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09:12:07

정세균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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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Emblem_of_the_National_Assembly_of_Korea.svg.png
대한민국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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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제2대(전) 제2대(후)
이승만 신익희 신익희 신익희
제3대(전) 제3대(후) 제4대(전) 제4대(후)
이기붕 이기붕 이기붕
곽상훈
곽상훈
제5대(민) 제5대(참) 제6대(전) 제6대(후)
곽상훈 백낙준 이효상 이효상
제7대(전) 제7대(후) 제8대
이효상 이효상 백두진
제9대(전) 제9대(후) 제10대
정일권 정일권 백두진*
민관식
제11대(전) 제11대(후) 제12대(전) 제12대(후)
정래혁 채문식 이재형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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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전) 제15대(후) 제16대(전) 제16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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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전) 제17대(후) 제18대(전) 제18대(후)
김원기 임채정 김형오 박희태
정의화
제19대(전) 제19대(후) 제20대(전) 제20대(후)
강창희 정의화 정세균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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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injoo.png상임고문단
국회의장
김원기
신당 대표
오충일
국회의원
이용득
국회부의장
이용희
국회의장
임채정
국회의장
정세균
국회의원
추미애


파일:minjoo.png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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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minjooreverse.jpg 대의기관 (전국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
전국대의원대회
의 장
박병석중앙위원회
의 장
이석현
파일:theminjooreverse.jpg 집행기구 (당무위원회·최고위원회)
당대표이해찬(최고위원회 의장)
최고위원 선출직박주민(당 플랫폼·연수 및 교육) · 박광온(지방자치·자치분권) · 설훈(남북관계·동북아 평화) · 김해영(청소년·청년) · 남인순(민생)
지명직이수진(노동) · 이형석(자치분권)
파일:theminjooreverse.jpg 당대표 소속기구
당대표비서실장
김성환
중앙당후원회장
정세균
민주연구원양정철수석대변인홍익표
대변인이재정 · 이해식
파일:theminjooreverse.jpg 전국위원회 위원장
전국여성위백혜련전국노동위박해철
전국노인위선진규전국농어민위위성곤
전국청년위김병관
장경태
을지로위박홍근
전국대학생위전용기사회적경제위김정호
전국장애인위문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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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심판원조태제당무감사원박범계
국가경제
자문회의
김진표 의장
변재일 수석부의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원혜영 의장
안규백 수석부의장
자치분권
정책협의회
이해찬 의장
황명선 간사위원
세계한인
민주회의
이해찬 의장
박병석 수석부의장
전국직능
대표자회의
백재현 의장
수석부의장
민생연석회의이해찬 공동의장
국제위이수혁참지방정부위황명선
당헌당규위우원식인권위이춘석
다문화위홍미영교육연수원전혜숙
재정위공석예산결산위이학영
당직자인사위윤호중
파일:theminjooreverse.jpg 특별위원회 (상설·비상설)
중소기업특위권칠승사회복지특위전혜숙
보육특위남인순교육특위조승래
보건의료특위권미혁주거복지특위황희
경제통일특위이석현국방안보특위황기철
동북아평협특위
송영길문화예술특위소병훈
환경특위강병원체육특위강신성
과학기술특위이상민정보통신특위고용진
해양수산특위서삼석
김철민
새터민특위
소상공인특위전순옥국민통합위김홍걸
재해대책특위김영호종교특위
인재영입위송철호
도시재생특위박영선문화예술특위김영주
시장활성화특위
최운열미세먼지특위송옥주
여성폭력특위정춘숙
파일:theminjooreverse.jpg 사무처
사무총장윤호중제1부총장김경협
제2부총장소병훈제3부총장김현
법률위송기헌홍보소통위권칠승
전략기획위강훈식대외협력위김현권
파일:theminjooreverse.jpg 정책위원회
정책위의장조정식수석부의장한정애
파일:국회상징.png 원내기구 (의원총회)
원내대표이인영
원내수석부대표
이원욱
원내부대표고용진, 김영호, 김정호, 맹성규, 박경미, 서삼석, 이규희, 임종성, 제윤경, 표창원
원내대변인박찬대, 정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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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고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Logo_of_the_Minjoo_Party_of_Korea.svg.png
역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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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제16~18대
박진
제19·20대
정세균
현직
파일:Wooripartylogo.jpg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제2대
천정배
제3대
정세균
제4대
김한길

{{{#!folding [ 펼치기 · 접기 ]초대
김원기
2대
정동영
3대
신기남
4대
이부영
비대위
임채정
5대
문희상
비대위
정세균
비대위
유재건
6대
정동영
7대
김근태
8대
정세균
새천년민주당 총재 및 대표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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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비대위
박지원
2대
손학규
통합민주당(2008년) 대표 민주통합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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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정부기 (구).png 참여정부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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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명단
재정경제부장관김진표이헌재한덕수권오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윤덕홍안병영이기준김진표김병준김신일
과학기술부장관박호군오명김우식
통일부장관정세현정동영이종석이재정
외교통상부장관윤영관반기문송민순
법무부장관강금실김승규천정배김성호정성진
국방부장관조영길윤광웅김장수
행정자치부장관김두관허성관오영교이용섭박명재
문화관광부장관이창동정동채김명곤김종민
농림부장관김영진허상만박홍수임상규
산업자원부장관윤진식이희범정세균김영주
정보통신부장관진대제노준형유영환
보건복지부장관김화중김근태유시민변재진
환경부장관한명숙곽결호이재용이치범이규용
노동부장관권기홍김대환이상수
여성가족부장관지은희장하진
건설교통부장관최종찬강동석추병직이용섭
해양수산부장관허성관최낙정장승우오거돈김성진강무현
기획예산처장관박봉흠김병일변양균장병완}}}}}}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제14대
황인성
제15~16대
정세균
선거구 개편
정세균[A]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
신설
정세균[A]
김태식[3]
제17~18대
정세균
제19대
박민수
}}}
파일:정세균.jpg공식 프로필 사진
파일:2017071710407544.jpg국회의장 재임 시절
이름 정세균(丁世均, Chung Sye Kyun[4])
출생일 1950년 11월 5일 ([age(1950-11-05)]세)
출생지 전라북도 진안군
본관 압해 정씨
종교 개신교(장로회)[5]
가족 관계 4남 3녀 중 셋째
가족 배우자 최혜경, 슬하 1남 1녀
신체 167cm, AB형[6]
최종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과
경희대학교 경영학 박사
전북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서울 종로구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5, 16, 17, 18, 19, 20
소속 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약력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쌍용그룹 상무이사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제20대 전반기 국회의장[7]
별명 균블리, 세균맨, 루피[8], 국회대장, 정바마
블로그 인스타그램

1. 개요2. 생애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3.1. 열린우리당 시절3.2. 통합민주당~민주당 시절3.3. 민주통합당 시절3.4. 새정치민주연합 시절3.5. 더불어민주당 시절3.6.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3.6.1. 새누리당과의 반목(反目)3.6.2. 특검법 직권상정3.6.3.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3.7. 국회의장 퇴임 이후
4. 정세균계5. 논란6. 기타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파일:/image/025/2016/04/14/htm_20160414154229813811_99_20160414200324.jpg
2016년 4월 14일 선거 유세용 차량인 '소독차'를 타고 당선 사례를 하는 중.[9]
파일:external/img.khan.co.kr/l_2016062101002924100222364.jpg
기타 항목에 언급된 세균맨 인형을 가져다 함께 찍은 사진. 의장 임기 내내 항상 올려두고 있었다.[10][11]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자 제20대 전반기 국회의장.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 출생이다. DJ의 비서실장 박지원이 인정한 김대중의 후계자.[12][13] 선거계의 조용한 제왕으로 불린다[14]

민주당 내 DJ키즈 중 한 명이자 범친노계 좌장[15] 중 한 명으로 꼽힌다.[16][17] 처세의 달인.[18][19] 대표적인 실력파 관리형 정치인이자 야권 위기상황의 구원투수. 전문에 서술했듯이 대인관계도 꽤 좋은 인물이다. 또한 보수성향 정치인들과도 통할 수 있는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보수정당계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상당하고[20] 민주당계 인물이면서도 보수성향과도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기도 하다.[21][22] 실제로 친노에서 파생된 각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박원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기도 하다.[23] 그래서 그런지 선한 의도 애드립을 친 안희정 충남도지사처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 중도우파 성향에게 대안보수로 언급돼기도 한다 카더라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면 뚜렷한 개성, 카리스마 등과 같은 화려한 정치적 매력을 갖춘 '스타' 정치인은 아니지만[24], 조용하게 강력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25] 정치인생 도중 비리에 연루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26] 개인 사생활이나 정치활동상의 구설수도 거의 없었다.[27] 문자 그대로 신사적인 국회의원에게 시상하는 백봉신사상[28]을 수상했을 정도이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진정한 신사라 불릴 정도니 말 다했다.

내리 4선을 한 전라북도의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지역구를 떠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재선까지 성공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20대 총선에서 만난 상대는 오세훈.[29][30] 현재까지 총 6선을 했다.

개인적인 성품은 적을 만들지 않는, 매우 온화한 성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세균을 공개적으로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동료 정치인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31][32]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강단과 엄격함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 때문에 당내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장 후보에 올랐으며, 본회의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찬성율로 대한민국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른다.

1년에 한 번 기자들의 투표로 당마다 1명씩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12번이나 타서 2017년 기준 현재 최다수상자다.[33]

민주당 내에서 호남계가 안철수 파와 또 다른 집을 새롭게 차려서 대거 민주당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당 내에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호남을 국민의당에게 빼앗긴 이후로 민주당이 호남 공략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운영하는 호남비전위원회도 배후에 이 사람이 있다고 보여진다. 문재인을 대표로 하는 민주당 내 친노패권주의가 호남에서 반감이 있다는 것도 잘 인지하고 있지만,[34] 경선에서 이미 문재인을 대표로 하는 친노계에게 자신의 기반인 전북을 제외한 지역들에서 모조리 패배하는 쓴맛을 봤기 때문[35]에 호남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의외로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실제로도 총선 때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20석 이상 가져간다고 한들 전국적 지지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분열이 이념투쟁이 아니라 비노성향호남계와 친노계 그리고 안철수계의 권력 투쟁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민주당의 밑그림은 박지원과 이 사람이 당대표를 하면서 더욱 큰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6] 본인도 DJ키즈면서도 당대표 시절에 열린우리당 탈당한 친노계 386세대 정치인들의 복당과 공천을 후원해 줬고, 장기적으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과 교두보를 마련해 줬다.

이는 정세균 본인이 동교동계이면서 권노갑 같이 평생 김대중을 따른 동교동계 직계가 아니라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 때 데려온 DJ키즈의 성격이면서 친노계이기 때문이다.[37] 참고로 이때 같이 들어온 인물들이 야당 거물로 성장했는데, 추미애, 신기남[38], 천정배, 정동영, 김한길, 김영환 등이 있다.

또한 국회의장 임기 직후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한 시기부터는 더불어민주당의 상임고문 직위도 역임하고 있다.

2. 생애

전라북도 진안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엔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하고 전주신흥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이때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일반고 교장에게 대학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날 장학생으로 입학시켜달라는 배포 큰 편지를 보낸 것.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서 교장이 장학생 대신 매점 일을 맡겼고, 그 알바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고려대 재학 당시엔 고대신문 기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10월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주재원으로 일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상무이사로 승진해서 수출 업무를 맡았다. [39] 그동안 미국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 실물과 이론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의 제안을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 고향인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8대 국회까지 그 지역구에서만 내리 4선을 역임하면서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2005년에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당 의장 대행, 2006년에는 산업자원부장관,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 의장(2기)을 맡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은 YS가 제안해서...[40]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쉽게 당선될 수 있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불출마한 뒤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를 제치고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前 서울시장 출신의 오세훈 후보를 제치고 종로구에서 재선하였다. 그동안 정세균의 정치적 역량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도 거물급 정치인을 두 번이나 압살하는 것을 보고 의심을 모두 버렸다고.

더불어민주당의 원내1당 등극과, 여야 두루 적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 덕에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여유롭게 선출되었다. 당시 당내의 경쟁 상대는 문희상이었다.[41]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지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의장, 당대표 등을 역임했다. 대기업 근무 경험 및 해외 체류 경험이 어우러져 실물경제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 유능한 경제 대통령 및 가계 부채 부담을 줄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선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SNL 코리아에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임팩트는 크지 않았다. 그가 출연한 부분 여기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세균'이란 이름은 '세상을 균형있게 만들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청년 실업에 관한 대안을 정책으로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며, 실물 경제에 밝다는 장점을 십분 이용하여 가계 부채를 완화하고자 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중이다. 정세균, 청년세(稅)법 발의…'과표 1억 초과 기업에 1% 법인세' 이 밖에도 나름대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발 쓴 정세균

3.1. 열린우리당 시절

열린우리당에서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주로 경제분야에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당시 사학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맡아 수행하였다.

2005년 3월에는 한나라당의 반대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 과거사진상규명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10.26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한 이후 3개월 동안에는 임시 당의장을 겸임하며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수출 3천 억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이 위기에 처하자 각 계파의 합의에 의해 당 의장에 추대되었다. 그 후 6개월 동안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결국 당은 깨진다.

3.2. 통합민주당~민주당 시절

2008년 7월 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추미애 등과의 경선에서 승리하여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18대 국회가 민주당 최악의 참패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대표를 맡아 원내대표였던 원혜영과 당을 수습했다는 점에서 구원 투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정세균 대표는 범 친노계열의 대표 역할을 민주당 내에서 했다.

그의 대표 시절 첫 선거인 2009년 10.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수원시 장안구, 안산시 상록을, 충북 증평군[42]을 잡아 3:2로 한나라당에 승리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결과를 MB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논평을 냈으며, 한나라당은 "패배를 인정한다"면서도 "참패는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논평을 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추모 바람과 진보 야당들과의 선거 연대, 의무 급식 등 복지 공약을 적절히 조합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다. 친노 성향 후보가 출마한 인천(송영길), 강원(이광재), 충남(안희정)을 모두 가져왔고, 특히 충북(이시종)을 가져오며 민심의 바로미터인 충청도의 과반을 차지하기도 했다.[43] 이 밖에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부산의 김정길 후보가 45%의 득표율을 올리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44] 서울의 경우 시장 자리는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0.6%)로 패배했지만 의회 의석의 상당수를 점유하였다. 이걸 보고 몇몇 기자들은 그때까지 이른바 관리형 정치인으로 불리던 정세균을 가리켜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이후의 2010년 7.28 재보선에서는 민주당이 참패한다. 당시 야권은 재보선 대상의석 8석 중 총 6석(민주당 5석+창조한국당 1석)을 점하고 있었으나, 선거 결과 민주당은 단 3석만을 건진 것이 전부였다. 또한 그중 1석은 텃밭인 광주였으며, 그 광주조차 민주노동당 후보가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진보 3당과 야권연대를 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의 지역구였던 서울 은평 을에서도 후보를 워낙 약하게 내서(....)[45] 패배한 것도 꽤 컸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입으로 불렸던 이재오를 재기시켰기 때문. 불행 중 다행으로 강원도 선거구 3개 중 2개를 이기며 소위 '이광재 효과'를 이어가긴 했으나, 각각 충북도지사, 인천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심지어 당선되었던 이시종 지사, 송영길 시장의 지역구에서도 패배하는 등 당시 잘나가던 민주당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선거가 되었다. 이후 정세균은 전당대회에서 3위로 낙선, 민주당에는 손학규 체제가 출범한다.

3.3. 민주통합당 시절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쉽게 당선될 수 있는 자신의 지역구를 마다하고, 격전지이자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종로구는 역대 대통령만 3명이나 배출한 곳으로서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높은 곳이지만,[46] 199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궐선거 승리를 빼고는 1990년대 이후 모두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됐던 지역이라 야당 의원들에게는 험지(險地)에 속하는 곳이었다. 더욱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으니, 손학규도 못 이긴 곳을 정세균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원래 이명박 前 대통령 및 친이계는 종로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친이계 최측근이자 소위 MB키즈로 불리는 이동관을 공천하려 했으나,[47] 이동관은 선거로 정계에 처음 입문하는 인물인데다,[48] 상대가 친박의 좌장인 홍사덕인지라 홍사덕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49] 어찌됐든 상대 후보는 친박의 좌장 중 한 명이자 6선 경력의 홍사덕으로, 워낙 지명도가 높은 데다 당시 새누리당의 차기 당대표로 지목될 만큼 주목을 받는 인물이어서 아무래도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50]

하지만 결과는 5천 표 이상의 압승이었다. 득표율은 52.27%. 승리의 원인으로는 종로의 밑바닥을 거의 훑다시피했던 선거운동과 특유의 스킨십이 꼽혔다. 관련 동영상 이로써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 안정적으로 둥지를 틀었고, 5선 고지 등정에 성공했으며, `호남 정치인`에서 벗어나 `전국구 정치인`의 위상을 갖게 됐다. 물론 거물급 원로 정치인 홍사덕은 이때의 패배로 사실상 정치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지금 잠이 옵니까?[51] 어찌 됐든, 서울 도심이자 서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종로에 입성하면서, 정세균은 점차 정계의 거물급 인사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 이 선거결과를 봤을 때, 이명박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던 이동관이 종로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돼서 정세균과 붙었어도 득표율을 추정해 봤을 때 여전히 정세균이 무난하게 당선되었을 것으로 보인다.[52]

그렇게 종로에서 압승한 기세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전북에서만 1위를 했을 뿐, 전국적으로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상당한 선전이 기대되었으나, 의외로 경선주자 4인 가운데 꼴찌를 마크하였다. 경선 패배의 원인은 역시 대중성의 부족, 그리고 카리스마의 부족, 당시 같이 친노계의 좌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노 진영이 대부분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리는 문재인에 결집한 것이 원인이었다.

3.4.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2013년부터는 문재인과 연대하였고, 새정연 비주류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를 흔들자, 문 대표를 옹호하기도 하였다.[53] 2015년 2월의 새정연 당직인선에서는 정세균계 의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정책위원장은 강기정(정세균계)[54], 사무총장은 최재성(정세균계), 전략홍보본부장은 안규백(정세균계)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또한 2015년 8월에는 정세균계의 김성주가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되었다.

이후 정세균은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정세균계의 다른 활동과 함께 활동을 병행하였다. 여담으로 정세균은 청년정책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자신의 아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취준생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었다. 청년 정책 강연 자리와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밝혔고 정청래의 개인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말했다.기사

그리고 다음 총선에 당선되면 대권을 노려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3.5. 더불어민주당 시절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뀐 후 그의 당내 세력은 허무할 정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공천심사 2, 3차 컷오프에서 오영식, 전병헌, 강기정을 비롯한 정세균계 의원들이 대거 컷오프 당한 것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최재성까지 포함하면 친노 주류에 이어 당내 다수파를 점유하던 정세균계가 사실상 몰락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르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문재인을 위한 견제라는 설이다. 4월 총선 이후 치를 당내 전당대회에서 정세균이 당 대표로 복귀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뿐 아니라, 2017년 대권 경쟁에서 정세균이 문재인에게 치대거나 박원순과 연대하지 않도록 염두에 둔 비대위의 이중포석이라는 의견. 실제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까운 임종석, 민병덕 등이 공천에서 모두 탈락한 것과 연결해 이 의견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친노계 내에서 문재인과 최고 좌장 자리를 다투던 이해찬을 날려버리고[55], 범친노 내에서 문재인계와 경쟁하던 정세균계도 좌장 정세균을 제외한 주변 인물을 모두 낙천시킴으로써 소위 '친문체제'를 구축했다는 주장. 관련 기사 참조

또 다른 하나는 문재인에 대한 견제라는 설이다. 비대위를 점하고 있던 박영선 등의 비노 세력이 총선 이후의 당권, 대권 경쟁에서 문재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문재인 본인의 중심 세력이었던 친노계와 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정청래, 정세균계 의원들을 컷오프해버렸다는 의견. 실제로 당시 공천권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전권을 쥐고 있던 김종인 위원장은 '친노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비대위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대립하였던 위원들은 단수공천을 받았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문재인에 대한 확고한 지지인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라 사실상 박영선, 이종걸 같은 비노계가 새로운 결집 카드인 김종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문재인의 수족을 잘라낸 것이라는 주장.

정세균은 현재 지역구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다시 공천을 받았고,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하게 됐다.

3월 21일의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45.1% : 정세균32.6%’로 크게 밀리는 등 당선이 어렵겠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련 기사 참조 3월 23일에는 '오세훈 45.8% : 정세균 28.5%'로 차이가 더 벌어져, 이미 대세는 굳어졌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관련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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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인 특유의 흔한 허풍이라면서 코웃음을 쳤다.
선거전에 돌입한 후에는, 오세훈의 플래카드 바로 아래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에서 깨알 같은 디스로 유권자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본 사진의 소재지는 혜화동로터리 우리은행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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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문구는 아니지만, 오세훈의 아픈 과거를 찌르는 인상적인 슬로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흥부자 유세단을 조직하여 유쾌한 춤판을 벌이는 등 관련 동영상 참조 센스만점의 선거운동을 전개하여, 대어를 낚을 조짐이 보였다.

그 후 4월 7일 발표된 (4월 3~5일 기준)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와의 격차가 불과 1%도 안 되는 초박빙의 접전으로 나타났다. 불과 2주일 전, 같은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17% 이상 밀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차가 급속히 좁혀진 것이다.

그리고 4월 13일 총선당일, 최종적으로 52.6%의 지지를 받아 39.7%에 그친 오세훈 후보를 꺾고 6선(종로구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위에서 언급해왔던 지지격차를 생각해본다면 대단한 일이다. 역전으로 증명하겠다는 트윗에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지자들마저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선거 전에 이뤄진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선거기간 당시 두 후보의 유세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세균은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밑바닥 정서를 폭넓게 파고 드는 디테일에 강한 "저인망" 스타일이었던 반면, 오세훈은 번화가 거리 사거리쪽에 앰프 트럭 크게 틀고 유세한 게 전부였다.. 한편으로 오세훈은 새누리당의 서울시 선거위원장을 맡으면서 인근 동대문구를 비롯한 다른 선거구로도 유세를 나갔는데, 그만큼 종로 내에서의 활동은 뜸했던 게 사실이었다. 이를 두고 종로구민들은 "벌써부터 대권 행보냐"며 부정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던 것.

이에 대해 정세균은 "오세훈은 강남 스타일을 하지만, 종로 스타일은 따로 있다."라고 한마디 했는데,[56] 이 말이 종로구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히 먹힌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오세훈이 아무래도 예전에 그렇게까지 큰 사안이 아닌 무상급식 건으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하면서 버린 적[57]이 있다보니 신뢰를 그리 많이 못 받기도 했다.[58]

종로 선거구 내의 동별 지지도를 보더라도, 정세균이 오세훈을 얼마나 확실하게 압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은 곳은 평창동과 사직동뿐이었다. 반면 정세균 후보는 본래 지지율이 높은 지역인 이화동, 창신동[59], 혜화동[60] 등을 모두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접전지로 구분되었던 무악동, 가회동에서도 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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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만끽하는 정세균과 부인 최혜경

3.6.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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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국회의장 서청원과의 만남[61][62]

제20대 국회에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으로서 국회의장을 맡는 것이 확정되면서, 6월 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사진에서 정세균에게 의장석을 넘겨주는 인물은 20대 국회 최다선(8선)이면서 표결 당시 임시 의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서청원이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이겼다면 의장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라서 묘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당시 의장 선출 표결에서는 박영선이 민주당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사실상의)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세균의 최종 단독 후보 찬/반 투표였다. 20대 국회의원이 287명 중 273표가 찬성표가 나왔는데, 이는 새누리당이나 국민의당 의원들도 대부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인데, 박영선만 사실상의 반대표를 행사 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를 목격한 것은 한겨례 이세영 기자라고 한다. 박영선은 투표를 하자마자 혼자 차 타고 떠났다고...[63]

사실 종로에서 기록한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해볼 만도 하였으나, "대권 도전과 국회의장직중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뒤 결국 대권은 접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64] 국회의장을 지낸 국회의원은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를 은퇴하는 관례로 미루어볼 때 매우 명예로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평.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은 의전서열 2위로, 이보다 높은 자리는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나올 경우 민주당을 꿀꺽한 친노파가 어떻게든 호남을 달래기 위해서 호남출신에게 한 자리를 줘야 하는데, 명분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계파적으로 보나 민주당에 남은 호남측 인물들 중에서 정세균은 어떻게든 다음 정권에서 역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평가도 많다. 사실 이 관례는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인 박관용 의장이 만들어낸 관례이지만, 말 그대로 관례일 뿐 국회의장을 지냈던 국회의원이 차기 총선에서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일례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다. [65]

국회의장이 되자마자 의장 직권으로 국회운영위원회를 야당 의원 60% 상임위로 만드는 노련함을 보였다. 참고로 우리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의 60% 이상이 찬성할 경우, 특정 안건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하는데,[66] 여기서 핵심은 국회 운영위다. 원래는 운영위가 더민주 11명, 국민의당 4명이라 야권 비율이 60%에 미달했으나, 정세균 의장이 운영위에 정의당 노회찬, 야권 성향 무소속 홍의락[67]을 배정해서 야권 비율이 60%를 넘게 하였다. 새누리당도 나름 머리 써서 야당 의원들이 60%를 넘는 상임위를 최소화했는데, 국회의장이 이렇게 비교섭단체 의원을 상임위로 배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2016년 6월 15일에는 국회에서 그간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출신 박희태 국회의장이 처음 공론화한 문제였지만 정작 한나라당 - 새누리당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간 새누리당이 국회 주도권을 장악해 왔기에 이 문제가 지지부진했지만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도 상당한 주도권을 잡게 되자 이 문제가 크게 탄력을 받아 마침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12월 5일 약속을 지켜 2017년 국회 예산안에 청소용역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탄핵 소추안에 국회의장으로서 그 존재감을 발휘하였다.

3.6.1. 새누리당과의 반목(反目)

2016년 9월 1일, 제20대 국회 본의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와 THAAD 국내 도입 논란 등을 언급해 새누리당 의원들의 심한 반발을 사 해당 의원들이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논란이 됐다. 개회사 전문 이 논란이 더욱 불거져서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 앞에서 정세균 의장직 사퇴와 사과,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기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국회에서 퇴장할 때 친박계 의원들만 퇴장하고 비박계 의원은 남았다고 한다.

결국 9월 2일 박주선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는 것으로 한 발 물러나게 되었다. 5일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

2016년 9월 23일에는 야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단독으로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시키기로 하자, 새누리당박근혜정부는 의원 총회로 고의성 지각을 하고, 국무위원들은 대정부 질의를 할 때 일부러 답변을 길게 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것도 모자라 국무위원들에게 식사할 시간을 주자고 강하게 요구하는 등의 시간을 최대한 질질 끌어 본회의를 못 열게 하려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자 정세균 의장은 밤 11시 50분경 국회법 제77조[68][69]에 따라 국회 일정 차수를 변경해 대정부 질의를 중단시키고 바로 본회의를 개의해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다. 물론 새누리당격렬하게 반발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과 무소속 의원들 170명이 해임 건의안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찬성 160표가 나와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은 가결되었다.

새누리당은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고 9월 25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 건과 관련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직권 남용으로 형사 고소하기로 했다. 이에 정 의장 측은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이정현 새누리당 당대표는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공개 단식이 아니라 비공개 단식을 하겠다고 해서 비웃음을 샀다. 당대표실 문을 걸어 잠그고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기자들만 잠깐 들여보내 주는 식이라 솔직히 단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정세균탕수육짜장면을 먹는 사진을 올리면서 이정현에게 약을 올렸다.댓글이 가관이다

이에 대한 분노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는지 새누리당은 2016년 9월 28일에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을 비롯한 3000여명 가량의 당원들이 국회로 모여 정세균 규탄결의대회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야당 단독으로 최순실 관련 의혹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덕에, 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의 감시를 받는 국가 기관들은 쉴드를 쳐 줄 여당 없이 야당 의원들만 상대하려니 당연히 죽을 맛이다.[70][71][72]

종편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국정감사 때 떡밥을 던져주는 게 야당 뿐이니 야당이 제시한 의혹만 꾸준히 방송을 태우고 있다.

한편 새누리당정세균 의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는 건 그렇다 쳐도 국정감사에는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쪽과 절대로 가면 안 된다는 쪽끼리의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국감 복귀를 주장하던 대표적인 새누리당 인사인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같은 당의 몇몇 의원들이 의원실에 3시간 20분 동안 감금하는 초유의 사건도 있었고, 이정현 대표가 국감에 복귀하라는 요청을 의원 총회에서 거부하고, 이 문제로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서 국감 복귀 반대를 외치는 친박계와 국감 복귀 찬성을 주장하는 비박계가 서로 고성과 욕설을 주고 받는 등 새누리당도 상처가 많이 나는 듯하다. 가뜩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골치가 아픈데 내우외환이 따로 없다.

3.6.2. 특검법 직권상정

황교안특검 연장을 안 해주자 야권에선 특검법을 직권상정해서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범야권이 직권상정을 요구했음에도 끝끝내 거절했다. 특검의 연장을 바라는 여론에서는 정세균이 쫄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는 했으나, 사실 원론적으로 살펴보면 정세균 의장이 맞는 말이다. 직권상정의 요건이 맞지 않기 때문. 자유한국당의 비토로 인해 원내교섭단체간의 합의가 되지 않았고,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은 자의적인 해석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다. 테러방지법 당시 정의화 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인해 논란이 커졌는데 이의 재발을 막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이 직권상정 때문에 국회가 얼마나 소란스러웠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결과론적이지만 황교안이 특검의 연장 요청을 거부했는데 연장법을 시행해줄 리가 없다는 점도 있었다. (박근혜정부의 일원으로서 자기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만큼)

3.6.3.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정세균 의장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 선서를 위해 국회에 온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해 의장실에서 비공개 환담을 나눴다. 그러고는 선물숙제웬 책을 줬다고.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8주기 때 초청 받은 후, 추모하러 봉하마을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떠나가셨을 땐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나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며, 점차 노무현 대통령님이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남은 저희들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연설하였다. 이를 봤을 때 정세균이 노무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정세균은 확실한 친노계임을 알 수 있다.

2017년 9월 4일, JTBC 비정상회담에 한국대표로 출연했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자로서 시구를 했다. 하지만 시구를 한 뒤 비난의 말들도 많다. 대통령에 이어 국회의장이 시구했으니 한국시리즈 시구는 의전서열 순서로 7차전까지 시구하냐며 야구팬들에게 시구를 주관한 KBO와 함께 까임을 받았다. 다만 정세균 의장은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의 올드팬으로 특히 수석코치 조계현의 광팬으로 알려졌으며 이 날 시구에서 입은 KIA 유니폼에도 조계현의 선수시절 넘버인 17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납득간다는 말도 나왔다. 의전서열 1위와 2위가 모두 야구광이었습니다......[73]

자유한국당 의총(제354회)에 11시간이나 늦고 적반하장으로 나서자, 화를 냈다. 정세균은 부드러운 성품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것만큼은 참지 못했는지 결국 터지고 말았다.

2017년 12월 22일 매니 파퀴아오 필리핀 상원의원과 국회의사당에서 만남을 가졌다.

2018년 5월 29일, 국회의장 임기를 마무리 했다. 여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 의장은 ‘의장직이 끝나도 정치은퇴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리를 탐하지도 않을 것’이란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의장 임기를 마무리 하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은 전직 의장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74]

3.7. 국회의장 퇴임 이후

국회의장 임기 만료 3일 후인 2018년 6월 1일, 민주당 복당 절차가 마무리 되어 민주당에 복당하였다. 후임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은 문희상이 역임하게 됐다.
2019년 6월, 전라북도교육청상산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재지정 탈락 결정에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하였다. 정 전 의장은 "개인적으로는 고교 평준화 정책 찬성론자"라면서도 "전북지역의 학생들에게 상산고는 수십 년간 미래인재의 산실로 자리매김해왔고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인재육성의 길이 막힌다는 것에 우려가 크다"고 하였다. 정세균 의원의 지역구는 종로구이나, 고향은 전북이며 과거에 전북에서 4선 의원을 한 바 있다. 정 의원 뿐만 아니라 민주평화당 박주현[75] 수석대변인과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 등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상산고 탈락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

4. 정세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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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 ~ 열린우리당 창당
친노 동교동 신파 동교동 구파 후단협 이인제계
열린우리당 창당 ~ 4회 지선
친노 민주당
4회 지선 ~ 17대 대선
민평련 친노 정동영계 김한길계 민주
17대 대선
한국 친노 정동영계 손학규계 민주
17대 대선 ~ 국민참여당 창당
민평련 정세균계 정동영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한국
국민참여당 창당 ~ 민주통합당 창당
정동영계 참여계 민평련 친노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민주통합당 창당 ~ 18대 대선
정동영계 민평련 친문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18대 대선 ~ 14년 재보선
민평련 친문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친안
14년 재보선 ~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친문 민평련 정세균계 구민주계 친안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 국민의당 분당
친문 비문 호남계 친안
국민의당 분당 ~ 현재
더민주 정동영계 박지원계
정당별 계파 (진보정당 · 정의 · 민주 · 평화 · 바른미래 · 한국)
계파 역사 (진보정당 · 민주당계 · 보수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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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丁世均/Pro Chung Se-Kyun[76]

더불어민주당 소속 6선 의원으로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세균을 따르는 정치인들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장관, 최재성[77], 이원욱전병헌강기정 , 김성주 등이 있다.

'범'친노 최대계파. MB정부 시절에는 친노 최대계파였다. 참여정부말기 친노의 퇴조속에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많은 수의 친노 인사들이 불출마하거나 공천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의 압승의 영향으로 다수의 친노 인사(한명숙, 이광재 등)들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이 시기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2008년)에 모두 잔류하며 원내에 남은 친노 인사들과 중도세력의 수장이 된 것이 정세균이며, 이것이 정세균계의 유래. 

또한 정세균은 친노 중진들 중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드문 사례이기도 했다. 정세균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호남의 지역구(무주, 진안, 장수)에서 출마했으며, 이에 따라 호남의 친노 인사들을 정세균계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세균 본인이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김에 따라 호남에서의 영향력은 감소한 대신에 수도권에서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리고 계파수장 정세균 본인이 친노직계로 분류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인물인지라 친노직계에 가장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동맹자로 분류되는 일이 잦다. 그러면서도, 정세균은 넓은 인망을 갖고 있어서 비노계에서도 인물평가가 가장 좋은 계파에 속한다. 결국, 정세균은 여야를 막론하고 넓은 인망을 인정받고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재직했었다.

그러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남 전역이 국민의당에게 넘어감에 따라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수도권에서의 영향력도 역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정의 컷오프 등에 의해 많은 타격을 입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당연히 친노계의 탓이 아니다.

이후 친문계의 성장과 함께 당 내의 최대계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문을 빼면 범친노 최대계파의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탈환을 위해서 노력하는 상황에서 호남 지역의 실질적인 수장이 이끄는 계파라는 점 탓에 더욱 큰 역할을 맡을 여지가 있다.

다만, 수장격인 정세균 의원은 6선에 성공하고나서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 자리를 비웠던 상태라서 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얻지 못했던 상황이다. 기존부터 우호적이었던 친문계이나, 486그룹, 민평련계와 연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보이지만 정세균은 친문계와도 우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노계와 범친노계를 통합할 수 있는 매우 위상이 높은 인물로 봐도 부족하지 않다. 이후 김영주 의원이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입각하기도 했다. 2018년 들어서 정세균 의원이 복당했고, 강기정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입각하면서 간만에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세균계는 정세균 본인을 제외하면 친노색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띄는 계파라는 특성도 가지고 있는데다 전반적으로 일부 사안에서는 친노계와 다른 입장을 띄는 경우도 있었고, 다른 친노계 인사들과는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다만 친노, 친문계열과는 분쟁을 빚지도 않고 여러 사안에서 협력한다. 그렇다보니 '범친노'로 구분된다. 정세균계는 친노, 친문계와는 든든한 동맹관계로 보는 쪽이 옳다. 단, 정세균 개인의 경우 정치 행보 및 노무현과의 관계 특성상, 그의 측근들이 상대적으로 친노 색이 약해도 범 친노에는 속한다고 볼 수 있다.

5. 논란

3월 19일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미 자유한국당의 이우현 의원과 서청원 의원이 연루되었다는 정황에 이어 추가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후 본인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 반박자료를 냈다. (이후 정식으로 언론사 제출자료로 반박자료가 나왔으며, 반론보도 청구 및 법적 대응도 예고한 상황.)

2018년 5월 10일에는 단식 농성중이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아가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로 홍영표 의원이 이미 결정 된 듯이 말해 논란이 생겼다.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 선출 날짜는 5월 11일이기 때문. 물론 홍영표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로 유력하다는 것이 민주당 안팎의 중론이지만 경쟁자인 노웅래도 있는데 뚜껑이 열리기도 전에 왜 국회의장이 설레발을 치냐는 지적을 받았다. # 다만 결과적으로 홍영표가 압도적 차이로 원내대표가 되긴 했다.

6. 기타

  • 1997년 4월 12일 한보 사태 특별 청문회 당시 전문경영인 이모 씨가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다 건넸지만 유일하게 안 받은 인물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시 초선이기도 했고 스스로가 금전적 욕심이 없다고 한다. 쌍용그룹 근무 당시 한보그룹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보 쪽 인물과는 아예 상종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쌍용도 한보만큼은 아니어도 만만찮은 문제 기업이었을 텐데. 쌍용 자식 뻘 되는 STX가 망한 걸 보면[78]
  •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는 그룹 내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는 김성주 또한 본인처럼 전문성을 갖춘 데다 점잖고 신사적인 스타일의 의원이라는 점을 보면 그가 왜 소리없는 강자인지 알 수 있다.
  • 카카오톡도 한다. 친구찾기에서 '종로는 정세균' 이라고 치면 나온다. 옐로 아이디라서 소통을 하는 건 아니고, 뉴스나 공지사항 같은 것만 올리는 것이다.
  •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세균맨. 날아라 호빵맨에서 나오는 그 캐릭터가 맞다.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즐기는 듯 하다. 아예 블로그의 닉네임을 좋은세균 정세균으로 해놓았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길거리 유세 중에 '세균맨 화이팅!'이라는 쪽지를 받았으며 또 어떤 어린이가 "아저씨가 진짜 세균맨이에요?" 라고 묻자, 정세균이 "어, 아저씨 세균맨이야."라면서 대답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 안티들은 이름을 비꼬아서 정병균이라 부른다.
  • 국회의장이 된 후, 인스타그램 친구로부터 세균맨 인형을 선물로 받았고 이걸 책상에 놓았는데 임기 내내 국회의장실 책상 한 켠에 두었다. 당시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말고도 뽀롱뽀롱 뽀로로루피 인형도 있는데, 이 뒷이야기가 참 특이하다. 처음에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인형만 있었는데 이를 두고 몇몇 네티즌들과 언론들이 "세균맨은 일본 캐릭터인데, 왜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실에 있냐!!!" 라고 지적을 한 것. 듣다 못한 지지자들이 "그러면 한국 만화 캐릭터 중에서 정세균 의장하고 닮은 걸 찾으면 되지 않냐." 고 해서 찾은 게 바로 뽀로로의 루피. 여기에 몇 가지 의미 부여를 하면, 세균맨이 남캐-루피가 여캐다 보니 남여 성비가 1:1로 맞는 것도 있고, 세균맨이 일본 캐릭터-루피가 한국 캐릭터다 보니, "어쩌면, 한일 간의 여러 문제가 다 해결된 평화적인 한일 간의 상태는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소심하게 이제 인형빼도 될까? 물었다가 국회의장실 직원들이 세균맨과 루피가 국회의장보다 인기가 좋다고 절대로 빼선 안 된다고 말렸다. 의장실 실세 둘 이후에 비서실 자리에 있던 인형이 귀엽다며 본인 책상에 또 갖다 놓았는데 하필 그 인형이 물개옹이다(...). 의문의 워너블행?
  • 2016년 4월 21일 JTBC 뉴스현장의 직격 인터뷰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하였다. 그런데 손석희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해 인스타그램 담당자가 '아무리 원근법이라지만... 스프링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태생적 한계.. 잠시 눈물좀닦고', '#5등신과8등신'이란 평가를 남겼다. 참고로 정세균 의장은 키가 168cm, 손석희는 178cm 정도 된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노무현 탄핵 당시의 정세균과 현재 박근혜 탄핵 때의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교한 사진 두 장[81]을 찾아 올리자 정세균 인스타그램 관리자가 해당 내용을 봤는지 해당 사진에 대한 설명 및 감사글을 올렸는데 이때 관리자가 약을 빨았는지 균블리는~ ~했고요~하고 시작을 한 것과 해시태그가 압권이다. 해당 글을 읽은 네티즌의 반응은 '아재 귀엽다'와 '갓세균' 등 찬양일색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82] 결국 역사적인 탄핵 소추안에 국회의장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 친노 편입 후, 문재인 대통령과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영혼의 듀오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둘의 활동시기나 위치가 비슷한 편이다. 노무현 1기 (탄핵정국 직전)에 문재인은 민정수석 /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다. 노무현 2기 (탄핵기각 후) 에 문재인이 비서실장 / 정세균은 산업자원부장관이었고, 둘 다 각지에서 돌고 돌아(다만, 문재인은 참여정부 이후로는 2011년에 다시 정계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정계 밖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후 새정치민주연합 시기에는 문재인이 당 대표 / 정세균이 당 최고위원 이었고, 더불어민주당 시기에는 문재인이 당 상임고문 / 정세균이 국회의장이었다가, 2017년 5월 10일부터는 문재인 대통령 /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올라온 상황[83]. 물론 정세균 의장도 문재인 대통령처럼 당내 계파를 이끌면서 대통령직에 도전해왔고, 2012년 경선에서는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만큼 둘의 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재인과 정세균은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립과 공개적인 비난은 자제해왔고, 당내 선거가 끝나면 공존하고 협력하는 관계였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 정치인 사이의 관계는 모범적인 경쟁적 협력관계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 듯. 둘의 협력은 결국 한 쪽은 대통령, 다른 쪽은 국회의장이 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 정치계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노무현 탄핵가결 당시 가결을 막으려고 의장석을 점령했던 사람이 훗날 진짜 국회의장이 되서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게 되고, 그의 임기 당시에 같이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방한한 트럼프의 국회 연설도 지켜보았다.
  • 보수정당계의 인물들이랑도 상당히 친한 인맥 범위가 넓은 인물인데,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친노에서 파생된 계파의 수장 치고는 드물게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도 친분이 있다. 박희태와도 친분이 어느정도 있다. 왼쪽이 당시 이상득이고 오른쪽이 당시 정세균 의원이다.
파일:PYH2009121400540001300_P2.jpg
  • 젊었을때는 동아일보 기자를 꿈꾸기도 했다고 밝혔다. #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진안·장수) 새정치국민회의 36,176 (69.86%)당선 (1위)초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진안·장수) 새천년민주당 34,165 (65.14%)당선 (1위) 재선[84]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열린우리당 45,475 (78.08%)당선 (1위) 3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통합민주당 45,566 (74.00%)당선 (1위) 4선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민주통합당 41,732 (52.26%)당선 (1위) 5선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더불어민주당 44,342 (52.56%)당선 (1위) 6선[85]

새천년민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될 때를 제외하면 정세균 본인이 당적을 옮긴 적이 없지만, 소속 정당인 민주당계 정당이 워낙 개편이 잦은지라 선거마다 이름이 다르다. 이건 민주 & 진보 진영의 현역 의원들을 통틀어 최다선 의원인 이해찬 의원도 똑같다.

총선에 여섯 번 출마하여 모두 당선됐고, 특히 모든 선거에서 득표율 50%를 넘기는 압승을 거뒀다. 4선까지는 텃밭이라 쳐도, 이른바 정치 1번지라고 일컬어지는 서울 종로구로 옮겨서도 두 번 연속 완승했다. 이건 정말 놀라울 정도의 성적인데, 15대부터 20대까지 6선을 내리 연속으로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고, 과반을 잃은 적도 없다. 지역구에서 그의 지지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과연 소리 없는 선거의 강자다.

이쯤 되면 20대 총선을 통해 7선 고지를 점령한 이해찬 의원이나 떨어진 이인제 전 의원 수준으로 총선 불패의 정치인이다. 이해찬 의원은 탈당 전력이 4.13 총선 때 한 번 생겼지만 정세균 의원은 그런 것도 없다.[86] 다만 20대 국회에서 전반기 국회의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는 탈당해서 무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7선에 도전했던 이인제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며,이후 충남도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니...

8. 둘러보기

파일:Seal_of_seoul_little.png 서울특별시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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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minjooreverse.jpg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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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이철희 이춘석 이학영 이해찬
이후삼 이훈 인재근 임종성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전혜숙 정성호 정세균
정재호 정춘숙 제윤경 조승래 조응천
조정식 진선미 진영 최운열 최인호
최재성 추미애 표창원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홍익표 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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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대 국회에서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 선거구로 개편되었다.[A] [3] 16대 국회 당시 임실군·완주군 선거구.[4] 정세균 의장 본인이 직접 의장 명패에 새겨넣은 영문 이름이다.[5] 평창동 예능교회 장로이다.[6] 네이버 프로필에서는 B형으로 나와 있다.[7] 2016년 5월 29일 ~ 2018년 5월 29일[8] 실제로 의장실 책상에 세균맨과 루피(뽀로로)의 인형이 올라가 있다. 해적이 아니다! 이제는 물개옹도 추가[9] 본인의 이름인 '세균'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트리비아 항목 참조.[10] 언젠가부터 뽀로로의 루피 인형도 나란히 놓여 있다. 자세한 건 하단 트리비아 참조.[11]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날 3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의장실에서 발표를 할 때에도 그대로 있었다. 의장직 초기에 새누리당 의원 수십 명이 의장실에 쳐들어와 겁박할 때도 있었고, 썰전 200회 축하 인사 때도 같이 있었으며, 문재인 정부 이후 임종석 비서실장이 예방할 때도 여전히 있었다.[12] 김대중이 사망한 이후로 가신그룹 중심으로 누가 김대중의 대를 이어서 민주당 호남계 좌장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로 기싸움이 치열했는데, 박지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을 언급하면서 정세균을 밀어줬다. 참고로 이때 동교동계 구파 가신그룹 중 한 사람으로서 정세균을 비판한 한광옥은 나중에 민주당을 배신 때리고 박근혜에게 자살하러 갔다.(...)[13] 옛 동교동계는 '자신들은 DJ가 위기를 겪었던 어려운 시기'부터 보좌했는데, 자신들보다 정계 입문도 늦고 연배도 어린 정세균이 갑툭튀해서 박지원의 지원을 받고서 호남계의 좌장이 되자, 환멸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이 대선을 앞두고서 박근혜의 지지를 선언하게 된다.[14] 경선 통과 후 출마한 모든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나오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이 조사가 왜곡이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뒤, 결국 여론조사의 정반대로 대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키며 한국 총선역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당시 종로구 패배로 인해 새누리당이 받은 충격이 대단했다. 대통령하고 총리만 안 해봤지, 6선의원에 장관도 해보고 당대표도 해보고 정치인생 끝날 무렵에는 국회의장까지 해봤다. 사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가보기도 했으나 자신이 18대 국회 시절에 도와준 친노파는 친노계의 적자로 불리던 문재인을 밀어줘서 완패.[15] 정세균계가 아닌 정세균 개인만 보면 보통 친노계로 분류된다.[16] 정작 정세균 본인은 민주당 당대표하던 시절 DJ 동교동계 가신그룹에게 민주당 내 친노계랑 타협한 배신자라고 엄청나게 디스당했다. 참고로, 박지원 같은 경우는 원내대표로 정세균 김대중 후계자라고 지원사격해주고 노무현 구명활동까지 해줬다.[17] 사실 정세균은 동교동계로 보기도 애매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새정치국민회의로 김대중이 영입한 인물들은 동교동계가 아니다. 참고로 정세균은 동교동으로 김대중을 자주 찾아갔고 김대중 사후에 꾸준히 김대중 기일에 참배하러 간다. 친노계와 친하며 독자세력도 보유하고 있는 범친노계 호남파라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이 사람 친노파가 문재인을 밀어줄 때도, 경선출마까지 했던 사람이다. 다만, 19대 대선 중 민주당 內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의 사례를 봤을 때, 추후의 대선 출마 및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경선에 출마했을 확률도 상당히 높다.[18] 참고로 정세균은 이명박하고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고, 이명박 정부 시절 실세였던 이명박의 형 이상득하고도 친분이 있으며, 이상득을 제외하면 친이계의 1인자이자 이명박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이재오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다. 실제로 찾아보면 정세균이 이상득과도 서로 붙임성있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 이병석 등의 친 이명박계 중진들과도 친분이 있는 편. 실제로 친노계 인사 중에 이상득과 친분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정세균이 대인관계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밖에 볼 수 없다.박지원이 이상득과 인맥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나 박지원은 비노계다[19] 국민회의 출신 구 세대 호남계 정치인이면서도 친노계를 동교동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줬다. 덕분에 호남계이면서도 문재인의 지지를 받아 국회의장에 추대될 수 있었다.[20] 실제로 보수정당계의 중진이었으면서 은퇴한 이상득, 박희태 및 친이계 중진들도 정세균과는 상당한 친분이 있다. 상도동계 출신 친박 좌장인 서청원과도 친분이 있는 편.[21] 거기다가 더불어민주당 內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중진답지 않게 4년제 중임 개헌보다 분권형 개헌에 무게를 더 두는 견해를 표현하는 정치인이며, 중도우파 내에서도 통할만한 면이 더불어민주당 중진 내에서는가장 많은 정치인이기도 하다.[22] 다만 2016년 9월에 새누리당과 충돌은 있었다.[23] 정세균이 문재인, 박원순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유는 그가 문재인이나 박원순과 달리 대기업에서 종사한 경력이 있어서일수도 있다.[24] 스타성은 없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즉, 20년 이상의 정계 생활 짬밥과 세균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시너지.[25] 하지만 국회의장이 된 이후 존재감이 상당히 커졌다. 국회의장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이 크게 마련이긴 하지만.[26] 의혹은 있었다. 동아일보가 인사청탁 의혹을 제기했으나 얼마 안 있어 깨갱하고 정정보도를 냈다.[27] 가끔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9년에 한나라당이 소위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당대표로서 의원 사퇴서를 제출하고, 6일간 단식하는 쇼를 보여주면서까지 결사항전을 하였다.[28] 박근혜가 4년 연속 수상하긴 했지만, 이건 그 당시의 박근혜의 겉 모습에 시상주체가 낚였다고 생각하면 된다.[29] 가뜩이나 새누리당의 거물급 중진들과 잠재적인 대권주자들이 대거 목이 날아간 20대 총선판에 오세훈까지 제대로 만신창이를 만든 셈이다.[30] 20대 총선은 말 그대로 헌정사상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을 포함하여 최악의 참패라 볼 수 있다. 단순히 의석 확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인제가 정치신인에게 드디어 날개가 꺾였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기는 했으나 이재오의 목이 달아났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지역인 대구광역시에서마저 의석을 2곳이나 내주었고, 부산은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은... 더 이상 말을 말자(...)[31] 정치권 내에서는 계파 갈등이 극심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그가 흔들리지 않고 건재할 수 있는 이유로, 어지간하면 누구와도 어색한 사이를 만들지 않는 특유의 인자한 성품과 처세술이 뛰어난 성격을 들곤 한다. 실제로도 정세균이 대놓고 화를 내거나 거친 언사를 하는 것을 보기란 매우 힘들며, 과거 한나라당 지금의 자유한국당 정치인들과 한때는 같은 당이었으나 갈라져 나간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낸다. 단, 실없는 친한척만 하느라 화를 낼때 못 내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며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 사태 때 영상만 봐도 다른 열린우리당의원들처럼 분노를 금치 못하고 가결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정세균의 모습을 볼 수 있다.[32] 다만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공천문제를 두고 정동영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는 못하다. 정동영이 공석이 된 자신의 원지역구에 출마하려고 하자,공천탈락 되었고, 이에 반발한 정동영이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 되어서 원내에 돌아왔다. 다만 현재 정세균과 정동영의 입지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동영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게 정세균에게 있어서 크게 아쉬울 일은 아니다.[33] 박근혜도 4년 연속 수상했던 걸 보면 크게 의미 있다고 보긴 어려울지도 모른다.[34] 그러나 전북의 경우에는 오히려 친노 성향이 강했던 경향이 있고, 전남의 경우가 동교동계를 더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했다.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리돼면서 현재는 이 곳마저도 전남 서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우세해졌다.[35] 정세균 본인은 18대 국회 내내 친노계의 수장 역할을 했지만 친노계 인사 중에서 위치나 정통성에서 더 우위에 있던 문재인이 갑툭튀 등장하면서 친노계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지지로 줄줄이 이동한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36] 박지원과 이 사람 관계는 상당히 묘하다. 사실상 동반자였으면서도 경쟁자.[37] 비슷한 예로, YS키즈로 분류되는 인물의 경우, 노무현,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이회창, 정의화 등이 있다.[38] 천신정 중 2명과는 달리 친노계로 분류돼며, 현재 친노 주요 파생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정세균, 박원순과도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39]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이런 경험 덕분에 정세균이 이명박, 이상득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학생 시절 조중동 중 두번째로 보수적인 신문인 동아일보 기자를 희망했다는 점과, 커리어 유형이 일정부분 이상득 및 이명박과 겹치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이 고향인 이들과 달리 호남이 고향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성격상 이들과 통하는 부분이 꽤 있었을 것이다.[40] 이명박과 이상득은 형제임에도 정치 입문 과정이 다르다. 이상득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었던 시절에 이미 민정당 정치인들과 가깝게 친분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이춘구와 친구였기 때문에 그 추천으로 민정당에 입당했는데, 1988년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민주정의당 후보로 고향 포항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명박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전설의 재벌 정주영이 대통령을 노리고 정당을 창당하면서 정주영이 영입한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전한 것 때문에 위기 의식을 느낀 김영삼이, 정주영에 맞서기 위한 현대 고위직 출신 인사로 영입한 것이므로 두 형제가 이후에 소속한 당 자체가 같았어도 이상득은 군부 인맥으로 시작된 정치로 3당합당 이전 전두환-노태우 시절의 정통 군부민정당 라인, 이명박은 3당합당 이후 경제 인맥으로 들어온 김영삼 영입 라인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41] 당시 문희상은 당내 공천위원회 기준 의정 활동 점수 미달로 공천 컷오프를 당했다가, 후보최종결정 직전에 전략공천으로 들어간 것이라서 제대로 면이 서지 않아 불리했던 부분도 있다. 물론 지금은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내고 있다.[42] 손학규 前 대표의 참모였던 이찬열이 원내에 입성했으며, 탄핵을 주도한 김영환과 정계를 떠나있던 정범구가 다시 5년 만에 국회로 돌아갔다.[43] 이를 계기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사퇴하고, 원내대표였던, 김무성 비대위가 들어섰다.[44] 또한 경남에서는 민주당 소속은 아니지만 친노 성향 무소속 후보였던 김두관 후보가 승리하며 한나라당의 텃밭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후 김두관 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 경남지사를 사퇴하면서 대선 예비 후보로 경선에 출마하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한다.[45]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 국무총리 후보자에 올랐던 장상 총장을 올렸으나, 지역 정치인인 이재오에게 크게 졌다. 문국현 지역구를 제대로 털린 창조한국당은 덤.[46] 윤보선 전 대통령은 종로에서 3선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기서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47] 실제로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 및 이명박의 최측근들이 이동관을 종로구에 공천시키기 위해 노력했고,(이 당시 친이계가 이동관을 얼마나 밀어줬냐면, 이동관이 종로구에 예비후보 사무실을 차렸을 때도 친이계의 수뇌부로써 최상위 서열에 위치한 이재오와 최시중이 직접 이동관을 방문해서 격려하기까지 했다.) 이동관은 이 때 각종 종로구 행사에 정세균과 같이 참여해서 나름 각을 세우면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48] 19대 국회 때 친이계가 친박의 세에 눌려 다소 공천을 받은 인물이 적어졌지만 당시에는 이명박이 대통령이었던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계의 최측근급 인물들은 거의 다 공천을 받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MB키즈로 불리는 정계 입문 희망자가 친박의 좌장으로 불리는 인물을 경선에서 이기고 공천받을 확률은 낮았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 이명박의 최측인 이동관을 공천했다면 오히려 정세균에게 대패하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까지 타격을 입는 굴욕을 당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49] 이 당시 새누리당의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공천은, 그 당시 지역구를 담당했고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비박계의 박진, 친이계가 강력 지지한 이동관, 친박 중진에 속했던 홍사덕의 3파전이었다.[50] 다만 홍사덕은 지역구를 자주 옮긴데다가(16대 이전까지는 강남구 을, 16대 전국구, 17대 일산동구, 광주시, 18대 대구 서 을, 19대 종로 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 주역이라는 점이 페널티였다.[51] 가뜩이나 인물이 부족한 친박 진영 입장에서는 원로급 1명도 아쉬운 판이었는데, 홍사덕이 종로에서 거꾸러짐으로써 더욱 인물난에 시달리게 되었다.[52] 거기다가 친박의 홍사덕은 차라리 유명한 정계 중진이기라도 했지, 친이계의 이동관은 새누리당에서 확정해서 출마를 시켰다고 해도 초선도 아닌 정치 경력이 전무한 인물이었다.(설사 당선되었다 쳐도 초선 의원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또한 그 시기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지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시기였던만큼 이명박의 최측근인 이동관과 붙었다면 오히려 정세균이 홍사덕과 붙은 것 이상으로 이동관을 득표율에서 찍어 누르고 당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나 저러나 이 제19대 국회의원 총선은 정세균이 정계의 중진으로 입지를 크게 넓히는 데 발판이 된 선거였다.[53] 이 때문에 정세균과 정세균을 따르는 국회의원들을 일컬어 무조건 친노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하자면 정세균은 친노가 아니다. 정세균은 김대중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노 대통령을 도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그를 들어 범친노계로 분류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대체로 친노에 대한 우호 세력으로 보는 편. 뭐 사실 친노라는 범위 자체가 워낙 들쭉날쭉해서...[54] 강기정은 정세균이 당 대표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맡은 바 있다.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55] 그러나 이쪽은 먼 옛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이해찬에게 선거에서 졌던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개인감정으로 잘렸다는 설이 훨씬 많다. 일단 문재인에게 정당정치를 하라고 처음으로 적극 설득한 정치인 중 하나가 이해찬이다. 훗날 김종인은 선거 이후 국면에서 문재인 측을 이해할 수 없다며 디스하다 못해 1년도 안 되어서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고 탈당하기까지 했는데, 이해찬은 대선에서 경선 시절부터 중립은 표방해도 은근슬쩍 문재인이 유력함을 인정했고 경선 후 문재인 캠프에서 중요한 고문 역할을 했다. 정말 김종인이 아니라, 친문재인 세력이 고의로 이해찬을 목표로 삼아 국회의원을 못하게 하려고 숙청했다면, 어렵게 무소속 당선된 이해찬 입장에서는 1년도 안 되서 갑자기 문재인을 적극 지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고 말이 안 된다.[56] 오세훈의 16대 국회의원 시절의 지역구가 강남이었다.[57] 이 건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임기 2기 무렵 야당소속이 상당수 점유했던 서울시의회와 구청장 간의 마찰과 갈등과 큰 연관이 있었다. 당시 특히 서울시의회 시의원으로부터 여러 번 청문회 및 질의에 소환되면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던 적이 많았는데, 오세훈 자신은 이러한 처신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최악의 수가 되었지만...[58] 한국의 유권자들은 투표로 선출된 자리를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일례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도 대선 경선에 나서기 위해서 도지사 직을 그만두고 나갔다가 아예 대선 후보군에서 날아가 버린 전례가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시장직을캐삭빵 중간에 그만둬버린 데다가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에 집중하지 않고 마치 대선후보라도 된 것 마냥 거만하게 다른 지역 후보들 지원유세를 다니는 행태가 종로 유권자들의 시선이 고깝게 보여서 도저히 좋을 수가 없었다.[59] 창신동과 숭인동 지역의 경우는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강하다. 과거 종로구 숭인동과 창신동에 뉴타운 관련건에 주민들 상대로 사기를 치고 제대로 빅엿을 먹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균은 19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비교적 지역구 관리를 잘 해왔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아왔다.[60] 혜화동을 비롯해 명륜동, 연건동 등 대학로 지역은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의대/치대/간호대 등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해서 대체로 야권성향이 더 강하다.[61] 서청원 의원이 20대 국회 최다선 의원(8선)이었기 때문에 임시 국회의장직을 맡았었다. 실제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도 했지만 새누리당이 폭망하면서 그 꿈은 사라져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져버리면서 친박계의 수장이었던 서청원은 박근혜 탄핵선고와 홍준표와의 반목 등을 통해서 20대 하반기 의장으로서의 가능성과 차기 21대 총선에서의 공천가능성마저 잃고 말았다.[62] 2000년 16대 국회 개원 당시에는 5선 의원으로서 국회의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8선의 이만섭(새천년민주당)에게 밀려서 당선에 실패한다. 16년 만의 도전이었음에도 또 떨어진 것.[63] 2016.06.10. 언니가 보고 있다 22회 새누리의 파안대소, 더민주의 쓴웃음 00:37:15쯤에 나온다. 관련 팟캐스트[64] 호남계가 잔존했던 민주당 경선에서도 패배했는데, 이제 그것도 국민의당으로 쪼개진 상황에서 상당히 적절한 판단이라고 볼 수가 있다.[65] 한편, 직전 의장인 정의화가 다선의원의 점유율을 강조하는 항아리론을 내세우며 관례를 깨고 차기 총선 출마를 피력했으나, 무위에 그치고 자신의 지역구(부산 중-동)가 분할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66]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상시청문회법도 바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가 있음.[67] 이후 2017년 5월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했다.[68]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의장은 회기 의사 일정의 일부를 변경·안건 추가·순서변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69] 말장난 같겠지만, '합의하여'가 아니라 '협의하여'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통보식으로 의사 전달을 해도 국회법 77조에서 말하는 '협의'에 해당이 된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여러 번 다루었는데,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정세균 의장과 비슷한 결정을 내렸던 과거 국회의장들의 손을 들어줬다. JTBC 뉴스룸의 팩트 체크가 이 문제를 다루었다.[70] 우리나라 국가 기관들은 국회에 있는 각 상임위원회의 감시를 받는다. 상임위의 위원장 자리는 2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교섭단체끼리 협의하여 나눈다.[71] 그런데 상임위는 사회권을 가진 상임위원장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국방위원회를 제외하고 열리지 않고 있었다. 반면 야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열렸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국정감사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여당 상임위원장이 갖고 있는 사회권을 야당 간사들이 넘겨받아 국정감사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72] 사실 야당 단독 상임위 진행의 가능성과 그때 흐를 분위기는 8월 2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야권 의원들이 누리과정(3세~5세 유아 무상보육) 예산 등 교문위 소관 추경 예산을 단독 처리와 그 이후의 전개에서 이미 예고되었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교문위 소속 야권 의원들이 누리과정(3세~5세 유아 무상보육) 예산 등 교문위 소관 추경 예산을 단독 처리했는데 위원장이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이라서 가능했다. 이에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내정자의 청문회 참여를 거부했고 결국 야3당 의원들만 참여했는데 이 때 조윤선 내정자는청문회 내내 멘탈 붕괴에 이를 수도 있는 야권의 대대적인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그걸 혼자서 억지로 버텼다. 이는 여당의 보이콧과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의 상임위에서 야권의 수적 우위를 이용한 대정부 및 대여공세가 맞물렸을 때 생기는 결과가 어떤 것이며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73] 다만 문재인경남 거제도 출신에 롯데 자이언츠 팬. 그러나 롯데가 우승하는 걸 보는 것보다 코시 시구가 앞섰다(...) 사실은, 어떤 팀들이 한국시리즈를 치루던간에,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하겠다."는 공약비슷 한것이 있었기때문에 1차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구를 했다.[74] 다만, 정세균과 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정치인들은 입지가 상당히 다르다. 전직 국회의장과 비교를 하자면, 정세균을 제외하고 그나마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정의화 前 국회의장도 대권주자로서의 임팩트는 약했으며, 김형오는 어째 선수도 5선으로 애매한데다가, 특유의 날치기 국회 탓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다. 나름 당에서 중진이었던 박관용(舊 상도동계)이나 박희태(舊 민정계)의 경우는 국회의장 퇴임 직후는 사실상 정계에서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은퇴할 연령대였다.거기다가 박희태는 성추행 사건으로... 그러나 정세균의 경우, 이들보다는 나이가 젊어 아직까지는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연령대이며, 더불어민주당과 범 친노계의 주요 계파를 이끌고 있는 수장격인데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로서도 거론돼는 인재이니, 예전에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인물들과 상황이 다르니 성격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75]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민주평화당에서 당직을 맡고 있다.[76] 정세균 국회의장 재직 당시 명패에 써져 있는 표기를 따 왔다.[77] 친문계로 분류돼기도 하며, 송파 을 재보궐선거를 통해서 돌아왔다.[78] 쌍용은 그래도 외환위기를 겪은 뒤부터 계열사들이 대부분 잘 나가는 대기업으로 존재한다. 쌍용중공업은 STX가 되었다가 망하긴 했지만 이쪽은 강덕수 회장이 제 버릇 못 고치고 무리수를 둬서 그런 것이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아직 잘 산다. 원래 대부분이 알짜 계열사였다. 외환위기가 도래했는데도 멍청한 김석원 회장은 정치한다고 나설 만큼, 전두환 차명재산을 숨기는 짓을 한 것은 덤이다. 그룹 경영진의 문제 등이 겹쳐 해체된 탓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김석원이 사퇴하고 온 사람이 박근혜였다 덤으로 쌍용차에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 쌍용차를 팔겠다고는 했지만 워낙 급하게 팔려다보니 협상이 지지부자했고 결국 경제위기를 맞자 그룹이 해체되었다. 반면 한보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대박이 난 건설사가 마구 사세 확장을 벌인다고 아무거나 사먹고 뇌물을 쏟아부은 회사였다. 즉 내실이 부족했다. 결국 부동산 붐이 끝나고 외환위기로 돈도 거덜나고 아파트도 안 팔리고 투자한 중공업도 좆망테크를 타버리니 그룹도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다. 쌍용과 달리 남은 계열사가 거의 없으니 말 다 했다.[79] 쌍용 뉴 코란도 소프트톱 모델이며, 개조차량이 아닌 정식 발매 모델이다. 희귀한 차량이라 불법 튜닝(...) 아니냐고 하기도 하는데 순정 맞다. 희귀한 만큼 현재 중고가도 그냥 뉴 코란도보다는 높다. 국내에 SUV 소프트탑은 지프 랭글러 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 하나 더 꼽자면 교황이 탔던 지붕 없는 카니발 정도.(?)[80] 19대 총선 출마 당시에도 같은 차량을 이용했다.[81] 이게 참 묘한 것이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탄핵이 가결되는 것을 막으려고 의장석에 앉아 있었는데, 박근혜 탄핵 시점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기 위해 의장석에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저 의자는 오직 정세균에게만 허락된 것이냐... 오오 이것이 운명의 데스티니. 뭐 거의 엑스칼리버와 동급의 의자[82] 해당 감사글에 있는 댓글 중 하나[83] 재밌게도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각각 국가의전서열 1, 2위이다.[84]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변경[85] 전반기 국회의장[86]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세균은 호남, 특히 전북지역에서 민주당 코어 지지층을 거느리고 있는 민주당 핵심 인사다. 게다가 호남계 친노계랑 두루 친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공천과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