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05:15:28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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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3대 국무총리
이완구
李完九 | Lee Wan-koo
파일:Former PM LEE Wan-Koo.jpg
출생일 1950년 7월 16일([age(1950-07-16)]세)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학력 양정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 학사)
미시간주립대학교 (형사정책학 / 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 박사)
병역 육군 일병 소집해제(방위병)
종교 무종교천주교(세례명: 바오로)
본관 여주 이씨[2]
별자리 게자리
십이지 호랑이띠
의원선수 3
의원대수 15, 16, 19
가족관계 배우자 이백연, 슬하 2남
소속정당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3]
국무총리
재임기간
2015년 2월 17일 ~ 2015년 4월 27일[4]
경력 제15회 행정고시 합격
충남 홍성경찰서장
LA 총영사관 내무영사
서울지방경찰청 제3부장
대한민국 경찰청 감사관
충북지방경찰청
충남지방경찰청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제15·16대 국회의원(충남 청양·홍성)
신한국당 대표 비서실장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
제35대 충청남도지사
제19대 국회의원(충남 부여·청양)
새누리당 원내대표
제43대 국무총리

1. 개요2. 생애3. 정치 입문
3.1. 충청남도지사3.2. 국무총리3.3. 진짜 친박계의 거물일까?3.4. 무죄 선고 이후
4. 트리비아5.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충청남도지사, 前 새누리당 원내대표, 前 국무총리.

박근혜 정부 시기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한때는 보수진영 내의 충청도 정치 거물로 꼽히며, 소위 충청 대망론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는 나름대로 리즈 시절을 보냈었다.[5]

하지만 2015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에 연루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렸고 결국 '70일 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국무총리직을 사임했다. 이 사건에 대해선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다.

현재는 자유한국당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본인도 명예 회복 차원에서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차기 총선(21대 총선)에 대전, 세종, 충남 지역구 중 가장 파급력이 강한 곳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2. 생애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에서 태어났다.[6] 홍성의 덕명국민학교와 대전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으며[7], 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충청남도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홍성군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중 국방대학원에서 군생활을 하고 일병으로 전역하였다[8]. 그 후 경찰로 옮겨 홍성경찰서장 등으로 근무하며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원회에서도 파견 근무했다.[9] 1986년 ~1989년 약 3년간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로 근무한적있으며, 40대 초에 2급 공무원 상당인 치안감까지 올라 충북지방경찰청장, 충남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3. 정치 입문

1995년 경찰복을 벗고, 신한국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권에 뛰어든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이 있는, 충남 청양군 - 홍성군 선거구로 출마했으며 자유민주연합 조부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시 충청도 일대 특히, 충청남도지방에 자유민주연합의 녹색돌풍이 거셌는데 충남 지방 유일한 신한국당 당선자여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권교체로 공동여당이 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고 대변인까지 맡게 된다. 게다가 2000년 재선에 성공했고 원내총무(現 원내대표)가 되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송광호, 이양희, 이재선 등의 의원들과 같이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복당했고, 후에 대표가 된 박근혜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다만 2004년 17대 총선은, 선거구 통폐합의 영향으로 인해서 출마하지 않았다. 본래 지역구인 홍성ㆍ청양이, 각각 예산군, 부여군에 붙으면서 지역구가 없어졌기 때문. 그리고 홍성에는 홍문표 당협위원장이 있었고, 부여군에도 당협위원장이 이미 있었던터라 불출마로 결론을 내리고 지방선거를 준비하게 된다.

3.1. 충청남도지사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강세에 힘입어 충남지사에 당선되었다. 무난히 도정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임기 중에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장모상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고 현장을 먼저 찾았다고 한다.

이후 임기가 다 끝나가던 2009년에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정부가 밀어붙이자 이에 반발하여 스스로 사직했다. 참여정부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박차를 가했지만, 뒤이은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계획안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완구는 격렬히 반발했고 결국 사퇴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지사직 사퇴가 지방선거를 6개월 정도 남긴 시점이어서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제스처였다는 얘기도 있었다.[10] 하지만 이완구는 결과적으로 건강문제까지 있던터라 도지사 연임에 도전하지 않았고, 한나라당우리은행장을 지낸 박해춘을 도지사 후보로 내세웠다가 3위로 패하게 된다. 세종시 수정안에서 시작된 반 한나라당 정서가 안희정이라는 대권주자가 정계에 들어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후 혈액암 투병생활을 하며 정치계를 떠나기도 했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지지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김무성, 안철수와 같이 국회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2014년에 최경환 원내대표가 임기를 마치면서 새로 선거를 거쳐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맡기도 했다.[11]

3.2. 국무총리

정홍원 총리의 사임 이후 성균관대학교 출신의 총리감을 찾던 청와대의 눈에 띄어 국무총리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12] 당시 국무총리 청문회에선 일명 언론외압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뤘는데,[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정치인(국회의원)이란 배경과[14] 본인 관련 논란에 대해 대질 전 해명하는 등의 적극적 모습을 앞세워 끝내 청문회를 통과했다.[15]

국무총리가 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 강하게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언론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며 "저러다가 부메랑 되는 것 아냐?"라는 보도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거 MB정부 자원외교 관련 수사를 하면서 경남기업회장 성완종을 상당히 압박했다.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성완종을 이렇게까지 압박한 이유로는, 첫째 친이계의 자금줄인 성완종을 압박함으로써 친이계를 견제할 수 있다는 것 뿐 아니라, 둘째 이완구의 대선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충청권의 잠재적 맹주 반기문과 가까운 편이었던 성완종을 압박함으로써 반기문까지 견제할 수 있다는 것 등이 꼽혔다. 그런데...

3.2.1.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

검찰 수사의 압박을 못 이기고 성완종 회장이 도중에 자살하고 만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건 성완종이 죽기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완구를 비롯한 몇 명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언과 쪽지를 남긴 것. 당연히 정치계는 패닉 상태가 되었고, 이완구 총리에 대한 청문회도 이루어졌다. 결국 사건 이후 이완구는 식물총리로 전락해 버렸고, 부임 70일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직하며 정치생명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청문회 도중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충청도 말이 좀 그렇다'라는 발언을 해서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안좋은 소리가 나왔다. 또한 같은 충청권 인사인 성완종 前 회장을 '알지도 못한다'는 발언도 일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리스트내 친박 인사들 중에서 기소된 사람은 이완구 뿐이다.[16]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권에서 최대한 실드를 쳐줄려고 했는데 본인의 발언이 문제가 돼서 못 구해준듯 하다고 추측했다.[17] 적극적이고 강인한 성격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총리가 됐는데 정작 그 때문에 총리를 관두게 됐으니 아이러니.

그런 충격이 상당한지 본인도 이 사건 이후 쭉 자택에서 칩거 중이다. 썰전 강용석의 발언에 따르면, '(총리가 되어)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이완구는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에서는 성완종의 수행비서들과 경남기업 전 부사장이 출석해 돈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고 진술하였다. 2016년 1월 29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응한 이완구는 항소하였다. 2016년 9월 27일 항소심에서 법원은 성완종 리스트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대해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았다. 판결 후 “하나님께서 ‘너 정치 잘해라. 이 사건에선 결백했지만, 그렇게 이 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한테 떳떳하냐’라고 묻는 의미도 있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나라가 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소회를 언론에 밝히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을 때는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평을 받았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고, 소속 정당인 자유한국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점, 본인이 총리에서 낙마하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일어난 일이라 친박 출신이면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에서 재기를 노려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후 경향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경향신문비타500 박스로 뇌물을 받았다고 기사를 작성했는데, 이 것이 허위사실이며 정치적 생명이 끝났기 때문에 소송을 걸었다고 밝혔다.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한 "경향신문 보도 때문에 손자가 할아버지는 비타500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대목이 압권.

허나 1심에서 패소했다. 이유는 "허위사실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맞으나, 공직자의 도덕성 등에 대한 의혹 제기로 악의적이거나 타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다"는 것. 이에 이완구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1심의 판단이 옳다며 이완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

3.3. 진짜 친박계의 거물일까?

국무총리 낙마후 호사가들은 의문을 가진다. 이완구 전 총리가 진짜 친박계의 거물이었다면 국무총리가 '거물'의 상징으로 맞을까 하는 의문이다.

한국의 국무총리가 행정부에서는 대통령 다음이라지만, 실상은 정권에서 뭔가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 대통령을 대신해서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그때문에 생긴 별명이 대독총리, 방탄총리, 사과총리[18]일 정도니 말 다했다.하드탱커 물론 사례도 있긴 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국무총리 참조.

고로 이완구 입장에선 진짜 거물 행세를 하려고 했는지, 총리 내정자가 된 이후 책임총리가 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인자에 대한 평소의 입장[19]을 생각하면 국무총리가 자기 밥 그릇 찾는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리고, 결과적으로 책임총리고 나발이고 할 시간도 없이(...)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며 불명예스럽게 사임하며 이완구는 자신의 정치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아울러 대권 도전의 꿈도 물거품.

진짜로 친박계의 거물이라면 잘해야 본전(?)인 국무총리 자리를 고사하고 원내대표로서 스탠스를 유지하는 쪽이 본인 입장에서도 나았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친박계가 지독한 차기 대권주자 부재에 시달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20] 자신이 예비 잠룡임을 생각해서 관리에 신경썼다면 지금 같이 되진 않았을 것이란 추측. 다만, 지금 와서 보면 성완종 게이트에 혐의가 없어서 무난하게 총리직을 수행했다고 치더라도, 그 뒤에 닥쳐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헬게이트를 생각하면 오히려 최단명 총리로 끝난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3.4. 무죄 선고 이후

21대 총선 출마를 통해 정계 복귀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원 지역구였던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공주시 국회의원이던 정진석(정치인)이 차지했기 때문에 다른 선거구를 찾아야 한다. 이규희 의원이 직 상실 위기에 놓였으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이 없는 천안시 갑[21] 혹은 분구가 확실한 세종시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데, 본인은 무슨 근자감인지[22][23]세종에서 출마를 시사한 바 있다. # 여전히 대권을 생각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세종시라는 극도의 험지에 출마해서 살아와야 충청권 내 영향력을 확인하고 당내 입지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5.18 민주화운동 망언 사태에 대해 "그들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역사적 평가와 법적 문제가 모두 끝난 것을 다시 끄집어내 이러니저러니 하는 건 대단히 유감"이라고 일갈했다.

최근에는 세종시보다는 대전 서구 을이나 충남 천안시 갑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4. 트리비아

  • 재임 기간이 상당히 짧은데, 70일 밖에 안된다. 서리와 임시직을 제외하면 허정 총리(64일) 다음으로 재임기간이 짧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사표 수리가 제때 이뤄졌다면[24] 타이기록 내지 1등을 할 수 있었다는 함정이 있다.(4월 21일 제출, 27일 수리)
  • 일반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높지 않아 역대 국무총리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어린 연령대의 학생들에게도 꽤 긴 기간 동안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전직 국무총리였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이는 상술된 비타 500과 패러디 등의 요인이 크다. 지금은 사건 이후 시간이 꽤 지나기도 했고, 대통령 대행을 지낼 당시 여론이 굉장히 나빴던 황교안이 핫이슈로 뜬 탓에 묻힌 편.
  •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겠다만 인터뷰 중에 "만약 뇌물을 받았다면 목숨을 내놓겠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근데 이 분이 낸 책이 하나 있는데 제목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1심 유죄 판결이 나왔다. 이제 어떻게 목숨을 내어놓을지 선택할 일만 남으셨다가... 2심 무죄 판결로 목숨 안 내놔도 되게 되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다행히(?) 목숨을 내놓을 일은 없게 되었다
  • 병역비리 의혹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현역 1급을 받았건만, 행정고시 응시를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재검을 받아 방위병으로 복무했는데, 하필 서울이 아니라 자기 홈그라운드인 충남에서 받아 "징병검사 과정에서 외압을 넣었냐" 하는 의심을 샀다. 다만 당시에는 본적지에서 징병검사를 받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충남에서 징병검사를 받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 케빈 스페이시와 닮았다는 말이 많다. 그런데 하필 케빈 스페이시의 출연작 중 하나인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각종 음모를 꾸미는 프랭크 언더우드의 모습과 이미지가 겹치는 바람에 더더욱..
  • 前 서울시 만리동 소재의 (현 서울 양천구 목동 소재)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올해의 양정인상을 받는 등 총리 이전까지는 학교에서도 높게 띄워주었다. 그러나 비타500사태 이후 학교에서는 "양송합니다."를 외쳤고, 이완구 플랜카드 철거와 동시에 학생들은 이완구를 띄워주었던 학교를 비판했다.
  • 총리가 되었을 당시에는 집안에서도 크게 환호했지만 불과 70일 만에 낙마 +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을 맞으면서 사실상 집안 망신 수준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집안에서 초상을 치르게 되자 근조화환을 보낼 정도.[25]
  • 혈액암 투병 중이다. 정확하게는 다발성골수종을 앓았으며, 이 때문에 2009년 12월 충청남도지사 사퇴 후 약 2년 넘게 투병생활을 보냈다. 한 때 위독하다고 했으나 본인의 의지와 지속적인 치료로 인하여 2013년 4월에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현재도 규칙적인 운동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한다고 하는데 2016년 4월 언론에 의하면 혈액암이 재발한 모양이다. 항암치료 때문에 검찰 출석과 공판도 연기되었었다. 그간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재발하였다고 한다.
  • 총리 내정자로 확정된 후, 현 지역구(부여군, 청양군)와 전 지역구(홍성군)서는 총리 내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도배하다시피 걸려있었다. 어느 위키러의 말을 빌리자면 거짓말 보터서 해당 지역에 걸린 모든 현수막보다 이완구 이름이 걸린 현수막이 더 많아보일 지경이었다고. 다만, 부여, 청양 당협위원회나 새누리당 충남도당에서 조직적으로 현수막을 제작해서 배포했다는 얘기도 있고 축하 현수막을 걸은 단체중에는 왜 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곳도 있었다고. 인사 청문회의 무서움을 알았다면 총리 내정된 걸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을텐데. 결과적으로 현수막은 쓰레기 되고 당사자는 잠룡 꿈꾸다가 깼으니....
  • 인터넷상의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토이리, 토이성님 등이 있다.
  • 강일원 헌법재판관김황식국무총리와 인연이 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충남지사에 당선됐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이 선고됐던 이 후보자를 2심과 3심에서 강일원 당시 부장판사와 김황식 당시 대법관이 각각 구제해줬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대전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이던 강 재판관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민과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후보자에게 벌금 70만원형을 선고했다. 3심에서는 이 사건 주심 대법관이던 김황식 대법관이 검찰 상고를 기각해 이 후보자의 지사직 유지가 확정됐다. 이는 “조직적 선거범죄”라며 벌금 150만원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된다. 이 후보자는 2005년 12월 충남 서천군에 있는 한 식당에서 당원들을 상대로 “여기서 이완구 하고 확실하게 밀면 되는 거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완구 도지사 됐다, 아 그럼 여기 있는 양반들 도지사 관사로 초대하면 되죠. 서로 그렇게 신의 지키고 살아가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 4부 박관근 부장판사는 당선 무효형 선고 배경에 대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선거범죄로 보이고, 금권선거라는 점에서 죄질을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을 맡은 강 재판관은 “피고인은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된 상황으로 뒤늦게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 준비행위가 지나쳐 공직선거법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며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3심에서 김황식 전 총리 역시 당선 무효형을 구형한 검찰 상고를 기각하면서 이완구의 ‘구사일생’을 거들었다. 한 신년 모임에 원내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이완구는 강 재판관을 보고 “내 목숨을 살려준 분”이라면서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고 한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청양·홍성) 신한국당 35,638 (47.5%) 당선 (1위) 초선[26]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청양·홍성) 자유민주연합 46,633 (69.4%) 당선 (1위) 재선[27]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한나라당 379,420 (46.3%) 당선 (1위) 초선[28]
2013 상반기 재보궐선거 (충남 부여·청양) 새누리당 30,342 (77.4%) 당선 (1위) 3선[29]


[1] 의원직 상실[2] 교위공파 26세손 구(九)자 향렬이다.[3]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에 연루되어 당원권을 정지당했다가 2017년 5월 12일 징계가 해제되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4] 재임기간이 70일로 역대 총리 중 가장 짧다. 2위인 허정 총리는 72일[5] 2013년 재보선에서 77%를 상회하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는 등, 충남에서 지지가 탄탄한 편이었다. 일각에선 안희정 정도는 돼야 충남 맹주라고 하는데, 그건 당연한 얘기고 이완구도 총리 재직 시절까지 지지율이 어느정도 나왔다. 또 과거에 자민련에서도 안정적이게 당선된 이력이 있어서, 김종필 총리처럼 충청권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실제로 이완구가 충남지사직에서 물러날 때, 일부 지지자들이 울면서 붙잡기도 했다고.[6] 비봉면과 홍성군 장곡면 일대는 여주 이씨 홍주파가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교위공파 26세손[7] 여담으로 경기고에 가기 위해 고입에 두번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여 양정고에 입학하였고 서울대를 가기 위해 대입에 두번 도전하였으나 서울대를 떨어지는 바람에 삼수 나이로 입학하였다.[8] 사실 행정고시를 합격하면 못해도 대위전역일텐데 왜 일병전역인지 서술바람.[9] 이 때 총경을 단 나이가 31세로 현재 통틀어 역대 최연소였다. 물론 지금 총경의 위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지금은 경/검찰이 서로 견제하는 사이라지만 당시에는 경찰서장이 평검사에게 쌍욕먹고 갈굼당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대공과나 특수대 등의 요직에 있는 총경이라면 역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긴했다.) 그래도 동년배 중에선 판검사, 정치인 등 권력자를 제외하면 비빌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하물며 지금 기준에 31세 총경이라면 남들은 대기업에서 겨우겨우 주임/대리따고 부장이나 도련님에게 갈굼당할때 자신은 연대~여단급 규모의 부대를 지휘하고 지역유지와 같이 밥상을 쓰는 기적을 겪을 수 있다.[10]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참여정부에서 내걸은 안에서 한참을 후퇴한 수준이었고 같은 여당내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이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서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안희정이 당선되는데 기여하였다.[11] 임기를 마친 최경환 원내대표는 경제부총리로 입각, 황우여 당 대표는 교육부총리로 입각했다.[12] 이완구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중이던 1974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13] 기자들과 식사하던 도중 "(자신의) 전화 한 통화로 기사를 넣거나 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기자는 키워주거나 아니면 죽일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을 하며 논란을 스스로 자초했다.(...) 이를 녹취한 한국일보 기자가 녹음파일을 까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14] 이러나저러나 자기들과 동류라는 의식이 있는지, 야당 의원들도 현역 정치인이 후보자로 나오면 아무래도 압박강도가 낮은 편이다. 실제 역대 정부에서 현직 정치인이 총리 후보로 나왔을 때 낙마하는 일은 없었다. 또 장관 후보로 입각하는 현역 의원들이 낙마한 사례도 없다...[15] 애초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도 이완구 전에 내정된 후보자(안대희, 문창극)들을 검증 과정에서 줄줄이 낙마시키는 성과(?)를 냈기 때문에,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인 이완구까지 차출했다는건 거의 마지막 카드나 다름없는 것이라 여겨 이완구는 다소 무디게 압박한 것 아니냔 분석 역시 많았다. 게다가 현역 의원을 떨어뜨리면 나중에 민주당이 집권했을시 의원 입각이 힘들어지기도 하고[16] 유일하게 같이 기소된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경우 친박이 아닌 친이, 비박계열이다. 그리고 결국 2심에서 뒤집히면서 야권의 수권후보까지 되었다.[17] 다른 관점에서는 총리 인준된 인사들이 하나 같이 부적격 판정 받고 낙마하다보니, 민주당 내에서도 현 정부에 너무 발목잡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그래서 이완구에 대해서는 암암리에 봐준 측면이 있다고 한다.[18] 평소에는 존재감 없다가 정권에 안좋은 일 터지면 대통령 대신해서 사과성명이나 낸다고 해서...[19] 한때 친박계 좌장소리 들었던 김무성이 나중에 박근혜와 각을 지는 과정을 보면 답이 나온다.[20] 이는 자기에게 쓴 소리 할 줄도 아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근혜의 성격도 한 몫했다.[21] 부친이 천안에서 오래 거주했다.[22] 세종시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행복도시는 호남 외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최대 사지이다. 세종시는 인구로 인한 분구가 확실하므로 조치원읍을 포함한 읍면 선거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지만, 게리맨더링 수준으로 읍면을 다 긁어모아도 인구를 못 채워서 자유한국당이 정의당에게도 밀리는 세종시내의 동을 몇 개는 떼어와야 하는데다 읍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치원도 거의 도시화되어 서울에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지역과 비슷한 투표 양상을 보이는 상황이다.[23] 또한 세종시의 경우는 토박이 인구가 많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충청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 터라 충청도 이미지를 내세우는 이완구가 얼마나 선전할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는것도 사실이다. 세종시가 거의 개발되지 않았던 2012년 당시의 총선에서 이해찬이 같은 충남지사 출신의 현역의원이던 심대평을 이긴 사례가 있다.[24] 당시 외교 문제로 해외순방을 하고 있었다.[25] 실제로 이 부분을 정리한 위키러가 이완구와 같은 여주 이씨 사람이다. 향렬로는 위키러의 증조부뻘인데, 전술한대로 이완구는 교위공파 26세손 구(九)자 향렬이다.[26] 1998년 자민련으로 당적변경[27] 2002년 한나라당으로 당적변경[28] 2009년 12월 3일 사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발)[29] 전임자 김근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