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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프랑스 출신 후손들을 의미한다.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은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인구의 17%가 프랑스계로 추산된다.2. 이민사
통계 자료 | |
연도 | 이민 인구 |
1857–1860 | 578 |
1861–1870 | 4,292 |
1871–1880 | 10,706 |
1881–1890 | 69,363 |
1891–1900 | 11,395 |
1901–1910 | 11,862 |
1911–1920 | -1,352[1] |
1921–1930 | 739 |
1931–1940 | 626 |
1941–1950 | 5,538 |
1951–1960 | 934 |
1961–1970 | 1,266 |
1971–1976 | 85 |
합계 | 116,032 |
19세기 아르헨티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바로 다음으로 프랑스인들이 많이 이민가는 나라이기도 했다. 1857~1920년 사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유럽인 중 4.22%에 해당하는 221,074명이 프랑스 출신이었다. 1857년부터 1946년까지 239,503명의 프랑스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입국하였고 이중 133,966명이 프랑스로 귀환하였다. 프랑스로 귀환하지 않은 105,537명은 아르헨티나나 여타 아메리카 국가에 잔류하였다. 특히 아르헨티나 서부 멘도사 지방으로 이민 온 유럽계 인구의 1/4이 프랑스계였다고 한다.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들 중에서 프랑스 국적을 지녔던 바스크인들이 많았는데, 주로 당시 프랑스령 바스크(Pays basque français)나 베아른 지방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인구 중 스페인령 바스크에서 이민한 인구도 적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독립 이전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에서 관심을 덜 가지던 지역이었고 이에 따라 스페인 문화에 대한 애착도 덜한 편이었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문화를 ‘앞으로 아르헨티나가 극복해야 할’ 2류 국가의 진부한 문화 정도로 평가하고 대신 프랑스 문화 유입에 적극적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중간 지대 바스크와 카탈루냐 출신 이주민들 적지 않은 수가 자신의 이민 정체성을 스페인 대신 프랑스에서 찾았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농촌 지역에서 19세기부터 저출산 풍조가 이어졌고 주변국들과 다르게 농촌 빈곤/인구 과밀 문제가 덜했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에 비해 남미로 이민하는 인구가 적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프랑스와 이웃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로이센에서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로 빈농들의 대량 이민이 이루어졌다면 프랑스계 이민자들 중에는 농장 노동자보다는 전문직 기술자들이 많아서 굳이 새로 농장을 개척하는 남부로 이민 갈 이유가 적은 것도 있었다. 다만 아르헨티나의 프랑스계 주민들의 출산율이 프랑스 본토 출산율보다는 훨씬 높았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프랑스계 주민들의 수가 상당한것이다.
1960년대에는 알제리 전쟁으로 알제리가 독립하면서 피난한 피에 누아르 수천여 명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3. 관련 문서
[1]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상당수의 프랑스인 남성들이 프랑스로 귀국했던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