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9:01:2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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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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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는 창간일자 순.
조선일보
朝鮮日報 | The Chosun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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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조선일보사
-1 {{{#000000 (朝鮮日報社 | The Chosun Ilbo)}}}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창간일 1920년 3월 5일[1]
경영진 방상훈 대표이사 사장
홍준호 대표이사 부사장, 편집·인쇄·발행인
방준오 부사장
업종 신문발행업, 정기간행물출판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매출액 3,062억 1,909만 원 (2018년 기준)
영업이익 350억 3,590만 원 (2018년 기준)
당기 순이익 235억 9,973만 원 (2018년 기준)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30 (태평로1가)
링크 파일:조선닷컴.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사시3. 사옥4. 사가5. 역사6. 사주 일가7. 역대 임원
7.1. 상임고문7.2. 명예회장7.3. 명예사장7.4. 회장7.5. 사장7.6. 대표이사7.7. 대표이사 부사장7.8. 대표이사 전무7.9. 부사장7.10. 부사장대우
8. 역대 법정등록인
8.1. 발행인8.2. 편집인8.3. 인쇄인
9. 역대 주요 간부
9.1. 주필9.2. 논설고문9.3. 논설주간9.4. 논설위원실장9.5. 수석논설위원9.6. 편집고문9.7. 편집국장9.8. 편집국장 대리
10. 기자 처우 및 업무환경11. 비판12. 사건사고13. 안티조선 운동14. 기타
14.1. 박근혜정부와의 대립14.2. 경제면 및 주간 섹션, 기타 연재물
15. 자회사16. 공익재단17. 산하 기관18. 조선일보 페이스북19. 관련 인물20. 관련 문서

1. 개요

할 말은 하는 1등 신문 조선일보
- 조선일보 슬로건

대한민국의 조간 일간 신문. 보수 우파 성향의 신문사다. 1920년 일제강점기 중 문화 탄압 시기에 언론 탄압이 완화되었을 때 탄생했다. 1970년대 말 발행부수 1위를 기록한 이래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많으며[2], 따라서 신문사 가운데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언론매체다.[3] 특히 조선일보의 전성기는 1990년대로 꼽을 수 있겠는데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 자유화가 되고 지면 제한이 없어지자 의욕적인 확장에 나서서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넘겼고[4] 광고시장 확대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또한 민주화 직후로부터 1990년대 초중반기에 걸쳐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비토해서 反DJ 정서를 고착시키는 한 편, 김영삼을 적극적으로 편들어주고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영향력을 입증하며 승승장구했다.[5] 거기에다가 언론 통제도 누그러질 때라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덤. 물론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도 같이 200만부를 넘겼기 때문에 혼자 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6], 어쨌든 영향력으로나 매출액으로나 이때만큼의 전성기는 없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중앙일보와 신문사 사세 확장을 놓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하면서 한바탕 다투기도 했고, 사실 이 시절에도 조선일보가 능력있는 기자들을 많이 보유했던 것과는 별개로 오보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토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이인제를 놓고 이회창을 선택했고, 한 동안 이인제가 승승장구해서 지지율이 이회창을 크게 앞섰을때에도 중앙일보와 합작해서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했지만 IMF 외환위기가 한창 닥쳐왔던 때라서 표 분산을 완전히 막지 못한 채로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여전히 넘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기에 국민의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2001년부터는 동아일보도 보수 진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조중동 3사가 전부 이회창을 밀어주는 스탠스가 되었다.

절정에 이르렀던 2001년에는 발행부수가 248만부에 달했고,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을 당선시키지 못했지만 이후로 각종 이슈를 만들어내면서까지[7] 참여정부의 지지율을 끝끝내 하락시켰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는 박근혜를 밀어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TV조선도 50대 이상에게 꽤나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여전히 발행부수에 비해 보수층에 높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터넷 언론의 힘을 내다보고 상당히 이른 시기에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으며, 한자검정시험들을 후원하고 있고,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지령 30000호를 넘었다. 그러나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2010년대 전반기에 비해서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평이며,[8] 보수층에서도 상당수가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비토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극우파 인터넷 언론으로 갈아타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부터는 매체 영향력의 축소세나 취재력의 한계[9]가 뚜렷하게 관측되는데, 이는 종이신문 전체의 영향력 축소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발행부수나 유료부수 집계는 신문 업계에서는 이미 가짜 유료부수 만들기로 허수와 다름 없이 인식된 지도 오래이고,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123만 부와는 다르게 100만부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ABC 공사에서 발표하는 유료부수는 신문대금의 40%만 지불해도 유료부수 1부로 집계해 주고, 짧은 집계 실사 기간동안 신문 사측에서 보급소로 강제 밀어넣기 영업을 통해 유료부수를 부풀리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발표 자체의 공신력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종이신문의 구독률이 60% 가량 되던 2000년 경에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200만 부였는데, 종이신문 구독률이 9.9%로 떨어져 종이신문 구독 시장의 규모 자체가 과거에 비해 6분의 1로 쪼그라든 2017년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123만 부로 발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급격히 줄어든 가구 구독 대신 사업장 구독[10] 영업에 집중하여 유료부수 숫자를 방어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사업장 구독은 그 특성상 신문 독자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매체의 집중도와 독자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미약해 지므로, 줄어든 유료부수보다도 훨씬 더 매체 영향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중평. 물론 이러한 분석은 조선일보 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이신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노조는 미가맹.[11]

2. 사시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

3. 사옥

파일:external/ph.mediatoday.co.kr/55595_56576_528.jpg
공식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코리아나 호텔에 일부 사무실이 있다.[12] 현재의 모습은 2001년에 보수한 것이다.

광화문 정면에서 '조선일보' 네 글자를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ph.mediatoday.co.kr/127220_162520_255.jpg
코리아나 호텔 뒷편에 있는 별관.[13]

4. 사가

작사는 본사 사가제정위원회, 작곡은 김정길이 담당했으며, 1980년 2월에 제정되었다.
(1절)3.1 독립운동의 정기 받들어 / 망국의 설움을 딛고 일어나
온 겨레 깨우침에 앞장을 서서 / 이 땅의 슬기를 한데 모았네

(2절)민족의 외침을 글로 모아서 / 자유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 정의의 필봉은 꺾이지 않네

(후렴)민족지 조선일보 / 길이 빛나리

5. 역사

조선일보/역사 문서로.

6. 사주 일가

조선일보 가문 문서 참고.

7. 역대 임원

7.1. 상임고문

7.2. 명예회장

7.3. 명예사장

7.4. 회장

  • 방응모 (1948~1950)
  • 홍순필 (1950~1952)
  • 홍종인 (1959~1963)
  • 방일영 (1964~1993)
  • 방우영 (1993~2003)

7.5. 사장

7.6. 대표이사[16]

7.7. 대표이사 부사장

  • 홍준호 (2017~ )

7.8. 대표이사 전무

  • 방상훈 (1984~1988)
  • 변용식[17] (2010~2014)
  • 홍준호 (2015~2017)

7.9. 부사장

  • 예종석 (1920)
  • 신석우 (1924~1929)
  • 안재홍 (1929~1931)
  • 임경래 (1932~1933)
  • 방응모 (1933)
  • 이광수 (1933~1934)
  • 이훈구 (1940)
  • 홍종인 (1952~1958)
  • 방일영 (1954)
  • 최용진[18] (1954~1965)
  • 성인기 (1958~1960)
  • 유봉영 (1960~1971)
  • 류건호 (1980~1987)
  • 방상훈 (1988~1993)
  • 신동호 (1988~1989)
  • 안병훈 (1998~2003)
  • 방계성 (2004~2006)
  • 김문순 (2008~2010)
  • 방준오 (2017~ )

7.10. 부사장대우

8. 역대 법정등록인

8.1. 발행인

  • 예종석 (1920)
  • 최강 (1920)
  • 권병하 (1920~1921)
  • 김용희 (1921~1924)
  • 김동성 (1924~1926)
  • 안재홍 (1926~1928/1931~1932)
  • 신석우 (1928~1931)
  • 임경래 (1932~1933)
  • 방응모 (1933~1953)
  • 장기영 (1953~1954)
  • 방일영 (1954~1963)
  • 방우영 (1963~1984)
  • 류건호 (1984~1986)
  • 신동호 (1986~1989)
  • 방상훈 (1997~2006)
  • 김문순 (2006~2010)
  • 변용식 (2010~2014)
  • 홍준호 (2014~ )

8.2. 편집인

  • 최강 (1920)
  • 권병하 (1920~1921)
  • 김용희 (1921~1924)
  • 김동성 (1924~1926)
  • 민태원 (1926)
  • 백관수 (1926~1928)
  • 장지영 (1928~1929)
  • 류광렬 (1929~1931)
  • 안재홍 (1931~1932)
  • 임경래 (1932~1933)
  • 방응모 (1933~1953)
  • 장기영 (1953~1954)
  • 방일영 (1954~1963)
  • 유봉영 (1963~1968)
  • 류건호 (1968~1985)
  • 신동호 (1985~1986/1988~1989)
  • 안병훈 (1986~2002)
  • 방상훈 (1989~1990)
  • 김대중 (2002~2003)
  • 변용식 (2003~2010)
  • 강천석 (2010~2014)
  • 송희영 (2014~2016)
  • 홍준호 (2016~ )

8.3. 인쇄인

  • 서만순 (1920~1921)
  • 유방주 (1921~1924)
  • 김형광 (1924~1925)
  • 최익진 (1925~1926/1933~1938)
  • 이용구 (1926~1930)
  • 박창근 (1930~1933)
  • 최이복 (1938~1940)
  • 김한호 (1945~1953/1954~1966)
  • 방일영 (1953~1954)
  • 방우영 (1966~1984)
  • 류건호 (1984~1986)
  • 신동호 (1986~1989)
  • 방상훈 (1989~2006)
  • 김문순 (2006~2010)
  • 변용식 (2010~2015)
  • 홍준호 (2015~ )

9. 역대 주요 간부

9.1. 주필

  • 남궁훈 (1924)
  • 안재홍 (1924~?)
  • 김양수 (1925)
  • 신일용 (1932~1933[19])
  • 서춘 (1933~1937)
  • 이훈구 (1938~1946)
  • 이갑섭 (1946~1947)
  • 홍종인 (1948~1949/1950~1959)
  • 김석길 (1949~1950)
  • 유봉영 (1959~1961/1961~1965)
  • 부완혁 (1961)
  • 최석채 (1965~1971)
  • 선우휘 (1971~1980)
  • 신동호 (1985~1988)
  • 이규태 (1989~1990)
  • 김대중 (1990~2002)
  • 류근일 (2002~2003)
  • 강천석 (2006~2014)
  • 송희영 (2014~2016)
  • 양상훈 (2017~ )

9.2. 논설고문

9.3. 논설주간

9.4. 논설위원실장

  • 이규태 (1986~1988)
  • 류근일 (1989~1996)
  • 최청림 (1996~2001)
  • 강천석 (2002~2003)
  • 송희영 (2006~2010)
  • 양상훈 (2013~2014)
  • 박정훈 (2018~)

9.5. 수석논설위원

  • 오태진 (2005~2016)[20]
  • 한삼희 (2016~)

9.6. 편집고문

  • 민태원 (1926)
  • 이관용 (1932~1933)
  • 문일평 (1933~1938)
  • 이광수 (1935~1937)
  • 황의돈 (1940)
  • 김형원 (1946)
  • 홍종인 (1947~1948)
  • 김규택 (1949)
  • 유봉영 (1950~1959)
  • 윤석중 (1959~1969)

9.7. 편집국장

9.8. 편집국장 대리

  • 신석우 (1926)
  • 이선근 (1930~1932)
  • 권덕규 (1932)
  • 신동호 (1975)
  • 김윤환 (1975~1978)
  • 김용태 (1979~1980)
  • 최청림 (1992~1995)

10. 기자 처우 및 업무환경

대체로 임금도 많고 노동 강도가 세다고 알려지지만, 2017년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크레딧잡 조사 결과 조선일보 봉급은 6,875만 원으로 내일신문, 연합뉴스, 중앙일보에 이어 4위이다.

현재 사측과 조선일보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11. 비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사건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안티조선 운동

1998년 최장집 교수 사건을 계기로 잉태되어 2000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국내 진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안티조선 운동의 요주의 대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1969년 3선 개헌 시기부터 쭉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반민주주의적인 논조와 친독재정권, 기득권 세력 옹호 논조, 사실관계 왜곡보도와 허위보도, 짜깁기, 특정인 모욕주기 등 계속 보도하면서 이에 보다 못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펼쳤으며 이들은 조선일보 구독 거부 및 사절, 조선일보 신문 및 잡지 불매운동 등을 벌이며 안티조선 운동을 벌였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대상에도 올랐는데 조선일보 사측이 세무조사를 거부하면서 이러한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를 넘어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족벌언론 3인방이라 불리우는 다른 언론사에게도 불똥이 튀기도 하였다.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 때는 광화문에 집결했던 과격 폭력 시위자들에 의해서 본사 입구가 공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조선일보 간판이 부서지고 출입문 유리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또한 옆동네 동아일보도 과격 폭력시위자들에 의해 동아일보 깃발이 강제로 끌어내려져 밟힐 뻔도 했고, 동아일보 간판과 출입문이 박살나고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후에 한 청년이 조선일보 본사 건물과 함께 쓰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의 손님으로 가장하더니 조선일보 사옥 유리창을 깨부수고 조선일보는 폐간하라라는 현수막을 보이며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안티조선운동 자체는 현재는 거의 수그러든 상태이고,[23] 각 사이트들은 원래 있던 사람들이 계속 있는 경우가 다수이며, 운동가들 중 일부는 극우 반공주의 운동가(!?)로 전향한 상태.[24]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이 기성 종이신문 점유율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일보의 권위와 신뢰성[25]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히는데는 성공했으며 종이신문의 쇠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종이신문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는 조선일보를 보며 불쾌해하면서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인식하며 수용을 했고, 또한 1990년대 당시 대항매체였다고 할수있던 PC통신은 이용자수가 적을뿐만 아니라 비싼 전화요금과 느린 속도때문에 파급력이 제한적일수밖에 없었던데 반해 ADSL이 보급됨에 따라 인터넷을 값싸게 즐길수있게 되면서 다음, 야후, 네이버, 엠파스, 네이트등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종이신문의 발행부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가 안티조선운동이 절정에 달했을때였던데다가 시의적절하게(?) 상대적으로 親민주당계 리버럴 포지션이던 동아일보가 세무조사에 반발하며 보수진영으로 전환해버리기까지 하면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당대의)30대 이하 계층에게서 폭락해버렸고 또한 폭락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그대로 고착화 되면서 그 기간 동안 조선일보를 포함한 종이신문들의 신규독자층의 유입이 확 줄어드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와 다음 등의 대형 포털사이트를 통해 수많은 매체들과 실시간적인 교차 검증이 이루워지면서[26][27] 조선일보의 신뢰도가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즉, 1990년대에는 비판자들도 조선일보하면 그래도 1위 신문사인데...하면서 어느정도는 알아주었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좆선이 쓰레기 언론이나 좆선이 그럼 그렇지 뭘 바라냐는 반응이 확 많아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과거 조선일보에서도 간혹 시도했던 구독층 확장을 위한 중립적인 논조를 사실상 철회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보수층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논조로 흘러가서 이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현재 조선일보에서 구독충 확장대신 자신들의 지지자들의 입맛에 맞는 논조로 흘러가게 된 것은 조선일보의 신뢰성에 상처를 계속해서 내고 있는데 조선일보의 행보가 구독자들을 결집/유지하는데는 큰 효과를 보여주면서도 때문에 과거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조선일보의 편향성들이 더 크게, 계속해서 부각되는 부작용을 안겨주었기 때문.

그외에도 과거와 달리 조선일보를 경영하는 방씨일가의 지배 구조에 대한 의혹 제기들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과거엔 그냥 쉬쉬하면 되는 문제였고 과거엔 조선일보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방씨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언론 보도는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였다. 하지만 점차 조선일보를 소유/지배하는 방씨일가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속속히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방씨 일가 뿐 아니라 방씨 일가가 소유하는 조선일보도 같이 이미지가 실추되게 된다. 결국 장자연 자살 사건 의혹,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조선일보 사주 손녀의 운전기사 폭언 사건을 거치면서 사회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얻었다. 다만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도 상당하다. 조선일보와 방씨일가라면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것.

김어준이 조선일보의 안티테제로 만든 것이 바로 딴지일보이다. 그래서 딴지일보는 초창기부터 쭉 조선일보를 까는 기사가 굉장히 많다. 물론 둘의 규모나 수준을 비교하자면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14. 기타

과거에는 당시의 민족우파 지식인들(신석우, 이상재, 조만식, 안재홍, 홍명희[28], 한용운 등), 사회주의자(김단야, 김재봉, 박헌영, 신일용[29], 홍양명[30] 등),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양심적인 지식인들[31]이 참가하고 있었으나 가끔 정확성이 떨어지는 보도를 인용하고, 앞뒤를 짤라서 멀쩡한 학자[32]나 강사를 빨갱이로 만들기도 했었다.[33]

여느 신문들처럼 세로쓰기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1999년부터 가로쓰기로 편집되고 있다. 창간 당시부터 가로쓰기였던 한겨레신문을 제외하면 2000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신문이 가로쓰기로 전환했다.

조선일보(朝鮮日報)는 특히 한자(漢字) 표기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표제어, 중요한 단어, 중국일본고유명사(인명, 지명)는 한자로 표기하거나 한자를 병기하고 있다. 다른 신문도 표제어는 이렇게 처리하는 걸 왕왕 볼 수 있지만, 다른 신문에 비해 조선일보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또 連敗(연속패배)/連霸(연속우승)처럼 동음이의어 중에서도 뜻이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한자를 같이 쓴다.마치 한겨레가 알파벳마저 가독성을 해칠 정도로 한글표기를 고집하는 것[34]대척점에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신문은 그나마 한자 표기가 적은 편이다. 월간조선 등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상당수의 잡지들은 신문보다 독자층이 더욱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지간한 사람들의 인명부터 기사 제목까지 전부 풀 한자로 쓰여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바둑 관련 보도에서는 프로의 단수를 한자로 철두철미하게 표기(예 : 이세돌 九단)하는데 조선일보가 바둑대회도 주관하는 신문사다 보니 가능한 이야기다. 오히려 이것이 한국기원이 제시하는 표준 표기법이다.

서울대학교와 연합하여 TEPS를, 한국어문회를 후원하여 한자검정시험을 주관하고 있고 매년 춘천 마라톤을 개최하고 있다. 춘천마라톤 자체도 조선일보에서 어마어마하게 밀어주는 대회이며, 10월 대회 시즌이 오면 아예 마라톤 대회 전용으로 신문 섹션이 하나 늘어나기도 한다. 이 대회가 열리면 경춘선에 열차 증편까지[35] 시켜버리는 위업도 보여준다. 단순히 전문 선수만 뛰는 게 아니라 동호인이나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하기 때문.

데이터베이스 조선#이라고 해서, 1945년부터 현재까지의 기사들을 볼 수 있다. pdf 파일이고, 유료긴 하지만... 그래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36]에는 조선일보가 없으니까...

이규태 칼럼도 유명했다. 1983년부터 2006년까지 만 22년을 연재한 칼럼인데[37]칼럼이지만 실은 연재식 수필에 가까웠고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인기를 얻어서 독립적인 단행본이나 심지어 CD롬 형식의 원시적인 e북으로 나오기도 했다.(당시 1990년대였는데 이때만 해도 CD롬 형식 e북은 뭔가 신선해보이는 형식이었다) 얼마나 인기가 있냐면 해적판도 끼어있었을 정도. 나름대로 조선일보 독자층 사이에서 팬을 보유하고 있었던 이규태 논설고문은 2006년에 작고했다.

이 신문의 깨알 같은 점으로 신문 내 일러스트가 간결하면서도 특유의 그림체로 인지도가 높다. 조선일보의 신문 삽화를 담당하는 사람은 김도원이라는 화백으로, 보통 본명보다는 일러스트에 서명으로 남기는 'do'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 분은 1969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도안사로 일했고, 이후 1981년부터 데스크로 들어가 미술담당 부장, 부국장, 국장대우를 지내고 2004년에 은퇴한, 조선일보 짬밥만 50년 가까이 되는 분이다보니 김대중 고문[38]과 함께 간부급 대우를 받고 있다. 1980년대부터 금성사나 럭키금성의 광고 삽화 작가로도 활동하였다.

리빙 포인트라는 코너에서 간단한 생활의 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코너 특성상 내용이 상당히 짧은데, 리빙 포인트도 어쨌든 인터넷에 기사로 올라가기 때문에 한때 네티즌들의 "이런 것도 기사라고 올리니 기자 하기 참 쉽다"는 오해를 받았다.(...) 실제로 좋은 팁도 많이 올라오지만, 누구나 다 알 법한 팁[39]도 많이 올라오는 건 좀 문제. 어쨌든 리빙 포인트는 까인 만큼 인지도가 높아져서 패러디까지 되고 있다. 패러디 중 <음식이 싱거울 때 소금을 넣으면 좋다>는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그리고 이 리빙 포인트의 고정삽화 역시 김도원.

1953년부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를 주최하고 있으며 1974~1996년까지 기왕전, 1996년부터 LG배 조선일보 세계기왕전이라는 프로바둑기전을 주최하고 있다. 이외에도 1967년부터 경찰청과 함께 '청룡봉사상[40]'을, 1963년부터 청룡영화상을 시상중이다.

2010년 5월 4일부터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섹션을 오픈, 지속 연재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 및 CSR, NGO, 사회적경제 분야의 공익 소식을 다룬다.

2010년 10월 25일부터는 '신문은 선생님' 섹션에서 둘리 과학여행, 둘리 호기심 나라, 포켓몬 코리아 산하 포켓몬 교육연구팀이 제공하는 '포켓몬 한자왕'을 연재하고 있다.보러가기

2011년 5월 16일자부터는 5세대 포켓몬들이 등장하며, 글자 단위에서 단어 단위로 바뀌었다.

2012년 10월 26일자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포켓몬 사자성어도 연재한다. 포켓몬 극장판 개봉 기간에는 극장판에서 나오는 포켓몬들이 주로 나온다.

2014년 3월 10일자 801회차 때부터는 6세대 포켓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양경숙 전 라디오21대표가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이미지를 통해 <조선일보 Why>지면에 플랑드르 스칼렛이 등장#했다.

2012년 나주 성폭행 사건 보도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 큰 물의를 일으켰다. 피해자는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리면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공모전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문학상 같은 것도 여럿 후원한다. 동인문학상 같은 순문학부터 환상문학 쪽의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참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포털을 출시.

조선일보 온라인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그 시점에서 1주일 이전의 과거 기사나 프리미엄 조선의 기사를 온라인으로 조회하지 못한다.

조선일보는 일반 사건사고 면에서만큼은 조선일보가 가장 신뢰성 높은 매체에 속한다. 비정치적 기사로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했거나 보수 정권의 실세에 직접 타격이 가는 보도라면 진보 진영에서도 믿고 인용하는 편이며, 이슈가 되는 일반인을 인터뷰할 시에는 2차 검증도 매우 깐깐하게 진행한다. 조선일보의 공신력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며, 의외로 안티조선 세력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즉 조선일보는 기자의 능력만 놓고 보면 문과 출신 중에서 고시 합격자 빼고는 최고 스펙으로 대우받을 정도로 능력은 출중하다.

만평 외에 시사 내용을 가볍게 다루는 웹툰인 뉴스툰을 홈페이지에서 연재한다. 2016년까지는 악명 높은 윤서인조이라이드(웹툰)를 연재하는 등 매우 편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윤서인을 사실상 내쫒은 이후엔 치삼만화, 권권규, 고콜과 같은 병맛 개그로 유명한 만화가들이 연재하고, 내용 또한 조선일보치고는 비교적 중도적이면서 병맛을 잘 살린 작품들이 올라오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에게도 비교적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뉴스툰 자체의 댓글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권권규의 글을 볼 때 작가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모양.

영어영어 사이트, 일본어일본어 사이트, 중국어판중국어 사이트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왠지 한글판에서만 외국어판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다르다.

탈모 갤러리 선정 공식 금지언론이 되었다.(...) 2018년 6월 2일기사가 문제가 되었는데, 탈모 통계를 낼 때 움짤을 써가지고.(...)

2018년 9월에 조사된 가장 불신하는 언론 매체에서 25%로 1위에 등극했다.#[41]

14.1. 박근혜정부와의 대립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동남아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던
범서방파 구속 기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총 재산 1위 우병우,
재산 증가폭 1위 진경준)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정운호 게이트
(정운호, 홍만표, 최유정, 김수천)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신영자, 신동빈,
서미경, 이인원)
우병우 진경준 게이트
(진경준, 김정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
강만수, 최경환, 안종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조선일보, 이석수, 송희영)
박수환 게이트
(남상태, 박수환, 송희영)
성주 롯데골프장
THAAD 배치 확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박근혜 재판
이대 미래라이프대
반대 시위

이대 정유라 특혜(최경희)
다스 실소유주 논란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사건

국정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이명박 재판
인과관계의 직·간접적 연결고리만 간단히 기록됨.
전반적인 부분은 문서 참고.
}}} ||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문서 참조.

14.2. 경제면 및 주간 섹션, 기타 연재물

조선일보가 정치면과 논설면의 편집에서는 강경한 보수 우파 성향을 드러내 진보 좌파 성향의 독자들은 병적인 거부감을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면 편집만큼은 호평받는 편이다. 조선일보는 섹션 컨텐츠 면에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여타 국내 경쟁지들보다 발행 면수나 기사량 면에서 강점을 보인다. 국내 신문 중 섹션 보강 기조를 주도한 신문은 90년대 후반 중앙일보였지만 현재는 조선일보가 중앙일보보다 컨텐츠 면에서 풍부한 편이다.

한편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 진보 언론은 돈이 없다보니 이런 쪽에서는 확실히 빈약한 편이며 차라리 탐사보도 측면(경제면 포함)[42]에서 승부하는 언론으로,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 한다. 즉 누가 좋다 나쁘다를 판별할 수 없다는 말. 심지어는, 조선일보는 정치면과 오피니언, 사설만 빼면 나무랄 데가 없다는 의견[43]이 조선일보에 비우호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왔을 정도였다. 신문 앞머리를 차지하는 정치면과 마지막을 차지하는 논설의 서술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경제면과 다른 섹션이 마음에 들어서 구독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선 경제면은 조선일보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강력하게 승부하던 컨텐츠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거물급 경제신문과 경쟁하기 위한 방안으로 냈다고 한다. 기업들 입장에선 조선일보를 놓칠 수 없으니, 컨텐츠 자체는 확실히 빵빵한 편이다. 특히 경제섹션의 마지막 바로 앞(B7 또는 B11)면에 나오는 최신 과학기술 동향 소개, 취업전략 소개 등은 꽤 알찬 편. 특히 토요일의 Why 섹션은 저 많은 섹션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비결 덕분에 2010년대 중반의 MBC와 비교해서도 성공적으로 전 회사적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는다.[44]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도 평이 좋다. 이태리 유학파이고 조선일보 기자 경력만 15년이 넘는다.

아래는 요일별로 C섹션 이후에 나오는 컨텐츠 섹션이다.

다만, 저 섹션 말고도 특정 기업 하나에 대해 4면 또는 8면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보통 쓰레기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업계 용어로 advertorial section이라고 하는데 기사의 형식을 빌려서 사실상 광고를 실어주는 경우임을 저 단어로 명시하고 있다. 회사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경우라 만들긴 만드는데 품질 면에서 그렇게 공들이지는 않으니 독자로서도 슬쩍 보고 잘 읽지는 않게 되는 것. 대체로 갓 졸업한 기자가 연습용으로 만들며 객원기자란 명칭이 많이 보인다. 그나마 해당 업계 취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 지원 희망 회사나 경쟁사의 동향을 간략히 알기에는 좋다.(방산특집, 공기업 특집 등.)

다만 위에서 말한 각종 섹션들은 읽으라고 힘줘서 만든 티가 나기에(안티조선을 실력으로 물리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들인 기사가 많다) 확연히 차이가 나는 편. 아예 섹션만을 위한 팀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사람들은 일반 정치, 사회면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도 옛말이고 편집국 인원이 경영 효율화 명분으로 퇴직/유고 등 자연소멸분 만큼 100퍼센트 다 충원이 안 되기 시작하면서 거의 대부분 기자가 본지 기사를 쓰고 섹션면 기사도 쓴다. 본 부서는 경제부면서 경제면 조간 마감을 막고, 섹션 기사 쓸 일이 있으면 소속팀에서 또 기사를 쓰는 것. 여기서 노동 강도가 더 늘어나면 요즘은 예전보단 덜하지만 가끔 TV조선 패널로도 가는 경우가 있으니 결코 노동 부담이 작다곤 할 수 없다.

14.2.1. 월요일~금요일

조선경제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12면이 발행되고, 금요일은 8면을 발행한다. 경제 뉴스 외에 Stock & Money면을 고정 운용하며, TV프로그램 면도 여기에 편성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자 학습 연재물과 치매 예방 콘텐츠도 이 섹션에 실린다. 요일별로 특화된 콘텐츠 또한 정기적으로 수록되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4.2.1.1. 월요일
N : 세계를 보는 창 Now
이슈 & 트렌드
부동산
14.2.1.2. 화요일
14.2.1.3. 수요일
14.2.1.4. 목요일
14.2.1.5. 금요일

14.2.2. 월요일

건강 섹션 Health+ : 물론 특정 병원 광고성 기사도 있지만 정보성 기사도 많은 편이며 주 독자가 아무래도 노년층이 많아서 맞춤형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보관해서 어르신들께 선물해 드리면 좋아하실 수도.
에듀 섹션 : 특목고, 상위권 대학으로 가거나 갔던 학생들의 공부방법 등을 알려주는 정보. 다만 사교육 업체의 광고가 좀 많은 편이라 걸러 들어야 한다. 기존에 삽지되던 교육 섹션 맛있는 공부는 단종되었다.

14.2.3. 수요일

자동차섹션 Auto : 말 그대로 자동차에 대한 섹션이다. 최신 기술동향, 최신 발매 차량의 정보, 최신 기술 등을 소개하는 코너. 1개월에 1번 온다. 모터쇼라든가 큰 기사거리가 없을 때는 신차 홍보 기사를 쓰고, 박스 기사로 취재 기자의 탑승기를 울며 겨자먹기로 주로 붙이는데 기사 양을 늘리기 위해 아는 형용사를 총동원해 운전감과 탑승감을 서술하는 기자의 분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2018.04 기준) 월요일 경제면(B9~B10)에 격주로 실린다.

14.2.4. 금요일

금요섹션 friday : 구(舊) 주말 Magazine과 비슷하다. 국내 관광명소, 해외 여행기, 패션, 사회 통계, 문화, 음식칼럼 등이 일품이다. 홍여사의 별별다방으로 오세요의 인기가 좋은 편이며 네이버 뉴스에서 보면 댓글이 기본 500개다. 아주 많을 때는 3천 개가 넘는 경우도 있을 정도. 물론 댓글은 거의 일방향이다 이 홍여사의 정체는 일단은 회사 자체 대외비로 함구돼 있지만,(누구인지 명확하게 지면에서 안 밝히려고 한다) 기실 본사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특강에 홍여사가 출강하고 있으므로 궁금하면 신청해서 가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섹션이 인기를 얻으면서 어느새 글쓰기 강의도 시작한 것. 2018년 9월 21일자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하였다. 10월 27일자를 마지막으로 발행된 Why? 섹션과 합쳐 11월부터 새로운 형태로 발행한다고 한다.

Books : friday와 붙어 있으며 주로 서평, 책 추천, 인기 작가 인터뷰가 수록된다. - 토요일 A면으로 원상복귀 하였다.

14.2.5. 토요일

아무튼, 주말 : 금요섹션 friday와 토일섹션 Why?의 특장점을 하나로 모아, 매주 토요일 독자를 찾아가는 12면 짜리 주말 섹션이다. 아무튼, 주말 섹션의 도입에 따라, 11년 반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던 Why? 섹션은 종간됐다. 이로써 2007년 3월 중앙선데이 창간으로 개시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요일판 신문 전쟁은 11년 반만에 막을 내리고, 토일섹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3월 중앙일보가 토요일자 신문을 폐지하고 중앙선데이를 토요일에 대체 발행한 것을 기점으로 조선일보의 토일섹션은 사실상 그 수명을 다했던 것이다.

Weekly Biz : 별매품으로 발행되는 경제경영전문 격주간지. 별도 신청자에 국한하여, 무료 삽지하여 배달된다. 최근 10년 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미국의 대기업 CEO 인터뷰 등 거물급 인사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다. 무려 2007년도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단독 인터뷰도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2017년 3월부터 별도 신문으로 독립해서 2주에 1번 오는데 월 3천 원이라는 구독료를 따로 받는다. 이 섹션은 인터넷으로 제공되지 않으며 기존 구독자는 무료로 신청 가능하다.[45] 물론 한국 언론이 이런 분들과 단독으로 인터뷰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007년 도널드 트럼프 이런 스케일의 분들은 이건희 회장보다도 더욱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돈도 많이 벌 정도로 자국 언론 인터뷰도 응하기 쉽지 않은 분들이며, 그런 분들은 대한민국을 아직까지도 변방 취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선일보 정도나 되어야 단독 인터뷰를 따올 수 있다. 의외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학자의 인터뷰도 싣고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매우 강조하는 등, 경제경영학 원론적 이야기 수준을 넘어 한경오 수준의 진보적 논조가 많이 실려 있다. 2018년 2월 11일자의 경우 도시재생이 주 주제인데, 문재인 정부의 선거공약이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역점 사업인 도시재생의 타국 사례를 매우 옹호하는 논조로 실었다. 2018년 9월 1일에는 기사처럼 원전보다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를 옹호하는 기사도 실었다. 평소 조선일보가 도시재생, 탈원전 분야에 매우 소극적이고 적대적(?)이었음을 알고 본다면 한겨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른 기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Why? :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또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실리는 편이다. 또한 사회면의 사건 중 특별히 추리소설(?)적으로 풀어낼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심층 분석해 준다. 간장 두 종지라는 흑역사급 사건도 있었지만, 이희진이 한창 뜰 때 인터뷰를 했다가 사기꾼 같다는 점을 기자의 동물적 본능으로 알아채고[46] 오보를 절묘하게 피해간 쾌거도 있다. 앞장이 아닌 뒷장 섹션이라고 해서 얕잡아볼 섹션이 절대 아니다. 조선일보에는 기자가 작정하고 말아먹은 사례(송희영 주필 등)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3류 사기꾼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거짓말을 치려는 것까지 용인할 막장 신문사는 절대 아니다. 현재는 발행되지 않는다.

아래 2개는 하나의 섹션으로 온다. 각각 1~5면, 6~8면이다. 4면은 전면광고(...), 5면은 보통 IPTV 컨텐츠 소개면이다.
Tech & Biz : 4차 산업혁명 시대 최신 IT 기술동향을 소개하는 코너. 전자신문의 마이너 버전이라 보면 된다. 현재는 폐지됨.
과학섹션 iF (into the Future) : 이영완 기자가 기획한 과학섹션으로 최신 과학에 대한 소개를 주로 한다. 과학동아의 마이너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중력파같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을 여기 나올 정도로만 써도 매우 쉽게 쓴 편이라는 게 중론. 현재는 폐지된 섹션이며, 조선경제 섹션에 병합되었다.

14.2.6. 기타 연재물

신문은 선생님 :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신문 활용 교육(NIE, Newspaper in Education)을 실시하는 지면. 초중고 전/현직 교사가 주 집필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지면은 절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래의 독자인 아이들에게 종이 신문을 읽는 좋은(?) 습관을 들여 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매요일마다 각각 한국사(월), 자연과학(화), 세계사(수), 경제학(목), 예술(금) 분야의 소재 한 가지를 정해서 소개하며 한자, 영단어 어원 소개도 있다. 하단에는 최근 이슈가 된 내용의 소재 또는 희귀종 생물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알찬 내용이 많으며 토론란의 경우 중립적으로 양측의 입장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두근두근 뇌운동 : 치매예방을 위해 머리를 쓰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코너인데 어르신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신문 사진 잘라 붙이기, 숫자 계산하기 등이 꾸준히 나오고 이것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치매예방센터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14.2.6.1. 월요일
최보식이 만난 사람 : 인터뷰어 최보식의 인물 인터뷰 지면. 종래에 토일섹션 Why?에 연재되던 고정물이었으나, 수년 전 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피니언 앞면에 게재되고 있다. 최보식의 인터뷰 스타일은 인터뷰이에 반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인터뷰이의 심연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본다거나 손석희라도 되는 거야? 심층적인 정보와 논리를 독자 제위에 선사하려 노력한다고는 하는데, 여러가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인터뷰이 선정부터 다소 안일한데, 주로 원로[47]로 불릴 법한 노년층 전문가를 섭외하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상당히 고루하다. 고색창연한 느낌을 줄 때가 적지 않으며, 최보식도 이렇게 노쇠해져 가는 것인가 하는 의아함을 자아낼 때가 많다. 정년퇴임을 몇년 남겨두지 않은 최보식의 안일한 특성이 드러난다는 평가가 많고, 조선일보 지면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조로화와 결부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젊은 독자는 이제 포기하고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타깃으로 열독 문화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얼핏 위험한 발상이 엿보인다.

15. 자회사

이들을 통틀어 조선미디어그룹이라고 한다.

16. 공익재단

  • 방일영문화재단
  • 통일과나눔
  •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17. 산하 기관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북한정보 사이트 'NK조선' 운영.

18. 조선일보 페이스북

파일:uskL4G9.png
신문사 페이스북 좋아요 1위

과거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여타 다른 언론사 페이스북과 같이 뉴스 기사 링크만 제공하는 페이지였으나 카드뉴스 등 젊은 층을 타겟팅한 뉴스 컨텐츠를 앞세워 신문사 페이스북 중 이용자 수 1위를 달성하며 2015년 하반기 좋아요 수가 30만을 돌파했었다. 2017년 2월 현재 좋아요 수는 약 55만으로 기세가 폭발적으로 불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조페지기(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의 약 한 바가지 빨고 쓰는 드립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한 드립이 아니라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일침, 팩트폭행 수준이라 형식적인 언론의 틀을 깬다는 점에서 호감을 얻었다.

원래 조선일보 페이스북 좋아요는 기존 보수 성향의 페북 이용자들에 불과했으나 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가 기사 내용과 관련된 드립을 댓글로 올리는 등 일반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재미가 더 해지자 조선일보에 반감을 갖고 있던 유저들도 좋아요를 누르며 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드립으론 '김정은(수소돼지/하이드로겐 포크)', '안철수', '문재인', '김무성', '최경환' 등의 정치적인 관련된 대상을 이용하는 드립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이용자 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들까지 대부분 흡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팔로워 연령도 꽤 젊은 편참조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메갈리아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JTBC 뉴스룸에서 메갈 싫어하면 일베충이란 논조로 방송을 했다. 메갈 성향을 제외한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가 격렬한 비판을 가했는데 조페지기는 이를 두고 "JTBC덕분에 인터넷이 통일되었다"며 글을 썼고, 조선일보 내에서 그간 극렬 페미니즘에 일침을 가하던 이미지와 함께 호감을 얻어 민족정론지란 별명을 얻었다.

2016년에 조선일보 페이스북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등을 비판하지 말라고 다량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의견 감사합니다🙂 (반복)라고 무시하며 무지개 반사시전하는 것이 밈으로 자리잡았다.

2016년에 들어 더욱 심한데 청와대, 박근혜 정부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 청와대에서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할 정도. 보수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케이스.

페북을 관리하는 고정된 기자가 있는 것은 아니고, 기자들이 돌아가며 당번식으로 맡는다고 한다. 페북 관리자가 직접 "한 명이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을 했다.[52] 조선일보 입사시험에서 약 빤 지원자들을 좋아하는 듯. 이외에 조선일보 인스타그램에도 진출해 있으며, 같은 관리자가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트위터도 존재하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드립을 치지는 않는다. 페북 관리하는 기자중 한 명은 야갤러 내지는 야갤계 디씨 갤러로 보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 기자가 약을 무지하게 빤듯하다.#

2017년에 또 마약 한 건 터뜨리셨다(...). 마약의 현장 2017년 이후로는 주로 조선2보 페이지에서 드립친다. 바로가기

이후 한동안 뜸하다 2019년 지드래곤의 휴가 관련 논란에서 'GD, 이번에도 Goon Dae 논란'이라며 유머성 게시글 업로드를 다시 시작했다.

파일:조선일보드립력.jpg
김정은 컨셉의 유저가 댓글을 달자 자매 페이지인 조선2보와 콜라보로 드립을 쳤다.

또한 2019년 5월부터 관리자가 웃긴 댓글을 뽑아 시상하기도 하는 모습이다.

19. 관련 인물

  • 경영진 방씨 일가 (조선일보 가문)
  • 강천석 - 전직 조선일보 주필이자 조선일보 고위직 기자로 호남 출신이다.[53]
  • 김대식 -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집필한 외부 필진이다.
  • 김대중(기자)
  • 김재봉 -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1920년대 중반 조선일보 기자 활동. 조선공산당 창립 주역 중 한명.
  • 류근일 - 2000년대 초반 논설위원. 소위 운동권에서 전향한 386세대 언론인 중 인지도가 제법 높다. 조선일보 퇴사 후에는 뉴데일리 고문으로 활동 중.
  • 리영희 - 1960년대 조선일보 외신부에서 기자로 활동.
  • 선우휘 - 1960년대~80년대 조선일보 주필 활동.
    • 선우정 - 선우휘의 아들. 現 사회부장. 일본 특파원, 논설위원역임
  • 송병준 - 친일파. 1922년~1924년 초반 조선일보 사장.
  • 신석우 - 독립운동가. 1924년 조선일보 경영권 인수.
  • 안재홍 - 독립운동가. 1920년대 중반~1931년까지 조선일보 사장.
  • 양희원 - "양해원의 말글 탐험" 작가. 여자 같지만 나이 지긋한 남성이다.
  • 예종석 - 조선일보 창립자.
  • 우종창 - 前 월간조선 기자. 이한우와 더불어 최장집을 비난하는는데 앞장섰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밀고있다.
  • 유광렬 -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
  • 이규태
  • 이상재 - 독립운동가. 1924년~1927년 시기 조선일보 사장.
  • 이광수 - 친일파. 소설 연재 및 부사장 역임(방응모 사장 시기). 당시 민족개조론을 비판하던 사람 중 하나인 신일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기 조선일보 논설주필로 활동한 조선일보맨이었다.
  • 이한우(기자) - 베른하르트 크반트와는 무관. 월간조선의 우종창과 더불어 최장집을 비방하는 기사의 주도자이기도 하였다.
  • 이도형 - 80년대의 기자. 퇴사 후 한국논단 창립. 항목 참조.
  • 윤희영 - 매주 목요일 날씨면 위의 코너인 "윤희영의 news english"를 집필한다. 여자인 것 같지만. 나이 지긋한 중장년 남자다.
  • 조갑제 - 20세기 말의 조선일보맨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높으며 기자정신도 인정받는 편이지만 그만큼 어그로도 많이 끌던 인물. 월간조선으로 옮겨 활동하다 경질 후 조갑제닷컴으로 독립.
  • 조만식 - 독립운동가. 1932년~1933년 조선일보 사장.
  • 최병렬
  • 최우석 -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독립운동가 최능진의 손자.
  • 최보식 - 매주 월요일 a27면에 "최보식이 만난 사람들" 집필. 주로 최근 이슈에 연관된 사람,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만남. 그 역시 태블릿PC 조작설에 대하여 호의적인 논설을 낸 바가 있다.
  • 송희영 - 조선일보 전 주필. 대우조선 로비 의혹으로 모든 직에서 사퇴했다.
  • 양상훈 - 조선일보 편집국장 논설실장 논설주간 등을 역임했다. 송희영 前 주필의 사임 이후 실질적으로 주필을 담당. 2017년 3월 주필겸 이사로 승진.
  • 허문도
  • 홍사중 - 1990년대 '홍사중 칼럼'으로 애독자들에게 이름을 날림. 논설고문 역임.

20. 관련 문서


[1] 194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폐간, 1945년 해방 이후 복간[2] 한국 ABC협회 기준 2016년 유료부수 125만부, 23신문사 중 1위[3] 자극적인 제목과 카더라통신으로 추측성 기사와,신원미상 관계자 인터뷰 등으로 인해 노령층을 제외한 독자들이 기피하는 1등 신문이다. 기자들을 기레기취급과 언론신뢰도 꼴지를 만드는데에 단단히 한 몫 한 언론지다.[4] 감안할 사항은 온갖 사은품에 전단지수준으로 뿌려대서 유지한다는 것이다. 실상 대한민국 언론지는 좌파우파를 떠나서 구독자가 아닌 기업광고료로 먹고 살다보니 1년치 구독료 공짜도 가능할 정도로 막 뿌려대는 수준[5] 조선일보는 민주화 이후로도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논조를 보여왔고, 김대중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내놓았지만 김영삼과는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김영삼은 언론을 대하는 데 능숙했고, 또 그가 이끄는 상도동계는 민주화 진영임에도 조선일보와 유사한 보수 우파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6] 여기서 조선일보가 안보를 내세우는 성향의 안보보수, 중앙일보는 언론 통폐합의 영향으로 군부에게 부정적이기는 하나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을 걷는 이른바 경제보수 노선을 걸었으며, 동아일보는 상대적으로 민주당을 밀어주는 개혁 성향의 신문이었다. 한국일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여러 색채가 섞인 신문이었고[7] 별볼일 없는 일로도 참여정부를 까댔다. 물론 보수층들에게는 잘 먹혔으며 진보언론도 참여정부를 깠던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효과는 배가 되었다.[8] 즉, 영향력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주요 언론사들이 안철수를 밀어주었지만 정작 안철수가 토론회에서 초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3위에 그치면서 언론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반증해버린 셈이 되었고 그 덕택에 자연스레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가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6%, 2.3%파이로 석패한 것이라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서 보수언론-진보언론 상당수가 안철수를 밀어주었음에도 3위에 그친 것은 영향력 과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뼈아픈 타격일 수밖에 없다.[9] 박근혜 정부 초반만 해도 채동욱 검찰총장 낙마 사건처럼, 청와대 등의 보수 핵심이나 권력기관으로부터 곧바로 정보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이는 보도가 간혹 있었으나,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로 정권 교체된 후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10] 회사, 사무실, 가게, 관공서 등[11]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민주노총 산하에서 산별노조화되면서 탈퇴.[12] 코리아나 호텔은 방상훈 회장의 동생인 방용훈 사장이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 회사인 셈.[13] 호텔 옆길에서 성공회 성당을 지나 좀 올라가면 있다. 실제 사옥이라고는 하지만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조선일보 미술관이고, 실제로 2층 전시실을 중심으로 전시 및 대관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건물 외에도 별관 형식으로 주변 일방통행로에 여러 건물이 있고 각종 부서들이 여기저기 세들어 있는 형식. 편집국은 미술관 3~4층 TV 조선이 5층을 사용하고 있다.[14] 당시 천일은행장.[15] 등기상 재직일.[16] 사장 등 겸직자 제외.[17] 이후 조선방송(TV조선) 사장 역임.[18] 이후 학교법인 동방문화학원 이사장 역임. 1976년 작고.[19] 임경래 발간 시절.[20] 이후 TV조선 보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21] 이후 디지틀조선일보 초대 사장을 8년 지내고 2005년 극우언론인 뉴데일리를 창간했다. 딸인 인지연은 극우정당인 대한애국당 정책위 의장을 맡고 있다.[22]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입각하며 사임[23] 하지만 제1 언론사라는 브랜드는 어디 간 것이 아니라서 심각한 사건을 터뜨리고자 언론에 제보하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은 조선일보이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그마저도 다른 언론사들에게 상당히 뺏기고 있다. 다만 이는 조선일보만의 탓이 아니라 다른 중량감 있는 기존의 거대 언론사들도 겪는 문제이다.(지상파 방송국의 상황은 조선일보보다도 더 심각하다.) 사실 이러한 것은 sns에서 활동하는 타 언론의 다양한 정보 획득 통로들이 새로 생겨난 것과 자국의 이슈에 대해 외국의 언론을 참조하기 시작한 것등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24]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뉴라이트 중 상당수가 과거 NL 출신이다.[25] 전 조선일보 회장인 방우영 회장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 조선일보의 정/관/언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26] 물론 검색광고료 획득을 위한 기사 낚시질이나 광고성 기사 범람같은 폐헤도 극심하기는 했지만 실시간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해졌다는 면에서는 90년대에 비해 진보된것이기는 하다. 양날의 검[27] 온라인의 효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 조선일보의 과거 보도 기사들과 논조들이 알려지고 공유되면서 과거 조선일보에서 올렸던 오보들과 편향적인 기사들이 계속해서 재발굴되면서 현대는 물론 과거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위상을 차지했던 조선일보의 과거 행보에 대해 비판적/회의적인 시각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는 조선일보에 대한 신뢰 하락을 넘어 조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28]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홍명희가 '월북자'로 북한에서 고위직을 두루겸했다는것을 근거로 그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어디까지나 우파 민족주의 인사로 분류한다.출처# 실제 일제강점기때 자체만 놓고 행보를 보면 사회주의에는 호의적으로 바라봤던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었고..[29] 신일용은 20년대 조선일보 기자 활동했을 당시 굉장히 급진적인 공산주의자였으나, 1945년 해방정국 시기에는 우파 인사로 활동했었다.[30] 20년대에는 조선공산당에 가담했을 정도로 확실한 공산주의자로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었지만, 30년대 가면서 조선일보의 노선따라 친일파로 변절했다.[31] 예를 들어 리영희송건호. 그리고 70년대 조선투위에 활동했던 기자들.[32] 대표적으로 김영삼 정부 때 통일원 장관 지냈던 한완상 교수와 최장집 교수를 피해자로 들 수 있겠다. 최장집은 오래 전부터 조선일보로부터 '좋은 글을 많이 쓴다'고 호평을 받아왔던 학자였으나,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장집 교수가 조선일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돕기 위해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자 조선일보가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그의 사상 검증을 시도하였는데, 주로 문제 삼은 것은 그의 한국전쟁 관련 논문이었다. 그것은 중세의 마녀사냥, 1950년대초 미국에서 나타난 매카시즘과 아주 흡사한 수준급으로 이른바 '지식폭력'을 가했다.[33] 대표적인 예로 EBS의 최태성이 있다.[34] 가독성에 대한 비판이 간혹 들어온다.[35] 경춘선 전철 개통 전에 무궁화호가 다니던 시절에는 마라톤 당일날 무궁화호 증편이 있었을 정도였다. 전철화되고 나서도 ITX-청춘이 증편된 적도 있었다고.[36] 현재는 1999년까지 업데이트되었다.[37] 칼럼이 쓰이는 동안 이규태 기자는 논설위원, 논설위원실장,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 순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38] 2003년까지 주필로 있다가, 은퇴하고서 고문으로 물러난다. 조선일보 주식을 3퍼센트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39] 전설로 남을 '맥주를 차게 마시려면 얼음을 넣으면 좋다'(...)[40] 여담이지만 청룡봉사상은 포상금과 1계급 특진이 따라오는 상이라 경찰이 조선일보에 묶이는 이유가 아니냔 의혹을 받고 있다.#[41] 좌파 성향의 매체 시사IN에서 조사한 것이라 알아서 거르고 보길 권장. 애초에 이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 1위부터 한겨레다(...) 그 다음은 조선일보[42] 한겨레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빨리 예측한 성과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진보 언론의 특화 분야다.[43] 지금은 퇴사한 이동진 기자가 영화 평론을 하던 시절부터 있던 이야기다. 안티조선운동의 리즈 시절인데, 이동진 기자의 영화 평론은 그 당시 조선일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인기였다.[44] 안티조선 운동 자체가 내부에서 몰락한 탓도 있지만, 조선일보의 경제면 보강, 섹션 보강은 우회적으로 다사다난한 회사 분위기를 잘 이겨냈다. 특히 기자들을 어처구니없게 내보내는 치사하고 더러운 짓은 안 했다. 이게 MBC와의 결정적 차이점. 안티조선의 리즈 시절, 조선일보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동진 기자도 외압이 아닌 본인 자의로 퇴직한 것이다. 영화 기사 쓰려니 신문이 너무 좁다는 이유로(...)[45] https://members.chosun.com/subscription/appendweeklybiz.jsp[46] 부장급 등 데스크의 결재를 받아서 이희진을 인터뷰했는데 막상 실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가 냄새가 난다고 하고 기사로 보내지 않았다.[47] 일반적인 원로라기 보다는 조선일보 기준의 원로인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원로 계층보다도 더 연배가 높은 노년층이 주로 등장한다.[48] 경제전문지로 조선일보사에서 야심차게 성장시키고 있는 회사. 출범이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뚜렷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후계자로 점쳐지는 방정오(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씨가 대표이사로 오면서 주목받고 있다.[49] 코스닥 상장기업. 의외로 디지탈이나 디지털이 아니다.[50] 여기서 쓰는 기사들은 항상 K리그 클래식을 K-리그라고 쓰는 특징이 있었다. 많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욕먹는 이유. 그러나 이것도 2015년부터 정상적으로 K리그라고 표기하기 시작하면서 과거형이 되었다. 온게임넷에서 진행했던 스타리그의 공동 주관사이기도 했다.[51] 방상훈 회장의 동생인 방용훈이 사장이며, 조선일보와 붙어있고 사무실을 공유한다.[52] 사실 대부분의 기업, 기관 SNS는 고정된 관리자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계정을 여러 인원이 공유해서 관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53] 이전 서술에서 흔치 않은 호남 출신 고위직이라고 했는데, 조선일보 내에 호남 출신 고위직은 의외로 적지 않은 편이다. 이규태 칼럼으로 유명한 이규태 기자는 물론, 사내 실세로까지 소문났던 송희영도 호남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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