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12

덤(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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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6.5집으로 진행하는 한국바둑리그의 계가 모습
이 장면에서 흑은 덤에 걸린 상황이다.[1]

1. 개요2. 변천
2.1. 1970년대 이후의 정착
3. 중국식 덤4. 여담

1. 개요

바둑에서는 원칙적으로 '흑'돌을 잡은 사람이 먼저 두게 된다. 그런데 바둑을 비롯한 대부분의 턴제 게임에서는 먼저 둔다는 것이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런 현상을 바둑 용어로 '선착의 효'라고 한다. 먼저 두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그냥 두면 유리한 흑을 하수가 잡고, 그냥 두면 불리한 백을 상수가 쥐는 전통도 이런 이유로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동등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대국할 때 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백'돌을 잡은 사람에게 일정한 만큼의 점수를 더 주는 것[2]을 '덤'이라고 한다.

2. 변천

시대에 따라서 이 덤은 계속 변화해 왔는데, 과거에는 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기에 비슷한 기력의 경우 대부분 흑이 유리했다.[3] 당시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공정한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흑백을 번갈아가면서 두되 10번기, 30번기 등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물론 장고대국+십수판을 반복하면 한번의 승부에도 최소 몇 개월이 걸리지만, 근대 이전엔 타이틀전이란 개념이 없어서 단기간에 승부를 가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 흑과 백을 번갈아가면서 두는 호선, 3번 중 하수가 2번 흑, 1번 백을 두는 선상선(先相先: 순서는 흑, 백, 흑), 하수가 무조건 흑을 잡는 정선(定先), 하수가 정선 두 번에 2점 접바둑 한 번인 선이선(先二先: 순서는 정선, 2점, 정선), 선을 겸하는 접바둑 등의 개념도 덤이 없는 상황에서 흑을 잡는 비율 조절을 통해 급수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생겨난 개념이었다.[4] 다만 현대 바둑에서 호선(互先: 맞바둑)은 덤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덤의 도입은 비교적 현대의 일로, 1939년 시작된 일본의 혼인보전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이 당시의 덤은 4집이었으나 이내 무승부를 방지하기 위해 반 집을 추가했다.[5] 바둑을 두면 매 판마다 대국료가 나오는데 생계가 곤궁한 두 기사가 서로 짜고 몇 번씩 무승부를 내서 대국료를 많이 타간 사건이 반집을 도입하는 데 발단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 왜 처음에 정한 덤이 4집(반)이었을까? 19세기 중엽 일본에서 편바둑[6]을 둘 때 5집 가량의 덤을 매기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1:1 대국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낯선 것을 들여올 때 조심하는 마음가짐이나 1950년대에도 남아 있던 '덤이 없어야 바둑'이라는 거부감 등으로 인해 1집이 줄어들어 4집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7]

2.1. 1970년대 이후의 정착

이후 1970년대에 한중일 모두 5집 반으로 정착되었다.[8] 2000년대 들어 5집 반의 경우에도 흑이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와 한국과 일본에서는 6집 반을 채택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7집 반을 채택하고 있다.[9] 중국식 표기법으로는 3¾子, 응씨배에서는 '8점(집 차이가 딱 덤만큼이면 흑이 이김)'이다.[10] 또한 바둑이 속기전 형태로 바뀜에 따라 먼저 둔다는 점이 점점 유리해졌고, 이에 따라 덤은 계속 증가해 올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6집 반은 한국이 2003년 LG배에서 먼저 도입하고[11] 일본이 나중에 도입했다.[12]

덤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바둑계에서는 대체로 한국과 일본식인 6집 반은 흑이, 중국식인 7집 반은 백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기사들의 성향 상 이에 맞지 않는 기사들이 몇몇 있다. 2000년대에 백의 승률이 더 높았던 조한승 기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 그리고 6집 반에서 흑이 유리한 정도보다는 7집 반에서 백이 유리한 정도가 더 크다는 것이 바둑계의 통념. 실제 덤에 따른 유불리를 분석한 자료들을 보면 한국룰에서는 흑백간의 승률 차이가 1~2%p인 반면 중국룰에서는 4~5%p까지 벌어진다.

6집 반과 7집 반의 경우 7집 덤을 기준으로 동률 시 흑과 백의 승리 여부가 반대로 판정되는 하나의 차이로 보일 뿐이라 유리한 정도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선수들의 수읽기 과정에서는 반집보다도 더 세밀한 단위의 수읽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실제로 박영훈 九단의 경우,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상태에서 1/16단위의 집계산까지 해냈다. 즉, 이런 수읽기 과정까지 반영한 결과를 보았을 때 유리한 정도는 6집 반의 흑이 7집 반의 백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2015년 중국 랭킹 1위 프로 기사 커제는 7집 반은 백 필승, 6집 반 경기도 백이 더 자신 있다고 인터뷰했었다. 실제 승률도 백이 더 높게 나왔다. 2015년 LG배 8강전에서 강동윤을 상대로 흑백을 가리기 위한 홀짝을 맞추었음에도 커제가 흑을 잡았다는 사실에 많은 기사들이 의아해했을 정도였고, 그 의문에 걸맞게 강동윤에게 패배했다. 참고로 커제는 2015년도에 중국식 룰로 백번에서 딱 한 번만 졌다. 그것도 12월 30일에 패배했다.

그간 일본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5집 반의 흑은 중국식 7집 반의 백보다도 더 유리하다(덤에 따른 흑백 승률)고 여겨졌지만, 바둑이 인공지능 포석에 영향을 받고 흑의 부담이 커지면서, 차라리 7.5보다는 5.5 쪽이 더 공정한 덤이라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료 공개로 오픈된 골락시의 경우 덤 7.5집의 빈 반면에서는 흑이 1.7집 정도 불리하다고 판단한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덤 크기에 대한 연구가 거의 확정이 됐다. 7.5집 덤이면 백이 57%, 5.5집 덤이면 흑이 54% 유리하다. 6.5집 덤이면 백이 50.3%-흑이 49.7%로 사실상 차이가 없다. 즉 앞으로는 중국 룰을 폐지하든가 해서 6집 반으로 덤을 맞추는 사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바둑 프로그램은 한중일대 모두 6집 반이 기본 세팅이다.

그러나 덤의 크기는 생각 시간과도 관계가 있고[13], 이런 통계도 있으니 아직은 결론을 내긴 어렵다.[14]

3. 중국식 덤

중국의 경우 단순히 덤만 다른 것이 아니라 계가 방식 자체가 다르다. 현행 중국식 룰에서는 덤이 2집 단위로만 증가할 수 있으므로 6집반을 채택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15] 정확하게는 5집반이나 6집반이나 (둘 다 5와 7 사이라서) 사실상 그게 그거라, 덤이 6집반이면 5집반 때 수법을 그대로 쓸 수 있으니 덤을 늘린 의미가 없다.

바둑의 미래 서밋 커제▼¼子△알파고[16]

중국식 계가법은 중국 바둑 규칙에서 설명하다시피 '바둑판에서 살아 있는 돌이 차지한 자리'도 집으로 치기 때문에, 가로세로 19줄짜리 바둑판에서 흑집과 백집을 더하면 반드시 19²=361이 나온다. 그래서 중국식에서는 361/2=180½(이하 지분점)을 넘기는 쪽이 이긴다.[17]

그리고 중국에서는 전문기사제도가 1982년에야 생겼는데, 이때 일본식 계가법의 맞바둑 덤은 이미 5집반이 정착한 지 오래였다. 중국식이나 일본식이나 웬만하면 결과가 같으니[18] 덤을 일본식과 같게 하는 쪽이 교류하기도 좋다.[19] 그래서 이때 중국식 덤은 5.5/2=2¾이었다.

덤이 5집반이면, 흑은 집이 180½+2¾=183¼보다 많으면 이긴다.[20] 덤이 6집반이라면? 중국식으로는 6.5/2=3¼이니까 흑은 집이 180½+3¼=183¾보다 많으면 이긴다.[21] 덤 5집반이나 6집반이나 흑은 184 이상, 백은 178 이상이면 이기고 흑이 183 이하, 백이 177 이하면 진다. 물론 중국식 계가법에서는 흑과 백 어느 쪽도 차지할 수 없는 공배가 생기면 반씩 나눠가지니까[22][23] 흑집 183½, 백집 177½을 기준으로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먼저 [24]이 나타나야 하고 빅 속에서 비워둬야 하는 공배가 홀수여야만 한다. 빅이라는 것부터가 어쩌다 생기는 형편이니 중국식 계가법에 들어간 반집(¼子)은 이런 때나 의미가 있다.[25] 처음에 맞바둑 덤을 일본식 계가법에서 썼던 5집반에 맞췄을 뿐, 6집반(중국식으로 3¼子)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26]

중국식에서 지금 쓰는 덤은 3¾, 그러니까 7집반을 반으로 나눈 값이니 흑은 집이 180½+3¾=184¼보다 많으면 이긴다.[27] 그러니 흑은 184½ 이상(실전은 대개 185 이상), 백은 177 이상이면 이기고 흑이 184 이하, 백이 176½ 이하(실전은 대개 176 이하)면 진다.

그리고 361은 홀수며 홀수는 짝수홀수를 더하여 나오는 값이다. (나눠가져야 할 공배가 없다면)흑집이 짝수면 백집은 홀수, 흑집이 홀수면 백집은 짝수다. 또 짝수와 홀수의 차이는 홀수다. 그래서 중국식에서 흑집과 백집의 차이는 웬만하면 홀수다. 그렇기 때문에 응씨배 덤이 짝수(8점[28])고, 중국식 덤도 '3¾子'나 '4子되, 비기면[29] 흑승'이나 똑같은 말이다. 덤이 홀수면 비기는 결과가 훨씬 자주 생기기 때문에 중국식에서는 덤을 매길 때 짝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중국식 계가법으로 불계 선언 없이 끝까지 둔 바둑의 결과를 일본식으로 적으면 백승일 때 반집승, 2집반승, 4집반승…이고 흑승이면 1집반승, 3집반승, 5집반승… 이렇게 나온다.[30]

요약하자면 중국식 계가법은 흑집과 백집의 차이가 거의 홀수로만 나오는데(그래서 일본식과 달리, 접바둑이라도 흑집과 백집이 같게 나오는 결과는 거의 없다), 1982년에야 생긴 중국 프로 바둑에서 덤을 일본식에 맞춰 5집반으로 잡았기에 덤을 적어도 2집씩 늘려야만 덤을 늘린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식 덤이 4집반일 때부터 중국 바둑과 교류를 했으니 중국식도 덤이 4집이나 4집반인 시기가 있었을 테지만[31] 이쪽은 확인이 필요하다.[32]

돌이 차지한 자리를 세지 않는 서양식[33]도 중국식과 덤 특징이 똑같다.[34]

4. 여담

  • 공식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흑을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덤을 주는 역덤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경우 흑의 유리함을 그대로 가지면서 덤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다. 기력 차이가 정선보다 심하지만 접바둑보다는 작을 때에 사용한다. 역덤의 양을 조절함으로서 접바둑보다 더 세밀하게 치수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 해당 대국의 장면은 2020~21 시즌 5라운드(2020.12 24)에서 벌어진 원성진 vs 박승화의 계가 장면으로 흑을 잡은 박승화가 26집, 백을 잡은 원성진이 21집이 나와 흑이 반면 5집을 남겼지만 덤으로 백에게 6.5집을 추가해주면서 백의 1집반 승리로 끝났다. 참고로 흑이 반면에서 앞서 있으나 덤 이상의 집 차이를 내지 못한 경우 '덤에 걸렸다'라는 표현을 쓴다.[2] 거꾸로 '흑'돌을 잡은 사람에게 일정한 만큼의 점수를 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공제라고도 한다.[3] 19세기 일본에서는 결과가 '흑 3집승'쯤이면 무난하고, 백은 비기는 걸 목표로 했다.[4] 같은 단끼리는 호선, 1단 차이면 선상선, 2단 차이면 정선, 3단 차이면 선이선, 4단 차이면 2점 접바둑... 이렇게 두었다(일본 기준).[5] 하지만 이렇게 해도 3패빅, 4패빅, 순환패, 장생 등의 동형반복 무승부는 발생할 수 있다. 단, 응씨배는 이런 것도 얄짤없이 동형반복으로 간주하여 팻감을 쓰도록 한다. 서양식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경우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따기 수준으로 확률이 낮기 때문에 사실상 바둑에는 무승부가 없다고 봐도 된다. 예를 들어 장생은 50년이 넘는 한국프로바둑 역사에서 딱 1번, 일본에서는 2번 나왔다. 3패는 몇 년에 한 번 나온다.[6] 바둑판 하나에 2:2나 3:3으로(더 많을 수도 있고) 모여 앉아 탁구 복식처럼 자기 차례가 오면 두는 것. '페어(pair)바둑'이라고 한다.[7] 출처 바둑의 발견, 바둑의 발견 2.[8] 첫 5집반 대회는 1953년 일본에서 연 왕좌전이니 정착하는 데 20년은 걸렸다.[9] 아래 중국식 덤 항목에서 설명하듯, 중국 룰에서는 6집 반 덤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덤을 늘린 것은 7집 반보다 5집 반에서 흑과 백의 격차가 더 크기 때문.[10] 이 덤이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대국이 조훈현 vs 녜웨이핑의 4국이다. 여기서 녜웨이핑은 흑으로 7집을 앞섰으나 덤 때문에 한집차로 패했는데, 이게 나비효과를 일으켜 최종 5국에서도 패배하고 회생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만일 한국처럼 덤이 6집 반이었으면 승부는 진작에 녜웨이핑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11] 참고로 문용직 전五단은 책 '바둑의 발견'에서 덤을 6집반으로 올릴 근거가 모자란다고 반대하는 쪽이었다. 일본이 6집반으로 덤을 올릴 때까지, 가장 마지막으로 5집반이었던 한국 대회가 왕위전이다. 이 시기에 덤을 잘못 알아 승패가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12] 한국과 일본 사이에 중국도 덤을 올렸다. 일본이 6집반으로 덤을 올릴 때까지 일본 5집반, 한국 6집반, 중국 7집반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히카루의 바둑 연재 시기와 겹친다.[13] 앞서 밝힌 대로, (짧을수록 먼저 두는 쪽이 유리한) 생각 시간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14] 바둑에서는 덤 말고도 (귀곡사처럼)아직도 의견이 갈리는 논란이 남아 있다.[15] 간단한 변형을 통해 1집 단위로 덤이 증가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Button Go 등의 아이디어로 오래 전부터 제안되고 있다.[16] 이 주소 사진에서는 처음 백 70집(10의 배수로 맞춰야 편하다)을 세고 나서, 그 표시로 돌통 뚜껑에 돌 일곱 알(한 알이 10집)을 놓는 과정이 빠졌다. 돌이 차지한 자리를 셀 때 열 알씩 모으다 보면 바둑판 위의 돌들이 처음 있던 자리를 떠나야 하니 미리 표시를 해야 한다.[17] 그러니 바둑 끝나고 계가할 때 한쪽만 세도 결과를 알 수 있지만, 그 한쪽조차 집 수가 180 안팎이니 세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돌이 차지한 자리가 100을 넘기곤 하니, 이쪽을 셀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일본식 덤은 흑집과 백집의 차이가 기준이지만, 중국식 덤은 바둑판에 있는 점 갯수의 절반(지분점)이 기준이기 때문에 덤 값이 일본식의 절반이다(중국식은 '흑집-덤'과 '백집+덤'에서 어느 쪽이 지분점을 넘는지 본다). 중국식 덤 표현을 2배로 하면 일본식처럼 흑집과 백집의 차이를 기준으로 삼는 셈이다(이게 전만법).[18] 일본 바둑의 영향으로, 살아 있는 대마 하나마다 완생에 필요한 '따로 떨어진 1집+1집'을 집 계산에서 빼는 환기두(還棋頭)를 1957년 중국 바둑에서 없앤 뒤부터 이렇게 됐다.[19] 실제로 중국은 계가법과 바둑알 생김새, 바둑판 크기, 시간 초과만 반칙패인 벌칙 빼고는 거의 다 일본식을 받아들였다. 흑이 먼저 둔다든지 바둑판 생김새(거기서도 바둑판에 찍은 화점 수)라든지 이런 것도 모두 일본식이고, 중국이 여는 대회 이름을 영어로 적을 때도 Weiqi만 고집하지는 않는다.[20] 백은 집이 180½-2¾=177¾보다 많으면 이긴다.[21] 백은 집이 180½-3¼=177¼보다 많으면 이긴다.[22] 응씨배의 경우 제1회에서는 공배 주변 돌의 개수에 따라 점수를 나눠가졌으나, 제2회부터 반씩 나눠가지는 중국룰을 받아들였다.[23] 원칙은 어느 쪽 차지도 아니고 집 계산에서 아예 뺀다고 하지만, 비워둔 공배를 바둑판 점 갯수에서 그렇게 뺐다간 지분점을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비워둔 공배를 하나 뺄 때마다 지분점은 ½씩 줄어든다) 반씩 나눠가지는 것으로 하는 쪽이 그나마 집을 세기에 편하다.[24] 돌이 살아 있으면 다 집으로 세는 중국식에는 '빅'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다(서양식에도 없다). '빅'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일본식 계가법으로 둔 바둑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설명에 필요하니 넣기로 하겠다.[25] 중국식에서 5집반(2¾子)이면 6집(3子)에서 반집(¼子)을 뺀 것이고, 6집반(3¼子)이면 6집에 반집을 더한 것이다. 왜 5집(2½子)이나 7집(3½子) 같은 홀수가 아니라 6집(짝수)이 기준인지(여기서 홀수냐 짝수냐는 흑집과 백집의 차이)는 아래에서 설명한다.[26] 중국식이면서 덤 6집반인 인공지능바둑대회가 실제로 열리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6집반이라도 5집반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두겠지만, 거의 7집반으로 바둑을 공부한 인공지능한테는(특수규정을 자꾸 집어넣어야 하는 일본식과 달리, 중국식은 규칙이 훨씬 간단하다. 세야 하는 집이 많다는 것도 인공지능한테는 별 의미가 없다) 6집반도 홀수인 7보다 작으니 덤을 바꾼 의미가 있다.[27] 백은 집이 180½-3¾=176¾보다 많으면 이긴다.[28] 반집이 없는 대신 흑집이 백집보다 딱 덤(8점)만큼 많으면 흑이 이기기 때문에(흑빅승) 사실상 7집반이다. 그래서 흑 1점 승은 흑 1집반 승, 백 1점 승은 백 반집 승과 같다.[29] 여기서는 '비기면'이라고 썼지만, 한국 바둑에서는 '비김'을 (판)빅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판)빅이면'이라고 쓸 때도 있다.[30] 그렇지 않다면 어느 쪽도 차지하지 못한 공배가 (홀수로) 있다거나, 흑이 마지막 공배를 메웠는데 일본식으로 집을 셌다거나 - 비우는 공배는 잘 안 나타나니, 대개는 일본식으로 세서 그렇다.[31] 홀수인 5집 차이로 끝나면 덤 5집반일 때와 결과가 반대라 이건 가능하다.[32] 중국과 일본의 바둑 교류는 일본식 덤이 4집반이던 1960년대에 시작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멈췄고, 다시 시작한 1973년은 일본에서 덤이 4집반인 마지막 해다.(한국은 이때부터 덤이 5집반) 문화대혁명 전 교류할 때, 첫 해인 1960년은 일본식 규칙을 썼지만 다음부터는 개최지 규칙을 따랐다고 한다. 출처는 바둑의 역사(남치형,2017)지만, 여기서도 이 시절 중국식 덤 크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환기두를 없앨 만큼 일본 바둑의 영향을 받았다면, 동시에 덤을 (일본식과 같은 크기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다.[33] 흔히 A(merican) G(o) A(ssociation)규칙이라고 하지만 유럽과 오세아니아에도 바둑이 있으니 서양식이라고 쓴다.[34] 서양식은 '집을 세기가 훨씬(일본식 수준으로) 편한 중국식이나 전만법'이라 그런지, 일본 바둑계는 서양식을 그리 안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진행 방식으로 서양식 계가법을 제안하면 중국식과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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