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31 10:15:36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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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대규모 이주와 재이주4. 한인들의 주요 직업5. 타 민족과의 관계6. 언어7. 종교8. 문화9. 목록
9.1. 실존 인물
10. 관련 문서11. 외부 링크


파일:Patio_Gastronómico_(6834065776).jpg

1. 개요

한국계 아르헨티나인은 한국 혈통의 아르헨티나인을 말한다.

2. 역사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에도 아르헨티나에 소수의 한국인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이주한 첫 공식적인 한국인은 한국전쟁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한국전쟁 정전 협정에 따라 송환을 거부하고 제3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북한 출신의 열두 명이었다. 이들은 1956년과 1957년, 유엔 난민기구(UNHCR)의 주선으로 아르헨티나에 정착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적의 한국인들은 1960년대에 양국 간의 정부 협정을 통해 아르헨티나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파라과이와 칠레 등지에 먼저 정착했던 재이주자들이 1962년부터 아르헨티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본격적인 아르헨티나 이민이 시작된 해로는 1965년 10월 14일을 꼽는다. 이날 부산 출신의 열세 가구가 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리오네그로 주의 초엘레초엘(Choele Choel)로 향했다.

1970년부터 1978년 사이에는 약 500가구, 총 2,800명의 한국인이 아르헨티나에 입국했으며,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들을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농촌 지역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한국에서 농업 경험이 있는 이민자들이라는 전제였지만, 실제로는 관련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해당 지역의 경제 인프라 부족과 일자리 한계로 인해 곧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3. 대규모 이주와 재이주

한국인의 아르헨티나 이민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는 1980년대였다.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약 6,000명 정도가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이미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룬 국가였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가 해외 이민을 부추겼고, 같은 해 아르헨티나와 한국 정부 간에 체결된 ‘Acto de Procedimiento(절차 협정)’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는 높은 비용이 들었고, 정착을 희망하는 사업가들은 미화 10만 달러를 투자해야 했다. 이민자 수는 1996년에 약 5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이민은 거의 중단되었고, 한인 사회 규모도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가족 재결합 목적으로 새로운 이민자가 들어오기도 했고, 몇몇은 추방되었지만, 가장 큰 감소 원인은 ‘재이주’였다. 많은 한국계 아르헨티나인들이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였으며, 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를 떠나는 다른 이민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국어 구사 능력과 사업 경험 덕분에, 한국계 이민자들은 일반적인 아르헨티나 출신 이민자들보다 현지 노동 시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편이었다. 1999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이러한 재이주를 더욱 촉진했다.

이민자 수는 2003년에 최저치인 약 1만 5,500명까지 줄었지만, 이후 점차 회복되어 2005년에는 1만 9,171명, 2009년에는 2만 2,024명으로 증가했다. 2011년 기준으로는 약 2만 2,354명이 아르헨티나에 거주 중이었으며, 이 중 7,420명은 아르헨티나 국적, 1만 4,340명은 영주권자, 4명은 유학생, 590명은 기타 비자 소지자였다. 전체 인구의 약 90%에 해당하는 1만 9,864명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 한인들의 주요 직업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은 약학, 회계,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언어 장벽과, 자신들이 투자한 자본에 대한 최대 수익을 원했던 이유로 인해 가족 모두가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으로는 의류 수입과 제조업이 널리 선택된 업종이었다. 한인 사업자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포 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으며, 그중 하나로는 '계(契)' 형태의 순환 신용 모임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현지에서 교육받은 1.5세대 및 2세대들이 부모 세대가 선택했던 자영업에서 벗어나, 다시 전문직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의학, 패션디자인, 건축 등으로 진로를 넓혀갔다.

5. 타 민족과의 관계

아르헨티나 내 한국인들은 파라과이의 한인들보다는 현지 사회에 더 잘 통합되었지만, 브라질 한인들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낮았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처음에는 한국인을 근면하고 지적이며 정직하다고 여겼으나, 1980년대에 한국인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후 한국인들은 착취자이자 기회주의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인들이 의류 산업에 진출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방식[1]은 민족 간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언론은 한국인들이 전기를 도둑질한다는 허위 보도를 하여, 그들이 아르헨티나인의 삶을 해치고 번영한다고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계층 구조가 뚜렷하고 유럽계 중심의 국민 정체성을 강조하는 나라이기에, 한국인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반감을 샀다.

한국 이민자 자녀들도 부모 세대의 부족한 스페인어 실력, 음식 문화,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등의 관습 때문에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진짜 아르헨티나인'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많은 소수 민족과 마찬가지로, 2세대들은 주류 사회의 가치를 보편적이라고 여기며 조상의 문화적 가치를 덜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일부 청년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회피하고 자신을 '포르테뇨(Porteño)'—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한국계 여성은 아르헨티나 남성들로부터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미국 등 해외에 나갔을 때 비로소 '아르헨티나인'으로 온전히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들의 스페인어 억양은 스페인어권 사회 내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6. 언어

아르헨티나의 한인 대부분은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하지만, 숙련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르헨티나에는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를 유산 언어로 가르치는 한인 주말학교가 다섯 개 있으며, 최근에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수업 등 문화 활동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한국어 실력이 공동체 소속감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지며, 어릴 때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이들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다시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7. 종교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다수는 개신교 신자이며, 불교나 주류 종교인 로마 가톨릭을 믿는 소수도 존재한다. 아르헨티나에는 총 30개의 한인 개신교 교회가 있다. 가장 오래된 교회는 1966년과 1967년에 각각 설립된 Iglesia Unión Coreana en Argentina와 현재 대형 교회로 성장한 Iglesia Chae-Il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교회로는 1972년에 설립된 장로교회 미션 중앙(Iglesia Central, Misión Chung Ang)이 있다. 한인 교회들은 한인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한인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며, 미시오네스 지역 등 저소득층 지역 사회에 선교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8. 문화

최근 K-팝의 인기로 인해 많은 아르헨티나 청소년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국문화원은 아르헨티나 최대 규모의 K-팝 축제를 후원하며, 매년 수천 명이 참가한다. 2017년에는 라틴아메리카 16개국에서 참가자들이 몰려왔다.

또한 한국 무술도 한인 사회 내에서 여전히 활발히 수련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전반에도 널리 퍼져 있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드문 십팔기도 아르헨티나에서는 꽤 잘 알려져 있으며, 7만 명 이상이 수련 중이다. 이는 1970년 세계적 무술 고수인 유수남 사범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유수남은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아르헨티나 육군사관학교에서 십팔기를 가르쳤으며, 이를 계기로 연방 경찰 특수작전부대에서도 채택되었다.

아르헨티나 전통 음식인 아사도는 한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샐러드나 감자튀김 대신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2005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로보스 지역에 ‘클럽 데포르티보 코레아노(한인 체육클럽)’가 설립되어 축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아르헨티나 내 다른 이민자 공동체—스페인, 이탈리아, 아르메니아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현재 이 팀은 아르헨티나 5부 리그인 토르네오 아르헨티노 C에 참가 중이다.

2008년 12월 8일에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한국 미술 테마 미술관인 ‘김윤신 미술관’이 플로레스타 지역 펠리페 바예세 거리 2945번지에 문을 열었다. 이 미술관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 중인 한국 출신 화가 김윤신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9. 목록

9.1. 실존 인물

아래의 인물들 중 상당수가 한국과 아르헨티나 이중국적인데, 아르헨티나는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를 둘다 채택하여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기만 해도 아르헨티나 국적을 주는데다, 국적포기가 절대 불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에[2] 어지간해선 후천적 이중국적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3] 한국도 아르헨티나 국적자가 한국에 귀화 시 복수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10. 관련 문서

11. 외부 링크


[1] 하루 12~14시간의 장시간 노동, 가족뿐 아니라 볼리비아 등 이웃 국가에서 온 불법 이민자 고용 등.[2] 아르헨티나 국적을 불법적으로 취득했을 때는 국적박탈이 가능하긴 한데, 상식적으로 그런 경우가 없고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3] 아르헨티나처럼 국적포기가 절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면 인요한처럼 한국에 크게 공헌한 외국인이나, 알파고 시나씨처럼 본국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고있는 상황이면서 본국 국적을 포기하기 힘든 경우 등 정말 예외의 케이스만 후천적 이중국적을 허용한다.[4] 한국계 최초 문화부차관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