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7 16:10:13

동아일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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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186><colcolor=#fff>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설립 1920년 4월 1일
창간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 (서린동)
창업주 인촌 김성수
대표자 김재호, 임채청
임원진 대표이사 사장 김재호
발행·편집·인쇄인 · 대표이사 부사장 임채청
부사장 이희준
출판편집인 · 상무 김정훈
업종명 신문발행업, 정기간행물출판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임직원 659명 (2020년 4월)
매출액 2,945억 7,056만 원 (2019년 연간)
영업이익 45억 9,464만 원 (2019년 연간)
순이익 22억 4,975만 원 (2019년 연간)
최대주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지분 24.14%)
사이트 <colbgcolor=#008186><colcolor=#fff> 파일:동아일보 아이콘.svg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사시3. 사가
3.1. 옛 버전3.2. 새 버전
4. 사옥5. 오너 일가6. 지배 구조7. 상징8. 역사9. 성향10. 논란 및 사건사고11. 기획·특집기사12.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13. 주관 대회
13.1. 현존13.2. 폐지
14. 계열사15. 산하기관16. 공익재단17. 제휴 신문사18. 여담19. 관련 인물20. 관련 문서21. 관련 문헌22. 역대 임원
22.1. 상임고문22.2. 명예회장22.3. 회장22.4. 부회장22.5. 사장22.6. 부사장
23. 역대 법정등록인
23.1. 발행인23.2. 편집인23.3. 인쇄인23.4. 출판편집인
24. 역대 주요 간부
24.1. 편집감독24.2. 주간24.3. 주필24.4. 편집/논설상임고문24.5. 논설고문24.6. 논설주간24.7. 논설위원실장24.8. 수석논설위원24.9. 수석해설위원24.10. 편집고문24.11. 편집국장24.12. 출판국장

[clearfix]

1. 개요

세상을 보는 맑은 창, 신뢰받는 신문 東亞日報
동아일보 비전

대한민국의 조간 종합 일간 신문. 1920년 4월 1일에 창간되었다. 창간호. 전라도 지역의 부호였던 김성수[1]가 설립하였다. 그래서인지 1980, 1990년대에는 "전라도 사람은 껌은 해태 껌을 씹고 신문은 동아일보를 본다"라는 말도 있었다. "동아일보"라는 명칭은 창간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유근이 지었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중앙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2]조선일보[3]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일간지다. 처음부터 민족지로 창간되었고 조선인들을 잘 대변해 주어서였는지 1928년 총독부 경무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발행 부수는 4만 868부로 매일신보(2만 3946부), 조선일보(1만 8320부)보다 많았다.

사실 1980년대 이후 전두환 정부와 결탁한 조선일보가 급속한 성장세로 구독 부수 1위를 기록하며 신문 업계의 원톱이 되기 이전까지는 한국일보와 더불어[4] 구독 부수나 매체 영향력 면에 있어서 쌍두마차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신문이었고, 사실상 신문 업계에서 2위 없는 압도적 1위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2020년 현재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함께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 우파 성향의 3대 신문사로 꼽힌다. 그렇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종이신문 산업 자체가 하락세를 타면서 동아일보도 유료부수나 신문의 열독률이 급격하게 감소했고,[5]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매체의 존재감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일례로 2019년 기준 신문 열독률이 2.6% 수준에 불과하다.[6] 물론 이는 종이신문의 얘기이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의 독자층도 미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노조는 미가맹이다.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2000년 민주노총 산하로 산별노조화되면서 탈퇴했다.

2. 사시

파일:동아일보_창간호.jpg
▲ 동아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동아일보의 사시
1. 본보는 [ruby(民族, ruby=민 족)]의 [ruby(表現 技官, ruby=표 현 기 관)]으로 자임함
2. 본보는 [ruby(民主主義, ruby=민 주 주 의)]를 지지함
3. 본보는 [ruby(文化主義, ruby=문 화 주 의)]를 제창함
동아일보 사시
주지를 밝히노라
[ruby(主旨, ruby=주 지)]를 [ruby(宣明, ruby=선 명)]하노라

(1) 조선 민족의 표현 기관을 자임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소수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단일한전체로서의 2000만 민중의 기관으로 자임하니, 그 의사와 이상과 의도와 운동을 여실히 표현하며 보도하고자 한다.

(2)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는 [ruby(國體, ruby=국 체)]니 [ruby(政體, ruby=정 체)]의 형식적 표준이 아니다. 곧 인류 생활의 일대 원리요 정신이니 강력을 배척하고 인격의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국내 정치에 적용하면 자유주의며, 국제정치에 적용하면 연맹주의요, 사회생활에 적용하면 평등주의요, 경제조직에 적용하면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라.
특히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한 가운데 친목과 단결을 의미하며, 세계 전체에 있어서는 정의와 [ruby(人道, ruby=인 도)]를 승인한 가운데 평화와 [ruby(聯結, ruby=연 결)]을 의미한다. (중략)

(3) 문화주의를 제창한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생활 내용을 충실히 하며 풍부히 함이니, 곧 부의 증진과 정치의 완성과 도덕의 순수와 종교의 풍성과 과학의 발달과 철학 예술의 심원함과 오묘함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세계 문명에 공헌하게 하며 조선 강산으로 하여금 문화의 낙원이 되게 함을 높이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조선 민족의 사명이며 생존의 가치라고 사유한 까닭이다.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사 중 일부[7]

3. 사가

3.1. 옛 버전

작사는 춘원 이광수, 작곡은 김영환이 맡았으며, 1926년부터 제정되어 1985년까지 사용했다.
1절
삼천만 가슴속에 졸던 자유혼
깨어라 소리치어 자유의 소리
나날이 새힘자라 새는 날마다
영원히 외치도다 자유의 소리

2절
이 붓대 보았는가 정의의 붓대
의 아닌 것 보고는 못 참는 붓대
차라리 의에 싸워 꺾일지언정
곧고 곧은 그 절개 꺾지 못하네

3절
횃불은 들렸도다 진리의 횃불
삼천만 우리 강산 두루 비치러
옛 역사 새 정신 타는 광명은
천만대 내리 전할 진리의 횃불

4절
원컨대 복이 되어 사랑의 꾸리[8]
끝없는 실을 끌고 동포의 가슴
낱낱이 들어나어 삼천만 혼을
짜리라 새 조선의 빛난 깃발로

후렴
동아일보 동아의 종소리 자유종 소리
삼천만 자유혼의 외치는 소리
만국에 울려라 만세에 울려라

3.2. 새 버전

1985년 창간 65주년을 맞이해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강인섭, 작곡은 김성태, 편곡은 장일남이 맡았다.
1절
동녘의 빛이어라 민족의 길 밝힌 등불
삼일정신 받들어 새벽을 헤쳐오다
밝히리라 온누리에 자유의 횃불
누구도 영원한 그 앞을 막지 못하리

2절
나라가 없을 때도 깨어있던 종소리
진리와 함께 가는 보람찬 길이로다
외치리라 온누리에 민주의 소리
누구도 의로운 그 붓은 꺾지 못하리

3절
아― 세계로 뻗어가는 겨레의 기상
시대에 앞장서서 문화의 발을 간다
알리리라 진실이 무엇인가를
천 년 뒤 만나도 살아있는 글자기를

후렴
동아일보 겨레의 얼 나날이 새로와라
나라 위한 바른 말 역사에 전하리라

4. 사옥

파일:external/www.museum.seoul.kr/img_07_97.gif
파일:일민미술관.jpg
파일:청계천 동아일보.jpg
광화문 동아일보 구사옥[9]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52 (세종로)
세종로 동아일보 동아미디어센터[10]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 (서린동)
파일:충정로동아일보사옥.png 파일:DDMC.jpg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29 (충정로3가)
상암동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11]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75 (상암동)

집회가 들끓는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 1926년 완공된 구사옥과 2000년 완공된 현 본사 동아미디어센터가 붙어있다.

일제의 문화 통치 시기였기 때문인지 구사옥은 나카무라 마코토(中村誠)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를 담당했다. 건축적으로 뛰어난 건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 국내에 남은 언론사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다. 여러 번 리모델링을 하여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외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조중동이라고 불리던 신문사들 중 구사옥은 사라지고 신사옥만 번듯하게 있는 조선일보, 일찍 폐간되어 농협으로 사용되는 구사옥만 남아있는 조선중앙일보[12]와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1992년 완공한 충정로 사옥이 있다. 원래 동아일보는 충정로 사옥 완공 이후 이곳으로 본사를 이전하였으나, 광화문 구사옥 옆에 동아미디어센터가 건설되자 다시 이곳으로 본사를 옮겼다. 2014년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채널A와 함께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를 신축하였다.
파일:동아일보100주년.jpg

2019년 3월 20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프랑스현대 미술가 다니엘 뷔렌과 함께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사옥의 외벽을 미술 작품으로 바꾸었다. 한국의 색, 동아일보 X 다니엘 뷔렌

5. 오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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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배 구조

주주명 보유주식수 지분율
인촌기념회 724,319 24.14%
김재호 666,491 22.22%
자기주식 457,759 15.26%
기타주주 1,151,431 38.38%
총계 3,000,000 100.00%
동아일보 주요 주주 목록
(출처: 2020년 감사보고서)

7. 상징

파일:동아일보 로고.svg
▲ 동아일보의 로고

왼쪽의 에메랄드 색 원형 로고는 1920년 창간 당시부터 사용해왔던 오래된 로고이며 타원 속에 한자 '東(동녘 동)'이 가로세로로 반복된 형태이며 45도로 기울여 보면 亞(버금 아)자 형태도 드러나는 그 당시엔 보기 드물게 꽤 복합적이고 모던한 형태의 로고다. 1920년 이후 단 한 번도 바뀌거나 폐기된 적이 없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로고이다. 전혀 관계없는 동해상사고속의 상표도 이거랑 유사하지만, 색상이 다르다.

창간 당시 서화협회에 위촉해 협회 회원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東'자를 도형으로 도형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이것을 본사가 채택함으로써 결정됐다. 처음에는 배달부의 배달용 덧저고리[13]에 마크로 새겨 사용했다. 동아일보 지면에 로고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22년 10월 15일 자 3면으로, 동아일보 후원으로 열렸던 제3회 전선(全鮮) 야구 대회에 동아일보에서 제정한 우승기 사진이 실렸다.#

8.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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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향

동아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신문 중 하나이다. 같은 보수 언론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주로 북한 같은 안보 문제를 다루고 중앙일보가 경제 문제를 다루는 데 비해 동아일보는 문화 방면을 더 다루는 경향이 있다. 창간 당시 사시(社是)가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였다.

2001년 세무조사 사건 이전까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김대중민주당계 정당의 주요 지지 언론이기도 했고 서중석이 10여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중에 한겨레 신문을 창간하는 송건호도 원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6개월 정도 했었다. 유시민이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5월 19일부터 5일간 전두환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설을 싣지 않았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여러 지면을 할애하여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지역기반이 같은 김대중을 적극 지지해 줬으며,[14]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대중도 동아일보의 창업주였던 김성수를 적극적으로 감싸줬는데, 실제로 김대중은 1980년대 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동아일보의 창업주이자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로 중흥시킨 김성수친일파라며 규탄했을 때 김성수를 옹호해 주면서 그 고대생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특별기고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촌[15]은 비록 감옥에 가고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독립투쟁 못지않게 우리 민족에 공헌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인촌은 동아일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을 계몽하여 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큰 힘을 주었다. 그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고려대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를 이끌 고급 인력을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 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김대중,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동아일보 특별기고

2000년 3월 31일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는 "인촌 선생은 민족 민주 문화주의 3대 강령을 내건 동아일보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이끈 탁월한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동아일보의 3대 사시(社是)는 그때뿐만 아니라 21세기를 맞는 새천년에도 참으로 합당하다."라고 동아일보와 인촌 김성수를 칭찬했다.

김대중이 1987년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로 여러 차례 위기에 빠졌음에도 제1야당을 전두지휘하는 인물이자 차기 대권주자로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호남권에서의 압도적인 지지와 함께 동아일보가 김대중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사들의 논조를 보면 조선일보야 말 할 것도 없고, 중앙일보도 14대 대선15대 대선에서 김영삼이회창을 밀어줬을 정도로 김대중에게 영 고까운 시선을 보냈던데다가 방송사들의 논조도 김대중과 민주당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일보와 친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김대중과 야권이 버틸 수 있었고, 그 덕에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것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 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고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나갔는데 이는 언론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 후 김대중 정권은 2001년 언론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 이 세무조사 때 동아일보 회장의 부인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동아일보의 관계가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로 틀어졌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군부독재정권 때부터 이미 5년마다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었고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시절에만 중단되었었기 때문에 기업이라면 원래 받아야할 세무조사를 시행한 것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김대중이 추진하던 대북사업 관련 기업에는 세무조사를 자제하라고 국세청장이 지시했고 집권층 내부에서 특정 신문사들 이름을 거론하며 "당장 작살내겠다", "두세 달 내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 등의 발언이 나왔던 것[16]을 보면 김대중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보복 의도도 분명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동아일보가 이전보다 더 보수 쪽으로 이동하게된 계기로 평가된다.

단, 많은 한국인들이 '진보 = 민주화 세력' '보수 = 독재 세력' 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지만 실제론 과거 독재 정권 당시의 구도는 민주 vs 반민주 로 보는게 맞지 진보 vs 보수 로 보는것은 맞지 않다. 그러므로 동아일보도 과거에는 진보였다가 지금 보수로 변했다는 말은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런 착각 때문에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보수진영에서 활동하는 과거 민주화 운동가 출신들을 '배신자', '변절자'로 모는 이상한 풍토가 생긴 것이다. 민주화 세력들 안에서도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당연히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다. 이건 독재, 반독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보수 정치인인 김영삼만 해도 김대중과 함께 군부 독재시대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렇게 볼 때 동아일보는 대북정책문제, 노동문제 등에서 과거에도 보수에 가까운 신문이었다.

어쨌거나 동아일보는 2000년대 이후 친재벌 성향으로 더 변화하게 되는데, 그 이유로 꼽히는 것이 삼성그룹과의 관계이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동아일보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삼성생명으로부터 500억 긴급대출을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대출의 배경에는 삼성 오너 이건희와 동아일보 오너 김병관의 사돈 관계가 있다.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이 1999년 이건희의 2녀인 이서현과 결혼한 것이다. 김재열은 이후 제일모직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을 거쳐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이 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만큼이나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으로 꼽힌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인해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개인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17]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몇몇 대기업 광고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비판 기사 한 번 썼다가 대기업에서 광고 빼버리면 회사가 흔들리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대기업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행태가 만연하게 되었다.[18]

이후에는 뉴라이트의 등장 때에 특집기사로 스포트라이트를 줬으며,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보수 노선이 상당 부분 강조되면서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조선일보를 뛰어넘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19] 이는 박근혜 정부 때에도 계속되었고, 19대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홍준표 후보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에는 고공행진하는 지지율과 함께 문재인이 직접 동아일보 지령 3만호 기념 축사를 보내고, 비판의 수위도 상당히 낮아져서 과거 친민주당 성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으나, 2018년 말부터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 신문으로 돌아왔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전두환에 매우 비판적이다.

10. 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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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획·특집기사

  •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 2019
    창간 98주년 기획특집기사로, 과거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부당한 악습들을 타파하는 내용이 많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추석편은 간소한 차례상에 관한 이야기를 실어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창간 99주년, 3.1 운동 100주년 기획특집기사로, 3.1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 의의 등을 재조명하였다. 특히 이 기사와 연계하여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학술회의를 개최하였고, 동아닷컴에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디지털 전시관'이라는 3.1 운동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기도 하였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고령화사회를 맞아 연재된 특집기사이며 기자가 직접 노인과 비슷한 조건으로 도심을 걸어다니며 느낀 체험내용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노인들에게 위험한 구조물이나 시설 등을 주목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 The Original
    디 오리지널은 동아일보가 2020년부터 '탁월한 컨텐츠'에 집중하는 히어로콘텐츠팀을 꾸리고 그 팀에서 제작하는 기획 보도 컨텐츠들이다. "증발: 사라진 사람들"을 시작으로 "환생", "99℃:한국산 아이돌" 등을 선보이고 있는데 일러스트와 그래픽적 요소가 결합되어 일반적인 보도글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다.

12.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

13. 주관 대회

13.1. 현존

  •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황금사자기 어린이 야구대회: 2021년 부터 개최 할 예정이며 계열사 방송국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야구왕> 에서 이 대회를 출전 할 계획이다.
  • 서울국제마라톤대회(구 동아마라톤)
  • 공주국제마라톤대회
  • 경주국제마라톤대회
  • 서울달리기대회
  • 동아국악콩쿠르
  • 동아무용콩쿠르
  • 동아뮤지컬콩쿠르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3.2. 폐지

  • 국수전 (1956~2016)
  • 동아사이클대회 (1958~1997)

14. 계열사

15. 산하기관

  • 미래전략연구소 : <동아비즈니스리뷰>를 발행하고 있다.
  • 뉴센테니얼본부 : 동아일보 100주년 사업 기획 및 진행
  • 청년드림센터 : 청년일자리지원 및 취업사이트 운영

16. 공익재단

  • 인촌기념회
  • 일민문화재단
  • 화정평화재단
  • 동아꿈나무재단

17. 제휴 신문사

18. 여담

  •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동안 총 무기정간 4회, 판매금지 63회, 압수 489회, 기사 삭제 2,423회를 당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pdf
  • 1926년 이완용 사망 직후 이완용의 매국 행위를 비꼬는 명대사를 연달아 날리기도 했다. 그 명대사는 이러하다.
‘구문공신(口文功臣) 이완용은 염라국에 입적하였으니, 염라국의 장래가, 가려(可慮)’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신료 이완용이 지옥에 들어갔으니 장래에 지옥마저도 팔아먹을지 걱정된다.)
1926년 2월 13일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기사 중.#
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 갔다. 팔지 못할 것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누린 자,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1926년 2월 13일[21] 동아일보 1면 사설 기사 중.[22]
  • 1931년부터 매년 3월에 마라톤 대회를 열고 있는데, 이 대회가 국내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동아마라톤대회다. 1982년부터는 국제마라톤대회로 확대돼 치러지고 있다. 1947년부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 신문 내에 '횡설수설'과 '휴지통'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무려 1920년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코너이며, 2020년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동아방송(DBS)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 앞부터 시청 뒤편까지 광장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이때 정부로부터 여의도 부지를 받아서 이전할 뻔했다. 물론 계획이 사라지면서 안 헐렸지만.#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심사위원 조경란이 예심에서 떨어진 응모작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은 희대의 막장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는 동아일보의 문제라기보다는 문단의 문제인데, 문단에서 특유의 친목질쉴드를 가동해서 결국 표절이 의심되는 조경란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이문열, 신경숙 등 빵빵한 작가들이 심사하는 동인 문학상까지 받았다. 사실 표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도 워낙 흔한데다가 조경란이 저 아이디어로 이미 등단 직후에 출판사와 책을 계약하기도 한 것이 밝혀져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 1990년대 특종 기사 중 하나를 꼽자면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날려버린 여자화장실 몰카 설치 보도가 있다.# 몰카에 대한 인식을 확립시켜 준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잘나가던 백화점 하나를 그렇게 순식간에 날려버렸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컸다. 이후 외환위기와 겹쳐 운영사였던 양정물산이 1998년에 망했고, 점포는 금강개발산업이 세운 신규법인 현대쇼핑으로 넘어가 현대백화점 신촌점이 되었다.
  • 2010년 11월 18일에는 위키백과를 디스했는데, 위키백과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 자체는 합당했으나 위키백과에 북한군들이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가입한 뒤 편집하는 것 같다는 해괴한[23]내용을 싣는 병크를 저질렀다.# 2011년 7월 16일에 또 위키백과를 디스했다.#
  • 동아일보에서는 전국 경영학도를 대상으로 DBR(Donga Business Review)을 무료배포하고 있다. 한 권에 12,000원이나 하는 책이니 많이 이용하자(...). 경영학 실제 케이스와 연구분석 사례들이 나와있다. 대학에 있는 경영학과 건물에서 배포하는 듯하다.[24]
  • 대한민국 최초의 바둑기전인 국수전을 1956년부터 주최해 왔다.(2016년을 끝으로 폐지)
  • 1925년 대한민국 최초의 신춘문예를 연 이래 수많은 문인들을 발굴해 냈다. 김동리, 이문열, 이창동 등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 일제강점기인 1920 ~ 30년대에는 '응접실'이란 코너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이를 기자들이 대답하는 코너를 연재했다. 문답 내용들을 보면 시대를 초월한 개드립들이 여럿 있다.#
  • 허영만식객이 원래 동아일보에서 2002년 9월 2일 처음 연재되어 2008년 12월 18일까지 연재되었다. 도 2008년 1월 1일부터 2010년 3월 31일까지 연재되었다.#
  •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창간 이후 모든 기사와 지면을 볼 수 있는 동아 디지털 아카이브를 개설했다.동아 디지털 아카이브

19. 관련 인물

가나다순

20. 관련 문서

21. 관련 문헌

  • 동아일보사사 (전 6권, 1975 ~ 2005): 이중 1, 3권은 국가기록원에서 열람 가능하다.
  • 민족과 더불어: 동아일보 80년사 (2000)
  • 동아일보 대해부(전 5권) - 문영희, 강기석, 김종철, 김광원 공저. 안중근평화연구원. 2014.
  • 동아일보 80년사 홈페이지 # #

22. 역대 임원

22.1. 상임고문

  • 김상기, 김성열 (1989.3 ~ 1993.3)
  • 이채주, 이종석 (1997.2 ~ 1998)
  • 송수항 (2000.2 ~ 2003)
  • 어경택 (2003 ~ 2006.1)

22.2. 명예회장

22.3. 회장

  • 고재욱 (1971.2 ~ 1971.12/편집인, 1971.12 ~ 1975.2)
  • 김상만 (대표이사 발행인, 1977.2 ~ 1977.3/대표이사, 1977.3 ~ 1981.2)
  • 이동욱 (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1981.2 ~ 1981.3/대표이사, 1981.3 ~ 1983)
  • 김상기 (대표이사 발행인, 1983.2 ~ 1983.3/대표이사, 1983.3 ~ 1989.3)
  • 김병관 (대표이사 발행인, 1993.3 ~ 1995.2/대표이사 발행인 인쇄인 1995.2 ~ 1995.12, 1997.2 ~ 1999.2/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1995.12 ~ 1996.3/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1996.3 ~ 1997.2/대표이사, 1999.2 ~ 2001.2)
  • 오명 (대표이사, 2001.2 ~ 2001.7)
  • 김학준 (2008.3 ~ 2010.3)

22.4. 부회장

  • 김상기 (이사회부회장, 1977.2 ~ 1981.2)

22.5. 사장

  • 박영효 (대표이사, 1920)
  • 김성수 (대표이사, 1920/1924~1927/1945~1947)
  • 송진우 (대표이사, 1920~1924/1927~1936/1945.12)
  • 이승훈 (대표이사, 1924)
  • 사장대리 양원모 (대표이사, 1936~1937)
  • 백관수 (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편집국장, 1937.6 ~ 1939.10/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1939.11 ~ 1940.7)
  • 임정엽 (대표이사, 1940)
  • 최두선 (대표이사, 1947.2 ~ 1963.7)
  • 이희승 (대표이사, 1963.7 ~ 1965.7)
  • 고재욱 (대표이사, 1965.7 ~ 1968.12/대표이사 발행인, 1968.12 ~ 1971.2)
  • 김상만 (대표이사 발행인, 1971.2 ~ 1977)
  • 이동욱 (대표이사 편집인, 1977.2 ~ 1977.3/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1977.3 ~ 1981.2)
  • 김상기 (대표이사, 1981.2 ~ 1981.3/대표이사 발행인, 1981.3 ~ 1983.2)
  • 오재경 (대표이사, 1983.2 ~ 1983.3/대표이사 발행인, 1983.3 ~ 1985.2)
  • 김성열 (대표이사, 1985.2, 1987.4 ~ 1989/대표이사 발행인 1985.3 ~ 1987.3)
  • 김병관 (대표이사 발행인, 1989.3 ~ 1993)
  • 권오기 (대표이사 편집인, 1993.3 ~ 1995.12)
  • 오명 (대표이사 인쇄인, 1996.6 ~ 1997.2/대표이사 편집인, 1997.2 ~ 1999/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1999.2 ~ 2001)
  • 김학준 (대표이사 발행인 인쇄인, 2001.2 ~ 2002.5/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2002.5 ~ 2006.3/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2006.3 ~ 2008.3)
  • 김재호 (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2008.3 ~ 2016/대표이사, 2016.12 ~ 현재)

22.6. 부사장

  • 장덕수 (1921.9 ~ 1937)
  • 고재욱 (주필, 1961.7 ~ 1965.7)
  • 김상만 (발행인, 1965.12 ~ 1968.12/1968.12 ~ 1971.2)
  • 김두일 (1973.2 ~ ?)
  • 김상기 (1973.2 ~ 1974.2)
  • 이언진 (1973.2 ~ 1975.2)
  • 이동욱 (주필, 1975.7 ~ 1977.2)
  • 김성열 (1983.2 ~ 1985.2)
  • 김병관 (대표이사 인쇄인, 1985.2/대표이사, 1985.3 ~ 1987.3/대표이사 발행인, 1987.4 ~ 1989.3)
  • 권오기 (대표이사 편집인, 1989.3 ~ 1993.3)
  • 송수항 (신문담당, 1999.2 ~ 2000.2)
  • 김병건 (출판담당, 1999.2 ~ 2001.7)
  • 김재호 (대표이사 인쇄인, 2006.3 ~ 2008.3)
  • 최맹호 (대표이사 인쇄인, 2010.3 ~ 2015.3)
  • 이희준 (2016.12 ~ 현재)
  • 임채청 (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2016.12 ~ 현재)

23. 역대 법정등록인

23.1. 발행인

  • 이상협 (1920.4 ~ 1921.11)
  • 한기악 (1921.11 ~ 1924.4)
  • 설의식 (1924.4 ~ 1924.10)
  • 김철중 (1924.10 ~ 1927.1)
  • 양원모 (1927.1 ~ 1927.11)
  • 김석중 (1927.11 ~ 1930.9)
  • 송진우 (1930.9 ~ 1936.8)
  • 백관수 (1937.6 ~ 1940.7)
  • 임정엽 (1940.7 ~ 1940.8)
  • 김승문 (1945.12 ~ 1947.3)
  • 국태일 (1947.3 ~ 1961.7)
  • 김상만 (1961.7 ~ 1968.12/1971.2 ~ 1977.3)
  • 고재욱 (1968.12 ~1971.2)
  • 이동욱 (1977.3 ~ 1981.3)
  • 김상기 (1981.3 ~ 1983.3)
  • 오재경 (1983.3 ~ 1985.2)
  • 김성열 (1985.3 ~ 1987.3)
  • 김병관 (1987.4 ~ 1999.2)
  • 오명 (1999.2 ~ 2001.2)
  • 김학준 (2001.2 ~ 2008.3)
  • 김재호 (2008.3 ~ 2016)
  • 임채청 (2016.12 ~ 현재)

23.2. 편집인

  • 이상협 (1920.4 ~ 1921.11)
  • 한기악 (1921.11 ~ 1924.4)
  • 설의식 (1924.4 ~ 1924.10/1945.12 ~ 1947.3)
  • 김철중 (1924.10 ~ 1927.1)
  • 국기열 (1927.1 ~ 1930.9)
  • 송진우 (1930.9 ~ 1936.8)
  • 백관수 (1937.6 ~ 1940.7)
  • 임정엽 (1940.7 ~ 1940.8)
  • 고재욱 (1947.3 ~ 1966.1/1971.12 ~ 1975.3)
  • 우승규 (1966.1 ~ 1966.8)
  • 천관우 (1966.8 ~ 1968.12)
  • 이동욱 (1968.12 ~ 1971.12/1975.3 ~ 1981.3)
  • 권오기 (1981.3 ~ 1995.12)
  • 김병관 (1995.12 ~ 1997.2)
  • 오명 (1997.2 ~ 2001.2)
  • 이현락 (2001.2 ~ 2002.5)
  • 김학준 (2002.5 ~ 2008.3)
  • 김재호 (2008.3 ~ 2016)
  • 임채청 (2016.12 ~ 현재)

23.3. 인쇄인

  • 이용문 (1920.4 ~ 1921.11)
  • 최익진 (1921.11 ~ 1924.10)
  • 조의순 (1924.10 ~ 1933.2)
  • 김병석 (1933.2 ~ 1935.7)
  • 황영모 (1935.7 ~ 1936.8/1937.6 ~ 1938.3)
  • 장석태 (1938.3 ~ 1940.8)
  • 이언진 (1945.12 ~ 1975.3)
  • 김성칠 (1975.3 ~ 1983.3)
  • 김병관 (1983.3 ~ 1985.2/1995.2 ~ 1996.6/1997.2 ~ 1999.2)
  • 최준철 (1985.3 ~ 1987.9)
  • 한갑수 (1987.9 ~ 1988.2)
  • 신용순 (1988.2 ~ 1989.3)
  • 김광희 (1989.3 ~ 1995.2)
  • 오명 (1996.6 ~ 1997.2/1999.2 ~ 2001.2)
  • 김학준 (2001.2 ~ 2006.3)
  • 김재호 (2006.3 ~ 2008.3)
  • 최맹호 (2008.3 ~ ?)
  • 임채청 (2016.12 ~ 현재)

23.4. 출판편집인

  • 이재호 (2009.3 ~ 2012.7)[28]
  • 김정훈 (2020.12 ~ 현재)

24. 역대 주요 간부

24.1. 편집감독

24.2. 주간

24.3. 주필

  • 장덕수 (1921 ~ 1923)
  • 홍명희 (1924.5 ~ 1925)
  • 송진우 (1925.4 ~ 1927)
  • 김준연 (1935.2 ~ 1936)
  • 고재욱 (1946.4 ~ 1949.5/1952.10 ~ 1955.4/1955.10 ~ 1965/1971~1974.9)
  • 김삼규 (1949.5 ~ 1952.10)
  • 천관우 (1965.12 ~ 1968)
  • 이동욱 (1968.12 ~ 1971.12/1975.2 ~ 1977.2)
  • 권오기 (1981.2 ~ 1989.3)
  • 이채주 (1994.3 ~ 1997.2)
  • 이현락 (1999.2 ~ 2000.5/2000.10 ~ 2001.2)
  • 배인준 (2010.3 ~ 2015.3)

24.4. 편집/논설상임고문

24.5. 논설고문

  • 이종석 (1994.11 ~ 1997.2)
  • 김학준 (1999.1 ~ 2000.10)
  • 황호택 (2016.12 ~ 현재)

24.6. 논설주간

  • 홍승면 (1974.9 ~ 1977.2)
  • 김성한 (1977.2 ~ 1979.12)
  • 박권상 (1980.1 ~ 1980.7)
  • 권오기 (1980.8 ~ 1981.2)
  • 김진현 (1989.3 ~ 1990.11)
  • 이채주 (1990.11 ~ 1993)
  • 남중구 (1998.1 ~ 1999.2)
  • 최규철 (2002.5 ~ 2005.2)
  • 배인준 (2006.12 ~ 2010.3)
  • 황호택 (2013.1 ~ 2016.12)
  • 김순덕 (2016.12 ~ 2018.12)
  • 박제균 (2018.12 ~ 현재)

24.7. 논설위원실장

  • 우승규 (1964 ~ 1965.12)
  • 김진현 (1985.3 ~ 1989.3)
  • 남시욱 (1989.3 ~1991)
  • 이종석 (1991.8 ~ 1994.10)
  • 정종문 (1994.11 ~ 1995.9)
  • 민병문 (1995.9 ~ 1997.2)
  • 남중구 (1997.2 ~ 1997.12)
  • 김종심 (1998.1 ~ 1999.2)
  • 어경택 (1999.2 ~ 2001.7)
  • 최규철 (2001.7 ~ 2002.5)
  • 이규민 (2002.5 ~ 2003.7)
  • 전진우 (2003.7 ~ 2005.2)
  • 배인준 (2005.2 ~ 2006.12)
  • 이재호 (2006.12 ~ 2009.3)
  • 황호택 (2009.3 ~ 2013.1)
  • 심규선 (2013.1 ~ 2013.12)
  • 김순덕 (2013.12 ~ 2016.12)
  • 박제균 (2016.12 ~ 2018.12)
  • 이기홍 (2018.12 ~ 현재)

24.8. 수석논설위원

  • 홍승면 (1972.4 ~ 1973.8)
  • 송건호 (1973.8 ~ 1974.9)
  • 권오기 (1980.1 ~ 1980.8)
  • 정종문 (1991.8 ~ 1994.3)
  • 민병문 (1994.3 ~ 1995.9)
  • 남중구 (1995.9 ~ 1997.2)
  • 김종심 (1997.4 ~ 1997.12)
  • 배인준 (2003.7 ~ 2005.2)
  • 이재호 (2005.3 ~ 2016.12)
  • 최영훈 (2015.9 ~ 2016)

24.9. 수석해설위원

  • 이동수 (1971 ~ 1974.9)
  • 권오기 (1974.9 ~ 1977.7)

24.10. 편집고문

  • 이광수 (1927 ~ 1929)
  • 고재욱 (1949 ~ 1951/1955)
  • 우승규 (1965.12 ~ ?)

24.11. 편집국장

  • 이상협 (1920 ~ 1924)
  • 홍명희 (1924.5 ~ 1925)
  • 이광수 (1926.11 ~ 1927.10/1929.12 ~ 1933)
  • 김준연 (1927.10 ~ 1928.5)
  • 주요한 (1929.11 ~ 1929.12)
  • 설의식 (1935.2 ~1936)
  • 백관수 (1937.6 ~1939)
  • 고재욱 (1939.11 ~ 1940.8/1945.12 ~ 1946.4/1947.7 ~ 1947.9/1952.10 ~ 1953.2/1954~1955.4/1958.11 ~ 1960.7)
  • 임병철 (1946.4 ~ 1947.6)
  • 김삼규 (1947.9 ~ 1949.5/1950.10 ~ 1952.3)
  • 장인갑 (1949.12 ~ 1950.6)
  • 곽복산 (1952.3 ~ 1952.10)
  • 민재정 (1953.2 ~ 1954)
  • 우승규 (1956.4 ~ 1958)
  • 김영상 (1960.7 ~ 1962.1)
  • 천관우 (1963.1 ~ 1965.12)
  • 변영권 (1965.12 ~ 1969.2)
  • 홍승면 (1969.2 ~ 1971.3)
  • 박권상 (1971.4 ~ 1973.8)
  • 김성한 (1973.8 ~ 1974.9)
  • 송건호 (1974.9 ~ 1975.3)
  • 최호 (1975.4 ~ 1977.7)
  • 권오기 (1977.7 ~ 1979.12)
  • 이웅희 (1980.1 ~ 1980.8)
  • 신용순[29] (1980.8 ~ 1983.5)
  • 이채주 (1983.5 ~ 1987.1)
  • 남시욱[30] (1987.1 ~ 1989.3)
  • 장행훈 (1989.3 ~1990.6)
  • 김중배 (1990.6 ~ 1991.7)
  • 홍인근 (1991.8 ~ 1994.10)
  • 이현락 (1994.11~1997.12)
  • 정구종 (1998.1 ~ 1999.2)
  • 박기정 (1999.2 ~ 2000.5)
  • 최규철 (2000.5 ~ 2001.7)
  • 김용정 (2001.7 ~ 2002.7)
  • 어경택 (2002.7 ~ 2003.7)
  • 이규민 (2003.7 ~ 2005.4)
  • 임채청 (2005.4 ~ 2008.11)
  • 심규선 (2008.11 ~ 2012.6)
  • 최영훈 (2012.6 ~ 2013.12)
  • 김차수 (2013.12 ~ 2016.12)
  • 김정훈 (2016.12 ~ 2018.12)
  • 천광암 (2018.12 ~ 2020.12)
  • 이명건 (2020.12 ~ 현재)

24.12. 출판국장

  • 김상기 (1965 ~ 1966)
  • 조병륜 (1966 ~ 1970)
  • 김성한 (1970 ~ 1973.8)
  • 홍승면 (1973.8 ~ 1975)
  • 김성한 (1974.9 ~ ?)
  • 임순묵 (1975.4 ~ 1980)
  • 안재준 (1980.10 ~ 1981)
  • 이채주 (1981 ~ 1983.5)
  • 남시욱 (1983.5 ~ 1987.1)
  • 장행훈 (1987.1 ~ 1989.3)
  • 김중배 (1989.3 ~ 1990)
  • 이준우 (1990 ~ 1991.1)
  • 이정윤 (1991.2 ~ 1994)
  • 이대훈 (1994 ~ 1995)
  • 정구종 (1995 ~ 1997)
  • 어경택 (1997 ~ 1999.2)
  • 김종심 (1999.2 ~ 2001)
  • 민병욱 (2001 ~ 2005.2)
  • 최맹호 (2005.2 ~ 2006)
  • 고승철 (2006.12 ~ 2008.1)
  • 황의봉 (2008.3 ~ 2009)
  • 이재호 (2009.3 ~ 2012)
  • 권순택 (2012.6 ~ 2014)
  • 박태서 (2014.6 ~ 2016.12)
  • 박성원 (2016.12 ~ 현재)


[1]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자(엄밀히는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를 창립한 것이지만) 이승만 정부 시절 부통령직을 지냈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와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때문에 형제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는 사이가 끈끈한 편이다.[2] 1904년 창간[3] 1920년 3월 5일 창간[4]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일보의 위상은 상당해서 1990년대 초반에도 구독 부수가 상당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망테크를 타기 시작했고, 지금은 후발주자인 한겨레신문보다도 못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일보 문서 참조.[5]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이어 3위였으나(유료부수에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나지 않았었지만), 2016년부터는 ABC 유료부수 기준으로 오히려 중앙일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는 동아일보의 구독자 수가 늘어서는 아니고, 그냥 중앙일보 구독 부수가 매우 빨리 줄어든 바람에 본의 아니게 2위에 올랐을 뿐이다. 사실 조선일보도 유료부수가 꽤 증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1위는 1위인지라 2019년 기준으로 발행부수 92만 부, 유료부수 73만 부이다. 부수 통계가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중론이라 실제 유료부수가 통계와 다르더라도 부풀려진 것은 모든 신문사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순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신문 문서 참조.[6]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년 언론 수용자 조사.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종이신문 전체의 상황이라서 열독률 1위 조선일보도 3.3%에 불과하고 한겨레는 0.7%에 불과하다.[7] 국역본은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을 참조했음. 원문은 이곳 참조[8] 둥그런 실타래를 뜻하는 순우리말.[9] 현재는 일민미술관신문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10] 채널A와 사옥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광화문 구사옥의 바로 오른쪽에 있다.[11]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동아미디어그룹이 건설한 사옥이다. 청계천의 동아미디어센터와 달리 채널A가 중심이다.[12] 다만, 현재 조중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홍진기와 삼성의 중앙일보는 중앙일보 빌딩(흑갈색 건물로 개국 초기 JTBC의 사옥으로도 쓰였던 그 건물) 옆에 구사옥이 존치 중이며, JTBC 빌딩(DMCC 타워)가 세워지기 전까지 구사옥에 임시로 중앙일보가 세 들어 사는 케이스는 있긴 있었다.[13] 당시엔 일본어로 '핫피'라 했음.[14] 실제로 김대중이 가장 아꼈던 기자가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였던 이낙연으로, 이후 이낙연은 김대중을 따라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동아일보의 이런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극좌 성향의 선동가들은 이낙연이 동아일보의 기자였던 전력을 가지고 진보의 적이라고 호도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15] 김성수의 호[16]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 성한용, 2001[17] 대부분의 가정이 돈이 쪼들리면 제일 먼저 신문을 끊는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직후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고, 당시 한화그룹은 가지고 있던 경향신문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그냥 독립시켜 버린다.[18] 겉으로는 재벌타파를 외치는 한겨레, 경향신문도 재벌에 대한 비판 기사는 광고 떨어질까봐 스스로 수위조절 한다는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사인 창간으로 이어진 2005년 시사저널 파업 사태도 삼성 비판 기사를 경영진이 (연락도 안 왔는데) 알아서 잘라내면서 촉발된 것이다.[19] 사장 김재호2010 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의 민간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20] 구 마이다스동아일보[21] 희대의 매국노 이완용이 죽고 난 후 이틀 뒤의 기사다.[22] 현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는 이 기사를 볼 수 없다. 조선총독부가 위 사설을 포함해 당시 동아일보의 ‘이완용 비난 부고 기사’들을 모조리 압수하고 이를 삭제했기 때문이다.[23] 위키백과는 실명제가 아니기에 주민번호는 커녕 휴대전화 인증도 필요 없다.[24] 배포처 :건국대학교 - 경영관 2층 경영학과 사무실 앞. 고려대학교 - LG-POSCO 경영관 3층 수당학술정보관. 서울대학교 SK경영관 (58동) 1층. 성균관대학교 - 경영관 4층 경영경제대 행정실. 연세대학교 - 신경영관 4층 경영대학 행정실 앞. 서울시립대학교 - 미래관 5층 경영대학 행정실 내. 간혹 미래관 3층 경영경제전문도서관 대출데스크에 비치하는 경우도 있으나 요즘은 최신호를 잘 안 가져다가 놓는듯. 포항공과대학교 - 무은재 기념관 101호 앞, 충남대학교 - 경영학부 사무실(경상관 233호) 앞. 한국외국어대학교 - 경영학부장실 앞.[25] 동아일보 가문 참조[26] 두 작품 모두 심훈이 동아일보에서 퇴사한 후 나온 작품인데, "탈춤"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상록수"는 동아일보 공모전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이다.[27]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당시 해직기자들이 주도하여 창립하였다.[28] 초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임명 후 퇴사.[29] 퇴사 이후 1993년에 강원일보 사장 역임. 1996년 작고.[30] 퇴사 이후 문화일보 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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