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6 22:12:04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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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icide, kill oneself

1. 개요2. 자살의 정의3. 사회 문제와의 연관성4. 자살에 대한 연구
4.1. 생물학적으로4.2. 사회학, 심리학적으로
4.2.1. 에밀 뒤르켐의 저서《자살론》4.2.2. 에드윈 슈나이트만의 이론
5. 자살은 범죄인가?6. 자살은 권리인가?7. 인식
7.1. 시대
7.1.1. 고대7.1.2. 중세7.1.3. 근현대
7.2. 국가
7.2.1. 한국7.2.2. 일본
7.3. 종교
7.3.1. 기독교7.3.2. 이슬람교7.3.3. 자이나교7.3.4. 불교
7.4. 철학
8. 징후9. 자살성 사고와의 관계10. 존엄사와 안락사11. 고통12. 통계
12.1. 한국
13. 최초의 자살 사례들14. 기타15. 관련 인물16. 관련 어록17. 관련 사건
17.1. 국내17.2. 해외
17.2.1. 일본17.2.2. 인도네시아17.2.3. 스리랑카17.2.4. 터키17.2.5. 벨기에17.2.6. 프랑스17.2.7. 영국17.2.8. 미국17.2.9. 가이아나17.2.10. 소말리아
18. 창작물
18.1. 소설18.2. 만화•애니메이션18.3. 게임
18.3.1. 게임에서 비유적 의미
18.4. 음악
19. 바깥고리20. 같이보기

1. 개요

생명체가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

자진(自盡)이라는 낱말과 뜻이 같으며, 자살에 목적성이 있으면 자결(自決)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범위에서 자살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거주하는 사회가 조밀해질수록,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정신적인 영역에서 탐구된다. 과거로 갈수록, 사회가 단순하고 지엽적일수록, 국민소득이 적을수록 인간의 자살은 물리적인 요인, 즉 빈곤, 기아 등의 영향이 컸던 반면 현대의 자살 요인은 외부 요인에 의한 개인의 심리적 변화, 종교 교리, 자신의 철학에 좌우되기에 자살은 차이가 있으나 언제나 세계적인 논란 대상이다.

2. 자살의 정의

자살 동향에 대해 전 세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하는 세계보건기구는 1968년 다음과 같이 자살의 정의를 내렸다.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이다."
- 세계보건기구 -
즉, 자신의 죽음을 목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자살이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이 예견되더라도 하는 경우인 희생과는 구분해야 한다. 이 국제기구는 자살미수에 대해서는 위장자살, 실험자살, 자살실패의 3가지로 분류했다.

한편 관련 학자들이 자살에 대해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희생자 자신이 결과를 알면서도 적극적, 소극적 행동에 의해 직접, 또는 타인을 통해 행하는 죽음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 뒤르켐(1897) -
"희생자 자신이 희생이 아니라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혹은 죽음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의 결과 일어나게 된 죽음을 모두 자살이라고 부른다."
알버크(1930) -
"자살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명석한 인간이 행한 행위를 말한다."
아킬 델마(1932)-
"자살은 죽음을 수단이나 결과로 간주하여 자기 스스로 죽는 행위다."
드에(1947) -
"자살은 실존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주체의 자발적인 죽음에서 구하고 발견하는 행동이다."
바에슐러(1975) -

3. 사회 문제와의 연관성

한국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살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 못해도 1위 언저리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통계 상 매년 10,000명에서 15,000명 사이의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다. 하루 평균 30명에서 40명 사이다. 약 30분마다 한 명씩 목숨을 끊는다. 보통 자살을 하는 원인은 생활고나 실연 등이라고 한다. 전자의 경우 동반자나 가족의 생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후자의 경우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인 경우가 많다. 다만 당연하게도 모든 자살 이유가 그것은 아니며 꽤나 성공적인 인생임에도 굳이 살아야 되는 이유를 못 찾아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사회에 폐를 끼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한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다음에 매년 자살하는 학생이 꼭 한두 명씩 있다. 심지어 1교시 국어영역 끝나고 쉬는 시간에 국어영역 시험을 잘 못봤다고 비관한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기사가 매년 한두 건씩 꼭 나온다. 학생들에게 수능은 자신의 평생을 바쳐온 과업인데, 과업에 실패했다는 상실감과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10대 자살원인은 주로 성적 지향[1][2], 학업, 왕따 관련 문제, 20대는 취업난, 연애 문제 관련, 30대부터는 생활고가 많다. 그리고 노년층 일부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와 고독사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환경의 엄청난 변화를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룩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진 자살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로 극단적인 계층의 양극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국가적 복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대한민국 복지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던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 복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는 특히 자생적인 생활이 힘든데다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노인세대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고,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가진 세대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이 실질적인 자살 공화국이 된 큰 원인이 되었다. 또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 한국은 많은 가계부채를 가지고 있거나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 정신질환, 노후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들 등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살률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의 3배 이상으로 극단적이다. 자식과 사회에게 외면당함으로써 생기는 외로움, 왕년과 다르게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는 부정적 자아, 경제적 문제, 노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만성적 질병과 신체적 불편함이 가져오는 스트레스가 이중 삼중고로 겹쳐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또한 한국은 부양의무제라는 법적 제도를 세워두고 있는데,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가족에게 최소한의 생계 지원을 해야 할 의무를 갖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법률에 대한 부작용으로,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족은 같이 살지 않든,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든, 기초생활수급제와 같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몇몇 노인들은 법적 근거를 들어가며 자식에게 부양의 의무를 요구하기보단,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4050 중년층의 자살률은 OECD의 2배에 달한다.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절대적으로 자살 인구 수가 제일 많다. 주로 사업 실패, 재취업 불가 등 경제적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제력 악화로 인한 자살은 표면적인 이유고, 경제력 악화에 따른 막대한 심리적 압박이 진짜 원인이다. 중년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가부장제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은 평균적으로 남성여성보다 2배가량 높다.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남성이 부양의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남성은 학생들부터 노인네까지 경제적 능력에 대해 강한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 특히 한국의 남성, 그 중에서도 중년 남성은 경제적 능력이 곧 본인의 절대 가치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당사자만이 아닌 타인도 마찬가지로 중년 남성에 대한 평가를 경제적 능력으로 매기는 경향이 있다. 가부장제의 부작용으로 남성은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자 본인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으며, 가족과의 애착을 가질 시간도, 애착을 형성하는 기술도 없다. 회식, 야근 문화만 봐도 한국은 가정보단 직장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문화가 만연하다. 기러기 아빠처럼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극단적 사례도 존재한다. 몇몇은 벌어다 줬으면 충분하지 않냐고 되려 억하심정이라며 가족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배경이 이렇다보니, 반대로 말해 경제적 능력이 거세된 중년 남성은 사회에서 거진 쓸모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IMF가 터졌을 당시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2.6배였다. # 결혼을 포기하는 남성과 여성의 주요 요인만 보아도 남성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함을 요인으로 꼽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외모와 상대방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함을 요인으로 꼽는다. 남성은 경제적 능력에 대한 압박을 더 크게 받고, 경제적으로 낙오된 남성들은 자신의 가치를 상실해 자살해버리는 것이다.

초중고생 자살률도 결코 낮지 않다. 주요 원인은 학업에 대한 지나친 스트레스 및 집단 따돌림 등의 학교폭력 문제이다. 14년 기준 10~14세 아동 중 매 년 많게는 70여 명이 자살한다. 심지어 성(性)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도 없을 아이들이 자살부터 생각하고 실행하는 현상은, 아이를 정신적 극한으로 모는 학교와 가정이 그만큼 존재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군대에서도 많이 한다. 주된 원인은 악질 고참의 심한 괴롭힘이나 구타, 연인으로부터의 이별 통보 등이 많다. 한 해에 수백 명씩 자살한다는 통계도 있으나 대부분의 자살 사건은 바깥의 언론을 타지 못하고 군대 내부에서 묻힌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으나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구타로 인해 사망한 병사들이 자살했다고 유족에게 허위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현재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퍼지다 보니 자살 시 시체를 방치해두고[3] 유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같이 부검을 한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최대한 이런 식으로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투명하게 처리하는 편. 가족들이 외진 곳에 있는 부대에 빠르게 오기는 힘들다 보니 시체의 부패도나 처참함이 굉장히 강하다.

사회지도층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살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자살은 곧 노동력 하나의 손실, 생산력 손실, 세금 납세자 수 감소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높은 자살률은 사회 지도층 당사자의 이미지에 피해를 끼친다. 정치인이라면 복지 시스템 미비로 공격 받으며, 기업가라면 노동권 보장 문제로 공격 받는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회지도층이나 상류층 입장에서 자살을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유명인이 자살로 목숨을 끊으면 연쇄적으로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베르테르 효과라 하는데 독일의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자 그 당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한 데서 나왔다.

군대 같은 폐쇄적인 장소에서는 자살로 처리되었으나 의혹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의문사로 분류된다.

4. 자살에 대한 연구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철학, 심리학, 생물학 등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도 자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자살과 관련된 많은 이론들과 자료들 또한 존재한다.

4.1. 생물학적으로

본디 생물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사항이며, 이는 본능 레벨에서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경우를 보면 환경의 변화로 의도치 않게 죽게될 지언정,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생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살을 한다고 알려졌던 몇 안 되는 생물인 레밍도 자세한 연구 결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착각해서 일어나는 사고사였다는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또한 자살을 한다고 알려졌던 또 다른 몇 안 되는 생물인 고래도 자세한 연구 결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게도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페트병 등을 먹이인 줄 알고 먹었다가 그게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잔류해서 소화기관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진짜 먹이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굶어죽은 것 역시 잘 드러난다. 생명체의 본능에 새겨진 생존욕구를 완전히 역행하는 행위인 자살은 본능 자체를 거스를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발달한 동물에게서나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자살은 한 개체의 죽음으로써 진화적으로 많은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타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에서의 자살의 원인이 다양해진 것으로 본다면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해 온 환경을 생각해본다면 인류의 조상들 중 사회적으로 생활이 힘들거나(유전적 결여) 집단에서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파악될 경우 자살을 하는 것이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타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여주므로 이러한 자살의 형질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 등의 학자들은 자살을 사회적인 교류 유전자가 결여(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되어 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유전자 개체가 도태되기 위한 행위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이 이론은 자살을 '해당 자살 개체의 유전인자가 종 전체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물'로 설명하는 것이며, 이는 자살을 자연적인 것이 아닌, '악'으로 규정하는 여러 종교와 반대되는 의견이기도 하다.

4.2. 사회학, 심리학적으로

자살에 대한 이론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많은 다양한 학술적 견해가 나오고 있다. 19세기 초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였던 도미니크 에스키로르모로 드 토르 두 의사의 이론은 자살자들을 심신상실자로 보는 것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뒤를 이은 모리스 하루와치의 이론은 자살을 사회 정세를 반영하는 정신적인 트러블과 연결시켜 생각한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근대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켐의 영향으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또 자살을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연대력 및 규제의 정도라는 기준에서 분류하고자 시도했으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의 4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상세한 내용은 이하를 참조.

근래에는 철학정신분석학 덕분에 자살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여러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여러 학파의 이론을 종합해보면 자발적인 죽음은 심한 우울로 인한 자살, 병적 자살, 보복적 자살, 안정된 상태에서의 자살, 이기적 자살, 의무적인 이타적 자살, 편집광적 자살, 충동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 영웅적 자살, 적극적 자살, 소극적 자살, 이론적 자살, 열광적 자살, 망상적 자살, 혼돈 상태에서의 자살, 살인 청부업자에 의한 자살, 희생적 자살, 유희로서의 자살, 전략적 자살, 경계반응적 자살 등으로 분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래의 심리학자들은 절망이라는 감정이 자살의 주 요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4]

이처럼 자살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음에서 소개하는 자살에 대한 정의들은 모두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4.2.1. 에밀 뒤르켐의 저서《자살론》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사회학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론》을 통해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눈 바 있다. 범죄학이나 형사정책 등의 과목이나 사법시험 선택과목으로 형사정책시험에 나온다.
  • 이기주의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약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이 자살하는 것은 외로움과 같은 타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이다.
  • 이타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강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카미카제[5] 등. 사이비 종교에서 강요하는 자살과, 종교적 논리로 미화된, 불교소신공양, 자이나교의 종교적인 의지의 단식으로 유발된 고의적 아사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볼 수 있다.
  • 아노미적 자살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 사람은 규제와 억압이 적절한 상태로 존재할 때 비로소 편안함과 확실함을 느끼며, 그 반대의 경우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게 된다고 본다. 즉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을 다룬다. 대표적인 예로는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있다.
    뒤르켐의 의하면 경제호황기가 되어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목표로 꿈을 키우게 되었으나 그 목표나 과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도 아노미적 자살에 속한다.
  • 숙명론적 자살[6]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로 아노미적 자살에 대조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 정도. 최근 전 세계적 경제난과 양극화로 인하여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이러한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 외로 폭력, 차별, 방관, 질병 등의 이유도 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흔한 질병을 오래 앓으며 합병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가 일반인들보다 많이 높다고한다. 앞에서부터 각자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군대, 성소수자 등 취향/국적의 차이, 사회적 무관심 등이 있다.

사회 통제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숙명론) 약해도(아노미) 자살율이 올라가고, 사람 간 유대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이타적) 약해도(이기적) 자살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다.

4.2.2. 에드윈 슈나이트만의 이론

《심리부검 인터뷰》의 저자이자 자살에 대한 권위자로 알려진 에드윈 슈나이트만(E.S.Schneidman)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총 4가지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구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죽음의 추구자(death seeker):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죽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 의해 확실한 자살이 보장되는 방법을 택한다. 권총자살 같은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선호한다. 이러한 파괴적인 욕망은 단지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우발적인 충동은 바로 다음 날 혹은 심지어 바로 다음 시간에 일시적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다.
  • 죽음의 개시자(death initiator):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졌으나, 죽음이란 이미 시작되었으며 자살은 단지 그 과정을 좀 더 빠르게 앞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나 투병 중인 중환자들이 선택하는 자살이다. 즉 자신의 삶은 이미 끝나버렸으며 죽음의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죽음의 무시자(death ignorer): 삶을 끝내려는 의도라기보다는, 현재의 삶과 더 나은 사후세계 혹은 다른 실존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 자살이다. 어린이들의 자살[7]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적 자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죽음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환생이나 이계가 존재한다면 나름 의미가 있는 자살이겠지만 현재로선 환생이나 이계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다.
  • 죽음의 도전자(death darer): 삶을 끝내려는 의도 자체가 분명치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죽으려는 의도에 있어서 양가감정을 경험하는 경우. 이들은 "확실히 죽음이 보장되는 방법"보다는 "죽을 위험이 있는 방법" 을 택하며, 특히 수면제의 과용과 같은 약물복용 방법을 선호한다. 그 외에도 넓게 보면 러시안 룰렛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 역시 고인에게 삶을 끝내려는 의도가 있었을지 분명치 않으므로 이 범위에 속한다. 이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의 행동을 알리며, 의료진의 개입을 통해 극적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반의도성 자살이라는 특수한 주제도 연구했는데, 이런 경우는 개인이 자신이 죽을 의도가 명백히 있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죽음에 있어서 간접적, 부분적, 무의식적으로 관여한 경우이다. 반의도성 자살의 한 예를 들면, 평소 자신의 약물을 부주의하게 관리하는 중환자가 실수로 엉뚱한 약병을 열고 치사량의 약을 오용해서 숨지는 경우가 있다.

슈나이드만이 보기에 자살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결과이며, 정신적 고통은 1) 무망감(hopelessness)과 2)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에 의해 촉발된다. 무망감은 현재 주어진 환경과 여건, 자신의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신념이며, 이분법적 사고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 수준의 관점에서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것뿐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5. 자살은 범죄인가?

법적으로 유일하게 합법인 살인이다.

사람이 사망한다는 점은 살인과 같다. 살인미수는 있지만 자살에는 '자살미수'가 없다는 점에서 자살은 범죄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자살을 도와주었을 때는 자살방조죄, 자살자의 의도로 직접 살해할 경우 촉탁승낙살인죄 적용이 되긴 한다. 또한 자살할 마음이 없는 이를 부추겨 자살을 결행케할 경우 자살교사죄가 된다.

자살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대신 타인에 형사 책임을 묻는 촉탁승낙살인죄, 자살방조죄가 있다.
이것은 이미 자살을 결의하고 있는 자를 원조하여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며 그 행위가 자살을 돕는다는 인식을 행위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일로 자살 방조 크리 먹을 확률은 매우 낮다. 다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 조항을 적용해서 반정부 인사를 잡아 가둔 적이 있다.

같이 자살하려다가 혼자만 산 경우에는 저 죄가 성립하여 법에 따라 교도소에 가게 된다. 정말로 같이 죽을 작정이었어도 자살방조죄고, 심한 경우 같이 자살하는 척하면서 자기는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은 위계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된다. 신고는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는데 위계위력살인죄가 적용되면 심히 억울할 것이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에 따르면 자살유발정보(자살동반자 모집정보,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정보, 자살을 실행하거나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 사진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 자살위해물건의 판매 또는 활용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위 각 목에 준하는 정보로서 명백히 자살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스위스에는 이 죄목이 없어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약을 파는 정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스위스에 우글우글 모여든다고. 일명 자살 관광이라 불리고 있으며 스위스 국내에서도 문제거리. 시신 부검, 장례, 유가족 통보 등 여러 가지로 스위스 사회에 악영향을 끼쳐 관광 수입보다 더 많은 손실을 입히기 때문이다.

자살미수가 있을시 뒷수습은 그 시설 주인이 지게 된다. 부산교통공사의 경우 부산 도시철도 노선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였다 미수에 그친 경우 업무방해, 철도교통방해로 고발하고 있으며 법리상으로는 처벌이 가능한 사안이다. 물론 사망 시엔 공소권 없음 종결이지만 민사상 채무는 상속대상이므로 유족에게 청소비용 등을 청구할 권리(민사소송 가능)는 있다. 실제로 부산교통공사에서는 유족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검토했다.

유족이 시신인수를 포기하면 한국은 연좌제가 없는 국가이기에 배상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이는 연좌제와는 무관하다. 배상책임은 민사상 해결할 문제이고, 보통 자살한 자의 상속재산(채무포함)은 상속인들이 포기가능하므로 그에따라 배상책임이 승계되지 않을 뿐이다. 설령 상속이 이뤄져 법리상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경우 예컨대 자살자가 집을 갖고있어 그 상속대상 재산을 압류하는 방법으로 유가족에게 손해배상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쳐도 이를 실행하면 그렇잖아도 가족의 비극적 사망으로 실의가 클 유족에게 이중의 충격을 주는 것이므로 도의적으로 청구하는 사례가 거의 없을 뿐이다. 이 경우 실제 유족이 있더라도 유족이 시신인수를 거부하면 행정상 무연고 시신으로 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

6. 자살은 권리인가?

'살 권리'를 인정한다면 논리적으로 '살지 않을 권리 (=죽을 권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살 권리가 있다.
  • 무언가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살지 않을(=자살할) 권리도 있다.

반면에 자살을 부정적으로 보는 많은 의견들은 세부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요점은 하나로 통한다. 특정 개인의 생명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종교에서는 신의 것이라 주장하고, 전제군주제에서는 군주의 것이라 주장하며[9], 파시즘에서는 국가의 것이라 주장한다.[10] 한편 일반적인 공동체주의[11]에서는 '당신의 생명은 당신의 가족과 친지와 사회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기 때문에 오롯이 당신의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니 죽지 말아라.' 정도로 주장하나 결국 기득권 혹은 가족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살아서 사회 부양하라는 게 본질.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는 자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일단은 인간의 권리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없는 범죄는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 자유의지주의적 관점에서는 자신을 파괴할 권리도 권리라고 본다.

자유의지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결정론자들은 자살도 운명의 일부로 여긴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고 불행하고 싶어 불행한 존재가 없는 것처럼,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 우주의 섭리와 생물의 욕구로 의해 강제로 태어난 이상 죽음만이라도 편의를 봐주는 게 옳다 하여 안락사를 긍정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인권이 상당히 발전한 나라들은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자살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이 줄었다.

반면 이와 별개로 의학적 관점에서는 모든 자살은 정신병적 현상이므로 정신과 전문의의 적절한 관리를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질병이니 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병사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도 주장한다. 일부 의사들은 자폭 테러를 시도하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말기 암환자 등의 경우에도 적절한 약물 및 상담 치료를 통해 자살 사고를 극복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밖에 인류가 기술적 특이점에 이르러서 트랜스휴머니즘 등을 통해 생물적 한계를 극복하면 자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거라는 의견도 있다.[12] 독재자가 통 속의 뇌나 뇌 자체를 조작하는 세뇌의 방식으로 인간의 자살을 극단적으로 통제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개인의 안락사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 인간의 비약적인 수명 연장이 가능해진다면 반대로 수명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것이고, 어차피 생물적 본능과 욕구가 기술 발전으로 상당 부분 해소된다면 자살에 대한 혐오 자체가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7. 인식

문화마다 자살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르다.

일단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것은 보통 '자결'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자살과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대개 정황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기 마련인지, 남들에게 선택당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끝내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남에 의해 자결'당하는' 경우도 많다. 환경상의 문제라 현대의 자살과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13]

자살을 두고도 무조건 반대하는 시각과 개인의 자유, 선택권, 권리 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후자가 극소수였던 19세기 이전에는 극소수였지만, 점차 개인주의의 확산, 인권 의식에 대한 인식 향상, 개인의 존엄성과 삶의 질 문제 등이 겹치면서 2차대전 종전 이후로는 자살도 개인의 자유, 선택권, 권리라는 인식도 점차 늘어났다.

7.1. 시대

7.1.1. 고대

춘추시대 월나라는 전쟁터에서 적군 앞에서 죄수 등을 자살시켜 적을 경악에 빠지게 한 뒤 공격했으며, 이는 적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스토아 학파의 영향[14]으로 인해 자살자가 마구 늘어나자 국가적으로 '자살 허가제'를 실시하여 민간에서 어설프게 자살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극약을 처방하여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놓는다. 따라서 정부가 자살 사유를 심사하여 타당한 경우에는 햄록[15]을 처방하여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의 원조인 셈.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서는 자살이 주로 치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쳐서 양들을 학살한 아이아스가 있다.

플라톤의 <파이돈>[16]에는 소크라테스가 왜 자살이 나쁜지 설명한 부분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자살이 나쁘다고 말했는데, 그는 주인의 명령없이 자살하는 당나귀의 예를 들어 인간이 주인의 명령없이 자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쁘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나이가 들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면 곡기를 끊고 스스로 굶어서 생을 마감하는 풍습이 있었다.

7.1.2. 중세

7.1.3. 근현대

7.2. 국가

7.2.1. 한국

고대 한국, 특히 고구려에서는 해명태자, 호동왕자 등이 부모와 갈등을 빚자 자살을 선택했다.

유교적 색채가 짙은 한국에서는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이 최악의 불효라고 하여 매우 나쁘게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부모니까 먼저 사망한 자식이라도 장례는 치러주었다. 다만 먼저 사망한 자체를 불미스럽게 여겨 조상들이 무덤이 있는 선산에 묻히지 못한다든가 하는 장례 절차상의 불이익이 있었다. 자살하거나 사형을 당하여 더욱 불미스럽게 사망한 자식은 화장을 하여 강에 그 재를 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목숨을 끊는 행위(=자결)는 크게 나쁘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의기가 높다고 칭송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멜표류기에서는 병자호란 때 적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보다 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병사들의 수가 더 많았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모두 동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동양에서는 자살하는 것이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자살하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로 보며 이러한 가치관 차이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기이하게도 자살 바위라는 지명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명칭의 유래는 누가 추락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부터 그냥 추락사하기 좋은 형태라는 김빠지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다만 자살자가 심각한 범죄자[17]인 경우 '인과응보'라면서 그의 자살을 환영하는 사례도 흔히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그 범죄자가 자살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찜찜하게 여기는 것도 기묘한 노릇. 단, 정말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하는 경우라면, 처벌이나 책임도 피하고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편히 죽는다며 역으로 분노를 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살폭탄테러미국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총기 난사 사건로 무고한 인명을 대량살상하는 경우.

여담으로, SNS에서 난처한 상황이나 부끄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살ㅂㅂ'나 '한강물 따뜻하냐' 등등 을 쓰기도 한다.

자살 예방을 위해 네이버, 구글 등 여러 검색엔진 에서 '자살', '죽고싶다', '살기 싫다' 등 을 검색하면 보통 이런 문구와 상담 전화번호가 뜬다. 가령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뜨기도 하지만, 몇몇 작정하고 죽으려는 사람이 느끼기엔 정신병자 취급하거나 가식적인 문구로 느껴져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방법을 찾기 마련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인터넷 검색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상담원들의 답변이 워낙 늦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답변을 보았을 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괜히 심리학이 독립된 학문을 이룰 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절대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 어설프게 말하면, 말을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충동적으로 행해지는 자살의 경우라면 저런 사이트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나, 자살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의 자살 시도를 낮추는 데는 정신 상담 등의 수단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내담자의 자살 '신호'가 포착될 수 있기 때문. 오히려 홧김에 저지르는 자살이나 개인의 사상에 따라 냉정하게 재단하고 시도하는 자살이 비율로 따지자면 더 적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경우도 매우 많은 듯한데, 당장 자살률이 점점 늘어나는데도 대책이 없다는 게 그 증거이다. 사람마다 각기 처한 입장이 각기 다르고 개인별 사정도 다양하여 깊이 이해하기 힘들다. 공동체주의 특성상 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남들은 다 하는데 넌 왜 못 해"의 논리에 가까운데,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살림살이가 힘들거나, 끝없는 경쟁에 지치거나, 온/오프라인 자살모임을 접하는 등 이유가 가지가지다.

한강의 일부 다리에는 유명인사들이 자살을 하지 말라는 권유 멘트가 하나씩 적혀있다. 배우, 코미디언, 만화가, 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기록했다. 그런데 이거 보고 왠지 더 슬퍼져서 자살하고 싶게 만들거 같다는 의견도 있다.

자살 방지 강사나 교육자들이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는 말장난도 종종 한다. 나름대로 센스있는 말이라고 여기는 모양인데, 진중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힘든데, 거기다가 부채질이냐?'고 화낸다. 얘기하는 본인들 딴에는 위트있고 운율성 있는 우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나본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생각이다. 당장 인터넷에서 물건 하나 구매할 때도 심사숙고하는 게 사람인데, 자살 같은 문제에 그정도 생각을 안 했겠는가?

그런 문제를 저토록 가볍게 얘기하니,[18] 듣는 사람은 약올리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아 열이 뻗치거나 더욱 무서운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처음부터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을 우습게 볼 리가 없다. 또한 그렇게 따지면 슬프기로 유명한 NELL의 '51분전'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자살과 자유는 고작 한 글자 차이'다. 때문에 저런 개드립이 있는 기사 같은 곳에 "자살의 반대는 타살입니다." 같은 비판조의 댓글도 많은 편이다. 저 논리대로면 살자 뒤집은 게 자살이지 뭐겠는가.

간혹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무섭지? 그것 봐. 넌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죽고 싶은 마음으로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라고 위로하는데 이런 소리는 내뱉지도 말라. 이건 살인무기다. 자살을 떠올릴 정도면, 매우 궁지에 몰렸다는 소리다. 이 지경까지 가면 삶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어져서, 죽는 것 자체보다 죽을 때의 고통이 무서워서 못 죽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을 하나도 안 생각하고 내뱉는 말장난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건 결국 '넌 겁쟁이니까 죽지도 못하지?'처럼 약올리는 행동이고 그 사람의 자살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그저 아플까봐란 두려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죽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 한다. 하지만 자살은 죽는 게 무서운데도, 사는 게 더 무서워서 고르는 마지막 수단이다. 만약 그 사람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혹은 찾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말들은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19] 자살하려던 사람이 그냥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저딴 소리 지껄이는 사람 하나쯤 같이 끌고갈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또한 자살과 관련된 글이 올라오거나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의지드립이 튀어나온다. 자살이라는 것은 자살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다. 즉 스스로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막혀서 안 되니까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며, 이 시점에서 자살자는 어지간한 시도는 다 해봤을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노력을 해라"라는 건 상대방이 이제까지 했던 노력을 모조리 짓밟는 짓이다. 자살 시도와 관계없이 지나치게 노력만을 강조하는 사회 풍조도 고쳐야만 한다. 사회가 심각한 병폐를 떠안았는데도 노력만을 내세우는 무식한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집단따돌림 등으로 인해 자살 생각을 하는 아이에게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라.", 또는 "공부해라."와 같이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발언들은 자살할 확률을 더 높인다.

그나마 가장 나은 예방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마포대교 문서에서 언급된 '토마스 조이너'의 '자살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마음,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 두려움이 없는 마음(고통에 대한 내성) 등의 3가지 심리 조건이 필요하며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될 경우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이론을 보면,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 '의지드립' 같은 개드립보다는 '죽는 건 정말 고통스럽다.'를 자살징후자에게 직접 보여주는 편이 자살방지차원에선 차라리 낫다. 가령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농촌의 경우 자살징후자에게 그라목손을 삼킨 자살자가 죽기 전 모습을 녹화하여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라목손 자살사건은 매우 끔찍한 것으로 유명한데,[20] 그걸 보면 절대 농약 먹고 죽겠다는 생각은 못할 것이다. 애당초 안락사 약물도 아니고 독극물로 자살을 시도했으니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안락사 약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가 없다.[21]

2016년 5월 31일에 자살자가 애꿎은 행인을 숨지게 만든 곡성 공무원 사망사건이 벌어지면서 자살자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처럼 생활고로 인한 자살 사건인 경우에는 사회의 잘못으로 인한 희생자로 여기고 안타까워 하는 시선이 많지만, 이 경우처럼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에는 범죄자와 다를 게 없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경찰, 검찰, 장례업체 실무에서는 자살을 일종의 사고사(변사)로 취급한다. 따라서 자살자의 시신은 탈의되어 부검, 검시를 거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알몸 시신을 촬영한 검시사진 및 관련 서류는 관할 경찰서에 25년 동안 보관된다. 검찰의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장례 진행이 불가능하고 시신에 손을 댈 수 없다.

7.2.2. 일본

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긋는 것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를 고결한 행위라 하여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는 행동을 해주었다. 또한 특공 또는 희생이라 하여 목숨을 걸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 중에 성이 함락되었을 때 또는 전쟁에 패했을 때 성주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할복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시바타 카츠이에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해서 할복했다. 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우키타 히데이에모리 데루모토를 살려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엄청난 대인배인 셈.

흔히 "적이지만 훌륭하다", "훌륭한 최후였다" 라는 식의 대사는 이같은 풍습의 잔재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서는 위의 사고관이 남아있다보니 미화하는데 이로 인해 중2병 환자들은 "기회만 오면 특공하여 이름을 남기고 싶다" 같은 병맛 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도 하며, 이러한 사고방식과 문화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행한 카미카제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카미카제 공격은 숭고한 희생이 아니었고[22], 전략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서양에서는 위와 같은 일본식의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을 해야지 덜컥 죽어버리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을 미화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자살이 늘어난다고 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 따른 자살은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더 나쁘게 본다. 그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길 꺼리는 화(和) 문화가 발달한 것이 크며 자살을 하면 자살을 수습하는 소방관과 경찰들을 비롯해서 가족과 애인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 문화의 영향이라 하겠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자살자가 자살하기 전 유서에서도 자살한 이유보다는 사죄의 말을 주로 쓴다. 생명을 끊어서 미안한 게 아니고 자기가 죽은 후의 뒷수습 등으로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다.[23]

현재 일본에서는 투신자살하면 철도회사와 고객들로부터 욕을 먹게 된다. 특히 츄오 쾌속선같은 조밀한 배차로 운영되는 경우, 그날 다이어는 완전히 박살나고 직장인들은 지각을 면치 못하게 된다. 다행히 사상사고나 천재지변, 신호 문제 등으로 지연이 발생할 때는 역에서 지연증명서를 놔두며, 그걸 가져가서 상사에게 확인을 받으면 지각은 잘 해결된다.

철도가 대중교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에서는 철도에서 투신 자살한 사람의 유족에게 벌금을 매기고 있다고 한다. 액수가 꽤 쎄다. 당연히 일본 내에서도 연좌제 논란이 극심하다.

7.3. 종교

거의 모든 종교가 자살을 금기시하고 있으며, 다른 금기와 충돌할 경우 다른 금기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살고 나서 참회하라는 경우도 있다. 모든 민간 종교나 무속인들조차도 자살한 영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죽는다고 힘든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죽어서도 문제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다만 사후세계나 영이 실재하지 않을 경우 이 주장은 거짓이 되어버린다. 어쨌든 존속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자살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종교는 사이비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24]

어떤 종교의 교리, 율령이 곧 관습법이거나 국법인 종교 국가들에서는, 그 종교의 율법, 경전을 근거로 자살은 범죄로 규정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고대 시대에 형성되었고, 해당 시대의 관습상 노동력에 해당하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였으며, 그러한 풍토 하에서 형성된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살을 매우 악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 종교 국가는 아니지만 사실상 보수 기독교가 지배하는 종교 국가에 가까운 미국 남부와 독일의 기독교 성향이 강한 일부 주에서도 자살을 법으로 금지한다.[25]

7.3.1. 기독교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한다. 기독교의 십계명에서도 같은 해석이 있으며 기독교에서는 5세기 초 성 아우구스티노가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한 이후로 그 영향력이 정통이 되어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구과 미국에서는 19세기까지는 자살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 기독교 시각에서 자살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월권행위 혹은 항명행위 내지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살인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에서는 당시 게르만족이 로마를 약탈할 때 겁탈을 당하고도 자결하지 않고 살아남은 기독교 여인들을 비난하거나 안 좋게 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겁탈당하고도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자살은 스스로를 살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 설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입장이 되면서 자살이 나쁜 짓으로 규정됐다.

위의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자면 이렇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십계명을 예로 들면서, 십계명 내부의 '이웃에 대한 거짓 증언 금지' 구절과 '이웃 사랑' 의 구절을 토대로 그것의 확대해석을 통해 자살 또한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죽여서는 안 된다."는 율법에 대하여 비록 누구라고 정확히 꼬집지는 않아도 거짓 증언, 이웃 사랑부터가 자기로부터 단초가 되는 구절이라면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구절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포함되는 구절이라고 해석한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근거로 든 것은 모세의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라는 구절이었는데, 사실 이 구절은 말 그대로 남을 살해하지 말라는 뜻일 뿐 자살까지 커버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유대교 율법과 전통 상으로도 자살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이런 풍조가 기독교에까지 이어졌다. 현대 신학에서는 예외적인 경우 한정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어쨌든 중세까지는(그리고 지금도 보수적인 신자들은) 자살은 최악의 대죄라고 생각했고 자살자는 장례식/장례미사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살인이기 때문에 자살자는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세기에 일종의 편법으로써 사형을 목적으로 중죄(그래도 살인, 강간보다는 반역죄나 절도죄)를 저지르는 간접자살이 유행했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자살을 뜻하는 영어 표현 중에는 'committing suicide', 즉 '자살을 저지르다' 라는 문어적인 표현이 있는데 이는 자살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다. 현대에는 suicide, killing oneself 등의 중립적인 표현이 더 흔하다. 프랑스어에는 suicider(자살하다)라는 낱말이 존재한다.

당시의 사회 인식의 대표적인 예가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지옥편에 있다. 문학작품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적 분위기가 매우 강한단테신곡에서도 자살한 영혼은 지옥에 떨어져서 점점 썩어가는 고목나무가 되어버린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자살한 자는 지옥의 8층 폭력의 층의 두 번째 고리에서[26]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며, 최후의 심판 날에도 스스로 육체를 버렸으니 육체를 돌려받지 않고 나무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아주 극한 상황에 몰려서 자살한 사람도 '그래도 자살하지 말 걸' 이라고 후회할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마의 카토는 연옥의 뱃사공으로 나오며 림보에서도 자살로 생을 마친 위인들이 몇몇 나온다. 아마도 단테가 당시 상황과 현재 상황의 차이를 인정해서 그런 듯하다. 사실 단테의 그리스•로마 덕후 기질을 보면 그냥 기독교 문화권은 아닌데 지옥에 넣기 싫은 영웅들을 열외시켜준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종교적 명분에 의한 자살폭탄테러를 아예 생각조차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살인이라는 대죄와 주변 사람에 대한 살인이라는 대죄라는 콤보를 달성하여 거의 빼도박도 못하는 지옥행이기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의 예와는 반대로 "책임을 통감하여 죽음으로 사죄..." 같은 행위는 오히려 책임 회피 행위로 간주한다.

가톨릭의 경우, 과거엔 자살은 장례 미사도 못 올릴 정도의 사죄(死罪)로 취급했지만 현대에는 모든 상황을 자살로 보지 않는다. "너 배교할래, 죽을래?" 같은 상황에서 신앙을 지킨 상황은 자살로 보지 않고 따로 순교라고 칭한다. 그 외의 자살을 죄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로는 스파이가 임무 수행 중 국가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 전쟁 중 특별한 상황이나 조난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자기희생과 같은 국가나 공동체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살하는 경우[27] 등이 있다.[28] 또한 구원의 여부는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일임을 근거로 가급적이면 자살자에 대한 처우를 일반적인 사망자와 다르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자살자가 죽는 순간 회개할 가능성도 생각해서 그 영혼의 구원을 하느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흔치는 않다. 당연히 장례절차 등도 자연사/사고사[29]/병사한 사람들과 동등한 처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 장례미사가 아닌 사도예절로 장례식이 치러지며 직계 유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30]

또한 자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도 있다, 일단 자살은 죄가 맞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죄는 고의에 따라 대죄소죄가 구분되는데, 자살의 경우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거나 우울증 등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하느님이 이에 대해서 봐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물론 앞서 언급한 부득이한 상황이나 빚 독촉 등 어려움에 처한 상황도 아니고, 누가 봐도 명백히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무신론허무주의에 의한 것[31]처럼 100% 자유 의지로만 행한 자살은 거의 해당사항이 없다. 자신의 중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자살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본질적으로 자살은 곧 죽을 죄이기 때문이다. 당장 배교를 요구받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자살을 택하지 않는 대신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데 이것도 자살이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주교의 경우 자살을 하고 구원받아도 연옥에서 죄값을 치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옥에 가더라도 최악의 경우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연옥에 갇혀있어야 할 수도 있다.

개신교의 경우 거의 모든 종파가 부정적이다. 2008년 한국의 안재환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자살이라고 아예 배척하지는 않는 종파도 있기야 하지만 특이하다. 개신교의 구원에 대한 교리(이신득의)에 따르면 자살이라고 해서 딱히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니라고 쳐도 사실상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패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을 썼다면 혹시 모를까, 순살했으면 회개 기회 따위는 없다. 게다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건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는 개신교 교단 역시 점차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자살을 무조건 지옥행으로 취급하지는 않는 쪽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단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어디까지나 특정상황 하에서만. 다만 현대 개신교의 경우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니라는 이유로 병사로 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자살하다" 가 아닌 "자살당하다"(?) 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보기도 하고, 이런 입장이 실제로 신학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또는 우리나라같이 세속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다시 말해 근본주의적 기독교 문화가 강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자살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경우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잣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노코멘트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관점에서는 "모든" 인간은 예수의 품에 있고 불신자는 쳐죽여야 또는 회개해야 할 분자로 보기에 단순히 기독교 교리만 놓고 보면 성립되긴 어려운 논리이나,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현대적 인권 개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시되기 때문에 세속주의적인 면이 강한 국가에서는 그렇다. 실생활이나 사회에서는 남의 일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기독교 교리보다 법률이나 상대방의 권리나 의견이[32]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3.2. 이슬람교

간혹 잇따른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자들의 자살폭탄테러 등으로 이슬람교는 자살을 그다지 터부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지만 만약에 질병과 사고를 겪어서 아사할 것 같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뭔가를 섭취해도 된다. 당연히 며칠 정도 살짝 뒤로 미루고 나중에 날짜 채우는 것은 충분히 허용이 된다. 즉, 위험 상황에서 라마단이나 할랄 푸드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아사하거나 먹어야 할 약을 제때 먹지 못해서 사망하는 것도 자살로 처리한다. 즉, 이렇게 목숨이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는 설령 이나 돼지고기처럼 쿠란이나 율법, 계율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하람 계열 음식을 입에 대더라도 그 죄는 묻지 않고, 착실히 회개만 하면 된다고 한다. 라마단을 지키는 것이나 할랄 푸드 이외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여기지만, 이것을 억지로 지키려다간 사망하는 게 명확한 경우엔 이것도 자살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이 때만은 기존의 금기를 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마단은 나중에 의무를 수행하면 되고 교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음식을 먹은 건 참회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자살을 허용하는 자이나교조차 수행을 하고 또 하다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쌓는 업까지 버리기 위해 단식을 통한 자살을 허용할 뿐 우리가 생각하는 자살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알라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는 인정하는 듯하다. '알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그런 신념에서 나온 듯하다. 그러나 주류 이슬람 계통 사람들이 말하듯,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는 이슬람교를 위한 것도, 알라를 위한 것도 아니며 이슬람교를 빌려온 사이비 종교라고 싫어한다. 이들의 자살폭탄테러도 세계평화를 망치고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죄악으로 삼는다고... 한마디로 비뚤어진 순교인 셈이다.

7.3.3. 자이나교

유일하게 자살을 인정하고 있는 종교가 자이나교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자살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에 고대 때부터 불교의 비판을 많이 받아왔고 육사외도로 분류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자살을 용인하는 이유는 "태어난 이후부터 이 몸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며 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할 권리도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핵심으로 보인다.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7.3.4. 불교

불교에서의 일부 해석에 따르면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로서 불교의 계명 중 하나인 '살인을 하지 마라'라는 것을 어기는 행동이라고 한다. 즉 자살을 하면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라 내생에 환생해도 전생의 업에 따른 힘든 생을 겪게 된다는 것으로, 내생에는 축생계로 환생하며 그 중에서도 최악인 곤충으로 환생하게 된다.

7.4. 철학

윤리학적 틀에서 볼 때 이마누엘 칸트 아예 대놓고 하지 말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의무론 계열 학자들은 기독교와 비슷하게 자살이 존재를 발전시키는 (善)을 없애는 것라고 주장하여 부정적으로 보았다.

공리주의의 경우는 케바케인데 경우에 따라서 자살하는 것이 더 많은 선을 발생시킬 경우에 자살이 옳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에서는 자살 또한 개인의 자유로 여긴다.

기득권 편의나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배제한 결정론적 관점에서도 자살 또한 운명이니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긴다.[33] 오히려 회의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에서 성향에 따라 자살 또한 무가치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자유의지를 일단 믿어야 자살을 욕하든 권하든 할 수 있다.

8. 징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살 전에 특정한 신호(signal)를 보낸다고 한다. 따라서 신호를 보이는 이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관리를 잘 해준다면 자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이런 신호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막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읽기 쉽도록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였으며 공식적이거나 학술적인 분류는 아니다. 혹시나 주위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징후를 보인다면 반드시 자살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특히 언어적 징후에 대해 의지드립은 절대 금물.

대부분은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의 존재까지도 무관심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곧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라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 언어
    • "죽은/돌아가신 XXX와 다시 만나고 싶어."
    • "농담이긴 하지만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38]
    • "내가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거야,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 "나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놈일 뿐이야."
    • "내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일까?"[39]
    •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어."
    •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어."
    • "이제 다 끝내버리고 싶어."
    • "정리하고 가야지"
    • "잠들고 나면 다시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 자신의 불행, 실패, 좌절에 대한 지속적인 토로
    • "자살도 그리 나쁜것 같지 않아"
    • 기타 죽음을 암시하는 일기, 그림
  • 행동
    • 남 몰래 약을 사 모으거나 위험한 물건을 감추어 두는 행동
    • 주위 사람들에게 자해 위협을 하거나 실제 자해행위를 하는 것
    • 고액의 보장한도를 지닌 보험가입
    • 자살사이트 가입
    •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품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동
    • 갑작스런 주변 정리정돈
    • 갑작스런 폭력적 행위 또는 갑작스런 과도한 즐거움의 표출
    • 자살 계획을 세우는 행동
    • 자살과 관련된 단어 혹은 그에 대해 알아보는 것
    • 갑작스레 매듭짓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40]
    • 자살을 로맨틱하게 묘사하는 것
    • 한동안 만나지 않던 사람을 갑자기 찾아가는 행동
    • 갑작스럽게 성직자를 찾아가는 행동
    • 공부나 자신의 본업에 초연(悄然)한 태도
    • 유언장을 쓰는 행동
    • 과도하게 몸을 씻는 행동[41]

다음은 동반자살의 징후들이다.
  • 동행이면서도 연령층이 다양하다.
  • 가족 또는 동료, 친구 사이 같지 않고 어색함이 느껴진다.
  • 놀러 온 사람들임에도 표정이 밝지 않다.
  • 서로 대화가 없고 말수가 적다.
  • 대부분 렌터카를 이용한다.
  • 일반 관광객과는 다르게 짐이 많지 않다.
  • 짐을 옮겨 주겠다는 호의를 필요 이상으로 거절한다.[42]
  • 일행 이외 다른 사람 앞에서 특히 트렁크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이외에 육군, 공군에서도 자살징후 체크리스트를 두어 관심병사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보통 간부가 관리하는 비밀사항이지만 방송, 재판에 나온 허용된 부분만 말하자면 '군 간편 인성검사'라는 체크리스트로 관리한다.

다만 위의 내용들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에 주로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자살 자체를 계획하고 있고 그에 대해 주변에 알아차리기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처럼 위장하기 때문에 자살 계획을 세우는 행동 이외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자살을 막기 위해 이상징후에 대해 교육 및 공유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이상징후들도 특정한 이유가 있다면 자살징후로 보기 어려워지기에 '에이, 아니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고, 현대에는 개인주의가 강해져 타인에 대한 간섭을 실례라고 여기기 때문에 깊숙하게 캐묻는 것이 어렵다. 이 때문에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다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9. 자살성 사고와의 관계

자살성 사고(자살 관념, suicidal ideation)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사고유형을 말한다. 사고(思考)자는 자살행위 자체를 시도하진 않지만, 자세한 계획을 세우거나 세부묘사가 가능할 만큼 구체적으로 자살계획을 세우게 된다.

앞서 말했듯 사고자의 대부분은 생각만으로 끝나지만, 일부는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다.

자살성 사고의 종류로는 잠깐 생각하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화하거나 비성공적인 시도를 행하는 것까지 범위가 다양하다[43].

자살성 사고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우울증을 꼽으며, 과거나 현재에 타인을 기피해왔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특히 가능성이 크다. 참고

10. 존엄사와 안락사

존엄사, 안락사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44]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으나, 불치병에 대한 그런 연명치료가 환자 본인을 위한 것인지, 병원을 위한 것인지, 개인의 선택권 침해 문제, 가족들이 부담해야 되는 경제적 타격과 시간, 정신적 소모, 체력적 소모 등에 논란이 발생하면서 존엄사, 안락사를 허용하거나 자살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국가들도 나타났다. 다만 존엄사, 안락사가 너무 쉬우면 사회적 병폐가 될 수도 있으니 진정으로 죽음을 원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빡센 편이라고 한다. 다만 미성년자의 존엄사, 안락사도 허용한 보편화된 국가에선 확인 과정이 널널하다.

11. 고통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자살을 하는 도중에는 정신이 심각하게 혼란한 패닉의 상황에 도달하며,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려는 자기보호본능이 자살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고통이 짧으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총기 자살이나 투신자살이 꼽히곤 하나 전자는 우리나라처럼 민간인의 총기 소유가 불법인 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고 후자는 극도의 두려움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있다. 거기다 당연히 둘 다 만약 죽는데 실패한 경우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45]

목을 매는 경우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성이 날아가고 몇 분 간 엄청난 고통 속에 몸무림치게 된다. 머리 전체에 쥐가 나는 느낌, 콧구멍에 수영장 소독한 물이 계속 흘러들어오는 느낌, 숨은 엄청 쉬고 싶은데 도저히 쉴 수가 없는 답답함, 시야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왔다갔다 하다가 뿌옇게 흐려지다 차단된다. 글만 보고 감이 오지 않는다고 잠깐 경험하고 싶다고 시험삼아 한 몇 초 정도 매달려 보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두 발이 허공에 위치하는 순간 의자나 어디에든 발만 걸치면 살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생각조차도 못하게 된다.

농약 같은 독극물을 음용하는 자살은 위의 방법들보다도 훨씬 고통스럽다. 그라목손과 같은 독극물은 신체 조직을 서서히 망가뜨리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이 매우 심하다. 독극물은 신체 내부를 순회하면서 신체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조직을 손상시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리로 작동되기 때문에 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염산이나 락스 같은 부식성물질도 마찬가지다.

분신자살의 경우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 1위가 작열통[46]이기에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생활을 하면서 불에 대한 고통은 기본적으로 학습하게 되므로 이러한 방법은 보통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당장 가열된 냄비에 신체 일부만 닿아도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분신자살은 정말 자신이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알리고자 할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저항의 의미가 강하며, 전태일 열사와 중국의 탄압에 항거하여 소신공양을 하는 몇몇 티베트 승려들이 대표적인 예. 다만 집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고통이 없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과장된 경향이 강하다. 다 나름대로의 고통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라는 패닉 상황은 즉사가 아닌 한 다 오게끔 되어 있다. 애당초 고통 경감을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엔돌핀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무통증 환자조차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는 고통을 느끼는 사실만 가지고도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다.

죽지 못해 살아남았을 경우 백이면 백 후유증이 남는다. 자살 자체가 신체를 망가트리는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살아남더라도 반신불수, 정신이상, 소화기 계통의 큰 이상과 같은 후유증이 남는다. 목을 매는 경우가 그나마 후유증이 덜하지만 이것도 조기에 발견해서 뇌에 손상이 오기 전에 실패한 경우에 한한다.

느긋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개 죽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지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걸로 사망하는 사람 대부분은 생활습관병에 따라 병사한다. 그리고 자살을 결정하고 한 게 아니라 즐기다가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이라 자살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죽기 전부터 오랫동안 본인도, 가족들도 고통받는 경우가 많음으로 평소에 잘하는 것이 좋다.

유족이 겪게 되는 슬픔과는 별개로 자살현장이 된 거주지에 발생하는 피해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자살현장은 매우 참혹하다.[47] 문제는 이렇게 사망한 사람이 발생하게 될 경우 신경계통이 멈추게 되어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분비물이 흔적을 남기게 되고, 수많은 구더기와 그로 인한 냄새로 주변에 큰 피해를 끼친다. 게다가 세균 및 구더기 알 등은 시멘트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다음 입주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된다. 오죽하면 사망자가 발생한 집은 부동산 거래에서도 중요 고지의무가 있을 정도다. 이를 고지하지 않고 집을 산 매수자에게 계약 파기가 정당하다는 판례도 있다(서울지방법원 2001가단334725).[48]

12. 통계

12.1. 한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살/통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1년 자살률 31.7명 (세계 1위, 이하 10만 명 당)#
2010년 자살률 33.5명 세계1위 OECD 평균의 2.6배
2009년 자살률 31명
2008년 자살률 26명

파일:attachment/suicide-1.jpg

근래의 자살률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아래 다른 나라와의 비교치로 실감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여 2005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24.7명으로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했고 2009년에는 31명으로 우리는 자살 성장률에서 다른 모든 OECD 국가들을 초월했으며 그 이외의 국가까지 합산하면 벨라루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살률이 높다. 벨라루스의 경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의 거의 전부가 벨라루스에 떨어졌다. 지금도 벨라루스 전 국토의 30% 정도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 이때문에 벨라루스는 기형아가 많이 태어나며 이러한 요인이 자살률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2013년 현재는 통계가 업데이트돼서 벨라루스 16위 혹은 18위, 리투아니아 2위, 그린란드가 1위로 올라섰다.다른 통계에 의하면 기아나가 1위. 하여간 주권국가 기준으로는 여전히 대한민국이 2위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대한민국OECD 나라 중 자살률 1위였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2012년 통계에서는 OECD 평균에 비해 2.6배 높았다.[49]

그러다 2017년 갑자기 2위로 내려갔는데, 이는 한국의 자살율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였기 때문.[50]
2018년 우리나라의 연령표준화자살률이 24.7명으로 다시 OECD 회원국 1위가 되었다. [51]
아무튼 OECD를 넘어 전 세계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자살에 관한 인지도가 높고 자살과 연관성을 갖는 안락사, 존엄사 등의 주제를 의무교육기간 동안 다루기도 한다.


파일:attachment/suicide-2.jpg

한국은 자살률이 일본보다 약 1.5배 높고 중국, 홍콩폴란드보다 2배 높고 미국 보다는 3배, 바레인이나 그리스보다는 10배, 바하마페루보다 30배, 자메이카보다 약 300배 높다. 그리고 OECD 회원국 평균치 11.2명의 2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자살률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후증후군 PTSD에 시달리는 미군 자살률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2005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었다. 한국은 2010년 33.5명.

1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라고 한다. 10대의 경우엔 2008년 자살률이 42퍼센트나 증가하면서 2009년에는 '자살' 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역시 자살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단, 통계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자살을 제외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다른 사망 원인을 꼽아보자면 사고사, 병사, 아사, 살해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인간의 건강이 최고조를 찍는 10대~30대의 사람들의 제 1 사망원인이 병사라면 의료시설이 미흡한 것이고, 아사라면 식량 안보나 노동능력이 없는 극빈층에 대한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위험한 것이며, 살해라면 치안이 막장이고, 사고사라면 사회 안전망이 미흡한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10대~30대 인간의 제 1 사망원인은 자살일 수밖에 없다. 한다디로 자살률이 다른 요인들에 비해 특출나게 높다는건 그 밖에는 딱히 죽을 일이 생기지 않는 지극히 평화롭고 온건하고 발달된 사회라는 이야기. 청년기 자살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고 또한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개선해야만 하는 문제점이지만, 사실 곡해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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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로 비교해보면 한국의 15-34세 그룹의 자살률은 OECD 평균과 같으며, 35-64세 그룹은 다소 높은 수준이나, 6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평균의 3배 이상이다. 한국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11년째 OECD 1위를 지켜오고 있는 것은 노인층의 자살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편 65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 동기로는 노후 빈곤과 우울증, 노인 학대가 꼽혔다.[52] 지역별로는 충청남도의 노인 자살율이 전국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53] 특히 농촌지역은 그 특성상 농약 등 자살 수단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도시 지역보다 자살률이 매우 높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노령연금이 강화되고, 그라목손의 제조와 판매를 전면금지하는 등의 노력으로 자살률이 소폭 감소하긴 했다.[54]

13. 최초의 자살 사례들

  • 출처: 자살백과(마르탱 모네스티에 저) 中 50 페이지부터.

● 최초의 마취제 자살
마취제에 의한 최초의 자살은 1851년 오스트리아의 빈 왕립 병원 원장이었던 레이에에 의해 행해졌다. 자살하기 1주일 전 그는 가장 손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동료와 의논을 했다. 침실에서 사체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코와 입에 클로로포름을 가득 담은 봉지를 붙이고 있었다. 마취가 의학에 도입된 이후 마취제를 사용해서 자살한 사람은 수 없이 많다.

●최초의 코호균 자살
최초로 세균을 이용해서 자살한 사람은 의사였다. 앞의 의사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한 청년 의사는 살아있는 코효균 유탁액을 정맥에 2밀리리터 주입했다. 그 다음 날에는 그의 동료 한 사람이 자기 몸에 니코틴 농축액을 주사했다.

● 최초의 드릴 자살
1974년 2월 28일 소쇼의 한 연금 생활자는 전기 드릴로 자신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그는 드릴을 배수구에 고정시키고 테이블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드릴이 머리 꼭대기에 정확히 놓여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드릴을 작동시켰다. 그 일이 있기 2년 전에도 벨포르의 한 상인의 딸이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려 했지만 그때는 그다지 잘 되지 않아서 머리에 구멍을 아홉 개나 뚫어야 했다.

● 최초의 생방송 자살
자신의 자살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1974년에 서른 살의 젊은 미국 여성 아나운서 크리스틴 처벅이 바로 그랬다. 그녀는 생방송으로 그 날의 뉴스를 해설하고 있다가 갑자기 기술상의 문제가 생겼다며 방송을 중단했다. 몇 분 후 화면이 나온 다음 그녀는 방송을 재개하지 않고 다음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자극적인 화면을 언제나 제일 먼저 컬러로 내보냈던 채널 40의 전통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시청자 여러분들께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아나운서는 수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총을 꺼내어 자기 머리에 쏘았다.

● 최초의 자살
19세기 빈에서 70세 노인이 무거운 쇠망치로 8센티미터 가량의 못 일곱 개를 머리에 박았다.

● 최초의 전기톱 자살
묘비판매회사의 독일인 경리 로베르트 코트는 1985년 공업용 전기톱으로 몸을 2등분하는 정말로 끔찍한 방법을 시행했다.

● 최초의 우주 자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우주 정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1969년 3월 21일 애리조나주 데이비스 몬탄 고도비행센터에서 최초의 우주 자살이 일어났다. 프랑스 <수아르>지의 엘리자베트 브르캥 특파원이 본사에 전한 바에 따르면 19세의 월터 무어가 실험실의 고도를 2만 5천 미터로 올리고 산소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무어는 미국 공군이 미래의 우주 비행에 대비해 고기압과 저기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실험대상으로 선정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얼마 뒤에 한 로켓 조종사는 보호의를 벗어 던져버리고 고도 2만 5천미터 지점에서 로켓을 떠났다.

● 최초의 방사선 물질 자살
1994년 3월 샤랑트 해안지방의 올레론 섬에서 40세의 남자가 백포도주에 방사성 물질을 타서 마셨다. 2011년 11월 일본에서 자살한 한 쌍의 남녀도 처음에는 방사능 물질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 최초의 다트 자살
1991년, 프랑스 릴에서 37세 주부가 관자놀이에 다트의 화살을 꽂았다.

● 최초의 냉동고 자살
1983년 9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주민이 자기 집 냉동고 안에 들어가서 자살했다.

● 최초의 재판소 자살
1982년 6월 알렉산더 코트라는 사람은 위조지폐 은닉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 치사량의 시안화수소를 먹었다.

● 최초의 이원(二元) 자살
1980년 6월 신문은 이원(二元) 자살을 보도했다. 그 자살은 그러한 종류의 것으로는 처음 일어난 것이었다. 같은 날 로잔이라는 스위스 여성과 칸이라는 스위스 남성이 각각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자살했는데, 우연히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법(두 사람 모두 시안화수소를 마셨다)으로 자살했던 것이다. 프랑스, 스위스 양국의 조사관은 두 사람이 서로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4. 기타

  •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지금은 발생 빈도가 적지만, 과거에는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서 지하철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지하철이 멈춰야 하고, 정면에서 이를 접하게 되는 기관사에게 매우 큰 트라우마를 안기게 된다.# 그 외에 시체 수습을 위해 작업하는 역무원공익근무요원은 물론이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도 정신적인 피해를 준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스크린도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보급 초기에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지 않은 역으로 가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하였고,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회기역에서도 스크린도어를 우회해서 선로로 들어가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는 창동역과 서울교통공사 1차 스크린도어 교체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스크린도어가 고장나지 않는 이상 뛰어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같은 방식으로 철도역[55] 또는 철로에서 투신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나마 지하철은 비상제동시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새마을호나 화물열차는 물론, KTX의 경우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객열차의 역 진입 속도는 약 60km/h이며 이때 비상제동시 제동거리는 빈 열차 기준 약 128m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인식하려면 100m 안에는 들어와야 하니 비상제동을 통한 사고 방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로 KTX의 경우 정상운행 중 비상제동거리는 약 3.3km로 약 1분 40초가 소모된다. 즉, 철도 기관사는 100m 정도 거리에서 인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비상제동을 걸고도 사람이 죽는 것을 눈 뜨고 지켜봐야 한다. 이렇다 보니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트라우마 역시 가지게 되며,[56] 이러한 트라우마를 도저히 이겨내지 못한 기관사가 자살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한다. 자살 방법 중에 가장 여럿[57]에게 피해를 끼치는 방법이다.
  • 일본에서는 2006년부터 정부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자살방지대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자살 방지 활동을 돕기 위해 100억 엔(약 1200억 원)으로 지역자살대책긴급강화기금도 만들었다. 일본의 자살대책기본법은 자살예방활동을 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을 국가 및 지방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인터넷의 자살 관련 정보 유통도 차단하고 있다. 이 대책은 실제로도 효과를 봐서 2012년에는 처음으로 연간 자살자가 3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외국인 인구 증가에 맞춰 영어로 된 자살방지안내문도 각 역에 부착 중.
  • 한강 다리 교각에 올라가 뛰어내려 자살할 거라며 시위하는 사람도 있는데, 119 구조대원들과 경찰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엄한 구조대원이나 경찰까지 끌어들여서 같이 자살하거나 자기만 살아남는 일도 벌어져서 더 안타깝게 한다. 자세한 건 한강 정모 문서 참조.
  • 자의적으로 자살을 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논란이 있다. 동물의 자살에 대한 사족을 달자면 레밍이라는 동물은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앞의 절벽을 보고 앞의 선두들이 멈춰설 때 미처 멈추지 못한 뒤의 레밍들 때문에 앞의 선두들이 추락사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한다.[58] 그런데 이는 사실 자살이라고 할 수 없는 사고 혹은 오류다. 해당 항목 참조.
  • 한 법의학 책에는 완벽하게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 시도가 엉망이 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어떠한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치사량 이상의 헤로인을 먹고 바닷가 근처의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바다에 빠졌고 바닷물을 먹은 그 남자는 자신이 먹었던 헤로인을 모두 다 토해냈으며 본능적으로 물 밖으로 헤엄친 그 남자는 그 뒤로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판본에서는 이 사람이 결국에는 사망하게 되며, 일부 추리 퀴즈에서 이 사람의 사인(死因)을 묻는 문제로 출제되곤 한다. 보통 이 경우에는 바닷물에 오래 들어가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로 많이 나타낸다.
  •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서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현대 사회의 반복되는 세상에 흡수되어 간다고 느낀다. 실제로 뇌내 엔도르핀 수용체의 수가 일반인의 3-4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반인과 같은 양의 엔도르핀이 분비되어도 수용체 모두에 닿지 않아서, 즉 배급량은 똑같은데 타고난 밥통이 지나치게 큰 바람에 일반인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황에서도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자극이 필요하다고 자살하는 사람도 이쪽에 속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정신적 질환이 원인으로, 청소년기에는 정신적으로 성장 중이기 때문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등 정신이 멀쩡해도 위와 같은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에는 청소년들은 자신을 주인공처럼 보는 경향이 있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때 이러한 현상이 나기도 한다. 꼭 자살뿐이 아니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량아들이 나오기도 한다.
  •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도 망상이 지나치면 망상장애가 생겨 심하면 자살에 이른다. 여기서 자살하면 다른 곳으로 간다든지, 떨어질 때 극한의 상황에 자기 힘이 발동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해당된다.[59] 또한 뇌내 장애로 망상장애가 생겨 심한 혼란으로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스펀지 283회에서도 방영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뭐든지 기억하고 어떤 것도 잊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기억에 혼란이 와 망상만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버린다든지, 남들은 하지도 못할 놀라운 망상과 창작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나중에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결국 미쳐버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5년 전 일을 5분 전 일로 착각하거나 구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 결국 이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 기타 안면인식장애로 사람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코타르 증후군으로 아예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믿고 그래서 괜찮다며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진짜로 사망하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생물체라는 것 혹은 생명체와 무생물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구별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자살할 원인이 되기도 하다. 요약하면 심각한 정신질환은 고치기 힘든 자살 원인인 셈이다.
  • 동양권, 특히 일본에서는 익사하는 투신자살을 선호한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일본은 목을 매달아 자살할 때에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찾는 경향이 있다.
  • 한국의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자살이 가지고 오는 자체적인 위험한 뉘앙스 때문에 대부분 자살은 금지어로 필터링된다.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지만 맨 위에 적었던 상담전화 같은 걸 꺼리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의존했다가 차단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이들은 상담카페 같은 곳으로 몰려 정말로 자살하거나 전문가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 혐오와 비슷하게 단순한 드립 수준으로 희화화되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자 지지부진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인류 사회에서의 해방으로 여기는 사례도 늘어가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디씨위키에서는 자살을 스탯 굴리기라고 표현하거나, 인터넷상에서 자살을 예고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한다. 물론 생명과 관련된 소재이므로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 언론에서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순화어를 사용하여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헤드라인에서 이런 용어를 쓰는데, 이는 자살 관련 언론 보도 시 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 것을 권고하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 2019년 현재 일부 언론사에서 자살관련 기사를 낼 때 내용 끝에 자살 방지 문구를 붙이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번개탄 포장지에도 자살 방지 문구를 삽입하기로 했다. 기사
  • 자살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향을 피워주지는 못할 망정 이를 비웃거나,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은 씁쓸한 현상이다. 김지하 시인은 최진실의 사망과 관련하여 좀 지나친 쓴소리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그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시기 분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자 자제하라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대다수 상황이 여러 관점에서 봐야 객관적인 시선이 되듯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도 고려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극한 상황도 아니고 관심이 받고 싶어서, 호기심에 등등 이상한 이유로 하려는 거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최대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고통이 없는 방식을 고려해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점을 부정할 수도 없으며 자살을 생각하는 것 자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살아갈 것을 강요할 수 없으며 삶의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력 자살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에서 이를 지원하는 단체를 찾아가 의사에게 처방받은 치사약을 투약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지극히 이상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려운 경우가 많다. 국가에서부터 자살을 사회 문제로 판단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9월 10일을 세계 자살방지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 매체에서 동네 양아치나 강도 같은 약캐들이 어쩌다 강자 혹은 주인공을 인질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독자들이 이를 보고 자살이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파일:external/image.fmkorea.com/e9f67c4bfb36ee7b09bcbaaeb559825f.jpg[60] 알약은 자살도 한다.
  • 알까기에서는 자신의 알이 상대방의 알을 까지 못하고 바둑판을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용어를 '자살'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알과 함께 바둑판에서 벗어났을 때는 '동반자살'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가 원래 의미와 엮이는 일 때문에 2010년에는 자살은 꽥으로, 동반자살은 논개타법으로 순화되었다. '논개타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 '꽥'이란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15. 관련 인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살/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관련 어록

【관련 어록 - 접기/펼치기】
>"죽을 때에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린다."
- 앙겔루스 실레시우스 -
"어떠한 이에게는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낫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눕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떠한 이에게는 서 있는 것이 앉아 있는 것보다 낫고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 아랍 속담 (자살자들의 묘비에 자주 쓰임)
"본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게 내버려둔다는 점이다"
- 몽테뉴 -
"왜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데도 그 사회를 위해 일을 하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사회 규약들을 지키기 바라는 것일까? 사회는 상호 이익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 것이지만 이 사회가 나에게 너무 짐이 될 때는 과연 누가 나로 하여금 이 사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61]
- 몽테스키외 -
"사회는 숙명을 넘어 온갖 종류의 물질적, 도덕적 불행을 낳는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사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처벌할 권리를 사회에 부여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 렌즈버그[62] -
"자신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은 엄격한 영혼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성이 감퇴된 것이 아닐까?"
- 샤토 브리앙 -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자살 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
- 1969년, 세계보건기구
"사람은 능숙하게 탈 배를 선택하고 편안하게 살 집을 고른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떠날 방법을 선택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마련이다."
- 세네카 -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다."
- 스칸디나비아 격언
"자살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죄"
- 드니 디드로 -
"자살 그것은 신이 인생의 온갖 형벌 중에서 인간에게 부과한 으뜸가는 은혜다."
- T. 리비우스 -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 생각으로 불쾌한 밤을 잘 지내게 된다."
"더 이상 자신 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 월트 휘트먼 -
"죽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전에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이다."[63]
- 바키리데스 -
"죽음은 단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 버나드 조지프 소린 -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나 없나 하는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살인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삶에는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자살은 위대한 예술 작품처럼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준비된다. 삶의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죽음의 이유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사람은 인생에 관하여 침묵을 지켜야 한다."
- 알베르 카뮈 -
"자살을 위한 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시원찮은 사람이다."
- 에피쿠로스 -
"자살하는 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 앨프리드 테니슨 -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것이 낫다."
오토 바이닝거, 23세의 나이로 자살.
어떤 당나귀가 죽으면 자신의 비참한 운명이 마감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당나귀가 죽자 사람들은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었고 그 북을 마구 때리며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처녀들은 풀밭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 호세 로사스 모레노, 똑똑한 바보 中 <불행한 당나귀>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은 흉터를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것이 낫다."
- 도러시 파커 -
"인간은 자살할 권리가 있을까? 그렇다. 그의 죽음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타인이 그에게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저항하지도 않고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것, 즉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것은 이기기도 전에 전투를 내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다. 절망의 행위로서의 자살은 나태함일 수 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어떤 면에서 자살은 비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안이한 해결 방식임에 틀림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아주 풍요로운 원천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자살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 이마누엘 칸트 -
"사람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이다. 그는 신이 부를 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플라톤 -
"자살행위는 한 번도 자살 시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앞으로도 결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공포를 준다."
- 베르나노스 -
"완벽한 행복이 어떤 것이든 간에, 종종 그가 때마침 할 수만 있다면 자살은 현자들의 권리이다."
- 카토 -
"사람들은 인간의 권리 안에 있는 또 다른 권리를 잊어버린다.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없어질 권리."
- 보들레르 -
"자살은 애수 어린 한 편의 시이다. 감정을 죽인 채 늙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든가 열정의 순교를 받아들여 젊어서 죽기, 이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
- 발자크 -
"자살은 친근하고도 기나긴 운명으로 준비된다. 자살은 문학적으로 가장 잘 준비되고 정교하게 손질된 종합적인 죽음이다."
- 바슐라르 -
"자살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살해의 욕구, 살해당하려는 욕구, 살려는 욕구."
- 메닝거 -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희망마저 없을 때,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 최고로 불행한 순간은 집을 뛰쳐나올 수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을 때이다. 야만인들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살을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실천한다."
- 볼테르 -
"죽음은 나의 고상한 친구들에게는 모호한 감옥의 종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이다. 그와 함께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말하라, 네가 행복한 동안 죽이라. 왜냐하면 제시간에 닥쳐오는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 페트라르크 -
"삶은 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 몽테뉴 -
"심장은 권총을 열망하고 목구멍은 면도날을 꿈꾼다."
- 마야콥스키 -
"인간에게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태어남, 삶, 죽음. 인간은 태어남은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으로 고통받고 삶은 잊어버린다."
- 부뤼에르 -
"사람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 로슈푸코 -
"나는 미래를 증오한다. 미래는 나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 앙리오 -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베르테르가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것과 같은 순간을 한번쯤은 가져야 한다."
- 괴테 -
"원하는 순간에 자살할 수 있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 에밀 시오랑 -
〈자살〉

세 상 에 서 나 를 지 우 는 일.
완벽하게 지워도 지우개똥은 남는다.
지우개똥보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이 낫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1〉[64]
사랑이 떠났다. 내 생명이 떠났다. 내 전부가 떠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떠났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그 사람에 대한 기억뿐.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를 지우는 건데 그것도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지면 누군가가 당신을 못잊고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할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라.
지금 머릿속에 한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 2〉
나는 태어날 대부터 가난했다. 단 한 번도 세상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안앗다.
나는 늘 뒤에 아레에 서야 했다. 사람드리 먹고 남는 것만 머거야 했다. 사람드리 입고 남는 것만 입어야 했다.
이러케 오타로 얼룩진 인생을 지우는 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야 할 것은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 다 먹고 다 입고 남은 것만 주는 세상이다.
당신은 지워질 사람이 아니라, 지우개를 들고 세상을 지워야 할 사람이다. 당신보다 오타가 많은 사람도 버젓이 자서전을 내는 세상에 분노하라. 분노는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뜨거운 이유다.

〈참고 : 공동명의〉
내 생명의 주인은 누굴까?
나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생명은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도장을 다 받기 전에는
함부로 팔아치워서는 안된다.

〈반대어 : 다시〉
다음 더하기 시작.

아무리 딱 죽게 생긴 상황일지라도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고,
다음이라는 기회를 살리는 방법으로 시작이 있다.
'다시'가 실패하는 경우를 위해
'또 다시'라는 용어도 준비되어 있다.

- 정철(카피라이터), 《불법사전》 中 -
인생이란 소설은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몇 쪽 읽고 별로라며 덮어 버리기에는 인생이란 소설에 흥미로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 하지현,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中 '무너진 영혼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 자살' -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 김현(1942~1990, 문학평론가) -
"나는 여러분에게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중략) ...내 손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혼자 생각합니다. 오 신이시여, 제가 방금 무슨 짓을 했나요? 이 다리에서 떨어진 거의 모든 사람들, 그들은 그 순간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습니다."
- 금문교에서 뛰어내렸던 한 생존자, 2008년 증언록. R.J.Comer 재인용, p.255 -
"당신이 이 페이지를 읽는 것을 끝내기 전에, 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적어도 60명의 미국인이 내일 이 시간까지 자살할 것이다. 그중 많은 수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성공할 것이다."
- 슈나이트만 & 만델코른 (1983) -
죽기 전에 산 사람의 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극단적인 악이다.
- 세네카
"의지의 부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러한 자살은 의지를 강력히 긍정하는 현상이다. 부정의 본질은 삶의 고통이 아닌 삶의 향락을 혐오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자살자는 삶을 원하나, 그가 처한 삶의 조건에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결코 삶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현상(육체)을 파괴하면서 단지 삶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삶을 원하고, 신체의 방해받지 않는 생존과 긍정을 원한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4장 中 -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 하인리히 하이네 -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 마광수, 〈자살자를 위하여〉 -
"뭐 다 살려고 하는 일이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일들을 두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자유 죽음을 찾는 이는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혹은 둥중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살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 나는 아니야! 나는 원치 않아. 밖에서는 사회의 법으로, 안에서는 '렉스 나투라에'로 느끼도록 충동하는 강제 앞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사회의 법이든, 자연법이든 나는 더이상 인정하지 않겠어.ㅡ 이게 바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 장 아메리, 〈자유죽음〉 -
신이시여, 제가 이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 커트 코베인 -

17. 관련 사건

17.1. 국내

17.2. 해외

17.2.1. 일본

17.2.2. 인도네시아

17.2.3. 스리랑카

17.2.4. 터키

17.2.5. 벨기에

17.2.6. 프랑스

17.2.7. 영국

17.2.8. 미국

17.2.9. 가이아나

17.2.10. 소말리아

18. 창작물

창작물의 경우에도 원인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에서는 실제에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원인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뼈대는 실제와 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혹은 다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살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거나 죽기 직전 새로운 능력이 생겨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자살한 사람들은 이계가 소재로 쓰인 창작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중에서도 이계가 현실보다 멋진 유토피아로 나오는 창작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계가 디스토피아나 현실과 비슷한 곳으로 등장하는 창작물이 있는 것처럼 이계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쳐도 현실보다 유토피아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애당초 이 상황이 이계가 현실보다 천국, 이계가 현실보다 지옥, 이계나 현실이나 도긴개긴, 이계는 없고 죽으면 그냥 무(無)라는 4가지 경우 중에 하나를 원하는 거라 반의 반밖에 안되는 확률에 목숨을 거는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다. 현실이 지옥이나 마찬가지라 이계가 현실보다 천국이거나 이계는 없고 죽으면 그냥 무(無)를 원하는 경우에는 반은 되겠지만...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에 대한 위험성은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문서의 결론부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자살을 매체에서 자주 사용하기 곤란하여 자주 나오지는 못하지만,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2차 창작물이나 동인 쪽에서는 자살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아예 전부 자살해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칫 잘못하다간 원작 파괴가 된다.

18.1. 소설

18.2. 만화•애니메이션

  • 강철의 라인배럴[65]에선 미래의 인류는 더 이상의 상상의 여지가 없어진 탓에 자살함으로써 인류가 멸망했다고 언급된다.
  • 퓨처라마에는 사람이 자살할 권리가 인정되어 아주 쉽게 자살할 수 있는 자살부스가 나온다.
  • 총몽에 등장하는 천공도시 자렘에서는 '인간이 자살할 권리'가 인정되어 공공 화장실마냥 깔끔하게 해체해서 죽여주는 자살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퓨처라마에도 자살 부스가 등장하는데 공중전화 부스랑 똑같이 생겼으며 사용료는 단돈 5센트.[66]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도 영국 정부가 고통없이 자살할 수 있는 약을 나눠준다.

18.3. 게임

  • 문명 5에서 카르타고의 종족특성으로 자살기능이 지원된다. 카르타고의 종족특성으로 산 타일에 유닛을 배치한채로 턴을 마치면 다음턴에서 그 유닛의 체력 50%가 줄어드는데, AI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유닛을 컨트롤하므로 AI제어하에 있는 유닛이 산에 올라가 자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4부작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확장팩 쉬버링 아일즈의 무대가 되는 '쉬버링 아일즈'에서 자살은 불법에 속한다. 자살한 이들은 죽어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섬 중앙의 '자살자의 전당'에서 영혼의 상태로 무한정 떠돌아다녀야 한다. 다만 광기의 섬 답게 그 기준은 다소 유연한 편인데, 일례로 자살기도자가 자살 의지는 있을지언정 그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시간, 수단등을 통해 죽게 되면 자살로 취급하지 않는다. 뉴 쉐오스크루시블 구역에서 만날 수 있는 자살기도자가 이런 케이스인데 죽고 싶지만 자살이 불법이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이 퀘스트는 실패할수가 없는게 그 대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죽이든 나중에 죽이든, 독을 써서 죽이든 칼침을 놓든 어떤 수단을 쓰던간에 해당 자살희망자는 자기가 그 시각에 그 수단으로 죽을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타살로 취급되기 때문. 반면 자살할 의도는 분명히 없었으나, 사실상 자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의 죽음을 유발한 다윈상스러운 경우는 자살자와 진배없이 취급하는데 비탄이 바로 이렇게 망한 케이스이다. 비탄의 거주민들은 자살 희망자가 아니였지만 쉐오고라스를 광적으로 숭배하는 광신자들의 영역인 디멘시아의 영역에서 쉐오고라스를 폄하하는 가치관을 외쳐댔고 당연히 광신자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어 침공을 당하는데, 이 와중에 성을 수호해야 할 이들은 무기를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은 대장장이, 매지카 회복도 안되면서 마법사가 된 마법사, 아끼는 인형에게 정신이 팔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탈하는 병사, 광신자들이 침공해오는 빌미를 제공해놓고 안싸우고 토낀 영주 등의 죗값 때문에 비탄 전체가 자살자의 전당처럼 영혼들이 성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였다.

18.3.1. 게임에서 비유적 의미

비유적으로 게임(주로 액션게임)에서 보스전에서 보스를 상대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서 보스전 바로 앞의 체크포인트에서 풀에너지로 시작하고 싶을 때 일부러 죽는 행위나 혹은 게임 진행중에 길이 막히는 바람에 일부러 트랩 등에 맞아 죽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1목숨밖에 없는 게임에서는 이 행동을 하면 게임 오버가 된다.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일명 '빠른 전멸' 로 불리며 보스 한 번 잡는데 수십 번 자살하기도 한다(...). 1의 의미가 너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이어서 고의미스 항목으로 따로 분류되었다.

GTA 시리즈 경우 본격적으로 3D화 된 이후부터 자살도 하나의 컨텐츠가 되었다.(...) 재미삼아 자살하는 것. 비행기 운항이나 높은 고층 빌딩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 내릴 경우 참으로 괴악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땅으로 떨어지거나 우두둑 하며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폭발물에 날아가는 모습 역시 괴랄한 경우가 많다. 또 GTA 4의 경우 차량으로 과속도중 어딘가 부딪히면 차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데, 이때 얼마나 멀리 튕겨져 나가는지 내기하는(...) 경우도 있다. 5편의 온라인 모드에서는 자살이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기능으로 존재한다.

자살은 대부분 무언가 잃는 시스템이 많기에 시도를 하지 않지만 자살 패널티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 자살을 통해 얻는 이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령 스폰 장소가 너무 멀리 떨어진 세이프 존인 경우 차라리 약간의 패널티를 받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게임오버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스코어를 내는 경우라면 일부러 자살하기도 하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에서는 너무 많이 자살하먼 추방된다(...)

팀 포트리스 2에서는 로켓 발사기나 유탄/점착 폭탄 발사기 등으로 자살하는것 외에 만일 투신자살을 시도할경우 볼품없이 고통스럽게 사망이, 콘솔에 커맨드인 'kill' 또는 'explode'를 입력해서 자살할경우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이 전광판에 표시된다. 기차에 뛰어들거나 톱날 따위의 위험한 구조물에 접촉하는 경우에는 그냥 기차나 톱날 등이 해당 플레이어를 사살한것으로 표시된다.

위와는 별개로 팀 포트리스 2의 하이랜더 경기에서 방어팀의 팀원들이 경기 준비시간동안 같은팀 엔지니어를 위해 주변에서 한번씩 자살하여 엔지가 준비시간동안 건물을 지을때 사용할 금속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역시 비유적으로 아무리 게임에서 자살을 표현한다 하여도 현실에서의 자살이란 의미와는 상당히 상반되어 있다.

18.4. 음악

의외로 자살을 주제로 한 음악이 꽤 많다.

19. 바깥고리

20. 같이보기



[1]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자살하는 비율은 일반 청소년들에 비해 3배나 높고, 10대 청소년 자살자 중 거의 30% 정도가 성적 지향의 문제로 인한 고민과 관계가 깊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자살 문제를 연구한 보고서도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면에 성 소수자들이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졸업하면서 교사에게 커밍아웃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원인 중 30%(약 1/3)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니, 성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손가락질하거나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2] 성별 정체성에 의한 자살과 성 지향성에 의한 자살은, 두 개념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만큼 엄연히 다르다.[3] 사진만 찍고 일절 손대지 않는다.[4] Quinnett,'돌이킬 수 없는 결정, 자살',이혜선 역,학지사,2006[5] 항목 내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카미카제도 강요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일본군의 막장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6] 뒤르켐은 이 항목을 각주에서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항목으로 어떤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분류에서 이 부분은 생략하기도 한다. 다만 뒤르켐은 근대의 인물이라 현대와는 시대상이 달라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7]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투신자살을 하는 것 등[8] 실제로 시신인수 거부로 인한 '행정상' 무연고 시신의 발생이 다수있다.[9] 물론 과거의 종교는 군주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일종의 원시적인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종교와 군주제의 관점은 사실상 동일하다.[10] 파시즘의 경우 합벅적으로 권력을 얻은 경우와 비 합벅적으로 권력을 얻은 경우에 따라 나뉘지만 대체로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 또는 최고권력자의 것이라고 볼수있다.(나치 또한 모든 만행들은 당시 독일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권력 쟁취 수단 또한 합법적인 투표로 쟁취된 것이다.)[11] 공화주의국가주의 포함[12] 다만 테세우스의 배 딜레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원본 자체가 초인류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원본은 죽고 원본을 바탕으로 초인류로 거듭난 복제가 탄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13] 신라경애왕견훤 때문에 자결했다 그러지, 자살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보통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자살하면 자결이라고 쳐 주는 편.[14] 스토아 학파는 인간의 이성에 충실하고 인간다움을 중시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자살이나 명예에 의한 자살을 권장했으며, 심지어 매우 가난하거나 불치병에 걸렸을 경우에도 자살을 권장했다.[15] hemlock. 일명 독당근으로 불리는 미나릿과 식물. 소크라테스가 독살 당했을 때 들었던 독약이 바로 햄록이다.[16] 플라톤,'플라톤의 대화편',최명관 역,창,2008[17] 예를 살인, 강간, 식인을 한 경우.[18] 사람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한 사람의 인생을 한낱 글자 뒤집기에 비유하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생이 그 정도로 쉽게 풀리면 누가 자살을 하겠는가.[19] 안락사 찬반 논쟁이 치열한 이유도 고통 없는 죽음이 가능해지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완화되면서 생명경시풍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20] 자살을 목적으로 그라목손을 삼킨 사람들이 백이면 백 제발 살려달라고 발악을 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농약이다.[21] 다만 이것에 대해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저해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그런 것은 권리가 아니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22] 뉴스 참고. 물론 카미카제를 미화하는 건 개소리다.[23] 할복 문서에서 보이는 카이샤쿠(介錯)에게 할복하는 주인공이 귀찮은 일을 떠맡기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개인적인 이유로 인한 자살이 민폐를 끼치는 행위라는 일본인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무라이 이상의 계급들의 이야기고 평민 계급에서는 자살하여 죽은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거나 바다나 자연 등에 투척(...)해버린다는 묘사도 흔하게 볼 수 있다.[24] 옛날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컸기에 종교에서 대놓고 자살을 권장하면 집단자살로 해당 문명권이 망했을 수도 있으므로.[25] 존엄사나 안락사조차 허용하지 않아 일부 말기암환자나 불치병 환자들이 스위스나 핀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등으로 가는 사례도 있다.[26] 폭력의 층은 남에게 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신과 자연 순리에게 해를 끼친 자로 나뉘어 있다.[27] 브로큰 애로우 요청 등.[28] 그런데 이런 경우는 세속적인 관점에서도 '자살'이 아닌 '남을 위한 고귀한 희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파이의 경우는 따로 '자결'이라 부른다.[29] 검찰, 경찰 계통에서는 자살도 일종의 사고사 취급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교통사고 등과 같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다.[30] 필리핀 같이 가톨릭 문화권이 짙은 곳인 경우, 자살자의 무덤 앞에 검은색 십자가를 세우기도 한다. 공동묘지에 간간히 검은색 십자가가 세워저 있는 경우도 바로 이러한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31]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나, 학교폭력, 빚 독촉 등의 어려움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세상은 허무하다. 그냥 죽고 싶다'는 식의 허무주의나 죄값을 치루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죽는 경우.[32] 사실 자살할 권리가 있냐는 건 논쟁이 많긴 한데 어쨌든 그 사람 입장에서 자살이 타당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에겐 권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으므로.[33] 운명 운운하면 미신이나 개똥철학 취급하고 자유의지를 논해야 과학적이라고 여기는 한국 사회의 통념과 다르게, 과학자철학자보다 오히려 결정론자 비중이 높고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비중이 더 높다. 의식의 결정성도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다. 범죄자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도 일반인과 차이가 난다. 자세한 내용은 리벳 실험 참고.[34] 수면장애 자체가 자살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나, 다른 요인과 겹쳐 자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될 수는 있다. 수면제 장기 복용에 의한 부작용, 수면장애로 인한 일상 생활 문제 발생 등.[35] 우울증은 자살 및 안락사를 요구 빈도가 높은 질환이다. 반대로 너무 밝아보이는 사람도 어느 정도 주의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반항을 위해 긍정적 사고를 억지로 갖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36]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즐겁다는 듯이 웃다가 갑자기 우울함에 빠진다든지[37] 중대질환에 걸려 시한부 인생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 중에서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안락사의 합법화 주장이 강해지는 이유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 기다리기엔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너무나도 잔인하다.[38] 자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시점에서 이미 무시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종교철학적인 관점, 혹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자살에 대해 궁금해 할 일이 거의 없으므로 뜬금없이 이런 발언을 한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39] 단, 평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몰두하는 경우에 한정한다.[40] 목을 매다는 상상, 혹은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심리의 투영이라고 볼 수 있다.[41] 샤워를 한지 1시간 채 지나지 않아 또 샤워를 한다든가, 지나치게 오랜시간 동안 씻는다든가하는 행동[42] 이 경우와 아래의 경우는 그 짐 안에 동반자살의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생활을 침해받고 싶지 않아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괜찮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인데도 필요 이상으로 거절한다.[43] 고의적으로 실패하는 구성을 세우거나, 완벽하게 성공하려는 의도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44] 지금도 종교가 곧 국법인 종교 국가들은 존엄사나 안락사조차 허가하지 않는다.[45] 총기의 경우에는 머리에 대고 발포하는만큼 실패 사례가 거의 없지만, 투신하는 경우에는 생존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46]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고통 순위표에 적혀있으나 근거 없는 가짜자료이므로 참고바람.[47] 검색 사이트에서 특수청소로 검색해 보면 현장 사진이 뜨는데 심약자, 임산부는 절대 주의할 것. 그냥 되도록이면 검색하지 않는 것이 좋다.[48] 해당 사건은 부부싸움으로 인한 방화로 사망자가 발생한 집이지만, 자살자가 발생한 집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는 해석이 있다.[49] 10대와 30대의 공통점, 사망 원인 1위는 바로…, 프레시안, 서상철 교수, 2011. 6. 13.
한국 자살률 세계 1위… OECD 평균의 2.6배, 문화일보, 유민환 기자, 2012. 9. 10.
[50] 13년간 ‘OECD 자살률 1위’ 한국이 갑자기 2위로 내려온 이유, 중앙일보, 이에스더 기자, 2018. 7. 23.[51] 특히 10대, 30·40대 같은 젊은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52] 100세 시대의 비극…중·노년층의 극단적인 선택[53] 중도일보 2016-11-17 "충남 노인자살률 전국 1위 불명예"[54] 조선일보 2014-10-03 노령연금 도입 後 노인 자살률 3년째(2010~2013년) 줄어[55] 일반 철도역은 대부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56] 코레일에서는 자살미수를 목격한 기관사에게 2~3일간 근무조정 또는 휴가권고를 할 정도로 이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여긴다.[57] 기관사, 역무원, 철도 경찰 등[58] 그리하여 나온 게임이 바로 레밍즈다. 이 게임의 목표는 레밍들을 떠밀어서 죽이는 게 아니라 가급적 죽지 않게 끝까지 이끄는 것이다.[59] 소설 "아홉살 인생"에 나오는 골방철학자가 좋은 사례이리라. 혹은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갑니다. 그러니 제 손에 죽어주시죠"라고 말하는 악당이라거나.[60] 당연하겠지만 저 파일은 알약으로 위장한 악성 파일일 확률이 높다.[61] 몽테스키외(Daum 백과사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기후가 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는 일종의 환경 결정론자였다.[62] 파울 루트비히 란즈베르크[63] 이는 비단 자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죽음에 해당된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PTSD라든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든가.[64] 문단명을 보면 알겠지만, 원문 그대로 실었음을 밝힌다.[65] 원작 만화 한정.[66] 고통없이/고통스럽게 죽는 게 나눠져 있는데 고통없이 죽기는 그냥 레이저 한방이 온몸이 증발하며, 고통스럽게 죽기는 온몸이 난도질 당하다가 가슴이 찔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주인공인 프라이와 벤더는 후자를 선택해서 살았다.[67] 소재가 소재이지만 쓸데없이 음이 신명나서 초등학생들이 따라부르는 통에 유해매체물로 지정되어 19금이 걸렸다.[68] 흔히 말하는 박정현의 4대 광곡 중 하나. 박정현이 직접 작곡하고 영어로 가사를 붙인 곡인데, 사랑을 잃은(정확히는 배신당한) 여인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자살할만큼 비관적인 상황에서 웃는것(smile)이 제일 이상한 일이니 웃으라는 심히 오싹한 가사이다.[69] 이중 51분전은 발매된 지 12년 만에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다.[70] 2절 한정[71] 서울시에서 자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다리.[72]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이전에도 투신자살이 발생 했으며 주민들 사이에선 자살바위로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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