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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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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
महाया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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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बुद्धः
윈강석굴 대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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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धर्मः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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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भिक्षुः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월정사
규모 <colbgcolor=#fff,#1f2023> 약 1억 8천만 명
분포 중국, 한국, 일본, 대만 일대
종파 교종, 선종, 정토종

1. 개요2. 주요 특징
2.1. 보살사상2.2. 재가자에 대한 인식변화2.3. 공사상2.4. 유식사상2.5. 불성사상2.6. 회향사상2.7. 정토사상
3. 역사
3.1. 형성3.2. 전파
4. 부파 불교와의 비교5. 관련 문서

1. 개요

대승불교()는 불교의 주요 분파 중 하나로, '모든 중생을 함께 깨달음의 길로 이끈다'는 보편적 구제의 이상을 지닌 불교 사상 및 실천의 흐름이다. '대승'(大乘, Mahāyāna)이라는 명칭은 '큰 수레'를 의미한다. 이들은 이전의 부파 불교(또는 그 하위 분류인 상좌부 불교)를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작은 수레', 작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여 소승(小乘, Hinayana) 불교라 불렀는데 이런 멸칭적인 성격 때문에 1950년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소승 불교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간다라 지방에서 시작하여 점차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등지로 확산되며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한국사를 배울 때 반드시 나오는 교종/선종도 전부 대승불교에 속한다.

대승불교의 경전은 《금강경》, 《반야경》, 《반야심경》, 《묘법연화경》, 《화엄경》, 《유마경》, 《아미타경》등이 있다. 이 경전들은 대승불교의 경전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 대승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위에 언급한 경전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승 불교를 좀더 세분화하여 바라밀승(Paramitayana, 현교), 금강승(Vajrayana, 밀교)으로 구분한다. 금강승의 경우 대승불교와는 별개의 종파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주요 특징

2.1. 보살사상

대승불교의 중심에는 보살[1]사상이 있다.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의 이상은 개인의 해탈을 의미하는 아라한이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그보다 더 위대한 이상으로서 ‘보살’을 제시한다. 보살이란 단지 자신의 열반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자신이 먼저 해탈하기보다는 다른사람들을 먼저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우는 자를 말한다. 이는 개인의 해탈만을 추구하는 수행자상과는 달리,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자비의 실천자로서 자리 잡는다. 보살은 단순한 철학 개념이 아니라,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인간상이며 종교적 이상이다.

보살은 열반에 들어가기를 유예하고, 타인과 함께 생사윤회 속에 남아 존재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누며 이끌어주는 자이다. 이러한 수행자의 이상은 자비지혜의 완전한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이상을 실천하는 수행법으로 육바라밀이 설해진다.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여섯 가지 덕목으로, 이는 수행자의 일상적 실천뿐 아니라 내면의 심화된 인격 수양을 요구한다.

보살은 반드시 출가자가 아니라도 될 수 있으며, 재가자 역시 보살의 길을 걷는 주체로 존중받는다. 특히 《법화경》이나 《보현행원품》과 같은 경전에서는 이러한 보살의 행원과 실천이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으며, 일반 신자들에게도 보살도의 길이 열려 있음을 강조한다.
"나는 언젠가 미래에 여래이자 아라한이며,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가 되기를 바란다. 지혜와 실천을 함께 갖추고, 바르게 길을 걸은 자, 세상의 진리를 아는 자, 비길 바 없는 존재, 길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이끄는 자, 그리고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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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건넌 이로서 다른 이들도 건너게 하며, 평온을 얻은 이로서 다른 이들도 편안하게 하며, 열반에 든 자가 되어 다른 이들도 열반에 들게 하기를 바란다.
이 모든 바람은 인류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세상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신들과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마하와스투(Mahāvastu)》
《마하와스투(Mahāvastu)》는 고대 인도 초기불교의 한 분파인 초세간파(Lokottaravāda)에서 유래한 산스크리트어 불교 문헌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와 보살의 길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 경전이다. 이 문헌은 대체로 상좌부 불교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보살 수행과 장래의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대승불교로 넘어가는 사상적 전환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이 서원은 후대 대승불교에서 널리 알려진 사홍서원(四弘誓願)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사홍서원의 내용은 국가마다 종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vayaṃ tīrṇāḥ sattvāṃs tārayema, muktā mocayema, āśvastā āśvāsayema, parinirvṛtāḥ parinirvāpayema

우리가 스스로를 넘어섰으니, 모든 존재가 건너도록 하소서. 해탈한 우리가 그들을 해탈하게 하소서. 위로받은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열반에 이른 우리가 그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소서.
보살은 대승불교가 제시하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지향하는 존재상이며 자신의 깨달음을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해 실현하는 자이다. 그 핵심은 자비와 지혜의 통합, 그리고 모든 존재와 함께 하는 해탈의 길을 추구한다.

2.2. 재가자에 대한 인식변화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불교는 보편적인 구제와 평등한 깨달음 가능성을 내세우게 된다. 대승의 보살사상은 단지 출가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며, 수행의 주체를 획기적으로 확장시킨다.

대승경전에서는 이전과 다른 재가자의 위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유마경》은 유마거사라는 재가 수행자를 등장시켜, 출가 수행자들보다 더 높은 경지의 지혜를 갖춘 인물로 묘사한다. 그는 형식적인 출가보다 재가자도 수행과 가르침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전적 서사는 단순한 신앙적 상징을 넘어, 수행 자격과 깨달음의 보편성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사상적 전환은 불교의 이상을 출가자와 엘리트 중심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삶 속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3. 공사상

(空, śūnyatā)의 사상은 대승불교 철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이 사상은 불교의 핵심 원리인 연기(緣起)의 심화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존재란 독립적이고 고정된 자성을 가지지 않고, 오직 다른 조건과 인연에 따라 생기고 멸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고정된 실체나 본질(自性, svabhāva)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고, 인간이 진정으로 해탈에 이르기 위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공의 개념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모든 것에 내재된 가능성과 연관성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철학이다. 존재는 비어있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고,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이러한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립한 대표 인물이 용수이다. 그는 《중론(中論)》을 통해 “공즉연기, 연기즉공”이라는 명제를 제시하며, 모든 언어적·사상적 개념조차 조건에 따라 성립하는 것임을 논증하였다.

공사상은 지혜바라밀의 철학적 토대이자 실천적 기반이며, 마음속에서 ‘있다’와 ‘없다’라는 양 극단의 집착을 내려놓도록 이끄는 핵심 교리이다. 《반야경》 계열의 경전들, 특히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은 이 사상의 요체를 간결하게 상징한다.

2.4. 유식사상

유식사상은 대승불교의 철학적 전개 중 또 하나의 고봉으로, 인간의 인식 작용과 그 구조를 분석하고 깨달음의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는 교리이다. 유식은 외부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식(識), 즉 의식의 투영일 뿐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속 작용에 의해 구성된 결과이다.

이 사상은 주로 무착(Asaṅga)과 세친(Vasubandhu) 형제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여덟 가지 식(八識)으로 분석하였다. 앞의 여섯 식(오감의식)은 외부 대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일반적 인식 기능이다. 일곱 번째 식인 말라식(末那識)은 아집의 뿌리로서, 자신과 대상의 경계를 고정된 실체로 받아들이는 집착의 근원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 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업과 기억, 경험이 저장된 심층의식으로, 개인적 무의식이자 존재의 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근본 의식이다.

유식사상의 목적은 이 식들의 작용을 통찰하여 식을 전환하고 정화함으로써 지혜(智)를 이루는 것, 곧 전식성지(轉識成智)이다. 이는 곧 자기 인식의 깊은 전환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대승불교적 해탈론의 실천 방식이다.

2.5. 불성사상

불성사상은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부처가 될 가능성, 즉 불성(佛性, Buddha-nature)을 지니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구제의 보편성과 평등성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즉, 깨달음은 특정한 수행자나 출가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본래적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불성은 어떤 실체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내부에 잠재된 깨달음의 씨앗을 가리킨다. 인간은 망상번뇌로 인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며, 올바른 수행과 통찰을 통해 그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

대표적인 불성 경전으로는 《대반열반경》, 《승만경》, 《대보적경》 등이 있으며, 이 사상은 중생과 부처의 차별을 허물며, 수행의 동기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제시한다.

2.6. 회향사상

회향은 대승불교 보살 수행의 중요한 실천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자신이 쌓은 공덕을 타인이나 전체 법계에 돌리는 행위를 뜻한다. 보살은 공덕을 자신만의 해탈이나 복으로 삼지 않고, 그것을 모두의 이익과 깨달음을 위해 회향한다. 이는 보살의 자비와 무아적 태도를 실천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며, 대승불교의 집단적 구제성과 보편적 해탈론을 실현하는 수행이다.

이러한 실천은 《화엄경》이나 《보현행원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며, 실제 불교 의식이나 기도문 속에서도 “원하옵건대 이 공덕을 회향하여 모든 중생이 부처의 길을 함께 이룰 수 있기를...”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회향은 단지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공덕의 방향성과 목적을 재설정하는 수행이다. 이는 개인주의적 해탈관을 넘어서는 대승불교의 종교성과 윤리성의 핵심이다.

2.7. 정토사상

정토사상은 대승불교에서 중생이 스스로의 수행력으로 깨달음에 이르기 어려운 시대(말법시대)에, 부처의 원력과 자비에 의지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교리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부처는 아미타불이며, 그의 본원력에 의지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길이 제시된다.

정토사상은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특히 수행력이 부족한 재가 신자나 노약자,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강한 신앙적 위안을 준다. 핵심 실천은 ‘염불’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반복하여 부르고 마음속으로 신앙을 되새기는 수행이다. 대표 경전으로는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이 있다.

이 사상은 특히 중국일본 불교에서 독립된 종파로 발전하며, 선종과 함께 동아시아 불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정토사상은 인간의 구제를 현실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신앙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대승불교의 대중성을 대표한다.

3. 역사

3.1. 형성

초기 대승불교는 부파 시대의 불교가 고타마 싯다르타 당시의 초기 불교의 활동성·순수성·일반성을 상실하고 아비달마라고 하는 고정적·번쇄적·전문적인 훈고해석에 빠져버려 중생제도(衆生濟度)라는 불교 본래의 사명을 망각해 버린 것을 그 본래의 자세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으킨, 말하자면 불교 부흥 운동이라고 한다.

대승불교 운동의 발생과 그 추진역(推進役)에 관해서는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기존에는 부파 불교 중 대승과 교리가 유사한 대중부 불교에서 대승불교가 기원했다고 보거나(대중부 기원설), 대략 기원전 1세기부터 재가(在家)를 중심으로 한 혹은 불탑(佛塔)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재가불탑 기원설[2]) 이루어졌으며 그 지역도 남인도에 원형(原型)이 생겨서 북인도에서 확립되었다고 보았다. 대승불교는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말하는데 이러한 실천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는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등 경전도 대승불교가 나타난 이후에 작성되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했다.

그러나 폴 헤리슨*이나 그레고리 쇼펜*,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 안성두* 등을 중심으로 나오는 신 학설에서는 여러 고고학적/역사적 자료들까지 근거로 하면서 기원후 4세기까지[3] 대승/부파간 구분이 없고, 대중부 외에도 설일체유부, 법장부 등 여러 부파와 부파의 아가마와 논서에서 대승 사상과 관련된 교리들과 더불어 대승 운동이 있었다는 사료들이 많다는 점, 초기 대승문헌에서 아란야에서 엄격하고 보수적인 은둔 수행을 하는 출가자들이 중심이 되는 점, 고고학/문헌학적으로 성립연대가 기원전으로 올라가는 대승경전 유물들, 특히 대승불교의 근간인 반야사상과 관련해 기원전으로 올라가는 반야경 유물의 발견과 반야사상 관련 문헌의 문헌학적 분석 등을 통해 반야사상을 비롯한 대승불교의 근간사상의 연대가 소급되었다는 점[4] 등을 근거로 한 부파불교 기원설, 아란야 은둔 수행승 기원설, 법사[5] 기원설, 종교적인 선정 중 종교적 체험에 기원했다는 설, 경권(경전 두루말이) 신앙설 등 새로운 학설들을 내놓았다.

물론 가라시마 세이시(辛嶋静志) 교수처럼 기존의 대승불교 대중부 유래설에 대한 재검토와 보완을 언급하면서[6] 대중부 기원설에도 근거가 있음을 주장하는 학자와 학설들도 많으며, 현재로선 재가불탑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본토인 일본에서조차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 교수 이후로는 사라졌다. 보살가나설은 설 자체의 근거부족과 그레고리 쇼펜, 나티에, 사사키 시즈카 등 국내외 학자들의 비판, 특히 이 설 자체가 재가불교 교단 운동이 전통적인 출가불교 교단을 압도하는 일본불교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측면이 강함이 밝혀진 이후 영향은 남았을지언정 설 자체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도 종종 통용된다.

한편으로는 기존 인도 사상계에 존재하던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브라만교 쪽 전통사상이나 자이나교 사상,[7] 당시 인도에 유입되던 조로아스터교 등 이란계 외부 종교들의 영향도 받았다. 이는 후대에 밀교로도 이어지는데, 이런 영향관계는 국내 학술논문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일 정도로(참조링크) 이미 국제적으로도 정설이다.

이러한 대승불교 사상은 2세기 사람 용수(나가르주나)가 본격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중관파의 시조인 나가르주나는 공 사상의 개념을 체계화하는 등 대승불교의 기본 틀을 닦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그를 계승하는 제자들과 세친(바수반두)[8] 등 대승 논사들이 등장하면서 대승불교, 더 나아가 후대의 밀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의 차이점만 부각하여 대승불교는 불교가 아니라 '용수교'라고 하거나, 부처가 아닌 조사의 가르침만을 따르는 '조사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승불교 역시 석가모니의 사상에 기초하는 데다가 현 상좌부 불교 역시 석가모니 당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며, 동남아 민간신앙부터 대승불교까지 다양한 사상과 교류하며 변해왔다.[9][10]

3.2. 전파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의하면 부파 불교가 있던 2세기 중엽, 쿠샨 제국 카니슈카 대왕이 4차 결집을 열어 경전을 모으고(이때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등장함) 논사들이 부파 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했다. 이즈음 남인도 등에 있던 대중부 계열에서 초기 대승불경이 성립되어 인도 간다라 지방에 전해졌고, 그후 대승불교가 인도 밖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대승불교는 이 결집을 '4차결집'이라고 하나 상좌부 불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 시대까지도 인도와 간다라 지방에서 설일체유부 등 부파 불교의 여러 부파들이 같이 공존했다. 대승불교와 부파 불교를 칼로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려웠고 혼합 교단에서 대승화가 진행된 듯하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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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부파 불교
대승불교
상좌부 불교
밀교 · 티베트 불교

대승불교의 형성기 당시 인도는 서북부로부터 유목민들이 계속 유입되던 상황이었다.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이후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인도아대륙 서북부를 지속적으로 침공하게 되었다. 출가자(비구, 비구니)와 재가자(평신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초창기 부파불교의 문화는 이렇게 새로 인도로 침입하는 유목민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불교보다 좀 더 보편적인 형태의 종교, 보다 덜 금욕적인 계율이 요청되었다. 크림반도우크라이나 남부,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의 스키타이인, 이란투르크메니스탄, 이라크 등 서아시아의 파르티아인, 위구르토하라인 등 수많은 유목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펀자브카슈미르 지방까지 정착했다.

이들 유목민들과 그리스인들을 포함한 다수의 이방인들은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여러 문화와 문명 및 언어를 받아들였다. 여러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왕으로 꼽혔던 쿠샨 제국가니슈카 대제가 불교도가 되었다. 로마 제국인도 문화권 사이의 무역이 번창하면서 인도 문화권의 힘의 중심은 동북부 마가다 (현재 인도 북동부의 비하르) 일대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부파 불교계에서 사용되던 팔리어산스크리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중앙아시아에서 부파 불교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카슈미르, 동튀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지에서는 설일체유부 불교가 유행하였으며 같은 지역에서 동시에 대승불교도 유행하였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로 전파되는데 성공한 것은 대승불교였다.

중국, 대한민국, 일본 등으로 전래되었으므로 '북전불교', '북방불교'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남방에 대승불교가 절멸한 현재의 상황만 반영한 표현이다. 과거에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대승불교가 주류였다. 대표적으로 대승불교가 성행한 곳이 스리위자야이다. 크메르 제국 역시 힌두교와 더불어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대승불교를 믿는 군주로는 수르야와르만 1세, 자야와르만 7세, 인드라와르만 2세가 있다. 이후로도 불교도 황제와 힌두교도 황제가 번갈아 등장하였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네시아 지역에선 각각 상좌부 불교,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 대승불교가 주류인 동남아시아 국가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밑에 있는 섬나라인 싱가포르 뿐이다. 몽골 문화권은 티베트 불교이다.

그림에서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스리랑카에도 대승불교 경전[12]이 한때 소개되어 세력을 넓히다가 탄압받은 기록이 스리랑카 상좌부 측의 복주석서에 남아 있다. 몰디브에서도 3세기 경 대승 불교가 전래되었고 관련 사찰 유적이나 불상/보살상이 많이 발굴된다.[13] 몰디브인들은 12세기까지 불교를 신봉했으나, 이후 아랍인, 페르시아인, 소말리인 상인들의 영향을 받아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술탄이 1153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남아있는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몰디브의 이슬람화가 말레 환초에서는 순조로웠지만 지방에서는 기존에 불교를 믿던 세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승려들이 불교를 버릴 수 없다며 저항하다가 참수형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개종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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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대승불교
밀교 · 티베트 불교
상좌부 불교

4. 부파 불교와의 비교

  • 대승불경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독송한다.
  • 석가모니의 전생만을 뜻하던 '보살'이라는 개념이 확장되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을 미루거나 포기한 성인'으로 제일 중요한 반열에 올랐다. 반대로 기존 상좌부 불교의 최종 목표이던 나한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14]
  •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한다.
  • 재가신자가 비구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 타방불 개념과 정토이론이 생겼다.[15]
  • 믿음이 중요하다.
  • 득과 사상이 발전하여 믿음만 있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정토종이 등장한다.
  • 복잡한 경전 공부보다 깨우침 자체를 중시하여 누구나 깨달음만으로 부처가 된다는 선종이 등장했다.
  • 초기 불교의 호신주 개념이 발달하는 한편 힌두교의 의식들이 도입되어 다양한 진언, 다라니와 이와 관련된 비밀 의식/수행을 중시하는 밀교가 등장했다.[16]

5. 관련 문서


[1] 보살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역어로, ‘보디(bodhi)’는 ‘깨달음’, ‘사트바(sattva)’는 ‘존재’, ‘의지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보살은 보디사트바의 음역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줄임말이다.[2] 일명 보살가나 기원설[3] 이마저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쇼펜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5~6세기부터다.[4] 한 예로, 반야부 경전 중 금강경의 핵심 이론인 공 사상아함경에도 등장한다*.[5] 경전을 암송하고 재가자들에게 포교하던 승려들을 말한다.[6] 사실 이 설은 보살가나설 등장 이전에 나온 설이었으나 나온 당시가 1903년이다보니 시기상 연구 부족으로 근거가 보살가나설보다도 부족해 밀렸다가 2000년대에 들어 추가적인 사료의 발굴과 연구로 증보개정되면서 점차 다시 힘을 얻는 중이다.[7] 대승불교에서 육식 금지나 힌두교적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8] 상좌부에서 대승을 받아들인 인물로, 한때 동명이인설도 있었으나 외국 학계에선 설일체유부 문헌에 그를 '대승으로 변절한 낙오자'라고 비판하는 기록이 있어 부정한다.[9] 국내에서 상좌부 불교가 초기불교가 아니라는 학술적으로 명백히 증명된 이야기를 강조하는 인물 중 영향력 있는 사람인 승려 마성摩聖(팔리문헌연구소 소장이자 불교학 박사학위자)은 상좌불교 전공자이자 상좌불교 우월론자이다. 그런데 마성은 극단적인 상좌불교 추종자들과 상좌불교 우월주의 반대파 양쪽 모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10] 참조 문헌: 스에키 후미히코, 사이토 아키라 등 저, 안성두 역, <시리즈 대승불교>-대승불교의 아시아/대승불교의 탄생[11] 한지연, "서역에서 소승교단과 대승교단은 대립했는가", 2014, 제3회 한-중-일 공동 학술대회: 동아시아 불교에 있어서의 대립‧논쟁과 그 의의[12] 이 대승 경전들은 웨뚤라삐따까(Vetullapitak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경전들은 웨뚤라와다(Vetullavada, 方等)라는 부파에 속한 경전이라고 되어 있고, 나가의 처소로부터 가져온 것이며, 논쟁에서 설한 것(vada-bhasita)을 포함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웨뚤라는 와이뿔리야(Vaipulya), 와이뚤리야(Vaitulya) 등과 더불어 대승 측이 형성 초기에 자신들의 경전을 칭하던 이름 중 하나이며,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이 경전들이 나가르주나나 대승 논사들의 저서들을 지칭하며, 웨뚤라와다는 대승을 지칭한다고 본다.[13] 다만 몰디브에 보관되어 있던 불교 유물들은 2012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약 30점 정도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당시 영상[14] 신비주의 요소와 결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처 = 아라한이던 개념이 대승에 와서는 부처 > 아라한이 됐다. 결국 아라한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석가모니불을 뛰어넘은 비로자나불과 여러 보살들이 불교 신화로 흘러들어온 계기가 된다.[15] 무량수경에 의하면 2백 십억개나 되는 불국정토가 있다.[16] 비슷한 방식으로 도교와 혼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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