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8 17:05:03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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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棋院 / Korea Baduk Association 또는 HanKuk Kiw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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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2018년 지도부 퇴진4. 디지털5. 연구생, 입단, 승단법6. 사건사고
6.1. 조상연 4단 제명6.2. 2017 바둑대상 투표조작 의혹6.3. 구조조정6.4. 미투 폭로
6.4.1. 유창혁 九단 성희롱 발언6.4.2. 김성룡 성폭행 의혹 폭로
6.5.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

1. 개요

대한민국의 바둑협회.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로 210 (홍익동)에 있다.(상왕십리역에서 제일 가깝다) 2017년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로 이전 예정이였으나 2018년 7월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2]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따로 존재하고 있으며,[3] 한동안 이 두 단체가 반목이 극심했으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한국기원 총재와 바둑협회 의장을 겸직하게 되면서 조금씩 반목이 줄어 들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8월, 새 대한바둑협회장에서 홍석현이 낙선하고, 신상철(일요신문 사장)이 선출됐다. 신상철 회장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분리를 공약으로 내건 상황이기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관련기사 2017년부터 다시 갈등이 폭발했다. K바둑 건으로도 서로 싸우고 있고.

원래 계획은 한국기원을 대한바둑협회로 명칭변경 하는 것이었는데, 한국기원을 설립했던 조남철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갈지언정,한국기원 간판을 내릴 수 없다."라며, 대한바둑협회 명칭을 절대 반대하였다. 관련기사 이 때문에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한국기원 아마추어부를 대한바둑협회로 분리하여 아마추어 전문 협회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후폭풍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양 단체가 10년 넘게 싸우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어찌 보면 한국 바둑에 지대한 공헌을 한 조남철의 큰 오점인 셈.

참고로, 원칙적으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은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하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대한체육회에 소속된 단체는 한국기원이 아니라 대한바둑협회이다. 그래서, '프로 바둑기사'는 한국기원 소속이며, 아마추어 바둑기사는 대한바둑협회의 회원인 이원화된 구조로 운영된다. 이는 프로 야구(KBO) vs 아마추어 야구(KBSA)[4], 프로 리그를 운영하는 스포츠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두 단체가 적절하게 협약을 맺으며 올림픽같은 대회에 프로 선수가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의 경우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참가국 각 나라의 프로기사들이 출전하였다.

2. 역사

재단법인 한국기원(韓國棋院)은 바둑문화의 창달과 보급, 전문기사의 기예 향상을 목적으로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체로 공식 출범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현대바둑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한국기원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 1945년 11월이 원년이다. 실제적으로 한국기원의 원년은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趙南哲)의 주도로 한성기원(漢城棋院)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한성기원이 설립되기 전에는 우리 고유의 순장바둑과 19세기 말 일본에서 들어온 근대바둑이 혼재 양상을 보였다. 이즈음 일본에 건너가 체계적인 바둑수업을 한 조남철이 1941년 初단 면장을 받고 1943년 귀국한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의 간판을 걸고 바둑보급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성기원은 공동 조직으로 프로기사제도 모색, 대회창설 등 기초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바둑보급에 전력, 오늘날 한국기원의 모태가 됐다. 이후 한성기원은 1948년 4월 조선기원으로 1949년 7월 대한기원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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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원은 1950년 6월 20일 최초의 단위결정시합을 개최, 조남철 三단과 함께 민중식(閔仲植), 이석홍(李錫泓), 유진하(柳鎭河), 김봉선(金鳳善) 등 13명의 初단이 탄생한다. 도중 한국전쟁이 터져 기사들은 뿔뿔이흩어지고 부산에서 피난기원을 운영하던 대한기원은 환도(還都)하여 1953년 12월 31일 명동에 터전을 잡는다. 마침내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창립되고 초대총재에 윤호병씨, 초대이사장에 장경근(張暻根)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추대돼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바둑보급이 시작됐다. 한국기원은 프로기사제도를 확립하고 바둑인구의 저변 확대로 내실을 다지며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기원은 1954년 4월 10일 제1회 승단대회를 개최하고 6월 20일 제1회 입단대회를 개최했다. 1955년 3월에는 최초의 국제공식시합인 제1회 한/중 위기교류전[5]을 열었다. 조남철, 김봉선, 민영현(閔永鉉), 장국원(張國園)이 출전하여 16대 8로 압승을 거뒀다. 1956년에는 동아일보 주최로 국내 최초의 프로기전인 국수 제1위전(국수전의 전신)을 창설했다.

1957년 세계일보 주최 국수순위전, 1958년 경향신문 주최 왕좌전, 1959년 서울신문 주최 오강전(지금의 패왕전), 부산일보 주최 최고위전이 잇따라 창설되면서 이들 각종 바둑대회를 주관한 한국기원은 프로기전의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한국기원은 1967년 8월 월간『기계』(棋界, 월간『바둑』의 전신)를 창간, 바둑출판사업을 통해 바둑문화 창달을 모색하고 1968년 8월 종로 관철동에 한국바둑의 터전인 회관을 건립한다. 1969년 3월에는 이후락(李厚洛) 총재가 취임하고 1970년 4월 재단법인체로 바꾸게 된다. 한국기원은 1974년 10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기계파동'이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점진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이러한 제도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국바둑은 초대국수에 오른 조남철에 이어 김인(金寅), 조훈현(曺薰鉉), 서봉수(徐奉洙), 이창호(李昌鎬), 이세돌(李世乭) 등 국수산맥이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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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9세의 서봉수 二단이 한국바둑의 대명사 조남철 八단을 꺾고 제4기 명인위를 쟁취, 한국바둑사에 첫 혁명을 일으킨 이래 전관 제패 3회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조훈현 九단이 1989년 제1회 응씨(應氏)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한국바둑은 세계를 제패하며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한편 1962년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난 조치훈(趙治勳) 九단은 일본바둑사상 초유의 그랜드슬램(7대기전을 한 차례씩 석권)을 달성하고 1996년에는 일본 3대 메이저타이틀인 기성(棋聖), 명인(名人), 본인방(本因坊)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의 위업을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일본 일인자로 재도약했다.

또한 천재소년기사 이창호 九단의 등장은 세계바둑사의 혁명이었다. 1989년 제8기 바둑왕전 우승으로 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 연간 최다대국(111국) 신기록, 1990년 최다연승(41연승) 신기록,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 우승으로 최연소 세계챔프 등극, 1994년 최다관왕(13관왕) 신기록, 연간 최다승(90승) 신기록, 사이클링히트(16개기전 한 차례씩 석권) 기록, 1996년 국제대회 5관왕 등 각종 바둑역사를 새로 쓰며 세계바둑 역사상 최강의 기사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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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을 토대로 한국바둑은 1993, 1994년 2년 연속 세계바둑천하통일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제1회 진로배 우승을 시작으로 응씨배, 동양증권배, 후지쯔배 등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 8연속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와 함께 한국은 동양증권배, 진로배, LG배, 삼성화재배 등 세계대회를 창설, 세계 속에 위상을 드높히며 찬란한 바둑의 꽃을 피웠다.

2015년 09월 한국기원과 화성시가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는 MOU를 체결함에 따라 홍익동에 위치한 본사도 화성시로 이전할 계획이 있어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건물을 기증해 1994년부터 시작된 홍익동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또한 2016년부터 CJ E&M으로 부터 바둑TV를 인수하여 바둑TV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월간바둑을 매달 발간하고 있는데 표지 디자인이 영 안구테러급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나마, 2016년 잡지 표지를 보면 그럭저럭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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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화성시 동탄신도시로 이전 협약을 했으나, 동탄1신도시에서 동탄2신도시로 위치가 변경되면서 동탄2신도시 분양자들한테 반발을 맞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2018년에 처음으로 실시설계비화성시 예산에 잡혔기때문에, 빨라야 2019년 착공, 2022년 준공이다.

이번 한국기원 동탄 이전 사업 때 일본기원유현의 방(幽玄の間)과 같은 역사성 있는 특별대국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목진석 九단, 온소진 八단 등 일본을 방문한 한국 바둑기사들이 전부 요청하는 사항 중 하나.

3. 2018년 지도부 퇴진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으로 계속 흔들리던 홍석현 중앙일보 체제가 2018년 11월부로 전격적인 퇴진을 맞았다.

홍석현 총재, 송필호 부총재, 유창혁 사무총장, 그 외 국장급 7명 등 중앙일보계 한국기원 지도부가 총사퇴한 것.

지도부가 전원 동반 퇴진하자, 2018년 12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고, 김영삼 九단을 사무총장으로 선임하는 등 13인 비대위 체제에 들어갔다. 2019년 3월 이전까지 새 지도부를 선출할 계획이나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한국바둑리그에서 팀이 줄줄이 빠져나가는 등 안 그래도 부족했던 스폰서가 더 빠져나가고 있다.

이후 2019년 5월 27일 임채정 전 국회의장을 제20대 한국기원 총재로 추대하면서 지도부 공백사태는 일단락이 되었다.#

4. 디지털

한국기원은 일본기원갈라파고스화되자 반면교사로 삼아 여러가지 노력을 하긴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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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때 전자초시계가 도입되자 한국기원에서도 재빨리 도입하여 전자초시계로 갈아탔고, 2018년에는 손근기 프로기사회장 주도로 아예 자동기록시스템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동기록시스템 도입은 사실상 대한바둑협회가 주도한것으로, 내셔널바둑리그에서 시범운영되고 있다.

5. 연구생, 입단, 승단법

기사(바둑) 문서 참조.

6. 사건사고

6.1. 조상연 4단 제명

1986년 한국기원은 상임이사회를 열어 조치훈 九단의 형인 조상연 四단을 제명했다. 제명 이유는 <바둑세계>라는 바둑 전문잡지를 발간해 한국기원의 수입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자 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 당시 국내에 있던 바둑전문 잡지는 한국기원에서 발간하는 <월간바둑>뿐이었는데 경쟁잡지를 만들어 한국기원에 큰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6]

그리고 24년이 지난 2015년 고희를 앞둔 조상연 四단은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바둑 보급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기원에 복직을 신청했다. 그러나 한국기원은 기사회의 투표로 찬성 76표 반대 46표 기권 32표로 전체투표자의 2/3을 넘지 못해 복직요청을 기각했다.

6.2. 2017 바둑대상 투표조작 의혹

2017년 한국기원과 사이버오로의 최대 사건사고. 하지만 기사화되지 않고 있다.

6.3. 구조조정

2017년 말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중인데, 구조조정 방식이 명예퇴직 문서에 있는 각종 악랄한 방법들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

6.4. 미투 폭로

2018년 4월 11일 한국기원 성범죄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자 프로 바둑기사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하였다. 기사 성추행, 성폭행 의혹이 다량 터졌으며, 여자화장실 몰카도 폭로되었다. 일요신문의 기사에는 실명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기원 내부 전산망과 페이스북 프로 바둑기사들 페이지를 통해 실명이 거론되었고, 해당 혐의자들은 혐의를 인정하였다.

6.4.1. 유창혁 九단 성희롱 발언

유창혁 九단이 2015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던 시절 성차별,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따라 공개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명색이 現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일요신문 취재에 의하면 유 총장은 과거 여자 기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골프 선수들은 성형수술을 통해 예뻐진다. (여자 기사들도) 좀 더 꾸미고 다녀라”라든가 “위리쥔(대만 출신 여자기사)은 너무 예뻐서 뽑았고, 마리아(러시아 출신 여자기사[7])는 못 생겨서 안 되고…”라는 등의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기사

6.4.2. 김성룡 성폭행 의혹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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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6일, 한국기원 내부 전산망을 통해 김성룡 九단이 한국기원 소속 외국인 여자 프로 바둑기사성폭행했다는 의혹이 폭로되었다. 원본 글에서는 김성룡의 실명을 공개했으며, 일요신문을 통해 2018년 4월 17일 기사화될 때는 김성룡이라는 이름은 복자 처리했다. 하지만, 일요신문 기사에서 "유명 프로기사이자 방송 해설자, 한국바둑리그 감독, 한국기원 홍보이사[8] 등 바둑계 다양한 분야에서 맹렬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K 9단"이라고 하여 이름만 복자처리했지 김성룡임을 드러냈다. 기사

이에 한국기원에서는 긴급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하였다. 기사

2018년 4월 19일 동료 여자기사들이 증언에 나서고, 2018년 4월 21일 여자 바둑기사 50여명이 동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게임 바둑 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포스코켐텍 측에서 김성룡을 전격 해고했다.

2018년 4월 24일 프로기사회 대의원회에서 김성룡 제명을 결정했다. 기사 한국기원 이사회 의결과 프로기사회 전체회의에서 통과하면 김성룡 제명이 확정된다. 한국기원에서는 김성룡을 홍보이사에서 해임했다.

2018년 7월 10일 김성룡의 재심청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영구제명을 확정했다.

6.5.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

프로 바둑기사들이 한국바둑리그삼성화재배, LG배 등 국제대회에서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일회용품을 사용한다며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

2018년 들어서 중국쓰레기 수입 거부로 인한 쓰레기 대란을 전 세계적으로 치르고 있는 현재, 한국기원에서 프로 바둑기사들의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고 머그컵이나 텀블러와 같은 재사용/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쓰도록 유도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 한중일 내에서 표기할 때는 HanKuk Kiwon 표기, 즉 H.K.K로 표기하고, 그 외의 나라에 한국기원을 소개할 때는 KBA로 표기한다.[2] 동탄신도시 구역 중 '노작로 10'이라는 새 주소에 세계바둑스포츠컴플렉스가 건립할 예정이기도 하고. 2017 한국바둑대축제가 이곳에서 열렸다. 2018년 지방선거로 화성시장이 교체되면서 이전 계획이 틀어졌다는 소문이 있다.[3] 대한바둑협회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사단법인인데, 한국기원은 의외이게도 재단법인이다.[4] 축구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의 아마추어 축구만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축구를 관할한다. 프로축구 선수들도 한국 국적이면 당연히 대한축구협회 등록 선수다. 외국인 선수라면 그 나라 축구협회 등록 선수고. 피파도 마찬가지. 세계의 아마추어 축구만 관할하는 것이 아니다.[5] 이때의 중국은 '대만'을 의미한다.[6] 참고로 <바둑세계>는 2010년 9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7] 사실 우크라이나 출신이다.[8] 한국기원 홍보이사는 김성룡 九단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