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8 21:19:16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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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제14·15대
홍사덕
제16대
오세훈
제17·18대
공성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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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ownloadfile-1000.jpg
이름 오세훈(吳世勳, Oh Se-hun)
출생일 1961년 1월 4일 ([age(1961-01-04)]세)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2]
본적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3]
본관 해주 오씨 추탄공파[4]
신체 A형, 182cm
종교 천주교(세례명: 스테파노)
최종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 박사
병역 육군 학사장교 중위 만기전역
가족 1남 1녀 중 첫째(여동생 오세현)
아내 송현옥, 슬하 2녀[5]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6
현직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별위원장
자유한국당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
경력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특별시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바른정당 최고위원
고려대학교 융합대학 석좌교수

1. 개요2. 생애
2.1. 정치권 입문 이전2.2. 국회의원 시절2.3. 서울시장 시절
2.3.1. 무상급식 주민투표 및 서울시장 사퇴
2.4. 서울시장 사퇴 이후2.5. 20대 총선 출마와 낙선2.6. 19대 대선과 그 이후2.7. 자유한국당 입당 및 당대표 도전
3. 쟁점
3.1. 디자인서울
3.1.1. 제2롯데월드의 건축 심의 및 허가 관련 책임3.1.2.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3.1.2.1. 반론
3.1.3. 세빛섬3.1.4. 고척 스카이돔3.1.5. 경인 아라뱃길을 잇는 서해뱃길3.1.6. 세운 초록띠 공원
3.2. 뉴타운
4. 논란
4.1. 2011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사퇴4.2. "태극기 부대 낙인찍고 배제하는 건 반민주적 행태" 발언 논란4.3. 핵무장론 주장4.4.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 못 채울 것"4.5. 故노회찬 전 의원 사자명예훼손 논란
5. 선거 이력6. 가족관계7. 저서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자 변호사. 전 서울시장.

한때는 댄디 보수계의 대표 주자로서 보수정당의 차기 지도자급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서울시장으로서 이명박의 뒤를 이어 시정을 운영해가면서 한나라당의 수도권 표심 잡기에도 기여를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재임 중이던 2011년,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위험한 정치도박을 감행하였는데, 투표율이 개표 요건인 33.3%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6] 결국 시장직을 사퇴, 모든 것을 잃고 만다.[7]

이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더불어민주당정세균에게 10% 이상의 격차로 패배하며 재기에 실패한다.[8]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는 보수진영 내에서 개혁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하였으나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결국 2018년 11월 29일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한다. 2019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당대표에 도전, 31.1%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황교안에게 밀려 당선되지는 못했으나 일반국민 여론조사 부문에서 황교안을 누르고 1위를 기록함으로써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이다.

2. 생애

2.1. 정치권 입문 이전

중동중학교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다가 고려대학교 법학과편입학했다. 사법시험에 붙은 뒤에 국군기무사령부에서 학사장교로 병역을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9]

그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였고,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있다가 귀국하여 민사소송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변호사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일조권' 소송 사건이다. 1993년 인천의 경남아파트 일부 세대에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적이 있는데, 당시 주민들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 33세의 오세훈 변호사였다. 오세훈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는 오세훈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환경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다.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한 후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 현 JTBC 보도부문 사장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 PD가 오세훈 변호사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했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90년대판 <솔로몬의 선택><오 변호사 배 변호사>였다. 첫 방송이 나간 후, 훤칠한 외모의 젊은 변호사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한 변호사에게 박혀 있었던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하여 큰 호응을 얻게 된다.

그후 방송능력을 인정받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담당하였고, 96년 SBS 뉴스 따라잡기, 98년 '갑론을박 동서남북', 99년 '오늘과 내일' 등 각종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또한 남성복브랜드 '로가디스' 와 청호나이스 정수기 등의 광고에 CF 모델을 맡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장 브랜드와 정수기 브랜드는 당시 탑 모델[10] 급의 배우로 광고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당시 변호사로서의 스마트한 이미지와 장신의 키(185cm), 그 외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하여 '일반인'으로서의 광고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

95년 발간된 그의 에세이인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을 기록했다.

96년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혼하고 싶은 남성' 순위에서 영화배우 이병헌을 제치기도 했으며, 주간지 기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멋있는 남성' 설문조사에서 순위권에 올랐다.

2.2. 국회의원 시절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11] 출마하여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소장 개혁파로 주목받으며 정치개혁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키는 등의 업적[12]을 쌓았다. 오세훈이 대표발의한 정치자금법 관련 법안은 이른바 '오세훈법'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 이후 '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의정활동 잔여금 2,500만 원 중 1,500만 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 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 간의 임기기간 내내 시민단체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되었다. 2003년에는 '코리안 베스트드레서 어워드 정치인부분'을 수상하는 독특한 수상 이력도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2.3. 서울시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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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계를 떠나 있었다가 이명박의 뒤를 이어 2006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열린우리당강금실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며 민선 최연소 시장이자,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많은 업적들을 달성했다.

2007년 민원 관련 문의전화가 분산되어 있어 복잡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통합민원서비스인 다산콜센터(120)를 설립하였다. 또한 그동안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각자 대중교통 환승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천시, 경기도와 협의하여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를 실시하였다. 또한 '서울시 공기를 제주도처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천연가스 버스 교체 사업 및 도로 물청소 등의 환경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2년 후 서울시 미세먼지 농도가 23%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한강 르네상스의 경우 사업이 진행되면서 논란이 생겼지만, 1단계 사업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1단계 사업 결과 서울 지천까지 한강 자전거도로가 연결되었으며, 강변북로올림픽대로한강이 가로막혀 있었는데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다만 관광 크루즈를 띄우기 위해 바닥을 긁어내고 대형 선착장을 짓는 건 논란이 컸다.

복지 정책의 경우, 무상급식 논쟁으로 인한 일부 시민들의 편견과 달리 오 전 시장은 저소득층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었다. 저소득층 자립을 돕기 위해 저축금액만큼을 서울시에서 추가로 적립해주는 희망플러스통장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가입자의 98%가 3년 만기를 채워 전셋집을 얻거나 창업을 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학교 보안관을 국공립초에 2명씩 배치하고 학습준비물을 학교에서 대신 준비해주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보육료를 국공립 수준으로 인하하고, 소득 하위 70% 가구의 영유아 보육료도 전액 지원했다. 다만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인해 "자가당착"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선거 때는 뉴타운을 50곳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부동산 투기와 집값 상승 조장 논란이 일자 뉴타운 축소로 노선을 바꾸어 취임 이후 5분의 1 수준인 10곳만 선정했다. 그리고 장기전세주택 '시프트'와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 여야 모두 호평하였다. 다만 시프트와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각각 1만 8000호와 5만 호로, 너무 적다는 게 아쉬운 부분.

오세훈 시장의 치적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로7017이 단지 고가의 개보수에 불과한데도 대략 700억 정도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세훈 시장 때의 건물들이 낭비라고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제2롯데월드 관련 문제에 관해서도 결론적으로 사용허가를 내린 사람은 박원순 시장이며, 박원순의 사돈이 롯데호텔 임원이었으므로 이에 대해 커넥션 의혹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외에도 '재산세 공동 과세'로 강남3구가 손해를 본 적도 있었다. 각 구별로 따로 과세하던 재산세를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안 좋은 구에 나누어주는 것이다.

2.3.1. 무상급식 주민투표 및 서울시장 사퇴

2011년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되면서 임기 도중 자진사퇴하였다. 이는 당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 목적, 이미지 관리를 위한 사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 첫 임기 때와는 달리[13] 야당인 민주당이 서울시의회 106석 중 무려 79석을 차지하면서 서울시의회에 출석할 때마다 그야말로 먼지 털듯 털렸던 적이 많았는데, 하도 털려서 심지어는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출석을 회피한 사례도 많았다. 오세훈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결과는 전혀 좋지 못했다.

2.4. 서울시장 사퇴 이후

사임 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에서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하였다. 그후 로펌의 고문변호사와 겸하여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강의하였고, '미래사이테크포럼'의 대표를 맡아 각종 미래첨단산업 연구와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 리마, 르완다 키갈리에 중장기자문단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관악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하였다.

2015년 초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임 후 공석이 된 국무총리 자리에 후보자로 거론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큰일하실 분에게는 이 자리가 맞지 않을 것' 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후 오세훈 본인은 '국무총리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 이라며 넘어갔다.

2015년 5월과 6월에 시행된 여론조사에는 차기 대권주자 7위와 5위권에 들기도 하였다. 2015년 9월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6%로 5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20대에서는 김무성을 제치고 새누리당 계열 후보 중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말에는 야당성향이 매우 강한 광주지역 방송(KBC)에서 시상하는 '목민자치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5. 20대 총선 출마와 낙선

당의 이른바 '험지' 출마 요청[14]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17일 종로구 출마를 선언했다. 해당 기사 참조 사실 종로구노무현, 이명박 등 과거 대통령들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대선과 관련이 있다는 관점도 있다. 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그 자체로 서울의 핵심이기 때문에 인구규모에 비해 꽤나 중요시되는 선거구이다. 당내 경선에서 '지역기반 탄탄'을 내세운 박진 전 의원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종로구에 출마하였다.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597635040db8782e85d24dc9b2eaf23331d5464b__mn377583__w800__h450__f74997__Ym201604.jpg
플래카드에서 정세균에게 디스당하였다. 참고로 이 사진의 장소는 혜화동 로터리.

3월 24일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45.8%,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28.5%로 조사되었다. 열흘이 지난 4월 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약 41%로 약 39%인 정세균 후보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치열한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순위는 처음으로 김무성 대표를 앞지른, 여당 내 1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 4월 7일 발표된[15] KBS 여론조사에서는 정세균 후보와의 격차가 채 1%도 안되는 초박빙의 접전으로 나타났다. 불과 2주일 전, 같은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17% 이상 여유있게 앞섰던 것을 생각하면,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진 것.

4월 13일 출구조사 결과 42.4%로 51%인 정세균 후보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 개표결과 42.4%에도 못 미치는 39.7%를 획득하면서 낙선했다.[16]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던 홍사덕보다도 표를 더 못 받았다. 새누리당이 종로구에서 득표할 수 있는 기본표도 못 받은 셈.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자 상당수가 정권심판론에 맞물려 이탈하기도 했고, 정세균 후보의 노련한 밑바닥 선거전략이 통한 점도 있으며, 그냥 오세훈 후보를 안 좋아해서(...) 정세균 후보에게 투표한 영향도 컸다. 거기에 자기 선거구 유세는 안하고 다른 선거구 가서 지원유세하는 바람에 미운 털이 박혀서 밀착형 유세를 하던 정세균에게 바닥 민심이 기운 것도 크다.[17] 당내 경선 잡음의 영향인지 박진 전 의원의 조직이 오세훈 후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말도 돌고 있다. 서울시장직 중도사퇴로 인한 비호감이 낙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세균은 떡하니 국회의장이 되었다. 만일 오세훈이 정세균을 이겼다면 더민주가 원내 1당이 되는 일도 없었으며 국회의장으로 서청원이 될 가능성도 소수나마 있던데다가 도와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우원식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까지 함에 따라 한번의 실패가 수많은 정국을 바꾸었다.

험지출마론을 거부한 3명[18] 가운데서 서울특별시 종로의 오세훈과 대구 수성갑의 김문수가 낙선하고, 부산광역시 영도에서 당선된 김무성은(이쪽도 자기 본진임을 감안하면 55대40 정도의 싸움이었으니 고전한 것이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면서 정말로 험지를 선택한 것이 맞다는 식의 농담이 돌기도 했다. 3명 모두 대선행보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적 반응.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서 25%p차이로 패배한 김문수는 정계 은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낙선 이후에도 새누리당 내의 대권주자 인물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래도 오세훈의 대권후보 지지도가 김무성보다 높은 여권 내 1위라는 거다.[19]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 후 2016년 8월 9일에 진행되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 단일 후보 주호영 의원을 공개 지지하였는데, 친박이정현이 주호영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박’ 김무성·오세훈 대권가도 타격 전당대회 직전에 이정현 대표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정현, 오세훈의 비박계 지지에 발끈…"매우 유감"

2.6. 19대 대선과 그 이후

2016년 9월 21일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하여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몇 가지 논란에 대하여 반박했다. 먼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채무 규모가 부각된 것에 대해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투자적 성격의 채무가 많아 뉴타운 사업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회수될 채무였다고 반박했다. 또한 세빛섬의 별명이 '세빚둥둥섬'이라는 점에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일부 투자를 했을 뿐 서울시 예산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비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재임 시절 계획한 뉴타운 사업들 중 상당수가 원안 추진되지 못하고 좌초한 점, 세빛섬은 서울시 예산의 직접 투자 여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인 공유수면상의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문제라는 점[20] 등을 고려하면 모두 궁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1월 15일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원회 12인 공동대표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분노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다 합쳐서 지지율 10%도 안 되는 대선 주자들이 새누리당의 얼굴에 먹칠한다"고 하며 이를 비판하였다.#

2017년 1월 5일 새누리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으나, 개혁보수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당 대표 급의 마땅한 당직이 주어지지 않으면 원내 인사인 유승민 의원이나 광역단체장인 남경필·원희룡 지사 등과의 대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로 신당 참여 여부를 주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7년 1월 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같은 해 1월 2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선거대책위원장으로의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단은 1월 23일 바른정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반기문 캠프와 바른정당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을 하는 듯 하다.# 반기문 캠프 합류설이 계속되자, 보다못한 이혜훈 의원이 한 마디 했다.# 그런데 2월 1일 반기문이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아무 실익 없이 바른정당 내에서의 입지만 스스로 좁힌 꼴이 되어버렸다.

그 후 1년 정도 조용히 지내다가, 2018년 2월 5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통합을 앞두고 바른정당을 탈당하였다.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지는 않고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도중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출마하지 않았다.

2.7. 자유한국당 입당 및 당대표 도전

2018년 11월 29일, 자유한국당에 재입당하였다. 당일 기자 간담회에서 '태극기부대도 포함하는 보수통합을 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바른정당 창당은 개혁보수 가치를 위해서 아니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건 명분일 뿐이고 솔직히 반기문을 대선후보로 추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2019년 2월로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미애가 현역으로 있는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광진을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민주당 초강세 지역구 중 하나라 생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많다.[21] 뭐 본인 나름대로는 추미애쯤 되는 거물을 꺾는다면 자신의 정치적 주가를 올릴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겠지만. 총선은 2020년이니 꼭 추미애와의 맞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기보다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2019년 1월 현직 박원순 시장의 광화문광장 계획을 비판하였다. 재구조화안을 둘러싸고 박 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간 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오 전 시장은 "미리 충분히 논의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하니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것"이라며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이 광화문광장에 정부 소유 토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광화문광장은 오 전 시장의 작품으로, 전문가 숙의와 여론조사를 통해 현재의 중앙분리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세계일보

2월 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를 선언했다. 영남의 국회의석을 모두 먹어도 수도권에서 과반을 먹지 못하면 총선은 패한다고 주장했으며 과감히 박근혜를 극복하자는 발언으로 이목을 모았다. 홍준표, 황교안, 김진태 등의 당권주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반면 오세훈은 박근혜 극복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비박의 표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전체 국민들 사이에서는 3명의 후보들 중 지지도 및 호감도가 가장 높으나, 당내 지지도 및 호감도는 황교안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조사된다. 2월 19~21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7%가 오세훈 후보, 22%가 황교안 후보, 7%가 김진태 후보를 답했다. 하지만 한국당 지지층에서만 보면 황교안 후보가 52%, 오세훈 후보가 24%, 김진태 후보가 15%로 조사되었다. 호감도 조사에선 오세훈 후보(41%), 황교안 후보(27%), 김진태 후보(13%) 순이며, 한국당 지지층만을 놓고 보면 황교안 후보(71%), 오세훈 후보(49%), 김진태 후보(38%) 순이다. 기사

정두언 전 의원의 말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 1위는 황교안이 확실하고 오히려 2위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면서, 만일 오세훈 전 시장이 아니라 김진태 의원이 2위가 되면 그때야말로 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으로 간다(즉,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2월 27일 있었던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황교안 후보가 6만 8713표로 당선되었고, 오세훈 후보가 4만 2653표를 얻어 2만5924표를 얻은 김진태 후보를 앞섰다. # 그러나 국민 여론조사에서 50.2%(2만690표)를 기록해 37.7%(1만5528표)를 얻은 황교안 후보와 12.1%(4969표)를 얻은 김진태 후보를 앞섰다. 당심을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민심과는 가장 가까운 후보였다는 평이 나오며, 차기 총선에서 확장성 이슈를 이끌면서 당내 중도 및 개혁보수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이 결과에 대해서 시사저널 판도라에서 박지원 의원의 말에 따르면 본래 이런 전당대회는 당의 지도자들을 당원들이 뽑는 대회이기도 한 만큼 시대정신이 반영되는 법이라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와 시대정신을 반영한 오세훈 시장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이 나오는 것은 순리라고 평했다. 만일 그 순리조차 나오지 못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3. 쟁점

3.1. 디자인서울

'디자인서울'이라는 모토로 여러 사업을 추진했으며, 이에 따른 논란과 비판도 상당하다.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 이뤄진 사업중 논란이 큰 사업들은 다음과 같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경우 전임 오세훈 시장 때는 현재의 고가 옆에 새로운 고가를 신설 후에 원래 고가를 철거하기로 했다.[22] 주된 비판은 건물을 지어놓기만 하고 운영이나 사용에 있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빛섬, 고척 스카이돔, DDP 같은 경우 건설 이후 사용방식에 대한 불분명성으로 빈 건물로 남아있다가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로 박원순 시장이 운영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며 정상화되었다. 아라뱃길의 경우 돈은 수천억 단위로 사용하면서 현재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자전거 도로로 남겨져 있다. 오세훈 시장 시기의 시정에 있어 주된 문제점은 대부분 도시구조, 역사, 상징성 같은 서울의 고유한 부분을 배제한 채 서구유럽 건축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건축물에 대한 사용목적도 불분명해 많은 중복투자와 낭비를 낳았고 이것이 오세훈 시장이 부채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DDP에는 5천억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는데, 박원순 시장 당선 전까지 사실상 폐허로 남아있었으니, 이는 분명한 낭비라는 것이다.

3.1.1. 제2롯데월드의 건축 심의 및 허가 관련 책임

제2롯데월드 건설 도중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건설사인 롯데 측에 책임이 있으며, 사업을 허가한 오세훈 전 시장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제2롯데월드는 참여정부에서도 반대했고, 특히 대한민국 공군서울공항의 활주로 때문에 절대 안 된다면서 결사 반대를 외쳤는데, 오세훈은 "공군 의견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라는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다. 서울공항은 수도방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 전 시장에 관한 비판이 있다.

3.1.2.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같은 경우 최초 사업계획비는 적게 잡는 것이 당연하다 치더라도 800억을 넘어서 5천억을 투입할 때까지도 그 건설 목적이 불분명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요즈음에는 이곳이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박원순 시장 재임 이후 사업구조 및 용도 조정을 위한 지속적인 행정 조치가 있었다. DDP를 건축하기 위해 오랜 역사를 가진 동대문운동장을 없앴고, 비싼 입장료, 건설 장소에서 발견된 한양도성 오관수문, 하도감 유적 같은 역사 유적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곳에 이전 복원하여 방치해 놓는 등 지역의 역사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전에도 오세훈은 서울시청의 신청사를 짓겠다고 등록문화재인 구청사의 일부분을 파괴하여 비판을 받고 있었다.[23]
3.1.2.1. 반론
오세훈 전 시장은 2007년 밀라노, 파리, 뉴욕 등 방문에서 파리의류조합협회장 등 패션계 인사들을 만나 패션산업 부흥을 추진하였으며, 서울 패션위크를 세계 5대 패션 박람회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하였다. 전통적으로 동대문은 서울 의류산업의 중심지였고, 또한 서울 동북부권에는 이렇다할 컨벤션센터나 지역기반산업이 전무하다는 점도 DDP 건립 바탕으로 작용하였다. 1년 방문객이 800만 명을 돌파하였으니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뉴욕 타임스에서 뽑은 2015년 꼭 가봐야할 명소 52곳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신제품 홍보 전시회인 '샤넬크루즈 2016' 행사가 DDP에서 대규모로 성황리에 열리는 등[24] '패션산업'을 주력으로 삼고있는 동대문과 중구의 상권을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BMW i3 신차 프로모션,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 롤스로이스 아이콘 투어 등의 해외 명품 자동차 브랜드의 런칭장소로도 환영받고 있으며, 간송현대미술전 등의 수준높은 전시회도 제공하여 '강북의 코엑스'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15년 운영비 약 321억을 자체 수익으로 조달하였다고 보고되었다.

3.1.3. 세빛섬

이 섬은 박원순 시장이 '전시행정의 대표사례'라고 지적했던 인공섬으로도 유명하다. 공법상 와이어에만 의지하고 있는 인공섬[25]이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특정 기업 특혜 의혹이 있는 데다가, 2016년까지 뚜렷한 용도를 확정짓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채로 시설 개축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13년 대한변협에서 이에 대해 배임 혐의로 오세훈 전 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나,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업의 소유권은 서울시에 귀속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 부채가 발생하였어도 장기적으로 회수 가능한 이익이 발생하고 있다'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하였다.[26][27]

3.1.4. 고척 스카이돔

오세훈 시장 시절에 고척동 야구장을 완전돔으로 이미 설계 변경하고 예산을 반영했기 때문에 고척 스카이돔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오세훈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우선 아마야구의 성지인 동대문 야구장을 없애버린데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현재 고척돔구장을 지은 위치에 야외 아마추어 야구장을 460억 예산으로 짓기로 약속했는데, 2009년 3월 WBC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 이후에 야구계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의식하고 이것을 돔구장으로 변경하기로 즉흥적인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돔을 추가하는 데 400억만 추가 지출하면 된다는 현실적이지 못한 계획을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척돔을 짓는데 400억 원이 아닌 2,023억원이 들었으며, 그것도 수용 인원이 16,944석 밖에 되지 않아 수익구조 창출에 어려움을 갖는 반쪽짜리 돔구장이 되어버렸다. 즉흥적인 계획 변경으로 인해 2천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지출하게 되었으며, 결과물 또한 야구계의 숙원인 3만 명 이상 수용가능한 돔구장에 크게 미달하게 되었다. 박동희 기사

고척돔구장의 건설 계획을 수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완전돔구장 계획으로 밀고 나간 것에 박원순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고척돔 기공식이 2009년 4월이었고, 박원순 시장의 취임일은 2011년 10월이었다. 이미 2년 6개월 동안이나 건설된 돔구장의 설계를 바꾸는건 불가능하다. 건축이라는 개념을 조금만 알고 있다면, 그렇게 계획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서울시가 독단적으로 오세훈의 계획을 엎었을 경우, 이도 저도 온전히 되지 못하여 최악의 상황으로 폐건물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월미은하레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건축비용보다 철거비용이 더 들어가고, 용역 발주비용에 철거하고 나서 그곳에 무엇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청사진도 사실상 없었다. 여기다가 문제가 됐던 고척돔의 중앙전광판 또한 오세훈 시절에 반입이 확정된 것이었다. 게다가 지하주차장 문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식으로 인해 개선하지 못했다. 고척 스카이돔 주변에 있는 전철역은 급행 통과역인 구일역 하나밖에 없는데도 단순한 구상으로 주차장 문제를 등한시한 것이다. 박원순 체제의 서울시는 고척돔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데만 600억 원을 썼다. 오세훈 전 시장 때 계획된 고척 스카이돔 계획안대로 그냥 갔다가는 정말 재앙에 가까워질 뻔 했다. 박원순 시장 체제에 들어서 감사원에 의뢰를 하고 난 뒤 수익성이 재앙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자 세 차례의 개선 사업을 했는데, 구일역 용량 증가,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지어본 적 있는 업체인 로세티에 찾아가서 자문을 구한 결과 빡빡한 좌석을 들어내버리고 개선된 게 현재의 고척 스카이돔이다. 충분한 사전계획 없이 돔구장 계획을 승인한 오세훈 전 시장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야구붐이 일자, 아마구장으로 짓던 고척 구장을 갑자기 완전돔으로 바꿔서 프로 유치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오세훈이기 때문이다. 프로구장이 되려면, 일단 수익을 위해 접근성이 괜찮은지 살펴보아야 했는데,[28] 목동 야구장잠실 야구장에 비해, 고척 스카이돔의 접근성은 전혀 좋지 못했다.[29]

결정적으로, 이 문서부터 보면 알겠지만, 고척 스카이돔은 재선을 위한 정치적 소재에 불과했다. 그 당시 WBC가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자, "일본처럼 돔구장을 지어보자."가 아니라, "내가 재선을 하려면, 돔구장은 지어야겠구나"라고 해서 무턱대고, 야구장 지어본 적 없는 업체에 의뢰해서 돔구장을 지어버린 것. 원래 거긴 하프돔 소리 나왔고, 프로구장 소리는 없었는데, WBC가 흥행하니까 갑자기 완전돔으로 만들겠다며, 기공식까지 성대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오세훈이기 때문.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인 허구연말끝마다 돔을 붙였을 정도로 기승전돔을 외쳤지만, 고척 스카이돔이 재앙이 되어가고 있던 동안에는 단 한 차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2013년 말에 와서야 고척 스카이돔을 둘러보고 와선 박원순 시장에게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냅다 화를 내고 마리텔에서 허위사실까지 퍼트렸다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다.

또한, 목동 야구장의 사용으로 가까이 맞닿아 있는 목동아파트 5단지 주민들이 소음 피해와 그로 인한 재산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척 스카이돔 구장으로 이전을 해야되는 상황에다, 단순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연고 3구단 중 가장 만만한 넥센 히어로즈를 반강제나 다름없이 고척돔에 입주시켰다면서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이게 다 박원순 때문이다."고 우기는 몇몇 정치병 걸린 부류도 있다.[30]

오세훈 전 시장은 당시 한국 야구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로야구 평관이 16,000명을 찍는단 말이 대표적이다.[출처필요] 일단 2017년 기준으로 홈 경기 평균 관중수가 16,000명을 넘는 구단은 단 한 곳도 없다.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를 제외하면 고척 스카이돔을 사용 중인 키움 히어로즈를 포함한 나머지 구단들은 10,000명도 채 넘기지 못한다. 오세훈 시장 때 나온 B/C 값 1.79는 팬이 많은 두산 베어스LG 트윈스를 고척으로 이주시켰을 때나 가능할 수치였으며, 정작 중요한 건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중 그 어느 팀도 그 구장에 가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32]

3.1.5. 경인 아라뱃길을 잇는 서해뱃길

오세훈 전 시장은 인천 앞바다에서 김포까지 잇는 아라뱃길을 서울로 이어 여의도에 서울항을 만들겠다는 서해뱃길 사업을 서울시 디자인 정책의 하나로서 정력적으로 추진하였고, 사업 추진 이유로서 중국으로 가는 화물 수요를 처리하고 중국 부자들이 이용하는 크루즈 여객선이 서울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관광 수익원을 발굴하겠다는게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많았는데, 우선 아라뱃길을 지나갈 수 있는 배 무게의 한계는 5천 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크루즈 관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7만 톤 이상의 크루즈선은 아라뱃길과 서해뱃길을 지나갈 수 없었다. 크루즈선이 정박할 시설 역시 인천남항에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화물 수송도 인천항에서 트럭에 실어 보내는 게 훨씬 운임이 싸다. 심지어는 인천항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적어 멀리 있는 광양항과 부산항을 이용하는 화물 수요도 매우 많은 상황에 어떤 면에서도 화물 수송에서 인천항보다 나을 것이 없는 서울항을 이용할 화주가 얼마나 되었을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아라뱃길을 이용한 선박은 1자릿수에 불과하다. 이 점은 감사원에서도 지적된 문제점이다. 게다가 최초 예산 책정이 1,400억 원이 넘었으며 양화대교를 선박이 통과할 수 있게 4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국 수익성 부족이라는 판단을 한 서울시의회가 68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삭감하였고, 서해뱃길 사업은 박원순 시정부터 전면 백지화되었다. 특히 이 양화대교의 중간을 뜯어서 재공사했던 것이 말이 많았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안전도 점검에서 불합격을 받아 신구교를 순차적으로 새로 다리를 짓다시피 보수하여 재개통한지 채 몇 년 지나지도 않았기 때문. 특히나 반 쪽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오세훈이 사퇴하고 보궐선거가 치뤄졌는데, 당시 권영규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일방적으로 나머지 반 쪽의 상판을 멋대로 뜯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에는 하는 수 없이 공사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오세훈이 두고 두고 까이는 요소 중 하나로 남았다.

3.1.6. 세운 초록띠 공원

세운 초록띠 공원도 비판받는다. 당초에는 세운상가와 주변 블록을 헐고 재개발 해 세운상가 터에는 종묘부터 남산을 잇는 녹지 축을 조성하고 주변 지역은 고층의 업무, 상업 지역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녹지축 조성 사업 비용은 주변 블록의 재개발 사업 부지에 세운상가를 포함시켜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해당 부지를 초록띠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식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사업의 상징성을 홍보하기 위해 종로에 인접한 세운4구역의 경우 서울시가 세운상가의 일부인 현대상가를 1,300여억원을 들여 보상해 상인들을 내보내고 건물을 허물어 초록띠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이 사업 비용은 세운4구역의 사업이 진행되면 추후 조합에게서 회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8년 시작된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해 자금 유입이 막혀버려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세운4구역은 재개발 계획의 건축물 높이가 너무 높아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건물 상층부가 너무 많이 보여 2010년 문화재청의 문화재 심의 과정에서 건축물 계획의 거듭된 수정에도 불구하고 부결을 받아 건축물 높이가 많이 낮아져야 사업 진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높이가 낮아지면 사업성이 떨어져 사업 진행이 지연되면서 추진 동력 자체를 잃고 말았다.

결국 서울시가 돈을 들여 세운상가 일부를 헐고 녹지공원을 조성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민간이 진행하는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초록띠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위시한 세계구급 불황이 닥쳐올 것이라는 걸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도 SH공사가 사업시행자가 되어 사업은 진행 중이었는데, 무엇보다 서울시의 실책이 큰 이유는 서울시가 미리 문화재청과 협의를 통해 건축물의 높이 등을 예상해 사업성을 따져보는 등의 간단한 절차나 사업 진행 전 문화재 심의에 대비한 경관 시뮬레이션만 해봤었다면 멀쩡한 건물을 허물기 위해 1,300억원 이상을 들이지 않았어도 됐을 수 있다. 애초에 결국 그다지 넓지도 않은 녹지를 만들기 위해 무려 1,300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게 된 셈이 되었다. SBS 기사 넓은 공간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하며 호평받기도 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건설하는 데 약 5천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는 것에 비교하면 감이 올 것이다.

다만 박원순 시장대에 와서 전면 백지화되고 공중보행데크 조성 등의 리모델링을 거쳤으나, 애초에 공업 관련 상가 밀집지역 특성상 유동인구가 거의 없다보니 파리만 날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중이다. 슬럼화 된 지역 특성상 재개발 아니면 답이 없다는 지역이라는 말. 애초에 종묘-남산축을 이으려면 민자투자를 받는 대신 종묘 인근 지역 외에 용적률 혜택 등 건설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줬어야 했다는 지적도 많아서[33], 오세훈의 계획은 돈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30년만에 새단장한 세운상가, 들어가봤더니… 문제는 천문학적에 달하는 세운상가를 모두 철거하는 비용이 긍정적 효과를 모두 잡아먹는다는 의견도 많다. 또한 당시부터 이미 서울시에 이미 민간 주도로 도심재개발을 통해 오피스 공급이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세운상가 주변 지역을 모두 허물고 고층의 오피스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사업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측면도 있었다. 또한 그러한 대규모의 개발을 단시간에 시행하려고 할 때 서브프라임 사태며, 세계구급 불황을 어떻게 견뎌낼 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

3.2. 뉴타운

뉴타운은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 미관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옹호론과 무리한 공공토건 사업을 통해 서울시의 부채비율을 증가시켜 서울시 재정의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이 대립하고 있다.

옹호 측에서 재정 부담 증가 주장은 공공사업과 부채 / 채무에 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는 마곡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하여 발생된 부채가 대다수이며, 이는 후에 마곡지구 택지분양으로 인한 수익금으로 회수하였다. 또한 당시 서울시 부채의 60%를 지고 있었던 SH 공사의 경우 공사 신용도가 AAA로 SK 텔레콤과 삼성전자와 같은 신용등급이어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었으며, 박원순 시장의 오른팔이였던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서울시 시정질문에서 어린이 도서관 등의 복지사업을 토목사업이라며 예산에서 빼버린 박원순 시장을 향해서 "서울시 재정보고 분석을 잘못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저희는 서울시 부채가 많아서 위기라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에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사업 상당수가 해당 지역 주민 갈등만 일으키고 취소된 경우가 많았으며, 원주민들의 재산을 일괄적으로 수용한 후 시세에 못미치는 감정평가 결과를 토대로 보상을 진행해 결국 살던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어 본래 목적이었던 주거환경개선이 원주민들보다 일부 부유층에만 혜택이 돌아갔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2013년 감사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뉴타운 등 도시정비사업이 양호한 주거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지구 지정으로 오히려 서민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뉴타운 사업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 처리,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 미흡 등이 문제점으로 평가되었다.#

임기중 강남역 등지에서 큰 규모의 침수 피해가 임기 중 해마다 일어났는데 # 그 원인으로 특혜로 건축허가를 내준 삼성전자 사옥이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기되었다. # 건축 허가와 설계에서 특혜를 준 주체는 서초구이고 서울시는 2차 책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시장 임기 중 사옥 설계부터 완공까지가 마무리되었고 서울시 측에서도 해마다 이어지는 홍수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데다 임기 중 추진하던 한강 르네상스를 한강이 아닌 오히려 강남 한복판에서 현실화했다는 의미로 오세이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서울시 가장 번화가에 이 정도 홍수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대단위 토목사업을 지양하던 박원순 시장이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도 '강남역 종합 배수 대책'이다. 심지어, 오세훈은 서울시장 이전에 강남구 국회의원 출신이였고, 공약 중에서는 강남 침수를 막겠다고 해서 강남구에서 압도적인 뒤집기를 행해 한명숙을 이긴 전례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세이돈이라는 멸칭이 생긴 것. 이래서 오세훈이 무상급식 투표 미달로 사퇴하자, 강남구는 차츰 차츰 한나라당에 미련을 버렸고, 6회 지방선거부터 점점 민주당에게 기울어지더니, 7회 지방선거에서는 박원순이 강남구에서조차도 앞섰고, 구청장도 민주당이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성냥갑 아파트 디자인에서 탈피한답시고 전용 60m2 이상의 아파트의 발코니 일부를 삭제하고 우수 디자인 선정 시, 발코니 삭제를 적용하지 않는 까다로운 정책을 내세웠다.

4. 논란

4.1. 2011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사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자신의 시장직을 그야말로 뜬금없이 걸어버렸다. 이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정치쇼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편 정말로 오세훈 시장을 사퇴시켜버리기 위해 주민투표 보이콧 운동을 전개했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왜 사소한 걸로 시장직을 버리려 하냐면서 만류했지만 결국.....[34]

주민투표가 패배로 결정되고 나서 당에서 "적어도 정치력을 추스르고 새로운 후보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다음해 상반기 보궐 선거시기로 미룰 수 있게 45일 정도만 더 시장직을 유지하고나서 사퇴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오세훈은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곧장 사퇴해버렸다. 민선 사상 최초의 자진 사퇴인 셈. 그야말로 무책임의 끝판왕. 물론 오세훈 입장에서는 사퇴한댔으면 단칼에 사퇴를 해야지 깔끔하다고 생각한 것일수도 있다. 패배하면 사퇴한다고 해놓고 새누리당의 치졸한 헛짓거리대로 45일간 유지했으면 그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약속도 안지킨다며 욕은 욕대로 다먹고 또 미룬 이유가 다음해 상반기 동안 대행체제로 새누리당이 계속 서울시정을 유지했다면 오세훈은 그 기간 내내 욕을 먹었을것이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당장 사퇴하는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던 것.[35] 어쨌든 오세훈은 민선 사상 최초의 자진 사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멘탈이 깨져버린 것과 동시에 준비가 부족했던 한나라당은 두 달 후 있던 10월 재보선에서 1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던 대한민국 선출직으로서 제2의 권력을 가진 서울특별시장 자리를 박원순 그리고 연대 세력인 민주당에게 뺏겨버리고 만다. 안철수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덤.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해, 역효과를 정말 제대로 낳아버린 셈이 되었다.

이 때문에 같은 여당 내에서도 비토 정서가 상당했으며 이는 결국 오세훈의 컴백에 상당하 딜레이가 걸리게 된 원죄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오세훈의 정치생명이 정말 끝장날 뻔 했으니까. 오세훈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컴백하기 위해 종로구에 출마했다. 당시 선거 이전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10%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이 예상되었지만, 막상 선거날 출구조사에서는 반대로 10%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낙선했다. 그래서 "아직도 여론을 못 읽는 게 아닌가?"하는 의견이 있긴 하다.

재밌는 점은 정세균 의원의 경우, 종로구 표심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오세훈은 노원구에 가서 거기 있는 이준석 후보와 다른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동시 유세를 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종로구에 출마한 사람이 다른 지역 동네를 가서 동시 유세를 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 판단. 그러니 상대적으로 표심이 정세균에게 쏠려 10%가 넘어갈 정도로 여론조사가 크게 뒤집히며 오히려 본인이 10% 넘게 대패했다. 그리고 동시 유세 갔던 후보가 전부 낙선했다.

이렇다 보니 오세훈의 대권 주자 행보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는데, 여론을 읽지 못하고 멋대로 판단해서 투표를 강행한 것으로 인해 오세훈 개인의 정치적 감각과 상황 판단 능력이 의심받고 있고, 투표 후에도 시장직을 유지하기로 당과 합의를 했음에도 자기 멋대로 이를 깨고 시장직을 사퇴해버린 것으로 인해 본인이 몸을 담고 있었던 새누리당 내에서도 본인의 이득을 위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회주의자로 단단히 낙인찍혀버렸다.

추가로 지지자들이 뽑아준 시장직을 던지고 나감으로서 책임감이 있긴 했냐는 비판과 함께 이후 시장직도 던졌는데 대통령이 되봤자 본인이 수틀리면 시장직 내팽개치듯 나가버릴 것이란 비아냥을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될 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바른정당에 입당해서 최고위원이 된 뒤에도 계속 반기문에 대해서 저울질을 하는 등 누가 봐도 기회주의적인 성격을 계속 보이게 된다. 보다 못한 같은 최고위원 이혜훈이 이런 걸 지적한 경우도 있고, 당내에서도 오세훈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결국 오세훈 본인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날이 가면 갈수록 바닥을 기었고,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한때는 유력한 대권 주자라 불리던 인물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건 결국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본인이 여론을 읽지 못하고 있다가 도박과도 가까운 선택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것이 본인에게는 오히려 치명타가 된 자충수가 되었으며 결국 본인의 정치 생명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여론을 못 읽어 국회의원 선거까지 떨어졌으니... 이에 대해서 오세훈 본인이 속한 보수측 지지자들로부터 논란이 있는 박원순조차도 오세훈처럼 스스로 서울시장직을 던지는 짓은 하지 않는다며 오세훈 전 시장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보면 대한민국 정치역사를 바꾼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이 캐삭빵 패배로 열린 보궐선거로 인해 당시 정계입문설이 솔솔 돌던 안철수에 엄청난 주목이 쏠리게 되었으며, 안철수의 양보로 박원순이 당선되며 '무상복지' 등 진보정책에 엄청난 탄력이 붙게 되며 복지가 대선까지 좌우할 만한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 게다가, 그의 사퇴를 계기로 범친이계였던 당시 홍준표 당대표가 사퇴하고 박근혜가 비대위원장이 되어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이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는 오세훈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대중들도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올 한나라당 후보로 오세훈을 꼽고 있었는데, 오세훈 스스로 이 판을 엎어버리면서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었다.

스스로 정치생명을 끝냈던 캐삭빵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말에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 해놓고 막상 책임지지 않고 오해였다는 정치인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래도 오세훈은 자기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데다 주민투표를 위해 182억이라는 상당한 혈세를 소비했기 때문에 사퇴를 번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4.2. "태극기 부대 낙인찍고 배제하는 건 반민주적 행태" 발언 논란

보수 단일대오를 위해서는 태극기 부대도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3. 핵무장론 주장

2019년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를 앞둔 시점에 자신은 핵무기 개발론자는 아니지만 당론인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를 넘어서 핵무장 카드로 미국, 중국을 강력히 압박해야 한다고 자신의 정견을 밝혔다.기사 참조

4.4.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 못 채울 것"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임기 못 채울 듯"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공직 임기를 못 채우고 내려온 전력이 있어서, "임기 못 채운 건 당신과 박근혜 뿐이다" 등으로 조롱 당하고 있다. 기사

4.5.노회찬 전 의원 사자명예훼손 논란

2019년도 4월 1일 경남 창원 반송시장에서 돈 받고 스스로 목숨 끊은 분 라고 이야기해 논란이 되었다. #
정의당에서는 사자명예훼손죄 운운하며 강경 대응하겠다고는 하지만,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을 요건으로 두고 있기에 허위의 사실이 없는 해당 발언으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논란이 일자 오세훈 전 시장은 '고인 모욕 의도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2019년 보궐선거에서 성산구가 정의당으로 다시 넘어가면서 오세훈 역시 책임론을 짊어져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선거 중에는 불가피한 언동이 나온다지만 넘지말아야 할 게 있다며 박정희 연고지에 가서 박정희 대통령은 젊은 여자 끼고 술먹다 총맞아 죽었다는 팩트를 외치고 다녀도 보수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비판했다.기사

사실 리서치뷰와 비공개 여론조사에서는 자유한국당의 강기윤이 우세하다고 나왔었다. 그런데 황교안자유한국당 경남 FC 경기 난입사태와 오세훈의 노화찬 고인모독 망언에 진보층들이 역결집 하면서 강기윤이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참고로 황교안이 2석 다 이기는 걸 견제 하려고 일부러 노회찬 연고지에서 노회찬 모욕을 해서 진보층을 역결집 시킨 거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온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한나라당 64,516 (59.39%) 당선 (1위)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2,409,760 (61.05%) 당선 (1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2,086,127 (47.43%) 당선 (1위) [36]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새누리당 33,490 (39.72%) 낙선 (2위) [37]

6. 가족관계

부인 송현옥은 극단 '물결' 대표 및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다. 당대표 출마 전인 2018년 10월에 부부가 함께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인 아내의 맛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여동생인 오세현 KT 신사업전략담당 전무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신청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면접 다음날 철회했다고 한다. 남매가 서로 다른 길을 걸을 뻔 한 셈.[38]

7.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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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변호사도 울고싶다 :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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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 2005년 작. 오세훈, 강원택, 김호기, 이영조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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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SHIFT,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 : 2009년 작. 서울특별시장을 할 때 처음으로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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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불가능이 없는 도시다 - 서울시장 오세훈이 보내는 블로그 레터 :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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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서울 산책 - 오세훈의 마지막 서울 연가! : 2011년 작.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이후 서울특별시장을 사직하고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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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 페루 리마 일기 /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 르완다 키갈리 일기 : 2015년 작. 페루르완다 봉사활동을 갔다 오고 나서 쓴 책.


[1] 18대 국회의원 재직 중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인해 재보궐선거 미실시.[2] 네이버 인물정보와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서울 성수동 출생으로 나와 있고, 오세훈 본인도 스스로 서울 달동네 출신으로 소개하는 만큼, 서울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전라남도 담양군 출생이라는 모 언론사의 기사에 대해 오세훈 측은 낭설이라며 부인했다. 기사[3] 해주 오씨 집성촌인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吳山里)(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오(吳)씨들의 집성촌이 있는 리다.) 인근에서 10대째 살아왔다고 하며, 조부모의 선산은 용인 인근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었다. 기사 한편 오세훈의 본적이 전라남도에 있다는 설도 돌았으나, 이 설은 거짓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따르면 호남 상경민 2세는 커녕 오히려 경기도 토박이 가문 출신에 가깝다.[4] 27세손 '世O' 항렬이다. 오승환, 오지환(이상 야구선수), 오신환 국회의원의 조카뻘이다......[5] 장녀는 2015년, 차녀는 2018년에 결혼했고 장녀 슬하에 2017년생 외손자가 있다.[6] 최종 투표율 25.7%[7] 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와 오세훈 시장의 사퇴가 이후 일어나게 되는 보수 쇠퇴의 시발점이라는 시각도 많이 존재한다. 물론 이후 치뤄진 19대 총선18대 대선에서 모두 새누리당이 승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90년 3당합당 이후로 내려오던 보수정당의 압도적인 파워와 이미지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이 즈음이 맞다.[8] 당시 여론조사 상으로 정세균에게 압도적 우위를 점하던 오세훈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오세훈으로서는 충격이 컸다. 참고 기사[9] 선관위에 제출한 병역사항 신고서에 따르면 88년 5월 28일 입영, 91년 2월 28일 전역으로 사유는 '원에 의한 전역', 계급은 중위로 찍혀있다.[10] 로가디스의 경우 차인표, 정우성, 장동건 등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이후 모델이였고, 청호나이스 2014년 광고모델은 김수현이다.[11] 당초 집권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제안을 받아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2] 선거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후원회 폐지 개혁.[13] 이 때는 한나라당100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사실상 서울시장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땡보직이었다.[14] 주로 언급되던 지역은 민주당 중진 박영선 의원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구로 을. 결과로 봤을때 나갔으면 그냥 떡실신[15] 4월 3~5일을 대상으로 집계된 것이며, 선거법상 4월 8일까지는 4월 7일 이전에 집계된 여론조사에 한하여 공표가 가능하다.[16] 여담으로 이날 EXO 팬들 사이에서는 20대 총선 후보 4명(김종인(더민주), 김종대(정의당), 김민석(민주당), 오세훈)이 멤버들과 이름이 같아서 국회 엑소 등의 드립이 성행했다(...).[17] 이것은 아마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어 유력 대선후보로 발돋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험지 출마 요청을 무시하고(...) 종로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만약에 이 전략이 성공했다면 나는 종로에서도 이겼고, 내가 도와준 사람도 이겼습니다. 라는 영향력을 보여주어 차기 대권주자로 급상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도 지고 본인이 도와준 동대문구 갑, 노원구 을도 지면서 대권주자는 커녕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처했다.[18] 오세훈, 김문수, 김무성[19] 반기문 정도를 제외한 주요 대선후보를 모두 넣은 여론 조사를 하면, 문재인안철수가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오세훈이 비교적 큰 차이로 3위, 4위에 박원순, 5위를 김무성과 유승민이 오락가락하는 순으로 나온다.[20] 2012년 세빛섬 감사 결과, 민간 사업자가 30년 후 서울시로 세빛섬을 기부채납하는 소유권 이전 방식은 재산 가치가 없는 노후 시설 이전이 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서울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조건이라고 지적하였다. 일반적으로 공유 수면에는 민간 영리 시설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민간 투자로 사업을 유치하는 경우 민간이 사업권을 갖고 공공기관이 소유권을 양도받는 형태가 많다. 그런데 세빛섬의 경우에는 그 조건이 서울시에 불리하게 설정되었다고 본 것이다.[21] 추미애를 광진구 을에서 꺾는것보다 자한당이 200석을 넘기는 것이 더 빠를거라는 이야기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왔다. 즉 광진구 을까지 자한당이 얻는 선거라면, 수도권은 다 이긴다고 보면 된다.[22] 다만, 새로운 고가를 세운다는 계획은 진작에 백지화됐다.[23] 이보다 2000년 이상은 오래된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가평역과 비교된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나오는 바람에, 유물 발굴 작업을 함과 동시에, 발견된 장소에다 문화재 전시관을 세워놓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관리하고 있다.[24]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수행원들과 동대문 평화시장 앞을 활보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25] 서울시에 등록은 '부선', 즉 떠있는 배로 되어 있다.[26] 그러나 2015년 9월 말 기준 누적관람객이 190만 명을 돌파했고 별다를 것 없이 밋밋한 강변풍경에 포인트는 확실히 주고 있다는 평이 있다.[27] 참고로 이 사업에 필요했던 사업비와 운영비인 1,390억 원의 혈세가 들어갔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업은 명백히 효성에서 시행하는 민간투자방식 사업이며 BTO(Building Transfer Operating) 즉, 20년간 대주주인 (주)효성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10년 간은 유료로 운영한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 형식으로 넘기는 공법이다. 굳이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갔다면, 지분구조상 서울시 산하기관인 SH공사에서 29.9%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서울시민의 혈세가 공중 분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28] 이걸 기반으로 하여 비용 대비 편익성, 즉 B/C 값으로 나타낸다. 이 때 아마구장 0.66, 프로구장 0.93이라는 수치가 나왔는데, 이걸 묵살하고 1.41, 1.79라고 잡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저 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쓰는 LG 트윈스 또는 두산 베어스를 이주할 경우를 두고 얘기한듯 싶다.[29] 새로 지어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그리고, 창원 야구장의 접근성만 봐도, 고척 스카이돔의 접근성은 좋지 못하다.[30] 참고로, 이장석목동 야구장을 개축하여 팬웨이 파크처럼 만들고 싶어했다.[출처필요] [32] 고척 스카이돔보다 넓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별칭: 잠실 야구장)을 쓰는 두산과 엘지의 경우, 발 빠른 야구를 지향했으며, 그 시절의 대표가 바로 이종욱이었다. 두산 감독 시절의 김경문은 "발 빠른 선수들로 뽑아달라. 타격은 내가 어떻게든 만들겠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엘지는 아예 거포를 육성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서, 소총수 부대를 양성했다. 한편 목동 야구장을 쓰던 넥센 히어로즈는 팀홈런을 육성기조로 삼았다. 고척돔에 입주하면 두산과 LG는 주력/컨택 능력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지고, 히어로즈는 홈런을 치기 어려워져 장타력을 잘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고척돔은 두산, LG, 히어로즈의 스타일과 정책에 모두 정반대되는 구장으로 평가받는다.[33] 애초에 엎어진 사업은 서울시에서 용적률을 혜택을 덜 줘서가 아니라 종묘 인근 경관에 때문에 문화재청이 문화재 심의에서 개발 건을 부결시켰기 때문이다.[34] 한나라당 내에서는 홍준표 대표,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지도부가 당과의 상의 없이 선출직을 걸고 도박을 하는데 분명히 반대했다. 심지어 오세훈 시장과 친분이 있는 야권 인사들조차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뭐냐면서 은연 중에 만류했을 정도.[35] 게다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미 2010년 재선 이후로 서울시의회에서 70% 넘는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그야말로 사사건건 제동을 걸며 오세훈의 행정을 견제했기 때문에 사퇴를 끌어봤자 전혀 나을게 없었다. 2006~2010년의 초선 임기 때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며 온갖 전시 행정까지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재선 임기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 없던 것.[36] 민선 최초 서울시장 연임. 2011년 8월 26일 사퇴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책임)[37] 2016.12 새누리당 탈당 2017.1 바른정당 입당 2018.2 바른정당 탈당 2018.11 자유한국당 복당[38] 가족, 친구끼리도 정치적인 성향이 달라서 갈라서는 경우는 많다. 문재인김무성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선후배로서 사이가 극악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