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랍계 프랑스인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랍인과 아랍계 프랑스인을 말한다. 출신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레바논 등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이주해온 경우가 많으며 알제리 출신과 알제리 태생을 포함해 프랑스의 알제리계 사람의 비율만 약 700만명 정도로 프랑스의 이민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프랑스의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2. 이민사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아랍화되기 이전 이미 고대부터 프랑스와 중동, 북아프리카 각국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인적, 물적자원 교류가 활발했던 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코르시카 섬이 페니키아에서 기원한 고대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사례를 들 수 있다. 레반트가 아랍화된 이후에도 기록은 계속 이어지는데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고 레반트 일대의 십자군 국가들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일부 아랍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한 것이 확인된다. 13세기 프랑스의 세금 대장에는 티베리아스 출신 비단 직조공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19세기 말 레바논 산악지대에서 기근이 발발하자 레바논의 마론파 기독교인 상당수가 프랑스로 이민한 경우도 있다.아랍계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사회의 동화되지 않는 별개의 민족 집단으로 여겨지게 된 계기는 알제리 전쟁 이후이다. 알제리 전쟁 와중에 상당수의 아르키(Harki; 프랑스군 식민부역자)들이 프랑스로 망명해오게 되는데, 이들은 과거 19세기 당시 레바논 출신 이민자들과 다르게 절대다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알제리에서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이 와중에 알제리에서 친척들을 초대하여 프랑스에 정착시키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9세기 당시 프랑스가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일대에 간섭했을 당시에는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인들에 대한 교육 사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1] 레바논인들의 상당수가 프랑스에 이민을 가기 이전 이미 프랑스어 독해와 작문을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학습한 경우가 적지 않았고 프랑스 사회에 적응과 동화가 쉬운 편이었다. 반면 프랑스는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에서는 악랄한 제국주의 지배세력일 뿐이었다. 프랑스 식민지 북아프리카의 아랍/베르베르 무슬림들은 빈곤 문제[2] 및 프랑스 정부의 계획적인 식민지 우민화 정책으로 초등학교 취학률 6% 정도에 불과했을 정도였고, 그 후유증 덕분에 알제리의 경우에는 독립 수십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에도 중졸 출신 교사들이 현역으로 활동할 정도였다. 알제리 전쟁 직후 유입된, 아랍어도 못 읽고 프랑스어도 못 읽는 일자무식 난민들이 프랑스 사회에 재빠르게 동화하고 적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박수는 한 손으로 칠 수 없다. 아랍계 프랑스인 사회가 여타 프랑스 사회와 동화되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 시절 시행했던 제국주의와 우민화 정책만이 아니었다.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은 아랍계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와하브파를 선교하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이들이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막고 이슬람 근본주의적 생활을 권장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뿌렸다. 아랍계 프랑스인 학생들 입장에서는 의학이나 공학 등을 공부해서 프랑스 사회의 차별을 뚫고 성공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가 되어서 사우디나 카타르 측에서 기부하는 선교 자금으로 먹고 사는 길이 훨씬 더 쉽고 빠른 성공 진로가 되었다. 아랍계 프랑스인들과 여타 프랑스인 사회는 살만 루시디 사건 등을 계기로 점차 서로를 배타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여기에 걸프 아랍 왕정 국가에서 "니캅을 쓰지 않은 무슬림 여성은 불신자이자 위선자"같은 극단주의를 주입하며 아랍계 프랑스인들과 여타 프랑스인들 사이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상술한 것처럼 오늘날 프랑스의 극우파 세력의 약진이나 이슬라모포비아는 아랍계 프랑스인들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3. 문화
프랑스의 아랍인과 아랍계 프랑스인의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이다. 대부분 북아프리카나 서아프리카 출신이다보니 순니파 중에서도 말리키파 법학파가 우세한 편이다.무슬림들의 이민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레바논 일대 출신의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주가 되었으나, 이들은 세대가 지나면 현지 사회에 사실상 완전히 동화되는 편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4. 유명 인물
4.1. 정치, 군사
4.2. 사업가
- 카를로스 곤 - 레바논, 브라질, 프랑스 삼중국적자.
4.3. 문화예술
4.4. 스포츠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 프랑스의 알제리인 영어 위키백과
- 알제리인의 프랑스 이민 프랑스어 위키백과
- 프랑스 내 레바논 디아스포라
- 아랍의 프랑스인 아랍어 위키백과
- KCI 등재논문 : 68운동 전후 알제리 이주민과 프랑스 언론 - 르몽드지의 알제리 이주민 관련 보도(1962년-1976년)를 중심으로 -
- KCI 등재논문 : 프랑스에서의 아랍어와 아랍문화의 현황과 전망 분석 - Sabhan Rabina Al-Baldhawe의 논문을 중심으로
- KCI 등재논문 : 프랑스 내 아랍어 교육과 무슬림 이민자문제
[1]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레바논은 엄연히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고, 프랑스 측에서는 레바논인들의 민심을 얻지 못할 경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레반트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러한 연유에서 프랑스 측은 레바논에 한해서는 여타 식민지와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식민 지배 이후에도 나름대로 선정을 베풀었다. 프랑스와 레바논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제국주의적 관계와는 확연히 거리가 있었다.[2] 해안지대 비옥한 토지들은 피에 누아르들에게 분배하고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농민들은 건조한 내륙 지방으로 몰아냈으며, 오랑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와 유사한 정책이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