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13:14:26

상좌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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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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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 불교 상좌부 불교 대중부 불교
대승 불교 교종 선종 정토교
밀교 티베트 불교 }}}}}}

팔리어 थेरवाद
데바나가리 문자
한자 上座部佛敎
영어 Therav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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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상좌부 불교 승려 한국 상좌부 불교 소속의 승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한국에도 한국인 상좌부 불교 스님들이 있다.

1. 개요2. 역사
2.1. 기원2.2. 전파와 분포
3. 소승 불교?4. 특징5. 논란6. 부정관 수행7. 한국의 상좌부 불교 전파

1. 개요


부파 불교의 한 분류.

2. 역사

2.1. 기원

파일:SectarianBuddhistschools.png
초기 남아시아부파 불교
법장부
설일체유부
보특가라론자
대중부
분별설부 (현대 테라와다의 기원)

석가모니의 입멸 후에도 하나의 상가로 유지되던 불교는 제2차 결집에서 상좌부(Sthaviravada)와 대중부로 갈라지게 된다. 마우리아 왕조아소카 대왕 때인 기원전 3세기에 상좌부(Sthaviravada)의 주도로 팔리어로 행한 제3차 결집 직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가 제3차 결집의 결과물을 소지하고 스리랑카로 갔다.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스스로를 '분별설부(Vibhajjavada)'[1]라 불렀으며, 암송되어 오던 제3차 결집의 팔리어 대장경을 기원전 1세기에 싱할리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 분별설부에서 갈라진 것 중에 하나가 상좌부(Theravada, 테라와다)[2]다. 현재의 테라와다는 바로 분별설부의 삼장을 계승하였다. 현대에는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하여서 남방 불교라고도 불린다.

한자로는 이 Sthaviravada와 Theravada 둘 다 상좌부 불교라고 혼용해서 지칭하고 있다. Sthavira는 산스크리트어로 장로, 상좌를 뜻하고 Thera는 팔리어로 장로, 상좌를 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할 때 둘 다 상좌부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부파 불교 중에서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Theravada뿐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좌부 불교라고 얘기하면 이 Theravada(테라와다)를 지칭하는 걸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테라와다(Theravada)의 테라(thera)는 장로(長老), 상좌(上座)란 뜻이고, 와다(vada)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따라서 테라와다를 직역하면 '장로/상좌들의 가르침'이다. 장로는 승단(sangha)에서 비구들(bhikkhu)을 지도하는 사람들이고, 상좌는 비구들 중에서 윗자리에 앉는 분들을 말한다.

2.2. 전파와 분포

불교의 원류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남아시아 북부 지역이지만, 아소카 대왕 사후의 힌두교 세력을 피하며 계속하여 남하하였다. 그래서 마침내는 스리랑카까지 내려와, 안정적으로 불교의 원형을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11세기 쯤 인도에서는 이슬람의 침입으로 불교가 쇠퇴해갔고, 육상 무역로가 막히면서 스리랑카를 통한 해상 무역로가 발달함에 따라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시아로 활발히 확산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원래부터 상좌부 불교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1세기 이전에는 대승 불교가 강세였다. 스리비자야, 크메르 제국 등의 국가들도 다 대승 불교였다. 당시 미얀마태국 등지에 살았던 몬족, 피우족 등은 다른데보다 먼저 스리랑카와 교류를 해 일찍이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미얀마와 태국 이 두 나라에 상좌부 불교가 확고히 자리잡은 것은 각각 버간 왕조, 수코타이 왕조 때 일이다. 크메르 제국은 이전에는 힌두교대승 불교가 주류였지만, 자야와르만 7세 시절부터 아들 타말린다(Tamalinda) 황자를 출가시켜 스리랑카로 파견하여 상좌부 전통을 학습하게 하고 팔리어 경전을 수입하여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상좌부 불교가 국가 종교로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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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밀교 · 티베트 불교
대승 불교
상좌부 불교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불교가 상좌부에 속한다. 다만, 같은 동남아시아라도 한자문화권베트남중국을 통해 전래된 대승 불교가 주류이다.

3. 소승 불교?

과거엔 '소승 불교'(Hīnayāna, 히나야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소승이라는 말 자체가 대승 불교가 자신과 대비되는 의미로 기존의 부파 불교를 소승이라 부른 것이라 모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여 1950년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에서 소승 불교 또는 히나야나라는 말은 현존하는 어느 불교 종파에 대해서도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였다.[3] 대승 불교 측에서 임의로 붙인 표현이 바로 소승이다. 자기들은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니 큰 수레(대승)고, 저쪽은 개인의 해탈만을 중시하니 작은 수레(소승)이라는 것이다.

4. 특징

상좌부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므로 보수적이라고 말해지는 일도 있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 이상의 길은 없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말씀하신 길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삼법인, 사성제, 인연의 가르침, 팔정도와 깨달음을 이루어 해탈하기 위한 위빠사나 명상이라고 하는 수행 방법이다. 석가모니는 해탈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집착을 없애고 번뇌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수행을 통해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아라한(나한)이 된다. "붓다(부처)"는 석가모니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깨달음을 얻은 인물을 의미하는 경우는 아라한 등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깨달음(광명)을 얻은 인물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대승 불교, 금강승 불교에서만 해당한다.

상좌부 불교의 장로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게, 다만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가는 것에 자신의 모든 책임을 두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자신의 해석을 더하거나 하는 것을 일체 거부한다. 그리고 팔리어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의 길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한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당시에도 그러한 장로들의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승 불교와 핵심적인 교리는 차이가 없지만, 수행법이나 사상면에서 차이가 있다. 또 세세한 계율과 그 해석에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육식을 금하지 않고 허용한다.

대승 불교와 비교하여 상좌부 불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대승 경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등) 대승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라, 후대에서 대승 불교의 교리를 합리화 하기 위해 만든 경전이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은 아니지만 진설이라고 본다.
  • 계율과 형식 그 자체를 중시하고, 다른 종교 및 다른 문화의 형태를 혼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게 항상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 대승 불교권처럼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달한 사찰 음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승려들의 음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탁발로 사람들로부터 얻어먹으며, 계율에 따라 저장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육식을 허용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 어떤 논제에 주관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불교는 본래 경전이 많은 종교이고, 부처의 말씀도 상당히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의 수많은 질문과 답변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세부적인 교리를 보면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며, 티벳이나 일본의 금강승(밀교)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커진다. 대승 불교와 밀교와 대조해 보면, 상좌부 불교는 적어도 다음 9가지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 1. 깨달은 자는 다시 태어나는가?
    • 상좌부 불교: 깨달은 자인 아라한과 부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궁극의 깨달음을 이룬 자는 다시 태어남이 없다.
    • 대승 불교: 깨달은 자는 자유로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선사들은 깨닫고 나서 자유로이 다시 태어남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으며, 티벳불교는 더 나아가 일부 법맥의 깨달은 스승은 다시 태어나 깨달음의 맥을 잇는다는 주장을 한다.
  • 2. 깨달음과 열반[4]은 무엇인가?
    • 상좌부 불교: 성위4과(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가 깨달음이고, 각 과는 위빠사나의 16단계 지혜를 통해 닙바나(열반)를 체험해야만 일어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대로 깨달음은 아라한과뿐이다. 석존(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자신이 아라한과를 얻기 전까지는 '깨달았다.'고 하지 않으셨음을 초전법륜에서 5비구에게 강조하셨다.
    • 대승 불교: 탐진치 3독의 소멸을 열반으로 보는 데선 남방불교와 같다.[5]그러나 보살사상을 강조하는 대승에선 화엄경에 기초해 아라한과보다 보살 10지를 넘어서 구경각을 이루라고 강조한다. 이 과정과 결과에 있어 선종은 돈오점수, 점수돈오, 돈오돈수 등 다양한 주장과 학설이 있다. 보살사상의 영향으로 열반 자체보다 계속 다시 태어나 중생교화하는 보살도가 아라한보다 뛰어난 경지라고 본다.[6]
  • 3. 부처와 보살[7]은 무엇인가?
    • 상좌부 불교: 아라한도 깨달은 이이고 부처님도 깨달은 이이지만 두 존재는 다른 점이 있다. 이 세상에 아라한은 많을 수 있지만, 새로이 불법을 펴는 정등각자(正等覺者) 부처님은 우주에서 오직 한 시대에 한 분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공겁(空劫) 시대도 있다. 보디삳따[보살]는 이러한 부처님이 아라한과를 얻기 전에 바라밀을 닦는 수행자일 때의 이름이다. 따라서 보디삳따는 반야심경에서처럼 깨달음의 설법을 하지 않는다. 또한 4아승기 십만 대겁 동안 바라밀을 닦아야 하므로 부처님에게 깨달음의 설법을 듣고 한 생에 깨닫는 일도 없다. 보다삳따는 공겁을 지나 스스로 닙바나를 체험하고 아라한과의 깨달음을 스스로 이루어 부처가 되어 잊혀진 불법을 새로이 펴야 한다. 따라서 보디삳따가 설법하거나 부처님께 깨달음의 법을 듣는다고 하는 경전은 다 위경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 대승 불교: 부처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보디삳바[보살]란 단어는 다양한 뜻으로 쓰이고, 모든 수행자를 총칭하는 이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공간적으로 여러 부처가 존재할 수는 있어도 한 세상에 동시에 여러 부처가 나올 수는 없으며, 모든 부처는 저마다의 정토가 있다.* [8] 아함경에도 목련존자가 기광여래라는 부처가 있는 세계로 가서 기광여래를 만나고 기광여래의 제자들을 데려온 일화가 있다. [9]
  • 4. 핵심교리가 4성제 8정도인가? 3법인, 4법인인가?
    • 상좌부 불교: 석존께서 친히 하신 말씀에 따라 4성제 8정도가 있는 것이 불교다. 8정도에는 스님이라면 계율이 포함된다. 스님은 아플 때가 아니면 오후에는 음료수 외 음식을 먹지 않고, 대처(帶妻)[10]를 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이 불교다. 4성제와 8정도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거나 다른 교리를 핵심교리라고 내세워, 스님들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 종교는 불교가 아니다.
    • 대승 불교: 티벳불교의 경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개고(諸行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4법인이 핵심교리이고 4성제 8정도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Dzongsar Jamyang Khyentse의 What Makes You Not a Buddhist의 3쪽 참조). 이전 문서에는 대승 반야심경의 '무고집멸도'를 4성제의 부정이라고 하였으나, 대승에서 무/공은 상주불멸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지 현상으로서의 존재의 부정이 아니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대승 불교에서도 인정되는 가장 기본적인 불교 교리다.[11]
  • 5. 공즉시색(空卽是色)인가?
    • 상좌부 불교: 아니다. 공(空)(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다.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논리적으로 맞으나 공즉시색(空卽是色)은 논리적 오류다.
    • 대승 불교: 그렇다고 본다. 모든 물질(색)은 물론 법도 그 성질은 공하다고 본다. 중관학파의 윤회즉열반이란 표현도 이에 기초하는 것으로, 윤회도 실체가 없기에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참조
  • 6. 6식(六識)은 동시생멸인가?
    • 상좌 불교: 니까야에 적힌 석가모니 부처님 설법에 기초해 말룬꺄뿓따경(Malunkyaputta Sutta)과 바아히야경(Bāhiya Sutta)에서 석존께선, 볼 때 보는 것만 있고, 들을 때 듣는 것만 있다고 하셨다.[12]
    • 대승 불교: 동시생멸을 주장하는 대승 불교 지도자도 있다.
  • 7. 오온(五蘊)은 차례로 일어나는가?
    • 상좌부 불교: 초기불교에서는 오온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다[13].
    • 대승 불교: 대승 불교의 지도자들 중 교학이 얕은 자들은 오온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차례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국대출판부 <불교학 개론>에는 이러한 오류가 없다.
  • 8. 6식(六識)인가? 8식(八識)인가? 10식(十識)인가?
    • 상좌부 불교: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6식(六識) 안에 있다. 논서에선 결생식, 재생연결식, 바왕가(잠재의식)등이 언급되는데, 눈과 연결되어 안식(眼識), 귀와 연결되어 이식(耳識)이듯이, 다 특수한 조건하에서의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다.
    • 대승 불교: 6식설 외에도 유식설에서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더해 8식(八識)설도 인정한다.* 구유식파의 9식설 등도 있으나 신유식파의 8식설이 정론으로 통한다.
  • 9. 위빳사나[14], 사마타 vs. 비빠샤나, 샤마타
    • 상좌부 불교: 팔리어 사마타(samatha)에서 sama는 고요함, 평정, 평화의 의미고 tha는 '지키다, 머물다, 어떤 상태로 남겨지다'는 뜻에서 나왔다. 팔리어의 사마타는 표상(니미따nimitta)[15]를 대상으로 하여 표상에 집중하여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이다[16]. 팔리어 위빠사나 (vipassanā)는 있는 그대로 본다, 즉 현상을 현상 자체로서 본다, 혹은 관념으로 조립한 전체상과 부분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그대로 해체하여 본다는 의미이다[17](행선과 좌선 참조관념 해체*). 구체적으로 팔리어의 위빳사나는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의 생멸을 나타나는 그대로 알아차려 무상・고・무아를 아는 등 16단계 지혜를 차례로 밟아나가 닙바나를 체험하는 수행이다[18].
    • 대승 불교: 북방 대승에서 산스크리트어 샤마타는 지(止, 멈춤)나 적정(寂靜)으로 번역되고, 산스크리트어 비빠샤나는 관(觀) 또는 비발사나(毘鉢舍那)등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비빠샤나와 샤마타 수행은 북방 대승의 선종에선 하근기로 폄하되어왔으나, 실제로는 대승 불교에서도 선종 등장 이전까지는 이 지관 수행법이 표준 수행법이었고, 정혜쌍수와 더불어 선종에서도 관심법의 기초로 내려왔으며*, 이를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선종영가집이다. 또한 지관(샤마타 비빠샤나 수행) 수행법을 다루는 중국의 천태지의의 저서 <마하지관>과 이를 요약한 <천태소지관>은 선종의 수련서 <좌선의>의 기반이 되었다. 한국의 초의선사도 지관법을 수련한 승려 중 대표적 인물이다. * 헌데 왜 선종에선 많은 승려들이 이를 폄하해왔는가 하면, 선종의 고질적인 문제인 교학의 부족 때문이다. 즉 무식해서(...) 그래서 교학이 발달한 2010년대에 들어선 오히려 이전과 달리 선을 지관 이론에 맞추어 설명한다. 이외에 티벳불교의 한 유파에선 샤마타는 호흡을 중심으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법이며, 비빠샤나는 샤마타 수행을 통해 자발적으로 깨어있음이 확장되는 상태이다*.

상좌부 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비구니가 없다는 것이다. 대승 불교와는 달리 전승되던 중에 비구니계가 유실되어 더 이상 비구니를 낼 수 없다. '띨라신'이라는 평신도 여자 수행자가 있어서 이들을 보고 '비구니'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띨라신은 결코 비구니가 아니다. 본래 불교의 계율은 부처에게 계를 전해 받은 자가 적합한 형식을 갖추어 다시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를 전승할 맥이 끊어지거나, 또는 적합한 형식을 갖출 수 없게 되면, 설령 계의 내용을 모두 안다고 해도 임의로 계를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상좌부 비구니 계맥이 전부 끊어져버렸기 때문에 전세계 불교에 상좌부 전통에 따른 비구니계가 전해지는 곳은 없다.

대승 불교에서도 계맥이 끊겼으나 이를 서상수계, 즉 계를 받기를 부처나 보살에게 간절히 요청해서 받았다고, 혹은 자서수계, 즉 자기가 자기에게 계를 주었다고 하면서 계맥을 존속케 한 사례가 있다. 조선시대의 불교계에서도 서상수계로 계맥을 시작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서상수계나 자서수계는 대승 불교 전통에서는 용인됐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는 불법적이며 무효라고 본다. 서상수계나 자서수계의 교학적 근거가 대승경전에만 있는 것이라... 그래서 한국 불교계에서도 바로 이 계맥 문제는 내부적으로는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다. 상좌부 불교권에서도 대승 비구니 계맥을 받음으로써 비구니 승단을 복구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대부분 용인받지 못했으며, 오직 스리랑카에서만 용인되어 정착했다.[19]

대승비불설 문서만 보면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가 서로 갈등이 많고 멀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교류가 많다. (성지순례, 스리랑카 진신사리) 그러나 상좌부의 승려들은 대승 불교 승려들과 함께 포살할 수 없다거나, 대승의 의견에 동의하면 범계한 것으로 보는 등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 또한 한국 승려들이 상좌부 불교계로 유학 갔을 때 몇몇 상좌부 승려들이 대승 불교 승려들의 법랍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경계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1973년 한국 조계종에서 조선시대 숭유억불로 인한 계맥 유효성 문제를 완전히 봉합하고자 태국 승려를 초빙해 합동수계식을 열었다.[20] 하지만 수계식 이후 '대승이 어찌 소승'으로부터 계를 받겠는가!' 하는 반발이 터져나와서 없던 일로 하고 지금처럼 합동수계식을 하기로 했다.

5. 논란

상좌부 불교가 한국에도 점차 알려지자 한편으로는 오직 팔리어 니까야와 남전불교만이 순수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정통불교며, 남전불교만이 옳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서 한국 불교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상좌부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수천 년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문화의 영향이나 내부적으로 많은 계파가 등장하고 논쟁하며, 새로운 문헌이 등장했다. 또한 대승 불교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첨삭/증보개정을 거친 문헌들이 존재한다. #

위 링크에 나오듯 현존 니까야는 기원후 4~5세기 스리랑카에서 붓다고사와 마하위라파(대사파)가 자기 부파의 입지를 늘리고 타 부파와 대승 불교, 힌두교 등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재편집되었으며 [21] 해외에선 실제 북방 전통 문헌 중 일부는 가장 이른 시기의 팔리어 필사본보다 연대가 훨씬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미 국제 불교학계에서 아함과 니까야는 석가모니의 친설 그대로는 아니라고 밝혀졌고 #, 남방 부파의 역사적 문헌들도 그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좌부 불교에서 불교입문부터 수행, 니까야 해석의 표준으로 인정받는 <청정도론>(위숫다막가)인데, 상좌불교 국가인 스리랑카 출신의 불교학자인 하와이대 명예교수 칼루파하나는 저서 <불교철학의 역사>에서 붓다고사가 후대 인도불교의 사상을 석가모니의 친설인 양 끼워 넣었음을 밝혀 큰 논란이 되었다.[22]

또한 상좌부 불교도 시대에 따른 변화와 완전히 괴리되어 초기승단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것도 아니다. 서구에 유행하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도 서구 문화에 맞게 원래 상좌부 불교 교단 운영 형태와는 다르게 일부 변용한 부분이 있다. 남방불교 현지의 수행법도 사마타/위빠사나 중 위빠사나에 치우쳐 석가모니 당대의 수행법과 거리가 멀어졌고(링크1링크2), 동남아 민간신앙이나 대승 불교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링크3.[23]

그 외에 본격적인 밀교 수준은 아니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도 빠릿따(paritta, 호신주護身呪)라 하여 위험이나 악령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고통을 해소하는 잡밀 수준의 선의의 진언들을 사용한다.[24]

남방불교에서 잘 남아있다고 알려진 탁발 문화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탁발만 받는 것이 아니고, 사찰 근처에 깟삐야꿋띠[25]를 마련해 음식을 조리하고 깟삐야부미[26]를 두어 음식을 저장한다. 이는 원래 계율에서는 금지하던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완전 탁발로는 승단 운영이 불가능하니 생겨났다. 이러한 것들은 정법[27]이라 하여, 석가모니 당대부터 현실에 맞게 예외조항을 둔 것이다. 계율 역시 석가모니 당대에부터 시대와 상황에 맞게 계속 변해 왔고(참조), 동북아에서 많이 변한 것은 기존의 인도 문화권과 전혀 다른 동북아의 기후와 사회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현대에선 남방불교권에서 탁발과 운동 부족으로 비만 승려들이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었다.#.[28]

때로는 한국 불교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남전불교의 계율 중심 생활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국 스님들이라고 다 파계승이 아니듯이 남전불교에도 파계승이나 영업 행위가 없는 게 아니며 상좌부 불교 국가들의 현지의 승려의 높은 사회적 신분 지위로 인한 폐해는 오히려 한국보다 심하다. 당장 남전불교 사원에도 동북아 사찰의 민간신앙마냥 정령 신앙이 결합하거나[29] 기복신앙을 장려하거나 # 승려가 자금세탁 혐의로 조사받고 # 심지어 사찰 안에서 동물학새와 불법 동물밀매를 하고 # 살인, 성매매, 불법 금융거래에 연루되어 승려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남전불교를 국내에 소개하는 재가자 중심 단체들은 일방적으로 남전불교를 옹호하고 밝은 부분을 소개할 뿐, 이런 어두운 면들은 숨기거나 언급을 꺼리곤 한다.

현실적으론 불교가 가장 세력이 강해도 군국주의 시절 국가 신토란 일시적 광기 빼면 애초에 국교의 개념 자체가 미약했던 일본, 형식적으로나마 숭유억불을 표방했던 성리학 왕조국가들이 집권했던 조선과 중국의 유교 왕조국가들과 달리, 동남아 상좌부 불교 교단의 경우 개종이후부터 국교 지위를 쭉 누려왔고, 20세기에 공산화를 겪었던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치에서 끌어 내려진적도 없다. 그나마도 라오스의 경우는 애초에 사회 경제적 기반 자체가 사회주의고 나발이고 할 만큼의 기본적인 최소한의 산업화, 근대화도 안되서 종교계와 대놓고 싸울 여건도 못됬다. 심지어 집권 공산당인 파테트라오에도 지하투쟁 시절부터 좌경화된 승려 공산주의자들도 꽤 있었고, 애초에 베트남 전쟁에 꼽사리 끼며 집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신중국 등소평 정부를 필두로 공산권에 전반적인 개혁, 개방의 바람이 부는 탓에 탄압도 간접적이지 다른 공산 국가들과 달리 전면적으로 국가 무신론을 표방하며 종교계와 전쟁을 벌일 짬도 없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시절에도 무슨 16세기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도 아니고, 영국이나 프랑스나 불교계를 차라리 이용하면 이용했지 전면적인 식민지 개종에는 관심을 표하지 않았는지라 식민지 시절을 겪으면서도 불교계의 사회적 영향력은 유지됬다[30]. 세속 권력, 재력과 결탁하여 종교 이름을 팔아먹으며 온갖 사바세계의 추잡한건 다 섭렵하는 종교계의 권력형 범죄, 부패는 기반 자체가 이쪽이 훨씬 더 심하면 심했지 대승불교권에 비해 좋다고 할수없다.

여기에 상좌부 불교 내에서도 계율 해석문제 등으로 인한 이견이나 카스트 제도의 의한 승려간의 차별[31], 기성 불교계의 침체와 엇갈리는 신흥 불교단체인 담마까야 재단[32]의 약진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여러 종파로 갈라져 있으며, 이들간에는 대승불교나 밀교를 대하듯 서로간에 포살조차 하지않는 경우도 빈번하다.[33] 앞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테라와다 승단의 과제라 하겠다.

6. 부정관 수행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검색하지 말자. 유튜브나 구글에서 한글로 '부정관'이라고만 쳐도 혐짤이 바로 뜬다.

한자로는 不淨觀, 범어로는 asubha bhavana라고 하며 자만심을 버리기 위해 시체를 보며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시다림(尸陀林)에서 고행한 것이 기원이라고도 하며, 묘지 등에 가서 시신이 썩어가는 것을 하나 하나 관찰하면서 육체의 부정함과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대승 불교에서는 백골관이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34] 그러나 지금도 상좌부 불교, 특히 태국 불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수행법으로 여기며, 이 때문에 태국의 의과대학 인체해부수업에 스님들이 꽤 많이 견학 온다고 한다;;;[35] 따지고 보면 태국의 매체 심의기준이 폭력성에만 유독 관대한 것, 담배갑 경고 그림의 수준이 원조인 캐나다를 아득히 초월하는 데에도 이 불교 수행법 탓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7. 한국의 상좌부 불교 전파

한국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고려 후기 등장한 여러 군소종파들을 통틀어 십이종이라 부르는데, 이 십이종 중에 소승 불교와 관련된 교종 종파인 소승종(小乘宗)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여말선초기의 한국 선종의 고승 나옹 혜근 스님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준 인도 승려 지공선현(指空禪賢)대사도 북전불교와 더불어 랑카의 상좌부 불교를 학습했던 승려였다.

그러나 이때는 남전불교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한국 불교사에 영향을 드러낸 것은 1990년대 후반 위빠사나 수행이 한국에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당시 한국의 주류 불교계에서는 간화선만을 중시하고 위빠사나와 남방불교는 소승의 가르침이라 하여 이를 폄하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불교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있던 학자들 중 남방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몇몇 승려들에 의해 위빠사나 수행과 남방불교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으며, 재가자 단체를 중심으로 남전 팔리어 경전 읽기나 위빠사나 수행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남방불교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즈음에 들어서였다. 조계종의 간화선 중심주의가 안팎으로 비판받는 정도가 강해지고 승려들의 도박/음주 사건이 언론을 타면서 기존 한국불교계에 자성과 비판의 여론이 번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이재열 법사와 유마선원(현 법림선원), 전재성 박사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중심으로 팔리어 남전불경을 국내에 번역/보급하고 팔리어 대장경인 니까야 중 하나인 <앙굿따라니까야>를 세계 최초 완역해 펴내는 등의 노력으로 대중적으로 남전불교를 접하는 신도들이 늘어났다.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의 초기불전연구원을 통해서도 니까야아비담마 서적들이 번역되었으며, 2013년 조계종의 교육원에서 강원의 교과목 7개 분야 중 한 분야로 초기불교가 들어가 니까야 강독과 《아비담마 길라잡이》 등이 교재로 채택되었다.

니까야 한국어 번역판은 자잘한 판본들이 있으나 대표적으로는 크게 두가지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나오는 판본(전재성 역)과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나오는 판본(각묵스님, 대림스님 역)이 대표적이다.

한국 불교계가 세계 각 나라의 불교계와 교류를 늘리면서 2012년도 즈음만 해도 현지의 몇몇 선원의 수행법이 곧 남방불교 수행 전체로 이해되던 것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방불교계 전반에 대해 더 잘 알려지고[36] 남방불교권의 고승들 또한 한국을 몇 차례 찾아왔다. 특히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명상대전에서는 태국불교의 전설로 불리는 고승 아잔간하[37] 와 아잔브람[38]이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고 한국의 선승들과 무차토론을 가지면서 상좌부 불교가 한국에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한국 상좌부 불교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들은 다음과 같다.

[1] 여기서 분별(vibhajja)이란 개념적으로 분석한다는 말이 아니다. 관념적으로 조립된 전체상과 부분상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난 그대로 해체(vibhajja)하여 본다는 의미이다.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고 옮겼는데 분별이란 말이 상대를 폄하하는 말인 듯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초기불교입문(초기불전연구원): 40-43)[2] 알파벳으로 Theravada로 표시하는 글자에서 v발음은 영어의 v가 아니라 우리말의 순경음ㅂ(ᄫ)으로, 남방불교 지역에서는 '우/오'로 발음된다. 즉 우리말로 좀더 정확한 표기는 '테라ᄫᅡ다'이고 실제 발음은 '테라와다'이다. vipassana의 실제 발음이 '위빳사나'인 것과 같다. 우리말에서도 15세기 말을 일부 간직하는 경상도말에서는 아직도 “덥어라(더ᄫㅓ라),” “고맙아(고마ᄫᅡ)”하는 것을 현대의 서울말에선 "더워라," "고마와"라고 하는 것과 같다.[3] 기원후, 아무리 일러도 기원후 2세기 카니슈카왕 때 인도 북부에서 설일체유부 주도로 일어난 제4차 결집 후, 인도에서 대승 경전을 취급하지 않는 부파 불교를 소승 불교라고 불렀다. 스리랑카에 3차 결집의 결과물을 전하여 상좌부 불교의 맥을 잇게 한 뒤 인도 북부에 남아 있던 원래의 상좌부 불교는, 세우의 《이부종륜론》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에 설일체유부를 독립시킨 뒤 히말라야로 들어가 설산부가 되어 인도 북부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소승'이란 말이 나온 때는 인도 북부에서 원래의 상좌부 불교가 사라진 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상좌부 불교를 '소승 불교'라 부르는 것은 역사적 오류다.[4] 팔리어로 닙바나,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5] 조계종 불광사 불광미디어 링크.[6] 대승에 대한 오해로 상좌부의 아라한과를 부정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상좌부의 아라한과를 낮추어 보긴 해도 부정하진 않는다. 만일 부정한다면 대승 불교에서 나한(아라한)을 공경하는 나한 신앙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7] 팔리어로 보디삳따,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삳바[8] 정토종 항목의 주석도 참조하면 좋다.[9] <증일아함경> 29권 참조.[10] 달라이 라마를 배출하는 겔룩빠를 제외하곤 대처가 흔한 티벳불교나 일본 불교와는 다르다. 겔룩빠는 그 시작이 계율과 원칙 준수에 입각했기에 대처가 없다.[11] 참조: <불교 입문>-대한불교조계종 출판부, <도표로 보는 불교 입문>-민족사.[12] What the Buddha taught(Gordon Fraser)의 24쪽에서, 마치 영혼처럼 똑같은 식(識)이 보고 듣고 느끼고 인과의 결과를 받으며 윤회한다고 믿는 사아띠(Sāti)에게, 석존께서는 ‘이 어리석은 사람아’라고 석존께서 줄 수 있는 최대의 면박을 주며, ‘내가 식(識)이 조건 때문이 일어난다고, 다시 말해 조건 없이는 식(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눈과 보이는 것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안식(眼識)이라 불리고, 귀와 들리는 것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이식(耳識)이라 불리고,.... 마음과 마음 대상을 조건으로 식(識)이 일어나면 의식(意識)이라 불린다’(Mahātaṇhāsaṃkhya-sutta, Majjhima-nikāya I (PTS ed.), p. 256 ff)고 분명히 설파하신다. 즉 똑같은 불변의 식(識)이 눈으로 보면 안식(眼識)이 되고, 귀로 들으면 이식(耳識)이 되고...마음 자체 내의 대상을 알면 의식(意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촛불의 불꽃이 일정량의 연료와 산소를 조건으로 하나의 불꽃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 연료와 그 다음 산소를 조건으로 다음 불꽃이 일어나 사라지는데, 앞의 불꽃과 뒤의 불꽃은 서로 다른 연료와 산소를 조건으로 한 서로 다른 불꽃이며, 앞 불꽃과 뒤의 불꽃이 만난 적도 없듯이, 안식(眼識) 일어나 사라지고, 이식(耳識)이 일어나 사라지지만, 안식과 이식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동시에 생멸한 적이 없다. 한 번에 육식 중 한 식(識)만 생멸하며, 여러 개의 식(識)이 동시에 생멸하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빠사나의 고차원적인 지혜를 통해서 안식(眼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에 의식(意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그 다음에 이식(耳識)이 일어나 사라지고... 하는 식으로 한번에 6식 중 한 식(識)만 생멸함을 직접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잘 믿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관념 해체&볼 때 보는 것만 있다오문인식과정의문인식과정. 위빠사나의 지혜로 바로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관념을 거친 앎으로써는 그 논리적 가능성만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13] 《초기불교입문》(초기불전연구원): 72[14] '위빠사나'라고 표기할 때가 더 많다.[15] 빠리깜마 니밋따, 욱가하 니밋따, 빠띠바가 니밋따가 있다.[16] 초기불교입문 (초기불전연구원): 193[17] 초기불교입문 (초기불전연구원): 40-43. 위빠사나(vipassanā)는 경전에서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로 거기서(Each presently arisen state) 통찰한다(vipassati)”(131Bhaddekaratta Sutta~134경Lomasakangiyabhaddekaratta Sutta, Majjhima-Nikāya; The Middle Length Discourse of the Buddha(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95): 1039; 아비담마 길라잡이 2(초기불전 연구원 2017): 272)에서 위빳사띠(vipassati)라는 동사로 등장한다. vi-는 ‘분리해서, 해체해서,’ passati는 ‘보이는 그대로 본다(sees), 못 본 것을 발견한다(find), 알아차린다(understands)’의 뜻이 있다. 문맥과 어원으로 볼 때 위빳사나는 현재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조립된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념으로 조립되기 이전에 원래의 해체된 상태 바로 거기서 나타나는 그대로(as and when it comes), 알아차림이다. 현재의 현상을 관념으로 조립해서 이해하지 않고, 현재의 현상이 나타나는 그대로, 현재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서, (관념으로 조립하고 구성하는 시간 지체나 왜곡 없이) 바로 알아차림에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이 있다.[18]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도서출판 불방일): 60-122[19] 상좌부 불교에서 여성 불자에 대한 차별은 현실적으로 있으며 현세에 공덕을 쌓고 윤회하여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법륜 스님 구글토크에서 외국인이 질문하고 법륜 스님이 답변하였다. 법륜 스님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불교가 봉건 문화를 받아들여서 발생한 것이고 원래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지적했다.[20] 일본은 한국 불교 시선으로 보면 지키는 계율보다 안 지키는 계율이 많아 논외고, 당시는 아직 냉전 시대였으므로 중국 대륙과 베트남도 논외고, 대만도 일본 불교나 민간신앙 영향이 짙었고, 스리랑카는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 내전 중이었다. 남는 게 태국밖에 없는 것.[21] 추가 참조 문헌: 사이토 아키라 저/이자랑 역 <대승불교의 탄생>, 씨아이알[22] 이 때문에 국내 상좌불교 수련센터에서도 해피법당이나 파욱 사야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견명상원 등 단체에 따라선 니까야만을 강조하기도 한다.[23] 여담으로 해당 링크글들의 저자인 황순일 교수와 마성 스님은 전부 남방불교 전공자이며, 특히 마성스님은 상좌부 불교 우월론자이기도 하다. 전공자들조차 이런 평을 내릴 정도면...[24] 사실 이런 풍조 자체는 석가모니 생전부터 존재하여, 아함경에 '바라문교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은 축생도에 떨어지는 것이다'라 나올 정도로 주술을 금기시하던 석가모니 본인도 점차 선의의 주문은 인정하였고, 때문에 초기 불교 시대부터 이미 호신주가 사용되었다. 이런 풍조가 극대화된 케이스가 대승 불교 중 밀교다.[25] kappiyakuti 혹은 kappiya-kuti, 정주淨廚로 번역한다[26] 한자로는 정지淨地. 범어로는 kappiya-bhumi.[27] 한자로는 淨法, 범어로는 깟빠kappa 모 브랜드하고는 상관없다[28] 요약하면 맛있는 것을 먹고 한 끼에 폭식하며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비만에 걸리가 딱 좋은 환경이다. 예전에는 재가 신도들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아 시주하는 음식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형편이 펴자 좋은 음식을 보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승려들도 그런 것을 먹고 비만이 되었다는 것. 게다가 육식도 가리지 않으니 비만 문제가 더 심한 것이다. 대승 불교는 철저한 채식을 하는 데다 운력(노동)을 하므로, 적어도 제대로 수행을 한다면 비만이 될 수가 없다.[29] 참조: <인조이 미얀마>넥서스BOOKS, P.354[30] 따라서 아무리 본국의 식민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 해도 근본적으로 토착 다수 신앙에게 전면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던 해당 기독교권 선교사들은 주로 주류 다수 민족보단 오지에 사는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선교를 했기 때문에 현대와서 동남아 기독교인들은 카렌족 같은 소수민족 사이에나 비중이 높지, 명맥을 유지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수자인 베트남 카톨릭 신자들 제외한 주류 민족 사이엔 존재감이 약하다[31] 스리랑카 한정[32] 네덜란드에서 가톨릭 성당을 인수할 정도로(기사링크) 국제적으로 강력하게 성장하는 교단이다.[33] 참조: 불교평론 통권 63호[34] 우리나라도 기사에 나오듯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닌데, 승려들은 간화선을 주로 한다. 일본에는 시체를 대신하는 백골관용 그림(구상도)이 남아 있다. 주로 미녀가 죽고 시체가 썩어가고 짐승들이 파먹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유명한 단린 황후를 모델로 하는 구상도 중에는 실제 단린 황후의 유언으로 만들게 된 것도 있다.[35]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스님들이 병원 수술실 한 켠에 옹기종기 앉아서 시체 해부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사진들을 간간히 볼 수 있다.[36] 과거엔 국제적으로도 널리 퍼진 마하시 사야도의 순수위빠사나가 많이 들어왔고 현재도 남방불교 수행 하면 아나빠나사띠란 말보다 위빠사나란 말이 더 널리 통용될 정도로 영향이 많이 남아 있으나, 지금은 파욱 사야도 계통이나 아짠 차 계통 등 다양한 계통의 남방불교 수행법을 쉽게 접할 수 있다.[37] Ajhan Ganhah. '아잔'이 스님이란 뜻이다. 아잔간하는 무려 45년간이나 일체의 외부 문물과 관계를 끊고 수련에 집중한 경력을 가진 스님으로, 9미터나 되는 거대한 코브라가 자신의 코 앞에 나타나 혀를 낼름거리며 입을 벌리며 위협하자, 코브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날 만나러 와 줘서 고맙다.'고 하자 코브라가 고개를 숙이고 사라진 이른바 '코브라 설법' 사건은 태국에서 유명하다. 특히 아잔간하가 40여 년간의 은둔을 깨고 나온 것이 이번 2016 한국 세계명상대전을 개최하기 전 한국 참불선원의 각산스님의 삼고초려 후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생애 최초의 국외출타를 결정한 일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38] 혹은 아잔 브라흐마. 호주불교의 개척자로 알려진 서양인 승려다. 이전에도 몇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으며, 저서인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등은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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