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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Croatas en Argentina
크로아티아어: Hrvati u Argentini
1. 개요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크로아티아 및 기타 유고슬라비아 계열 출신 이민자 후손들을 의미한다.2. 기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 헝가리 왕국이 크로아티아인들을 탄압하고 그 반작용으로 크로아티아인 상당수가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것을 기원으로 삼는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독립 국가가 아니었고 크로아티아계 이민자들은 오스트리아인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1867년 이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던 부유한 크로아티아계 기업가 니콜라 미하노비치가 자신의 기업에 약 5천여 명 가량의 달마티아 지역 크로아티아인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인 것을 계기로 아르헨티나에 크로아티아인 이주민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한다.이들 크로아티아계 인구는 아르헨티나 인구 주류와 마찬가지로 가톨릭을 믿는 백인인 이유로 아르헨티나 사회에 별다른 갈등 없이 안정적으로 자리잡는다. 같은 맥락에서 크로아티아인 외에도 상당수의 세르비아인(주로 정교회 신도이다), 보슈냐크인(무슬림)들도 아르헨티나에 와서는 대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크로아티아인에 뭍혀가서 이른바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 집단에 동화되어 묻혀간 것으로 보인다.[1]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이 활발하던 시점에는 크로아티아가 독립 국가가 아니었고 이들은 한동안 오스트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분류되었다. 1차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계로 분류되었으며, 90년대 크로아티아 독립을 전후하여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공식적으로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들과 크로아티아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독립 이후 기준으로 아르헨티나의 크로아티아계 인구는 이민 몇 세대가 지난 상황이었고, 일부 아르헨티나인들이 성씨를 바탕으로 자신 조상 중에 크로아티아계가 있었다 정도를 알 수 있는 정도이다.
크로아티아 대사관 측에서는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의 인구 수를 약 25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편이다. 물론 정확한 근거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고,[2] 보통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발언권 강화를 위해서 디아스포라 인구 규모를 다소 부풀려서 발표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3. 유명 인물
세계 최초로 지문 인식 기술을 개발한 후안 부세티치 코바세비치(Juan Vucetich Kovacevich)가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이다.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중 한 명인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와 디에고 마라도나의 외할머니 살바도라 카리올리치(Salvadora Kariolić)가 크로아티아계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