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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 치바형사의 한국명에 대한 내용은 치바 형사 문서를, 대한민국의 1955년생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이명수(1955)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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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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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타격코치 시절. 이호신의 타격자세를 잡아주는 모습이다.
이름 이명수(李明洙 / Myong-soo Lee)
생년월일 1966년 7월 29일
출신지 경기도 이천시
학력 서울전곡초-휘문중-휘문고-고려대
포지션 내야수(1루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OB 베어스 2차 2라운드 지명
소속팀 OB 베어스 (1989~1997)
현대 유니콘스 (1998~2001)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2군 타격코치 (2003~2006)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2007)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09~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타격코치 (2011)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2)
KIA 타이거즈 3군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13~2014)
휘문고등학교 감독 (2016~2018)
응원가 동요 - 비행기[1]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5 199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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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OB 베어스 역대 주장
김상호
(1994)
이명수
(1995~1997)
김태형
(1998~2000)
OB 베어스 등번호 5번
박창언(1986) 이명수 (1989~1997) 김정규 (1998~1999)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OB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별다른 일화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같은 팀 출신 선수의 폭로로 동료선수를 팬 일화가 밝혀져 까이고 있다.

2. 선수 경력

OB 베어스의 대표적인 2루수였으며,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1995년에는 .291 9홈런 32타점으로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수비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했으며, 전성기 때는 OPS .800 내외의 준수한 타격을 하는 공격형 2루수였다.

이후에도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해야 했던 OB는 노쇠화의 기미가 보인다는 핑계로 1997년 시즌 후 그를 방출했다.[2]

ob베어스에 뛰었던 선수출신의 폭로로 알려졌는데 97년도 해태와 더블헤더 경기에서 당시 고졸 2년차 외야수 정수근의 중계 송구가 낮다는 이유로 경기도중 화장실로 정수근을 불러서 일방적으로 스파이크를 신은채 구타를 했다고 한다. 열받은 정수근은 그 이후 평소와 다른 타격폼으로 경기도 설렁설렁 했다고 한다.

이 때 타선 재정비 작업에 열중했던 현대가 그를 영입했다.[3][4] 1998년에 이적한 그는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전준호-이명수의 완벽한 테이블 세터 활약을 했다. 이후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로 뛰며[5] 현대의 2회 우승을 이끌었다. 다만 1999년 시즌 후 주전 2루수는 다름아닌 박종호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흔들리는 박종호의 2루수 자리를 대신 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1 시즌 종료 뒤 은퇴하였다.

덤으로 OB 베어스는 당시 LG 트윈스의 '야생마' 이상훈에게 특히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당시 팀 내에서 유일하게 이상훈에게 강했던 타자가 이명수였다. 당시 3,4번 타자였던 김형석김상호이상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으니...

3. 지도자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시절

현대 유니콘스에서 은퇴한 후 2군에서 다양한 코치를 하다 2007년에 1군 타격코치를 맡아서 팀 타율 1위를 기록하였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하고, 이장석이 인수해서 히어로즈로 창단하는 와중에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팀을 떠났다.[6][7]

2009년 김시진 감독이 컴백하자 이광근, 김성갑 등 흩어졌던 현대 시절 코칭스탭들이 복귀할 때 이명수도 함께하였다. 1군 타격코치를 맡아서 2009 시즌 팀 홈런-도루수가 150 - 150을 넘어서 명수매직이란 별명이 붙었다.[8] 하지만 2010시즌 이후 타선이 부진하여 2군 코치로 내려갔다. 그리고 온 게...

3.2. 두산 베어스 시절

2012 시즌에 두산 베어스의 타격코치로 옮겨 가며 15년 만에 친정 팀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타선을 자랑하던 두산의 팀 타격 지표가 바닥을 치면서 욕을 많이 먹었다.[9] 2013년 두산의 타격코치가 바뀌면서 다시 방망이가 살아나자, 타코 이명수에 대한 평가는 더 떨어졌다.

3.3. KIA 타이거즈 시절

2013 시즌에 앞서 KIA 타이거즈의 3군 타격코치로 부임하였다. 2012년 두산 타선이 물방망이가 된 걸 KIA 코칭 스태프들은 못 본 모양이다 이후 8월 17일에 김용달과 교대하여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고 3군으로 내려간 김평호 코치 대신에 주루코치도 겸한다. 하지만 팬들은 큰 기대를 안하는 상황. 작년 두산 타격 부진의 장본인이다 보니..

팬들의 예상대로 김용달에 비해서 타선은 나아진 바가 전혀 없었지만 선동열이 모든 욕을 대신 져 준 덕에 아오안인 상태. 하지만 시즌 끝난 뒤에도 자리를 보전할 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코치진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걸 보면 1군 타격코치를 놓고 김용달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그놈이 그놈

2014년에도 계속해서 KIA 타이거즈의 1군 타격코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팬들에게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악명높은 김기아 타선에서 그나마 꾸준하다고 내세울 만한 눈야구가 사라졌다는 게 컸다. KIA의 팀 타격 성적이 워낙 굴곡이 심하긴 했지만, 적어도 눈야구를 기반으로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은 괜찮았었고, 덕분에 출루율이 어느 정도 나와줬었다.[10] 그러나 2014년 시즌의 1/4가 지난 5월 14일 기준으로 KIA의 팀볼넷은 9개구단중 압도적인 꼴찌로 떨어져버렸고, 당연히 팀 출루율도 밑바닥을 깔게 되었다. 자꾸 타자들이 초구, 2구를 건드리고 죽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상대 선발은 잘 던지든 못 던지든 별 일 없으면 6-7이닝을 먹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2014년 5월 13일에는 NC 다이노스의 선발 태드 웨버에게 16타석 연속 퍼펙트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2014년 5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의 대타로 출전해 역전적시타를 때린 이종환선수가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코치가 노리고 있으라는 공이 안들어오자 자신이 생각한 공을 때렸다고 인터뷰해 무능함이 더 드러나고있다

무능한 인물인지라 타이거즈 팬들은 시즌 종료 후 선동열 감독, 김용달 2군 총괄코치, 한대화, 백인호, 김정수코치와 같은 무능력자들과 같이 아예 팀에서 잘리길 바라고 있다. 그나마 잘한게 있다면, 김무관도 고치지 못한 이대형을 개조 시켰다는 점. 이거말곤 없다

2014 시즌 후 김기태 감독 부임과 함께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 팀을 떠나게 되었다.

3.4. 휘문고등학교 감독 시절

2016년 중간에 모교인 휘문고등학교의 감독을 맡으며 팀을 봉황대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1989 OB 베어스 96 257 0.253 65 11 2 5 31 27 1 42
1990 91 239 0.188 45 8 0 3 30 14 2 34
1991 46 97 0.196 19 8 0 1 10 9 1 14
1992 96 253 0.253 64 12 1 4 22 26 2 27
1993 119 417 0.283 118 20 8 4 56 52 6 57
1994 71 240 0.229 55 9 1 2 28 20 2 28
1995 111 383 0.290 111 11 1 9 32 46 1 41
1996 103 342 0.281 96 13 0 4 24 31 0 44
1997 90 257 0.276 71 6 2 8 35 26 3 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1998 현대 유니콘스 106 327 0.315 103 13 3 11 46 48 5 36
1999 114 333 0.297 99 13 1 5 51 39 3 41
2000 85 206 0.335 69 10 2 4 39 26 1 24
2001 91 153 0.248 38 6 0 1 19 19 1 29
통 산 1219 3504 0.272 953 140 21 61 423 383 28 443

[1] 강영수에게 물려받았으며 이후 김동주가 물려받았다.[2] 이명수가 팀을 떠난 이후 OB는 외국인 타자 에드가 캐세레스를 주전 2루수로 내세웠으나 만족하지 못하는 성적을 냈고, 이후에는 안경현이 주전 2루수를 차지, 골든 글러브만 세 차례나 수상하는 등 당시 최고의 2루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3] 이 시절 현대는 김동기, 윤덕규가 은퇴한 상태에서 물방망이로 악명높던 2 ,3루수인 염경엽, 손차훈, 하득인, 김인호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외야는 전준호, 김광림의 영입으로 이미 1997 시즌에 정리된 상황이었고 이제 2,3루수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때마침 2할 8푼 이상 쳐주던 이명수가 자유계약 공시되자 현대가 영입했다. 하득인은 199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염경엽김인호는 내외야 대수비 요원으로 살아남았다.[4] 이 당시 현대 구단이 2루수 보강을 위해 이명수를 데려오려고 OB에게 현금을 주는 조건으로 이명수를 방출시켰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김인식 OB 감독도 이러한 팀 운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적도 있다.[5] 본격적으로 1루수로 전업한 건, 김경기가 하락세를 타던 1999 시즌 이후다. 이 무렵 LG에서 트레이드되어 들어온 박종호가 2루를 보다 보니 이렇게 됐다.[6] 야구단 경영에 무지했던 이장석 이하 신규 경영진은 상당수 인력들을 정리해고하고 잔류 인력중 베테랑 선수들과 코칭스탭, 프런트의 연봉을 무지막지하게 후려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김시진 감독, 이광근, 김성갑, 이명수, 염경엽 등 과거 태평양 시절부터 팀을 지켜왔던 상당수 코치들과 프런트가 팀을 떠나게 되었다.[7] 이미 2006년 말 김재박 감독이 LG로 옮기는 과정에서 상당수 코치들과 스카우터, 프런트를 빼간 상황에서 오직 김시진 감독과의 의리와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으로 잔류했던 인력들마저 떠나자 히어로즈는 신인 지명, 선수육성, 재활, 전력분석 등 과거 왕조 시절의 모든 노하우를 상실하고 빈껍데기로 전락해 버렸다.[8] 특히 이 해 강정호, 황재균, 이택근 등이 타격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9] 김현수는 예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 해 두산 타자들 중에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윤석민밖에 없었다.[10] 2013년의 초구 좋아하는 김용달 코치 하에서도 KIA의 팀 볼넷은 1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