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0 18:25:36

장례식장

1. 개요2. 장소3. 역사4. 분위기5. 식사6. 장례식장에 방문한다면?

1. 개요

말 그대로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며 보통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병원 내에 있는 경우가 많다.[1][2] 특히 노인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는 거의 100% 부속 장례식장이 있다.[3] 결혼식장이 있는 경우가 별로 없는[4] 군 단위 지역에도 적어도 하나씩 꼭 있다. 시골은 노인층이 대부분이므로 장례식 수요가 많기 때문. 다만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이 점점 현실화되면서 늙어죽을 사람조차 없는 곳은 장례식장마저 폐업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특히 병원 장례식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 장의사가 임대 운영했으나, 이후 병원측이 직영해오고 있다.

2. 장소

병원 내의 장례식장은 상조회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 많다. 반면 시골에 있는 평범한 장례식장들은 서비스가 장례식장마다 조금씩 다르다.

자세한 서비스 내용은 장례 문서를 참고.

병원장례식장, 사설장례식장 크게 두개로 나뉜다. 병원장례식장의 경우 원내 사망시 감면되는 부분이 있으며, 사설장례식장의 경우 미리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협약으로 감면되는 경우가 있는데 상담으로 확인하는 것이 유리하다. 의료원<병원<개인사설 순서로 비싸고 시설이 좋다. 병원장례식장이지만 개인사업자가 임대하는 경우에는 개인사설 장례식장과 가격이 비슷하다.

3. 역사

옛날 한국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리에서 장례를 치뤘는데 길에서 죽거나 우물에서 죽었을 때도 장례를 그곳에서 지내고는 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사찰이 장례식장 역할을 맡다가 조선시대 들어서 유교가 성행하면서 가례의 보급으로 노인들이 운명이 가까워지면 안방에 모시고 운명하면 집에서 지내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오복 중 '고종명'에 따라 길에서 객사하면 집 밖에 천막을 치고 장례를 치뤘다. 양반집은 장례용품을 미리 구비하며 장지를 미리 정하고, 향촌에선 마을 사람들이 계를 만들어 장례를 치뤘다. 반면 도성 내에선 '귀후서'란 국영 장의사가 장례용품을 공급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면 집에 가 쉬도록 했는데, 반면 사고사한 사람의 시신은 병원 영안실 근처에 천막을 치고 장례를 치뤘다. 1973년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장례식장 및 장의사 허가제를 도입하며 병원 영안실을 불법으로 간주했으나, 오히려 병원 사망자 수가 늘고 도시개발에 따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위생과 공간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여전히 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1981년 가정의례법 시행령 개정으로 장례식장 도심 입지 제한이 풀려 병원 영안실이 합법화됐고, 1983년 한국장묘연구회가 경기 파주군 용미리 공원묘지에 국내 최초로 현대식 장례식장 '서울제1명복관'을 차렸다. 1993년 법률개정 후 신고제로 바뀌어 장례식장도 장의용품을 취급했고, 이듬해 시행령 개정으로 예식실, 화장실, 주차장 등 공간규제를 삭제해 병원 영안실을 장례식장으로 점차 전환시켰다. 1996년 보건복지부가 '장례식장 육성정책'을 실시하면서 전국적으로 현대화를 차차 진행해 1999년 가정의례법 폐지로 자유업이 됐다.

4. 분위기

일반적으로 우중충하고 곡소리가 가득할 것 같지만, 무조건 그렇지는 않다. 특히 장수하다가 노환으로 자연사한 경우는 호상이라고 하며 '갈 때 되신 분이 말년에 고생하지 않고 잘 떠나셔서 다행이다.' 같은 식의 인식이 있다. 보통 90세 이후 사망을 호상이라고 칭하는 편.[5] 바쁜 현대사회의 특성상 연락도 뜸하던 일가 친척들끼리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는 모양.[6] 다만 집안 식구끼리 유산 배분에 대한 문제라거나 고인이 살아계셨을 때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하면서 장례가 끝나면 두 번 다시 안 볼 것 처럼 싸우는 콩가루 집안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자녀의 사별이나 젊은 사람의 사고사, 급사, 혹은 자살인 경우에는 굉장히 심각하다 못해 암울해진다. 특히 미성년자 자살자나 사고자의 분향소 분위기는 가 본 사람만 안다. 너무 슬퍼서 장례할 힘도 없어 장례를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제법 있고, 장례는 치르지만 부모들은 자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친척이나 다른 사람들이 대리인이 되어 장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7][8] 최대한 빨리 치르고 탈상하려는 분위기도 있는데다, 망자가 어리고 젊은 경우가 많다 보니 문상객도 많지 않아, 이런 경우 삼일장을 치르지 않고 2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고사의 경우 유족들이 매우 슬퍼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랫동안 울기만 하다 드물게 탈수증으로 기절하시거나 탈진하여 응급실에 실려가 휴식하거나 조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 상담할 때는 혼란스럽지만 빈소 차리고 조문받고 있게 되면 진정되기 때문이다. 악상일 경우라도 조문가는 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문해도 괜찮다.

5. 식사

경조사의 양대 산맥인 예식장과 비교했을 때, 장례식장 식사는 악평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결혼식장 식사는 대부분 뷔페로 나오거나 스테이크나 갈비탕, 국수 등 특정 요리 하나가 나오거나 모두 결혼식 전후에 바로 먹는 것을 고려하여 만들지만 장례식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사람이 죽으면 부랴부랴 장례식장을 잡거나 상조회사를 통해 일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즉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매우 촉박하다. 그리고 행사의 지속 시간도 3일 정도로 반나절만에 끝나는 결혼식에 비해 훨씬 더 길다. 결혼식은 길어봤자 반나절이지만 조문은 24시간×2일[9][10]내내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므로 일단 음식들이 나와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 수육이나 편육, 육개장의 경우 막 새로 만든 것을 가져왔을 때는 여느 식당 못지않게 맛있지만, 몇 시간이고 지나면 자연스럽게 데운내가 나면서 맛이 없어진다. 거의 대부분의 장례식장이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괜히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들에게 음식 가지고 까탈피우지 말고 먹을 만한 반찬들로 먹고 가자.

참고로 유족들 입장에서는 조문만 하고 가 버리는 것보다는 밥(아니면 간단한 안주거리라도)을 먹으면서 얘기도 하다가 가는 쪽이 보다 좋게 보인다. 그러나 장례식장 대부분이 나가는 음식/음료의 양에 따라 비용이 추가되므로 배가 부르면 무리해서 식사를 하기보단 음료수나 물이라도 마시고 가는 것이 상주에게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식사보다는 음료수, 물이 더 싸다.

결혼식장의 경우는 사람 수대로 식대를 계산하기 때문에 봉투 한 장 내고 일가족이 우루루 몰려가서 식권 받아가는게 혼주 입장에서 별로 좋지는 않지만 장례식장에선 음식의 양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부부 혹은 장성한 자녀들까지[11] 함께 가도 큰 문제가 없다.

장례식장의 부조리와 영업행위가 상당했기 때문에 공정위에서 장례식장을 두들겨 팼고, 그 결과 음식물을 반입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장례식장에선 식중독 사고 및 해당 사고에 대한 사건처리와 보험을 이유로 들어 음식을 팔아왔고, 지금도 식중독, 보험 등을 언급하여 음식 판매를 유도하는데, 사실 상주가 하고 싶다면 외부 출장뷔페 업체 등을 부를 수도 있긴 있다. 어차피 식중독 사고 보험 같은 것은 출장뷔페에서도 들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사례도 있다. 유족들이 홍어를 잡아왔다고 해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가 식중독에 걸려서 문제가 된 경우가 있고 외부음식 중 떡을 아는 집에서 가져와서 이용 중에 돌이 씹혀 치아가 나갈 경우 장례식장에서 보상해 줘야 하기 때문에 계약서 작성 시 표기하고 있다.

다만 부모, 친지의 사망으로 경황이 없을 상주가 고인의 사망과 맞추어 출장뷔페를 부르는 것은 상당한 무리수에 가깝고, 조문객 수에 따라 음식을 계속 추가해야 하는데 출장뷔페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장례식장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폭리만 취하지 않는다면 장례식장 입장에선 돈 벌어서 좋고, 상주 입장에선 불편하고 힘들게 여기저기 알아볼 필요 없이 한 장소에서 한번에 해결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장례식장에 잘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장례식장에 가면 음식 낭비를 유도해 폭리를 취한다는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조문객이 한 명만 와도 온갖 반찬과 안주거리를 내놓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상주가 장례식장 도우미에게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부의금까지 준비해서 멀리서 시간을 쪼개어 조문을 온 문상객들에게 밥, 반찬을 적게 주는 것은 굉장히 염치없고 실례되는 행동으로 보이기 십상이고,[12] 그러면 결국 도우미들이 욕을 먹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문상객 스스로 '조금만 달라' 했을 때도 퍼주는 경우나, 너무 심하게 음식을 버려대는 등의 행위가 아니면 그냥 두는 것이 현명하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식사와 술안주가 같이 제공되고 떡과 과일, 과자가 들어간다.

6. 장례식장에 방문한다면?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께 여쭤보고 알려주시는 대로 하라. 부모님을 따라 조문을 가는 경우에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복장은 장례식장 분위기에 걸맞게 입고 가야 한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진심으로 모르겠는 위키러가 있다면 검색엔진에서 "연예인 조문" 정도로 검색해보면 된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보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4차원 캐릭터를 밀던 연예인도 조문 때는 그러지 않는다.
  • 검은색 + 흰색의 정장이 최선이나, 굳이 깜장 정장을 입고 갈 필요는 없다. 장례식장에선 회색 정장도 자주 보이며 다크 블루블랙 정도만 해도 결례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정장이 아닐 경우, 노출이 심하지 않고 단정하게 보일 수 있는 옷을 추천한다. 학생은 교복이 정장이므로 교복을 입고 조문을 가도 된다.[13]
  • 정장을 입게 되면 가급적 흰색에 무늬 없는 와이셔츠가 좋다. 역시 색이 튀는 넥타이도 금물.[14]
  •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직업일 경우 군복이나 제복을 입어도 된다.
  • 양말, 스타킹 등을 신어 맨발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15]
  • 치마를 입을 때는 미니스커트급 짧은 치마가 아닌 최소한 무릎 중간까지 오는 치마를 입도록 한다.[16]
  • 반바지는 절대로 금물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부의금 봉투를[17] 내고 방명록 또는 부의록[18]이 있다면 이름까지 쓴 다음, 조문을 한다. 보통은 향을 올리고[19] 좌식 빈소인 경우 고인에게 절을 두 번 하는데,[20] 종교적인 문제로 절을 하기가 힘들다면[21] 각 종교의 예법에 맞게 하면 된다. 통상, 고인이 생전에 따르던 종교 예법에 따른다. 이어 상주측과 맞절하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위의 식사 문단에도 있지만, 나가서 밥을 먹으면서 유족과 얘기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21세기 들어 고령화와 맞물린 입식 빈소의 도입에 따라 입식 빈소에서 조문한다면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절 대신 묵념을 한다. 다만 입식 빈소라도 절을 하기 위해 돋자리를 깔아놓은 경우라면 절을 올려야 한다.

조문은 유족들이 부고를 보낼 때부터 발인 전까지 계속 받으므로 그 사이 자신의 일정에 맞춰 가면 된다. 다만 삼일장을 기준으로 첫째날은 유족들이 조문받을 준비를 어느정도 마쳤을 즈음으로 시간을 감안해서 방문하는 것이 좋고, 둘째날은 대부분 점심시간 이후 낮에 입관이 이루어지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22] 그리고 셋째날 아침 일찍 혹은 오전에 발인을 하므로 둘째날 자정 전후까지는 조문을 다녀오는 것이 좋다. 셋째날 새벽은 발인 준비와 장례식 비용, 부의금 정산과 그간 쌓인 피로로 유족들이 정신이 없으므로 가급적 피하는 편이 좋다.[23] 정말로 셋째 날 말고 다른 날에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발인 이후 장지(혹은 화장터)에 가서 상주를 보거나, 차라리 참석하지 못함을 양해를 구한 뒤 다른 친구 등에게 부주를 맡기는 편이 낫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장례식에 방문할 때는 표정관리에 주의하고 웃거나 미소를 보이지 말자. 고인과 유족에게 크나큰 실례이다. 슬픈 표정이나, 무표정하고 담담한 자세로 가는 것이 좋다. 전화나 담소는 장례식장 밖에서 하고, 유족을 상대로는 최대한 말을 적게 하고 직계 친척이 아닌 이상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은 짧은 위로만 건네는게 에티켓이다.[24]

결혼식과 비교한다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결혼식에 비해 장례식은 조문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부고를 받고 불참했을 경우 결혼식에 비해 유족들의 서운함을 사기 쉽다.[25]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26]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고 유족이나 고인과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면 얼굴을 비추는 쪽이 좋다. 최소한 한국 사회생활에서 누를 끼치지 않고 싶다면 부의금 정도는 아는 사람 편에 보내자.

현재 임신 중이라면 되도록 장례식장에 조문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 편에 전달하거나 전화로 조의를 표하는 것이 좋다. 요즘 젊은 임산부들은 임산부가 장례식장에 가면 안 좋다는 미신을 잘 믿지 않지만 나이가 든 상주들은 미신을 깊이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산부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주들이 불편해 하는 데다가, 혹여나 우연의 일치든 뭐든 장례식장에 다녀온 이후 임산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상주 측에서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 삼재인 사람[27], 사주에 신기가 있는 사람, 일곱수나 아홉수인 사람, 상문살이 있는 사람은 조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이름과 소속만 쓰고 정작 부의금 봉투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빈 봉투만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칫 고인과 유족에게 큰 실례가 될 수 있으므로 부의금 내기 전에 꼭 확인해 보자. 실수든 고의든 부의금에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넣는 경우도 실례.[28]

그리고 사망한 사람의 직계가족이 아닌 한[29] 어린 자녀[30]나 갓난아기는 가급적 친척집에 맡겨두고 올 것을 권장한다.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것을 금기사항으로 본다.


[1] 이 특수성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시설임에도 납골당, 화장장 등과는 달리 님비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장례식장이 생긴다는 것은 곧 꽤 큰 규모의 종합병원이 생긴다는 것이며, 지역주민들에게 큰 이익이 되기 때문.[2] 일본인들이 이 사실 때문에 한국에서 문화충격을 받는데, 일본의 경우는 장례식장이 거의 병원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인들은 도심에 공동묘지가 있고 동네마다 장례식장이 있다는 것에 문화충격을 받는다.[3] 단, 요양원에서는 장례식장을 찾기 어렵다. 환자 사망 시 사망선고를 내릴 의사가 상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4] 실제 영업하는 것보다는 검색만 되는 경우가 더 많다.[5] 드물게 100세 이상까지 장수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몇 있는데 이런 경우 이게 과연 장례식인가 할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가 별로 없다. 유가족들도 아주 슬퍼하지는 않는 편이며 고인의 먼 친척들은 웃고 떠들며 화목한 모습을 보여준다.[6]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에도 친정에 가지 않는 친척들도 많지만 장례식이라하면 거의 대부분 조문을 하러 오니 심한 경우 상이 났다 하면 몇 십 년 동안 연락도 없던 친척들이 우르르 조문을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하다.[7] 이런 경우 형제자매 없이 외동일 경우 부모가 상주 노릇을 해야만 하는데 어느 부모가 자식 장례식 상주 노릇을 하려고 하겠는가?[8] 부모 없이 조부모와 외손자가 있는 가정에서 외손자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경우 조부모가 상주 노릇을 해야 하는데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된다.[9] 예외의 경우로, 오후나 저녁 늦게 사망할 경우 빈소를 차릴 준비를 마치면 이미 첫째 날이 거의 다 지나갔는지라 상주와 유가족들은 몸도 마음도 급해진다. 이런 경우 첫째 날에는 장례식장이 위치한 지역에 거주하는 친척이 아닌한 조문을 오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다가 둘째 날에 우르르 몰려온다(..)[10] 삼일장에서 셋째 날엔 발인이 이루어지므로 보통 첫째, 특히 둘째 날에 대부분의 조문객이 온다. 하지만 유교 및 불교식 전통 상장례에 따르면 입관 이후 조문을 받는 것이 절차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지간히 전통을 추구하는 집안이 아니면 빈소를 차리고 상복을 입기만 하면 조문을 받는다.[11] 분위기 파악도 힘든 어린 아이들이 가서 뛰어놀면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직계가족의 어린 자녀의 경우라면 예외다.[12] 문상객이 왔을 때 음식이 준비가 안(덜) 된 경우, 해당 문상객의 지인이 외부 식당에서 대접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장례식장 근처에 은근히 음식점이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13] 이런 탓에 민족사관고등학교태장고등학교교복이 한복인 학교에 다니게 되면 한복을 입고 가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 졸업한 사람이 졸업한 학교의 교복을 입는 경우도 있다. 교복의 경우 베이지 등의 밝은 색상 계열이라도 상관 없다. 다만, 학생들은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14] 보통 검은색 넥타이를 맨다. 허나 넥타이는 굳이 매지 않아도 상관 없다.[15] 양말은 가급적이면 검은색이나 어두운 계열을 신는 것이 좋은데 지나치게 밝은 원색 계열이나 캐릭터양말(..)의 경우 분위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스타킹도 가급적이면 투명 스타킹 보다는 검정 스타킹을 신는 것이 좋다.[16] 가급적이면 바지를 입는 편이 좋다.[17] 봉투는 보통 장례식장 입구에 주차권과 함께 마련해둔다. 다만 일부 장례식장에선 없을 수도 있으니 주의. 이럴 땐 인근 편의점을 찾아보자. 그리고 뒷쪽 왼쪽 하단에 성명과 소속된 집단을 꼭 써주자. 유족끼리 자기 때문에 부의금 얼마 들어왔네 하며 서로 싸우는 일은 흔하다.[18] 페이지 전체가 백지이거나, 이름 소속 부의금액 등을 기재하는 표가 있다거나 등등 각각의 차이가 있다.[19] 고인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안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특별한 관계라도 향이 3~4개 이상 타고 있는 상태라면 자제하자.[20] 자주 헷갈리는데,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1번, 죽은 사람한테는 2번 하는 게 도리이다. 원래대로라면 의학적으로는 사망했으나 입관 전까지는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보므로 입관 전에 조문할 경우에는 1번만 하는 것이 맞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21]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라도 마찬가지. 이런 상태일 경우 그냥 묵념으로 대체한다.[22] 낮에 조용하던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가족들이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대부분 이 때이다. 집안 사정에 따라 오전에 하는 경우도 있다. 입관식의 경우 직계가족들만 참석할 수 있다. 다만 미신을 깊게 믿는 경우 삼재 (2019년 삼재는 소, 뱀, 닭띠.)나 일곱수, 아홉수, 상문살 등이 있으면 참석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23] 상주가 피로가 쌓여 쪽잠을 자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24] 다만 자연사의 경우라면 식장 분위기 자체가 밝으며 늙어서 죽는 이치를 따른 것이니 조문 이후에는 표정관리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오히려 슬퍼하기보다는 조금만 더 있다 가시지 하며 아쉬워한다[25] 결혼식 불참을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조문 불참은 "얼마나 바쁘길래 시간 한 번을 못내냐"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결혼식은 길어야 반나절에서 한나절이면 끝나지만 장례식은 보통 3일 동안 하기 때문이다. 결혼 당사자는 워낙 시간에 쫓겨 나중에 결혼사진을 봐야 하객을 겨우 기억해낼 정도지만, 장례식은 보통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신의 문상객은 기억한다. 수능 출제위원, 관리요원, 검토위원이야 합숙 생활을 하다 보니 3시간만 조문하고 합숙소에 복귀해야 하고 면식이 없는 사람의 장례식에는 못 가지만.[26] 수능 출제위원, 국가대표로 선발돼 올림픽이나 각종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 중인 선수들, 환자 등.[27] 2019년 (기해년) 현재는 소띠, 뱀띠, 닭띠가 삼재이고 들삼재이며 2020년 (경자년)을 거쳐 2021년 (신축년)까지 간다. 이후 2022년 (임인년)부터 2024년 (갑진년)까지는 쥐띠, 용띠, 원숭이띠가, 2025년 (을사년)부터 2027년 (정미년)까지는 토끼띠, 양띠, 돼지띠가, 2028년 (무신년)부터 2030년 (경술년)까지는 범띠, 말띠, 개띠가 삼재.[28] UMC/UW의 가사에서도 "니 장례식에 만원내고 웃다 갈거야"라는 표현이 조롱의 표현으로 사용된다.[29] 다만 부모나 형제의 죽음이 자녀의 정서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를 숨기고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30] 보통 초등학교 저~중학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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