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2:11:42

위핍인치사

1. 개요2. 조문3. 해설

1. 개요

누군가를 자살하게 만들어 성립하는 범죄로, 대명률에 정의되어 명나라, 조선에서 적용되었다.

2. 조문

大明律》 卷19, 刑律 人命 第322條 威逼人致死
① 凡因事威逼人致死者 杖一百, 若官吏公使人等 非因公務 而威逼平民致死者 罪同, 並追埋葬銀一十兩.
(어떤 일로 인하여 타인을 위세로 핍박하여 죽게 하면 장 100대에 처한다. 관리나 공사인(公使人) 등이 공무가 아닌 일로 평민을 위세로 핍박하여 죽게 하면[1] 죄가 같으며 매장은[2] 10냥을 병과한다.)
② 若威逼期親尊長致死者 絞, 大功以下 遞減一等.
(만약 기친인 손윗사람을 위세로 핍박하여 죽게 하면 교형에 처한다. 대공 이하이면 차례대로 1등급씩 줄인다.)
③ 若因姦盜而威逼人致死者 斬.
(만약 간음이나[3] 도둑질로 인해[4] 사람을 위세로 핍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면 참형에 처한다.)[5]

3. 해설

현대 사회에서는 대개 죄로 취급되지 않는[6] 것이 전통 사회에서는 죽을 죄도 되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당률에서는 인명(人命) 사건과 관련하여 모살(謀殺), 고살(故殺), 투살(鬪殺), 희살(戲殺), 오살(誤殺), 과실치사(過失致死)까지만 있었으나, 명률에서는 다른 사람을 자살케 한 것도 살인죄에 준하여 다루었다.

대명률은 자살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서양에서처럼) 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원인제공자가 있는 간접적인 타살로 인식했다. 그래서 자살자가 발생하면 유족들은 시신을 원인제공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집 앞에 갖다놓는 방식으로 용의자를 지목했으며, 주변인들도 자살의 인과관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곤 했다.

조선 정조대의 판례집인 《심리록(審理錄)》에는 38건의 위핍인치사 사건이 실려 있다. 여성의 비율이 38건 중 31건으로 많았으며 간통, 강간 및 그와 관련된 추문으로 인해 자살한 경우가 많았고, 남성의 자살 이유는 채무, 무고 등이었다.

[1] 관리나 공사인 등이 사사로운 일로 인하여 관청의 위세에 기대어 평민을 능욕하고 핍박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을 이른다.(謂官吏及公使人等 因私己事務 倚峙官府威勢 將平民陵逼 以致自盡身死者) 《大明律講解 368쪽》 그러나 관리나 공사인 등이 공무로 인해 다른 사람을 위세로 핍박하여 죽게 하는 경우는 논죄하지 않는다.[2] 장례비에 보태는 목적.[3] 간음이 이루어졌는지는 묻지 않는다.(因姦威逼 不分已未成) 《大明律附例(下) 258쪽》[4] 재물을 얻었는지 여부는 묻지 않는다.(因盜威逼 不論已未得財) 《大明律附例(下) 258쪽》[5] 태종 대에는 간음/도둑질에 의한 위핍인치사에도 매장은을 병과하도록 했다.#[6] 현행 형법에서 피해자의 자살은 결과적 가중범으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