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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다신론, 범신론 [2] |
| 성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 국사당[3]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태백산 천제단[4]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5] 대한민국의 팔도명산[6] |
| 세계관 | 한국 신화에 삼교적 요소 등 혼재 |
| 규모 | 무속인 약 30만 ~ 50만 명 ,(2016, 출처), |
| <nopad> 삼태극[7][8] | |
| 명칭 | |
| 한국어 | 무속(巫俗), 무(巫), 무교(巫敎) |
| 영어 | Musok, Muism, Korean shamanism[9], Korean folk religion |
1. 개요
| |
| 제주민속촌 서낭당의 당산나무 |
민중과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된 한민족의 토착 민속종교.
2. 명칭
현대 한국인은 한국의 전통신앙을 보통 "무속" 내지는 "무속신앙"이라고 부르지만, 이런 명칭은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 등장했다. 전근대 한국에서는 무속을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는데 삼국시대의 신라에서는 중국의 선교(도교)와 구분하여 "국선(國仙)"이라 불렀고 , 조선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 "음사(淫祀)"[10], "좌도(左道)"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11]민속학자 이능화는 수천 년간 특정 명칭이 없었던 이 종교를 "무속(巫俗)"이라 명명했고, 개신교 신학자 유동식은 "무교(巫敎)"라 불렀으며, 인류학자 조흥윤은 "무(巫)"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는 오랜 시간 한민족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던 민속 종교를 고유한 이름으로 구체화하고, 엄밀히 하나의 종교로 재정립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임을 보여준다.
무속(巫俗)은 가장 대중적인 동시에 학술적으로 통용되는 한국 전통신앙의 표준명칭이다. 1927년에 민속학자 이능화가 게재한 논문인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최초로 정립되었다. 뒤에 있는 풍속 속(俗)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에서 전승되는 관습적인 신앙이라는 것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 같은 표현이 한국의 전통신앙을 미신이나 풍습 정도로 폄하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박으로 민중의 삶과 깊게 밀착되어 있는 한국 전통신앙의 특성을 잘 반영한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巫)는 무속신앙에 대한 존중・배려를 나타내기 위한 또 다른 용어다. 무(巫)는 해당 신앙에 대한 가치판단이 부과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교"나 "무속"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해석되며, 무업에 종사하거나 무를 신봉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반면, "무교"는 해당 신앙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이 아니라, 좀 더 종교학적인 관점에 한정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무"보다 좁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12]
무교(巫敎)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타 종교와 대등한 종교 현상으로 인식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13][14] 무속(巫俗)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무속신앙을 종교로 보지 않고 좀 더 격이 낮은 미신으로 취급하는 역사적 천시의 의미가 내포되었다는 주장이 있어[15] 무속신앙을 종교학의 입장에서 바라 보는 동시에 존중・배려를 표현하기 위해서 무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모든 무속인들이 대안적 명칭인 "무교", "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무속의 속(俗)에는 무속 박해와 탄압, 멸시의 역사와 더불어 민간 신앙으로써 평민들과 향유하며 꽃피웠던 민속 문화라는 뜻도 함유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16]
이렇듯 무속, 무, 무교 등의 용어를 두고 이론이 많은데 이는 전적으로 한국 전통신앙의 명칭을 신앙인이 아닌 민속학자, 개신교 신학자, 인류학자와 같은 외부인이 지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그 당시 무당들에게 제대로 된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제주도 등지에서 '당 신앙'과 같은 용어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17] 구심점을 가지지 못하고 여전히 무속이란 표현이 주류로 사용되고 있다.
무종교(無宗敎)도 흔히 무교(無敎)라고 줄여서 표현하지만 전혀 다른 뜻인 데다 나무위키에서는 본 문서와 동음이의를 피하기 위해 구별해서 표기한다.
3. 역사
인류의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 한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온, 워낙 오래된 종교이기 때문에 무속 역사의 시작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고조선 시대 때도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무당의 샤머니즘적 특성으로 바라본다면 무속 역사의 시초는 선사시대(원시씨족사회)에 시베리아 퉁구스족이 부족 내 샤먼의 집에 목각 인형을 씨족의 영혼 천도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걸어둔 것을 무속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18]
3.1. 고대시대
무속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신시를 세웠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하는 장소이자 굿당으로, 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한 무당으로 해석할 수 있다.[19][20] 상고시대는 제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에 무속은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한국의 제례나 풍속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있다. 마한의 천군·소도,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이 모두 무속의 제례라고 볼 수 있다.[21] 신라에서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남해 차차웅) 고구려에서는 '사무(師巫)'라는 명칭이 있었을 정도로 이때의 무속은 위상이 높았다. 그러나 사회와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유교·불교·도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들이 유입되자 점차 쇠락하면서 다른 종교와의 융합이 진행되었다. 특히 가장 먼저 수용된 대승불교와 무불습합이 이루어졌고 도교, 유교와는 영향을 주고받았다.
무속의 주요한 요소인 '귀신(鬼)'과 '무당(巫)'에 중점을 두고 검증된 기록에 따른 관점으로 볼 때의 무속 역사의 시초는 신라 2대 국왕인 남해왕의 즉위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남해왕 재위 중의 기록을 살펴보면 '1) 남해거서간은 차차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존장자의 칭호이다 2) 김대문이 말하기를 차차웅은 방언으로서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였다. 3) 세상 사람들이 무당을 통해 귀신을 섬기며 제사를 숭상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외경하였으며, 드디어 존장자를 차차웅(자충)이라고 하였다'고 삼국유사로부터 전해진다.더하여 당시 사람들이 귀신을 위하고 제사를 숭상하는 무당을 경외하여 존장자의 의미인 차차웅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22]
삼국시대에서의 무속은 시조제[23], 농신제[24], 산천제[25]의 모습으로 나뉘어 전승 된다. 삼국통일 이후에도 신라의 왕들은 새해를 맞이하여 시조제를 지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의례였다. 국가나 공동체 차원의 제천의식이 아닌 액운과 질병을 쫓아내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의 굿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역사서에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하는데 처용무가 그 예이다.
3.2. 고려시대
고려에서도 황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공적인 제천의식과 예언적 기능을 갖춘 무속이 자리를 잡았다. 두두리와 같은 토착신 숭배도 기록되어 있으며 헌종, 예종, 인종 때는 무속인들을 모아서 기우제를 지냈다. 특히 인종 때는 무속인들의 세력이 매우 커졌는지 무속인의 말을 듣고 왕이 이자겸의 처자식을 우대했다든가 벽골제의 둑을 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를 좋지 않게 본 조정의 신료들이 무속인의 세력을 견제하려고 한 흔적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 때부터는 강신으로 인해 무속인이 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곳곳에서 등장하며 그 당사자는 남녀나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된 고려 시대의 굿 묘사는 현대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3.3. 조선시대
조선 전기까지도 국무당을 비롯 한 산천에서 국행 및 내행기은이 거행되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운영의 주요 이념이 되어 무속도 최소한 권장되지는 않는 것이었고[26] 사림파 집권 시기에는 중화 성리학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토착 문화의 말살을 위해 무속이 박해되기도 했다.사대주의자들의 탄압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다소 축소되었으나, 평민 계층의 지지로 민간 신앙의 영역을 지켜내게 된다. 무속을 탄압하기 위해 부과된 높은 무업 세금은 청렴을 이유로 낮았던 조세와 그로 인한 지방 행정 조직의 만년 적자를 충당시켜주면서 오히려 무속과 유교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가지게 된다. 민간 신앙의 영역을 확보한 무속과 세습무들은 마을 의사로써, 마을 축제와 행사 담당자로써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탈춤이나 판소리들은 조정의 인정을 받는 등, 민속 문화로써 다시금 꽃피우게 된다. 이 시기로 인해 오늘날 민속신앙 무속의 형태가 갖추어진다.
또한 왕가와 양반같은 유교 집단은 무속과 충돌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무당들을 찾는 등 모순적인 이중 신앙관을 가지곤 했는데,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가 학질을 앓자 무당을 시켜 별에게 제사를 지냈으며[27] 중종 때엔 국무당 돌비가 궁중을 드나들며 푸닥거리를 하고 신의 은총을 기도했다. 숙종이 마마를 앓았을 때도 무녀 막례를 통해 굿을 하고 치병의례를 행했다. 사대부도 다를 것이 없어 중종 시기 이조판서였던 이계남은 풍병이 들자 가족들이 무당을 시켜 빌었음이 기록된다. 이렇게 무속와 유교의 충돌은 점차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혼재화되는 현상을 겪게 된다.
구한말 시기 명성황후 역시 무속의 신봉자였는데 아끼는 무당에게 진령군이란 벼슬을 내리고, 아버지의 묘를 4번이나 옮기며, 점이나 굿을 자주 거행할 정도였다.
3.4. 현대
허나 일제강점기 시대에 들어서서는 늘어난 개신교 세력과 토착 문화를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일본 제국에 의해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러한 미신타파운동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장승과 솟대, 서낭당, 신당과 같은 무속 건축물과 상징들은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파괴되었으며, 마을굿, 마당굿, 산천제와 농신제, 단오굿과 같은 지방 전통 축제들은 금지되어 일부를 제외하고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 무당들은 옥살이를 하고 굿을 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풀렸다. 개신교가 주도한 전국적인 미신타파운동의 결과로 무속은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상실하며 민간신앙의 영역에서 미신으로 격하되었고, 개신교가 한국 주류 종교에 이르게 된다.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이념과 국가 무신론에 따라 무속은 미신이라며 단속 대상이고[28]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무속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국의 공산주의 이념과 문화대혁명에 따라 미신타파, 구습이라며 탄압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천년 동안 특정한 이름이 없었던 이 종교에 '무속', '무속신앙', '무교'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탄압을 받으면서도 드디어 고유한 이름을 갖추고 하나의 엄밀한 종교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지금은 전통 문화/종교 보전 의식이 확대되어 탄압을 가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의 무속은 전통문화 관점에서의 활발한 연구와 문화산업에서의 활용 및 관련 유·무형자산의 문화재 지정 등의 재평가에도 불구하고 과거 민간신앙으로서 가지고 있던 영향력과 문화적 기반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동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예로부터 토착신앙이 번영했던 지역으로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족종교를 믿거나, 그 민족종교의 관습을 일부 수용한 대승불교를 주류 종교로 믿기 때문이다.[29] 동아시아에선 한국만이 유일하게 토착종교와 불교를 앞질러 기독교가 주류 종교로 성장했다.
그리고 개신교의 무속 파괴 행위는 여전하다.[30] 박정희 정권이 미신타파운동이란 이름으로 서낭당을 파괴하고, 당산나무를 베었던 일들이 오늘날에도 답습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고개역은 재개발 후 입주된 이주민들의 적극적인 역명 개정 요구로 불암산역으로 교체되거나, 부산 금정산 고당봉 또한 누군가에 의해 금정봉으로 훼손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한 마을 신앙의 면모가 강했던 무속이 미신타파운동과 현대화로 인해 사이비화가 가속되고 있다. 마을 신앙으로써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었던 세습무와 마을 굿, 마을 축제와 놀이 문화는 무속 특유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 구전 관습으로 인해 빠르게 소실되고 있으며, 대신 그 빈자리를 출처 불분명한 인터넷의 주술 요소나 도교 주술 용어를 확대 재생산하며 무속의 탈을 쓰고 무속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춤추고 풀이를 노래하며 공동체에 활력을 주었던 전통 마을 신앙은 설 자리를 잃고 타인을 저주하거나 조종하는 주술 무당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은 향후 AI의 발달 이후에도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점술가의 역할이 인간의 진로 상담 같은 것으로 명맥을 잇게 된 것에서 역사적 사례를 찾을 수 있다.
4. 특징
- 무속은 다른 나라의 모든 종류의 신령을 모실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과 포용력이 높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불교[31], 유교의 신령들을 받아들인 것뿐만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극소수이나, 예수, 더글러스 맥아더 등 서양 인물들을 숭배하는 무당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는 다신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당장 일본에도 단군과 같은 한국 신을 모시는 신사가 존재하고 로마에서도 켈트 신인 에포나를 믿기도 했다. 힌두교에서는 예수까지 믿을 정도로 다신교는 타 종교의 신격에 대해 포용적이나 무속에 익숙치 않은 현대 한국인에겐 다소 어색할 수 있다.[32]
- 무속의 성직자인 무당은 대개 자신의 개별 신[33]을 모시며, 그 신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권위를 활용한다. 물론 이러한 몸주신만 모시는 건 아니고, 지역신, 민족신, 자연신들도 모시고 섬기기도 한다.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의 경우 국내에 있는 여러 기도터를 통해서 치성을 드린다.
- 무속은 한민족의 토착종교로서 오랜기간 동안 다양한 외래종교들의 영향을 받았다. 무속과 첫번째로 교류한 것은 불교인데, 불교의 경우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토착종교들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으며,[34] 무속 또한 불교와 습합하여 무속신들이 보살이 되기도 했다. 이를 무불습합이라고 한다. 다른 외래종교들과 다르게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특징이다.
한편 중국에서 건너온 유교를 따르는 사대부들은 무속인들을 "괴력난신"[35]을 지양하는 존재로 여겨 무속을 무시하고 배척해왔다. 성리학이 국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조선시대에 들어선 아예 무속을 음사로 규정하여 국가적 차원의 박해를 가하기도 했다. 또한 모화사상에 입각하여 삼교 세계관에 기반한 도교적 시각으로 무속의 재해석을 시도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옥황상제나 관우같은 도교의 신격이 무속 내에서 자리잡기도 했다.
서양에서 온 기독교는 배타적 유일신교로써, 유교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르게 무속을 파괴해왔다. 그들은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36]라는 살벌한 문구를 근거삼아 적극적으로 무속의 유무형적 유산들을 말살해왔다. 일본 제국의 민족말살 시도중 하나인 미신론을 계승하여 무속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실행한 미신타파운동은 현대에 무속이 몰락해버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무속을 하나의 종교보다는 일종의 관습으로 인식한다. 물론, 체계적인 교리와 조직이 있는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들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처럼 간절한 마음(기복신앙)은 있으나, 통상적인 종교와 달리 거기서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체계적인 교단이나 교리 따위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속도 하나의 종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그리스도교나 불교 같은 체계화된 종교조직과 동일시하여 생기는 인식과 실체의 불일치이다.
이로 인해 무속은 대개 미래를 점치고 복비를 받는 "의식"으로만 여겨지며, 종교라는 느낌은 희미하다. 예컨대 타로점을 종교로 간주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무속인에 대해선 "사이비"라기보다는 "사기"로 여기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37]
- 무속은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려 왔으나, 이를 꾸준히 연구하는 단체는 한국무속학회 외에는 거의 없다. 간혹 학위논문으로 관련 연구자료가 발표되지만, 소속학과가 무속과 무관한 경우가 많아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5.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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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굿'을 하고 있는 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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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무당#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무당#|]] 부분을 참고하십시오.무속에서 무당은 종교의 성직자 내지는 사제 직위에 해당한다. 본래 무당은 여성 무속인만을 일컫는 말이었고 남성 무속인은 박수라는 명칭이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통상적으로 남성/여성 무속인 둘 다 무당이라고 부른다.
"무당"은 고유어로, 과거에는 한자를 빌려 巫堂으로 적었다. "격(覡)"은 박수를 의미하며, 이는 남자 샤먼을 뜻한다[38]. "심방"은 무당의 제주도 방언으로, 이는 '신방(神房)'의 자음동화로 추정된다. 과거엔 무당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현재는 사라졌다.
무(巫)·격(覡)이 사용하는 무구(巫具)로는 장구, 자바라 등의 악기를 포함하여 신을 내리게 하는 가지인 내림대, 원귀(冤鬼)의 한(恨)을 달래는 방울, 잡귀(雜鬼)를 쫓는 부채, 칼, 작두 등이 있다.
6. 경전
6.1. 무가(巫歌)
구비경전의 일종이며 무당에 의해 주로 굿에서 노래된다. 사제관계를 통해 제자에게 전승되는 것이 특징이다. 신가라고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본풀이라고 부른다.- 서사무가 : 《제석본풀이》,《바리데기》, 《장자풀이》,《칠성풀이》,《심청굿무가》,《이세경본풀이》,《천지왕본풀이》,《차사본풀이》,《안락국 이야기》,《이공본풀이》등
- 희곡무가 : 《소놀이굿》,《맹인놀이》,《거리굿》,《도리강관원놀이》,《중잡이놀이》,《세경놀이》,《영감놀이》,《전상놀이》등
- 교술무가 : 《지두서(指頭書)》,《조상해원풀이》,《성주축원》,《망자풀이》등
- 서정무가 :《노랫가락》,《창부타령》,《대감타령》등
6.2. 무경(巫經)
무당이 독경을 하거나 고사를 지낼 때 주로 독송하는 경전. 무가와 다르게 내용의 상당수가 도교, 불교, 유교 등의 외래종교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도교계통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다만 각 종교의 정경(正經)보단 위경(僞經)이 자주 사용되며, 도교계통과 불교계통의 무경이 습합된 경우가 많다.축사경류의 무경들은 외래 경전을 그대로 쓰기도 하는 한편,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도 상당히 많다. 이 경우는 여러 경전의 구절이나 교리, 사상 등을 가져와 뒤섞어서 한국식으로 읽는 일종의 편집본에 가깝다.[39] 때로는 원문과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해외의 경전들을 그대로 수용한게 아니라 무속식으로 재해석을 시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신봉안경류과 축원문류의 무경들은 삼교 경전들의 원문 내지는 편집본 성격인 축사경류와 다르게 삼교의 영향을 받았다 정도지 실질적으론 한국 고유의 가신신앙, 조상신앙, 기복신앙에 기반하고 있다.
※ 무경의 계통과 만들어진 국가를 첨자로 표기.
- 축사경 :《옥추경 玉樞經》[도교/중국],《옥갑경 玉甲經》[도교/한국],《신장편 神將篇》[도교/한국],《불설천지팔양신주경 佛說天地八陽神呪經》[불교+도교/중국],《축귀경 逐鬼經》[도교/한국],《팔문대진경 八門大陣經》[도교/한국],《철망경 鐵網經》[도교/한국],《박살경 搏殺經》[도교/한국],《태을보신경 太乙保身經》[도교/중국],《기문경 奇門經》[도교/중국],《육갑주 六甲呪》[도교/중국],《계사 繫辭》[유교/중국],《백화경 白化經》[유교+도교/한국] 등
- 가신봉안경[무속/한국][54] : 《성조경》,《조상경》,《지신경》,《조왕경》,《제석경》,《삼신경》,《명당경》,《안택경》,《부부화합경》,《해원경 解寃經》등
- 축원문[무속/한국][56] : 《신장축원문》, 《가신축원문》등
7.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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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국 신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1. 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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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국의 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국의 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사원
보통 무속에서 사원 역할을 하는 종교시설들을 뭉뚱그려 당집, 신당이라 부르곤 한다. 모시는 신의 위상이나 주된 기능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한 편이다.한국 토착신앙답게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57] 각각의 마을마다 무속 사원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었으나, 미신타파운동의 영향으로 상당수가 훼철되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보기가 힘들어졌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개인 무당이 운영하는 도시형 신당 정도지만 이같은 경우 전통적이고 유서깊은 무속 사원은 아니다.
- 신궁 : 과거 무속이 국교였던 시절에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신인 시조신을 모시던 성소. 삼국시대 이후로는 설치되지 않았다.
- 신사 : 지역에서 격이 높은 신을 모시는 사당. 한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를 주관하고 직접 관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으나 현재는 몇 곳 남아있지 않다.
- 서낭당 :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 마을 공동체가 관리 주체다.
- 신당 : 본래 서낭당과 동의어였으나 서낭당이 점차 사라지고 도시에 상업화된 신당들이 들어서며 지칭하는 대상이 다소 달라졌다. 현대의 도시형 신당은 일종의 점집과 비슷하게 기능하고 있다. 보통 개인 무당 1명이 관리한다.
- 굿당 : 단순히 신을 모시는걸 넘어 굿을 하는게 주목적인 장소.
- 산신각 : 산신을 모시는 사당.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주로 모셔진다.
- 용왕당 : 용왕을 모시는 사당. 해안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주로 모셔진다.
9.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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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무속 성지인 문무대왕릉 |
무속 사원과 마찬가지로 무속 성지 역시 산업화 시기 미신타파운동으로 영향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입긴했지만 당산나무나 기도처 등의 경우 자연물의 일종으로 여겨져서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다만 상당수는 본래의 무속적 색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성지를 수호하고 관리하는 숙련된 사제 집단(세습무)이 소멸하면서 종교적 성지로써 기능을 상당수 상실한 상태다[59][60]
9.1.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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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 삼신당 당산나무 |
10. 관련 문서
11. 같이 보기
12. 창작물
- 피막(1981)
- 점쟁이들
- 만신(영화)
- 곡성(영화)
- 방법(드라마)
- 대무가
- 비단꽃길
- 그놈이다
- 검은 사제들
- 장산범(영화)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 파묘
- 흑무경담
-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작두(웹툰)
- 미래의 골동품 가게
- 심야괴담회
- 그 외에 한국 신화 관련 창작물 다수
13. 참고 문헌
- Chačatrjan (2015), "AN INVESTIGATION ON THE HISTORY AND STRUCTURE OF KOREAN SHAMANISM |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59: 8.
- Kendall, Laurel (2009). Shamans, Nostalgias and the IMF: South Korean Popular Religion in Motion.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ISBN 978-0-8248-3398-5.
- 최준식.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모시는 사람들. 2009
-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 박명희. 한국 무교 의례에 나타난 꽃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한 연구. 한국화예디자인학회. 2004
[1] 연구에 따르면 대략 기원전 1000년 경 즈음에 한반도에 무속신앙이 발생·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Chačatrjan (2015). "AN INVESTIGATION ON THE HISTORY AND STRUCTURE OF KOREAN SHAMANISM |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59: 8.)[2] 무속은 범신론과 다신론 양쪽 면모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굳이 분류하자면 다신론적 범신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3] 엄밀히는 무교는 국가 주도하에 단일 교단으로 통일된 바가 없지만 국사당은 국가에서 인정하고 제사를 지내는 수호신사이며 수도 한양에 위치해 있었다는 상징성 때문에 무속신앙의 중심지로서 민속문화 연구자들이 주장한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 동문대 조성제 교수 등) 더군다나 그 규모도 무속 시설 중에서는 가장 넓은 수준이다. 자세히는 국사당 항목 참조. 무속인들의 사실상 중앙 본부인 "대한경신연합회"에서도 인왕산 국사당과 태백산 천제단을 종교적·신앙적 발원지로 보고 있다. 출처[4] 무속인들의 사실상 중앙 본부인 "대한경신연합회"에서 인왕산 국사당과 태백산 천제단을 종교적·신앙적 발원지로 보고 있다. 출처 태백산 천제단은 무교뿐 아니라 대종교에게도 성지로 여겨진다.[5] 전통적으로 민족의 기원과 관련된 의례를 치른 곳이며 전국체육대회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경우에도 이 곳에서 성화를 점화한다. 무속인들의 사실상 본부인 대한경신연합회에서의 핵심 연례행사인 "국태민안 단군대제"가 국사당, 천제단 등과 함께 대부분 이곳에서 개최된다. 참성단은 무교뿐 아니라 대종교에게도 성지로 여겨진다.[6] 산신기도, 용궁기도와 관련[7] 무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굿당 등 당집에서 이러한 사용례를 주로 볼 수 있다. 영아 위키백과 문서에서도 삼태극을 대표적 상징으로 서술하였으며 무교(무속신앙)과 굿당은 삼태극으로 그 존재가 식별된다는 Kendall의 2009년 논문을 인용하였다. (Kendall, Laurel (2009). Shamans, Nostalgias and the IMF: South Korean Popular Religion in Motion.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ISBN 978-0-8248-3398-5. p.178.)[8] 다만 실질적으로 점집 등에서 더욱 자주 보이는 것은 만자문(卍)과 흰 깃발/붉은 깃발인데 만자문 같은 경우에는 무속인들이 시대 흐름에 따라 불교 만물상에서 무구와 무속용품을 구매하게 되면서 늘게 된 사례거나 부처를 신으로 모시는 보살·점사 등이 점을 보는 경우다. 흰색/붉은색 깃발은 무속신앙 고유의 상징이 맞다. 백기는 점을 보는 곳이라는 표식이며 적기는 굿을 하는 곳이라는 표식이라고 한다. 어느 깃발이 위쪽에 걸렸느냐에 따라 주로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한다. # 백기는 하늘(천신, 천상신), 적기는 땅(자연신, 지신), 황색기는 인신(장군 등)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 본 문서에서는 Kendall의 논문을 참조하여 전통적인 무속신앙의 상징인 삼태극을 주된 상징으로 나타내었다.[9] 영어 위키백과에서 "무속"을 지칭 하는 표현.[10] 이 표현은 당나라가 작성한 구당서 동이열전에서 고구려의 무속을 지칭하며 쓰인 표현이다. 중화민족이 화이관에 입각하여 한민족의 종교를 멸칭으로 조롱한 것을 조선시대 유생들은 차용한 것.[11] 엄밀히 따지자면 조선시대의 이러한 표현은 유교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제례 활동을 뜻하는 말이라 무속만 이렇게 불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전통신앙이라는 특성상 대부분의 용례는 무속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12]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13] 이는 무속이 고유의 세계관과 세습무라는 전문사제, 정형화된 의례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왕실과 사대부를 포함한 지배계층까지 향유했던 신앙체계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다.[14]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15] 조흥윤. 巫와 민족문화. 1994: 95[16] 단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를 그 누구도 목사교나 신부교라 부르지 않고, 불교를 승려교라 부르지 않는다. 신토와 탱그리, 도교를 비롯해서 수많은 종교의 명칭은 성직자가 아닌 신앙의 대상이나 신념을 가리키곤 한다. 일각의 주장처럼 무속이라는 명칭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무교란 명칭 역시 전통신앙의 대상이나 신념이 배제되고 성직자(무당)만 부각되어 있기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다.[17] 당은 서낭당, 본향당 등 신들을 모신 堂을 뜻한다.[18] 2024,『한국 무속의 역사적 변천과 사회적 역할』,태일전통문화연구센터[19]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22[20] 해석하자면 제정일치 사회였던 것이다.[21]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71~72[22] 2024, 『무속의 총체』, 태일전통문화연구센터[23] 시조에게 드리는 제사[24] 풍년을 기원 하는 제사[25] 산과 강에 드리는 제사[26] 유교는 이를 괴력난신이라고 하여 무속뿐 아니라 불교도 억제하였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초기에는 가톨릭이 이와 같이 민간신앙의 영역으로 탄압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제사를 금지하는 등 유교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역적 행위를 저지른 탓이 크다.[27] 이때 인왕산에 있는 선암 아래 냇가로 행차를 옮겨 그 곳에서 굿을 했다.[28] 물론 남한과 마찬가지로 비록 몰래지만 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아다니는 경우는 많다.[29] 일본의 경우 신토와 불교가 주류 종교이며, 중국과 대만은 종교인 대부분이 불교도이거나 도교인이다. 몽골은 티베트의 본교와 융합한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으며, 소수이긴 하지만 토착 종교인 텡그리 신앙과 샤머니즘도 성장하고 있다. 다만 북한만 예외적으로 모든 종교활동이 위축되어 있다. 북한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천도교인이 가장 많으나 다른 종교와 신자수에서 크게 차이도 안날뿐더러 그 종교인들이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북한의 무속도 암암리에 무당을 찾아다니는 정도이며 자세한 현황은 불명이다.[30] 이는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신앙관에 기반한다. 이런 교조적인 태도는 이교에 극히 배타적인 행태로 드러난다.[31] 치성광여래, 불보살 등[32] 다만 무속은 다신교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포용성을 보이는데, 이는 근대화를 거치며 무속의 수많은 지역신들이 소멸한 것과 관련이 깊다. 문화적 기반과 공동체적 저항성을 지니는 지역신앙들을 잃으면서, 무속인들은 점차 1인1신의 몸주신 중심 체계로 바뀌게 되었고, 그 결과 외부 신격에 대한 저항성이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신격이 수용된다고 해서 해당 신앙이 항상 번영하는 것도 아니다. 신토를 비롯한 다신교에선 종교 특성 상 신들이 새로 탄생하는 경우가 잦지만, 그 중엔 문화적 저항성이나 어색함으로 인해 민중에게 외면받고 소멸하는 신들도 있다.[33] 대표적으로 조상신이 있으며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신을 흉내내는 나쁜 존재인 허튼이나 사람들을 괴롭히는 잡것이 있다.[34] 대표적인 것이 일본 신토의 신불습합이다.[35] 현실에 반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뜻함[36] 출애굽기 22:18의 구절이나 사실상 오역이다. 원문의 경우 Do not allow a sorceress to live.로 소서러를 무당으로 오역하는 등, 한국 교회는 수많은 오역을 활용하여 해외의 원시종교와 무속을 일치하려고 노력해왔다.[37] 물론 개개인이 묘사할 때는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차이가 있다[38] 무당과 박수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는 무당이 '묻-(묻다:問) + -앙(접미사)'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했다.참조 박수는 알타이 제어에서 남자 무당을 지칭하는 명칭과 유사하여 여기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만주어에서는 faksi, 나나이어에서는 paksi, 어웡키어에서는 baksi, 몽골어에서는 baksi 또는 balsi, 키르기스어에서는 baksa로 불린다. # 그런데 사실 이쪽 어휘들도 한자어 博士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39] 물론 이런 경우, 중국에서 원전이라 할만한 경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도교/중국] [도교/한국] [도교/한국] [불교+도교/중국] [도교/한국] [도교/한국] [도교/한국] [도교/한국] [도교/중국] [도교/중국] [도교/중국] [유교/중국] [유교+도교/한국] [무속/한국] [54] 삼교의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가신봉안경류 무경은 한국 고유의 가신신앙, 조상신앙에 기반한다.[무속/한국] [56] 삼교의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축원문류 무경은 한국 고유의 기복신앙에 기반한다.[57] 미수복 영토인 북한 포함[58] 미수복 영토인 북한 포함[59] 오늘날 여러 무속인들이 신빨을 늘리기 위해 해당 기도처들을 방문하여 굿을 하고 치성을 드리고 있으나 그것만으론 그들의 종교적 품성과 자질을 늘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들의 일련의 행위들은 이 곳이 무속 성지였음을 알려주는 그 흔적 표상으로써 기능을 하나, 숙련된 사제 집단과의 교감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적 역량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늘날 무속인들은 영적 상실감 속에서 공허한 행위들만 반복하고 있다.[60] 단순 신자일 경우 별로 큰 문제는 아니며 오히려 적절한 신앙행위다. 하지만 무속인들은 학습과 수련을 해야 하는 사제이기 때문에 부족한 그들의 종교적 역량을 위해서라도 가능한 빨리 성지들에 전문 성직자들을 마련하는 것이 요원한 상황이다.[61] 타 종교의 교구에 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