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11:58:20

정청래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을)
제14~16대
박주천
제17대
정청래
제18대
강용석
제18대
강용석
제19대
정청래
제20대
손혜원
파일:20170517000339_0.jpg
이름 정청래 (鄭淸來)
출생 1965년 음력 4월 18일 ([age(1965-04-18)]세)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1]
본관 하동(河東) 정씨
학력 건국대학교 산업공학 학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 석사
병역 면제 (급수없음)[2]
종교 개신교 (성결교회)
가족 배우자, 슬하 3남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현직 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구 을 지역위원장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7, 19
약력 건국대학교 민주동문회 초대 회장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서울시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제17, 19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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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젊은 시절2.2. 노사모 회원 시절2.3. 정계 진출2.4.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2.5. 20대 총선 컷오프 이후
3. 사건사고/논란
3.1. 미국 대사관저 난입, 테러 사건3.2. 종편 출연 거부3.3. 성향으로 인한 논란3.4. 막말 논란3.5. 2016년 컷오프 사태3.6. 유시민 디스 논란3.7. 아들의 성범죄 사건3.8. 물피도주 논란
4. 행적5. 여담6. 선거 이력

1. 개요

나는 친노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
우리 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찬 사람이다. - 보좌관[3]의 평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강용석의 적.[4]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 중에서 대표적인 386, 강성 친문으로 손꼽히는 인물로, 극렬 친문세력을 제외한 일반적인 친문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중 1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제17대, 19대 국회의원이었으며 지역구는 서울 마포구 을 지역이었다.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돼 문재인 지도부에서 활동하다가 2016년 1월 문재인 당시 당대표가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권한을 넘기고 물러나면서 함께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김종인 비대위에 의해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어 20대 국회에서는 야인 신분이 되고 말았다.

야인이 된 뒤에는 주로 트위터와, 김어준의 파파 이스 등 여러 시사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다가 '종편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접고 MBN의 시사 예능 프로인 판도라의 패널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가 다양한데 마포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삼더이즘(더 낮게, 더 겸손하게, 더 열심히)과 사쾌이즘(유쾌·상쾌·통쾌하게 하면 국민에게 흔쾌!히 환영받는다)의 창시자를 자처하며 '이 시대의 참OO인'이라는 바리에이션으로 이 시대의 '참겸손인'부터 시작해서 '참인사인', '참측은인', '참공갈인[5], '참역술인', '참서비스인', '참사퇴인', '참인내인'[6], '참방광인 & 참척추인'[7] '참제물인'[8], '참민간인' 등 상황에 따라 여러 바리에이션을 사용한다. 대선 기간 중엔 이 시대의 참 문재인이라 말하고 다녔다. 종종 '인'을 안 넣고 '이 시대의 참 스피커', '참 깔때기', '참 녹음기' 같은 드립도 있었지만.

2. 생애

2.1. 젊은 시절

1965년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현재는 5남매만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형과 둘째형이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데 이 시기에 홍역으로 다섯을 잃었다고 한다. 금산에서 석막초등학교와 진산중학교에 다녔고 대전으로 올라와 대전보문고등학교졸업하고 상경해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재학 중 1988년 안기부 요원들에게 새벽 2시에 끌려가서 어딘지도 모른 곳에 가서는 눈이 가려진 채 무차별 폭행을 장장 3시간 동안이나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이름도 성별도 그 사람들도 전혀 모른다고.[9]

2.2. 노사모 회원 시절

2002년경 노사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인터넷상에서 '싸리비'라는 닉네임으로 용감무쌍한 글을 많이 써서 꽤 유명해졌다.[10] 그 후 명계남, 문성근 등과 함께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준비하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지역구 전환이 가능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무실을 얻어 상근자 30여 명과 함께 착실하게 준비하였다.

이때 유시민이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한다면서 사무실을 빌려달라고 하자 빌려주었는데, 유시민이 자기 주도로 인터넷 정당을 하겠다며 언론플레이를 하자 유시민과 사이가 나빠졌다.[11] 그러나 그 후에도 노무현을 돕기 위한 유권자 운동을 하였다.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 찍어라.’는 구호를 걸고 ‘대학교 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운동’으로 전환해 활동했다.

그 즈음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 장갑차 때문에 세상을 떠난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뱃지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열린우리당친노 조직 중 하나였던 국민참여연대 조직에 앞장섰다.

2.3. 정계 진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엄청났던 '탄핵 역풍'에 힘입어 44.8%의 득표율을 얻어 한나라당강용석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그러나 4년 뒤 뉴타운 열풍 등으로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해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에게 밀려 37.9%의 득표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4년 뒤 다시 민주당 지지세가 강력해졌던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김성동 후보와 무소속 강용석 후보를 상대로 54.5%의 득표율을 얻어 경쟁자들을 모두 꺾고 당선되었다.[12]

막말 논란으로 말썽이 많지만 19대 국회에선 의정활동 성적이 우수한 편이다. 정청래 의원이 19대 국회의원이 된 시점부터 2016년 2월 5일까지 만든 법안은 무려 170건에 달한다. 이 중에서 45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법안을 발의한 숫자로만 따지면 19대 국회에서 10위 안에 드는 상위권이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들의 숫자로만 따져도 상위 20위 안에 들 정도로 의정 활동 성적이 좋은 편이다. 수개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과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 북한의 영유아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북한 영유아 지원법'을 제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와 안전행정위원회 간사를 맡기도 했다. 국회 상임위 간사들은 실질적으로 상임위 운영을 책임지는데 보통 재선 의원부터 시작한다. 4년 동안 간사를 역임했다는 건 그만큼 의정 활동에 대한 당내 평가도 높다는 증거라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정청래 의원은 당내에서 만들어진 특별위원회에도 자주 참여했다. 주로 권력형 비리와 관련된 부분인데 가장 최근에는 '국정원 댓글 진상조사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사건을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와 국정원 개혁 특위 위원, 정치 검찰 공작수사 대책 특별위원회 등에도 참여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선거의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여 김한길 & 안철수 지도부가 어설픈 중도 스탠스를 취하다가 오히려 지지층의 대거 이탈만 불러왔던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 '당 대포'가 되어 당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당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겠다는 슬로건으로 지지층의 호응을 얻어 유승희 의원, 주승용 의원, 전병헌 의원 등과 함께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종합 득표에서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은 주승용 의원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는데 여론조사 분야에서는 전체 1위를 기록하였다.

종합 순위 1위 최고위원이었던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 탈당을 하자, 문재인 지도부에서는 문재인 대표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인물이 되기도 했다.[13]

이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 겸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되면서 선대위와 비대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문재인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함께 2선으로 물러나기로 결정하자 최고위원들 중 가장 먼저 사퇴 의사를 밝히며 2선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최근 영입된 인사의 멘토를 자칭해서 맡았다.[14]

2.4.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추미애 의원의 뒤를 이어서 연설을 끝마쳤다. 최종 연설시간은 11시간 40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10시간 18분 최장시간 기록을 경신해 최장시간 연설자가 되었는데, 이후 같은 당 원내대표였던 이종걸 의원이 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광주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 경신할 생각은 없었는데 시계를 보지 않고 토론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넘어갔다며 은수미 의원에게 미안하게 되었다는 뜻을 전했다.

3월 5일에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더불어 콘서트 시즌 2 1부에서 말하길 "시간은 이종걸 원내대표가 더 길었는데, 속기록 분량은 자기가 더 많았다."고 밝혔다. 그만큼 빠르게 말했음에도 그 시간을 버틴 게 대단할 정도. 게다가 최초 2시간은 자료나 원고를 안 보고서 프리스타일로 테러방지법을 반대해야 하는 근거를 주장했다. 이런 것을 보면 보좌관 말대로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찬 사람'이 맞는 듯 하다.

2.5. 20대 총선 컷오프 이후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판도라에 자주 출연한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되자, 2019년 6월 19일 마포구 을 지역위원장에 임명되었다. #

3. 사건사고/논란

3.1. 미국 대사관저 난입, 테러 사건

1989년 10월 13일 오전 6시 25분경, 당시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 4학년인 정청래는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에 소속되어 "그레그 처단과 민족 자주권 쟁취를 위한 반미 구국 결사대"를 조직해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4학년 김희준, 한신대학교 기독교육과 4학년 심상오, 건국대학교 화공과 4학년 조형석, 한양대학교 전자통신과 4학년 이선홍, 한신대학교 신학과 4학년 이대준과 함께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 침입했다.

정청래를 비롯한 3개 대학 학생 6명은 이날 부산1허3004호 짙은 쥐색 포니엑셀 승용차를 타고 서울시청 쪽에서 전속력으로 미국 대사관저 쪽으로 오다가, 남문에서 북쪽으로 20여m 쯤 떨어진 담장 바로 옆에 정차시켰다. 이후 준비해 온 사과탄 4개, 화염병 6개, 사제폭발물 4개 등을 소지하고 정차한 차량 지붕을 밟고 높이 3m 가량의 담을 넘어 대사관저로 들어갔다.

월담 직후 사과탄 및 사제 폭탄 1발을 터뜨렸으며,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향해 2발을 다시 터뜨렸다. 이어 담에서 100여m 떨어진 대사 공관으로 접근,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를 휘둘러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공관 안 접견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액자 1개를 쇠파이프로 부순 뒤 접견 실에 있던 소파 4개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취임 반대", "수입 개방 압력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약 45분간 농성에 들어갔다. 그레그 대사 부부는 당시 침실에 있어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 대사관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대사관 경비 담당자의 요청으로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7시 10분 쯤 대사관 측의 요구로 공관 뒷문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진입하자 이들은 바닥에 시너를 뿌리고 경찰을 향해 사제 폭탄 2발과 사과탄을 던지는 등 완강히 저항했으나, 진입한 기동타격대 10명에게 진압돼 오전 7시 15분경 전원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민족자주선언문"과 "결사투쟁선언문" 등 2종의 유인물 12장을 압수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같은 해 10월 9일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2층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서총련 투쟁 소속 25세 이 모군으로부터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 지시를 받았으며, 12일 밤 11시 경 이 군이 준비한 차량을 제공 받아 이 차를 타고 대사관저에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이들의 대사관저 침입을 지원한 4명을 수배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북한은 중앙방송 등을 통해 매 시간마다 반복해서 전했으며, 사건 경위도 상세히 보도했다. 또한 같은 해 10월 24일 미국 정부는 6명 학생들에 의한 피해 보상으로 3만 달러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1989년 11월 10일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는 이들 6명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화염병사용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을 적용해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구속기소했다.

1990년 3월 28일,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2부(재판장 강홍주 부장판사)는 이선홍 등 2명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이대준에게는 징역 2년을, 심상오 등 3명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정청래의 경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총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청래는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나는 정청래다'에서 당시 자신은 사형을 선고받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낮은 징역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자신이 젊은 시절에 했던 행동을 후회하거나 반성하지는 않는 듯 하다.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광복 50주년 기념 8·15 대거 특별 사면 때 복권되었다. 이 특별 사면 복권 내용은 현재라면 피해 당사국인 미국에서 직접적으로 반대할 것이며 대사관에 사제 폭탄을 투척하는 것은 명백한 테러 행위이기 때문에 사면은 불가능하다. 항간에 떠도는 미국 입국 금지는 사실 무근이고 2012년 미주 국정감사 때 미국 비자가 나와서 미국을 방문했다. 다만 그 다음 해에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고생하긴 했다.

여담으로 도널드 그레그 당시 대사는 일명 친한파 미국 정치인으로 김대중 납치사건CIA 서울 지부장이었다.관련 기사

3.2. 종편 출연 거부

파일:C4nzkRX.jpg
2012년 총선 당시 TV조선의 인터뷰를 거절하는 정청래 후보자

이상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100분 토론 당시, 방석호 아리랑 TV 사장의 호화출장 논란 당시 뉴스타파의 인터뷰 거절이 비난받는 이유와 똑같다. 국민 및 유권자에게 정책 등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도 엄연히 국회의원 후보자의 주 임무다.

종합편성채널 선정 과정에서의 논란과 비난이야 있겠지만 TV조선 자체가 일단 긴급지진속보 기능까지 있는 중요 방송사[15]이자, 민주당 등 야권 입장에서도 이후 종편을 오히려 이용하고자 함으로 노선이 바뀐 것을 감안하면 인터뷰 거부는 누가 봐도 과도한 행동이었다. 정청래의 심각한 사회인식 결함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JTBC도 마찬가지로 출연거부를 했으나 최순실 태블릿 보도를 계기로 JTBC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고 2017년 1월 19일 썰전에 출연하였다. 왜 그동안 종편에 출연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자 초선 의원이던 2004년 말에 '독과점 신문은 방송을 가질 수 없다'는 신문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자신이 만든 법이 무의미해졌기에 그동안 종편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3.3. 성향으로 인한 논란

대놓고 계파성향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문재인 전 대표한테는 호의적이다. 즉, 굳이 따지자면 친문에 가까우나 문재인 당대표 취임 당시 문재인의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고 타 친문계 정치인들과 대오를 달리한 적도 많다. 친문이라고 쳐도 아웃사이더에 해당한다.

열성적인 노사모 회원 출신이었으므로, 전형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잡미묘한 부분이 많다.[16]

사실 정청래는 현재 비노계로 분류되는 정동영계에 속했던 인물이며[17], 당연히 박스떼기사건에도 개입할 수밖에 없던 인물이다. 정동영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정부의 황태자'라고 불릴 만큼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였지만 정권 말기 부동산 정책, 대연정 제안과 같은 참여정부의 여러 실책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자 참여정부의 실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물론 대권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가 인기를 잃은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여*야 할 것 없이 내려오는 전례이기는 하다. 정청래의 경우엔 2004년, 친노단체였던 국민의 힘을 이끌고 정사모가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인 개나리 봉사단으로 들어갔고, 이를 계기로 정동영과 완전히 떼놓을 순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정청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정치인인 건 맞지만, 노 전 대통령이 힘을 잃었을 때에도 그의 곁에 남아 있었던 문재인, 안희정, 이광재,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과 같은 지금의 '친노무현계'와 같은 그룹으로 묶기엔 부적합한 사람이다.[18]

위의 각주에 이미 언급되었듯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때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서울 관악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을 때 정청래는 입장을 내놓은 게 없었다. 또한 선거 중에 새정련 후보를 지원하는 선거 유세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19] 정동영 전 의원이 재보선 유세 중에 친노계파를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들을 쏟아냈을 때에도 정청래 전 의원은 조용했다. 그로 인하여 이때 '그래도 자기 옛 주군이라서 못 까겠다는 거냐'라면서 그를 공격하는 목소리가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있기도 했다.

이렇게 '친노인 듯 친노 아닌 친노 같은' 과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청래가 친노 &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건 문재인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같은 당 지도부 인사로서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이 대표로 취임한 직후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자 “독일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 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천황의 묘소에 가서 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문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친문 성향을 보였던 것에 대해 본인은 어떤 계파적 이해가 아니라, 당을 위하는 차원에서 당대표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학생 운동 경력 등으로 인해 386 인사로도 분류되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386파 분류 시점은 정세균계가 활성화 된 시점이었고 386파들은 이때 정세균계와 함께 발을 맞췄기 때문에 정세균계라고 칭하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당시 민주당 항목 참조.

정청래 본인도 몰지각한 친노 강경파 인사라는 새정련 비주류 진영과 보수 진영의 공격에 '나는 친노도 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 ㅋㅋ'라는 게시물을 본인 SNS에 올려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웃어 넘겼다. 현재는, 사실상 위에 정의한 대로 정동영계나 정세균계 등의 계파 소속 논쟁에서 자유로워진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출신 성분부터 특정 계파에 소속되지도 않으면서[20] 지역구 활동 및 인터넷,SNS,방송을 통한 자기정치로 자신 스스로 젊은 세대 및 더불어민주당의 감성적 지지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그에 대해 '친북 성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을 문제삼지 않고 미국을 비난하고 나선 점, 2007년 5월 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는 점, 2007년 10월 13일 광화문 열린 공원에서 열린 소위 '간첩· 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점, 2014년 4월 북한 무인기 사건이 터지자 북한의 짓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러 자료를 보이며 국정원과 기무사의 '음모론'을 주장했다는 점, 2015년 3월 문재인이 천안함 폭침이라고 발표하자 우클릭했다고 발언하는 점 등 때문이다.

3.4. 막말 논란

대가리가 빈 새끼들이 거칠고 큰 소리로 주접을 잘 떨죠.[21]
바뀐 애방 빼, 바꾼 애들 교도소로!

아래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입이 상당히 거칠고 막말과 욕설의 빈도가 잦다.

대중들이 떠올리는 정청래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정도. 구글에서 정청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정청래 막말"이 나온다.

심지어 당 내에서도 내부에서 총질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다만 본인은 정작 조경태 의원이 지도부를 공격할 때, "내무반에 총질하는 행위"라며 극렬히 반발한 바 있다. 언론에서도 사설을 통해 그의 말의 품격을 비판한다. # 결국 2015년 5월 26일 공갈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당직 자격정지 1년’ 처분을 받았으나, 약 4개월 뒤인 9월 23일 징계가 해제되고 당직에 복귀했다.

이를 두고 당 주류의 감싸기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에게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냐'는 막말을 퍼부었던 조경태 의원에게는 정작 징계가 내려지지 않아 이 비판은 소리소문 없이 잦아들긴 했지만.

사실 조경태의 경우 서면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새정련 소속으로 마지막 징계 절차(?)를 밟을 적에도[22] 징계는 사실상 확정이었으나 징계를 어느 정도 수위로 주어야 하는지 결론이 나지 않아 최종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윤리심판위가 와해되면서 흐지부지됐을 뿐이다.[23] 그리고 결국 새누리당으로 넘어갔으니 뭐
  • 2011년 12월 31일 트위터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명박박명’이라고 적었다. 미인은 불행하거나 병약해 요절하는 일이 많다는 ‘미인박명(美人薄命)’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빗댄 말이다. 아무리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사람에게 빨리 죽으라는 ‘저주’는 금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 2013년 7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바꾼 애들 감빵으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은 감빵으로!"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그동안 막말을 여러번 한 정청래의 이 트윗 내용은 여러 매체에서 "박 대통령은 정당하게 당선되지 않았으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 책임자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도했고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없고 경솔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정청래는 그저 '정치공작 규탄 및 국가정보원 개혁촉구 당원보고대회’에서의 말을 인용만 했다고 해명 했다.
  • 2014년 9월, 당시 새정련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원내대표였던 박영선 의원이 중앙대 이상돈 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극력 반대하였다. “이상돈 교수의 단독 비대위원장이든 안경환 교수와의 공동 비대위원장이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상돈 영입 카드가 계속된다면 박(영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단식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어제가 9월 11일이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 부분에 대한 9.11 테러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고, “이상돈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우리당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불철주야 안간힘을 썼던,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며 “이런 사람이 우리당의 선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상돈 교수를 향해서는 "처신 잘하시길 바란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라는 말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밥 숟가락 얹을 자리는 없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막말이 쏟아지자 이상돈 교수는 새정련 입당을 곧 거부하였으며, 박영선 의원은 그 후 10월 2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청래 의원의 막말이 쐐기를 박은 건 아니다. 박영선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유가족이나 당과 별다른 논의 없이 새누리당의 제안을 덜컥 받아버린 바람에 이미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고 그때 비대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어서 위원장직을 외부 인사에게 넘기려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5.16 군사정변을 '혁명'이라 주장하고 김대중 &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논조의 칼럼을 쓴 보수 진영 인사를 당의 수장으로 데려오겠다고 했으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던 것이다.
  • 당 지도부가 출범하고 최고위원이 되면서부터 막말의 수위가 꽤나 높아졌다. 2015년 2월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에 대하여 "히틀러의 묘역에 참배"했다고 비판을 퍼부었는데, 이승만, 박정희가 종신 집권을 위해 자국민을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지만 수천만 명을 학살하고 대놓고 인종차별을 한 전범인 히틀러에게 비한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정청래 의원 본인은 자기가 한 말이 아닌 지지자(당 고문이라는 말도 있다) 한 분이 "문재인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는 히틀러 (또는 야스쿠니) 묘역에 참배하는 것과 같다"는 억울함을 토로하시기에 지지자의 발언을 당의 의원으로서 인용해드린 것일뿐이라고 해명했으나, 그냥 물타기용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사실 이에 대해선 진보 진영내에서도 너무 나간 거 아니냐는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애초에 문재인 대표가 당의 정체성을 먼저 위반한 것이라며 속시원하다고 응원한 지지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각자 판단할 부분.
  • 2015년 4월에는 본인의 트위터에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없이 엉뚱하게 정치 개혁을 말한다. 자기개혁부터 하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댁들(꼬꼬댁)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질렸다”고 적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게 왜?
    파일:external/www.gobalnews.com/14483_26568_535.jpg

    공갈 발언 당시의 모습
  • 2015년 4.29 재보선 참패 후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거취를 거론하며 공격하자, "사퇴하지도 않을 거면서 사퇴하겠다고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라며 맞받아 쳤다. 관련 동영상 링크 이것 때문에 발끈한 주승용 최고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는데 실제로 주승용 최고위원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먼저 사퇴하겠다는 말을 누차 했으면서 정작 실천엔 옮기지 않았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승용 최고위원의 이런 언행불일치를 '센 표현'으로 비판한 것. 이로 인해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되어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 한동한 자숙 기간을 보내다가 2015년 9월에 윤리심판원에서 그의 복권에 전원 찬성해 일선에 돌아왔다. 이 사건이 워낙 시끌시끌해서 이 일이 있은 후로는 확실히 발언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본인도 신경을 많이 쓰는 듯.
  • 막말과 별개로 말을 할 때 라임이 찰지다는 평도 있다. 당장 위에서 소개된 "나는 친노도 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라는 드립력만 봐도.
  •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국회를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내자,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3년 7개월간의 의정 활동 성적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13년 7개월간의 의정 활동 성적을 비교하는 판넬을 만들어 공개하며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맞디스했다.#
  •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민주당과 진보진영 관련 지인들이 모여 대화한 온갖 과격한 내용들이 야권 지지자들의 환호를 얻으면서도 동시에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3.5. 2016년 컷오프 사태

내 인생 사전에 이혼과 탈당은 없다.
[24]
2016년 3월 10일, 4.13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2차 컷오프 명단에 정청래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당 안밖 그의 지지자들이 크게 반발했다.[25]

정청래의 컷오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그의 날카로운 언변 때문이라는 견해다.

다시 말하자면 더민주 지지 세력을 불리는 데 정청래의 거친 언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의 돌직구식 화법은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겐 큰 호응을 받지만, 무당파 중도층에게도 같은 효과를 내는지는 미지수이며 오히려 역반응만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26]

다른 의견으로는 '문재인 대표와 비노계의 대립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른 장본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여기에 대해선 설명이 좀 필요할 듯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열렸던 2.8 전당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박지원 의원은 '친노 VS 비노', '당권 대권 분리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세를 꺾진 못해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근데 박 의원의 전략이 새정치연합 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호남 당원들에게 먹혔는지 김한길 의원의 최측근이자 여수시에 지역구를 두고 있던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 선거에서 서열 1위로 선출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취임 이후 무당파 중도층과 보수층 표심을 얻기 위해 박정희, 이승만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란걸 인정하는 행보를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새정치연합 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전패하자 주승용 최고위원을 비롯한 비노계가 재보선 전패의 책임을 물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非당원 지지층이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비노계의 문 대표 사퇴 요구는 '안 그래도 당이 혼란한 마당에 출범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된 지도부가 바로 물러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이냐'는 반박에 부딪혀 크게 힘을 받지 못했다. 김한길 안철수는 당대표직에 오른지 문에 주승용 최고위원도 공개적인 비판을 점점 줄이기 시작했다. 지지층은 되려 문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는 데다 사퇴 요구는 '좀 더 지켜보자'는 주장에 막혀서 더 이상 길을 뚫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최고위원이 다시 한 번 문 대표를 비판하자 최고위원 서열 2위였던 정청래가 "사퇴할 것처럼 공갈만 치고 사퇴 안 하는 게 더 문제라 생각한다"며 맞받았고 이 말에 격노한 주 최고위원이 방송사 카메라들이 쫙 깔린 회의장을 그냥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며 여러 차례 주장을 했고 자기가 가장 먼저 물러나겠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실천에 옮기진 않는 행태를 보였다. 정청래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공갈'이라는 단어가 막말이냐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성냥불에 지나지 않았던 문재인 VS 비노계의 대립이 순식간에 산불처럼 커져버리고 말았다. 문 대표는 비노계와의 화합을 위해 핵심 당직에 비노계 인사들을 여럿 앉히는 등의 탕평 인사를 했지만, 정청래 최고위원이 당시 가장 문 대표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던 지도부 인사였던 터라 '이게 문 대표의 실제 의중이냐'면서 비노계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27]

정청래가 주승용 최고위원을 그 자리에서 그냥 무시했거나 아님 정제된 말로 비판했다면 아마 그와 같은 대형 돌발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사용하곤 하는 '정제된 말'로 비판했는데 발끈해 뛰쳐나가 버렸다면 그건 주승용 의원이 옹졸한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인증하는 꼴이 되니까. 근데 부적절한 단어를 섞는 바람에 주승용 최고위원이 화가 나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행동이 어느 정도 정당화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보면 재보선 전패의 후유증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힐 테고 그럼 비노계를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좋게 좋게 데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공갈 발언 하나 때문에 건수를 제대로 잡혀 문재인 VS 비노계의 구도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버리게 됐다.

이에 비노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본격적으로 反문재인 전선을 펴서 당대표 흔들기에 나섰다. 덕분에 문재인 대표는 임기의 대부분을 비노계의 공격을 방어하는 일에 아깝게 허비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당내 분열을 막지 못한 당대표라는 억울한 낙인마저 찍혀버리게 됐다.[28]

게다가 문 대표와 비노계가 싸우는 동안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기 때문에 정청래에게는 장기간 당직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가 차후에 복권되었다. 그런데 아예 20대 총선에서 그를 컷오프시킴으로써 그의 발언에 대한 제재에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이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내 적지 않은 현역 의원, 당직자 및 지역구 지지자들은 이 컷오프에 대해 상당히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의 지지자들은 위의 주승용 의원에게 한 발언은 오히려 국민과의 약속을 안 지키는 주 의원에게 경고를 하고, 당을 지키고 당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발언이라고 평가하기 때문.[29]

또한 정청래는 19대 국회 정국의 어려운 더불어민주당에서 선두에 서서 맞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동안 정국에서 야당이 목소리를 못 낼 때 목소리를 낸 인물이자, 가장 야당다운 인물 중 하나였고, 지역구 관리도 FM 수준으로 모범적인데 겨우 공갈 발언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내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친문 세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컷오프 전에 험지로 전략공천 보냈어야 한다 아니면 이종걸이나 박영선도 컷오프시켰어야지![30][31]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닌 게 문 대표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란 걸 인정한다'는 발언을 '보수 쪽으로 편향된 발언'이라고 평가한 건 둘째 치고 그동안 정 의원은 수많은 막말을 쏟아내고 대리기사 폭행을 지시,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던 김현 전 의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32] 이 사건을 강하게 비판한 몇 안 되는 진보 진영 인물인 조경태 의원과 표창원 등에게 새누리당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리고 조경태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정말 넘어가 버렸다.

3월 16일 공천 탈락 결정에 승복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정청래는 "우리 당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 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 라고 발표했다. 또한 "개인 김종인에게 서운하더라도 당대표 김종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해달라" 면서 지지자들에게 분열 방지와 과도한 비난 방지를 촉구했다.기사자필서명문페이스북

당 지도부가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을 마포구 을에 전략공천하자 정청래 역시 흔쾌히 동의하며 손혜원 후보의 당선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 전략공천은 정청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많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나마 정청래가 신뢰해왔고 정청래 구명에 적극 나섰던 손혜원이 정청래의 동의와 지원을 받는단 모습으로 정청래의 지역구에 공천되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인물을 전략공천했다면 지지층이 더 이탈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인지 손혜원 더민주 마포구 을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정청래와 함께'였다. 지역구에서 인기가 좋은 정청래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다.

정청래 본인이 공천 배제 승복을 한 이후 출연한 '정봉주의 전국구'와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풀어낸 이야기에 따르면, 공천 배제 소식을 듣고서 지역구인 마포구 을 선거구 주민들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심지어 승복 기자 회견 이후에는 지지자들이 모여서 성토를 하다가 분함을 못 이겨서 지지자들끼리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고. 이런 사례들을 볼때 이 컷오프 사태가 지지자에게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에는 후보자들의 지원 유세에 나선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총선 후 당권 주도권 경쟁을 준비하기 위한 홍보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관한 입장을 3월 28일자 오마이뉴스 팟짱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이른바 진보 진영 기자 한 명이 "지금 유세단 하는 거, 전당대회 노리고 하시는 거죠?"라고 질문한 일을 언급하면서 너무나 비인간적인 질문이었다고 말했다.팟짱 인터뷰 영상 풀버전 이와 함께 이 모임의 원래 이름은 더불어 컷오프 동지회의 줄임말로 더컷동이라고 했는데 손혜원 후보가 '더 컸으면 하는 사람들 모임'이라는 뜻의 "더컸유세단"으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더컸유세단 출범기사

3.6. 유시민 디스 논란

유시민 작가와 관계가 나쁜데, 과거 한창 사이가 나쁠땐 "시민은 간신”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유시민 본인은 몇 년 지나 화가 풀렸는지 2016년 썰전에서 이정도는 문학적 표현(또는 주관적 소신)일 뿐이지 막말까진 아니라고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허용된다는듯한 뉘앙스로 정청래 의원을 옹호해주기도 했다.[33] 근데 사실 유시민은 정치 그만둔 후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는 인물로, (비유용 드립이었지만) "김무성 의원이 저에게 종북세력이라고 음해[34]한 적이 있지만, 만약에 저한테 사과한다면 '그때 왜 그랬어요?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라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도 할 정도라 같은 진보진영 출신에게는 원한을 가지거나 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35]

2007년 9월 16일, 유시민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정치 기술자 유시민은 대중으로부터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 사실 한 발짝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는 이미 숱한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해 왔다. 거짓말은 새로운 거짓말을 낳고 끝내 그 거짓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어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그의 말로를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이다."라는 글을 썼다. 관련 링크

2015년 5월 유시민 전 장관은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정치카페를 통해 정청래 최고위원의 최근 막말을 언급하며 “정 최고위원은 자기 맘에 안들면 그 사람이 어떤 정파에 속했든 공격하는 정치인이다. 수 틀리면 공격한다”라며 말했다. 얼핏 들으면 비판하는 것 같지만 유 전 장관은 정청래 의원은 자기의 소신이 강한 사람이며 특정 정파의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평가해 사실상 정 의원을 옹호해줬다. 이때 유 전 장관과 정청래 의원간 과거 불편했던 관계도 언급됐는데, 정 의원이 과거 2007년 열린우리당 복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유시민 같은 간신은 내쳐야 한다"고 자기 홈페이지에 썼던 악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3.7. 아들의 성범죄 사건

정청래 "아들이 여학생 성추행…피해자 2차가해 없길"
정청래 "아들 성추행 사건 송구…처벌회피 시도 없었다"
정청래 “前 의원 아들 성추행사건은 제 아들…깊이 사과”

정청래의 셋째아들이 2015년에 또래 여중생성희롱성추행을 하고도 3년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였던 정청래의 아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을 따로 불러내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만지며 성추행을 하였고, 피해 여학생은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길 원치 않아 신고 등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정청래의 아들은 이듬해 SNS를 통해 피해 여학생에게 가슴을 만지고 싶다라는 등의 성희롱적인 메세지를 보냈다고 한다.

결국 참다 못한 피해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정청래의 아들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하루 8시간씩 5일간 총 40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했고 부모 교육도 8시간 이행했으나 2017년 초 가정법원 재판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아이 교육 40시간, 부모 교육 8시간 이수 명령을 추가로 받고 또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청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메세지를 남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향후 활동에 상당한 부담이 생겼다. 정청래에게는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비판거리가 생긴 셈이다.

특히나 중학교 1학년생이 성범죄를 저질러 재판까지 받았다는 사실[36]이 뒤늦게 드러났기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청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조차 큰 실망감을 안긴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본질은 본인의 문제점은 3년간 숨겨온 채 다른 정치인들의 인품이나 도덕성에 대해서 신나게 날선 비난을 펼쳐왔던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물 건너간 일이지만 만약 아들을 자진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면 타격이 덜 했을 수도 있다.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계속해서 같은 생활권에 두는 건 피해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해자의 부친이 당시 국회의원이었으니 피해자측에선 강하게 나오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다.

아래는 정청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공식 사과문이다.
<사과드립니다.>
9월 22일자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 사회면 기사에 나온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학교측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피해학생이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팩트는 이렇습니다. 2015년 당시 제 아이와 피해학생은 중학교 1학년, 만 12세였고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 때 제 아이가 문제의 행동을 하였고, 피해학생이 거부하자 행동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제 아이가 피해학생에게 익명으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학생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제 아이는 자신이 한 일이라는 사실을 바로 밝히고, 피해학생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했습니다. 이에 피해학생과 부모는 취하를 원하며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수사와 재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고 제 아이는 지난 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하루 8시간씩 5일간 총 40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했고 부모교육도 8시간 이행했습니다. 또한, 올해 초 가정법원재판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아이교육 40시간, 부모교육 8시간 이수 명령을 추가로 받고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전체 과정동안 저는 제 아이의 처벌회피를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기사에서 제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제가 먼저 사실을 밝히는 것은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혹여 추가 취재과정에서 피해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그 신원이 노출되어 또 다른 상처를 입을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언론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오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무겁고 착잡합니다. 제 아이 역시 잘못을 뉘우치며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도 제 아이도 함께 각별히 노력하겠습니다. 거듭 피해학생과 학부모님에게 깊이 사과드립니다.
학교 측에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추후 어떠한 조치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2017년 9월 22일
정청래 올림.

정청래의 페이스북에서는 위 사건에 대해 정청래를 옹호하고 응원하는 댓글과 더불어 음모론, 그리고 정청래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김종인 대표가 이 사건 때문에 정청래를 공천 배제 대상으로 찍은 것 아닐까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3.8. 물피도주 논란

정청래는 2018년 5월 4일 오후 8시 30분쯤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차량 전면을 들이받아 흠집을 낸 뒤 그대로 자리를 떴다.# 정청래는 직접 제네시스 차량으로 후진하던 중 주차돼 있던 벤츠 차량 전면을 들이받아 라디에이터 그릴 부분을 파손했다. 경찰 관계자는 파손 정도에 대해 “충돌 충격으로 벤츠 차량 라디에이터 그릴 틈이 조금 벌어졌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벤츠 차주의 신고로 해당 내용을 접수한 경찰은 주차장 폐쇄회로TV(CCTV)를 확보해 가해 차량이 정청래의 차량임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 정 전 의원이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두리번 거리는 장면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청래는 음주상태는 아니었으며 “촬영 때문에 급하게 이동하느라 그랬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19일 사실 확인 후 도로교통법에 따라 정청래에게 주차장 사고에 대한 범칙금 처분을 통보했고 정청래는 벤츠 차주에게 차량 파손에 대해 손해 배상 보험 처리를 약속했다고 한다.#

4. 행적

  • 2006년 9월16일 "북한의 군사력이 더 세다? 이는 전형적 사기이다. 수구(守舊)의 한줌 손바닥으로 세계의 눈을 가리려 하는가? 이제 보수·수구 세력들은 하나를 해야 한다. 숭미주의자로서 부시의 말에 수그리하고 말문을 닫든가 아니면, '부시 반대'의 반미주의자로 나설 것인가? 결단하라. 친미 투사들이여! 반미 투사들이여."라는 인터넷 칼럼을 써서 주목을 받았다.
  • 2013년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JTBC 손석희 앵커가 불러도 안 나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도 단물이 다 빠지면 언젠가 쫓겨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입장은 2015년에 좀 바뀐 듯하다. 당초 종편의 출연을 결사반대했던 자신이 나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매체에 나가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동안 MBN이 보수 세력에게 좌편향 방송이라고 비난받던 시절에는 출연한 적이 있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광폭행보를 보면서는 "<JTBC에 감사한다>나는 그동안 종편출연을 거부해왔다. 출생의 비밀과 편향성에 들러리서서 그들의 정통성에 면죄부를 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JTBC의 보도는 언론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다. JTBC의 출연요청이 있으면 이제 응하겠다. 수고많다"라는 트윗을 올려 JTBC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에 온라인으로 입당한 한 신규 당원이 가수 이애란 씨의 히트곡 백세인생의 가사를 패러디해 '앞으로는 잘하자'는 메세지를 당에 전달하였는데, 정 의원도 이 백세인생의 가사를 패러디해 화답을 보냈다. 이게 다음 실시간 검색어 1~2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 2016년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문재인 대표가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자, 그를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트위터에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서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이 땅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주시길"이라며 "박근혜 정권에 당한 만큼 박 정권의 경제 실정에 날카로운 비판자가 되어주시길.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에 김 박사님의 가치가 빛나시길"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2014년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일 당시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을 때의 태도와 너무 다르다는 비판이 따랐다. 김종인 전 수석이나 이상돈 교수나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상돈에 대해서는 영입을 반대하고, 김종인에 대해서는 영입을 환영하는 게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 다만 이상돈 교수는 그저 보수 진영에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일 뿐인 데다 지난 2007년 1월 21일 동아일보더민주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등 더민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인물이다. 반면, 김종인 전 수석은 비록 경력을 주로 보수 진영에서 쌓긴 했어도[37]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련의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의원의 경제 멘토였으며 훗날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합류해서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하는 등 더민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제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리고 정부 여당과 결별한 후엔 새누리당 비대위원에 참여했던 전력에 대해 자기 비판을 하기도 해 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 허나 정부 여당과의 결별 후 정부 여당 및 자기 비판은 이상돈 교수 역시 줄곧 해 오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또한 정청래 의원의 행동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이상돈은 안 되고, 김종인은 된다는 식의 의견을 표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박영선 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 정국 당시 유가족들과도, 당과도 논의 없이 새누리당의 특별법 제안을 덜컥 받아버려 비대위원장직도, 원내대표직도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돼 비대위원장직을 외부 인사에게로 넘기기로 했을 때, 당내 여론을 우려해 이상돈 교수와 더불어 진보 진영의 안경환 교수도 함께 영입함으로써 진영을 아우르는 비대위 체제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38] 정청래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장시간 단식을 하고 있는 중에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박영선 퇴진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 이런 사태에 박영선 위원장은 사퇴 후 탈당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이외에도 이 사태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후 정청래 의원이 문재인 대표 체제 출범 후 비주류 인사들이 끊임없이 문 대표를 방해해온 행보에 대해 '흔들기'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 박영선 의원과의 갈등을 예로 들며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종인의 선대위원장 임명은[39]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태도를 취하고, '경제민주화님'으로 떠받드는 것은 꼴불견이자, 문재인 대표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정청래의 김한길 & 안철수 지도부 및 박영선 비대위 체제에 대한 비판은 그들의 어설픈 중도 정책과 기초선거 무공천 등 정치적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을 취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청래는 문재인 대표가 중도층과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의 묘역을 참배했을 때에도 그를 강하게 성토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문재인 대표와 보조를 함께 맞추며 문 대표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것은 문 대표의 당 운영 정책이 정청래의 소신 및 신념과 일치하고, 비주류 진영의 문 대표 흔들기는 그들의 말마따나 문재인 체제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문 대표가 갖고 있는 국회의원 공천권을 빼앗기 위함이라는 부당한 목적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종인 위원장의 국보위 참여 전력과 민주정의당 경력은 물론 문제지만, 이 문제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광주를 방문, 공식 사과해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김종인 위원장은 군사독재 정권 아래 일하면서 의료보험체제 도입을 비롯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재벌 자제들의 편법적 재산 증여 방지, 순환출자금지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여러 설계하고 실현시킨 바 있어 진보 진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며#, 이미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의원 생활을 한 적도 있다. 반면 이상돈 교수는 정부 여당과 함께했던 과거를 자기 비판하긴 했어도 5.16 군사정변을 '군사혁명'이라고 부르고, 국민의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넘어간 2016년에도 햇볕 정책을 비판하는 등 민주당 쪽과는 결이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더민주 김광진 의원이 '아무리 위급한 수술 중에도 혈액형은 맞춰서 수혈합니다'라고 했던 의견이 당시 새정련이 이상돈 교수를 거부한 이유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 그랬던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인 대표의 손에 의해 쫓겨났으니 인생사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본인도 이 사건으로 인해 김종인 대표에게 원한이 사무쳤는지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했을 때에만 해도 '경제민주화님'이라는 극존칭까지 붙였던 김종인 대표를 이젠 팟캐스트 방송 등에서 '추호 선생'이라는 비하성 별명으로 부르며[40] 그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발언을 일관성 있게 고수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정치 공학상 어쩔 수 없다"며 김 대표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보일 생각이 없음을 농담조로 드러내기도. 김종인 대표의 합의 추대론이 불거졌을 땐 '동화은행에게 뇌물을 받았던 사람을 당대표로 합의 추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정녕 그렇게 생각했다면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에게 전권을 몰아주고 2선으로 물러나려고 했을 때 문재인 전 대표에게 '이런 저런 단점이 있으니 전권을 이양하는 일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달라'고 요청이라도 했어야지 그땐 조용히 뭐했냐는 뒷말이 있다.
  • 2016년 1월 19일, 문재인 대표가 2선 후퇴 의사를 밝히자 본인 또한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청래는 본인 SNS를 통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납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가 그리 몰아쳤는지 모릅니다. 이제 흔들리는 뿌리와 줄기를 곧추 세울 때입니다. 입당의 힘이 탈당의 힘보다 강하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분열의 힘보다 통합의 힘이 더 강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제 길을 가겠습니다.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합니다. 정권의 힘보다 국민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라며 백의종군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은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재편됐고 총선에서 이겼다.
  • 새누리당이 일찍이 불출마 선언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정청래의 지역구인 마포구 을 지역에 출마해달라고 요청하자, 본인 SNS에 "(불출마 선언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을 불러 올리지 말고 그냥 김무성 대표 본인이 올라와서 (나와) 경쟁하자"며 김무성 대표의 출마를 요구하였다.# 김무성 대표가 부산을 놔두고 굳이 마포로 올라올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정청래가 컷오프 되면서 둘의 드림 매치(?)는 무산되었다. 그런데 컷오프 이후인 3월 17일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중구·영도구의 김비오 더민주 예비후보의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김무성 대표와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영도에서 김무성 대표가 다시 당선되었으며[41]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에 막말을 하는 바람에 결국 김진태 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자신의 원래 지역구인 마포 을에 손혜원을 당선시킨 것이 그나마 그가 건진 본전의 전부였다.
  • 20대 총선이 끝나고 새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어 진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2를 함께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이동형 작가, 자신의 후임자인 손혜원 의원과 함께 셋이서 '정치, 알아야 바뀐다'라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 2016년 12월 31일, 송박영신를 앞두고 청래당을 창당한 뒤 청래당으로 정권교체와 부역자 척결을 선언하고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당직을 뿌렸다. 이후 저녁에는 청운동 주민센터 일대에서 "쉬운남자" 뱃지를 단 채 시민들과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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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8월에 손혜원 의원이 다음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자 다음 총선때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 정두언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을 듣고 그의 집으로 즉각 찾아갔다고 한다. 판도라를 포함한 각종 방송을 통해 정두언과 각별한 사이가 되었기에 본인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페이스북에 고인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5. 여담

  •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바에 따르면 10남매 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약사를 하고 있는 부인도 전남 강진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아들은 3명이 있다고 한다.[42]
  • 과거에는 보습 학원을 운영한 경력도 있는 듯하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한 공천을 위해 지역구에서 시민들과 만날 때 오마이뉴스와의 현장 생중계에서 말했다.[43][44]
  • 인기 시사 팟캐스트 방송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출연해 본인의 삶을 이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방송을 참고. #
  • 정봉주랑 친한 관계여서 그런지[45]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이명박은 구속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명박 구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중 한 명이다."[46]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를 복권시켜주자, 정청래는 이제 이명박이 감옥에 들어갈 차례라고 언급했다. 안민석 의원 또한 정청래와 같은 언급을 했다.
  • 세월호 참사 당시 문재인 대표와 함께 단식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파파 이스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은 단식을 하면 초췌하게 되는데 자신은 오히려 얼굴에 기름이 돌고 표정이 화사해져서 단식을 안 한 것 같아 보였다고 한다.
  • 팟캐스트에 자주 출연한다.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기도 하고 당의 공식 팟캐스트인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2의 메인 패널로 발탁되었다. 게다가 개인 팟캐스트 '나는 정청래다'를 운영하기도 했다. 팟캐스트 이름은 자신의 책 이름과 같다. 이 책과 팟캐스트에서 정청래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 지역구에서의 지지 기반이 아주 탄탄하다고 한다. 마포구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동교동이 속해 있는 지역이였지만, 보수 지지세가 강하고 새누리당 계열 후보들이 많이 당선된 지역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소속 후보였던 강용석통합민주당 소속이자 당시 현역이었던 정청래를 꺾고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청래가 국회의원을 지내기 시작한 17대 국회부터 점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졌고, 18대 총선 때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19대에서는 복귀에 성공했다. 그리고 20대 총선 때에는 정청래의 대타로 전략공천을 받은 손혜원이 당선됐다. 이는 정청래 개인의 인기에 의지한 영향이 크다.
    한 예로 정청래 컷오프 이후로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지역구 주민들이 정청래의 공천 배제를 못 받아들이겠다면서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정청래가 보일 때마다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고 할 정도이니...
    정청래의 지역구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마포구 을 지역의 보수적인 성향의 해병대 전우회 등이 주 지지층이라고 할 정도이며, 마포에서 학원 운영 경력이 있어서 그 제자들이 수만 명이고, 현재 제자들이 학부모들이 돼서 정청래 의원에게 원장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인근에 있는 항공대 비행장 때문에 지역구 내 아파트 소음 공해가 심각하자 국회에 한진그룹조양호 회장을 소환해서 결국 비행장을 제주도로 이전시키고,[48] 지역구 예산도 상당히 많이 따왔다고 한다. 언론에서 항상 다뤄지는 막말 이미지와는 달리 지역구 주민 밀착형 정치와 공적 의정활동을 잘 병행해왔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평가인 듯 하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열린우리당 45,405 (44.77%)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통합민주당 30,050 (37.88%)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민주통합당 58,163 (54.48%) 당선 (1위)


[1] 前 신민당 대표 유진산과 동향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유진산의 장례식에 부모님 손에 끌려 문상을 갔던 기억이 있다고 자신의 저서인 <거침없이 정청래>에 밝혔다.[2] 대부분 면제인 사람들은 신체 급수가 6급이지만, 정청래는 실형(징역 6년)으로 인해서 면제이므로 신체 급수가 없다.[3] 정청래 의원과 손혜원 의원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덩달아 같이 유명해진 김성회 씨.[4] 총선에서 무려 3번이나 강용석과 마포구 을에서 붙었으며 2승 1패(17대 승, 18대 패, 19대 승)를 기록했다.[5] 자신이 징계 먹게 만든 공갈이 아니라 "공익적 일갈"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을 막말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6] 김어준의 파파이스 87화에서 말하길, "필리버스터 하고 싶은데 참고 있느라 죽겠다."라는 이유로 그렇게 소개했단다.[7] 참방광인 드립은 당초 인터넷 상에서 필리버스터를 할 때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고 버틴 것을 두고 하는 드립이었는데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2 15회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참척추인 드립은 건강검진 때 의사에게 척추가 튼튼하다는 말을 들어서였다고...[8] 이건 후술할 컷오프 사태 이후 본인이 스스로 쓰고 있다.[9] 당시 대학생들은 학생운동 투신 중 끌려가서 폭행을 당하고 난 그 다음 날 일부는 군대로 끌려갔다.[10] 위의 트위터 계정 아이디도 싸리비다.[11]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시민은 그때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긴 시간 인터넷 정당을 준비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정청래에게 와서 사무실도 빌려달라 하고, 인터넷 정정당당 사이트도 빌려달라 하였다 한다.[12] 이때 강용석 후보가 새누리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인 건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등 여러 병크를 저질러 당에서도 쫓겨났기 때문이다. 득표율은 4%도 안 됐다고.[13] 그래서 당시 정청래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사퇴하면 서열 승계에 따라 본인이 당대표 대행이 되기 때문에 비주류가 더이상 문재인의 사퇴를 요구하지 못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14] 파파이스에 출연할 때마다 영입 인사 관련 이야기를 한다.[15] TV조선이라는 방송사가 많은 비판을 받는 방송사이지만 그래도 중요 방송사가 맞다. 긴급지진속보 기능이 별거 아닌 듯하지만 고정 시청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tvN 같은 오락채널에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요 방송사를 구별하는 나름대로 중요한 기준이다.[16]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그 당시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아서 뜻을 같이 한 것이라 답을 했다. 그래서 자신을 친노 인사라고 칭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17] 이 시기에 유시민과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18] 실제로 2016년 8월에 업로드 된 팟캐스트 벙커1 채널의 '국회의원 사용법' 강연 녹취에서 그는 스스로가 친노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덧붙이며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을 친노라고 부른다면 자신은 친노라고 할 수 있다' 라고 언급했다.[19] 하지만 이 문제는 워낙에 말이 많은 문제이다. 새정련 측에서 인지도가 낮은 정태호 후보를 꼭 등록해야만 했느냐는 비판도 있다. 차라리 원래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상규 의원을 지지해야 했다고 주장하는 진보계 인사들도 있었고.[20] 정치 데뷔도 탄돌이로 했고, 동교동계와는 당연히 무관하며, 운동권 비주류인 건국대학교 출신에다, 정통활동으로 친노 핵심들과도 척을 졌었기 때문에 무계보 무계파이다.[21] 2012년 5월 전원책 변호사는 KBS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에게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개새끼'라고 하면 종북세력이 아니다. 만약 대답을 못하고 피한다면 종북세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정청래의 평이 바로 이 말이었다.#[22] 정청래가 징계 해제된 시점과 비슷한 시점.[23] 조경태 본인은 그냥 자신을 제명하라고 했다.[24] 손혜원 후보의 말에 의하면, 이 말을 듣고 정청래 본인이 굉장히 우울해했다고 한다.[25] 차라리 정의당에 가라는 의견까지도 있었으나, 정의당에 입당해도 시기가 너무 늦어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없기에 어쨌든 총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좌파 사민주의 성향의 정의당과 정청래의 정치 노선 또한 확실히 다르다.[26] 실제로 나는 꼼수다의 멤버였던 김용민 PD가 2012년 19대 총선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 노원구 갑 지역에 출마했다가 2004∼2005년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이 뒤늦게 총선 때 터지면서 무당파 중도층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민주통합당이 피해를 입었던 사례가 있다.[27] '노사모'에서 활동했던 적도 있었고 또 이 사건 때문에 정청래 의원은 친노계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정청래는 엄밀히 말하면 정동영계에 속했던 정치인이다. 때문에 4.29 재보선 때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련을 탈당해 서울 관악 을에 출마했을 때 당 안팎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컸지만 정청래는 의외로 잠잠했다.[28] 문재인 대표는 혁신위원장 직을 비노계의 대권 주자였던 안철수 의원에게 제의하고, 재신임 투표도 치르겠다고 하고, '문안박 연대'를 제안하는 등 비노계를 달래기 위해 갖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비노계는 이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문 대표도 총선이 임박해오는 위급한 시기에 이들과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강경책으로 선회하게 된다.[29] 같은 당의 임수경이나 김현의 경우는 대민 마찰 전력으로 인해 컷오프당했는데, 정청래는 수많은 막말과 김현 의원을 비판한 조경태, 표창원 등의 이른바 '새누리당 프락치들'에 대한 폭언을 쏟아냈지만 적어도 대민 마찰은 없었다.[30] 이종걸 원내대표는 수십 일 넘는 당무 거부로 의원들의 입방아에 올랐고 박영선 의원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1] 하지만, 이제 와서 구제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다른 컷오프된 의원들도 이의를 제기할 거고, 그들의 지지자들이 정청래 의원의 지지자들처럼 시위를 함으로써 당의 권위를 추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32] 훗날 김현 전 의원은 이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데다 CCTV로 입증된 사실과 진술 내용이 엇갈리고, # 김현 의원의 '명함 뺏어!' 발언은 직접적인 폭행 지시는 아니라고 판단해서라고.[33] 물론 이는 정청래 컷오프 논란 때 컷오프의 부당성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 크다. 전원책이 컷오프를 (전체적으로는 비판했지만) 중간에 약간 옹호하는 뉘앙스로 "정청래 의원은 근데 그동안 너무 막말이 심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어요"라고 하면서 "그대(유시민)에게도 간신이라고 했잖아요"라고 하자 나온 말이다.[34] 근데 김무성은 종북이라는 말이 정치계에 유행하기 시작할때부터 공식석상이나 선거 유세 및 지역행사나 안 가리고 계속 썼던 사람이라 유시민 말고도 김무성의 종북프레임에 당한 사람이 많으며, 선거 때만 되면 계속 종북 종북 그중 언제 언급한 걸 말하는지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통진당에게도 종북타령했지만, 정의당에게도 종북타령,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종북타령, 참여연대에게도 종북타령, 심지어 문재인에게도 '종북세력을 국회에 잠입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 '종북 세력과 연대했던 사람'이라며 공격해서 논란이 있었다. 특히 이 발언은 통진당 출신 무소속 국회의원인 윤종오, 김종훈의 지역구인 울산 지역 선거유세에서 했던 거라(당시 김무성이 새누리당 후보 지지 연설을 하며 '(상대 후보는) 통진당 간판을 달고 나오다 이번에 무소속으로 위장해서 나왔다'라는 말과 더불어 문재인 비난을 같이 한 것) 두 의원(당시 후보)은 참다 못해 허위사실유포와 통진당 출신인거 안 숨겼다고! 후보 비방 혐의 종북 타령 좀 제발 그만해!로 선관위에 고발을 했다. 그 뒤에도 분을 못 이기고 '윤종오는 공수특전여단 출신의 국가보훈대상자인데 방위 복무한 김무성 후보가 무슨 자격으로 종북 운운이냐'는 말까지 남겼다. 게다가 과거 김무성 본인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원내 협상 중 야당의원의 반대로 의견충돌이 해결 안 될 때) 몇몇 야당의원들에게 '그러니 당신들이 종북주의자라고 비판 듣는 거 아니냐'라고 하니 그들이 스스로 그래 우리 종북주의자 맞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야당 정치인 다수는 수년 동안 이어진 김무성의 종북프레임 발언에 당한 적이 있다.[35] 그러나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유시민이 서로 '무관계한 사이'일 뿐이라고 표현한 것을 봤을 때 실제로 화해를 했는지는 미지수다.[36] 성인이었다면 실형도 받았을 수 있다.[37] 신군부의 국보위 위원이었다.[38] 그러나 안경환 교수는 이 일에 대해 오래전부터 거절해왔던 일이라며 영입설을 일축했다. 뉴스[39] 선대위원장은 비상설 당직으로는 가장 중요한 당직이며, 상설 당직까지 합쳐도 한 손 안에 드는 중요 당직이다.[40]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붙인 별명이다. 김 대표가 '추호도 ~할 생각이 없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면서.[41] 김비오 후보는 이 영도구에서 두 번이나 도전했던 인물로 득표율이 20%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20대 총선에서 2배에 달하는 40.7%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대권 주자급'인 김무성 전 대표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42] 최고위원 경선 때 나온 내용.[43] 마포 성산 지역에서 스파르타식으로 유명했으며, 직원이 100여 명일 정도로 큰 학원이었다고 한다. 학원 이름이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동네 초중딩 사이에서는 가면 애잡는다고 애잡이 학원으로 더 많이 불렸다.[44] 17대 총선 출마로 학원 운영에서 손을 떼고, 18대 총선 낙마 후 다시 찾아가 보니 학원이 없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학원을 나올 때는 후배 강사들과 직원들에게 그대로 승계하면서 빈손으로 나왔다고 하니 흠좀무.[45] 가장 친한 정치인은 안민석 의원이다.[46] 정청래가 정봉주랑 친하기 때문에 정봉주로부터 이명박에관한 정보를 들어 이명박에 대해 정봉주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을 알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실제로 정청래가 진보 패널로 나오는 판도라에서도 "이명박은 반드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47]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북한통일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48] 100억이 들었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 추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