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05 15:13:19

시사저널


시사지
주간조선 시사저널 주간경향 한겨레21 주간동아 시사IN
경제지
매경ECONOMY 한경BUSINESS ECONOMY조선
※ 순서는 창간일자 순

파일:시사저널 로고.svg
이름 시사저널
유형 시사 주간지
창간일 1989년 10월 19일
본사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43길 5
편집장 전영기
사이트 파일:시사저널 로고.svg

1. 개요2. 역사3. 평가 저널리즘
3.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4. 구독 사기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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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문화사 계열 (주)시사저널사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1989년 시사저널이라는 제호로 창간하였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사시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아래에 서술된 바와 같이 애초에 시사in이 시사저널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했던 이유가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그룹 측의 압력을 받고 삼성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줬기 때문이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43길 5 (한강로2가) 소재.

2. 역사

1989년에 박권상, 표완수 등 주요 언론사 해직기자 출신들이 예음문화재단 이사장 최원영[1]의 도움을 받아 (주)국제언론문화사를 세워 창간했다. 창간 초기에 스티븐 호킹, 빌리 브란트, 잠롱 스리무앙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을 적극 취재해 큰 반향을 얻어 2년 뒤 14만 부를 기록해 주간한국주간조선이 양분하던 주간지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이듬해 부도를 맞아 자금난에 빠졌으나, 1999년에 전직 언론인 이영진을 거쳐[2] 11월에 서울문화사에 인수되었다.

서울문화사에 인수된 이후로도 진보 성향 시사잡지로써 명성을 이어왔지만, 2003년 4월 금창태 전 중앙일보 사장[3]이 대표직에 취임한 뒤부터 잡음이 이어지더니만, 2006년경 삼성그룹에 불리한 기사를 금 사장이 일방적으로 삭제한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기자 대다수가 장기간의 파업 끝에 '시사in'으로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다.[4]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존 시사저널의 진보 성향 지분이 시사in에 그대로 이어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이 일 이후 시사저널은 한 동안 '짝퉁 시사저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시사 주간지 업계의 선두주자였고, 진보적 성향의 주간지로서 유명했으며, 유료부수나 주간지 시장에서의 영향력으로 봐도 한겨레21과 쌍두마차 체제를 이룰 정도였지만, 시사in이 등장한 이후 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 현재 기준 유료부수는 시사IN, 한겨레21 다음의 주간경향과 비슷한 업계 3~4위 수준. 보도국의 규모는 20명 수준이고 주간지 가운데에서는 가장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함. 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디지털화를 추진하며 온라인 기사 생산에 매진한 덕분인지 포털 및 온라인에서 트래픽을 꽤 많이 기록하고 있다고. 지면은 100쪽을 여전히 유지해 다른 주간지보다 많은 지면을 발행하긴 하는데, 현재 주간지/월간지 시장이 그러하듯이 당연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면 기사는 외부 기고와 광고 및 협찬으로 채워진 분량이다. 사실 2010년대 이후 종이신문의 사양산업화와 더불어 시사 주간지/월간지 시장마저 사정이 크게 열악해졌고,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시사저널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경쟁 주간지들도 매 한가지이긴 하지만, 시사저널의 경우에는 유료부수 하락이 매우 가파르다. 디지털 매출 증가와 협찬 증가 등으로 2013년 매출은 40억원에서 2020년 약 90억원 수준으로 증가함.

2011년 '이명박 사저 논란 특종', 2019년 '박근혜-최순실-정호성 녹음파일 특종' 등을 보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2021년 초, 시사저널의 편집국장이 중앙일보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출신의 전영기로 바뀌었다.[5] 이 전영기 편집국장의 정치성향은 중앙일보 시절부터 이미 강경한 보수 우파로 유명했는데, 일례로 대표적인 우파 유튜버신의한수[6] 에도 가끔식 출연하였을만큼 정치색이 확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터라, 전영기의 시사저널 편집국장 취임 이후부터는 시사저널이 과거보다 훨씬 강경한 보수 우파적인 논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일단 시사저널 자체가 서울문화사 산하의 매체인데, 서울문화사의 현재 회장이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심상기 씨인지라, 서울문화사 산하의 여러 매체들의 고위급 간부진이 대부분 중앙일보 출신의 보수적 성향 언론인들로 점점 꾸려지면서, 서울문화사 소속 매체들의 논조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우경화 되고 있다는 후문.

[ 역대 임원, 법정 등록인, 주요간부 일람 펼치기 ]
* 역대 임원
  • 회장
    최원영 (1991~1999)
  • 대표이사 회장
    심상기 (2007~2008)
  • 대표이사 부회장
    임철규 (1995~1996)
  • 대표이사 사장
    최원영 (1989~1991)
    임철규 (1991~1995)
    신중식 (1997~1999)
    금창태 (2003~2007)
  • 대표이사
    양남훈 (1996~1997)
    신상철 (2008~2012)
    권대우 (2012~ )
  • 역대 법정등록인
  • 발행인
    최원영 (1989~1993)
    임철규 (1993~1995)
    안병찬 (1995~1996)
    신중식 (1996~1999)
    박성섭 (1999)
    이영진 (1999)
    심상기 (1999~2003/2007~2008)
    금창태 (2003~2007)
    신상철 (2008~2012)
    권대우 (2012~ )
  • 편집인
    박권상 (1989~1991)
    안병찬 (1991~1995)
    신중식 (1995~1999)
    박성섭 (1999)
    이영진 (1999)
    심상기 (1999~2003)
    금창태 (2003~2007)
    전남식 (2007~2009)
    신상철 (2009~2012)
    권대우 (2012~2020)
    전영기 (2020~)
  • 역대 주요 간부
  • 편집국장(구 편집주간)
    안병찬 (1989~1991)
    박순철 (1994~1995)
    김훈 (1995~1997/2000~2002)
    최귀희 (1997~1999)
    이천 (1999~2000)
    이윤삼 (2005~2006)
    전남식 (2007~2009)
    윤길주 (2013~2015)
    박영철 (2015~2018)
    소종섭 (2019~2020)
    전영기 (2020~)
  • 편집국장대리
    김승웅 (1989~1991)
  • 편집국장대우
    박순철 (1991~1993)
    김동선 (1993~1994)
  • 편집장
    박준웅 (1991~1994)
    박상기 (1996~1999)
    김상익 (1999~2001)
    서명숙 (2001~2003)
    문정우 (2003~2005)
    소종섭 (2009~2013)
  • 편집부장대우
    박중환 (1994~1996)

3. 평가 저널리즘

시사저널은 창간호부터 정치인, 언론인, 교수 등을 대상으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시작으로 90년대 부터 생긴 "한국을 움직이는 100인" 설문조사를 한 해에 1~2번 씩 특집보도를 한다, 그래서 비슷한 기획인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미국에 타임지에 비견되기도 한다.

2010년대 들어서 한겨레21, 과거 "시사저널 기사삭제 사건"으로 떨어져 나간 시사인과 보수언론 계열 주간지와 인터넷 언론등 과다경쟁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영광은 빛바랜 편이다.

3.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시사저널에서 1989년 이래로 매년마다 각 분야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내는 영향력 평가이다.
연예계, 언론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경제계, 정치계, 스포츠계가 조사 대상이다.

이 영향력 평가는 다수 언론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방송 영향력 1위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KBS는 매년 이 내용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이 매체의 기록을 가지고 TV광고도 만들었다. 2014년 이후 순위가 급성장한 JTBC도 뉴스룸에서 자화자찬성 기사를 자주 보도하고 있다.

이 영향력 평가는 매년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래도 공통된 특징이 있다. 전체 영향력으로는 현직 대통령이 거의 항상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주요 정당 대표 및 차기 대권 후보들이 차지한다. 경제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이재용이 1, 2위에 이름을 올리고, 그 뒤를 주요 재벌 총수와 경제 관료들이 차지한다. 또한 언론계에서는 2005년 이후 손석희가 절대적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방송/연예계, 문화예술계 분야는 변동이 매우 심한 편이다. 특히 문화예술계의 경우, 해외에서의 콩쿠르, 영화제 등에서 큰 상을 받은 인물이 점수를 후하게 받는 편이다.
종교계는 주로 천주교 추기경과 불교 승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정치인의 경우 현직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주변 4강 국가(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북한의 국가 원수 및 주요 정치인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아래는 각 해의 전체 영향력 1위 인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한 틀이다.

4. 구독 사기

2003년부터 동창을 사칭하여 시사저널 구독을 권유하는 사기를 쳐 잡지 가격의 몇 배의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 텔레마케터들이 성행하고 있는데, 2014년까지도 이런 사기 행위가 성행한 것 때문에 시사저널에서 직접 이런 사기 행위를 사주하였거나, 적어도 이를 방관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검색 포털에서 '시사저널 사기'로 검색하면 수많은 경험담이 올라온다.

그 외에 판매원들이 지인들을 찾아가 도와달라면서 이미 몇 달 지난 재고를 정가에 팔아치우는 악질 판매방법을 쓰기도 하였다. 주로 종교인 등 이런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사회에 어두운 사람들을 찾아가 사용한 수법이다.

5. 기타

  • 차범근호/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당시 유일무이하게 한국 축구는 잘해야 1무 2패라면서 점수 차까지 거의 비슷하게 분석했다. 당시에 너도나도 월드컵 16강 간다 타령으로 도배하던 언론에서 유일무이하게 제대로 분석한 것.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 때는 16강 힘들다고 분석하여 틀렸다....
  • 과거 2000년쯤에 하이텔철덕들을 취재한 기사도 있었다. # 정확히는 당시 하이텔 소모임 중 하나였던 도시철도 덕질에 초점이 맞춰진 지하철 소모임을 취재한 것.
  • 2016년 12월 24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05년 외교부 장관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약 23만 달러(약 2억 8000천만 원)를 받았다는 사실을 단독보도했다.# 하지만 기사를 보면 근거라고는 박연차 주변 몇몇 인물들과 '어느 사정 당국 핵심인사'의 증언 뿐이고 구체적인 근거자료가 없어 사실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반 총장과 박 회장은 양측 모두 부인하고 있다.
  • 서울문화사사이트에서 시사저널사를 계열사로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요신문, 시사저널이코노미, 우먼센스, 리빙센스, 그라치아, 아레나 등이 서울문화사의 계열사다.
  • 서울문화사 인수 이전에 <TV저널>, 여성잡지 <에버> 등을 자매지로 두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모두 폐간되었다. 최근엔 경제매체 시사저널이코노미를 창간했다. http://www.sisajournal-e.com/
  • 2018년 4월 11일에는 인양된 세월호 하단에 있는 스크래치를 근거로 외부충돌 증거를 찾았다고 대서특필했으나, 사고 당일 세월호가 뒤집혀 있을 때 해당 부분이 멀쩡했던 것이 밝혀지면서[7] 기초적인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 2022년 1월 17일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관련 단독기사를 보도하던 유지만 기자가 사망했다. 생전 시사저널의 기자로 단독기사를 썼었는데, 최근 대장동 논란에 관련된 인물들의 잇다른 죽음에 유지만 기자에 관한 찌라시와 음모론등이 돌고있다. 이에대해 현재까진 이들의 죽음과 대장동 논란에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속단은 좋지 않다는 우려가 나왔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음모론에 대해 시사저널측 관계자가 오마이뉴스측과의 통화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족에 두 번 상처를 주는 일이다. 고인을 위해서도, 유족을 위해서도 무책임하게 글을 쓰고 유포하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고인은 2020년께 암 진단을 받은 유 기자는 투병 생활과 기자 업무를 병행해왔다고 설명했다.(출처)

6. 관련 문서


[1]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의 동생이다.[2] 그 사이 박성섭 전 덕산그룹 회장이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대금을 못 내 하차했다.[3] 심상기 사주의 대학 후배로, 1987년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물론 심상기 본인이 취재했던 것은 아니고, 사회부 신성호 기자가 취재하여 편집국에 특종 기사를 보고했을 때 본인이 지면 기고를 결정했다는 것.[4] 자세한 내용은 시사in 항목 참조[5] http://naver.me/5dxqCKHM[6] 영상링크[7] 즉 해당 스크래치는 해저면에 긁히거나 인양 과정에서 사슬에 긁혔든 간에 일단 침몰 이후 발생했다는 것이다.[8] 다만 해당 기사는 연재기사 중 3편으로,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총연합회 이사장의 주장을 단순히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글쓴이가 블로거가 아니라 언론사 기자라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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