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21:49:09

이재수(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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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1958년 ~ 2018년
파일:이재수중장.jpg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81년 ~ 2016년
임관 육사 37기
최종계급 중장
최종보직 제3야전군 부사령관
주요보직 국군기무사령관
육군인사사령관

1. 개요2. 생애
2.1. 기무사 세월호 유족 불법 사찰 의혹2.2. 자살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前군인. 최종계급은 중장, 최종보직은 육군 제3야전군 부사령관.

2. 생애

1958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서 태어나 송악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박지만과 함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 37기로 입교했다.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군내 인사 전문가로서, 대령시절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과장, 선발관리실장을 역임했고, 2007년 11월에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본부 인적자원개발처장, 육군 제2작전사령부 인사참모처장을 지냈다. 2010년 6월 소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육군 제53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지냈으며, 2013년 4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인사사령관과 국군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2014년 10월 국군 기무사령관으로 취임한지 1년만에 전격적으로 물러나 한직인 육군 제3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이 당시 '셀프 경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본인 스스로 기무사를 그만두겠다고 요청해서 이루어진 인사라는 기사가 났었다. 일각에서는 군단장을 거치지 못한 이재수 중장을 야전으로 한바퀴 돌려 대장진급을 위한 커리어를 쌓게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군인사를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애초에 중장 2차 진급, 군단장급 지휘관 미역임에 더해 직능까지 작전이 아닌 인사였기 때문에 대장 진급은 원래 힘들었다. 되려 병과가 기갑임에도 불구하고 군단장급 지휘관을 이 단계 최고의 알짜배기인 제7기동군단으로 역임한 박찬주가 이재수를 제치고 대장에 진급했다. 이재수가 대장 진급이 안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군단장 미역임이고 직능같은 건 다른 것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당장 임국선 중장을 보더라도 군단장급 지휘관 보직 중에서 최고의 진급코스인 7기동군단장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대장급 지휘자 미역임[1]이 발목잡혀서 중장으로 전역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진급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게 바로 해당 계급별 지휘관 이수 여부이다. 대장에 진급하려면 소대장(1회), 중대장(2회), 대대장(1회), 연대장(1회), 사단장(1회), 군단장(1회) 중에서 한개라도 비어있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재수는 이 중 제일 높은 게 없다.

육사 37기 동기로는 신원식, 양종수, 전인범, 조보근, 박찬주, 엄기학, 고명현, 김영식 등이 있다. 육사 한 기수당 보통 6~7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오는데, 37기는 8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오는 바람에 박지만 덕 아니냐는 항간의 눈총을 받은 바 있다.

여담으로, 박정희 前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육사 시절부터 절친[2]이라고 한다. 베프 누나가 대통령[3] 그런데 오히려 대통령 일가와의 친분이 군인사에서 불리하게 작용을 했는지, 기무사령관 취임 1년만에 전격적으로 물러나 전역 대기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4][5]으로 전보됐다. 2015년 9월 장성 인사에서 동기인 엄기학, 김영식, 박찬주대장으로 진급한 반면 이재수는 탈락했고, 거기다 김영식은 1군사령관, 엄기학은 직속상관인 3군사령관으로 취임하게 되어[6] 어쩐지 군 수뇌부에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다.

덕수 이씨라고 한다. 덕수 이씨이순신의 충무공파로 유명하지만 이재수는 충무공파가 아닌 문혜공파다. 이재수가 준장으로 진급하자 덕수 이씨 문중들이 크게 축하주었다고 한다.

2016년 12월 세계일보에서 이재수 중장이 박지만과 권력적으로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반대측에 있는 최순실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기무사령관에서 경질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하였다.#, ##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최순실은 군부 인사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이며, 나아가 장성 인사에서 박지만과 친분있는 37기가 4성에서 죄다 누락한 것과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1. 기무사 세월호 유족 불법 사찰 의혹

민군 합동수사단은, 이 전 사령관 등이 기무사의 세월호 테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뒤 사고 직후부터 유가족들에게 불리한 여론 형성을 위한 첩보 수집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종자 가족이 머물던 진도체육관 일대에서 개개인의 성향과 가족관계, 음주 실태를 수집하고 심지어 미성년자인 안산 단원고 학생들까지 사찰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차례에 걸친 유가족 사찰 실행방안은 청와대에 보고됐다.

또한 세월호 관련 진보단체 시국 집회에 대응해 보수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 수 있도록 경찰청 정보국에서 입수한 집회 정보를 재향군인회에 전달하도록 한 혐의도 적용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성훈)은 지난달 29일 이 전 사령관에 대해 직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관련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고, 수사 경과에 비춰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시점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당시 이 전 사령관 휘하에 있던 부대장들은 유가족 사찰에 관여한 혐의로 무더기 구속기소됐다. 소강원(소장) 전 610부대장, 김병철(준장) 전 310부대장, 손모(대령) 세월호 태스크포스(TF) 현장지원팀장 등 3명이다. 그러나 기무사의 최 윗선이던 이 전 사령관과 2인자였던 김 전 참모장은 구속을 피했다. #

그런데...

2.2. 자살

기무사령관 재직 중 세월호 사건에 있어 기무사가 유족을 불법 사찰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도중, 2018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소재 건물[7]에서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 ## 도주의 우려가 없다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만약 구속을 시켰다면 이런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서 첫머리에 "세월호 사고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 전에 했던 일을 사찰로 단죄하는 게 안타깝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기무사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개입을 인정하는 말이다.[8]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들 및 미성년자에 대한 불법 민간인 사찰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끝까지 합리화하는 문장이라서 비난을 받았다.
2018년 12월 9일, 월간조선이 불확정 루트를 통해 입수한 또다른 유서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는데, '구조활동에 전념, 최선을 다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기무사는 군대 내의 쿠데타 방지를 위한 방첩부대이므로 전문구조요원이 있을 리가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활동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

이후 장례식에는 박지만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조문을 왔다. 반응은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던지라 자업자득이라는 의견과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망신주기식 적폐 수사로 인해 그가 희생을 선택 했다는 의견으로 엇갈렸다.


[1] 소위와 중위시절 내내 특전사에서 일반 전투원부중대장을 했다.[2] 고교시절부터 절친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고교시절에는 몰랐던 사이였고, 육사에 진학한 유일한 동창이어서 육사에 입학한 이후부터 친해졌다고 한다.[3] 실제로 사적으로는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4] 하지만 전역대기직으로 생각하면 오산인게 대표적인 반례가 무려 3사출신의 박종진대장이다.[5] 박종진을 예시로 드는건 굉장히 틀린 것이, 이재수는 육사고 박종진은 3사다. 기본적으로 장교 진급은 각 출신별로 진급테이블이 다르다. 일례로 ROTC한테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은 체감상 육사한테는 특전사령관과 같은 느낌의 진급 테이블이다. 실제로도 모 군단에서 정훈참모가 학사 출신이고 계급이 중령이었는데도 별명이 장군이었던 게 학사 출신+정훈 병과=중령은 육사 출신 보병 병과로 따지면 장군 난이도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재수는 인사사령관 6개월 중 급기무사 1년으로 커리어가 대장을 앞두고는 상당히 꼬였기 때문에 기무사가 아니라 차라리 야전 군단장을 갔으면 모를까 전역대기직으로 보는게 맞고 실제로도 전역했다. 게다가 박종진은 2014년에 6군단장으로 취임했었다. 그러니까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이라고 해서 똑같이 볼 수가 없는 것이 박종진은 군단장 경험이 있고 이재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육사 출신은 늦게 올라가는 대신 작은 보직으로도 진급이 되지만 육사 출신은 빨리 올라가는 대신 알짜배기 보직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박종진 대장의 경우도 3사 출신 대장인 대신 2019년 부로 군복무 40년차가 된다.[6] 한국군에서 동기나 후배를 직속상관에 앉힌다는 건 거의 틀림없이 "이제 슬슬 갈 준비 해야지?"라는 뜻이다. 판·검사의 세계에서도 동기 및 후배가 상급자가 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변호사가 된다.[7] 경찰에 따르면 지인의 사무실[8] 기무사는 군관련 보안조직으로, 민간영역인 세월호 참사와 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한도 없다. 따라서 법적으로 권한도 없는,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소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