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7 21:43:37

논증


1. 개요2. 논증의 목적3. 논증이 아닌 것들4. 논증의 형태
4.1. 귀납논증4.2. 연역논증4.3. 수사학적 논증4.4. 논증의 타당성과 합당성4.5. 타당성4.6. 합당성
5. 영향

1. 개요


일정한 근거를 들어 주장을 펼치는 것. 추론의 언어적 표현. 논변(論辯)"이라고도 불린다.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잇는 많은 철학자들은 철학이 논증에 살고 논증에 죽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주장을 펼치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믿음 혹은 신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철학에서 탄생한 과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들에도 이어진다.

논증은 유한한 전제(premise)결론(conclusion)으로 구성된다. 논증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전제이며, 논증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결론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논증은 흔히 전제(들)와 결론에 해당하는 문장들의 집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2. 논증의 목적

논증의 목적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 새로운 지식정보의 효과적 산출
    • 과학적 탐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논증이다. 예를 들어, '모든 금속은 열을 가하면 팽창한다. '와 '구리는 금속이다'는 전제를 통해 '구리는 열을 가하면 팽창한다' 라는 결론을 얻는다.
  • 논제에 관한 주체적 입장 갖기나 이해 증진
    • 논증을 통해서 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안락사 논란에 대해서, 나는 XXX하고 YYY하므로 안락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고로 안락사에 찬성이야.'와 같은 논증이다.
  • 태도나 행동에 영향 주기
    • 주장이다. 예를 들면 '게임은 사람의 성향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라는 전제로 '그러므로 청소년은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을 이끌 수 있다. 이런 경우의 논증은 잘 알려진 예시를 근거로 사용하는 예증법이 많이 쓰인다.[1]

3. 논증이 아닌 것들

전제나 근거가 없는 일반적인 문장은 논증이 아니다.
  • 우선 믿음이나 의견이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근거가 없거나, 근거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논증이 아니다.
  • 묘사가 있다. 묘사의 경우 어떤 사실에 대한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로 무언가를 주장하려 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묘사는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묘사 자체에는 주장이 없다.
  • 설명도 역시 논증이 아니다. 설명은 논증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실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명과 논증은 초점이 다르다. 설명의 포커스는 그 연유, 근거에 맞추어져 있는 반면, 주장의 포커스는 그 결과에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설명은 논증이 아니다.[2]

4. 논증의 형태

논증은 귀납논증(inductive argument)과 연역논증(deductive argument)의 형태를 가진다.

4.1. 귀납논증

귀납 논증은 전제가 결론을 100% 지지하지 않는 논증이다.
예를 들자면,
R1. A 지역의 백조는 하얗다
R2. B 지역의 백조는 하얗다
R3. C 지역의 백조는 하얗다
...
C. 모든 백조는 하얗다
이 논증에서 A, B, C 지역의 백조가 하얀 것이 모든 백조가 하얀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꽤 높은 확률로 맞긴 하겠지만). 이런 논증을 귀납 논증이라 한다. 귀납 논증은 주로 여러 사실들로부터 하나의 기본적 원리를 끌어낼 때 사용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귀납논증 문서 참조.

4.2. 연역논증

이런 논증들은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귀납의 경우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 내는 데 적합하고, 연역의 경우 이끌어낸 결론이 (전제가 참이라면) 항상 참이라는 장점이 있다.

4.3. 수사학적 논증

수사학적 논증은 상대방의 태도에 영향을 주는 설득의 측면을 강조한 논증이다. 일반적인 논증이 논증이 가지는 타당성을 중요시하는 것과 달리 수사학적 논증은 타당성도 중요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설득력도 중요하게 여긴다. 즉 예증법이나 다양한 형태의 삼단논법, 유비추리 등은 타당성의 측면에서는 약하지만 설득력이 높기 때문에 수사학적 논증에서 자주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만 해도 수사학적 논증이 논증의 주류였다.[3]

4.4. 논증의 타당성과 합당성

성공적인 논증은 타당하거나 합당하다. 일상적인 용법과 달리 논리학에서 '타당성'과 '합당성'은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다.[4]

4.5. 타당성

Validity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은 그 전제들이 모두 일 때 결론도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타당성은 개별적인 명제의 성질이 아닌 논증의 성질이다. 논증이 타당하지 않을 때, 즉 전제들이 전부 참이면서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을 때 그 논증을 "부당하다"고 한다.

위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떤 논증이 타당하다고 해서 그 논증의 전제들과 결론 모두가 이라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전제들 중 거짓인 명제가 있지만 결론이 참이거나, 전제와 결론이 모두 거짓인 타당한 논증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거짓 전제가 있지만 결론이 참인 타당한 논증.
1)
* 전제1. 모든 고래물고기다: 거짓
* 전제2. 모든 물고기는 동물이다: 참
* 결론. 모든 고래는 동물이다: 참

2)
* 전제.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45대 대통령이다: 거짓
* 결론. 2+2=4: 참[5]

전제와 결론이 모두 거짓인 타당한 논증.
1)
* 전제1. 모든 고래물고기다: 거짓
* 전제2. 모든 물고기는 조류다 : 거짓
* 결론. 모든 고래는 조류다: 거짓

2)
* 전제. 1+1=3: 거짓
* 결론. 지구는 태양계의 첫번째 행성이다: 거짓

4.6. 합당성

Soundness: "건전성"이라고도 한다.

논증이 '합당'하다는 것은 (i) 논증이 타당하고 (ii) 논증의 전제들이 모두 참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논증이 합당하다는 것은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의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실제 논리학에서 따지는 것은 합당성보단 타당성이다. 예컨대, 전제가 '신사임당은 남자다'와 '모든 남자는 한국인이다' 이고 결론이 '신사임당은 한국인이다'인 논증이 있다고 하자. 이 논증은 타당성의 정의에 의해 타당하지만, 전제가 거짓이므로 합당하지는 않다. 논리학은 보통 신사임당이 남자든 여자든, 모든 남자가 한국인이든 아니든 관심이 없고, 전제와 결론 사이의 관계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

5. 영향

이런 논증 방식은 과학 탐구 방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귀납법이 없었을 적의 논증 방식은 아무리 봐줘도 말놀이였다. 중세의 괴악한 치료방식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귀납법 이후, 좀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이 확립되고, '자연에서 관찰된 사실로 진리를 찾자!'라는 인식이 정착된 후에는 과학의 탐구는 좀 나아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방법이 좀 괴랄해서, 문자 그대로 관찰된 사실에서 근거를 찾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치료법이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왜 그렇게 될까?'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똑같이 따라하는 수준이였다. 야! 신난다~

근대에 들어와서야 가설-검증방법이라는 연역법의 원리를 따르는 과학적 방법론이 등장했다. 이 방법론은 무작정 관찰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가설(예: X → Y)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데 사실(예: XX이고 YY인 관찰)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근대 과학은 급성장했다.

하지만 저 가설-검증 방법도 완벽하지 않은 것이, X → Y라고 해서 X' → Y라는 법은 없다![6]

덕분에 인간과 동물의 생체가 활동하는 방식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 동물들에게 임상실험한 약을 바로 실전에 사용했는데, 그러다 크리뜬게 탈리도마이드이다. 이 물질은 임산부의 태아에게 작용해서 팔다리를 다 짜리몽땅하게 바꾸는 해표증을 일으킨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이런 귀납적 논증(/가설-검증 방식) 으로 밝힌 과학적인 진리가 예외출현으로 뒤바뀌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적인 이치가 예외가 발견되면 과학 이론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다만, 과학 이론의 토대가 매우 단단하고, 이론을 매우 정교하게 쌓아 올렸으므로 쉽사리 빈틈이 발견되진 않을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빈틈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이를 통해 이론을 더욱 정교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다.


[1] 김용규, '설득의 논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07, p44[2] 다만 설명 역시 따지고 보면 형식적 논증으로 분석된다는 견해도 있다. 칼 구스타프 헴펠의 고전적인 과학철학적 견해가 그러하다.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관련 항목 참조.[3] 김용규,'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p76[4] 김용규,'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pp185-186[5] 수학적으로 참인 명제를 결론으로 하는 모든 논증은 타당하다. 타당한 논증은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인 경우를 생각할 수 없는 논증이다. 수학적으로 참인 명제는 거짓임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참인 명제를 결론으로 가진 논증은 타당하다.(덧붙여, 이 논증의 형식 또한 타당하다.) '거짓임을 상상할 수 없다'는 수학적 명제의 성질은 '논리적으로 참'인 것으로 설명가능하다. 예컨데 '모든 총각은 남자이다.', '어떤 명제의 진리값은 참이거나 거짓이다'와 같은 명제가 그러하다. 총각과 명제의 정의( 또는 뜻)에 의해 두 명제는 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논리적인 가능세계를 상상한다고 해도 위의 두 명제는 참이다. 수학적인 명제 또한 논리적인 명제에 속한다.[6] 이는 귀납법의 특징이다. 귀납법을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 대상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을 추론하는 것이기에(물론 이 설명은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틀린 말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이해해두자) 언제든지 예외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 내가 본 까마귀는 모두 검은색이므로 까마귀는 검은 새다! 라는 것인데, 보통 상황에서는 맞겠지만 알비노 등 예외가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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