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8 12:21:15

김태호(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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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태호(金台鎬)
출생일 1962년 8월 21일 (만 [age(1962-08-21)]세)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학력 거창농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업교육 / 학사)
서울대학교 (교육학 / ·박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본관 상산 김씨
종교 불교
前 지역구 경상남도 김해시 을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8, 19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
경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제6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제36대 경상남도 거창군 군수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경남FC 구단주
제41대 국무총리 내정자
제18·19대 국회의원(경남 김해 을)
제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1. 개요2. 생애
2.1. 정치 활동
3. 선거이력4.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2. 생애

1962년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거창농업고등학교(현 아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업교육과를 졸업하였다.

2.1. 정치 활동

상도동계의 중진 의원인 김동영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김동영 의원이 장관 임기 중에 사망하자 서울대학교 강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맡았다.

이후 고향인 거창으로 낙향하여 민선 경상남도의회 의원(1998년 당선)과 거창군수(2002년 당선)를 거쳤고 2003년에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경남지사가 열린우리당 입당 및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자, 보궐선거를 통해 2004년~2010년까지 재선 경상남도지사로 재임하였다. 도지사 재임 당시 역대 민선 광역자치단체장들 중에서 최연소로 화제가 되었다. 도지사 취임 당시 만 41세로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서부경남에서 지지도가 높았음에도 이명박 정부의 구원투수로 지목되어 경남지사 3선을 포기했다. 그리고 정운찬 총리를 대신할 41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가 아내의 관용차 사용을 비롯한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려 중도 하차한 전력이 있다.# [4] 이로 인해 정치 인생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였으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에 출마해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했다.

이 당시 상대 후보가 참여정부 말기에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국민참여당이봉수 후보였는데[5], 후보 개인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졌으나, 야권 단일 후보라 야권의 지원을 한몸에 받았고, 특히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대권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 거의 상주하면서 선거 운동을 치르고 있었다. 사실상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었던 셈. 게다가 김해시 을 지역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곳으로, 친노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그렇잖아도 이 지역에서 내리 재선을 한 최철국 의원은 친노인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당선됐으니 상당한 힘을 받게 된 것.[6][7] 다만 이봉수의 인지도가 워낙 없었고 투표와 관련되서 논란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듬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국민을 홍어X으로 본다." 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원래 친이계였음에도 유승민을 비판했고 결국 신박이 되었다.

2015년 8월 3일, 2016년 4월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단 정계 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정치인으로는 충분히 야망을 펼칠 수 있는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중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라는 추측도 내놓는 중. 실제 불출마 선언 다음날 대권 도전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현재까지 눈에 띄는 활동은 없다. 그동안의 경력도 준수하고, 나이도 적당해서 아직 정치적 의욕을 펼치기에 충분하지만, 이어지는 선택 착오들로 인해 야인 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

저술활동을 하며 긴 침묵을 지켜오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경상남도지사 후보로 다시 등판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유력한 상대인 김경수 의원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2012년에 김경수에게 승리를 거둔 바 있는 김태호로 맞불을 놓겠다는 것. #

다만 그때의 재보궐과 달리 현재의 부울경은 부동표(swing vote)를 행사하는 지역으로 바뀐 상황이라,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현 상황상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미 김태호는 14년 전에 경남도지사가 되어 2번이나 도지사를 했던 사람이라 경남도민에게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비해서, 옛날사람 이미지가 강하고 참신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지자체장은 원래 3선이 한계인데 꼼수를 부려 다시 출마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8] 더 강경하게는 8년 전에 경남도지사 마치고 간 중앙정계에서 끈떨어지니까 다시 표구걸하러 온다는 극단적인 반응도 있었다. 물론 그나마 현재 암울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과 인재풀을 생각한다면 그나마 경쟁력 있는 카드를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말이다.[9] 다만 김태호 지사의 전략공천과 관련해서 중앙에서 끈 떨어진 다른 사람 안홍준, 김영선 전 의원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안홍준은 2016년을 끝으로 국회의원 3선을 마치고 2017년 대선 기간에 군소정당 대표를 하겠다고 15일동안 탈당한 이력이 있으며 나이도 만 67세로 나이가 적지 않다. 그리고 김영선은 애초에 기반이 경기도 고양시(일산)이였고, 2017년 말까지 일산서구에서 활동하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상황이여서 경남지역내에서 인지도는 제로였다.

김태호 후보는 자신의 전임 지사이자 후임 도지사인 홍준표와 반대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는 등 '홍준표 색깔 지우기'에 집중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 직후 개표 상황에서 다른 전국 광역자치단체가 개표 초기에 야당 거의 전멸로 승부가 확정된 와중에 5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경수 후보에 5% 이상 앞서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인구가 많은 동부경남 개표가 진행되면서 김경수 후보의 득표율이 치고올라 밤 11시를 기점으로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결국 새벽시간대에 역전, 김경수 후보에게 약 10% 정도의 큰 차이로 패배하였다. 창원 성산, 김해 등 동부경남 지역의 개표가 지연되면서 연출된 초반의 개표 선전으로 인하여 패배한 전국의 자유한국당 후보 중에서는 그나마 졌잘싸 이미지는 얻은 셈이다.

이번 지선에서 자유한국당의 낙선한 후보들 중에서는 그나마 타격이 덜한 편. 몇몇 군데를 빼앗기긴 했지만[10] 그래도 서부 경남에서 승리를 거두면서[11] 나름 선전하였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와 거리를 두며 상대적으로 지역 밀착형 선거전을 펼친 것도 그나마 타격이 덜한 요인.[12] 물론 개표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출구조사와 달리 본인이 상당히 앞섰기에 희망고문을 많이 당했을걸로 보인다.본격 시사인 만화에서는 김태호가 동앗줄을 잡고 올라가다가 결국 동앗줄이 끊어지는 걸로 표현했다.개표방송 시청률의 제물

그 때문인지 심각한 인물난에 휩싸인 자유한국당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사람이며, 차기 총선 때 자신의 고향인 거창군이 포함된 선거구인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나 자신의 지역구였던 김해시 을 선거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다만 김해의 경우 가장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라 다시 출마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최근 노회찬 前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본인도 부인하지 않는 편이라 출마할 생각은 있는 것 같다. 다만 본인이 직접 지역구 경선에 뛰어들기보다는 전략공천을 받을 확률이 높아보이는데 거물 정치인을 좋아하는 지역구 특성상 여기에 공천할만한 인물 중에 홍준표 전 대표를 제외한다면 가장 인지도가 높은 편인 거물이다. 게다가 경남지사를 지낸 경남도청이 창원에 있고 창원 성산 지역구 자체가 노동계 좌파의 거물 정치인[13]이 많이 당선된 부울경의 보수험지라 명분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지역 당협위원장인 강기윤 前 의원의 지역 지지율이 높은 만큼, 김태호 前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결국 강기윤 전 의원이 성산구에 출마 했고, 정의당의 여영국에게 막판 역전패로 끝났다.

경남지사 재선을 지내고 험지에서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등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급 인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중앙당에서는 차기 총선에 PK에서 판세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당에서 PK 험지로 분류되는 김해시 을 지역이나 창원시 성산구 혹은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등 주변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지역에 전략공천 이야기가 나오는 편인데 김 전 지사 입장에서는 지난 지선에서도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인만큼 이번 총선에는 험지 출마 의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21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이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3선 도전을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당에서는 이리저리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또다른 대권주자급 인물인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정치인) 전 비대위원장이 대구나 창녕 등 소위 말하는 텃밭 지역구에만 출마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텃밭에 출마할 세명의 중진들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데 경선을 실시하면 당연히 대선주자급 거물이니만큼 경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고 컷오프로 자른다면 역시 거물인만큼 무소속으로 출마하여도 당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3.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의원 거창 2) 한나라당 8,277 (55.74%)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거창군수) 한나라당 20,782 (57.14%) 당선 (1위) 초선[14]
2004 상반기 재보궐선거 (민선 3기 경상남도지사)[15] 한나라당 454,883 (61.6%) 당선 (1위) 초선[16]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한나라당 852,377 (63.12%) 당선 (1위) 재선
2011 상반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경남 김해 을)[17] 한나라당 44,501 (51.01%)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새누리당 63,290 (52.11%) 당선 (1위)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765,809 (42.95%) 낙선 (2위)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도의원,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를 두루 거치면서 6전 6승을 기록했으니 나름 선거의 왕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경남이 보수 후보가 유리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김해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 되었고, 실제로 2018년 선거에서 패배할 때는 김해에서는 상대 후보인 김경수에게 몰표를 줬다.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를 맛보며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도 반납하게 되었다.[18]

그나마 패배한 자유한국당 주자 중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이지만, 최초로 민주당에게 그것도 경력도 변변치않은 상대에게 하지만 김경수 지사는 대통령의 복심이라 경력과는 무관하게 이미 거물 정치인이었다. 경남지사를 헌납한 인물이라는 불명예도 같이 얻게 되어 버린지라 국회의원은 할 수 있을지언정 당권이나 대권 같은 더 큰 정치행보에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19]

4. 관련 문서


[1] 불법 정치자금법으로 의원직 상실[2] 경남도지사 출마로 인해 의원직을 사퇴했다.[3]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출마로 군수직 사퇴[4] 이때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말을 남겨 인구에 회자가 되었다.[5] 민주당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인 김경수를 내세우려 했으나 단일화로 인해서 나오지 못 했다.[6] 반대로 유시민 대표의 대권 가도는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문재인 말고는 차기 대선에서 이길 사람이 없다는, 소위 '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르게 되었다.[7] 유시민 뿐만 아니라, 이봉수도 완전히 잊혀져버렸다.[8] 실제로 법률상 연속 3선이 금지된 것이라 재선을 역임한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이 다음 선거는 건너뛰어 3선에 재도전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5선까지 역임한 사례가 몇 있다. 그리고 그런 자치단체장은 꼼수 써서 자기 자리 채우려는 노욕과 권력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상대진영과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공격받기 쉽고 실제로도 법의 헛점을 노린 꼼수를 쓴거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9] 김태호의 유세 영상이나 평소 행동하는 영상을 보면 붙임성 있는 그의 성격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김경수가 19대 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만을 내세웠다가 김해 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더군다나 훤칠한 외모도 한 몫 했고.[10] 하동군, 진주시, 마산회원구, 고성군에서 김경수에게 졌다. 특히 고성군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되었다. 다만 고성군은 민주당 지지세가 높아져서 민주당을 보고 찍었기 보다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백두현 후보의 인물론과 도지사 후보로 나선 김경수 밀어주기 정서에서 민주당 후보를 쭉 밀어준 것에 가깝다.[11] 물론 엄밀히 말해서 사실상 김태호의 텃밭인 합천, 함양, 거창, 창녕 등 일부지역에서만 압승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적어도 40%이상 김경수 후보가 득표했다. 그리고 밀양, 통영, 사천, 함안에서는 이기기는 했지만 중간에 역전도 혀용하는 등 찝찝하게 이겼다.[12] 그래서 출구조사상으로는 16% 이상 뒤지는 결과였으나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10% 미만의 격차로 2위를 했다.[13] 여기는 보수성향 지역구였지만 17~18대 총선에서 진보계 거물인 권영길이 내리 당선되었고, 20대 총선에서는 노회찬 전 의원이 당선되었다. 다만 16대 총선에서는 후일 마산합포구로 옮겨갈 이주영 의원이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진영이 단일화를 안하고 권영길 의원이 안나오면서 새누리당 강기윤이 당선되었다.[14] 2004.5.19 사퇴
(경남도지사 선거 출마)
[15] 전임자 김혁규 사퇴[16] 역대 민선 최연소 광역자치단체장[17] 전임자 최철국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18] 같은당의 남경필 경기지사,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현 울산시장도 역시 김태호 전 경남지사와 똑같이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전승을 기록했으나, 하지만 이번선거로 네 사람 모두 선거 이력상 사상 첫 낙선이 기록되었다.[19] 김두관 현 국회의원(김포시 갑)이 5회 지방선거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영전한 김태호를 대신해서 나온 이달곤 후보를 꺾고 당선된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