씻기도 어렵고 옷을 세탁하기도 어려운 채 거지꼴 몰골로 땀흘리며 육체노동을 했다. 당시 범선은 화재에 취약했으므로 추운 날에 물에 젖으면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씻을 때도 물을 데울 수가 없었다. 이는 극지방 근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해서 선원들을 이끌고 항해를 하려면 선원들의 반항심을 씹어먹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한데 럼주 훔쳐먹은 놈 채찍 몇대, 고기 훔쳐먹은 놈 채찍 몇대 이런식이었다. 맞다가 죽는 선원도 있었다. 특히 식사가 배급될 때 자기가 음식 좀 더 먹으려고 동료선원을 밀쳐 다치게 한 경우는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을 정도로 통제에 엄격했다.

아메리카나 인도 등지에서 교역품을 싣고 돌아올 경우, 단 몇 그램도 큰 돈이 되었다. 한번 항해에 성공할 경우 선장은 물론 그 아래 말단 선원들까지 평생 얻을까 말까한 돈을 한번에 벌 수 있었다. 노력해서 얻은 로또 그렇기에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선원이 모이고 배가 계속 출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출발 전에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교역품을 실었으며, 심지어 이로 인해 멀쩡한 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선원들에게 배급해야 할 물자마저 최소한으로 줄여서 항해했다. 이 때문에 비스킷이나 염장고기, 썩은 물 역시 충분히 먹을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무역선들은 중간에 함부로 정선하거나 상륙할 수도 없었는데, 해안 근처에는 해적선, 사략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타국의 무역선을 찾아다녔으며 자국의 항구가 아닌 곳에 정박하였을 경우 항구에서 물자는 제공해주었지만 그 대가로 모든 교역품을 항구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로 인해 무역선들은 섬도 안보이는 먼 바다를 측량에만 의지하여 빙 돌아서 항해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선원들이 죽어나간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현대 해군은 항해 도중에 멀미와 구토 등에 시달려서 정박 시보다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함정요원들을 위해 간단한 야식을 포함한 1일 4식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세한 내용은 전투식량 항목 참조.

6. 의의

유럽의 대항해시대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본격적인 최초의 교역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시대에 유럽과 신대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민족, 종교에 있어서 역사적인 대변혁을 맞는데 특히 이후 유럽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되는 시대라는 점에서 대항해시대의 역사적인 의의는 매우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세계의 국제 무역로는 오스만 제국-인도-중국(더 나아가서 일본)을 잇는 거대한 연결선이었고, 여기에 유럽이 새롭게 참여했을 뿐이며, 유럽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무역 규모도 컸던 곳은 기존에 있었던 국제 무역로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이탈리아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지중해 무역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무역로 중 하나였으며 굳이 세계의 문명 교류사에 있어서 지중해 무역을 무시하고 동방 무역만을 부각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역사를 정치적 수정주의 혹은 옥시덴탈리즘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또한 유럽의 신대륙 발견이 세계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일단 유럽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인해 구대륙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보급되었고 이는 훗날 구대륙의 식생활과 인구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신항로의 발견으로 인해 유럽은 중국 및 인도와 직접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유럽은 아메리카의 광대한 토지를 바탕으로 대량의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었고 이는 유럽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항해시대를 폄하하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가 주로 거론되는데 프랑크의 관점은 매우 극단적인 반유럽중심주의적인 관점으로 비판받고 있다. 비슷한 관점으로 국내에 나온 책 중에서 학술적으로 보다 제대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보고 싶다면 차라리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를 보는 것이 낫다.

국내에 번역된 책 중에서 국제 학계의 정설에 가까운 책들을 꼽자면 데이비드 랜즈의 '국가의 부와 빈곤'이나 조엘 모키르의 '성장의 문화', 김승욱의 '제도의 힘', 중립적인 시각에 가까운 책을 찾고 싶다면 송병건의 '경제사'같은 책들이 있다.

7. 관련 문서

8.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

8.1. 게임

8.2. 영화

  •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마법과 환상종이 존재하는데다 망자에 유령선까지 튀어나오는 세계지만(…) 일단 현실의 대항해시대가 배경이다.

8.3. 소설

8.4. 만화

  • 원피스: 해적왕 골드 로저의 사후의 현재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인 대해적시대는 대항해시대를 변형시킨 것으로 세계관 역시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했다.

9. 기타

오스만의 대두 이래 지중해의 항해자와 선원들, 조선기술자, 해도제작자 등이 상당수 실업자가 되어서 대서양 항해에 나서고 있던 이베리아 국가로 몰려 왔다. 다만 주요 이탈리아 국가들은 여전히 무역으로 적지 않은 부를 계속 쌓았는데, 지중해 국가들의 무역은 포르투갈의 인도양 정리와 아메리카를 통한 막대한 귀금속 유입으로 인해 가격 혁명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우수한 항해술, 천문학 자질을 갖춘 엘리트들이었고 실제 항해 경험도 상당했기 때문에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여 인구가 적은 이베리아 국가에게 항해에 나설 만한 충분한 인력, 기술을 확보시켜 주었고 아울러 항해인력 및 수준의 전체적인 질적 향상까지 가져다 주었다.


[1] 그래서 중국어로는 이 점을 강조한 '지리대발견'이라고 부른다.[2] 역사적 인식론에서, 이 시대의 '발견'은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발견이 아닌, 이종족을 지배하고 군림하기 위한 발견으로 설명한다.[3] 더욱이 오스만의 지원을 받는 바르바리 해적들까지 설치면서 무역은 더 어려워졌다.[4] 말그대로 대항해시대 원양항해가 막대한 돈과 시간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함에도 한번 향신료를 가져오면 그를 보상받을만한 엄청난 이득을 얻을수 있을만큼 당시 유럽에서의 향신료는 비싸게 거래되었다.[5] 참고로 Age of Discovery를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 마스다 요시오가 처음으로 창안한 것이다.[6] 발견 당시에는 폭풍의 곶으로 명명되었으나, 차후 희망봉으로 변경되었다.[7] 사실 희망봉이 아프리카 최남단은 아니다. 아프리카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50km 떨어져있는 아굴라스이다.[8] 브라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포르투갈령이 되었다.[9] 캐러밸 선은 배수량이 150톤으로 진짜 한강 유람선 수준이다.[10] →W 이렇게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지그재그로 침로를 바꿔나가면 바람을 뚫고 전진이 가능하다.[11] 보트를 띄워 모선과 밧줄로 연결한 후 노를 저어 견인하기도 했다. 물론 보트에 탈 수 있는 선원의 수와, 범선을 노를 저어 몰고가기 위한 근력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 무풍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12] 심지어는 차디찬 남극 앞바다에서도 실행되었지만 이 덕분에 쿡의 선원들은 괴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선원들이 양배추 배급에 반발하자 쿡은 양배추를 강권하는 방법 외에도 간부들에게 양배추를 우선 배급하는 방법을 썼다. 간부들만 양배추를 받는 것을 보고 선원들이 자기들도 달라고 하게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위생을 위해 늘 이불을 훈연하고 배를 청소했으며 식료품 역시 저장된 염장 고기나 비스킷은 최대한 아끼고 섬에 상륙해서 조달한 신선한 고기나 과일, 채소 등을 우선적으로 섭취했다.[13] 나무통에 물을 담으면 물이 썩는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그 대안으로 철제 통이 등장함으로서 해결되었지만, 이것도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