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3 11:59:09

화장(장례)

1. 개요2. 과정3. 종교별 인식4. 국가별 인식5. 장점6. 단점7. 주의사항8. 기타9. 매체에서의 화장10. 관련 문서

1. 개요

2. "화장"이란 시신이나 유골에 태워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시신을 에 태우는 장례 방법. 영어로는 cremation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火葬이라고 한다.

2. 과정

화장 과정은 주검을 고열의 풀무에서 완전히 태우는 방법으로 행한다.

화장은 크게 화장장 혹은 승화원 안에 주요 설비가 화장로 내에 있는 일체형과 그 위에 분리되어 있는 분리형이 있다. 분리형 중에는 대차라는 내화성이 있는 운송 장비 위에 운구를 올리고 화장한 후 남은 뼈를 모으는 대차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위아래로 나오는 불로 태우고 밑으로 떨어진 를 긁어모으는 식이다. 효율은 대차식이 훨씬 안 좋지만,[1] 시신의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중국한국일본의 경우는 대차식을 사용한다.

대차식은 메인 버너와 보조 버너로 나누어지며, 연소실도 1차 연소실[2]과 2차 연소실로 나누어지는데, 1차 연소실은 메인 버너를 사용해 관과 시신을 소각하며, 셋팅 온도는 약 700~750℃ 정도로 되어있고, 2차 연소실은 1차 연소실 위에 있어서 보조 버너를 사용해 불완전 연소된 가스들을 다시 태워낸다. 대차 하부에서 들어오는 공기로 인해 연소제어가 어려워 잘 안 되기 때문. 참고로 주 버너는 보통 안쪽 상부 모서리에 장착되어 있으며 가스 화장로의 경우 40~50kg/h의 연료를 사용해 화장이 진행된다.

여담으로 관과 부장품, 시신의 살을 태울 때 들어가는 연료는 그리 많이 들지 않고, 남은 뼈를 가루로 만들고 보관할 수 있도록 바싹 태우는 데 드는 연료가 더 많다고 한다. 이것도 제어 시 프로그램이 있는데, 살이 거의 다 탄 이후부터 설정온도가 화장로마다 다르지만 900~1,000℃로 올라간다.

관내에 화장터가 없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유족이 타 지자체에 있는 화장터에 무려 100만원 가량을 지불하여 재정에 안습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3][4] 이는 외지인의 화장시설 이용을 억제하려는 측면이 크며 님비에 대한 일종의 패널티라는 해석도 있다.

시체를 태우면 하얀 가 남는데, 이걸 갈아 그 가루로 만들며, 보통 '봉안당'에 모시는 경우가 많고, 매장문화와 결합하여 봉안묘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에서 화장된 뼛가루를 강가에 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선 강의 오염 문제로 인해 불법이다. 다만 바다에 뿌리는 건 정부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뼈도 2차 가공을 해서 사리 비슷하게 만드는 보존기술이나, 고온·고압을 가해서 다이아몬드화(化)시키는 기술도 개발된 적이 있으며, 반려동물의 화장에는 이미 국내에서도 널리 사용 중이다.

최근에는 '수화장', '바이오 화장'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례법이 등장했는데, 2000년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시신을 불로 태우는 것은 아니고 물에 담가 알칼리 분해를 시키는 것이지만 뼈만 남긴다는 것은 맞기 때문인지 아예 표현 자체를 'water cremation', 'bio cremation' 이라고 명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시신을 강알칼리성 용해액에 넣고 고온으로 가열해 수시간에 걸쳐 뼈만 남기고 용해시키는 방식. 완료된 후에는 보통의 화장처럼 뼈를 분골하여 유족에게 인도하게 된다.

3. 종교별 인식

3.1. 불교·힌두교

원래 불교에서 유래한 장례법인 만큼, 불교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정화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장례문화로 들어와 고려시대까지 화장을 했다. 불교에서 화장은 다비식이라고 부른다.

불교에 영향을 준 힌두교도 화장을 한다. 민족과 문화가 매우 다양한 만큼 많은 장례식이 있지만 보통은 화장을 하며 갠지스 강에 유골을 뿌린다.

3.2. 유교

중국의 역대 왕조와[5]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에 들어 국가이데올로기가 유교로 바뀌면서 매장이 더 일반화되었다. 유교문화에서는 사람의 신체는 그 부모가 물려준 자산이니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불교식 장례법인 화장을 금지하고 단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1474년 성종시대의 실록에는 예조에서 "요즈음 우민들이 혹은 요승들에게 유혹을 당하고, 혹은 장사(葬事) 비용을 아껴서 어버이의 시체를 불로 태우며, 심한 자는 자신의 질병을 가지고 죽은 자의 빌미 때문이라 하여 심지어는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태워버리는 자까지 있으니, 풍속과 교화가 이렇게 퇴폐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엄격하게 금지시키게 하소서."라고 아뢰자 국왕이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3.3. 기독교

기독교에서도 신체를 매우 중시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기독교 종파들은(특히 서방 교회는) 육체와 영혼의 극단적 이원론을 배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반한 영혼관을 고백하며, 인간의 신체는 페르소나(인격)를 이루는 한 요소임을 믿는다. '신체발부수지부모'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신체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도 의외로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남아있다. 이는 사실 그리스도교가 발원한 이스라엘 지방은 매장이 대세인 데 반해서, 다신교를 믿는 그리스-로마는 화장이 대세였고,[6] 이렇기 때문에 화장은 "이교도의 장례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여기에 초기에는 영지주의 이단에서 '육체는 인간의 혼을 붙잡아두는 감옥이며, 죽음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이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였기에, 이단의 장례 풍습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터부시 하였다. 또한 유럽에서 영지주의 등 이단을 박멸한 뒤 중세에 들어서도, 과거 교육수준이 낮았던 일반 신자들이 '시체가 훼손되면 부활 못 하는거 아닌가?'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죽은 다음에 불에 탄다는 것이 지옥을 연상시키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느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믿음도 있다 보니, 마땅히 땅으로 돌아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인식도 있었다.

이러한 거부감 때문에 한때 가톨릭에서는 화장을 금하기도 했고, 몇몇 유럽인들은 부활 신앙에 대한 정면 도전의 한 수단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7] 결국 이러한 거부감이 그대로 이어져 중세 유럽에서는 잊힌 장례 풍습이 되었고 전염병이 돌아 어쩔 수 없이 시체를 소각하거나, 근세에 들어 종교재판 때 이단자를 화형하는 데나 쓰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결정적으로 박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장례 방식이 되었다.

3.3.1. 가톨릭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과 화장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즉, 부활 때에는 생전의 육신의 향방에 구애받지 않고 천주의 전능한 힘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육신을 가지고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여전히 매장을 권장하지만, 부활신앙을 부정하거나 훼손할 목적이 아니라는 조건하에 화장도 허용된다고 본다. 이에 교회법 제1176조 제3항은 "교회는 죽은 이들의 몸을 땅에 묻는 경건한 관습을 보존하기를 간곡히 권장한다. 그러나 화장을 금지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반대하는 이유들 때문에 선택하였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대에 들어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터부시하던 문화가 빠르게 옅어졌고, 한국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은 타 종교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현실적으로 매장에 따르는 어려움도 크고, 국가에 따라 법률상의 제약이 많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교회 묘지에 납골당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16년 8월 1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을 발표하여, 매장과 화장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첫째, 교회는 죽은 이의 육신을 매장할 것을 권유하되, 둘째,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는 이유들로 화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화장을 금하지는 않으나, 셋째, 유골은 거룩한 장소에 보존되어야 하며 거주지에 보관하거나, 뿌리거나, 기념물 등에 넣어 보관하는 방식은 금지된다는 것이다. 전문 보러가기

즉,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회·경제·위생상의 이유로 화장하는 경우라도 유골함을 성당이나 묘지가 아닌 자신의 집에 두거나[8][9], 강, 바다, 산 등에 뿌리는 산골(散骨) 행위[10], 고인의 유골을 가공하여 산 이를 위한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만드는 행위 등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한다. 유골에 대한 존중을 해치거나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범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인 위키러는 명심하도록 하자.

3.3.2. 정교회

정교회에서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신은 인간의 근본성의 일부이며 성령의 성전임을 확인하고,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매장을 통한 육신의 자연 부패 진행을 합당한 행위로 가르치는 반면 화장은 하느님이 창조하여 우리에게 부여한 것을 파괴하는 불경한 행위로 본다. 정교회에서는 화장을 결정하면 성당에서의 장례식은 물론 가정집이나 기타 장소에서의 장례식을 금하고 있다. 더욱이 가톨릭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추도식마저도 허용이 안 되며, 그 이유는 제사 때 사용되는 제밥에서의 “한 알의 밀”과 임의로 파괴된 “육신”의 관계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다른 기독교 교파에 속한 사람들의 화장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도 않으며 반대할 권한도 없다는 것이 정교회의 입장이다.

한국인 신자들은 이 때문에 매우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매장하기 실질적으로 어렵거나 무엇보다 가족 전체가 정교를 믿지 않는 경우 이런 게 더욱 심해질 수 있다.

3.3.3. 개신교

개신교의 경우 주로 화장을 시작 할 때 화장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고,근래 들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개신교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같이 교회 교도권에 따라 교리를 해석, 적용하는 체재가 아니다 보니까 여전히 화장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목사도 소수나마 없지 않다. 온수순복음교회 이복순 목사의 경우, “자신의 몸을 화장해 놓고 주님 앞에 가서 항의하고 원망해야 소용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4.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뿌리를 지닌 이슬람교에서도 최후의 심판은 인정하기 때문에 화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입장이지만 다소 엄격하다. 개별 신도가 화장하는 것을 막는 짓까지는 하지 않으나 쿠란에 의하면 (살아있든 죽어있든) 육신을 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알라만이 가진 권능이라고 하기에 화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매장을 채택하고 대안책으로 수장을 선호한다. 각각 힌두교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선호되는 인도, 네팔/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조차도 소수의 무슬림들은 매장을 고수한다.

4. 국가별 인식

4.1. 대한민국

과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1990년대만 해도 청소년, 청년 연령대의 사고사, 자살과 같은 악상(惡喪)의 경우에만 화장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현재는 좁은 국토에 비해 묘지로 쓸 수 있는 토지가 너무 많아 산 사람이 사용할 땅이 부족해지고, 묘지를 관리하기도 힘들다는 인식[11]이 퍼지면서 화장의 비율이 급속히 높아졌다.

파일:연도별화장율.jpg
한국에서는 2019년 10월 기준 전국화장률 88.8%를 차지하여 가장 보편적인 장례법이다.한국 장사 진흥원 원래 매장20세기까지만 해도 대세였지만 좁은 국토로 묘지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전통적 유교적 관념의 약화와 국가적 홍보로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사실 조선시대 이전 고려, 신라 중~하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대세였다.[12]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또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처럼 매장이 대세였고... 결국 매장(고대) → 화장(중세) → 매장(조선~대한민국 초기) → 화장(21세기)으로 돌고 돈 셈이다. 물론 중간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화장을 하는 경우도 생겨나긴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화장이 보편화된 건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도시 규모에 비례해서 화장을 실시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서울은 88.3%에 달하고 부산, 인천, 울산 등은 90%를 넘는다. 선산에 매장하더라도 그냥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 후 유골을 매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후달리는 관계로 화장마저 지방에서 치르고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안습을 겪기도 한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층에서는 대부분 화장을 많이 선호하는 추세다. 노년층은 특성상 매장을 선호하는 비율이 좀 된다.

남한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매장을 한 경우 분묘의 설치기간은 30년이고, 이후 1회에 한하여 설치기간을 30년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최장 60년이 경과하면 어차피 묘지를 철거하고 화장한 뒤 봉안 또는 납골을 하여야 한다.[13][14]

집안이 매우 풍족한 금수저 집안이거나 혹은 매장을 강력히 선호하는 집안이라도 본인이 매장을 싫어할 경우에는 대부분 화장을 한다. 대표적 사례는 후술.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경우 매장을 선호하는 집안이라도 대부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매장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IATA 규정에 의해 서양식 엠버밍을 해야 하고 목관이 아닌 철제, 구리 혹은 알루미늄 관을 사용해야 하는데다 시신 운송료도 미국 → 한국 기준으로 1천 만원이 넘기 때문에 대부분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유명인사라도 대부분 시신이 화장되어 유골이 운구되는 경우가 많다. 엠버밍되어 운구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서거한 17명의 고위인사 등과 하와이에서 별세한 정일권 전 국무총리와 미국에서 별세한 송요찬 전 내각수반은 이 예외에 해당된다.

아직까지 유교 사상이 남아있는 고령층이 매장을 주로 선호하기에 화장 문화의 완전한 정착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광명시는 자체적인 화장시설이 아직도 설치되지 않아서 서울이나 인천이나 수원으로 가야 되는데 권외지역으로 100만 원을 내야한다. 법적으로 화장시설이 시마다 있어야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가 하늘을 찌르기에 무산되었으며 현재 함백산메모리얼파크를 건립 중이기는 하나 완공되는 때 전까지는 큰 부담이 되며 건립시간은 계속 연장되고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5조에 의해 문제가 되지만 지원금을 안내하고 근처 화장장에 협의를 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들이 그렇지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가난한 집안에서나 불로 태우는 화장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1998년 SK회장 최종현 회장이 유언으로 화장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에서도 화장이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LG그룹 구본무 회장도 화장을 했는데 유골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화담숲에 안장됐다. 이후 구자경 명예회장도 화장된 뒤 범 LG가 선영에 유골이 안장되었다.[15] 또한 정계 거물이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16][17]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던 노회찬 전 의원[18], 정미홍대한애국당 사무총장, 자유한국당의 서용교 전 국회의원[19] 또한 화장으로 장례를 치뤘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던 채명신 전 육군 중장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의 곁에 묻히고 싶다며 국립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에 국립서울현충원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안장된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역임한 적이 있는 영화배우 최무룡도 화장으로 장례를 치뤘다. 또 안상영 전 부산광역시장도 화장 후 영락공원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WHO 사무총장인 이종욱도 화장 후에 국내로 운구되어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고 봉하마을에 안장되었다. 본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매장될 자격이 충분했으나, 고인의 유언을 따라 이리 된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문신들 중에도 죽은 뒤에 매장되었다가 후손들에 의해 파묘되고 화장된 사람들이 몇몇 있다. 김좌근, 김병기, 김병국, 김병학 등 안동김씨 실권자들과 고종의 종친들 몇몇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재계 뿐만 아니라 최진실, 신해철, 김주혁, 종현, 구하라, 권리세, 고은비 등 인기 유명 연예인들의 장례와 신성일, 김흥기, 박용식, 김영애, 김상순, 조경환 등 원로 연예인들의 장례도 화장으로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 비싼 돈을 들여 시신을 엠버밍한 후 국내로 운구한 걸로 보아 매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20] 그리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서거한 17명의 고위인사들 또한 엠버밍을 한 후에 국내로 운구되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하와이에서 별세한 정일권 전 국무총리도 엠버밍 된 뒤에 국내로 운구되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또 역시 미국에서 별세한 송요찬 전 내각수반도 엠버밍을 한 후에 국내로 운구되어서 청양군의 선영에 안장되었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매장으로 장례를 치뤘다.

4.2. 북한

북한에서는 아예 장례법 제5조에 "사람이 사망하면 화장한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아 지정된 장소에 묘를 쓸 수 있다."라고 화장을 법으로 정해 못박아 두었다.

하지만 화장에 필요한 연료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화장하는 비용이 매우 비싸서 일반 주민들은 화장은 엄두도 못 내며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매장을 할 수 있는 땅은 돈이 거의 없어 구할 수도 없다. 때문에 부모님이나 친척이 사망하면 시신을 그대로 야산이나 뒷산에 몰래 묻는 경우나 아무데서나 시신에 불붙여서 화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가난한 집안에서나 불로 태우는 화장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남한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당연하지만 이것도 감시 때문에 야반이나 새벽에 한다. 100%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 중 북한에서 부모님이 사망한 경우 부모님을 그대로 뒷산이나 야산에 묻어놓고 온 것이 매우 슬프고 죄송하다고 아직도 그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고 방송에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구글 어스로 북한의 마을들을 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을 뒤에 공동묘지가 수십 기씩 있는 게 보인다.

북한은 화장터가 유일한 곳이 1999년에 세워진 평앙시 낙랑구역에 위치한 오봉산봉사사업소인데 북한에서 화장장을 사용하려면 몇 가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인민보안성(경찰) 분주소(지구대)에 신고한다. 분주소는 시신을 기술 감정소[21]에 부검(剖檢)을 의뢰한다. 북한은 고위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50세 미만의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병으로 사망을 한 것이 아닌 이상은 예외 없이 부검을 한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살인으로 간주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부터 용의선상에 올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다.

설사 화장을 하더라도 유일한 정식 화장장인 오봉산봉사사업소가 아닌 그냥 아무데서나 시신에다가 직접 나무 장작을 이용해서 불붙여 화장을 시키거나 화염방사기를 동원해 화장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은 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처럼 보존처리되어 현재 전시중이다. 김일성이야 시신 그대로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김정일은 신격화를 위해 아버지 유언을 어기고 엠버밍한 것이고 김정일은 자기가 자청해서 엠버밍이 된 것이다.

4.3. 미국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장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22] 단 얘네는 사설 화장장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장의사에 화장로를 갖추고 있기도 하고, 시신 공시소에는 무연고 시신을 화장하기 위한 화장로를 갖추고 있어 빠르게 많은 기수를 처리한다.

미국의 고위층들(특히 대통령) 중에는 화장을 한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고 모두 국립묘지나 사립묘지에 매장을 하였다. 다만 닐 암스트롱은 본인의 뜻에 따라 예외적으로 화장을 하여 대서양 바다에 유해가 뿌려졌다.

4.4. 중국

과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국토에 비해 인구는 세계 1위 13억명 이상이며 묘지로 쓰이는 토지가 너무 많아 살 사람이 쓸 땅이 부족해지고 도시화로 인해 자손들이 관리하기도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화장의 비율이 급속히 높아졌다.

결국 1956년에 마오쩌둥이 장묘문화혁명을 주도하여 모든 인민들은 사망한 뒤 화장을 의무화할 것을 발표하였고 이를 헌법으로 제정했다. 처음에 중국 국민들은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화장을 굉장히 싫어했지만, 중국 국토의 1%가 무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거기다가 중국 고위지도자들의 솔선수범적인 모습에[23] 감동하여 결국 화장을 하는 인민들이 급증했다고.

중국의 역대 고위층들은 대체로 매장으로 장사를 지내왔다. 특히 진시황릉은 전 세계에서 1등으로 무덤 규모가 크고 화려하니 말 다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위층들도 화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으로 덩샤오핑은 1997년에 사망하여 장례 간소화를 위해 화장하여 남중국해에 자신의 유해를 뿌려달라고 유언하였고 실제로 그의 유해는 남중국해에 뿌려졌다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의 장례 절차를 따라서 화장 비율이 더욱 높아졌다고 카더라.[24]

일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전통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매장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인터넷 언론에서 "한족들의 전통은 전통이 아니냐"며 반발하기도 한다.#

광둥성 홍콩의 경우 대한민국 수도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수준의 인구밀도와 좁은 땅덩어리 때문에 법적으로 죽은 이를 6년 이상 매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매장한다 하더라도 6년 이후에는 파묘하여 다시 화장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매장에 드는 돈이 저렴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 한화로 약 1,500만 원 이상 드는 현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장을 선택.

여담으로 중국의 최고 비만 남성이 사망했는데, 300kg이라는 거대한 몸무게로 인해서 시신이 화장장 소각로에 못 들어가는 바람에 아예 화장이 불가능해지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매장을 특별 허가한 희귀한 사례가 있다.[25]

또 중국에서 관 대신 현대 쏘나타에 태워서 묻어달라는 자동차 애호가도 있었는데 이런 특이한 사례에 정부에서 특별 허가를 해 줬다고 한다.

4.5. 영국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장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때 대영제국 시절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때에는 대부분 국민들이 본토나 식민지에 매장을 하였다. 그러나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전부 독립하면서 영국의 영토가 줄어들었다. 영국은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꽤나 높은편에 속하고, 여기에 비좁은 영국 국토에 매장으로 장례하는 방식을 적용하는것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산 사람이 사용하는 땅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관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화장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여 점점 보편화되었다. 현재 많은 영국 국민은 화장을 하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비율이다.[26]

영국의 고위층 중에는 마가렛 대처 전 총리가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4.6. 러시아

정교회 문화 때문에 화장은 금기시되었고, 땅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화장의 이점도 없어서 원래부터 매장이 많았다. 단 소련 시절에는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화장도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 모스크바 한가운데 있는 크렘린 벽 묘지는 소련의 위인들을 안장한 곳인데, 시내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어서, 화장한 재를 안치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한 후 화장을 금지하는 정교회가 득세함에 따라 다시 매장이 대세가 되었다. 물론 칼미크인, 부랴트인, 투바인으로부터 전파된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선호하는 이들도 존재한다.[27]

러시아의 고위층 중에는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이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정확히는 사망 후에 레닌 옆에 방부처리되어 안치되었지만, 스탈린과 내내 다퉜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후임 서기장이 되면서 레닌이 방 빼라 그래 가지고[28] 강제로 화장시켰다. 골 때리게도, 스탈린의 정적 레프 트로츠키 역시 망명지인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암살당한 후, 화장되어 코요아칸의 본인 집 마당에 묻혔다.

4.7. 인도

전통적으로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지 브라만, 크샤트리아의 경우 문제없이 화장을 하지만, 바이샤, 수드라의 경우 화장의 비용조차 비싸서 쉽게 못하고 몰래 야산에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임산부나 어린이들이 사망한 경우 시신에 돌을 매달아 갠지스강에 흘려보낸다. 물론 카스트를 따지는 문화가 거의 사라진 도시에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구든 화장을 할 수 있다. 인도에서 화장은 상급 카스트나 엘리트의 상징인 셈이다. 물론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은 매장을 선호하며, 인도 북부 지역의 티베트계 소수민족들[29]이나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파르시조장을 하기도 한다.

인도의 고위층 중에는 마하트마 간디가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4.8. 일본

불교 전통에 따라 화장이 정착해 있는 일본에서는 99%의 확률로 화장한다고 하며, 세계 제일의 화장율을 보인다. 이것은 에도 시대에 법령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지정된 [30]에서 장례절차를 밟게 됨으로써 굳게 뿌리내렸으며, 일본 주택가에서는 화장 시설이나 묘지 팻말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교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보니 화장 자체를 다비(荼毘)로 부른다.

덕분에 일본에서 화장 시설은 혐오시설로 취급받지는 않지만,[31] 인식이 아주 좋은 것만은 아니라서 도시에 있는 화장 시설의 경우엔 의무적으로 증기까지 나오지 않게 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일반적인 먼지, 매연 정화 장치는 수증기까지 걸러내지는 않는데, 이 수증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조차도 유해한 공기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

일본 역대 황족들은 대체로 매장으로 장사를 지내왔다. 법적으로 황족 외에는 매장이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 일본에 그런 법은 없고 다만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로 일부 지역을 매장 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황족들도 화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 천황 아키히토는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 간소화를 위해 화장하기로 하였다고. # 2020년 현재 역대 천황 중에 화장을 한 사람은 1617년의 고요제이 덴노가 마지막이다.

도호쿠 대지진 당시에는 화장장까지 모두 파괴되고 희생자가 너무 많은 상황 탓에 시신을 가매장해야만 했다고 한다.[32]

5. 장점

일단 매장에 비해서 차지하는 무덤 비율이 극도로 작아진다. 확실히 매장에 비해서는 영토 절약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매장에 비해서 가격이 매우 싸다. 매장은 장례식 과정 자체의 비용이 굉장히 비싸며 영토 마련, 무덤 만들기, 비석 세우기 등으로 온갖 골머리를 앓으며 거기다가 장례식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며 성묘 등 온갖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화장은 성묘를 제외하면 그런 거 없다.[33]

또한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일 경우 IATA의 규정에 의하면 서양식 엠버밍을 한 뒤 철제, 알루미늄 혹은 구리 관에 모셔야 하고, 시신 운송료도 미국 → 한국 기준으로 800 ~ 1,300만원이나 하여 비용이 상당하다. 따라서 엄청난 유명인사나 금수저가 아닌 이상 현지에서 화장을 한 뒤 국내로 운구하며, 유명 인사들도 금수저가 아닌 경우 웬만하면 현지에서 화장하여 국내로 유골을 운구하는 방법으로 옮긴다. 따라서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사망 즉시 유해 귀국을 해야 할 경우 아무리 매장을 선호하는 집안일지라도 대부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6. 단점

매장에 비해서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그냥 땅에 묻을 경우에는 토양오염 정도로만 그치는 수준이지만, 불에 태울 경우에는 일산화탄소 등이 배출되고 연료도 많이 사용하게 되어 환경 문제가 심각해진다.

시신을 불로 태워 확인사살을 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과거 고대 시절에는 불교 승려 아니면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거나 살인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화장을 했을 정도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전부 매장을 했었는데 유족이 범죄같은 것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화형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어 화장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굳이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고인을 불로 태우는 것을 확인사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전술했듯이 괜히 부유층들은 매장을 하고 빈곤층들은 화장을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화장 문화가 정착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아서, 화장을 하는 집안이라도 부유층의 경우 납골당에 안치하지 않고 선영에 가족 납골묘를 만들어 그곳에 안치하려는 경향이 강하긴 하다. 물론 가족 전용 납골당을 만드는 게 그냥 매장하는 것보다 상당히 저렴하긴 하지만.[34]

또한 유전자마저도 소멸되기 때문에 시신의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상당히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사망 후 시간이 지나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이 나왔는데 유족이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시신을 화장해서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매장처럼 시신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장례법이었다면 사건 해결이 가능했을 상황이 많다.

화장 과정에서 유족이 모든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 장례절차도 문제다. 관이 가열로로 들어가면, 당연히 불길만으로 시신이 완전히 재가 되진 않기에 잔해가 재와 범벅이 되어 다시 나오는 것이 정서에 안 좋다.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화장 전문시설을 갖추고 화장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나, 불교 승려의 다비식이나 후진국에서는 나무를 쌓고 시신을 화장하는 문화가 있는데 당연히 시신을 완전하게 태우거나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장 과정에서 시신의 부산물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들도 재와 함께 강가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인한 질병의 주 원인이 된다. 하지만 워낙 생활에 밀접하게 자리잡은 문화라 제재도 불가능한 수준.

7. 주의사항

만약 사망자의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또는 사망한 이유가 범죄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 절대 정식 부검 절차 없이 시신을 함부로 화장해선 안 된다.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후 장례를 서두른다는 핑계로 피해자의 시신을 화장해 증거를 인멸한 사례가 존재하는데 이런 경우 법조계에서도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굉장히 힘들어한다. 화장을 해서 뼛가루만 남았는데 그마저도 강에 뿌린 식으로 처리해버리면[35] DNA 검사마저 할 수 없게 되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이는 곧 가장 중요한 물증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파기환송까지 합쳐서 5심까지 간 적이 있었을 정도다.[36] 결국 최종적으로 유죄가 인정되긴 했지만 시신을 섣불리 화장해선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죽은 게 확실한지 확인하고 화장해야 한다. 만약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화장했다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에 따라 살인 혹은 업무상 과실치사[37]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38]

방사능 피폭으로 죽은 시신은 절대로 화장하면 안 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같은 병원체는 고온에 취약해[39] 소각하면 소멸되므로 전염병 방지를 위해서라도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은 반드시 화장해야 하지만, 방사성 물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는 달리 소각해도 전혀 소멸되지 않으며 오히려 소각할 때 시신에 잔류하고 있던 방사성 물질이 고온에 의해 기화하면서 연기와 함께 대기 중으로 방출되므로 방사능을 곳곳에 뿌려주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방사능 유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40]

8. 기타

저승사자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예전에는 전통적 방법으로 사흘 정도 지나고 매장을 하다 보니 저승사자가 실수해도 부활할 여지라도 있었는데[41]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부활도 못 하게 되었다는 식의 블랙유머도 있었다. 위에서 보듯 실제로 부활을 신앙 교리로 두고 있는 종교에서는 화장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고인에 따라 사리 및 인공관절 등이 검출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9. 매체에서의 화장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들은 대부분 이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제다이 자체가 동양 문화에서 따온 것이 많기 때문.

바싹 태운 뼈를 가루로 만든다는 것을 이용해 공포특급에서 괴담 하나를 올린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죽어 화장될 때마다 화장터에 들러 봉제인형을 부장품으로 넣고 가는 여자가 알고 보니 변심한 애인을 죽여 그 시신을 토막내 인형 속에 넣었다는 내용이다.

캐나다 출신의 타이난 실베스터가 만든 게임 림월드에서는 전기화장터를 지어서 화장을 할 수 있는데, 습격자나 외지인의 시신은 화장해도 되지만 플레이어의 정착민을 화장하는 경우 동료의 시신을 불태워버렸다며 나머지 정착민들이 한동안 무드 패널티를 받는다. 맨 땅에 매장하면 무드 변화가 없고 관을 만들어 매장하면 제대로 장례를 치뤄줬다며 잠시 무드 보너스를 받는다. 매장과 화장에 대한 서구권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부분.

10. 관련 문서



[1] 일체식 중에 떨어지는 뼈를 다시 태우는 낙하다단계연소식이 있는데, 이건 한번에 4구의 시신을 화장할 수 있을 정도의 고효율을 보인다.[2] 대차가 들어오는 곳[3] 사망자가 관내 출신이었다면 7~9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4] 이것도 면제나 감경받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래대로라면 비록 국립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된다 하더라도 창원시 천자봉공원이나 김해시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추모의 공원에서 화장되어야 비용이 적게 든다. 다만 그의 유해가 수원시 연화장에서 화장되었고, 원래대로라면 100만 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면제받았다. 기초생활 수급자도 등급 및 거주기간에 따라 면제 또는 감면된다.[5] 다만 불교를 숭상한 당나라는 예외이다.[6] 트로이 전쟁의 전사자들은 대부분 화장된다.[7]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어사전 사이트에서도 "화장은 중요한 교리 문제 때문에 한때 가톨릭에서 금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8] 다만, 유골을 집에 안치하는 것이 그 사회 문화에 따른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교회의 허가를 얻어 가능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유족이 유골을 “나누어 가지는” 행위는 안 된다.[9] 납골묘도 허용된다.[10]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산골(散骨)에 관한 질의응답” 전문 보러가기[11] 대부분의 매장묘는 주거지에서 떨어진 시골의 야산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벌초 등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또한 장지(葬地)로 쓸 토지도 부족해져서 사들이는 게 쉽지 않으며,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매장묘지도 거의 포화상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이 관리해주는 묘지는 관리비를 내야 한다. 오죽하면 서양식의 콘크리트 묘지인조잔디 묘지까지 등장할 정도.[12] 다만 고려도 왕족이나 귀족은 화장 대신 매장을 많이 했다.[13] 다만 국립묘지나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지정한 보존 묘지 등은 제외.[14] 그런데 분묘의 설치기간이 지나고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묘지의 관리인이 임의로 발굴해 화장을 할 수는 있지만, 설치기간 후 철거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제재규정은 없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토지에 조상의 분묘를 60년 이상 보존하는 것은 자유이고 제재할 근거도 없다. 즉 분묘의 설치기간 제한 규정은 현실적으로 공동묘지로서의 공설·사설묘지에만 의미가 있다.[15] 범 LG 가문은 구본무 회장 이후 모두 화장한다.[16] 화장 후에 유골은 충남 부여에 있는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이던 박영옥 여사도 역시 화장으로 장례를 치뤄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본래 김종필박영옥도 매장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본인이 화장을 강력히 원했다.[17] 김종필은 장기복무 군인 자격으로 국립묘지 안장자격이 되며 박영옥도 20년간 함께한 배우자이기에 합장이 가능했다.[18] 화장 후에 유골은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다만 마석모란공원에는 매장으로 안장된 민주화운동 인사들도 있다.[19] 화장 후에 성남 납골당에 안치되었다.[20] 화장으로 장례를 치뤘을 것이면 애초에 비싼 돈 들여 엠버밍을 했을 이유가 없다.[21] 한국으로 치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22]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창시자인 스티븐 힐렌버그도 본인의 뜻으로 화장후 캘리포니아 해안에 뿌려졌고,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명예 회장인 스탠 리도 개인의 뜻에 따라 화장하였다.[23] 저우언라이가 대표적으로, 1976년에 사망했을 때 최고위층임에도 본인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중국 각지에 유해를 뿌렸다.[24] 그런데 정작 장묘문화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은 화장을 희망했으나, 소련의 레닌의 보존법에 감명을 받은 중국 지도부는 국부를 레닌처럼 보존해서 남기기로 결정해서 현재 미이라가 되어 기념관에 안치 중이다. 사실 호치민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는 시신보존 처리 후 기념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경우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김정일은 이를 씹고 금수산기념궁전에 영구보존 처리 후 기념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본인 유언대로 시신을 영구보존 처리 후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하고 기념하고 있다.[25] 대신 일정 기간만 매장을 하게 되며 이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개장을 해서 다시 화장을 해야 한다.[26] 영국은 인도를 자국에 합병한 이래로 인도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힌두교도들의 화장 문화였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 화장 문화가 처음 들어온 것 자체는 대영제국 때였지만 식민지 개척으로 자국 영토가 넓어져서 화장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가 인도를 포함한 영국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여 영국인들이 시신을 매장할 땅이 부족해지면서 본격적으로 화장이 보편화된 듯하다. 사실 대영제국 시절 많은 인도인들이 영국의 다른 식민지나 영국 본토로 이주했는데, 인도가 독립한 뒤에도 인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영국에 남아 인도계 영국인으로 살아간 인도인들(그 중에서도 힌두교도들)이 토착 영국인들에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27] 티베트 불교도 원칙적으로는 나무를 쌓아 놓고 화장을 한다. 조장을 하는 것은 그 지역에선 화장을 할 만큼 충분한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28] 레닌은 말년에 스탈린과 편지로 키배를 벌이고, 트로츠키와 손을 잡고서 스탈린 일당을 족칠 방법을 연구할 정도로 격렬하게 대립하였다.[29] 정확히는 이들 중에서도 나무가 적은 산지에 사는 이들. 나무가 많은 평지에 사는 티베트계 주민들은 힌두교도들처럼 화장을 한다. 이는 윗동네인 네팔이나 중국의 티베트인들도 마찬가지.[30] 유럽의 경우에는 거주지 내의 교회가 관혼상제를 주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유아세례, 자라면 첫 영성체견진성사, 결혼할 때는 혼인성사, 병들거나 임종할 때는 병자성사, 죽으면 장례 미사 등등. 이 과정에서 작성된 서류가 중세사 연구의 큰 사료가 되기도 한다. 거주지 내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도 드물지 않다.[31] 이와 별도로 장례 관련 업종에 대한 인식은, 승려를 제외하면 최악이다. 자세한 것은 부라쿠민 문서로.[32] 주간조선 2011-06-13 《[일본] 학교급식 빵·우유로 대체 아이들 입만 열면 “배고프다》[33] 화장일 경우 납골당 내에 마련된 별도의 성묘 시설에서 성묘를 지낸다.[34] 그게 아니면 거의 사망자 본인이 강력하게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산골로 간다.[35] 참고로 이건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공유수면 오염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36] 살인죄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시신의 존재 여부다. 이유는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37] 화장로에 점검차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화장로를 돌렸다던가 사고 또는 사건으로 인해 사람이 기절했는데 죽은 줄 알고 확인도 안 하고 화장해버린다던가... 다만 불에 닿았을 때의 고통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는 생존 본능상 비명을 지르고, 그 비명을 들은 주변 사람이 꺼내줄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화장로 불은 화력이 매우 쎄고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빨리 눈치를 채서 꺼낸다 해도 거의 무조건 사망하거나 운이 좋아도 전신 화상으로 거의 사망과 다름없는 인생을 지내야한다.[38] 불에 닿았을 때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처벌도 꽤 무겁다. 참고로 예전에 2ch에서 화장터 괴담이라고 산 사람을 화장한 끔찍한 이야기가 올라온 적이 있다.[39] 화산의 간헐천과 같은 고온의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일부의 호열성 세균조차도 화염 정도로 뜨거운 온도에서는 당연히 생존할 수 없다.[40]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사고 때 세슘-137에 피폭당해 사망한 시신들을 화장하고 않고 매장했는데, 그것도 나무관이 아닌 매우 무거운 납으로 된 관을 사용해 매우 깊은 곳에다가 매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41] 물론 그게 늦어져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는, 호러물에서 자주 보는 전개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매우 드문 확률로 무덤 속에서 진짜로 깨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고 장례를 치른 뒤 매장했는데, 그 이후에 관 내부에서 깨어난 것. 당연히 진짜로 사망한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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