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2 00:18:44

노트르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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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후면
공식 홈페이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 한국어 파리의 센 강변
영어 Paris, Banks of the Seine
프랑스어 Paris, rives de la Seine
국가·위치 프랑스 일드프랑스 파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1년
등재기준 (i)[1], (ii)[2], (iv)[3]
지정번호 600

1. 개요2. 명칭3. 역사4. 건축5. 성유물6. 화재7. 미디어
7.1. 이 성당을 소재로 한 작품7.2. 단순 출연/배경
8. 기타

1. 개요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4세기에 완공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의 무대가 된 것 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도 파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입장 무료라는 강점 전망대는 빼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다만 단독등재는 아니고, 파리의 센 강변이라 하여 센 강 일대의 자연환경 및 그 주변 문화유산인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앵발리드 등과 묶여서 지정되었다.

2. 명칭

프랑스어: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4]
영어: Notre Dame Cathedral
이탈리아어: Basilica Cattedrale Metropolitana di Notre-Dame
스페인어: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París
독일어: K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일본어: ノートルダム大聖堂
러시아어: НотрДа́м-де-Пари́

프랑스어로 노트흐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단어다. 그렇기에 프랑스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하는 성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규모가 작은 성당만이 아니라 샤르트르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랭스 대성당, 스트라스부르 대성당과 같은 광대한 규모의 성당들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참고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라고 하면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칭하기에 이 문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3. 역사

지금의 대성당이 있던 곳에는 성 에티엔[5]에게 봉헌된 작은 규모의 성당이 있었지만, 1160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는 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기 위해 파리대교구에 착좌하자마자 옛 성당을 가차없이 부수고 주변의 몇몇 가옥들도 함께 철거했다. 그리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후진과 성가대석으로 1182년에 완공되었으나, 전체 공정의 절반도 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된 지 33년 후인 1196년 9월 11일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선종했다. 대성당의 서쪽 정면은 1200년경~1225년에 완성되었고, 서쪽 정면의 탑 2개와 북쪽의 장미창은 1250년에 마무리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공사는 1250년부터 약 1세기 동안 진행되어 마침내 착공 149년 만인 1345년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백년전쟁의 와중인 1431년 영국의 왕 헨리 6세가 이곳에서 프랑스 왕으로 즉위식을 거행했으나 당시 파리 시민들이 잔 다르크를 적으로 여겨 싸웠을 만큼 영국에 우호적이었음에도 그들의 반발을 불렀다.[6] 1456년에는 이 곳에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재판이 교황청에 의해 정식으로 열려 1431년에 영국 측과 친영국파 프랑스 성직자들이 벌였던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그녀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잔 다르크 성녀의 성상이 이 성당 안에 있다.

18세기에는 성직자들에 의해 성당이 어둡다는 이유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일반 유리로 바뀌고 그로테스크가고일 상이 제거되는 등 신고전주의적인 취향에 맞춘 변형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자 귀족문화, 종교문화 자체를 증오하는 시민들에게 '프랑스 왕으로 오인된' 성경 속의 왕의 조각이 목이 잘리는 등 각종 조각이 훼손되고 이신론자들의 신전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전근대 사회에선 이 성당이 프랑스의 기득권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는 프랑스 귀족 계층에서 배출되었으며, 프랑스 귀족과 기득권층의 법률적 옹호기관인 고등법원의 관료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혈연관계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때문에 이 대성당이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먼저 공격을 받고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대관식을 이 성당에서 치루었는데, 이를 위해 대성당의 주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많은 정비를 하였다. 성당의 입구에는 신 고딕식의 나무 문을, 실내는 신고전주의 건축처럼 보이게 장식하였으나, 임시로 덧댄 것들이라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다. 대관식에 대해서는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참고할 것.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내부가 외양간으로 쓰여지는 등 성당의 사회적 가치는 심하게 손상되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빅토르 위고가 성당의 훼손, 파괴를 막으려고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인기를 끌면서 평가도 좋아졌으며, 건축가인 장바티스트 라쉬(Jean-Baptiste Lassus)와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에 의해 1845년부터 근 20여년동안 복원에 들어간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들, 중앙 첨탑(flèche)[7] 등이 이 시기에 복원되었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많은 것들은 뒤크의 취향에 따른 창작에 가깝다.

이후 한동안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2019년, 화재로 인해 13세기로부터 내려오던 목조 지붕[8]과 19세기에 만들어진 중앙 첨탑이 소실되고 석조 볼트가 일부 파손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4. 건축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양식의 전성기로 가기 전, 초기 고딕의 마지막 걸작쯤 되는 건축물이다. (다만 장식에 따른 분류로는 하이 고딕으로 분류되는 등 다른 분류 기준도 있다.)

플라잉 버트레스라고 불리우는 고딕의 특징적인 구조물이 구조적으로 의미있게 처음 사용된 건물로 평가받는 등 고딕 건축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만든 건물이다.

하지만 전성기 고딕의 시작인 샤르트르 대성당, 전성기 고딕의 완성작이라고 불리우는 랭스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등에 비해 네이브의 높이나 폭, 스테인드 글라스의 비율이 작으며 기둥의 장식이나 플라잉 버트레스의 구조 등이 통일되지 않아 깔끔하지 않은 등 과도기적인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건축적으로 고딕 양식의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방이 아닌 파리 중심에 있는데다가 대중문화 작품들의 배경이었고 역사적인 사건들의 장소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인지도와 대중적 명성만큼은 프랑스 제일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성유물

파일:external/2.bp.blogspot.com/427px-Reliquary_of_the_True_Cross3.jpg
성십자가의 일부

이곳에는 성십자가의 일부, 성정과 같은 예수의 수난과 관련된 성유물이 봉안되어 있다. 루이 9세가 구입한, 예수의 가시나무관이라고 믿어지는 유물은 잠시 이 곳에 있었지만 아예 서쪽 근처에 왕실 예배당인 생 샤펠 성당을 건립하여 그 곳에 안치하였다.

6. 화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리 현지시각으로 2019년 4월 15일 오후에[9] 큰 화재가 나 첨탑과 13세기부터 내려오던 목조 지붕이 소실되고 볼트가 파손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석조 구조물들이 대체로 무사하고 소실된 성유물도 거의 없으므로 복원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6월 15일, 화재 이후 처음으로 부속 예배당에서 소규모 미사가 진행되었다. 오후 6시 노트르담 대성당의 동쪽 성가대석 뒤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예배실에서 열렸으며 안전상의 이유로 30여명만 안전상을 이유로 안전모를 착용하고 참석했다.기사 이 미사는 프랑스 전역의 가톨릭 교인들이 볼 수 있도록 TV 방송을 통해 생중계했다.기사

7. 미디어

7.1. 이 성당을 소재로 한 작품

7.2. 단순 출연/배경

  • 다음 웹툰 창백한 말에서 로즈가 페터에게 사과의 의미로 자신의 심장을 주는 곳으로 등장하며, 작품 배경의 상당 부분이 파리인 만큼 꽤 자주 등장한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8. 기타

노트르담 대성당 자체는 관람하는데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 없으나, 종탑 전망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2018년 기준 10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종탑 입구는 대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다. 성당 안을 관람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와야 종탑에 올라갈 수 있으니 유의하자. 종탑 입구 근처에 관람 시간을 예약하는 기계가 있는데 여기서 관람 시간을 선택 예약하면 경비원이 그 시간에 맞춰 입장을 시켜주고, 종탑 안으로 올라가면 티켓 매표소가 있다. 파리 뮤지엄패스 소지자는 그냥 입장할 수 있으나 관람 시간은 역시 예약하는 기계로 해야 한다. Jefile 앱으로도 시간을 예약할 수 있다. 참고로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고, 좁은 나선형 계단을 한참 걸어올라가야 한다. 석양이 질 무렵에 올라가면 파리 시내 전체에 석양이 내리는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화재로 인해 적어도 10년 이상 이 풍경을 볼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관광지 중 외국인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며 유럽 내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2012년 연간 관광객 수가 1,400만을 넘었다. 2위인 루브르 박물관이 연간 방문객 수가 900만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이다. 물론 노트르담 대성당은 입장하는데 티켓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덤으로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은 프랑스 내 관광지 연간 방문객 수 4위로, 2012년 1년 동안 620만 정도가 방문했다.

성모 마리아프랑스주보성인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프랑스 어디를 가든지 중소 도시 정도 되면 같은 이름을 가진 성당이 있다.

프랑스 해외 영토에서도 이 이름을 가진 성당들이 남아있다. 물론 식민지이던 나라들에선 철저하게 뭉개지기도 했는데, 알제리알제리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독립하면서 알제에 있던 노트르담 성당을 도서관으로 바꿨다. 그런데 정작 도서관 바깥 동상이라든지 여러가지 성당 시절 잔재들이나 그림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밖에 베트남은 이 이름을 가진 성당이 그대로 남아서 성당으로 존재한다.

프랑스 북부 지방인 알자스스트라스부르에도 이 이름을 가진 성당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양식이나 색이나 프랑스보다는 독일 쪽에 가깝다.

유튜브의 KTO TV라는 채널에서는 매주 일요일 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봉헌되는 미사성무일도를 녹화하여 올려준다. 웅장하니 관심 있으면 찾아서 보자. https://www.youtube.com/user/KTOTV/videos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프랑스어에서 r이 구개수음인 관계로 실제 발음은 노트담에 가깝다.[5] 성 스테파노/스데반.[6] 원래 프랑스 왕이 정식으로 즉위를 하려면, 랭스에 있는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영국 왕실도 헨리 6세를 그곳에서 프랑스 왕으로 정식으로 즉위시키고자 했으나 이미 잔 다르크가 1429년에 랭스를 탈환하고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게 해서 샤를 7세를 프랑스의 정식왕으로 즉위시킨 바람에 헨리 6세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한 건데, 오히려 이게 엉터리 대관식이 되어 어그로를 끌어버린 것이다.[7] 13세기에 지어졌으나, 1786년에 헐렸다.[8] 코러스 부분에는 건축이 시작되던 12세기의 지붕이 있었지만 원인미상으로 사라져 13세기에 네이브 등 나머지 부분들의 지붕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다시 한 번 만들어진 것이다.[9] 한국시간으로는 16일 자정~새벽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