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6 15:56:56

한국계 일본인

1. 정의2. 개요3. 정체성4. 알려진 한국계 일본인
4.1. 정계/공무원4.2. 재계4.3. 작가4.4. 범죄자(야쿠자 포함)4.5. 연예계/예술계4.6. 스포츠
4.6.1. 야구선수
4.7. 학계4.8. 기타
5. 도래인/역사적 한반도계 일본인6. 왕공족

1. 정의

韓國系日本人. Korean Japanese.

대한민국 혈통의 일본인. 재일 한국인[1]과는 다르다.

2011년 한국 외교부가 파악하는 한국계 일본인의 숫자는 326,671명이다. 실제로는 이 숫자들보다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본인들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2], 드물지만 부모가 아예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고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3] 또한 저 숫자는 주로 한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 옮겨간 사람들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이고 국적이 아닌 혈통 기준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통혼이 부분적으로 이뤄졌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이나 한국 국적의 배우자[4]는 보통 전후에 일본인으로 분류됐던 점도 있다. 물론 이방자 여사 같은 예외는 있다.

2. 개요

기원은 고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수많은 도래인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현대적인 국적에서 감안할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잔류한 재일 한국인 중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사람들이다. 결혼의 주된 요인은 1980년대에서야 정립이 된 영주권 등으로 대표되는 차별이나 통혼 등이 주요 원인이다. 통혼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보통 소수민족 여성의 경우 다수민족 남성과 통혼할 때 다수민족 남성의 국적으로 귀화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결혼은 8,376건으로 일본 전체 혼인건수가 그 해에 730,971건이고 재일 한국인의 인구가 1%가 안 되는 점을 감안할 때 재일 한국인이나 조선적 커뮤니티 내부의 결혼보다 일본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뜻한다. 2006년 그 해에 75%가량이(약 6천 건) 일본인 남성과 재일 한국인 여성의 결혼이며 재일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혼은 2,300건 남짓이다.

재일 한국인의 일본인 귀화는 1995년에 1만 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감소세다.

다만 한국식 성을 유지한채 귀화할 수 있는 성씨에는 제한이 있다. 예전에는 귀화시 일본에 이미 등록되어 있는 성씨만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정되어 외국인이 귀화하는 경우 상용한자와 인명한자로 등록된 한자를 이용해서 창씨를 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으나 아직도 이(李)씨나 최(崔)씨의 경우는 등록된 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선택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이름은 한국식 이름을 쓰고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되니까 이름은 그다지 귀화시에 문제가 없으며 성이 문제였다. 한동안은 재일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일본으로 귀화하는 것을 일종의 배반 행위라 여기는 일이 많았으나 최근에 그런 터부는 약해진 편이다. 다만 조선적이나 조총련 계열에선 아직도 이런 의식이 강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불편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일본 국적법상 귀화한 한국인들은 그 해 관보에 명단이 실린다. 혹시나 부락지명총람사건처럼 쓰이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일이다.

3. 정체성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들도 한국 국적은 있지만 거의 모국어일본어를 사용한다. 재일 한국인들도 일본인과 유사하며 한국계 일본인들 역시 그렇다.

일본의 극우적 태도가 몸에 배여 반외국인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한국을 상대하는 건 껄적지근하니까 중국을 상대로. 혐한인 한국계 일본인도 있긴 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게 동족혐오가 없는 집단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안에서도 자국 혐오가 퍼져있을 정도이니

4. 알려진 한국계 일본인

주로 일본어 위키백과의 항목을 참고하였다. 링크 스포츠연예계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 공무원이나 정치 등에서는 드문 편. 그런 이유로 대신 사업을 많이 하고 사업을 할 때 네트워크를 중시한 탓에 화교들처럼 재계에서는 꽤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귀화하는 한국계 일본인들은 한국식 성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의 경우 볼드체로 표시.

4.1. 정계/공무원

  •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 1882-1950. 일본의 외교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도공 박씨의 후예로 집안이 조선계임을 알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 외교장관으로 A급 전범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투옥 중 사망. 특이한 것은 어머니가 조선인 도공과 독일인의 혼혈이었는데 자신 역시 독일인과 결혼했다.
  • 도고 가즈히코(東郷 和彦): 1945년생 일본의 외교관. 할아버지가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이다. 서울대에 와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도고 가즈히코의 아버지 도고 후미히코는 도고 시게노리의 데릴사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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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이 쇼케이(新井 将敬): 어릴 적 이름은 박경재(朴景在)로 1948년 일본 오사카 출생. 16세 때 귀화. 도쿄대학 이과1류(이학부/공학부)에 입학했다. 미시마 유키오카를 마르크스에게 심취했다고. 자민당에 입당했으며 파벌나카소네 야스히로 쪽. 1983년에 도쿄2구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와 대결했는데 이시하라 측에서 아라이를 북한인이라고 비방하였다. 이시하라는 비서가 멋대로 그랬다고 주장했다. 이때는 낙선했으나 1986년 도쿄 2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되어 4선 의원을 지냈다. 1997년 증권 스캔들에 휘말렸고 1998년 2월에 도쿄의 호텔에서 자살하였다. 이 증권 스캔들 당시에 일본 정계에서 받아쳐먹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유독 당해서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사건 자체는 그 뒤로 묻혀서 진실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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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쿠 신쿤(白眞勳):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는데[5] 한국 국적이었다가 2003년에 한국식 이름 그대로 귀화하였다. 2004년에 일본 참의원에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노다 요시히코총리에 있을 때 내각부 차관을 맡기도 했다. 딸인 미야자키 레이카(宮崎 麗香)는 모델 겸 배우이다. 하쿠가 아내와 이혼하고 아내가 키웠기 때문에 하쿠의 전처 성을 따랐다. 현재는 입헌민주당 참의원 비례대표이자 당내 계파 중 소나무 그룹 일원이다.
  • 시나가와 쓰카사(品川 司): 1910년생. 현재는 불명. 일본의 우익 성향 정치운동가, 평화운동가로 북방영토 회복 등을 주장했으며 일본 민주당(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정당) 등에서 활동. 참의원과 중의원에 지속 출마했으나 당선되지는 못 했다.
  • 이경재(李 敬宰): 1954년생으로 1980년대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했다. 2006년에 귀화. 귀화한 뒤에 외국계 일본인들이 많아지면 덴노제는 저절로 무너진다고 발언하여 문제가 되었다. 참의원 출마했으나 낙선.
  • 김정옥(金 政玉): 장애인 인터내셔널의 일본 사무국장. 2005년 귀화했고 참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

4.2. 재계

  • 한창우(韓 昌祐): 1931년생으로 파칭코 재벌 마루한[7]의 설립자로 2002년 귀화했다. 특이한 것은 귀화 후에도 한국식 독음을 쓴다. 일본은 한자 읽는 법이 제각각이고 딱히 법적인 규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기준 재산이 34억 달러로 일본 8위의 부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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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다 요시타카(福田 吉孝): 1948년생으로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큰 소비자 대상 금융사인 아이풀(アイフル)의 창립자이다.
  • 오시마 겐신(大島 健伸): 1948년생. 오사카 출신으로 SFCG를 창립했다. 사업자 대상 대출금융회사였는데 파산했다. 차녀인 오시마 유키가 뉴욕 메츠 소유주 차남과 결혼했으나 2007년 이혼했다. 아들인 오시마 요시히토(大島 嘉仁, 1976-)는 일본의 금융사인 마그넷 홀딩스의 대표이사이다.

4.3. 작가

  • 이오 겐시(飯尾 憲士): 1926-2004. 일본의 작가.
  • 이종직(李 鍾植): 작가로 조선적이었으나 한국으로 귀화해 한국 정부를 위해 첩보활동을 했으나 북한이 그에게 접촉하면서 첩보 생활을 정리했다. 이름은 가명이며 인적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 기타하라 쓰즈루(北原 綴): 1938년생 일본의 작가.
  • 사기사와 메구무(鷺沢 萠): 1968-2004. 일본의 소설가. 2004년 도쿄 도의 자택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 세키 기세이(関 貴星): 1914-1986. 조총련 계열의 정치운동가였으나 북한의 실상을 안 뒤 일본으로 귀화하여 이를 고발하는 책을 썼다.
  • 마쓰모토 도미오(松本 富生): 1937년생 일본의 작가.

4.4. 범죄자(야쿠자 포함)

4.5. 연예계/예술계

  • 아이하라 미카(愛原 実花): 1985년생 일본의 배우.
  • 이하라 쓰요시(伊原 剛志): 1963년생 일본의 배우. 한국계 3세로 1995년 귀화. 헤이세이 가메라시리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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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카모토 아카네(岡本 茜): 1978년생 일본의 가수 겸 배우. 아버지는 폴란드스웨덴인이며 어머니가 한국일본인. LIV MOON이란 그룹에서 아카네 리브란 이름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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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진(金 守珍): 1954년생 일본의 연극 배우 겸 연출가.
  • 삿카 게이세이(属 啓成): 1902-1994. 일본의 음악학자이자 음악평론가.
  • 사와 지에(沢知恵): 1971년생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외할아버지가 시인 김소운.
  • 최양일(崔 洋一) : 1949년생 일본의 영화감독.
  • 마쓰모토 쇼이치(松本 鐘一): 일본의 만담가. 만자이를 할 때면 笑福亭 銀瓶이란 이름을 쓴다.
  • 미야모토 아야나(宮本彩菜): 1991년생 일본의 패션 모델 아시아, 미국, 유럽의 다국적 혼혈로만 알려져있었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부모님의 고향이 제주도라고 밝혔다.
  • 미야비: 조부모가 제주도 출신의 한국인이다. 아버지는 재일교포 2세.
  • JYONGRI: 1988년생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 나쓰다 쇼코(夏田 鐘甲): 1916년생 일본의 작곡가. 한국이름은 우종갑(禹鍾甲).
  • 강남(가수) (滑川 康男): 1987년생 가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 나쓰다 기사카즈(夏田 昌和): 1968년생 일본의 지휘자. 나츠다 쇼코의 장남이다.
  • 배정명(裵 ジョンミョン): 1985년생. 일본의 배우.
  • 호테이 토모야스(布袋 寅泰): 1962년생 일본의 뮤지션. 해당 항목에 호테이 토모야스 본인이 쓴 자서전 내용에 이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마츠다 유사쿠(松田 優作): 1949-1989. 일본의 배우. 한국명은 김우작(金優作). <태양에 외쳐라>의 형사 역할로 큰 인기를 얻었다. 명탐정 코난을 비롯하여 형사가 등장하는 일본 작품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패러디된다. 원피스의 아오키지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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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하 후미아케(マッハ文朱): 1959년생 일본의 전직 프로레슬러 출신 방송인. 한국이름은 이문주(李文朱). 대괴수 가메라시리즈에도 출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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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온(美元): 미원 1979년생 일본의 배우 겸 모델. 본명은 아시자와 유리(芦澤 裕子).
  • 리 토시오(李 闘士男): 1964년생 일본의 PD, 드라마 연출, 영화감독.
  • 와다 아키코(和田 アキ子): 1950년생 일본의 가수, 배우. 본명은 김복자(金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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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 토와(鄭東和) : 1964년생 일본의 가수이자 DJ. 본명 정동화로 한국에도 지명도가 있다.
  • 박로미(朴璐美, 파쿠 로미): 1972년생 일본의 성우.
  • Pile: 1988년생 일본의 가수, 성우.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 사이조 히데키(西城 秀樹, 이용웅): 1955년생 일본의 가수. 아이돌 가수로 시작하여 70년대 범아시권 수퍼스타로 발돋움.

4.6. 스포츠

  • 마쓰야마 류스이(松山 龍水): 1976년생 일본의 스모선수. 긴카이야마 류(金開山 龍)라는 링네임(시코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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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 타다나리(李 忠成, 이충성): 1985년생 일본의 축구선수.
  • 역도산(力道山, 리키도잔) : 1924-1963. 일본의 프로레슬러. 일본명 모모타 미츠히로(百田光浩). 본명은 김신락이다.
  • 사토 다다히로(佐藤 忠博): 1960년생 일본의 스모선수. 링네임은 다이류 다다히로(大竜 忠博).
  •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 成勲): 1975년생. 일본의 격투가. 한국에선 한국이름인 추성훈으로 유명하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2001년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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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이 히로마사(新井宏昌): 1952년생. 한국 이름은 박종률(朴鐘律). 일본프로야구선수였다. 스즈키 이치로를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며, 현재 일본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타격코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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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들이 미녀다. 근데 아버지랑 찍은 사진은 영 안 나왔네 장녀인 아라이 히사에(新井 寿枝, 1986-) 만화가패션모델이며 2011년 미스닛폰 미스기모노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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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딸인 아라이 기코(新井 貴子, 1990-)는 2012년 미스닛폰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1등상)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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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야마 마스타쓰(大山 倍達): 1923-1994.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한국에선 본명인 최영의나 '최배달' 등의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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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모토 히로키(吉本 大樹): 1980년생 일본의 모터 스포츠 선수. 재일교포 3세. 한국 이름은 주대수이며, 이 이름으로 2010년에 한국 그랑프리 운영법인 KAVO가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실시한 한국인 F1 레이서 선발전에도 참가했다. 또한 요시모토 다이키(한자 동일)라는 이름으로 록밴드 doa[10]의 보컬을 겸하고 있다.
  • 하야카와 나미(早川 浪): 1984년생. 전북 전주 출신으로 양궁 선수이며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혼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2006년 귀화. 2007년 일본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해 일본 신기록을 경신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여자 개인에서 6위, 여자 단체 8위. 현재는 은퇴. 한국 이름은 엄혜랑(嚴恵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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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야카와 렌(早川 漣): 1987년생. 하야카와 나미의 동생으로 언니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혼하면서 일본으로 갔고 양궁 선수로 활동했다. 2009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이름은 엄혜련(嚴惠漣).
  • ZEUS: 1982년생 일본의 프로레슬러. 본명은 오바야시 겐쇼(大林 賢将).

4.6.1. 야구선수

  • 마쓰이 가즈오(松井 稼頭央) - 야구선수. 할아버지가 2008년 화재로 사망했다는 보도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이 한국이름으로 표기되면서 한국계설이 사실로 밝혀졌다.
  • 사이토 가즈미(齊藤 和巳): 1977년생 일본의 야구선수. 선수 인생 태반이 부상이라 풀타임을 뛴 시즌이 몇 안되나, 전성기인 2003~2006년 사이 64승 16패에 사와무라상 2번 수상으로, 지지 않는 투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 카네다 마사이치(金田 正一): 1933년생 일본의 야구선수.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400승 달성자다.
  • 후지모토 히데오(藤本 英雄): 1918-1997. 일본의 야구선수. 1943년 0.73의 평균자책점은 불멸의 기록.

4.7. 학계

  • 아사카와 아키히로(浅川 晃広): 1974년생 일본의 사회학자.
  • 우장춘: 1898-1959. 아버지 우범선 때문에 히로시마에서 자랐고, 한국인의 일본 망명을 지원하던 스나가라는 인물의 양자로 들어가 스나가 나가하루(須永 長春)란 통명을 썼다. 뒤에 한국인으로 국적회복했다.
  • 와타나베 키루욘(渡辺 吉鎔): 1944년생. 일본의 사회학자 및 언어학자로 식민지 경성부 출신. 1964년 이화여대 1학년을 마친 뒤 도일하였다.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했으며 동 대학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NHK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기도 했다. 일본인과 결혼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4.8. 기타

  • 조 케이토(城 景都): 1946년생 일본의 화가. # #

5. 도래인/역사적 한반도계 일본인

  • 와카타 나오타카(脇田 直賢): 1585-1660. 본래는 조선한성 출신으로 한림 학사의 아들이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고아가 됐다.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일본으로 데려갔고 일본에서 자라 봉행(우리로 치면 사또 같은 것)을 맡았으며 1500석급의 영지를 받았다고. 카쿠레키리시탄이었다고 한다.

6. 왕공족

  • 모모야마 켄이치(桃山 虔一): 1909-1990. 한국 이름은 이건으로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아들. 일본군 대좌(대령)로 복무하였고 전후에 신적강하가 이뤄지며 왕공족의 권한이 소멸하면서 모모야마 켄이치란 이름을 쓰고 도쿄에서 제과점 등을 운영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조선 출신은 일본 국적이 박탈되면서 조선적이 되었지만 1955년 귀화했다. 영친왕과는 달리 전혀 반일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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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2]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 중에도 한국계 혹은 조선계임을 숨기는 사람은 꽤 있다. 특히 과거 조선적(조총련계가 아니다)이었던 사람들에 관한 정보는 한국에 언급되지 않을 뿐, 일본의 조총련계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증언 중에는 놀라운 것이 많다.[3] 이는 아이누 민족이나 류큐인 등 일본의 소수민족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보였던 현상이다.[4] 일제강점기엔 조선에 본적을 둔 일본인으로 구분. 그러나 간혹 본적을 일본으로 옮기는 편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5] 일본은 1986년까지 부계혈통주의여서 아버지가 일본 국적이어야만 일본 국적을 줬다. 한국도 1998년까진 그랬다.[6] 출처: http://www.forbes.com/sites/tatianaserafin/2013/04/03/japans-50-richest/[7] 그룹 회장이 재일교포다 보니 자사 로고에 영어, 일본어에 한글도 병기한다. 덧붙여 마루한이란 이름은 파칭코의 구슬(丸, 마루)과 한창우의 회장의 성에서 따와 지어졌다.[8] 아오야마는 외가 성[9] 데뷔는 가수. 무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주제가를 불렀다[10] 울트라맨 넥서스의 주제가 英雄(영웅)과 青い果実(푸른 과실)을 부른 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