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5:52:20

이한구

파일:Saenuri reverse logo cut.png 새누리당 원내대표
1대
황우여
2대
이한구
3대
최경환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갑)
제16대
김만제
제17~19대
이한구
제20대
김부겸
파일:external/image.kmib.co.kr/201603231858_61110010472640_1.jpg
이름 이한구 (李漢久)
출생일 1945년 12월 12일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학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가족 배우자 나임구, 슬하 2녀
종교 천주교(세례명: 토마스 데 아퀴노)
정당 무소속[1]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6, 17, 18, 19
약력 대우경제연구소 사장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제16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전국구 12번)
제17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구 갑)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제18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구 갑)
제19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구 갑)
새누리당 원내대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전2.2. 정계 생활
3. 선거 이력4. 트리비아

1. 개요

한국의 전 관료, 공인회계사, 경제학자, 정치인.

2. 생애

2.1. 정계 입문전

1945년 경상북도 경주군 감포읍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행정고시도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할 때 해직되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손윗동서인 김용환 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김종필 쪽 사람이라서 해직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회고하였다. 이 때의 일로 김종인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악연이 있다. 이후 보스턴 대학교, 캔자스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김우중대우그룹 회장과 인연을 맺어서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대우경제연구소에 몸담았다. 1998년부터 2000년 초까지 대우경제연구소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2]

2.2. 정계 생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현직 수성구청장인 김형렬을 지원하여서, 이진훈 부구청장을 지원한 수성구 을의 주호영과 대립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에게 신승하였다. 같은 해부터 2013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파일:MoonAssembly1.jpg
의정활동을 하면서 제19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2.1.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했고[3], 친박계의 추천으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에 부임했다.[4] 이후 공천 관련 규칙을 둘러싸고 우선추천지역 제도의 적용을 내세워 상향식 공천제도를 강조해온 비박김무성 당시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때 당 대표를 무시하는 듯한 독선적인 언행과 직설화법으로 말이 많았는데, 결국 비박 학살 친박 공천을 주도해 비박계 유승민, 이재오 의원 등을 날린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면 이때 김무성 대표가 옥새파동을 벌이고 무공천 지역이 되는 등 스토리가 눈물겹지만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 패스.

이한구를 비롯한 친박계들의 '진박(眞朴) 감별 행위' 등 독선적인 행태가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밉보였는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야권분열이란 절호의 찬스에도 불구하고 참패를 하여 16년만에 '여소야대'라는 국회 지형이 만들어진다. 이에 이한구는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에게 새누리당 참패 1등 공신으로 지목당했다. 선거 전만 해도 총리 자리가 내정되었니 어쩌니 세간의 말들이 많았지만 선거에서 참패하며 그런 말도 쏙 들어간 상황. 물론 애초에 이한구 본인이 선거 불출마를 밝힌 상황이었고, 2016년 기준으로 나이도 72세의 고령이었던지라 정계은퇴를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이한구가 친박계의 지시를 받아 정계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총대를 메고 그런 무리한 공천 시도를 연출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었다. 다만 만약 새누리당이 기대하던 바대로 선거에서 승리하여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공천이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았더라도 이한구가 과연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말 정계은퇴를 했을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에 딱히 설득력은 없어보인다. 실제로 당시 이한구가 차기 개각시 국무총리나 경제부총리 등에 낙점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총선 참패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어쨌든 총선 대패 후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한 그는 얼마 후 한 인터뷰에서 '"유승민 의원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도록 불출마선언 등을 할 시간을 주며 기다렸다."', "'유 의원이 왜 끝까지 무소속 출마를 고집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등의 말을 했다 남탓한다며 또 한번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

결과적으로 자기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 김문수 후보는 전혀 도와주지도 않아 더민주 김부겸 후보에게 수성 갑 지역이 넘어가게 일조하고, 전국적으로는 공천파동으로 보수층의 지지도를 깎아먹어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패배에 크게 일조한 인물이 되었다. 오죽하면 이한구가 사실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훈련받고 온 특급공작원(...)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을 정도.

이후 2017년 1월, 인명진 비대위체제에서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현기환 전 정무수석과 같이 새누리당에서 제명되었다. 전직 공천위원장을 제명한 사례는 유례가 없던 일이었지만, 야권이 분열된 호재 속에서도 독단적인 언행과 친박, 비박 타령으로 20대 총선을 망친 원흉이었기에, 제명에 큰 잡음도 없었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12번) 한나라당 - 당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갑) 한나라당 65,098 (60.33%)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갑) 한나라당 66,652 (78.40%)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갑) 새누리당 60,588 (52.77%) 당선 (1위)

4. 트리비아

네이버 모 블로그에 이한구 전 의원임을 암시하는 네덕(?)의 활발한 블로그가 있다. 이한구 본인이 아님은 거의 명백해보이는데, 오해를 유도할법한 저의의 글이 많으므로 속지 말자.


[1] 새누리당 윤리위원회가 제명하면서 당적을 박탈당했다.[2] 1999년 12월 31일에 방송된 뉴스데스크에 새천년 경제변화라는 주제에 대해서 인터뷰 할 때 나왔다.[3] 애초 불출마 선언하기 1년 전쯤 이미 경기도로 이사간 상황이었다. 사실상 지역구 관리를 안 한 셈. 이에 대해 김부겸 후보와 다시 붙으면 낙선될까 두려워 불출마 선언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4] 이후 나온 기사에 의하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직접 이한구를 공천위원장으로 지목하고 친박 리스트 등도 보내줬다고 한다. 오히려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의원은 고집이 센 이한구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