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26 19:15:46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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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맞춤법 오해4. 사례

1. 개요

궤변(詭辯) [궤ː변] 「명사」
『철학』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하여 상대편의 사고(思考)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 대는 논법.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궤변(, sophistry)이란 얼핏 들으면 옳은 듯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대어 논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의 변론을 말한다. 망언과 비슷한 표현이다.

상대방을 속여 참을 거짓으로, 혹은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거나, 또는 거짓인줄 알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사상적 혼란, 감정이나 자존심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궤변은 처음부터 토론을 통해 어떤 진리를 밝히기 위해서가 아닌, 단지 말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의 술수라고 할 수 있다.

2. 어원

궤변을 잘 하는 사람을 '궤변론자(詭辯論者)' 혹은 '궤변가'라고 하는데 이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에 걸쳐 출세를 위해 필요한 변론술 및 처세술과 사전식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닌 지식인 '소피스트'들을 뜻한다.

궤변의 원어인 'sophistik'가 바로 이 '소피스트(궤변학파)'에서 나온 말이며, 궤변학파는 본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궤변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목적을 위해 '논리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댄다'는 뜻으로 변했다. 동양에서는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의 '견백론(堅白論)'이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 등이 궤변의 좋은 예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백마비마론은 아래 예시에 적혀 있다.

3. 맞춤법 오해

괴변1(怪變)「명사」 예상하지 못한 괴상한 재난이나 사고.
괴변2(壞變)「명사」 무너져 모양이 바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괴변과 같은 의미가 아니며, 바꿔 쓸 수도 없다.[1]

많은 사람들이 오기하는 단어로, '괴물', '괴상', '기괴' 등에 사용되는 '괴이할 괴(怪)'자를 써서 '괴이한 변론' 인 것으로 착각되는 경우가 있다. 이중모음 음운 가운데서도 '궤' 자가 사용되는 단어가 드물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추정된다. 그러나 '괴변'에 '괴이한 변론' 같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으며, 표준어에서 괴변은 오직 '변할 변(變)' 자를 받아 '예상하지 못한 괴상한 재난이나 사고', '무너져 보양이 바뀜' 의 의미만 있다. 따라서 '궤변'을 '괴변'이라고 쓰는 것은 오류이다.
괘변(卦變) 「명사」 괘가 변하는 것을 보고 점치는 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그 외에도 괘변이 있는데, 이는 뜻이 '궤변과 괴변'과는 거리가 멀다.

4. 사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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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궤변의 예시는 유사과학, 유사역사학, 음모론 문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예전 중국 고대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많은 학파(學派)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명가(名家)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교묘한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들의 궤변은 이런 식이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뒤,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자! 여러분의 말대로 흰색은 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흰말은 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2]

네가 만약 살 운명이라면 약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살 것이고, 반대로 죽을 운명이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 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그런데 너는 살 운명에 있느냐 죽을 운명에 있느냐의 그 어느 쪽에 있다. 그러므로 어차피 살려고 바둥바둥할 필요가 없고 약을 쓸 필요도 없다.[3]

어떤 사람이 남의 를 훔쳐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 갔느냐고 신문(訊問)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웬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입니다. 소는 잘 모릅니다." 길에 떨어진 노끈을 주웠는데, 노끈에 소가 매어져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소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고 소를 못 본 것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4][5]

자유가 존중 받아야 한다면, '자유를 억압할 자유' 역시 존중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6]

어떤 사람이 환자를 데리고 의사에게 찾아와 진찰을 요구했다. 그는 환자가 죽든 살든 큰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이 의사 선생께서 환자를 죽이셨냐고 묻자, 의사는 아니라고 답했다. 이번엔 살리셨냐고 묻자, 의사는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으셨으니 돈을 드릴 수 없군요"라고 답했다.[7]


[1] 비슷한 느낌인 궤멸과 괴멸은 서로 유의어라 바꿔 쓸 수 있다.[2] 백마비마론. 전제가 잘못됐다. 흰색이 무색이라는 것은 결국 색깔에만 국한되어야 하지, 말이라는 다른 대상에는 적용시키면 안된다. 따라서 이 궤변을 맞게 만들려면 "흰말은 색이 있는 말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3] 이는 딜레마(양도론법)를 이용한 궤변의 일례이다. 사람은 죽는가 아닌가로 상태를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죽을 병이라 해도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에 참을 만한 병이라도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게 낫다.두산백과 참고[4] 출처[5] 상식적으로 소 정도로 무거운 게 노끈과 이어져 있다면 당연히 느낌이 날 수밖에 없으니 궤변이다. 만약 노끈 끄트머리에 있던 게 진주 한 알이나 동전 한 닢처럼 가벼운 물건이면 또 모를까.[6]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이다.[7] 살게 되든, 죽게 되든이라는 명제를 살리다, 죽이다로 은근슬쩍 바꿔치기 했기 때문에 궤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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