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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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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재기(成在基)
출생 1967년 9월 11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본관 창녕 성씨
사망 2013년 7월 26일 (향년 45세)
발인 2013년 8월 1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종교 유교
학력 대륜중학교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가족 박모 (배우자), 슬하 2녀
호(號) 심헌(審軒 또는 心軒), 청죽(靑竹)
필명 푸른 늑대, 똥발바쓰, 똥발, ssjjgg1985
혈액형 A형

1. 개요2. 초기 활동3. 활동
3.1. 군 가산점 유지, 부활 운동
3.1.1. 군필자 보상 방안 제시
3.2. 호주제 폐지 반대3.3. 조성민 친권 옹호 운동3.4. 국제결혼 지원 활동
3.4.1. 매매혼 주선 논란
3.5. 남자니까? 그게 뭔데?3.6. 여성 전용, 여성 특별공간 반대 운동
3.6.1. 제천 여성도서관 개방 운동3.6.2. 대구 여성전용칸 폐지 운동3.6.3. 경기도 여성 전용칸, 여성 전용석 철폐
3.7. 더치페이3.8. 결혼제도의 모순점 지적3.9. 이혼은 개인 취향3.10. 성소수자 옹호3.11. 기타 활동3.12. 가정폭력 피해 남성 구제 활동3.13. 정치적, 사상적 관점과 성향
4. 사망5. 사망이후6. 평가7. 어록8. 출연방송9. 관련 영상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기업인[1], 전 남성연대 상임대표. 호는 심헌(審軒 또는 心軒), 청죽(靑竹), 자는 임성(臨聖). 그 밖에도 PC통신 활동기 필명과 초기 인터넷 필명은 ssjjgg1985였고, 나중에는 똥발바쓰, 똥발, 푸른늑대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2006년 11월 26일 남성연대라는 대한민국 유명한 남성인권운동 단체를 설립하였고[2], 방송에서 남성인권 운동가라는 타이틀로 토론 및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남성인권을 이슈화하였다.

대구 대륜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1985년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87년 입대하여 11사단에서 병사로 복무하고 1990년에 전역했다.[3] 1992년 영남대학교 졸업 후 보험 회사 외판원으로 활동하다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참조)와 토마스 맥플라이 공인중개사 사무실 등을 운영했다. 1999년부터 남성 인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2006년 사업을 접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2012년 11월에 로복과의 군가산점 부활,남성 역차별 관련하여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며 토크쇼를 진행하였다.

2006년부터는 사재를 털어 남성 인권 운동 단체인 남성연대를 운영하였다. 초창기에는 여성부 폐지 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가 뒤에 2008년 1월 13일부로 남성연대로 이름을 바꾼다.

성재기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성폭행 무고 피해자, 허위 성폭행 신고 피해자, 여성에게 구타당한 남성 폭행 피해자, 이혼 소송 피해자들의 소송 비용과 변호 비용을 지원하였다. 다만 이 과정 중에서 변변한 수입도 없이 운영되던 남성연대가 임금체불 등의 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

남성 역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 여성 이기주의를 비판하지 않는 여성운동 내부의 부조리함, 남성에 대한 기존 가부장제 역할 강요와 압박, 가정폭력 피해 남성 외면 문제, 사회의 남성성 몰이해 등에 대한 비판 등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였다.#

남성인권과 관련된 사회문제에 대해 파격적인 문제제기와 제안으로 남성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반대로 성재기의 행보는 남성인권 운동에 대한 순수성까지 의심받을 정도로 비판받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남성들이나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배척한다는 정치적인 발언들, 성범죄자 옹호와 여성의 노출 여부를 성폭력의 가능성과 연관시킨 점, 특정 지역 차별성 발언, 일베 옹호 논란, 특유의 과격한 발언들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남성 권익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행보보다 더치페이 발언이나, 생리휴가는 남성을 차별한다는 망언 등으로 그저 대중들에게 희화화된 점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지속적이지 못하고 저조한 남성들의 관심과 지원 등으로 남성운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몇몇 극단적인 정치 발언과 문제가 되는 망언 등 지나치고 과격한 망언들로 많은 비판을 받으며 점차 지지세를 잃어갔다. 결국 여성은 물론이고, 보수와 진보 진영 양측에서 큰 비판과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남성연대 운영에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타개하고자 2013년 7월 26일 한강에 몸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실행하다 사망했다. 자세한 것은 남성연대 대표 한강 투신사건 참조. 7월 27일과 28일은 비가 내려서 강물이 흐려서 수색 3일만에 시신을 찾았다. 시신은 그가 뛰어내린 곳 남쪽 15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정치적 올바름과 유교 사상을 극도로 혐오하였는데, 이런 개인적 성격, 취향도 적을 많이 만드는 원인이 됐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반박하여, 된장녀의 정의를 전형적인 유교 가치관에 입각하여 전업주부면서 남자 아침밥을 안 차려주는 게 된장녀라 했다. 자세한 것은 성재기/평가 참조.

요약하자면, 개략적인 남성인권 주장의 틀(성에 대해 보수적이어서 서로의 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성문화가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은 옳았으나 일부 검증되지 않은 자기폐쇄적, 극단적 논리를 수정하지 못한 끝에 결국 관심을 완전히 잃고 파멸에 이르게 된, 최근 한국에 거의 유일했던 남성인권운동가이다.

2. 초기 활동

대구시 동구 효목동 출신으로, 출신 초등학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삼촌 중 한 명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2000년대쯤 정년퇴직하였다 한다. 1982년 2월 대구광역시 대륜중학교와 1985년 2월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그해 3월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의 11사단 GP에서 병사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였다.[4] 1993년 2월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때 만난 모 대학 의과대학 출신 내과의사 박모와 결혼했다. 부인 박모는 내과전문의였으며, 한때 서울시내 모 대학교 의과대학과 또 다른 대학교 의과대학의 내과 강사와 교수로 활동하였다.

영남대 졸업 후 그는 생산직,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도 활동했고, 2000년대 초반 동구 효목동 효목사거리 근처에서 양대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 2000년부터는 직업소개, 투자상담, 부동산 거래 회사인 토마스 맥플라이 헤드헌팅 & 컨설팅을 창립하여 2006년까지 운영하다가 2006년 11월 28일 매각하였다. 해당 사무실은 얼마 뒤 문을 닫았다.

1999년 10월 군가산점 폐지에 반발하여, 군 가산점을 찬성하는 입장에 서서 여성운동가들과 논쟁, 언쟁을 벌였다. 그 길로 남성 인권 운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정채기, 한지환, 이경수, 김재경 등과 함께 군 가산점 찬성 입장론에 섰다. 2004년부터 2005년 3월까지는 호주제 폐지 문제를 놓고 호주제 찬성 입장에 섰다. 정채기, 한지환 등은 호주제도 폐지에 찬성하였고, 성재기는 '형식뿐이고 허울 뿐인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지위조차 없애려 한다' 며 호주제 폐지에 격렬하게 반대하여 이들과 이견이 갈리게 되었다.

그는 대구 시내의 각종 친목 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2006년 11월 재산을 전부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와 11월 26일 남성연대의 전신인 여성부 폐지 운동 본부를 창설하고, 2008년 1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정식 사무실을 마련하고 남성연대로 이름을 바꿨다. 남성연대는 2011년부터 정식 시민단체로 승인을 받았다. 가두 캠페인과 방송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나 2012년까지만 해도 그가 출연한 방송은 대부분 방송 편집되거나 출연 거부 등을 당하기도 했다.

2012년쯤 사무실을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옮겼다.

3. 활동

그는 사회가 남성에게만 책임감과 희생, 헌신 그리고 가족 부양을 강요한다는 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지적했다. 성재기는 남녀평등, 양성평등인데도 남자에게 가족 부양과 생계를 강요하면서 권리만 나눠 가지려 한다며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들보다도 이런 이기적인 여자들이 남자들을 힘들게 하고, 서럽게 한다며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1999년 이후에는 인터넷 활동이 대부분이었지만 2006년 무렵에는 오프라인에서도 집회 등을 활발하게 하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알렸고, 2008년 1월에 남성연대가 정식 시민단체로 승인된 이후에는 공중파와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냈고, 적극적으로 행보를 이어나갔다.

3.1. 군 가산점 유지, 부활 운동

1999년 군 가산점 폐지가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남성 인권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9년 10월부터 성재기는 한지환, 정채기 등과 군가산점 폐지 운동에 참여했다. 이화여대생 6명이 연세대생 남성 1명과 함께 군 가산점에 헌법소원을 내자 성재기는 한지환, 정채기, 이경수, 김재경[5] 등과 함께 군필자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고 군복무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예로 들어가며 군 가산점 폐지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는 군 가산점 폐지를 합헌 결정을 내린다.

군 가산점 폐지가 합헌결론이 난 뒤부터는 군 가산점 부활운동에 나섰다.

3.1.1. 군필자 보상 방안 제시

성재기는 이후 군 가산점 부활을 비롯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남자들의 경력단절을 보상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였다. 그가 주장한 보상방법은 군필자에게 대학 등록금, 학비를 감면, 면제해 주는 것, 장학금 지급, 군필자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남성들은 아무것도 못 받는 차별이라는 반박에 부딪혔다.

성재기는 군 가산점이 아니더라도 군필자들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는 또 병역을 수행한 자에게 제대 전날 수고비나 위로금을 주는 것은 어떠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 전에 우선 군인 사병들 월급부터를 그 해의 최저시급선 수준까지 맞추는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병역 위로금 지급, 군필자 장학금 지급, 군필자 학비 감면, 병사 생활환경 개선 요구, 병사 월급을 현실적인 수준-최소 그 년도의 최저시급 이상으로 줄 것을 요구했다. 병장하사의 월급이 20~30배 차이 나는 것도 부당하다며 10배 차이 정도로 병장-하사간 월급 격차를 최소한도로 줄이는 것도 제시하였다.

군 가산점에 대해 군 가산점은 공무원시험 응시자가 아닌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그는 군 가산점과 그 밖에도 병역에 대한 포괄적인 보상 방안과 국민적 동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군대 가지 않는 남성들이 불이익을 당한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남성들에게 불이익이 간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였다. 심지어 같은 남성들마저 성재기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30대 이상의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자신들은 혜택을 보지 못했는데 아랫세대들만 혜택을 보는 게 말이 안 된다며[6] 뒤에서 성재기에 대한 인신공격을 했다. 심지어 성재기가 군대를 약화시키려 한다는 인신공격성 댓글들과 남성연대 사무실 및 성재기 집으로 항의, 욕설 전화가 날아오기도 했다.

3.2. 호주제 폐지 반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논란이 된 호주제 폐지 논란 시 성재기는 정채기, 한지환 등과 의견이 갈리게 되었다.

군 가산점 부활론과, 병역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상(병역 위로금, 병사 생활환경 개선 요구) 에서는 정채기, 한지환과 입장이 같았으나 2004년~2005년 호주제 폐지를 놓고 정채기, 한지환 등과 갈라지게 되었다. 정채기, 한지환은 호주제가 가부장제의 상징으로 본 반면, 성재기는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의미 마저 없애려 든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정채기, 한지환 등은 호주제 폐지의 취지에 다소 동의하는 입장이었고, 성재기는 가부장제는 이미 소멸했는데, 상징적인 의미마저 없애려 든다며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였다.

3.3. 조성민 친권 옹호 운동

최진실의 사망 후, 자녀들의 친권을 조성민[7]이 아닌 최진실의 가족들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최진실과 조성민이 이혼하는 과정에 있었던 폭력이나, 최진실에게 간통 등의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려다가 발각된 조성민의 이미지 실추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성재기는 조성민에게서 친권을 박탈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하며 조성민 친권을 옹호하는 대자보, 팜플릿을 들고 거리 홍보에 나섰다.

2008년 10월 29일에는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생기자, 성재기는 이 조성민 친권반대 카페에 찾아가 조성민의 친권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및 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였다. 성재기는 조성민이 아이들 친아버지인데 조성민의 아버지로서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된다고 따지다가 카페에서 강퇴당했다.

그해 11월 11일 오전 11시에는 연예인, 방송인, 국회의원, 시민단체 회원들 등이 참여한 한부모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이 열려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기자실에서 조성민의 친권 회복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8] 기자회견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재기는 단문의 성명서를 들고[9] 기자회의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출입구에서 강제 추방당했다. 성재기는 이들을 만나러 갔지만 경찰관과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성재기는 당일 오전 9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화문 프레스센터 건물 앞에서 조성민의 친권은 정당하다며 1인 시위를 하였다.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이 열린다 하자 성재기는 18층 외신기자실에 들어가려 하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다. 곧 제지당하고 경비원들에 의해 건물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 해 11월 15일에도 여의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근처 산업은행 정문에서 조성민 친권 반대 거리집회가 개최되자, 성재기는 혼자 여기 찾아가서 반대, 항의하려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11월 19일 조성민이 방송 언론에 친권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그는 여성단체, 시민단체들에게 조성민의 아버지로서의 친권을 존중하라고 주장했다. 이상과 같이 성재기는 조성민의 잘잘못을 떠나, 그가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점을 존중해줄 것을 홀로 외쳤지만 결국 무시당했다.

3.4. 국제결혼 지원 활동

2011년 1월 3일부터 2013년 1월 31일까지 성재기는 남성연대 내에 우즈벡, 카자흐, 베트남, 캄보디아 등 국적 여성과의 국제결혼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비용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떤 돈이나 주선 지원금 없이 자비로 국제결혼을 지원하였다. 주로 우즈벡, 카자흐,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여성들이었고, 가출 의도가 있는지 여부도 상세히 파악하였다.

그 중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성의 결혼은 일부 성사되었지만, 장애인 남성 중매결혼과 농촌총각 중매결혼은 호응하는 여성의 수가 적어서 사실상 실패했다. 그러나 몇 건의 국제결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국제결혼 업체들의 항의와 소송에 직면했다.

2013년 1월 31일 국제결혼 업체들의 거듭된 항의와 소송 끝에 그는 국제결혼 사업 및 장애인 남성 중매결혼 사업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3.4.1. 매매혼 주선 논란

국제결혼 지원활동에는 매매혼 주선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에 성재기는 "국제결혼만 매매혼이라 말하지만 남자가 데이트 비용 모두 낸다. 남자가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만 결혼한다. 남자가 집 사오고 전세도 마련하고 차도 산다. 그럼 이건 매매혼 아니냐? 남자들이 데이트비 집세 집값 차값 다 쓰는데 이건 돈쓰는게 아니냐. 국제결혼만 매매혼이냐 성재기의 국제결혼을 매매혼으로 디스하려다가 되려 결혼비용, 데이트비용 남자가 다 내는 것, 여자는 직업 없어도 결혼하지만 남자가 직업 없으면 결혼할 수 있느냐." 고 반박했다.

거기서 나아가 "여자는 직업이 없으면 신부수업을 말하면서, 남자가 직업 없으면 바보취급 하는 것도 성차별 아니냐" 고 항변했다.

3.5. 남자니까? 그게 뭔데?

남자니까, 남자답게, 남자가 쫀쫀하게? 그런게 다 뭔데?
남자다움이 뭔가? 남자다움의 기준이 뭔가?
왜 남자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가? 그러다 병나서 죽으면 당신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남자는 치사하면 안되는 이유는 뭔데?

성재기는 '남자니까'라는 말은 남자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럽고 폭력적인 단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자' 라는 역할을 왜 멋대로 정하느냐며 남자, 여자, 지위, 직업 이전에 먼저 한 사람으로 개인으로 봐 달라고 설명했다.

성재기는 남자는 쪼잔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며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 남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남자가 아니라 인간이 왜 쪼잔하냐 라고 지적해야지, 남자는 쪼잔하면 안된다는 것이 남자들에 대한 성 역할 강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견해에 대해 2000년대 초 당시 중년층 이상은 찌질하다, 못난 자의 변명 정도로 여기며 비웃었다. 그가 어려서 날라리들이나 동네 건달들에게 맞고 다니지는 않았느냐며 인신공격적인 비난도 돌아왔다.

성재기는 남자다움이 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남자다움의 기준이 뭔지, 그 남자다움은 누가 정하고 기준이 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였던 당시, 그의 이런 주장은 안타깝게도 인터넷과 현실 모두에서 그저 '바보같은 주장, 궤변, 억지, 등신같은 소리' 등으로 매도당하고 인신공격과 조롱의 소재가 될 뿐이었다.

3.6. 여성 전용, 여성 특별공간 반대 운동

남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여성 특별공간, 여성 전용 공간 설치에 반대하였다.

성재기는 여성 전용 공간을 만들려면 그만큼 남성 전용 공간도 만들어 달라며, 남성 전용 공간을 만드는 조건부로 여성 전용 공간을 인정하겠다고 주장했다.

3.6.1. 제천 여성도서관 개방 운동

2012년 7월 7일~7월 8일과 7월 28일, 2013년 1월 7일에 제천여성도서관 항의 방문과 퍼포먼스를 했다.

2012년 5월 성재기는 남성연대 게시판에 제천 시민인 20대 남성 대학생의 제보와 또 다른 20대 제천 남성의 사진 촬영 제보를 받고 제천여성도서관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제천여성도서관 기증자가 가난한 학생들에게 독서 공간, 공부할 공간을 제공해 달라 했지 여성 전용 공간을 만들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도 근거로 제시했다.

2012년 7월 7일 남성연대 회원 한승오, 김동근, 김인석, 손승민 등을 동행하고 차량으로 제천 여성도서관을 방문했다.

이에 제천 지역 시민단체와 지역 유지들이 와서 외부인이 왜 끼어드느냐고 몸싸움을 했고, 성재기는 제보자들이 제보한 내용을 근거로 기증자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공부할 곳을 마련해 달라 했지, 여성에게만 제공하라 했느냐고 반박했다.

김인석, 김동근, 한승오 등 남성연대 회원 10여명을 데리고 항의 방문을 했고 확성기, 현수막 퍼포먼스 등을 하기도 했다. 1차 항의 방문은 도서관 진입이 제지당하자, 7월 8일까지 도서관 주변에서 펼쳤다.

7월 7일~7월 8일 1차 방문과 7월 28일 2차 방문 때에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사전 집회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이 있어서 폭력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

7월 28일에도 차량으로 제천여성도서관을 방문,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성재기는 제천여성도서관 폐지 내지는 남성 개방의 사유를 밝혔다.
1. 여성도서관부지 기증자가 여성을 위한 도서관을 쓰라고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10]
2.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 여성만 이용하게 하는 것은 다른 국민들에 대한 차별이다.
3. 제천여성도서관에 남성 출입 전면금지는 아이가 있는 아이 엄마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성재기는 만 5세 미만의 아들을 둔 엄마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도 제천여성도서관의 문제점이라고 언급했다.

성재기는 기증자의 유언에 여성만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라는 내용이 없었음을 지적하며 공론화시켰고,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보냈다.

2013년 1월 2일 그는, 그해 2월 1일부 제천여성도서관과 제천시청을 상대로 행정소송과 인권 침해 소송을 선언하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런데 1월 9일 제천여성도서관 측에서 1층에 남성의 출입을 허용하면서 재진입 기도와 행정소송 준비를 전격 철회했다.

3.6.2. 대구 여성전용칸 폐지 운동

2013년 1월 14일 대구지하철공사의 대구 도시철도 여성전용칸 설치계획 제보를 접수한 뒤 공사에 3일간 항의 전화, 항의문을 보냈고 캠페인을 벌여 대구시내 지하철의 여성전용칸 설치를 시행되기 전에 전면 철회시켰다.

3.6.3. 경기도 여성 전용칸, 여성 전용석 철폐

2008년 5월 20일부터 경기도 제2청사경기도에서 강원,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 노선 4개에 대해 6월 1일부터 여성 전용 좌석제(핑크존)를 도입해 7개월간 시범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2008년 6월 1일 성재기는 제2청사에 전화해, 버스 여성 전용석을 8개씩이나 설치하느냐며 축소하라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3년 2월 1일 어느 네티즌이 다시 여성 전용 좌석제를 성재기에게 제보하였다. 일산에서 김포행 3300번 고속버스의 8석이 여성 전용인 것과, 경로석이나 장애인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월 13일 그는 버스회사 신성교통에 민원을 신청하였으나 경기도의 정책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성재기는 신성교통과 경기도 제2청에 계속 민원글을 남기거나 전화하여 여성 전용석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성교통 외 경기도 내 버스회사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기도 측으로부터 외압에 의해 여성 전용 좌석을 시범 운영 중이며 회사 임의로 정책을 그만둘 수 없다는 답을 듣자 그는 경기도청에 전화해서 버스회사에 외압을 행사했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경기도 측에 문의한 결과 그런 사례는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3월 14일 트위터에 "시내외 버스에 여성전용좌석이 납득이 가십니까?"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여성 전용 좌석을 남성연대가 전부 없앨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3월 15일부터 꾸준히 경기도청과 버스회사들을 상대로 성재기는 여성 전용 좌석 축소 또는 노인석, 장애인석 신설을 요구했다.

성재기는 트위터에 여성 전용석을 유지하고 싶다면 남성 전용석도 만들라고 촉구했다. 4월 8일 오후 "현재 경기도내 시외버스의 여성전용좌석을 폐지하기 위해 업체들과 협의 중"이라며 "경기지역 외에도, 시외버스에 여성전용좌석이 운용되는 곳을 아시면 제보 바란다"고 트윗했다.

결국 계속된 항의 끝에 경기도 내 시내 시외버스들은 노약자 전용석, 장애인 전용석도 설치하거나, 여성 전용석을 폐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3.7. 더치페이

그는 여성들이 더치페이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계속 반복해서 문제 제기했다. 성재기는 "배려는 그만큼 상대방의 입장, 처지를 생각해주는 마음씨"라면서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배려하는 것에 감동받을 남자들이 더 많지 그런거에 자존심 상해할 남자가 더 많을거 같냐"고 반박, 여친의 그런 작은 배려를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남자라면, 인간적으로 사귈 가치도 없는 찌질한 인간이라는 것이 그의 반론이었다.

3.8. 결혼제도의 모순점 지적

성재기는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에 대해서도 계속 태클을 걸었다. 성재기는 결혼은 거래일 뿐이라며, 결혼이 인륜지대사가 되려면 남자의 직업이나 경제적 능력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남자의 인간 됨됨이, 성실성, 사람 됨됨이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래에 불과한 현 결혼제도를 사랑 등으로 미화하는 것도 억지라고 보았다. 성재기는 남자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을 따지려면 그에 걸맞게 여자들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도 같이 따져야 된다. 여자는 몸만 있어도 시집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성차별이 아니냐는 것이다.

3.9. 이혼은 개인 취향

성재기는 이혼은 개인 취향이라며 존중하라고 지적했다.

이혼은 잘못이라는 정채기 교수의 주장과 이혼 후 자녀들이 받을 상처를 주장하는 정채기 교수의 기고문 발표 직후, 성재기는 이혼도 취향이다, 이혼도 떡 먹고 물 먹고 숨 쉬듯이 자유로워야 된다며 반박하는 반론을 제기했다.

성재기에 의하면 이미 1990년대 이후로 이혼이 급증하는 마당에 이혼을 개인 취향으로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이혼을 나쁘게 본다 해서 이혼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혼을 나쁘게만 보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 그는 결혼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결혼하고 이혼하듯, 이혼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어야 된다, 재혼도 쉬워야 된다고 지적했다.

3.10. 성소수자 옹호

성재기는 동성애도 개인 취향[11]이라며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조장은 안 되지만 성적 소수자들은 약자이므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하고 권리를 배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지인이 말하길, 그가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양대클럽을 운영할 때 여기에 게이들이 왔다고 한다. 당시 게이들을 보면서 느낀 동정심과 연민이 동성애자 차별을 반대하게 된 나름의 원인. 그런 신념 때문인지 그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뒤 쫓겨난 게이, FTM, MTF들을 안타깝게 여겨, 이들에게도 남성연대 숙소와 자신의 오피스텔을 개방하였다. 동성애자들을 내쫓자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그들도 남성이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박해받고 소외받는 약자들이라고 반박했고 회원들에겐 게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먼저 미워하거나 구박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만 상호 교차성이 아닌 지라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매정했다.

그가 게이트랜스젠더들을 동정하는 것을 두고 그가 게이 성향이거나 트랜스젠더 성향일 것이라는 악성 인신공격이 유행했다. 한때는 그가 아내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한다, 아내의 재산으로 단체를 설립했다는 등의 루머와 인신공격이 돌기도 했다.

3.11. 기타 활동

  • 성폭행 무고, 허위 누명 피해자들의 신고를 접수받고, 법률 상담과 변호사 선임 등을 지원, 주선하였다.
  • 남성의 상담전화를 개설하여 부인에게 매맞는 남편, 부당한 이혼 소송을 당한 남편을 상담,치료하였다.
  • 2010년 5월 8일부터 13년 어버이날까지 어버이날에 아빠, 아버지들의 고생도 알아 달라는 피켓 시위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매년 했다.
  • 싱글 대디 싱글 파파 가정에 방문하여 상담했다.
  • 로복(본명:정지복)과 토크쇼를 2012년 11월에 진행하다.

3.12. 가정폭력 피해 남성 구제 활동

그는 울산에서 올라온 매맞는 남편,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자녀들 때문에 차마 이혼 못한다는 남성을 만나 사연을 듣고 2011년부터는 강남구 삼성동 남성연대 숙소를 개방하여, 가정폭력 피해 남성, 아내의 외도 피해 남편들, 가정에서 쫓겨난 남편과 아들, 오갈데 없는 남성의 쉼터로 개방하였고, 역삼동과 송파구 석촌동, 2012년 5월부터는 영등포구 영등포동 등지에도 남성의 쉼터 숙소를 개설했다.

숙소 개설 과정에서 땅값이 떨어진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집단 항의 방문으로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그는가정폭력, 외도 등으로 집을 나온 남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라며 이들을 설득하고 강행했다.

그는 주로 가정폭력 피해 남성과 가출 남편, 가출 청소년 남성들의 심리치료와 상담, 각종 진료비용을 지원했고, 가정폭력 피해 남성들의 소송비와 변호사 선임도 도와주었다. 물론 성재기 자비로 벌인 것이다.

남성연대의 삼성동과 송파 석촌동 사무실에 남성의 쉼터를 운영, 가정폭력 피해 남편, 가출 남편, 청소년 남성들의 임시 숙소를 제공하였고 2012년에는 영등포 남성연대 숙소도 개방하였다.

2013년 4월 말부터 5월 15일까지 경영난으로 인해 잠시 문을 닫았던 남성연대 숙소는 5월 16일부터 재개방했다. 심지어는 남성의 쉼터 숙소에 일부 회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성 동성애자들도 받아들였다.

3.13. 정치적, 사상적 관점과 성향

그는 보수주의자유주의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성향을 보였고, 페미니즘 등을 급진주의, 급진 과격파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동시에 그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는 굉장히 싫어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그는 종종 비꼬거나, 올바름을 설파하는 청년층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밖에 성재기는 한국사회는 점차 이중잣대이기주의적인 인간들로 인해 개인주의냉소주의, 인간불신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 이외에도 일정 부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중진국 이상의 국가에서 개인주의와 삶의 질 추구 현상, 냉소주의, 개인화, 인간불신 현상 등이 보편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보았다. 동시에 각종 미신과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상들의 출현과 그에 휩쓸리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런 사이비 종교나 미신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허황된 것인데도, 뿌리 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휩쓸린다며 뿌리 없는 갈대이기에 그런 것에 많이 휩쓸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량의 독서,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영혼을 접하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하고 사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해야 됨을 역설했다. 그는 평소 보수적인 관점에서 기존의 전통과 질서는 나름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존중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부당하다 싶은 권위나 전통, 관습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인간이 욕심 많고 식욕, 성욕, 삶의 질, 돈 욕심 등 인간의 삶 자체가 욕망이고 욕심임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 자체가 욕심과 욕망 덩어리이고,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 자기 자신이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인 갈등과 문제점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문명의 이기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고차원으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문명의 발전이 무조건 이점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하였다. 그에 반해 그릇이나 능력이 되지 않는 인간들도 많아서, 문명이 편리해질 수록 어린아이 같은 사고방식, 사춘기 청소년 같은 정신 세계, 유아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들도 그에 반비례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소설가 이문열이윤기의 팬이기도 했다. 이문열과 이윤기의 작품을 주로 읽었고, 이문열의 팬 클럽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밖에 강용석 팬클럽, 전원책 팬클럽의 멤버이자 전원책 팬 클럽의 게시판 관리자로도 활동했다.

알려진 취미로는 등산, 낚시, 국내 여행, 사진 촬영 등이었다.

4.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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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5일 그는 인터넷 트위터 등에 한강투신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며 투신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자살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며 한국 남성들이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국민들이 알아주라는 뜻에서 투신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양성평등연대 홈페이지랑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일부 사람들은 성재기를 말렸지만 그는 운동을 했다는 점과 사전 답사, 사설 구조대원을 준비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은 살아 돌아올 것이라며 왜 죽는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신이 전투 수영도 배웠음을 언급하였다.

성재기의 한강 투신 예고는 비난을 받았다. 성재기는 7월 25일 "왜 투신하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차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달라" 고 트위터에 적었다. 성재기는 "내가 잘못되면 남성연대의 제2대 대표는 한승오 사무처장이 이어받을 것" 이라고 했다.

2013년 7월 26일 서울특별시 마포대교에서 투신하였다가 실종되었고 3일만인 7월 29일 오후 4시 10분 쯤에 서강대교 밤섬 인근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성재기가 마포대교 남단 140m 지점에서 뛰어내릴 때 KBS 기자가 취재하고 있었다.[12] 그는 투신 전 남자도 사람이다라고 외치고 뛰어내렸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사전에 달려오자 급하게 뛰어내렸다고 한다. 한때 자살설이 돌기도 했다. 2013년 퍼포먼스와 실종, 죽음을 놓고 일각에서는 자살설을 주장했지만 사고사인 걸로 밝혀졌다.

투신 직전인 7월 24일과 7월 25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왔고, 구조대, 소방관, 잠수부 등이 한강을 수색했지만, 흙탕물로 인해 그의 시신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를 찾는 과정에서 투신자살 혹은 익사한 시신 몇 구가 발견되기도 했고, 일부 실종자의 유가족은 성재기 덕에 찾았다며 감사와 추모를 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남성연대 대표 한강 투신사건 참조.

5. 사망이후

7월 29일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성 대표의 시신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접속이 폭주해 2~3시간 가량 다운됐다가 복구되었다.

2013년 7월 30일 성재기의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아래 간이 빈소에는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부산 대전 등 전국 각지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빈소를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성 대표의 죽음을 추모했다.

6. 평가

400만년전 인류는,발정기의 포유류와 구별되어 자유로운 성관계를 시작했다. 여자의 노출은 발기를 유도하며 곧 남근의 삽입을 허용하는 의미였다. 남자에게 특히 여자의 다리가 강렬한 이유는 두다리가 만나는 지점이 음부기때문이다. 무절제한 여자의 노출은 폭력이다.
자세한 건 성재기/평가 문서 확인.

위 항목에도 적혀 있듯, 자신과 다른 정치성향의 남성들/특정 지역에 대한 배척, 성폭력에 대한 뒤틀린 시각과 위험한 언행[13], 일베저장소에 대한 지지/옹호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물론 진보 성향 남성 중에서도 그의 지지자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일베저장소에 대한 옹호, 리버럴 성향의 남성들과 진보 성향의 남성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한 점, 지역 차별성 발언, 성폭행 가해자 옹호 및 피해자 비하 발언 등은 '남성 자체의 인권을 위해 운동했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또한 생리통을 '여자들의 엄살' 로 치부하여, 운동 열심히 하고 밥 잘 먹어서 건강해지면 없어지는 것이라고 일축시킨 바가 있다.

야하게 입고 다닌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망언을 일삼은 바 있다. # 강간 문서를 대충만 읽어도 이게 얼마나 부질없고 말도 안 되는 망언인지 알 것이다.
여자의 다리 노출이 '남근의 삽입을 허용하는 의미의 폭력' 이라는 사상이나 '같은 강간이라도 길바닥에서 노출한 채로 자는 여성에게 했으면 죄질이 낮아진다' 는 주장에선 성폭력에 대한 위험하고 뒤틀린 인식이 보여서 진보 세력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에게도 비판받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여성들은 물론이고 같은 남성들이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게서 무시와 비판을 받았다.

7. 어록

여자가 길에서 울면 안타까워 하면서도 남자가 울면 다들 찌질하다고 비웃거나 욕을 한다. 이게 문제다. 남자다움의 기준이 뭐고 남성성이 뭐며 남자들에게 한 가지 역할을 강요하는건 폭력이다. 남자도 건강 나쁘고 약한 남자 있다. 이게 왜 잘못된 거냐.
여자는 거리에서 울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거리에서 운다면 바로 못난 놈, 찌질이 등등 비난과 야유가 가해집니다. 이것이 무슨 남녀 평등이란 말입니까? 남자는 슬프면 안됩니까?
여성들의 과도한 노출은 성범죄와 직접연관이 없다면서 '야동, 애니'와 같은 표현물이 남성들의 성충동을 범죄화시킨다는 주장이 과연 납득이 됩니까? 아동,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말자는게 아니라 바바리맨을 잡아야지 바바리를 못 입게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신 인생이 파탄 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난 된장녀가 당신 삶을 파멸시킬 수 있는 확률은 거의 100%다.
남자도 마음껏 거리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는 날입니다.
제가 남성연대 대표로써 마지막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이거 억지로 끌고가는 사람들, 개정시키자는 사람들! 제가 마지막까지 그 책임을 물을 것 입니다.
방금 임신한 것처럼 태연하게 노약자석에 앉는 여자들, 그러지 마라.
한 트윗 : 꼬우면니도임신해
니가 발기하면 내가 임신을 하마
남자들도 마음껏 거리에서 울어도 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뛰고 또 뛰어야 합니다.
2011년 5월 8일 시청광장에서
나는, 진심으로 한국의 젊은남자들이 불쌍하다. 나라도 남자가 지켜, 가족부양도 남자가 해, 여자도 남자가 보호해. 대체 여잔 뭐하나? 맞벌이? 한국에서 돈못버는 남잔 사람취급 못받는다. 즉 여자의 맞벌이는 선택, 보조적이다. 출산? 세계 꼴찌다. 여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한 트윗 : 당신 어머니도 여자세요. 그렇게 말하면 당신 어머니까지 포함되는거 아닌가?이사람 디게 불효자네ㅋ당신 어머니가 뭐했는지 생각을 해보세요.그냥 놀고드셨나
우리 어머니가 니편이겠냐?
생리통도 장애등급 받을 기세구만.
한 트윗 : 장애등급받고그런소리하시죠
내 발기는 정상이다.
어이 무뇌아들아, 두 경우[14]가 죄질이 같으면 일반적인 정숙한 여성들에게 훨씬 막대한 피해인거야.이해안돼?이 또라이들아?여긴 전부 짧은다리,긴허리에 미니스커트 처입고 가슴풀어헤친 만취한 상태로 골목에 쓰러져 잘 가능성 많은 년들만 몰려있는거야?
참고로, 이 발언을 했다가 대검찰청 대변인 트위터로 반박당했다. #
한 트윗 : 이사람진짜멍청한거아님??? 헐ㅡㅡ 여자가 밖에서 옷벗든 춤을추든 뭔상관이야? 뭘하든간애 변태적인 남자들이 문제인건 내 동생도 알겠다ㅋㅋㅋ [15]
너는 상관없다[16]
니수준에 맞게 욕좀 할려다 니사진보고 참는다. (욕설이 담긴 한 트윗을 보고)
지금 대한민국을 개판으로 만드는 놈들은 누구입니까? 남자는 야동만 다운 받아도 평생 성범죄자로 만들고, 여자는 자기 나체,음란 셀카를 찍어서 유포해도 법대로 하면 형이 무거울까봐 차마 처벌을 못한답니다.#
성재기 ‏@sungjaegi · 2013년 7월 9일
남자가 넓은 가슴으로 여자를 안아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자도 넓은 가슴이 되어 남자를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남녀평등이고 양성평등인 것입니다. : 2011년 12월 24일 저녁, 서울특별시 시청광장에서

8. 출연방송


그 외 관련 방송 및 정보는 추가 바람.

9. 관련 영상



[1] 2000년부터 6년간 헤드헌팅 회사를 운영했다.[2] 최초는 아니다. 한국 최초의 남성인권운동단체는 1994년 故 정채기 전 대학교수가 설립했다가 후에 문 닫은 한국남성연구회이다.[3] 11사단은 후에 그의 후계자인 김동근이 2009년부터 2011년에 병사로 근무한 부대이기도 하다.[4] 일부 군대시절 GP에서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했다.[5] 가수 2명과는 동명이인인 남성이다.[6] 똥군기가 사라지기 힘든 이유, 군 인권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보상심리 때문이다.[7] 공교롭게도 성재기와 같은 해에 죽었다.[8] 당시 진실모임은 여성학자 오한숙희와 호주제폐지시민모임 대표 고은광순 등의 주도로 배우 손숙, 김부선, 권해효, 방송인 허수경,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작가 공선옥, 만화작가 장차현실 등 사회 각계 인사들이 대표로 참여하고 수백명의 동의 서명을 받고 발표하게 된다.[9] 남성연대 카페에 올렸던 글을 문구를 수정, 순화하여 몇장의 성명서로 작성해서 들고 갔다.[10] 제보자가 보낸 사진 자료 등을 첨부[11] 의도는 좋았겠으나 동성애는 지향이라고 하는 것이 바르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정확한 말의 문제다.[12] 그 기자는 안 말리고 뭐했냐고 비난을 받았다.[13] 자신과 온라인에서 논쟁을 벌이던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 등을 했다.[14] 이전 트윗에서 했던 "대낮에 침입한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우"와 "새벽에 만취한 채로 옷을 풀어헤친 상태로 골목에 쓰러져 자다가 성폭행 당한 경우"를 말한다. 다만 이에 관련해서 대검찰청 트위터는 "전자에 주거침입죄가 추가될 뿐이며, 청순한 여성이 더 보호받는다거나 자유분방한 여성이 덜 보호받는다거나 하진 않는다"라는 답변을 했다.[15] 물론 밖에서 함부로 옷을 벗거나 하는 행위는 범죄다.[16] 해당 트윗을 한 여성의 외모를 겨냥한 발언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외에도 이런 류의 인신공격성 발언을 자주하는 편이었다. 본인도 인신공격 피해자였는데 말이다. 이로 인해 비판도 많이 받았다.[17] 남성연대 대표 한강 투신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촬영한 마지막 방송으로 당시 CJ 측은 유족들과 협의 후에 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