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1 02:44:02

중앙일보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중앙그룹, 삼성그룹, 조중동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일제강점기 때의 신문에 대한 내용은 조선중앙일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 (창간일순)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중앙그룹 (주요 4개 회사)
파일:JTBC.png 파일:중앙일보_로고.png 파일:MEGABOX_BI.png 파일:Logo_Phoenix_hnr_color.png
중앙일보
-1 {{{#FFFFFF '''中央日報 | JoongAngIlbo'''}}}

파일:중앙일보_로고.png
 
정식명칭 중앙일보 주식회사
-1 {{{#000000 (中央日報 | JoongAngIlbo)}}}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창간일 1965년 9월 22일
창업주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 회장
경영진 홍정도 대표이사 사장, 인쇄·발행인[1]
박장희 대표이사 전무
이하경 주필 · 신문제작본부장 · 제작총괄 · 부사장
오병상 편집인 · 전무
업종 신문발행업, 정기간행물출판업
모기업 중앙그룹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매출액 2,807억 8,037만원 (2018년 기준)
영업이익 54억 159만원 (2018년 기준)
당기 순이익 -11억 2,520만원 (2018년 기준)[2]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00 (순화동)
링크 파일:중앙일보 J 로고.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사시3. 역사4. 사가5. 지배 구조6. 역대 임원
6.1. 회장6.2. 부회장6.3. 사장6.4. 부사장6.5. 전무
7. 역대 법정등록인
7.1. 발행인7.2. 편집인7.3. 인쇄인
8. 역대 주요 간부
8.1. 논설고문8.2. 주필
8.2.1. 논설주간8.2.2. 논설위원실장8.2.3. 수석논설위원
8.3. 편집국장8.4. 편집국장대리8.5. 편집국장대우
9. 사옥
9.1. 현재 사옥9.2. 구 순화동 사옥9.3. 창조관 사옥
10. 성향11. 트리비아12. 논란
12.1. 부르니 패션 운동 리더 임명12.2. 쇠고기 연출 사진12.3. 철도파업 관련 보도 논란12.4. 문재인 대표 부산 영도 출마 보도12.5. 조국 민정수석 비판
12.5.1. 페이스북 캡쳐 업로드
12.6. 핵잠수함 도입 보도12.7. 인공기 왜곡 보도12.8. 기무사 문건 대응 관련 사설 논란12.9. 메갈워마드에 대한 지속적 옹호12.10. 강남 간장게장골목 기사12.11. 전범기업 배상 판결 후 보도 태도12.12. 문 대통령의 홍은동 사저 매각 보도12.13. 설날 차례상 보도 조작 논란12.14.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 무단 인용 칼럼 논란12.15. 리얼미터 조사 왜곡 보도
13. 이슈패키지14. 자회사15. 산하 기관16. 자매지17. 관련 문서18. 관련 인물19. 중앙일보 대학평가20. 관련 문헌

1. 개요

중앙그룹 계열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종합일간지.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00에 입주해 있다.[3]
사명은 '중앙일보(주)'. 원래는 '(주)중앙일보'였으나 사명을 2018년 3월에 변경하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조중동이라고 묶여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손대는 것이 꽤 많아서 한국 신문사 중에서는 상당히 일찍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4] 자사 언론에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오픈토리라는 이름의 위키위키 서비스를 열기도 했다. 스스로를 아시아 최초의 인터넷 신문이라고 부른다.

자매지로는 중앙일보 본사와 워싱턴 포스트와의 돈독한 관계[5] 덕에 2000년대 초반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국제 영자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코리아[6], 중앙 데일리(주 6일 발행)와, 중앙선데이(토요일 발행), 흑역사가 된 중앙경제신문[7] 등이 있다.

노조는 미가맹이다.[8]

2. 사시

  •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진실을 과감/신속하게 보도하고 당파를 초월한 정론을 환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고취한다
  • 사회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경제후생의 신장을 적극 촉구하고 온갖 불의와 퇴영을 배격함으로써 자유언론의 대경대도를 구축한다
  • 사회공기로서의 언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성과 실용을 겸비한 건전하고 품위있는 민족의 목탁이 될 것을 자기한다

3. 역사

1965년 창간했는데, 초대 사장은 이병철이었다. 이후 동양라디오 사장인 홍진기는 사돈인 이병철 회장의 권유로 1968년부터 중앙일보 사장에 부임한 뒤 동양방송, 중앙일보 사장과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러한 활동을 한 끝에 홍진기 가문은 중앙일보를 소유하기에 이른다.[9]

그래도 해방 이후에 발간된 신문이라 역사 문제에서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자유롭다고들 하나, 초대 회장 홍진기가 일제시대 판사로 독립운동가를 처벌한 게 드러나서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참고로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을 때 중앙일보에선 여운형을 까면서 좌익-우익 균형 논란 등 물타기 스킬을 시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위키가 저 사설의 일본어판을 근거 삼아 여운형을 친일파라고 기록해놓기도 했다. 여운형이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비록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신문사이지만 기묘하다면 기묘하다고도 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1999년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현재는 이건희 회장의 처가인 홍씨 일가[10] 소유이다. 그러나 당시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명의만 바꾸어놓은 위장계열분리라는 주장이 존재한다.[11]

2011년 3월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에 대해서는 '일본침몰'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운명론, 지진 여파에 따른 한국의 반사 이익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칼럼을 실었다가 피해자들을 조롱하냐고 한일 양국에서 신나게 까이기도 했다.

2013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 주요 쟁점에 대한 사설을 자사와 반대편 논조 신문인 한겨레와 비교, 분석하는 지면을 기획했다. 여태껏 국내 주요 언론에서 시도되지 않은데다가 주요 쟁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의견이 많다.

2014년 4월 14일자부터 "벽을 깼다"라고 크게 어필하며 기존에 여러 메이저 일간지에서 고수해오던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스포츠 - 오피니언으로 이어지는 형식적 지면 편집을 타파하겠다며 콘텐츠 내실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중견 기자들의 분석 및 심층 보도 기사를 대폭 확대하고 요일별 프리미엄 면을 확충한다고 밝혔다. 허나 실상은 각 면에 "종합", "정치" 등으로 나오던 구획 이름을 그냥 톱기사 제목을 그대로 박아넣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혁신이라 보기는 애매하다.

4. 사가

작사는 박두진, 작곡은 장일남이 맡았으며 1975년 9월 22일[12]에 제정되었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전까지는 후렴 가사가 '중앙일보 동양방송'이었다.
(1절)겨레를 하나의 마음에 묶어
뜨겁게 타오르는 우리의 정성

인류의 고동 가슴에 품고
자유언론 대도를 우리는 간다

(후렴)아아 푸른깃발 우리의 기상
무궁한 내일의 보람을 안고
나가자 약진하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2절)참되고 슬기롭게 오늘을 살며
드높이 펼쳐가는 우리의 이상

내일의 번영 다지고 다져
사회정의 대도를 우리는 간다

5. 지배 구조

중앙일보 지배 구조
지분 순위 주주 지분
1 중앙홀딩스(유) 64.73%
2 홍석현 15.63%
3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주) 9.24%
4 홍석준 0.12%
4 홍석규 0.12%
4 홍석조 0.12%
5 홍라영 0.03%
6 기타 10.01%
출처

6. 역대 임원

6.1. 회장

  • 홍진기 (1966 ~ 1967/1980 ~ 1986)
  • 이병철 (1968 ~ 1980)
  • 홍석현 (대표이사, 1999 ~ 2002, 2006 ~ 2015/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4 ~ 1999, 2002 ~ 2005) → (2015 ~ 2017)[13]

6.2. 부회장

  • 이종기 (1989 ~ 1992)[14]
  • 금창태 (2001)
  • 송필호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11 ~ 2015) → (2016 ~ 2017)[15]

6.3. 사장

  • 이병철 (대표이사 · 발행인, 1965 ~ 1966)
  • 원종훈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66 ~ 1968)[16]
  • 홍진기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68 ~ 1970/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70 ~ 1980)
  • 김덕보 (대표이사, 1971 ~ 1980)
  • 이종기 (대표이사 · 발행인, 1980 ~ 1989)
  • 홍두표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92 ~ 1993)
  • 이필곤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3 ~ 1994)[17]
  • 홍석현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5 ~ 1999)
  • 금창태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9 ~ 2001)
  • 이제훈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1 ~ 2002/대표이사, 2002 ~ 2003)
  • 한남규 (대표이사, 2003 ~ 2005)
  • 권영빈 (발행인 · 편집인, 2005 ~ 2006/발행인, 2006 ~ 2007)[18]
  • 송필호 (대표이사 · 인쇄인, 2005~2007/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7 ~ 2011)
  • 홍정도 (대표이사, 2015 ~ 2018/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18 ~ 현재)[19][P]
  • 반용음 (대표이사, 2018)[21]

6.4. 부사장

  • 홍진기 (1965 ~ 1966) → (대표이사, 1966)
  • 이맹희 (1968 ~ 1970)
  • 홍성유 (대표이사, 1971 ~ 1980)[22]
  • 양수제 (1988 ~ 1992)
  • 김동익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89 ~ 1992)
  • 현영진 (1989 ~ 1993)
  • 홍석현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4 ~ 1995)
  • 배종렬 (1994 ~ 1996)
  • 송용로 (경영위원, 1995)[23]
  • 송필호 (2000 ~ 2001) → (대표이사, 2001 ~ 2005)
  • 권영빈 (편집인, 2003 ~ 2005)
  • 한남규 (수석부사장, 2003 ~ 2005)
  • 김수길 (주필, 2011 ~ 2013)
  • 홍정도 (대표이사, 2014 ~ 2015)
  • 김교준 (부발행인 · 편집인, 2015/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2016/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16 ~ 2018)[24]
  • 이하경 (주필 · 제작총괄 · 신문제작본부장, 2018 ~ 현재)[25]

6.5. 전무

  • 원종훈 (대표이사, 1968 ~ 1971)
  • 이현우 (대표이사, 1978 ~ 1979)
  • 이종기 (대표이사, 1980)
  • 송필호 (경영지원실장, 1998 ~ 2000)
  • 김수길 (부발행인 · 방송본부장, 2010 ~ 2011)
  • 홍정도 (제작총괄, 2011)
  • 김교준 (제작총괄 · 부발행인 · 편집인, 2013 ~ 2015)
  • 박보균 (대기자, 2013 ~ 2014)
  • 민병관 (광고사업총괄, 2013 ~ 2014)[26]
  • 이하경 (논설주간, 2015 ~ 2016/주필 · 중앙종합연구원장, 2016 ~ 2018)
  • 박의준 (경영기획 및 지원총괄, 2017 ~ 2018)[27]
  • 오병상 (편집인, 2018 ~ 현재)
  • 박장희 (경영총괄 · 중앙 M&C 대표 · 미디어비즈니스본부장, 2015 ~ 2017/미주법인 · LA중앙일보 대표이사, 2017 ~ 2019/대표이사, 2019 ~ 현재)[P]

7. 역대 법정등록인

7.1. 발행인

  • 이병철 (1965 ~ 1966)
  • 원종훈 (1966 ~ 1968)
  • 홍진기 (1968 ~ 1980)
  • 이종기 (1980 ~ 1989)
  • 김동익 (1989 ~ 1992)
  • 홍두표 (1992 ~ 1993)
  • 이필곤 (1993 ~ 1994)
  • 홍석현 (1994 ~ 1999/2002 ~ 2005)
  • 금창태 (1999 ~ 2001)
  • 이제훈 (2001 ~ 2002)
  • 권영빈 (2005 ~ 2007)
  • 송필호 (2007 ~ 2015)
  • 김교준 (2016 ~ 2018)
  • 홍정도 (2018 ~ 현재)

7.2. 편집인

  • 홍성유 (1966 ~ 1968/1969 ~ 1970)
  • 이규현 (1968 ~ 1969)
  • 홍진기 (1970 ~ 1980)
  • 최종률 (1980 ~ 1988)
  • 김동익 (1988 ~ 1992)
  • 홍두표 (1992 ~ 1993)
  • 최우석 (1993 ~ 1994)
  • 금창태 (1994 ~ 1999)
  • 이제훈 (1999 ~ 2001)
  • 한남규 (2001 ~ 2003)
  • 권영빈 (2003 ~ 2006)
  • 김수길 (2006 ~ 2010)
  • 박보균 (2010 ~ 2011)
  • 김교준 (2011 ~ 2016)
  • 오병상 (2016 ~ 현재)

7.3. 인쇄인

  • 원종훈 (1965 ~ 1968)
  • 홍진기 (1968 ~ 1980)
  • 이윤표 (1980 ~ 1986)
  • 최종률 (1986 ~ 1988)
  • 김동익 (1988 ~ 1992)
  • 홍두표 (1992 ~ 1993)
  • 이필곤 (1993 ~ 1994)
  • 홍석현 (1994 ~ 1999/2002 ~ 2005)
  • 금창태 (1999 ~ 2001)
  • 이제훈 (2001 ~ 2002)
  • 송필호 (2005 ~ 2015)
  • 김교준 (2016 ~ 2018)
  • 홍정도 (2018 ~ 현재)

8. 역대 주요 간부

8.1. 논설고문

  • 강위석 (1994 ~ 1999)
  • 송진혁 (1999 ~ 2005)
  • 유승삼 (2001 ~ 2002)[29]
  • 최철주 (2003 ~ 2006)
  • 변상근 (2003 ~ 2004)
  • 권영빈 (2007)

8.2. 주필

2018년 11월 20일 인사 · 조직개편에서 주필 직속으로 신문제작본부가 신설되고, 그 아래에 논설주간과, 제작국이 편제되었다.
  • 홍성유 (1966 ~ 1970)
  • 김승한 (1973 ~ 1980)
  • 최종률 (1984 ~ 1988)
  • 김동익 (1988 ~ 1989)
  • 장두성 (1991 ~ 1993)
  • 최우석 (1993 ~ 1994)
  • 성병욱 (1995 ~ 1999)
  • 권영빈 (2001 ~ 2003)
  • 문창극 (2006 ~ 2008)
  • 김수길 (2011 ~ 2013)
  • 이하경 (2016 ~ 현재)

8.2.1. 논설주간

  • 홍성유 (1965 ~ 1966)
  • 김승한 (1970 ~ 1973)
  • 최종률 (1980 ~ 1984)
  • 장두성 (1989 ~ 1991)
  • 성병욱 (1993 ~ 1995)
  • 송진혁 (1999)
  • 권영빈 (1999 ~ 2001)
  • 문창극 (2003 ~ 2006)
  • 허남진 (2008 ~ 2011)
  • 김진국 (2013)
  • 이하경 (2013 ~ 2016)
  • 이철호 (2016 ~ 2018)
  • 최훈 (2018 ~ 현재)

8.2.2. 논설위원실장

  • 송진혁 (1994 ~ 1999)
  • 문창극 (2003)
  • 허남진 (2003 ~ 2006)
  • 박태욱 (2006 ~ 2008)
  • 김교준 (2009 ~ 2010)
  • 김진국 (2010 ~ 2013)
  • 이하경 (2013)
  • 이철호 (2014 ~ 2016)
  • 최훈 (2016 ~ 2017)

8.2.3. 수석논설위원

  • 김영희 (1986 ~ 1987)
  • 이억순 (1987 ~ 1988)
  • 최우석 (1988 ~ 1989)
  • 노계원 (1991 ~ 1992)
  • 송진혁 (1995 ~ 1998)
  • 이수근 (2003 ~ 2006)
  • 신성호 (2006 ~ 2008.1/2008.6 ~ 12.30)
  • 김두우 (2008.1 ~ 6)
  • 안희창 (2008.12.31 ~ 2013)
  • 이철호 (2013 ~ 2014)
  • 홍승일 (2017 ~ 2018)
  • 고대훈 (2018 ~ 현재)

8.3. 편집국장

  • 이원교 (1965 ~ 1967)
  • 조기호 (1967)
  • 이규현 (1967 ~ 1971)
  • 김인호 (1971 ~ 1974/1975 ~ 1977)
  • 조동오 (1974 ~ 1975)
  • 김동익 (1977 ~ 1980)
  • 심상기 (1980 ~ 1983)[30]
  • 김영희 (1983 ~ 1986)
  • 최우석 (1986 ~ 1989)
  • 이돈형 (1989)
  • 성병욱 (1989 ~ 1991)
  • 송진혁 (1991 ~ 1992)
  • 이제훈 (1992 ~ 1994)
  • 신성순 (1994 ~ 1995)
  • 고흥길 (1995 ~ 1997)[31]
  • 전육 (1997 ~ 1998)
  • 한남규 (1998 ~ 1999)
  • 최철주 (1999 ~ 2001)
  • 이장규 (2001 ~ 2003)[32]
  • 김수길 (2003 ~ 2006)[33]
  • 박보균 (2006 ~ 2007)
  • 김교준 (2007 ~ 2009)
  • 민병관 (2009 ~ 2010)
  • 전영기 (2010 ~ 2012)[34]
  • 김종혁 (2012 ~ 2013)[35]
  • 최훈 (2013 ~ 2016)
  • 남윤호 (2016 ~ 2017)
  • 이정민 (2017 ~ 2018)[36]
  • 박승희 (2018 ~ 현재)

8.4. 편집국장대리

  • 김인호 (1969 ~ 1971)
  • 이광표 (1971 ~ 1973)
  • 손기상 (1980 ~ 1985)
  • 주명갑 (1980 ~ 1981/1982 ~ 1983)
  • 손주환 (1981 ~ 1982/1983 ~ 1985)
  • 최우석 (1985 ~ 1986)
  • 금창태 (1986 ~ 1988)
  • 성병욱 (1988 ~ 1989)
  • 김두겸 (1990)
  • 이영식 (1991 ~ 1992)
  • 한남규 (1994 ~ 1995)
  • 임준수 (1994 ~ 1995)
  • 문병호 (1998 ~ 1999)

8.5. 편집국장대우

  • 이태영 (1988)
  • 노계원 (1988 ~ 1989)
  • 김두겸 (1989 ~ 1990)
  • 이영식 (1989 ~ 1991)
  • 송진혁 (1990 ~ 1991)
  • 김동수 (1993)
  • 이은윤 (1994 ~ 1995)

9. 사옥

9.1. 현재 사옥

파일:external/www.journalist.or.kr/28869_19278_1751.jpg
J빌딩
현 사옥인 서소문동 'J빌딩'.[37] J빌딩은 1980년대 초반까지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사옥이었으나[38], 1985년 근처에 지은 신사옥[39]으로 이전하였다. 다만 신 사옥에 입주하고 10여년이 지나고서 찾아온 외환위기로 인해 경영난이 왔고, 문제의 순화동 사옥을 삼성생명에 매각했고 삼성생명일보빌딩으로 개칭했다.

그러나 2011년 중앙일보 사옥에 JTBC가 입주하자, 홍석현 측에서 중앙일보를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J빌딩으로 26년 만에 다시 이주시켰다. 그러나 2015년 JTBC가 상암동 DMCC 타워로 이전하였음에도 중앙일보는 계속 J빌딩에 잔류해있다. 현재 중앙일보 건물 일부를 타 기업[40]이 임차하고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9.2. 구 순화동 사옥

파일:external/pds23.egloos.com/e0063996_4f82d8d117f02.jpg
  • 1985년에 완공된 사옥, 2011년까지 사용하였다. 현재는 중앙일보, JTBC 모두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다. 건물 안에 스튜디오가 설치되었고 방송을 염두에 두고서 설계된 것이 특징. 소유주는 삼성생명인데, 1999년에 중앙일보가 재정난이 오면서 삼성생명에 건물을 팔았기 때문이다.

9.3. 창조관 사옥

파일:external/t1.daumcdn.net/news/201711/15/JTBC/20171115175916013rjgx.jpg
창조관
  • 2019년 준공돼, 2020년 입주 예정이다. 이 건물에는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JTBC도 함께 입주할 예정이다.

10. 성향

조중동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홍석현 회장의 발언에 따르면, 종편 중 상당히 개혁적인 논조라고 평가 받는 JTBC와는 달리, 중앙일보는 오랫동안 보수 언론으로 자리잡아 온 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조중동 중에서는 보수적인 논조로 보도하는 정치나 경제 이슈를 제외하고, 사회적인 이슈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개혁성을 찾을 수 있는 신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41][42] 엄밀히 이야기 하면 정치, 경제, 사회 각 섹션별로 논조가 상당히 다르다. 정치나 경제면에서는 조선일보만큼은 아니지만 동아일보와 대체로 비슷하거나 조금 덜한 정도로 비교적 보수적이지만, 사회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논조를 보이기도 한다.[43]

과거부터 지금까지 흔히 '조중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지만, 과거에도 중앙은 조선이나 동아와는 성향이 조금 달랐다는 평이 많았다. 조선과 동아가 한국의 전통적인 반공 반북 노선, 즉 이념 보수 성향이라면, 중앙일보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 노선에 가까운 시장 보수 성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그룹 산하 언론 이라는 태생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44][45]

경제면에서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고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한다. 원래 중앙은 태생 자체가 삼성이므로 이름만 다를 뿐 삼성과 연관 대기업의 입장 대변에 충실한 친재벌 신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46]이나 매일경제신문 같은 경제지들과 비슷한 성향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논조 자체는 매일경제처럼 한국경제보다는 훨씬 유한 편이다. 한경 같은 경우는 대주주가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든 기득권과 대기업, 자본가를 옹호하는 편이며, 때문에 대중성을 중시하는 조중동보다도 극단적인 논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북정책 면에서는 조선, 동아와 일부 논지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는 '남북경제협력을 통해서 북을 세계자본주의 체계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햇볕정책과 묘하게 유사한 주장 또는 더 나아가 GDP의 1%를 대북경제지원에 쓰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는 사주인 홍석현 회장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신념에서 기인한 것으로,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분단 조국의 현실을 절감했으며 +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본인이 어린 시절 대산 종법사로부터 '통일에 관해 공부를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 94년 북핵 위기 당시 국면 전환에 기여한 DJ와 접견한 후 여생동안 관심을 갖고 진력을 기울이는 이슈로 삼았던 것이 차츰 신문사 경영에도 알게모르게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의 대북 정책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소유와 편집이 분리되지 않은 채, 일개 사주의 가치관에 언론의 논조가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하지만, 2000년에 "통일방안은 오직 흡수통일과 적화통일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조선일보)"이라는 내용을 사설에 실었을만큼 반공논조 경향이 매우 강한 조선이나, 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대북 보수논조로 바뀌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연설문 작성의 주요 참고자료가 된 동아일보 논조와 다르게, 현실성있는 제언을 싣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다음 문장에 소개된 2019년 5월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재개를 촉구하는 칼럼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부터 줄곧 공을 들인 개성공단 및 철도협력 건이 3년 동안 공회전하며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제재 완화 없이도 남북이 할 수 있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배명복 칼럼) 이른 시일 내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는 제언을 통해, 2019년 5월 8일 정부가 해당 사업 착수를 천명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 사업은 특히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통해 지지를 표명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낸데다, 지난 2년 동안 인도적 지원에 대해 UN이 결의까지 하고도 진척은 지지부진한 시점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중앙일보에서(by 배명복 대기자, 정효식 특파원) 짚은 것처럼 실현될 경우 예년보다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가치를 발한다.

국제면에서는 친중을 띄는 면이 있다. 중앙일보 내에서도 친중에 가까운 글들이 있고 * 네이버와 협업으로 차이나랩이라는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블로그 댓글을 보면 온통 조선족과 중뽕들로 가득하다.-친중 성향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느냐는 눈초리도 있다. 예를 들어 박항서 베트남 스즈키컵 우승에 베트남 여자들이 중국에 중계된다는 초치는 기사를 싣는 것은 중앙일보뿐이다. 대한민국내의 조선족 중국인들의 눈치를 보거나 중국인들의 사주로 한국인들 속터지게하는 매국 기사를 쓰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대체로 중앙일보의 친중적 움직임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이익이나 관심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언론 비평계에서 많았다. 결국 시장 보수적 논조에서 기인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중앙일보가 중국연구소를 출범시킨 것이 2007년이었는데, 이 때가 공교롭게도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왕성하게 이뤄지던 시기였다.

한때 2005년 2월엔 노무현 대통령이 홍석현 회장을 주 미국대사로 임명했고, 덕분에 조선, 동아랑 달리 참여정부와 사이가 원만한 적도 있었다.[47] 물론 이후 삼성 X파일 폭로로 추문이 일자 바로 사퇴했고, 이후 기자실 논란까지 겹치면서 참여정부와 사이가 좀 서먹해졌지만 그래도 확실히 조선, 동아에 비하면 정치적으로는 중도 혹은 '''보수주의 우파 스탠스보다는 자유주의 중도우파 스탠스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 (이와 같은 스탠스 차이를 보여준 칼럼의 예, 예시2). 이런 점 때문에 한경오 독자를 비롯한 진보 좌파 진영에서는 중앙일보를 우파 신문 중 그나마 가장 높게 평가하기도 했고, 안티조선 운동이 한창일 때도 중앙일보는 조중동 중에 상대적으로 덜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6년 들어서는 JTBC손석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더욱 우파 색채가 옅어지는 면모를 보였다. 심지어 강경 보수 우파였던 김진 논설위원을 해고하는 등 내부적인 변화도 없지 않은 듯 했다. 이에 대해 기존의 우파 성향 구독자들이나 조선, 동아 같은 타 우파 언론으로부터 '좌클릭'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집회도 탄핵반대집회도 다 안 좋은 것이라는 뉘앙스의 논평을 달거나 촛불집회를 조금 거시기(?)한 내용으로 애매하게 서술한 기사들을 보면 그리 완전하게 옅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JTBC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홍정도 대표이사 사장의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실제로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이 농담을 섞어 "난 우파인데 내 아들은 좌파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홍정도 대표이사 사장의 성향이 상당히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고. 2018년 11월 중앙그룹 인사에서, 홍정도 대표이사 사장이 중앙일보 발행인을 겸하게 되었다. 이로써, 홍정도 대표이사는 완전히 중앙일보를 장악, 중앙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홍정도 대표가 중앙일보의 논조를 바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으나...

여전히 중앙일보 주요 온·오프라인 구독층은 보수층이고, 논설위원 상급자들의 성향때문에 중앙일보는 기존 보수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잠시 중앙일보가 개혁성을 보일 때도, 중앙일보 구독층이 계속 이탈해서, 수익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 오면, 논조 기조를 다시 보수적으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는 분석도 있었는데, 실제 2016년과 2017년 탄핵정국 이후 삼성그룹의 광고가 바닥을 치고[48], 이 때문에 회사의 순이익이 폭락하고, 보수 구독자들의 열독률이 떨어지자, 다시 기존의 보수 논조로 돌아서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런 보수 논조로의 회귀는 홍석현 전 회장의 아들인 홍정도 대표이사 라인과, 중앙일보 간부급 기자들 사이의 알력다툼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례로 2017년 말에 중앙일보는 일요일에 발행하던 '중앙선데이'를 토요일 발행으로 바꾸고, 중앙선데이 자체를 자회사 형태로 분사한 뒤, 50대 이상의 시니어급 기자들을 배치하여 대량으로 서서히 구조조정(사실상 해고)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풍문이 언론계에 크게 돌았다.분석 기사 이런 계획에 시니어급 기자들은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결국 시니어 기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구조조정 계획은 백지화 되었지만, 갈등 자체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또 다른 예로 2018년 11월에 홍정도 라인인 반용음 씨가 중앙일보의 대표이사로 내정되었는데, 불과 40일만에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40일만에 낙마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결국 이하경 주필 등으로 대표되는 간부급 기자들과의 마찰로 인해 밀려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반용음 대표이사는 삼성 구조조정본부 출신으로, 원래 나이 많은 신문 기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전폭적으로 신문을 디지털 체제로 변환시킬 계획으로 홍정도가 내려보낸 인물이었는데, 심각한 갈등 끝에 보수적인 시니어 기자들이 반용음 대표를 결과적으로 내쫒았다는 것. 이 일은 보수적인 시니어 기자들을 구조조정한 뒤, 중앙일보를 JTBC처럼 개혁적인 논조로 만들고 싶은 홍정도와, 중앙일보의 보수성을 지키고 싶은 나이 많은 신문 기자들 사이의 충돌이 가시화 된 일이었다는 분석이다. 분석 기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에게 집권시 내각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묘하게도 이 기사가 난 이후 중앙일보에서 문재인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기사나 사설, 칼럼[49]등이 거의 안 나왔었다.

하지만 홍석현이 미국 특사 참여만 하고 문재인의 내각 참여 요청을 고사하며,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추진하면서 다시 반문재인 성향이 강해졌다. 트위터에서는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1위인 문재인의 이름은 적지 않고 2위인 박정희의 이름은 적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a

3대 메이저 신문이란 위상과는 다르게 신천지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중이다. 인터넷 뉴스에 신천지 뉴스가 떴다 하면 중앙일보인 수준인데, 신천지가 각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집행하는 광고성 기사를 특히 중앙일보가 중점적으로 수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언론이지만 친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 보수 언론들이 기본적으로는 메갈리아, 워마드 등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조중동을 같이 묶어서 중앙일보도 정론지 취급해주는 경향이 있었고, 같은 계열사 소속인 JTBC 뉴스룸이 워낙 친페미니즘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언론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윤김지영, 이나영 등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은하선 등의 인터뷰 기사가 자주 나오고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당시 언론 중에서는 드물게 워마드를 쉴드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성체 훼손까지 나온 성별 혐오, "표현 방식 동의 어렵지만…"

20대 젊은 층에게 다소 보수적이긴 하나 그래도 그나마 치우치지 않은 인상을 주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 학내 언론인 연세춘추의 2013년 설문조사[50]에 따르면 자신을 보수라 밝힌 학생이나 진보라 밝힌 학생이나 구독률에선 중앙일보가 1위를 차지했다.관련 기사 그러나 2014년 6월에 있었던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51]의 청와대 국무총리 지명 파동에서 문 후보의 과거 발언들이 논란이 되자, 이게 KBS의 왜곡보도라는 지나친 제식구 감싸기를 선보여 언론의 의무인 객관성 확보가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사설1, 사설2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평범한 무슬림을 구분하고 이슬람포비아를 경계하는 뉘앙스의 기사나 사설, 칼럼 등을 한겨레와 함께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현재에는 좌우 가리지 않고 까이는 형국인 전두환이지만, 그 중에서도 중앙일보는 비판 수위가 높은 편이다. 동양방송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독재에 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중앙일보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11. 트리비아

  • 1995년 4월 15일 석간신문에서 조간신문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 9일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전환하였다.
  • 한국 3대 메이저 신문 중에서는 넘버 2지만 신문 판형에 미치는 영향력만은 넘버 1이다. 1994년 한국의 일간신문 중 최초로 일반/경제/스포츠의 3섹션 분리 신공을 펼쳤으며,[52] 이 체제는 현재 발행하는 대다수의 중앙일간지가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3월에는 판형을 기존 판형보다 좀더 작은 베를리너판[53] 으로 변경했다. 이후 일부 지방지가 중앙일보에 이어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꿨으며, [54][55] 전국 일간지 중에선 국민일보가 2018년 12월 3일자를 기해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꿨다. 다만 광고주들은 '신문 크기가 줄었으니 광고단가도 깎아달라능!'이라 주장했지만 중앙일보 측에서는 작아진 만큼 광고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이유로 쿨하게 무시했다.
  • 2009년에 신문의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변형한 후, 공교롭게도 종이 신문 업계가 전체적으로 극심한 하락세를 맞게 되어서, 당시의 경영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 의구심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윤전기 도입을 위해 들여온 차입금이 회사 경영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아, 재무재표 상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중이다. 중앙일보의 유료 부수 또한 2009년 기준 약 98만 부에서 2016년 기준 약 72만 부 규모로 쪼그라드는 바람에,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했지만, 부수 확장에서 완전히 실패한 셈이 되었다.
  • 2017년에 발표된 2016년 기준 유료 부수 순위에서 동아일보에 약 1만 부 차이로 밀려서 3위가 되었다. 중앙일보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이 중앙일보와 JTBC에 집행하는 광고의 등급이 기존의 A등급에서 한겨레경향신문 수준인 C등급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최하 등급으로 전락한 뒤, 삼성 광고가 거의 사라진 바람에 중앙일보가 매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광고는 전년 대비 10분의 1 수준이며, 협찬은 아예 없어졌다는 후문이다. 다만 JTBC의 경우 중소형 및 외국계 광고주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줘서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기사
  • 2017년 중앙일보는 200~300억 가량의 적자가 예상되는 반면 JTBC는 개국 7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었다. JTBC가 삼성에 부정적인 내용을 보도하면서 삼성의 광고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다. 특히 타 종편들(TV조선, 채널A, MBN)이 흑자를 내는 것이 제작비 쥐어짜기, 과도한 협찬 요구로 인해서인 반면 JTBC는 단지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 이루어낸 흑자 전환이라는 점이 다르다. 중앙일보는 최근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를 중앙일보에서 분사시키고, 자매지인 여성중앙을 2018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잠정 휴간[56] 하는 한편 시니어급 기자(45세 이상)들을 중앙SUNDAY 쪽으로 전보시킬 방침이어서 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에 돌입하여 흉흉한 분위기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2018년 1월 중앙일보는 시니어급 기자들의 소속변경을 백지화하는 대신, 기존의 파견형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희비로 인해 중앙일보와 JTBC 사이에는 묘한 감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홍석현 전 회장과 중앙일보 및 JTBC의 간부들이 나눈 대화가 손석희 사장에 대한 음해 찌라시로 생산되어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삼성 광고의 유치를 위해 보수적 논조를 통해 JTBC의 손석희 사장을 공격해야만 하고, JTBC는 회사 매출 상승을 위해 압도적 신뢰도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손석희 사장을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 간부들의 ‘손석희 흔들기’
  • 여운형이 만든 조선중앙일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관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들킴[57]
  •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는 곳이기도 하며, 1977년부터 행정안전부와 공동으로 '청백봉사상'을 매년 시상해 청렴/우수 공직자들을 발굴해오고 있다.
  • 과거 소년중앙이라는 만화잡지와 소년잡지가 섞인 듯한 월간지를 발간하여 육영재단[58]어깨동무나 어문각의 새소년과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일단 제일 오래 살아남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중앙 M&B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여기서 용자 북박스가 탄생한다. 다만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손을 뗀 상태. 북박스가 완전히 갈려 나간 현재는 중앙북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가끔 코믹스를 발행하기도 한다.
  • 한편 조중동 중에선 그나마 자유로운 데스크 분위기라서 그런지 똑같이 발을 들여놨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게 중앙일보다. 다만 너무 태도가 금방 바뀐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 1999년 9월 30일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사장 홍석현이 대검찰청에 소환됐을 때, 기자라는 인간들이 모여서 "하나~둘~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희대의 촌극이 발생했다. 이후 중앙일보에는 기자는 없고 월급쟁이들만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5년에는 대선자금 X파일 사건 때 1997년 삼성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아 유력 대선후보에 전달하는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와중에 대선자금의 일부를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배달 사고 의혹까지 일었다는 것.
  • 인터넷 신문(조인스닷컴)을 시작하면서 다른 메이저신문들처럼 일본어판을 별도로 내세웠는데, 중앙일보 게시판은 특이하게도 거기에 한일번역 커뮤니티도 시도했었다. 인조이재팬 이전부터 이미 한일간의 번역게시판 키보드배틀 문화가 싹튼 곳이기도 하다. 당시 doronpa라는 필명을 쓰던 사쿠라이 마코토도 인조이재팬이 아닌 조인스닷컴 일본어판 번역게시판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정도로 유서깊은(?) 번역게시판이었으나 인조이재팬포탈의 힘으로 급부상한후 번역게시판 중에서 콩라인이었다가 2010년대 이후로는 홈페이지 리뉴얼을 여럿 거치면서 사라졌다.
  • 2010년 10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딸이 한국에 시집온다는 오보를 내서 곤욕을 치뤘다. 당일 신문 2면에 올라온 자료는 오보나 창작(…)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상당히 치밀해서 확실히 잘못된 기사인지는 미묘하다. 다만 소문에 따르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등재된 해당 무관이 푸틴에게 불려가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확실히 기사 앞부분에는 '그때까지(자세하게 결혼 발표를 할때까지) 보도를 자제해달라'라고 했으니 사실이어도 억울할 듯. 몇달 후, 윤씨는 상대와의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고 발언했다. 게다가 기사로 인해서 신변노출에 의한 신변 안전 우려가 커져서 다니던 현지 직장에서 짤리게 되었다. 게다가 2011년에 윤씨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앙일보는 다시 한 번 욕을 먹었다.
  • 2011년 9월 21일 3D 열풍을 의식했는지 입체신문이라는 모험을 강행했다. 당일 아침 3D 안경이 신문과 함께 배달되었으며 대부분의 사진이 일그러져서 나오는 충공깽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 1996년 7월 15일, 경기도 고양시 중앙일보 남원당지국 직원이 같은 지역 조선일보 지국 직원과 보급권 문제로 다투다가 조선일보 직원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 당시 조선과 중앙은 서로 죽어라 헐뜯는 보도를 했다. # 당시 중앙일보가 판촉전략에서 승리해서 매출액 1위를 기록하자, 조선일보가 삼성그룹을 대놓고 까대는 양상이었는데, 조선일보는 중앙일보를 '살인자 감싸는 막돼먹은 신문사'라고 비난했고, 이에 열받은 중앙일보는 일개 직원 한 명의 잘못으로 회사 전체를 매도한다며 과거 조선일보의 친일행적까지 걸고 넘어가 '지들은 과거 단지 몇 명의 실수였다라고 변명하면서 이중잣대 쩐다'는 식의 보도와 사설까지 쓰며 서로를 무척 깠다. 한편, 당시 세계일보에선 이 일을'조폭들고 신문 보라고 강매하는 행위'라고 비꼬는 시사만화를 그린 바 있다. 흠좀무. 이 때 얼마나 서로를 비방했냐하면 신문 헤드라인과 1,2면을 할애해서 한달반 동안 싸웠다. 오죽 심했으면 작작하고 다른 기사 좀 실으라고 구독자들이 항의전화까지 했을 정도. 이 때가 절정이었고 연말까지도 간간히 상호비방을 하며 싸웠는데 중앙일보가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들춰내서 공격하면 조선일보는 중앙일보 지국원들을 '이건희 사단'이라면서 까댔다.
  • 이처럼 언론계의 추태가 실시간으로 드러나다보니까 당시 PC통신 상에서도 '이러한 싸움이 평소에도 일어났으면 평소에 재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언론사들이 진작에 개혁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웃지못할 평이 나왔다.
  • 대만에도 중앙일보라는 신문사가 있었다. 국민당의 당 기관지로 1966년에 창간했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은 국민당 1당 독재국가였기에 주요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정기적으로 구독을 해야 했고, 국민당원일 경우에도 왠만하면 구독을 해야 했다. 그런데다가 지금의 인민일보 비슷하게 대만내 주요 정책에 대한 기사들이 중앙일보를 통해 전달되었기에 매우 중요한 언론기관으로 손꼽혔고, 그래서 창간연도가 상당히 늦음에도 연합보, 중국시보와 함께 3대 신문사로 손꼽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민주화가 가속화되고 국민당 1당 독재체제가 끝나게 되어 주요기관이나 학교에서의 구독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고, 자유시보와 애플데일리(빈과일보) 등 경쟁 신문사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적자가 누적되어 결국 2006년 폐간되었다.
  • 옛날에 사용했던 상표가 천일여객 상표와 상당히 비슷하다.
  • 아이돌 가수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의 유명세를 내세와 200억을 사기쳤는데 인용 이미지가 아이돌 마스터였다. 당연히 반응은 기자가 러브라이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 2017년에 일본은 1080p 화질인데 한국은 아직도 720p HD 해상도라는 정말 말도 안나오는 상식 이하의 기사를 썼다(...)# 문제는 이게 카카오톡 카카오채널에 소개되면서 접한 저연령층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심지어 자기가 보고 있는 1080p 한국 가수 뮤비에서 댓글로 일본은 1080p인데 한국은 720p라고 말하는 진기명기 현상에 일조했다.
  • 2018년 들어서 상당히 황색언론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근거 없는 남녀갈등 조장은 기본이고 대통령의 영어 실력 수준이 부족한 걸 이유로 들어 당선 된다는게 우려스럽다 라던지..
  • 예전에 딴지일보가 흥해서 미투 딴지가 여러개 생겼을 무렵, 망치일보라는게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생겼는데, 딴지일보가 (외견상에서) 조선일보를 비틀은 스타일이었다면, 망치일보는 중앙일보를 패러디했다. J로고만 망치모양으로 바꿔서 망치일보란다(...). 운영자는 천리안 출신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으로 추정되는 I모씨였다. 자세한 설명은 딴지일보 문서의 '아류'문단 참조. 아카이브가 남아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여기에 1999~2001년분 크롤링을 참고하면 된다. 그나마 아류중에선 비교적 지속된 편.
  • 2018년 3월 17일, 중앙일보는 토요일 신문 발행 대신, 중앙SUNDAY로 대체하였다. 기존에는 중앙일보(월요일 ~ 토요일), 중앙SUNDAY(일요일) 매일 신문을 발행하였으나, 중앙일보(월요일 ~ 금요일), 중앙SUNDAY(토,일 겸용) 로 바뀌게 되었다.
  • 2019년 2월 28일, 중앙일보는 3월분부터 월 구독료를 15000원에서 20000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출처
  • 2019년 3월 18일, 중앙일보는 본문 활자를 10.2포인트에서 10.8포인트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번에 있었던, '설날 차례상 보도 조작 논란'과 관련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디지털 기사 수정 매뉴얼을 만들고, 새로운 '중앙일보 윤리강령'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출처

12. 논란

12.1. 부르니 패션 운동 리더 임명

2008년 4월 2일 중앙일보는 17면에,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이 1일 “고든 브라운 총리가 카를라 부르니를 영국인의 삶에 멋과 매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 주도 운동의 리더로 임명했다”>는 내용을 인용보도하였다. 기사 원문 하지만 중앙일보가 인용한 그 기사는,가디언이 만우절을 맞아 만든 거짓 기사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기자의 이름에 있었다. 지면에 쓰인 기자의 이름(Avril de Poisson)은 ‘만우절에 장난으로 하는 거짓말’을 뜻하는 프랑스어 ‘poisson d’avril’ 의 어순을 바꾼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가디언이 권위지인 데다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영국-프랑스 관계, 브루니 여사가 영국에선 지인이 많은 유명인사라는 점 등을 감안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하게 됐습니다."라고 해명을 내놓았다. 또 이를 계기로 외신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더욱 정확하게 알아보고, 신중하게 판단해 최상의 기사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정 보도

12.2. 쇠고기 연출 사진

2008년 7월 5일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으로 사진을 첨부해 지면 보도했던 기사가 알고보니 기자를 손님인 것처럼 위장한 사진이란 것이 탄로나 사과문을 내는 굴욕을 맛보았다. 관련 기사

12.3. 철도파업 관련 보도 논란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1면에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였다.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구로역 철도 사고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었다. 당시 철도는 파업 이틀째로 맞아, 대체인력이 투입됐다. 그런데 그 대체인력 군 기관사가, 구로역 지리를 몰라서 열차가 지연됐고, 인천, 수원발 청량리행 모든 열차가 40~60분 지연됐다. 오전 7시 이OO학생은 소사역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20분이 지나도 전철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이학생은, 서울대 면접시간에 20분이나 늦어 면접을 볼수 없게 됐다.'는 내용.
그 결과, 여론 악화로 파업은 8일만에 철회됐고, 노조원 200여명이 해고되고, 12000명 징계, 100억 손해배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엉터리였다. 당일 소사역은 7시부터 7시20분까지 전동차가 정상 운행되고 있었고, 이군은 7시가 아닌, 7시20분쯤 부천역에 도착해 7시39분발 전동차에 탑승했으나 7시44분에 구로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연착되면서 면접에 늦게 된 것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언론중재위는 2010년 3월 5일 직권으로 정정보도를 요청하였으나, 중앙일보는 불복, 법적소송을 진행하였다. 결국 1심 법원은 중앙일보가 정정보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중앙일보는 2010년 10월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점은 사과했으나, 철도 노조 파업때문에 이OO학생이 면접을 치르지 못했다는 내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전국철도노조는 이에 항소를 하였고, 2011년 11월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라는 2심판결이 나왔다. 전국철도노조와 중앙일보 모두 수용하였다. 전국 철도노조 때문에 이OO학생이 면접에 늦었다는 내용에 대한 반론보도문을 올림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2011년 11월 반론보도문, 2010년 10월 정정보도문

12.4. 문재인 대표 부산 영도 출마 보도

2015년 11월 10일 중앙일보는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6년 총선에 부산 영도에 출마한다는 단독 보도를 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진갑지역위원회 김영춘 위원장과의 통화내용을 근거로 냈었다. 하지만 통화를 한 사람은 김영춘 위원장이 아닌 이홍찬 사무국장이었다. 김영춘 위원장 연락처에 이홍찬 사무국장 전화번호가 적혀있던 것이 원인이 됐다. 이 보도가 나오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그 다음날인 11일 정정보도를 내놓았다. 덧붙여 김영춘 위원장에게 사과한다는 내용도 내놓았다.

기사원문:온라인에는 수정이 돼있으나, 지면에는 수정되지 않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정보도문

12.5. 조국 민정수석 비판

파일:Joongang_FB1.jpg
2017년 5월 11일 중앙일보 페북 페이지에서 논란이 하나 생겼다.

조국 신임 민정수석의 모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의 세금 체납 건을 보도한 페이지 글에 중앙일보 공식 계정으로 조국을 비판하는 투의 댓글을 달았다. 당연히 캡쳐 스샷이 찍혔고, 그 댓글은 곧 삭제되었지만 캡쳐 이미지는 커뮤니티에 퍼졌다. 또한 이 와중에 해당 계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본인 계정으로 캡쳐 이미지 유포자에게 해당 스샷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통화를 요청하는 한편 본인이 페북지기의 '지인'이라고 변명하는 페이스북 메세지 대화가 그대로 상대에 의해 캡쳐되어 올라왔다.# 중앙일보 계정은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직원 중 한 명의 실수로 본계정에 쓴 댓글이라 해명하였지만, 과거에도 다른 계정으로 자사 기사의 논조에 동조하는 댓글을 올리면서 여론을 선동해왔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앙일보는 이전에도 페북의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의혹을 받은 바가 있다. #

그리고 사건 발생 후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새벽 2시에 사설이 올라왔는데, 정부의 조국 수석 임명과 앞으로의 검찰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논조의 글이 담겼다. # 이걸 보고 일부 사람들은 정부와 홍정도 사장의 미움을 안 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이날은 사드로 인한 외교 경색을 풀기 위해 주미 특사를 파견하기로 하고, 그 특사에 홍 사장의 아버지인 홍석현 전 회장이 임명된 날이었다. 한마디로 팀킬.

파일:Joongang_FB2.jpg

2017년 5월 12일 오전 10시 49분, 이 논란에 대해서 해당 댓글을 단 사람은 운영 지원을 위해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직원이고, 변명하는 페이스북 메시지 대화 또한 해당 직원이 지인인 척 하면서 보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한국닌텐도 트위터 사건이 있다.

12.5.1. 페이스북 캡쳐 업로드

이 사건 이후로 중앙일보의 모든 기사에 해당 캡쳐들을 올리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더 생각해볼 점은, 중앙일보에 캡쳐사진을 올리는 이용자들 중 가계정 이용자들은 소수이며, 극단적인 성향이라기 보다는 사건의 정황을 더 상세히 알고 싶은 정당한 요구이다. 중앙일보가 언론조작을 했다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과 결론을 서술하는 이용자들 보다는, 기자가 아닌 직원이 왜 페이스북의 게시물 관리를 하는지, 여가시간에 굳이 기사에 댓글을 다는 이유는 무엇인지. 운영지원의 업무와 관리자 권한에 대해서 정보공개요구를 무시한채로 사과문으로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중앙일보의 태도가 더 문제 아닐까?

언론은 엄연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집단이다. 물론 그것이 의무는 아니라고 해도 정치적 중립이 깨진 언론의 신뢰성이 의심받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교할만한 집단은 아니지만 군대는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중립을 지키는 집단이기 때문에 구성원의 열린공간에서의 정치적 발언을 엄중히 막고있다. sns에서의 발언은 특히 엄중하다. 해당언론사도 당사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본 사건과 같은 행동을 사원들로 하여금 자제하게 해야 했음이 옳다고 보여진다. 비록 추측이지만 이와같은 일이 지금까지 행해지지 않았다는 증거를 해당 언론사가 내놓은 것도 아니기때문에 의심의 여지는 있다. 당사가 증거를 내놓고 오해를 풀기 전까지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증거로 내세우는 독자들의 의심과 행동이 부당하다고 하기는 힘들어보인다.

12.6. 핵잠수함 도입 보도

2017년 9월 20일 새벽, 중앙일보에서 단독 입수한 정보로 한미간의 합의롤 통해 핵잠수함을 도입할 것임을 보도했다. 20일자 신문의 1면에 이 내용을 실었지만 청와대에서 즉시 반박에 나서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20일 JTBC 뉴스룸에서 핵잠수함 도입엔 미국의 '개념적 승인'이 있었다며, 신조어를 만들어서라도 청와대의 반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보도를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12.7. 인공기 왜곡 보도

평창에 인공기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방남한 북한 선수단이 선수촌 아파트 발코니에 인공기를 내걸자 <북한, 선수촌에 3개층 규모 참가국 중 최대 인공기 걸어>라고 제목을 뽑았는데 실제로는 같은 아파트에 더 큰 크기의 카자흐스탄 국기가 걸린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니 나중에 '최대'라는 표현을 '대형'으로 고친다. 의도를 해석하자면 '평양올림픽이다.', '이번 올림픽에 태극기가 사라졌다.'하는 말이 회자되는 상황을 틈타 보수층의 반북 정서를 부추기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12.8. 기무사 문건 대응 관련 사설 논란

원문 기사

2018년 8월 3일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은 위의 칼럼을 게재하였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계엄령 참고자료를 쿠데타 기획으로 보는 건 무리한 해석이다. (중략)군통수권자는 안보위기 때 군이 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소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국민을 위한 중요한 책무다.(중략) 우리 군이 19세기 말 청나라군이나 히틀러 시대 독일군처럼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군을 믿어야 한다.가 요지인데, 문제는 비유대상이 하필이면 잔혹한 독재자로 유명한 히틀러라는 것, 더군다나,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가 쿠데타를 음모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면서, 본질을 빗겨간 물타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2.9. 메갈워마드에 대한 지속적 옹호

조중동에 포함되는 보수언론 주제에 JTBC와 마찬가지로 래디컬 페미니즘의 사건사고를 지속적으로 옹호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에서는 대놓고 피해자인 카톨릭에 책임을 묻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정작 안페협들은 중앙일보가 페미의 선봉장이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쳤다.(...)

12.10. 강남 간장게장골목 기사

넥타이부대 넘치던 강남 간장게장골목 밤 11시 되자 썰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해 활력이 넘치던 강남 간장게장골목이 이젠 썰렁해져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취지의 기사로, 함종석 기자가 작성했다. 기사 제목은 '11시가 되자 골목식당의 영업이 안 된다'는 의미이지만 기사 본문은 평일인 화요일(4일)에 취재한 것이다.

다음날 업무를 위해 과거에 비해서 회식이 줄어드는 추세인 2010년대 후반의 직장 문화를 반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묘사한 것도 문제지만, 본문에 첨부된 사진이 밤 11시가 아니라 새벽 3시의 모습을 찍은 것이 더욱 문제. 새벽 3시면 게장 가게가 문제가 아니라 특수한 직종이 아닌 이상 상식적으로 장사가 잘 될 리가 없다. OECD 국가 대다수가 40시간 노동 아니면 더 나아가 35시간 노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기존의 한국 노동환경이 비정상이었다는 지적이 제법 나왔을뿐더러, 52시간 단축 이전이라 할지어도 해당 시간에 장사가 잘 되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12.11. 전범기업 배상 판결 후 보도 태도

대법 “강제징용 배상하라” 한·일관계 태풍 - 1면 기사

강제징용 판결의 외교적 파장에 현명하게 대응하라 - 사설

[분수대] 일본, 우리의 적인가 - 칼럼

대법원에서 징용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있은 후 타 언론들이 역사적 판결의 의의를 짚어주는 기사를 쏟아낸데 비해 중앙일보는 한일관계를 우려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런 자락을 까는 것이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과거사를 묻고 가자는 것인지 그 방향성을 알 수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59]

12.12. 문 대통령의 홍은동 사저 매각 보도

손혜원 의원의 보좌관 출신의 김재준 청와대 행정관이 홍은동에 위치한 문 대통령의 사저를 매입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이미 1년 전에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화가 된 것이고 기사 속 새로운 사실은 김 행정관이 손혜원 의원실을 거친 정도이다. 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자 이와 연관지어 김 행정관과 문 대통령간에 모종의 거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사다. #

12.13. 설날 차례상 보도 조작 논란

2019년 2월 6일 중앙일보 이태윤, 이병준 기자가 어머니 대신 차례상 차리는 과정을 기사로 냈다.# 문제는 본인을 가리켜 '누나만 둘 있는 3대 독자'라고 밝혔으면서 "숙모와 형수님만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만들고 삼촌들은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한 것.[60]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숙모와 형수님을 고모와 외숙모로, 삼촌을 고모부와 외삼촌으로 수정했지만 이번에는 외숙모가 왜 남의 집에 와서 일을 하고 외삼촌이 제사지내러 와있냐는 비판이 다시 제기되어 결국 고모만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고모부가 고아데릴사위가 아닌 이상 고모가 시댁에 안 가고 친정에서 차례상 준비하는 것도 어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한 요리하는 내내 할머니가 부엌을 서성였다고 하는데 차례 지낼 때 할머니가 그새 돌아가셨는지 제사상을 받았다고 하는 앞뒤가 안맞는 상황.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할머니가 외할머니로 수정되었다. 이번 설에 외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외할아버지 차례도 따로 지내게 되었다는 서술도 급조추가되었다.

만일 있는 사실을 가지고 기사를 쓴 것이 맞다면 친척간 기본적인 호칭 관계도 모른 채 기사를 썼다는 의미가 되므로 기자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상황이며, 기사를 쓰기 위해 없는 사실을 꾸며내 주작했다면 언론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는 행동이다.[61]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를 보도하며 여러 차례의 기사 수정에도 기자 및 편집부의 사과가 없는 것을 비판했다.# 여기에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처음에는 이태윤, 이병준 두 사람이었다가 기사를 수정하면서 이태윤이 사라지고 이병준만 남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수습기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스크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도 나왔다.#

7일 오후 중앙일보에서 해명기사가 나왔는데# "최초 보도 내용에 담긴 삼촌·숙모·형수는 외삼촌, 외숙모, 외사촌형수 등 모두 기자의 어머니 쪽(외가) 식구를 뜻합니다."고. 이렇게 주장하면서 기자는 명절파업을 한 자신의 어머니를 자기 친아버지 제사상을 차리기 싫어서 파업한 패륜아로 만들어버렸다. 거기에 3대 독자가 친가 제사는 버려두고 외가 제사를 준비하러 가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보통 독자의 기준은 친가 기준인데 말이다. 외삼촌, 남자 외사촌 형이 있다니 외가 기준 독자인 것도 아니고.

결국 온갖 욕과 비웃음을 푸짐하게 먹었다.

12.14.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 무단 인용 칼럼 논란

2019년 4월 12일자 종이신문 29면 오피니언란에 JTBC ·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인 심재우 기자가 작성한 '글로벌 아이: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라는 칼럼에 게재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의도의 칼럼이었는데, 상당 부분이 4월 7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을 사실상 그대로 복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초로 이를 밝혀낸 사람은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감동근 교수였는데, 이 사실을 알아내자 마자 본인의 페이스북에 해당 칼럼의 표절 사실을 고발했고, 여러 미디어 비평 언론에서 이를 받아 쓰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다.관련 기사 분석 기사

한국 언론이 외신을 베끼는 것이야 일상적이지만, 적어도 출처는 밝히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처럼 출처도 밝히지 않은데다가, 심지어 일반 기사도 아닌 언론사 사설을 베낀 건 이례적인 상황. 심지어 해당 칼럼은 중앙일보 영문판으로도 번역되어 출고었는데, 결과적으로 영어권 독자들에게 표절 기사를 자랑한 셈이 되었다. 결국 중앙일보는 당일 저녁 디지털 판에서 해당 칼럼을 삭제하며 사과하는 내용을 공지했다.#

결국 2019년 4월 16일, 중앙일보는 심재우 특파원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소환, 즉 귀국을 명령했다. 그리고 곧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12.15. 리얼미터 조사 왜곡 보도

민주·한국 지지율차 13.1%P···응답 53% 文 찍은 사람
리얼미터는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지난 대선 당시 지지후보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중앙일보는 선거 결과와 차이가 있다며 기사 결론에 '문 대통령 지지층의 여론은 실제보다 과대반영되고, 홍준표·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여론은 실제보다 과소 반영된 셈이다.'이라며 마치 리얼미터의 조사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썼다. 이에 대한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보통 당선자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반대로 낙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답하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같은 식의 조사에서 실제 표심보다 10% 가량 더 나온다고 해명했고, 그러면서 기자가 과거의 자료를 찾아봤다면 단번에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리얼미터를 음해하는 기사를 작성한 조선일보 기자 2명과 함께 이 기사를 쓴 중앙일보 기자를 상대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법적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조선일보 중앙일보 책임 묻겠다”

13. 이슈패키지

14. 자회사

중앙그룹을 참고할 것.

15. 산하 기관

  •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구 공산권조사연구소-동서문제연구소-통일문제연구소. 북한정보 사이트 '북한네트' 운영.

16. 자매지

  • 일간스포츠
  • 중앙SUNDAY: 일요판이었으나 중앙선데이 창립 11주년이 되는 오늘 중앙선데이가 일요일 배달 신문에서 토요일 중앙일보 토요일판을 대신하여 전국 독자에게 배달한다 [62] 판형은 중앙일보랑 크기가 같으나 제목이 파란색으로 다르다. 예술 관련 부가지를 끼워서 판다. 2007년부터 발행하였으며 주로 1주 동안의 관련 이슈를 모아 보도해 주간지랑 비슷한 성격이다. 탐사보도도 자주 실리는 편.
  • 월간중앙: 신동아나 월간조선의 작고 굵은 모양과는 좀 다른 전형적인 월간지 형태다.[63]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가 1988년 복간했으며 1995년 4월호에서 잠정 중단했다가 6월부터 제호를 '시사월간 WIN'으로, 1997년에는 '월간중앙 WIN'이 되었다가 1999년부터 제호에서 'WIN'을 뺐다.
  • 여성중앙: 2017년 12월호를 끝으로 휴간(사실상 폐간).
  • 뉴스위크 한국판: 1991년부터 발행한 뉴스위크의 한국판. 자체 보도도 한두 꼭지씩 실린다.
  • 이코노미스트: 경제주간지.
  • 러시아 포커스: 러시아의 라씨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가 발행하는 영자지 'Russia Beyond The Headlines'의 한국어 판. 중앙일보가 배포를 담당한다. 러시아에 대한 뉴스와 정보에 대해서 다루는 월간지 형태이다. 정치,경제,한러관계뿐 아니라 문화와 러시아의 각종 여행지,밀리터리 정보에 대한것도 다루기 때문에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꽤 흥미로운 것이 많다. 그리고 서구의 시각이 아닌 러시아의 시각으로 보는 국제 정세[64]에 대한 기사와 칼럼들도 연재된다.홈페이지 하지만 본사에서 사업을 축소하면서 2017년부터 기사가 안 올라온다 [65]

17. 관련 문서

18. 관련 인물

  • 중앙일보 가문
  • 고흥길
  • 김상택
  • 문창극: 본사가 아닌 미주중앙일보쪽 인력. 칼럼 투고 당시 중앙일보측에서 강경파적인 입장으로 유명했으며,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차기 총리지명자로 내정된 상태였으나 자극적인 발언을 했던 점이 뉴스에 나가서 구설수를 일으키고 이내 문씨가 스스로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혀서 허무하게 끝났다.
  •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서울문화사) 창업주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칼렴 연재 중.
  • 정운경
  • 홍혜걸 - 의료분야 기사를 주로 투고했던 기자. 과거 2002년 황우석 엠바고를 깨서 비난을 일시적으로 받은 바도 있으나, 그가 엠바고를 깨면서까지 보도한 황우석의 실체는.... 그냥 항목을 참조하자.

19. 중앙일보 대학평가

중앙일보 대학평가 문서로

20. 관련 문헌

  • 중앙일보 이십년사/동양방송 십칠년사 (1985)
  • 중앙일보 삼십년사 (1995)


[1] 중앙SUNDAY 발행인은 이상언 중앙일보 플러스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2] 2017년에는 당기순이익이 흑자였으나, 2018년에는 2016년처럼 적자가 나고 말았다.(...)[3] 건물명이 왜 저 지경이냐면, 해당 건물은 본래 중앙일보 소유의 건물이었으나, IMF 당시 삼성생명건물을 매각한 후 다시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4] joongang.co.kr 으로 1995년에 열었다. 매~우 썰렁한 홈페이지였지만 오픈할 당시에는 MBC나 중앙일보를 제하면 가볼 한글 언론사 홈페이지가 없어서 가보곤 했었다. joins.com 이라는 포털 비스무레한 사이트가 됐다가 현재는 한국MSN과 합쳐 joinsMSN이 되었다. 여기서는 다른 포털과 마찬가지로 다른 신문사 기사도 볼 수 있지만 joongang.co.kr로 들어가면 중앙일보 홈페이지로 갈 수 있다.[5] 뉴스위크 한국판 발행 등[6] 2007년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 NYT에 IHT 지분을 매각한 상태지만 여전히 중앙일보가 발행하고 있다.[7] 1994년 7월에 중앙일보와 통폐합 처리. 이후 경제 섹션을 분리하면서 '중앙경제'라고 이름붙여놓고 '부활'이라고 우겼다.[8]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2000년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화 되면서 탈퇴.[9] 애초에 이병철 회장의 구상은 3남 이건희에게 사돈이 운영하는 동양방송, 중앙일보 등의 미디어 계열사에 중앙개발, 동방생명을 얹어줘서 계열분리를 시키는 것이었으나,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와의 갈등 끝에 둘을 모두 내치고 나서 이건희를 후계자로 내정했고, 이로 인해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의 사장이자 자신의 사돈이었던 홍진기에게 중앙일보를 넘겼다는 설이 있다.[10] 홍씨 일가는 이외에도 보광그룹을 소유하고 있다.#[11]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는 실질적인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이 행사한다는 계약서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장계열분리 의혹을 묵살하였고, 삼성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 이외에는 증거가 없다면서 무혐의 처리했다.[12] 창간 10주년[13] 초대 회장 홍진기의 아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처남. 2017년 3월 18일 회장에서 물러났다.[14] 이후 제일제당 부회장, 삼성화재 부회장 및 회장을 지냄. 2006년 10월 작고.[15] 홍정도 대표이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015년 12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남.[16] 1966년 12월 상무이사에서 대표이사 사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전 함안 및 밀양군수. 퇴임 이후 동방생명 사장, 한국보험협회장 역임. 1987년 작고.[17]삼성물산 대표.[18] 기술되있는 사장들 중 유일하게, 대표이사 직책을 맡질 못했다.[19] 홍석현 전 회장의 아들. 2015년부터 중앙일보와 JTBC를 비롯한 중앙그룹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왔다.[P] 공동대표이사[21] 2018년 11월 20일 대표이사를 맡은지 40일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처.[22] 이후 삼성그룹 회장실 고문으로 재직함. 2006년 작고.[23] 1994. 3 ~ 1995. 6 까지 중앙일보 경영위원을 맡다가, 1995년 7월 삼성전자 정보통신 본부장에 임명되었다. 출처[24] 2018년 11월 20일 인사에서 상근고문으로 발령받았다.[25] 주필 직책은 2016년 부터 맡게 되었고, 제작총괄 · 신문제작본부장 직책은 2018년 11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맡게 되었다.[26] 2013년 12월, JTBC · 중앙일보 광고사업총괄 업무를 맡았었다.[27] 2018.11 중앙일보 마케팅 대표이사 보임.[P] [29] 이후 대한매일 첫 민선사장으로 영전됨.[30] 서울미디어그룹(서울문화사) 창업주.[31] 1997년 퇴사 후 한나라당 입당.[32] 퇴사 후 하이트맥주 대표이사 부회장 역임.[33] 전 JTBC 대표이사 사장, 현 JTBC 상근고문[34] 현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35]JTBC 보도부문 대기자. 현 JTBC 미디어텍보도제작부문 대표[36] 본사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37] 1965년 준공.[38] 준공 당시 건물명은 '중앙 매스컴센터'.[39] 높다란 갈색 건물로, JTBC의 개국 초기 사옥으로도 쓰였던 건물이다. 부영그룹 사옥(부영태평빌딩 (구 삼성생명빌딩))과 건물 외관이 비슷하다.[40] 코웨이삼성생명[41] 최근에 들어서서 특히 여성 인권 관련 기사에서는 JTBC와 함께 한경오랑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메갈리아 언론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42] 이는 중앙일보에서 온라인 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클릭수 장사에 몰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43] 정치, 경제, 사회는 속칭 '정경사'라고 하여 언론사에서 주류 취급을 받는 부서인데, 어느 언론사에서나 사회부 만큼은 정치부나 경제부와는 논조가 조금 다른 경향성이 있다. 사회부에서 다루는 사건 사고 그 자체는 정파성을 비교적 덜 가리기 때문이다.[44] 물론 기자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신문사든 성향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언론사의 편집 방향을 대표하는 사설이나 칼럼으로 보면 대략적으로 그러하다.[45] 중앙일보의 다른 논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보수적인 논조를 보이지만, 권석천 논설위원의 칼럼 만은 매우 이질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진보적인 편이다.[46]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돈줄이므로 친기업 성향의 논조를 보인다.[47] 심지어 UN사무총장 선거 당시 참여정부에서 처음 민 카드가 반기문 장관이 아닌 홍석현 회장이었을 정도였다. 삼성 X파일 사건 덕분에 물건너갔지만[48] 일례로 이때 삼성이 집행하는 중앙일보에 대한 광고 단가 책정 기준이 한겨레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49] 예를 들면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는 40%가 안되는 지지율로 문재인 당선 직후 미국이 멋대로 북한을 폭격 하고 코스피가 폭락한다는 가정을 쓰면서 욕을 먹었다.# 결과는 41.1%의 득표로 문재인 당선 직후 폭격은커녕 코스피 상승과 이낙연 총리 내정에 지지율 70% 박스권이 되고 한미외교도 정상적으로 하며 트럼프는 코리아패싱을 부정하며 대화 노선을 이어가는 등, 이 분이 쓴 칼럼은 대체역사소설이 되어 문재인 지지자들이 비웃고 있다. 이것 말고도 보수 언론들이 종북좌파, 안보불안, 친문패권 등의 프레임으로 때리고 있지만 문재인의 당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50] 물론 대학언론이라 신뢰도가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을 유념하자.[51] 본사가 아닌 미주 중앙일보의 인력이다. 칼럼 투고 당시 강경파적인 입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52] 그 이전에는 명절이나 기획기사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별지 없이 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3] 다만 2001년에 이미 국민일보와 그 계열의 스포츠투데이가 베를리너판과는 다른 판형인 USA투데이판을 적용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국내에서 기존 판형을 줄인 시도는 중앙일보가 최초는 아니라는 것.[54] 대구일보, 울산매일신문 등 경상도 지역 신문들이 베를리너 판으로 전환했고, 2016년 8월 1일 강원도 최초로 강원도민일보가 베를리너판으로 전환했다. 기사[55]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판형을 바꾸려면 신문을 찍어내는 기계인 윤전기를 바꿔야 하는데 이 윤전기의 가격이 한 대당 수백억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일보도 윤전기를 바꿔야 했던 상황이 왔고 겸사겸사 해서 종이값, 잉크값, 배달비, 발송비 등을 줄일 수 있는 작은 판형의 베를리너판 윤전기로 바꿨다는 업계의 소문이 있다.[56] 미주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여성중앙 미국판의 경우 2018년 2월호부터 자매지인 "헤렌"의 내용으로 개편하였다가 2018년 10월부터는 Singles로 대체하였다.[57] 어떤 분들은 조선중앙일보를 친일 신문으로 오해하여 조중동은 죄다 친일 신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중앙일보는 일제 강점기에 없었으므로 타임 패러독스가 되는 주장이다.[58] 박근혜와 동생인 박근령이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1990년 박근령이 경영권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매 사이는 금이 갔다.[59] 한 예로, 한 칼럼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포스코 건설에 일본의 공헌을 치켜세우면서 한일관계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60] 3대 독자는 말 그대로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이 모두 외아들(여자 형제의 유무와 숫자는 무관)이라는 소리로, 숙부 내외인 삼촌, 숙모는 물론이며, 형의 아내인 형수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형수의 경우, "누나만 둘"이라고 바로 앞에 썼다! 바로 앞에 쓴 말과도 모순인 것이다.[61] 계속 가족관계가 변경되는 것으로 보아 후자쪽이 가능성이 높아보인다.[62] 원래 수도권 지역만 배달이 가능했었다[63] WIN 발행 전에는 신동아와 월간조선의 판형과 같았다.[64] 중동문제, 유로마이단[65] 스푸트니크도 한국어판 발행을 했다가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2017년부터 한국내에서의 사업을 중단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