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9 22:00:26

실록

實錄

1. 개요2. 각국의 사례

1. 개요

동아시아권에서 편년체를 사용했던 한중일월의 역사 기록 양식 및 이 양식에 따라 쓰여진 기록을 총칭하는 말. 현대까지 실록을 만들고 있는 나라는 왕정이 남아있는 일본이 유일하다. 실록이라는 명칭은 "실제로 있었던 일(事)을 그대로 기록한다(直)"라는 뜻.

본래 중국에서 황제의 일대기를 사관이 기록했던 것에서 유래하며 실록의 기초가 되는 사관의 원래 기록은 사초(史草)라고 부른다.

2. 각국의 사례

2.1. 중국

최초의 실록은 중국 남북조시대(439~589) 이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며 남조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의 행적을 기록한 양황제실록이 기록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실록이다. 그러나 실록의 제작체계가 마련된 것은 당나라 때의 일로, 황제가 사망하면 기록관원인 기거주(起居住)의 기록을 중심으로 문서와 기타 기록을 모아 편찬하는 형식이었다. 또한 중국의 실록은 각 왕조의 정사(正史)를 기록하는 총서를 편찬할 때 기초자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왕조역사서는 서(書)나 사(史)로 부른다.

현존 중국 실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당순종 실록 일부 5권, 그 다음이 송태종 실록 일부 20권이다. 나머지 명 이전 실록들은 죄다 유실되었다.송사만 해도 500여권 가까이 되는데 기록 많은편이지만 명나라의 대명실록(大明實錄)[1]은 태조 홍무제부터 숭정제까지 2,964권, 청나라의 청실록(淸實錄)[2]청태조부터 광서제까지 4,404권이 있다. 하지만 분량상으로는 같은시기 조선왕조실록이 앞서는 편이다. 일례로 대명실록의 경우 글자 수는 총 1,600만자 정도인데 조선왕조실록은 총 4,964만자 이상이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명, 청 실록도 볼 수 있다. 다만 번역이 안 된 원문만 제공이란 점이 문제지만, 무슨 내용을 기록한 것인지 제목은 번역되어 있다.

2.2. 한국

한국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기록이 구삼국사, 삼국사기 등에 남은 걸 봐서 그 원사료가 되었을 나름대로의 사관과 기록체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 방식의 '실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918~1392) 때로, 8대 현종 대에 이르러 창업주 태조 왕건부터 전왕이었던 7대 목종 왕송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7대실록 36권을 편찬하게 한 것이 최초이다. 이 실록은 거란의 침입으로 수도 개경이 함락되면서 왕실 역사를 기록했던 서적들이 모두 불타 다시 역사서를 편찬한다는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1034년 덕종 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고려의 실록 제작체계는 중국과는 다른 구조로, 감수국사, 수국사, 동수국사, 수찬관, 직사관의 5대 편제였으며, 사관은 시정을 기록하는 관리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이후 덕종실록[3]이 편찬되었으며 숙종, 예종, 인종, 의종,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공민왕, 공양왕의 실록이 추가로 편찬되었다. 고려사 기록에서 실록이 편찬된 왕은 상기 21왕이 전부라서 나머지 왕들은 실록을 편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국사에 보면 고려 역대왕의 실록은 모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고려왕조실록 중 현존하는 실록은 없으며, 그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 조선시대의 고려사는 고려왕조실록보다 훨씬 적은 분량으로 요약한 것으로, 고려실록을 얼마나 반영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애석한 점이라 할 수 있다.[4]

고려가 멸망하고 나서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한국 실록의 대표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한국의 실록인 조선왕조실록이 등장한다. 고대와 중세 국가를 통틀어 세계 역사상 가장 자세한 통치기록이며 또한 편년체 역사서 중 가장 세밀한 기록으로 당시의 국내 및 국외 정세와 천문현상, 자연재해, 기상, 생활상, 지리, 인물등 여러 방면에서 참고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2.3. 일본

일본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879년(간교元慶 3년)에 55대 몬토쿠 덴노의 일대역사를 다룬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徳天皇実録)가 완성된 것이 최초의 실록[5]이다. 몬토쿠 덴노의 뒤를 이어 즉위한 56대 세이와 덴노의 명으로 편찬된 이 실록은, 후지와라노 모토츠네(藤原基経), 미나후치노 토시나(南淵年名), 미야코노 요시카(都良香), 오오에노 오톤도(大江音人)의 4인 체제로 제작되다가, 877년에 미나후치노 토시나와 오오에노 오톤도가 잇따라 사망하자 스가와라노 코레요시(菅原是善)가 뒤를 이어 참가해 3인 체제로 완성시켰다.

뒤를 이어 56대 세이와 덴노부터 57대 요제이 덴노, 58대 코코 덴노 3대 3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実録)가 901년(엔기延喜 원년) 8월에 완성되었다. 59대 우다 덴노의 명으로 편찬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 우다텐노가 897년(칸표寬平 9년) 황태자 아츠히토(敦仁) 친왕에게 양위하면서 작업이 일시중단되었다. 이후 60대 다이고 덴노로 즉위한 아츠히토의 명으로 그 해 다시 편찬재개에 들어가 901년에 완성시켰다.

이후에 율령제의 쇠퇴로 실록간행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실록간행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완성되고 바로 공개되는건 아니라서 메이지실록은 1933년 완성되었으나 출판은 1968년에서야 이루어졌다. 다이쇼실록은 1937년 완성되었으나 공개는 2002년부터 11년간 4차례에 걸쳐 정보공개를 통해 이루어졌다. 쇼와실록은 2014년 4월부터 순차적으로 간행되고 있는 중이다.#

2.4. 베트남

응우옌 왕조 시대에 쓰여진 대남식록(大南寔錄)이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도 응우옌 왕조는 유지되었기에 1802년부터 1945년까지 기록되었다. 이 당시 베트남이 프랑스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편집에 있어서 프랑스 식민당국의 눈치를 봐야하지만 어쨌든 베트남 근현대사와 근처 나라의 정세를 연구할때 빼놓을수없는 중요한 자료이다. 총 584권으로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1960년대부터 1978년까지 북베트남에서 번역이 진행되어 베트남어 번역본이 순차적으로 출간되었고 남베트남에서도 별개의 번역본이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혼란과 남진통일로 인해 끝을 보지 못했다, 2000년대 초부터 새로 개정한 번역본이 출간되고있다.[6] 단, 바오다이 황제에 대해 기록한 대남식록은 현재 소실되어서 없다. 물론 기록은 해놓았지만 1960년대 남베트남이 혼란에 빠지면서 실록 자체가 사라졌다. 다만 프랑스 식민당국에서 남겨놓은 기록물들은 있기 때문에 이걸로 보충한다는 듯.

2.5. 대만

정씨 왕국 2대 정경 시대에 양영이 선왕실록(先王實錄)을 집필했다. 선왕은 정성공을 뜻한다.


[1] 혹은 황명실록(皇明實錄)이라고도 한다.[2] 만주국에서 대청역대실록(大淸歷代實錄)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3] 선대 현종은 실록 편찬 여부에 대한 당대 기록이 없다.[4] 조선 시기 한양 춘추관에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보관되어있다가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5] 일본어로는 じつろく/지츠로쿠라고 읽는다.[6] '실록(實錄)'이 아니라 '식록(寔錄)'인 이유는 민 망(明命)황제의 황후 호씨실(胡氏實)의 이름을 피휘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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