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01:27:15

국군기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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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
파일:attachment/국군기무사령부/DSC.png
國軍機務司令部
Defense Security Command (DSC)

1. 개요2. 역사3. 기무부대4. 지원 및 선발5. 문제와 비판
5.1. 민간인 사찰 문제5.2.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과 지역감정5.3. 녹화사업과 군 내 의문사 개입5.4. 불륜성범죄5.5. 임무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들5.6.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 특정 정치세력과의 유착 의혹5.7. 특정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 모욕, 불법 감시5.8. 세월호 참사 관여5.9.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계엄령 실행계획 수립
5.9.1. 송영무 장관과의 진실게임 논란
6. 기무사 세월호 참사 관여 규탄시위
6.1. 한국 극우 단체의 시위 방해
7. 역대 사령관8. 출신인물9. 관련 문서10. 여담
10.1. 기무부대가

1. 개요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 및 민간인에 대한 무단도청을 하는 국방부 직할부대사령관중장이다. 본래 국군서울지구병원과 함께 종로구 소격동에 있었으나 2008년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했다.[1]

이전 명칭이 국군보안사령부, 약칭 보안사로 바뀌었으나 1991년 다시 현 명칭으로 바뀌었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 전에 국방부에는 제3국과 제4국이라는 수사기관이 있었으나 훗날 해체된다. 북한에는 우리의 기무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인 보위국이 있다. 정보기관의 일종이므로 보안 문제에 민감하다. 군인사법 시행령 제25조의2 제1항 제1호와 별표 1에는 사령관과 사령부 참모장임기제 진급 자리로 규정되어 있고, 육군의 몫으로 지정되어 있다. 더해서 몇 개 기무부대의 장 직위도 임기제 진급 보직으로 규정되어 있고 각군별로 자리가 할당되어 있다.[2] 무엇보다 1337 신고전화가 24시간이 아니다! 군 일과시간(06시 30분-18시)에만 이용 가능하다.

군부독재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탕으로 온갖 흑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문민정부 들어서 명칭도 바꾸고 행동 범위를 축소하는 등 여러 개혁 시도가 있었으나 불발되었다. 이후에도 사찰, 기밀 유출 등 낯 뜨거운 사건사고가 이어졌고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를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2018년 8월 3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해편, 즉 해체가 결정되었다.[3] 그리고 사령부로는 남았지만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각종 일탈행위에 가담한 기무요원들은 전부 원대복귀되고 감찰실장으로 민간인이 임명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대대적인 개혁이 시행될 예정이다. 그 동안 기무부대의 월권행위에 질린 야전군인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그리고 9월 1일에 드디어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탄생한다. 초대 사령관에는 마지막 기무사령관이었던 남영신이 임명되었다. 기무사 소속 1천 300명 병사들중에 580여명이 단축될 예정으로, 초기에는 총 3400명정도지만 2019년 곧 병사 감축이 완료되는 시기에는 총 2900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2. 역사

국군기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68년
조선 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1948년 5월)
→특별조사대(1948년 11월)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1949년 10월)
육군 특무부대(1950년 10월)
Special Investigation Service
육군 방첩부대(1960년 7월)
Counter-Intelligence Corp
해군 방첩대 (1953년)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수수사대 (1954년)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1968년 ~ 1977년 1977년 ~ 1991년 1991년 ~ 2018년 9월 1일
육군 보안사령부(1968년 9월)
Security Command
국군 보안사령부(1977년 9월)
(해군 방첩대, 공군 특별수사대 통합)
Security Command
국군 기무사령부(1991년 1월)
Defense Security Command
해군 방첩대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수수사대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부대 이념- 자유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지원

육군의 방첩부대는 6.25 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란 명칭으로 창설되어 이후 육군방첩부대육군보안사령부 순으로 명칭이 바뀌었다.[4] 해군의 방첩부대는 해군방첩부대로 창설되어 해군보안부대로 변경되었고, 1973년 해병대의 해병보안부대를 흡수하였다. 공군의 방첩부대는 제20특무전대 예하의 대공수사부대인 26특수수사대였고, 1977년 육·해·공군의 방첩부대를 통합해 국군보안사령부를 창설 하였지만,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인해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군정 시절의 미합중국 육군 제24군단 CIC를 모델로 하였다. 일본 관동군 헌병 소속으로서 불과 2년 사이에 무려 50여 개의 항일 조직[5]을 적발해 죽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주도한 악질 김창룡이 역대 기무사령관에 들어가 있다. 김창룡은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정보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얼마 후 김창룡과 특무부대 요원들은 남조선로동당 군사총책 박정희를 체포했고, 김창룡은 박정희를 심문하여 군대 내 세력을 확장하던 남로당 조직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6]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1960년대~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에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했다. 이는 본래 군 내부 및 군 관련 사항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수사권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독대 직접 보고를 하였다. 국방부 직할부대임에도 국방장관도 못 건드리는 위치였다. 정보기관 중 권력 1위에 속하는 중앙정보부만이 보안사령부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써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국내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게 된다.[7] 당연히 이후에 전두환과 하나회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영향력을 활용하여 권력을 탈취한 것이 바로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세력. 당시 보안사령부의 정보력과 수사, 연행권이 박정희 사망이후 이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K-공작계획), 야당인사 정치활동규제, 민정당 창당 심지어 국회의원선거 공천까지 보안사령부에서 주도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사, 재야인사,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계속해 왔다. 유명한 녹화사업 역시 보안사령부의 작품.

그러다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언론에 폭로되는데 이것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사찰 대상 명단이 무려 1300여 명. 심지어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도 있었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사실 '기무(機務)'라는 명칭이 기존 이름인 '보안(保安)'보다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라 모르는 사람들은 이곳이 당최 무슨 부대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적으로 '기무(機務)'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와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기무사령부의 '기무'는 후자, 즉 '기밀 임무'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8] 실제론 기무학교에서 고종황제의 특별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의 '기무'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가르친다.

현재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말이다.이쪽 일이 원체 비밀이 많다 보니… 그렇지만 군 내부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기무사 소속 장교·부사관은 해당 계급이 낮더라도 절대 함부로 못 대한다. 군 내부를 대상으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수집/활용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보안사항 이므로 작성금지.[9] 상사대대장도 함부로 말을 못 한다. 상사의 경우 대령까지 독자적으로 조사할 수 있기 때문. 만약 기무사령부 상사에게 밉보였다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마음 먹고 조사하면 꼬투리 잡혀서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 애초에 계급이 높더라도 기무사령부 소속 군인들은 웬만해선 절대 안 건드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맥이 있다면 동기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 부탁하기도 한다.

2017년 계엄령 문건 작성 논란 이후 대대적인 개혁or해체 의견이 높아졌고 2018년 8월 3일 계엄 문건과 관련된 인사들의 원대 복귀 명령[10]이 떨어지고 남영신 기무사령관이 임명되어 해편임무를 맡았고, 해편 후에는 신설 부대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업무가 이관되었다.[11]

3. 기무부대

예하부대로 사단급 이상 제대(諸隊)에 기무부대가 배치되어 있다.[12]보통 해당 제대 사령부 영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사령부는 불편한 동거를 하는 셈. 강력한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고 사령부도 어찌할 수 없어 병폐가 일어나기도 한다.[13]

일단 해당 부대 소속이 아닌 기무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도 없거니와 기무부대도 해당 부대에 소속감이 없기 때문에 부대 막사를 제외한 시설관리가 소홀하다. 그러면서도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사령부 시설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물론 행사가 끝나고 뒷처리는 사령부에서 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기무부대 장병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정보/보안계열 처부의 경우 기무부대와 '가깝고도 먼 관계'가 된다. 신원조회, 대간첩업무, 보안감사 등 적지 않은 업무에서 기무부대와 협력해야 하기 때문. 그 외의 다른 처부에서도 기무부대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묘한 거리감이 자리잡기도 한다. 엮이자니 좋은 일은 없고, 멀리하자니 그렇고... 그래서 기무부대와 친한 곳은 간부식당뿐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관련 간부들은 기무부대를 두고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씹는 경우가 많다. 업무관련 접촉 외에 간부들이 기무부대를 가장 많이 찾을 때는 '장성급 진급 및 인사' 때. 장성급 장교의 경우 진급과 인사가 대외비로 되어 있고 이쪽이 가장 소식이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부대 병사의 경우 행정병 보직을, 그것도 정보분야 보직을 받았을 경우 매우 피곤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 보통 보안감사는 하루 이틀전에 통보를 하고 오지만 만약 당일 아침에 통보해서 10시쯤 온다면, 결과가 어떻든 피 보는 건 정보병이다. 실제로 08:30에 통보를 받고 한 시간 동안 50여 대의 PC를 싹 점검하는 경우도 있는 듯.

일반 초병헌병들도 그닥 기무부대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수의 기무부대 간부들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데다가 다른 군인들처럼 출입증을 목에 걸거나 가슴에 패용하고 다니는 경우가 적다. 당연히 전투복 차림도 아니고 출입증도 안 보이니 출입문에서 검문을 하면 "나 기무부대 ※※인데~" 하면서 트러블이 발생하게 된다. 대개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안면식이 생기면 그냥 경례하고 통과 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안면식이 있음에도 초병과 헌병에게 있는 권한을 십분 활용하여 끝까지 기무부대 간부에게 출입증을 제시하게 만드는 병사들도 있다.[14] 초병, 헌병 입장에서 기무부대원이라고 해서 꿀릴 필요가 없는데 정석적인 검문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렇게만 보면 초병, 헌병이 자기 부대의 부대장보다도 세다.

기무부대 보안담당 간부들은 그동안의 다경험으로 인해 보안감사능력이 탁월하여, 모르쇠로 일관하여 컴퓨터 내 기록을 삭제하거나, USB를 허가없이 무단 사용한 경우에도 모두 기록을 복구해 혐의를 입증시킬 수 있다. 하지만 USB접속기록 삭제프로그램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주로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잡혀온 경우 하사와 같이 군 초년생이 많다. 보통 간부들은 잡혀오면 대체로 혐의를 인정하는 편. 보통 이곳에 혐의를 받고 들어오면 다음 계급으로의 진급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지역에 주둔한 기무부대는 위장명칭을 쓴다. 주로 "안보상담소" 라든가 아니면 다른 민간기업 위장 부대 혹은 정부부처처럼 "XX공사", "XX물산", "XX기업사" 같은 명칭. 예를 들어 대구지역의 경우 태백공사라고 한다. 부대 자체가 안보상담소라고 적혀 있어서 하는 일을 굳이 따지자면 안보에 관해서 상담업무를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사실상 키보드 워리어들의 오프라인 본부

4. 지원 및 선발

장교
육군 해군 / 해병 공군
임관 후 4~6년차 장기복무자
전투병과장교(항공포함)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교육성적 및 근무평정 우수자
- 임관 또는 고군반 30% 이내자
부사관
임관 후 2~5년차 하사 또는 중사로서 장기복무자 또는 장기복무 희망자
양성 또는 초급과정 교육성적 상위 30% 이내자
인성 및 근무경력 우수자
구분 행정병 특기병
선발대상 육군교육사령부 육군훈련소 입영자
해군교육사령부 해군기초군사교육단 입영자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영자
공군교육사령부 공군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육군교육사령부 육군훈련소 입영자
- 후반기교육
해군교육사령부 해군기초군사교육단 입영자
- 후반기교육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영자
- 후반기교육
공군교육사령부 공군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 후반기교육
자격조건 대학4년제 재학 이상 학력 소지자
신체 2급 이상
대학 4년제 재학 이상 학력 및 기술특기 소지자
(2010년이후로 행정병과 특기병의 모집 학력이 동등하게 변경됨)
신체 2급 이상

이곳에서 근무하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신병훈련 중 면담/신원조회를 거쳐 선발한다. 육군(특기번호 1541)의 경우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만 선발된다. 행정병의 경우 논산에 입영한 징집병(일반병) 사이에서만 선발하며, 모집병(특기병)은 선발대상에서 제외된다. 선발된 인원은 국군기무학교에서 2주간 교육을 받은 뒤 전국의 기무부대로 배치된다. 해군 같은 경우는 병과에 따라 1~2명이 걸려서 간다고 하며 보통 후보는 5배수. 후반기 교육 최종 평가 당시 시험 본 후 배치 판정 받을 때 걸린다. 뽑는 인원은 매번 다르고 필요할 때만 뽑기 때문에 육군의 경우 보통 논산훈련소 전체에서 5주 동안 20명 이내 정도가 선발된다(운전병제외). 국방부 직할부대 특성상 고급 인력을 먼저 유치할 수 있는 '차출'의 개념을 사용하며, 최초 5배수 선발 당시에는 훈련소 입소 2주차가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훈련이 다 끝나야 어디를 배치 받을지 아는 병들로서는 대다수가 당황하게 된다.

배치 부대, 업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타 공인 환상의 보직. 하지만 파견 없는 부대에 배치되면 내부에서 불쌍하다고 위로받기도 한다. 따로 유격이나 혹한기 훈련 같은 건 안 받지만[15] 그만큼 매월 15일 민방위 훈련은 칼 같이 받기도 한다. 간혹 해병대 장병들은 훈련이 없다는 것에 실망해서 강도 높은 유격훈련을 받고 싶다는 소원수리를 제출하기도 하지만 가볍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최근 해병사단을 지원하는 예하기무부대(물론 간부와 병 모두 해병)에서는 부대장의 배려로 부대 해병들이 사단 해병들과 함께 각각 1주와 3주간의 유격훈련과 기습특공 훈련을 받고 수료하였다. 2011년도부터는 국방부 지침이 내려오면서 2박3일 유격이 실시되었는데 해군, 공군도 예외없이 실시한다. 원칙적으로는 유격훈련을 훈련단 이후로 받을 일 없는 해공군 출신들은 기무사령부로 오면 인상이 찌그러질 수 있다.

사령부 본부에서 근무하게 되면 간부 대비 병의 비율이 안습 수준(병사 수<<<<장교 수<<<부사관 수)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타 부대보다 편할지 모르나, 오히려 예하부대만 못한 경우가 많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병사가 각 부서에 배치되어 근무하는 시스템인데, 부서별로 사무실이 굉장히 많고 병사 수는 적어서 병사는 홀로 다수의 간부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즉 짬밥을 먹어도 만년 막내신세이다.

간혹가다 "모든" 기무부대 병이 사복입고 핸드폰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기무부대에 따라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듯. 특정 군부대 내에 위치한 기무부대의 경우 당연히 기본적인 근무는 근무복[16] 혹은 전투복[17]. 휴가를 나갈 때의 경우 사복을 입기도 했으나, 그것도 2009년 2월 공문이 내려와 폐지되어 이젠 전투복이나 근무복, 정복을 입고 나간다. 아니면 가지고 있던 사복을 출타 때 승인받고 입고 가는 경우도 많다. 업무 특성상 사복을 입는 병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당연히 업무 때문에 허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출이나 외부행사 때문에 관물대에 사복을 가지고 있는 병사가 대다수. 사복을 착용해야 하는 보직들은 피복비가 1회 지급되지만 워낙 액수가 작아 세트를 못 구매하거나, 아주 저렴한 걸로 맞추는 경우가 많다.

반면 "xx공사" 같은 이름을 내걸고 철저하게 일반 회사로 위장한 채 지역에 주둔해 있는 기무부대는 부대 내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물론 아예 경계근무 서는 초병도 사복을 입고 가스총을 찬 채 근무를 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무부대는 부대를 방문한 시장과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간부가 부대 내에서 사복을 착용하고 있다.

휴대폰의 경우 당연히 일반병은 가지고 다닐 수가 없고 간부를 모시고 다니는 운전병에 한해서 지급된다. 그리고 지급되는 휴대폰도 피처폰이 지급된다.

총기의 경우, 후방 국방부 직할 부대라고는 하나 기무사의 업무 특성상 침입자들에게 털리게 되면 매우 난감해지기 때문에 후방임에도 K2 소총, K3 경기관총, M60 기관총 등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아래에 나와 있듯이 그들이 깨끗하지 못한 부분을 알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일부의 경우 기무사령부가 나오면 나중에 취직 안된다면서 일부러 1차 과정에 선발되어도 생까는 경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 외려, 기무사 출신 전역자는 국가가 사실상 신원보증을 했다고 할 수 있기에 기업 입장에서 이들을 꺼릴 이유가 없다. 장교 출신들을 기업이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육체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려 자원한 해병대에서 기무사령부에 차출될 경우 슬퍼한다는 이야기는 있다. 대신 간부의 경우 기무사령부 소속이었다가 출신 군의 일반 부대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물의를 빚어 원복당하는 경우), 이 경우 몇년 동안 감시를 당한다고 한다.

5. 문제와 비판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거부하는 군인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니다”
-김어준, 31일 방송된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국군기무사령부는 비록 대한민국 국방부방첩기관이지만, 사실 1991년 설립된 이래로 단 한번도 대한민국 정부에 충성한 적이 없는 조직이다. 기무사는 자신의 정치적&권력적 입지를 유지하는데 적합한 지도자에겐 비합법적인 과잉 충성을 바쳤지만, 만일 그렇지 않은 정부라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감찰 및 공작은 물론,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등의 정부 전복을 시도했으며 설령 아무런 대의 명분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권력욕 만을 위해 해당 사건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

2010년대 말 드러나는 사실을 보면 지속적인 선거개입에 상관인 현직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도청, 수백만명의 민간인 사찰 그리고 반란시도 등 도대체 정상적인 군대로 봐주기도 힘들 정도로 막장인 조직임이 드러났다. 까놓고 말해서 현재 기무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인간 이하의 무언가들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이다. 이 쯤 되면 방첩기관이 아니라 자체적인 군사력과 첩보능력을 가진, 특정 정치세력과 동맹을 맺고 대한민국에 상주한 군국주의 성향의 반국가단체이자 군벌집단이라 봐야 할 지경이다.

5.1. 민간인 사찰 문제

기무사령부의 고유 임무는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이며, "치명적인 군사 보안 범죄나 군사기밀 유출 범죄, 군내 간첩활동에 연루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의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민간인은 원래 사찰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특히 문제가 된 모 기업 파업 사건과 같이, 군사 보안과 상관없는 일까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가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사찰을 실시했다는 윤석양 이병의 폭로는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빠뜨렸다. 설마하던 것이 양심선언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다시 민간인 사찰을 하다가 걸린 집단 아니랄까봐, 기무사령부는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에 대해서도 오히려 뻔뻔하게도 기무학교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청명계획을 폭로했던 내부고발자 윤석양 씨를 "조직과 군, 국가를 배신한 아주 나쁜 사람(...)" 이라고 매도하는 내용의 정훈교육을 실시하는 반성 따위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기무학교에서 교육하는 간부들은 교육받는 장병들 앞에서 윤석양 씨를 두고 "그놈 때문에 보안사 힘이 엄청나게 약해졌다. 보안사 때는 무시무시했다." 이라는 개소리까지 했다.

게다가 최근까지도 민간인 사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MB정권이 들어선 후 기무사령관의 정기적인 대통령 독대가 부활하였고, 2009년 여름 기무사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었다. 사찰내용이 기록된 캠코더와 수첩 등 증거자료까지 나왔는데도 어물쩡 넘어가려다가 소송 크리.(...) 결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결과 2011년 1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법원판결이 나왔다. 법원, ‘기무사령부 민간인 사찰’ 국가 책임 인정. 거기다 2011년 10월에 와서도 조선대학교 교수의 이메일을 해킹하다 걸렸고(...), 이 때문에 기무사령부의 불법행각이 또 문제가 되었다.

2018년 7월,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기무사에서 조직적으로 관여하여 유가족들을 성향별로 분류하고 사찰하였으며, 극우단체에게 맞불집회 정보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기사1) (해당기사2) 게다가 유병언 체포조를 만들어 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군 수사정보기관이 왜 비공식적으로 민간인을 체포하려고 한 것인지 의문. 해당 기사



유가족들을 성향 별로 분류하고 사찰한 것뿐만이 아니라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대, 그 군대의 기관이자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관인 기무사가 어떻게 해야 국민인 유가족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본 걸로 보이는 문서들까지 나오면서 이곳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더 강해졌다. 해당 기사

그리고 기무사 요원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해진해운과 전화,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해당 기사

추가로 2018년 7월 기무사가 군 면회객 수십만명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민간인 사찰에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해당 기사 간단히 요약하면 군에 면회오면서 적혀진 면회객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들을 대공수사부처에 이관, 이 부서는 수사협조명목으로 받은 경찰망을 이용해 면회객들의 주소, 출국정보, 범죄이력 등 수많은 개인정보들을 추가적으로 열람하여 진보성향 이력이 있는 인물들을 대공수사대상으로 삼고 각종 사찰을 벌였다는것이다. 심지어 중국을 다녀오면 적성국가방문을, 집회 및 시위를 하다 잡힌 이력이 있으면 범법행위자 등을 명목으로 사찰을 마구잡이로 진행했다고 한다. 추가로 국방부장관의 전화를 도, 감청하여 과거 노무현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국정토의 내용까지 감청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5.2.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과 지역감정

윤석양 씨를 두고 기무학교에서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했다는 "그놈 때문에 보안사 힘이 엄청나게 약해졌다. 보안사 때는 무시무시했다." 라는 발언도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치는 대목이다.저딴 소리를 기무사 예하의 교육기관인 기무학교에서 대놓고 했다. 기무사령부가 욕을 먹고 권한이 축소된건 그들 뒤에 있는 권력을 믿고 나대는 그들의 잘못이지 다른 이들의 잘못도 아니다.

현직 기무사 간부라는 작자가 대놓고 "민주당 찍으면 빨간 놈, 광주 지역은 빨간곳빨간 곳이면 여기인데? "이라는 개소리나 지껄이는 집단 아니랄까봐, 때려잡는 대상의 기준이 대체 뭔지, 방첩기관으로써 제대로 하는 일은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 일례로 막스 베버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을 이적표현물이라면서 압수해 가는 희대의 병크를 터뜨렸다(...). 우파 사상의 근간이 되는 책이 이적도서라니 우리나라 군대는 좌파 군대인가? 아마도 공산주의자 칼 맑스의 저서 자본론과 헷갈린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저 어이없는 이적도서 기준을 만든 건 경찰 쪽의 공안문제연구소 이긴 한데, 문제가 뭐냐 하면 공안문제연구소는 2005년에 이미 그 멍청한 이적표현물 감정 문제로 폐지된 후 치안정책연구소로 통합된 지 오래였으며 (그리고 폐지되기 직전인 2004년에 이미 이적표현물에 대한 감정서 발급 업무를 중단하기 시작했다)[18], 저 사건은 2012년에 일어났다. 그러니까 만약 기사 본문에 나온 기무사 측의 저 변명이 사실이라면, 기무사는 이미 7년 전에 사라진 경찰청 산하기관이 옛날에 만든, 더군다나 사라지기 직전 이적표현물 기준 발급을 중단했기에 더 이상 어떤 효력도 없는 옛날 구닥다리 기준을 들고 와서는 그걸 갖고 애꿎은 사람에게 사회주의 이적단체에 가입했단 혐의를 씌웠다는 거다(...). 그야말로 명목상으로는 방첩기관이지만 실제로는 독재자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치경찰(비밀경찰)로 활동했던 집단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잘 드러낸 좋은 예시.[19]

5.3. 녹화사업과 군 내 의문사 개입

또한 지금까지 보안사령부가 저지른 흑역사 중에서도 녹화사업은 그 어떤 흑역사보다 악명이 높다. 녹화사업을 담당했던 서의남(보안사령부 3처5과장, 중령)은 2002년 국가기관(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범죄증거일 수도 있는 자료를 다수 불태워버리고 잠적하여 수배되기도 했다. # 민주화 이후인 1989년에는 국민대생 김정환이 보안사령부 수사관들에게 생매장 협박을 받으며 프락치공작을 강요당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오명을 쌓아온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이른바 청명계획이 1990년 폭로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이 사건으로 인해 국군보안사령부는 위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듬해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를 없애고 국방장관과의 상하관계를 명확히 해 정상적으로 국방장관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 사령관 직급도 소장으로 한 계급 내렸으나 1년 만에 다시 중장으로 환원되었다.[20] 기무사령관은 중장 보직이며 기무사 부사령관과 참모장이 소장, 그 아래 수뇌부로 준장 7명이 편제되어 있다.# 기무사령관은 군 의전 서열에 있어 중장인 3성 장군/제독들 중 2번째 서열의 보직이며 따라서 이는 전체 현역 군인들 중 10위에 해당된다.[21] 국방일보 기사.

2001년 벌어진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에도 기무사령부가 배후에 상당 부분 개입되어있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무려 현직 기무사령부 인물이 2명이나 개입된 전대미문한 사건. 심지어 현직 기무사령부 소속원이자 사건의 용의자였던 이 중사가 2018년 2월에 자살해버리면서 뒤집어져 버렸다.

5.4. 불륜성범죄

2010년대 들어 현재 기무사령부 내부는 수많은 비리와 불륜으로 심각할 정도로 썩어있다고 한다. 특히 불륜 사건의 경우 중령급에서 개입하여 덮으려했다가 더 크게 터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2013년도 말 상당수의 중~대령이 제대날짜보다 앞서서 제대해버린 것을 보면 이를 무마하기 위한 더 윗선의 지시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15년에도 각종 비리와 불륜은 여전하다고.

간통죄가 폐지되어 불륜의 경우 범죄가 아니니 넘어갈 수 있어도, 외부 인력이 60% 들어간 20여명 규모로 만든 기무사 특별직무감찰팀이 성추행 갑질 등 문제 부대원 100여명을 추려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현역 기무사령부 소령이 채팅 성매매를 알선하다가 잡히는 일까지 발생했다.

5.5. 임무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들

  • 2015년 5월 13일, 기무사령부 전현직 간부가 탄창 4만 6천 개를 레바논 테러 조직에 팔아넘겼다는 게 밝혀졌다(해당기사). 이 정도면 방산비리를 넘어서서 한국의 우호국인 이스라엘[22]에 대한 적대행위다. 이스라엘에서 알았다면[23]엄청난 외교적 타격이 생길 행위를 군사정보기관이 저지른 것이다.
  • 2015년 7월 10일, 해군 출신 기무사령부 소령이 중국에 돈을 받고 해군 구축함 관련 군사 3급 비밀(Confidential) 정보를 팔았다고 한다. 사건의 내막. 요약하자면, 중국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해당 해군 소령이 폭력시비에 휘말렸었는데, 이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해줬던 중국인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이 중국인은 이 친분관계를 이용해,[24] 해당 소령에게 군사자료 및 기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18년 9월 3일, 쌍용차 사태 당시 집회의 민간인 사찰뿐만 아니라 아예 쌍용차 공장에 침투해 노조원들을 무차별 사찰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 정보기관이 왜 민간기업의 사태에 이렇게 깊숙이 개입을 한 것인지 의문.

5.6.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 특정 정치세력과의 유착 의혹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 당시 여론조작 활동을 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군 검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문제는 현재 군 사이버사 댓글공작을 자체조사하고 있는 국방부 TF를 감청(!)해 수사기밀을 이미 알아낸 사실이 들통났다. SBS

2018년 1월 15일,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국 기무부대원들이 동시에 참여한 가운데 정치적 중립 준수를 결의하는 정치중립선포식을 하였다. 일단은.[25] 이석구 사령관(육군중장)을 비롯한 기무사령부 장성들이 차례대로 서울 청계산에서 떠온 물에 손을 씻은 뒤 흰 장갑을 꼈다. (해당기사)

2018년 2월, KBS가 군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하여 보도한 결과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 당시 기무사령부가 청와대와 결탁하여 무차별 여론조작을 하고, 굉장히 편향적인 정치관을 드러내며 선거 개입 의지까지 적극적으로 드러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굉장한 파문이 일고있다.#1해당 기사

2018년 4월,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에 개입한 정황이 공개됐다. 이명박을 비난한 네티즌의 신상정보까지 넘겨받았다고. 해당 기사

2018년 5월,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광범위하게 일어난 댓글공작, 관제집회 등 온·오프라인 정치관여 행각을 기획한 여론조작의 만악의 근원으로 드러났다. 해당 기사

2018년 7월, 박근혜 청와대가 2014~2016년 전경련을 압박해 친정부 보수단체 수십곳에 69억원을 건네게 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기사

심지어는 참여정부 시기에 열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시 여당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였던 정동영도 아닌 야당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지며 노골적으로 보수 집권을 위해 활동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26] 해당 기사 특히 기무사가 17대 대선 전에 여론 분석자료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 제공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사 아카이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부터 이어지는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기무사의 내란음모혐의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드러날 경우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때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당 해산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역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임 소장에게 성 정체성을 들먹이며 군인권센터의 기무사 관련 진상조사에 대한 논점을 흐리려는 시도를 하자,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에 경고하면서 기무사의 내란음모에 자유한국당이 연루되었을 경우 통진당의 선례와 마찬가지로 정당해산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기사 이에 대해 김성태 원내대표가 임태훈 소장에 대해 망언을 한 의도가 진상규명의 논점을 흐려서 자유한국당과 기무사의 연루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도 버젓이 "여당(박근혜 정부 당시의 여당인 자유한국당)을 통해서 국회의장의 계엄해제 의결 직권상정을 원천 차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이 사건에 관여되었을 가능성을 염두해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

5.7. 특정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 모욕, 불법 감시

반면 국군기무사령부는 자신들의 정치적&권력적 입지가 문민통제에 의해 위협받을 경우, 이런 정권을 불신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모욕하거나 무력화 하려거나 심지어 불법도청같은 범죄도 서심치 않고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당시 현직이던 노무현대통령과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를 도청하고,[27]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기무사 요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으며, 2012년에는 노무현 자서전을 소지한 기무학교 학생에게 기무학교 교관이 "이런 불온서적을 읽어도 괜찮은가"라고 따지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해당 기사 기무사의 본래 존재의의를 생각해 볼 때 이는 투표로 선출된 한 나라의 국가원수를 남파 간첩으로 분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

이런 성향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기무사 계엄령 관련으로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국방부 장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만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무사는 국방부 휘하 기관임에도 대놓고 상관에게 거짓보고와 증거조작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며, 이는 현 정부 또한 일종의 '종북' 시위의 결과로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을 전복시킨 괴뢰 정부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28] 이쯤되면 정치적 성향을 넘어서 국가기관으로서 존재 의미가 의문이 드는 조직으로, 결국 이거 때문에 기무사가 날아가 버렸다.

5.8. 세월호 참사 관여

천정배 의원이 공개 바에 따르면 기무사 직원 이모 씨는 참사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42분 청해진해운 조모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약 1분 51초간 통화했다. 이 씨는 같은 날 오후 5시 6분에는 청해진해운 직원 홍 모 씨에게 전화해 6분 54초간 다소 긴 내용의 통화를 했다. 이 씨는 다음 날에도 두 차례 걸쳐 각각 11분, 3분 49초간 조 씨와 통화를 했다.[29]

기무사 직원 정모 씨도 16일부터 19일까지 청해진해운 직원 김 모 씨에게 메시지를 남겼고, 19일까지 전화 1통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천 의원은 검찰이 확보한 청해진해운 직원 김모 부장의 휴대폰 주소록에 총 15명의 기무사 직원 연락처가 존재하고,[30] 세월호 취항식에도 기무사 직원을 초청하려 한 정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국가정보원이 세월호를 관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발견된데 이어 또 다시 정보기관과 연관된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세월호가 정부의 비밀업무를 수행하다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가 만약 세월호가 인양되면 정부에 대한 비판과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으므로 청와대에 세월호를 인양하지 말고 수장시키자는 보고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 인양하는데 돈이 든다, 해외에서도 해상 추모공원[31]을 세웠다는 등 여론을 조작하여 세월호의 인양을 무산시킬 방법을 짜낸 것이다. KBS 보도. 한겨레 보도. 또한 참사 닷새 뒤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눈물 흘리던 모습도 기무사가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 보도(출처 KBS)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군사 기관이 아니라 자격없는 민간인에게 휘둘리는 무능한 대통령책사(策士) 기관이었던 것. 이들에게 따르던 사람들은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을 흥신소처럼 다루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유병언 검거작전에 간첩 수사에 국한되어 사용하도록 허락된 단파감청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 군 정보기관이 민간인 수사에 개입한 것도 모자라, 이를 위해 군용장비까지 동원된 정황이 드러난것이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무사가 단파감청도 모자라 사고 직후 시민들의 대화를 대규모로 불법감청하고 이를 위해 국가 공공기관인 전파관리소를 이용하려 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 이게 정말 심각한게, 만일 기무사가 정말로 방송과 통신, 생활 무전기 같은 국내 모든 전파를 관리 감독하는 전파관리소를 이용해 감청을 했다면, 말그대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대화내용을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상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일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보름 뒤인 2014년 5월초에 반정부 시위가 순식간에 악화될 수 있으니 계엄령을 조기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2 이 시기에 구체적인 계엄령 논의안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박근혜정부와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5.9.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계엄령 실행계획 수립

파일:서울지역작전군투입도.png
파일:계엄령작전군투입도.png
문건 원본 다운로드 링크 : 첨부파일 확인

이들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그들 스스로가 60~80년대의 군사독재 정권시절의 마인드로 살아감을 명백히 증명하며 자승자박하는 계기가 되었다.[32]

보안사가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게 된 계기인 윤석양 이병 사건보다도 더한 것이, 적어도 그 사건에서는 쿠데타를 모의했을지언정, 전차(탱크)로 거리에서 불특정 시민을 진압하겠다고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제 2의 5.18 민주화 운동이 이번에는 지역 한정이 아니라 전국구 버전으로 커질 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기무사 자체가 해체되어도 할 말 없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1990년에 발생한 윤석양 이병 사건도 사건도 경중 자체는 상당히 무겁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발포명령을 계획했다는 점에서만 보면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보다 훨씬 죄질이 나쁘다.

"광화문엔 공수부대" 탄핵 전 '계엄 대비' 작전 짠 기무사(해당 기사)

이철희 의원실이 공개한 기무사의 계엄령 실행계획 문건을 읽어보면 충격적인 부분이 많다. 단순히 대규모 과격 집회가 일어나면 군대를 움직여야 한다가 전부가 아니라, 보도검열단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유언비어 대응반'을 움직여서 소위 "선동(이 경우 선동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기무사로 추정)"을 저지른다는 SNS 계정을 차단하려 했다. 즉, 계엄령을 했을 경우 단순히 군대를 움직여서 집회를 제압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국가 기관들을 총동원해서 언론과 인터넷, SNS까지 장악하려 했다.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문서 참조.

그 외에도 24개의 정부부처를 전부 장악하려한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나 다른데는 그렇다고 쳐도, 기무사가 전남 지역에 파견하려고 했던 계엄군 부대는 1980년에 광주에서 학살을 벌였던 그때 그 부대이다. 광주와 전남 지역 방어 담당 향토보병사단인 제31보병사단을 내버려 두고 굳이 특전사를, 그것도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부대를 그때 그 지역에 대놓고 다시 배치하려고 한, 저 전범이나 할 발상[33]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기무사는 존재 자체가 그냥 절대악 그 자체라는 욕을 들어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여러모로 국민에게 충격을 주는 내용. 이전부터 기무학교에서 대놓고 범죄집단이었던 보안사 시절이 좋았다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결국은 살인은 물론이고 강간까지 무죄로 만들어주는 시설을 만들거나 만들어줘서 하는 짓이 들통나도 묵인해줬던 지들 옛날 주인님이었던 전모씨 때를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진지하게 그리워하는, 아주 뼛속까지 학살범죄자인 놈들이었다는 진실이 확인된 것이다.[34] 실제로도 5.18때 강간을 저지른 군인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실제 역사로도 독재정권이 최초로 만드는 것은 사람을 잡아가두고 죽이는 시절이며 못배운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일수록 살인과 강간과 폭력을 선호하는 인간들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6일 군인권센터에서도 기무사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문건과 달리 구체적인 병력 규모까지 언급됐다. 또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부대 배치 계획까지 나왔는데,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은 군 체계상 이러한 병력 운용까지 계획하는 건 기무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국가안보실 같은 윗선에서 이를 계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인권센터는 문건을 보고받은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문건을 보고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계엄사령관으로 내정된 장준규 전 육참총장 등 관련자들을 내란음모죄[35]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편 SBSJTBC에서는 이 보고서가 국방부의 자체적 판단, 혹은 군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는지, 혹은 이철희 의원의 제도 검토 요청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놓고 치열한 보도전을 펼쳤다. 이것에 대해선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이 어이없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분개해 기무사 해체 청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것이 권력이라는 것은 잘못 잡은 놈들 곁에 친인척 같은 것들이 모일 경우 엄청난 부패가 터지기 때문이다.

국방부도 자체 조사에 나서 대대적인 기무사 개편을 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또한 7월 9일 추가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들이 탄핵 심판 시기뿐이 아닌, 일이 터질 경우 기호지세의 각오로 진즉부터 계엄령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관련 보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9.1. 송영무 장관과의 진실게임 논란

송영무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위수령 문건을 입수하고도 선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지방선거 이전까지 문건을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야권을 비롯한 국회에서 송 장관이 왜 중요한 문건을 보고받고도 청와대에 즉시 보고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나왔다.

2018년 7월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100기무부대장인 민병삼 대령이 송영무 장관에게 위수령 문건을 보고할 때 송 장관이 "위수령은 내가 법률 자문팀에게 물어보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송 장관은 이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기무사에서는 25일 장관 발언을 담은 보고서를 증거로 내밀었으며 국방부에서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닐 뿐더러 이런 짓을 할수록 기무사 개혁의 명분만 제공할 뿐이라는 반박을 내놓았다.

사실상 국방부와 기무사가 정면 충돌에 한국군의 문화로 보면 기무사가 대놓고 국방부 장관에게 항명과 하극상을 한 행위라 진실여부와는 별개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36] 현재까지 특전사령관이 마지막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6. 기무사 세월호 참사 관여 규탄시위

결국 계엄령 논란이 일어남에 따라,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진보단체 416연대가 기무사의 세월호 참사 관여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기로 하였다. #@

6.1. 한국 극우 단체의 시위 방해

  • 자유대연합이라는 한국 전국 300 극우 단체 연합이 아예 세월호 관여 규탄시위를 종북으로 규정하는 방해공작을 대놓고 벌일려고 일찍 포진해 있다(#@). 자유대연합의 주축 중 하나는 박사모의 구성원들과 동일한 박근혜 찬양 성향을 보이는 애국문화협회(#@)며, 자유대연합이 처음 설립된 2018년 3.1절부터 박근혜 찬양에 반대하는 단체가 단 한 단체도 없었으며 한국 극우 정치인들이 자유대연합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는 한국 극우에서 암묵적으로 입장을 표방하는 단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7. 역대 사령관

8. 출신인물

  • 장교 및 병
    성명비고

    윤석양 1990년 10월 4일 육군 이등병 신분으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때 불법 사찰 내용을 양심 선언하여 그 해 가을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 인물이며, 부대 이름도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

    허삼수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인사처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허화평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비서실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보좌관과 정무1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오세훈 1988년 5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육군에 입대하여 보안사 정보처로 발령받아 약 30개월간(89년 7월~91년 1월) 근무했고, 1991년 2월 중위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정훈장교(군사교육정책분석장교)로 주로 '문무대전방입소'(80년대 대학생 입소훈련)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김진태 현 자유한국당 의원.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로 수료 후 임관하여 1992년까지 공군 소속으로 국군기무사에서 공안담당 법무관으로 복무했다.

    이서진 연예인.

9. 관련 문서

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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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까지의 국군기무사령관 부착물.
△지휘관 휘장을 패용했다.
파일:PYH2018012517900001300_P4.jpg
▲2018년부터 바뀐 국군기무사령관 부착물
2017년 12월까지는 사령관이라 지휘관 휘장은 패용하는데, 지휘자 견장은 착용하지 않는 다소 이상한 부착물 패용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월, 국군기무사령관용 흉장이 새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기무사가 해편된 이후 안지사령관은 일반 지휘관 휘장을 패용한다. 견장은 착용하지 않는다.

제37대 사령관인 허평환 중장까지는 기무사령관 재직시절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지 않았으나, 제38대 사령관인 김종태 중장시절부터 기무사령관이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후 취임하는 사령관들은 모두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다가 2018년에 새로 바뀐 기무사령관 휘장을 패용했는데 기무사가 해체되어 안보지원사로 개편된 이후에는 다시 지휘관 휘장을 패용. 기무사령관 전용 휘장은 1년도 못 가 폐지되었다.

10.1. 기무부대가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전선 앞장을 서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
미덥다 튼튼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겨레와 국토수호 우리의 사명
청춘의 몸과 마음 모두 바쳤다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
미덥다 튼튼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기무부대가


[1] 동아일보, 경기일보. 2008년 이곳으로 이전 후, 옛 건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사용 중.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대미술관 일부 건물을 만들었다.[2] 육군: 제100부대, 제101부대
해군: 제102부대
공군: 제103부대
[3] 정확히는 해체 후 개편이다. 그래서 신임 사령관이 그대로 남는다.[4] 방첩부에서 보안사로 바뀐 결정적 계기는 같은해에 있었던 1.21 사태때문이다.[5] 여기에는 공산당과 연계된 조직이 많았으나, 문제는 김창룡이 죽였던 사람들 중에 공산당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6] 이때 박정희는 약 300명의 남로당 동료들의 정보를 제공해 모두 죽게 만들고, 그 대가로 자신 혼자 살아남았다.[7]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한 초유의 사태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당연히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다른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임명할 수는 없었지만(김재규의 끄나풀이 중앙정보부 내부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 지 모르므로) 그렇다고 해서 정보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무시하고 다른 정보기관의 장에게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맞긴 것은 분명 당시 한국 정부의 실책이었다. 하여튼 이 사건 때문에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보안사령부의 하위기관처럼 전락해 버리고 만다.[8] 1894년 1차 갑오개혁 당시 설치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따왔다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의 '기무'는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 군국기무처는 폐정 개혁을 위한 초정부적 기구로서 정보 통제나 감시와는 무관한 '입법 기관'이었다.[9] 이를 어기고 함부로 작성하다가는 기무사령부에 끌려가서 조사받는 게 아니라면 기무사와는 전혀 다른 정보기관에서 대접하는 식사를 하면서 조사를 받게된다.[10] 기무사에 차출된 인원들은 진급에 필요한 보직을 밟기 어려우므로 사실상 커리어를 말아먹고 계속 버티던가, 퇴역하던가의 선택지만이 남은 셈이다...[11] 기무사의 간부들은 본래 다른 부대 소속이었다가 기무사로 파견을 나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군 인사권을 쥔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에게 원대 복귀 지시를 내린 것이다. 군잘알(?) 누리꾼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조치는 문 대통령이 이들의 경력을 사실상 끝장낸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진급을 하려면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여단장 같은 필수 보직들을 거쳐야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가 있다. 그런데 기무사나 정보사처럼 일찌감치 이쪽에서 '파견 나와' 근무했던 사람들은 일선 부대의 지휘관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작전참모, 정보참모 같은 필수 보직들을 거치지 못하고 그냥 기무사빨(?)로 진급을 해온 것이기 때문에, '기무사 메리트'가 사라진 데다 이런 필수 코스를 밟아본 적이 없는 관계로 상위 계급으로의 진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이렇게 '일반 부대 장교'로 전락한 이들은 사실상 진급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12] 90년대 이전까지는 보안부대라고 불렀다.[13] 흔히들 기무대라 부르나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사단 소속이 아닌 기무사령부에서 파견한 부대이므로, 기무부대가 정식명칭이다. 즉 미토콘드리아처럼 한 울타리 두집살림이 공식적 대접이라는 것.[14] 사실 안면식이 있다 해도 검문(피아식별 불가능시 수하)는 해야 한다. 어제 출입 가능한 인원이었다 해도 오늘 출입 불가능한 인원이 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직 변경, 부대 전출, 파면과 해임 등으로 신분이 바뀌는 경우가 대표적.[15] 기무사령부 예하부대가 워낙 많다보니 각 기무 부대장이나 사령관의 재량에 따라 달라진다. 사령부와 국방부 기무부대, 210기무부대, 서울권 파견부대 등 서울권 기무부대는 수방사예하부대로 가서 수방사장병들과 유격을 받는다. 전방사단 기무부대의 경우 혹한기 훈련을 받는 경우도 있다. 특전사 기무부대의 경우에는 특전장병들과 함께 공수기본 훈련도 수료한다.[16] 해병, 공군은 근무복이 전병력보급이지만 육군은 없기 때문에 해병, 공군과 같이 근무하는 국직부대나 수방사의 경우에는 육군 근무복이 보급 구두와 함께 지급된다.[17] 해군의 경우 전역할 때 전투복이 보급되기 때문에 육군 공군 전역자가 놔두고간 피복을 사용하거나 사시사철 청바지만을 입고 다녀야한다.당가리가 아니고?[18] 치안정책연구소로 통합된 이후로는 순수 치안 관련 학술연구만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다.[19] 심지어 09년 군번으로 기무부대에서 전역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기무사 간부라는 작자들이 "전 좌파 정권이 나라를 망쳐놔서 지금 북한이 더 날뛰는거다" "(부재자 투표할 때) 민주당 찍냐? 이거 이거 빨간 놈이네" "(광주에서 재학중인 사람에게) 야, 니네 지역 빨갛지? 뭐 하나 건수 물어와 봐 휴가 보내줄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아마 노무현은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자살을 한 것이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투신한 것이다" 같은 무지막지한 개소리들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5.18 민주화운동에서 학살 벌여놓고도 적반하장으로 떵떵거리는 특전동지회 전범들과 동급의 쓰레기 집단 인증.[20] 하나회 출신 기무사령관을 숙청 후 후임 사령관이 소장이어서 소장이 사령관이었다가 후임 사령관부터 다시 중장이 보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나회 문서를 참조.[21] 위로는 대장 8명+해병대사령관(중장 1위)이 있다.[22] 이스라엘은 군사적인 지원 외에도, 미국에 대한 우호를 바탕으로 친한 행보를 보이는 국가다.[23] 모사드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모를 리가 없다.[24] 애초에 폭력시비 및 해결 과정 자체가 중국 정보기관에서 짜둔 시나리오에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25] 물론 이 이후 굵직한 사건이 텆지면서 말로만 중립을 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26] 물론 군은 원칙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여당 후보인 정동영을 지원하던, 야당 후보인 이명박을 지원하던 간에 선거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아래에 나오는 참여정부 시기의 대통령 통화 감청 건과 연관지어본다면 기무사가 대놓고 국민이 선출한 진보정권을 무시하였으며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보수정권 부활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지게 된다.[27] 게다가 이 당시 통화 내용은 군사적 안보 사항과 전혀 관련 없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 관한 내용이었다.[28] 그리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리자나 마찬가지이다. 위 문서들에서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29] 한가지 특기할 점은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기무사가 개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무사는 이제껏 정권의 비호를 위해서 온갖 공작을 다했던 집단이지만 대형 재난 사고에 대해서 당일 그것도 거의 사고 직후부터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30] 이 대목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백 번 양보해서 기무사가 청해진 해운에 대한 정보수집을 했더라도, 민간기업 하나를 대상으로 기무사 - 또는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 직원이 1명 이상 배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해, 민간기업 간부가 기무사 직원의 연락처를 15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정황이다.[출처: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 YTN 뉴스앤이슈 2018.07.06.][31] 해상 추모공원의 예시로 든 게 진주만 공습 당시 침몰한 전함인 애리조나가 침몰한 자리에 세운 USS 애리조나 기념관이였는데, 애리조나는 생존자를 건질 틈도 없이 폭격으로 침몰했지만, 세월호는 충분히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미온적인 구조 활동으로 인해 생존자들이 사망한 것이라 절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32]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90년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이후로도 간판만 바꿔달았을 뿐, 괜히 역대 사령관에 전두환, 노태우가 있는게 아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이드라가 여기도 있었네??? 하이드라 드립이 절대로 농담이 되지 않는 게 하이드라 탄생 배경에는 능력 있는 나치 세력을 흡수하면서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는 쉴드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군부와의 대립이 알게 모르게 있었는데, 결국 9년 동안 다시 유신세력에게 잠식해 들어가는 기무사가 있었다고 보면 하이드라와 별로 다를게 없다. 때론 현실이 영화를 능가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33]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학살행위는 국제형사범죄법 8조 집단살해죄와 9조 인도에 반한 죄에 저촉된다. 시민들을 진압한 것이기 때문에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언급은 어불성설이다. *[34] 저 글은 농담이 아니다. 삼청교육대형제복지원을 보도록. 정유라가 정유라따위일 정도다. 반란이 성공했으면 반란자들의 친인척들이 정유라급으로 변신했을 것이다.[35] 1980년대에 비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사점이 있다.
1) 위수령 및 계엄령을 발동하여 군대를 움직여서 24개의 정부부처를 전부 장악이라는 점에서 1979년 12.12 군사반란 상황과 유사하다.
2) 국가 기관들을 총동원해서 언론과 인터넷, SNS까지 장악한 뒤, 반발하는 시위를 진압이라는 점 1980년 서울의 봄, 5.17 내란 상황과 유사하다.
3) 탱크와 장갑차, 공수부대까지 동원해서 시위대를 학살하려 한 계획을 통해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로 일어난 시위를 강제로 유혈진압한다는 계획이라는 점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상황과 유사하다.
4) 군대에 의한 유혈진압이 완료되면 사실상 새로운 군사독재가 시작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두환 정권 취임 상황과 유사하다.
[36] 국방부 장관의 말뒤집기라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기무사만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증거라도 내놓는 문건 자체도 신뢰성도 낮고 불법적인 감찰 의혹이 생길 수 있는 물건이다.) 입증이 어렵고 국방부 장관에게 대놓고 항명한 거 자체가 문민통제 무시로 해석될 여지까지 있어서 기무사 억울론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