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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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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순실1.jpg 파일:최순실 3.jpg
이름 최필녀 → 최순실 → 최서원
출생 1956년 7월 30일 ([age(1956-07-30)]세)[1]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
본관 수성 최씨
신체 155cm, 60kg
가족 아버지 최태민, 어머니 임선이
배우자 김 모씨 (이혼), 정윤회 (이혼)
슬하 1남 1녀 (아들 김기대[2], 딸 정유라[3])
조카 장시호
학력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청강생[4]
약력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
영진전문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초이유치원 원장
직업 기업인, 임대업[5]
現 무직 (수감 중)
현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

1. 개요2. 일생3. 논란4. 평가
4.1. 파멸적인 인사관리
5. 가계6. 여담
6.1. 모욕죄 인정 판례
7. 어록8. 관련 사진9. 둘러보기

1. 개요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 박관천 前 경정[6] 기사 아카이브
"대통령은 말로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말을 누군가에게 검사받고 말을 틀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국정개입이나, 농단이 아니고 정말 그 사람이 국정을 운영한 거예요."
- 강원국

대한민국의 정치 범죄자. 2010년대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다. 현재 등본상 공식 이름은 '최서원'으로, 원래 이름은 '최필녀'(崔畢女)였으나 1979년에 최순실(崔順實)로 개명하였고, 이후 2014년에 '최서원'으로 또 한 번 개명하였다.[7]

부친인 사이비 교주[8] 최태민[9][10]의 대를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혈육 이상의 친분 관계[11][12]를 이용하여 축재[13]를 하고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통제하여 국정에 개입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완전히 뒤흔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숨겨진 비선 실세로 지목받을 만큼 베일 뒤에 숨어서 아무런 통제와 감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았고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실권을 휘두른 스케일에 비하면 소소하게 보이는 비리 역시 많이 저질렀다. 예컨대 2016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발로(?) 수백억 원의 돈을 걷어 만든 미르 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 있다. 여기서 전경련이 수백억 원의 돈을 걷어서 만든 K스포츠 재단의 이사장으로 갑자기 선임된 정동춘은, 최순실이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스포츠 마사지 센터의 원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K스포츠 재단은 개점휴업 상태였다가 결국 해산했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에 입시 비리를 저지르도록 공작하여 공부도 못하는 자신의 딸 정유라를 이화여대 체육학과에 입학시켰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그 외에 '팔선녀'라는 사우나 모임을 만들어서 재벌가 사모님들에게서 극진한 접대를 받고 틈틈이 호스트바에서 자신의 아들뻘 되는 젊고 잘생긴 남자를 품고, 조직폭력배에게 폭력을 사주하고, 대통령과 함께 회춘 시술, 중독성 전신마취 시술을 받기도 하는 등,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녔다.

2016년 9월 처음 언론에 의혹이 터져나온 후 10월까지 약 1달 만에 이 사람이 만든 온갖 의혹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최경희 총장이 사임하고 대통령이 직접 엄정 수사를 언급할 수준이 되었다. 언론 노출을 매우 꺼리는 탓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난 사진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인터뷰를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의혹이 터진 지 한참 뒤인 10월 27일에야 최초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14]

2016년 11월 3일(목) 오후 늦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 독방에 구속 수감 되었다. 구속 수감된 동안 자신의 형량에 큰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 # 최순실은 독방에 수감되면서 면회는 수사에 도움이 될 인물 이외는 전면 금지된 상태이며 TV 시청 및 신문 구독, 독서 등 모든 종류의 여가 활동이 완전히 금지된 상태다. 그러나 독방 수감 그 자체가 상당한 특혜이며 구치소 생활도 윤택한 지원을 받고 있고, 원칙상 금지된 TV 시청마저도 한다고 알려질 만큼 당시 황교안 대행 체제하에서 황제 수감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2017년 1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하지만 근거에 부합되지 않거나 불성실한 답변으로 빈축을 샀고, 결국 2017년 3월 대통령 박근혜도 파면되면서 정치적 권력을 완전히 잃고 만다. 이후 2018년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에서 최순실은 징역 20년,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았다.

구스위키에서는 대한민국의 왕이라고 묘사되며[15] 박근혜를 최순실의 휘하 대통령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가족관계에는 박근혜가 최순실의 솔거노비라고 되어 있다.

2. 일생

3. 논란

4. 평가

"국민들이 수치감을 느끼잖아요. 예를 들면 부정부패를 하거나 아니면 무능하거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은 당장 자신의 일은 아니니까, 뭐, 인내할 수 있어요. 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국민들 모두에게 수치심을 주잖아요. 자괴감. 아이고, 내가 저런 사람들한테 지배를 당했단 말이지? 이런 심리 상태인데 이게 지금 어떤 수를 쓰더라도 누그러지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잖아요."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JTBC 썰전 190화

최순실은 정치인이 아닌 민간인이다. 공식적으론 그녀의 직업은 임대업 종사자이며, 아무런 정치적 능력과 직위도 없었을 뿐더러 이런 것을 가지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최태민의 공작 끝에 정신적으로 종속된 박근혜를 통한 보수층 인맥을 활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자신의 정체를 대중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도 권력을 얻고, 매우 광범위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극도로 가까운 관계에 있던 박근혜가 대통령에 집권하자 최순실은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최순실은 정상적인 정치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실질적 정치적 감각도 지극히 낮았고, 비선이라는 비상식적인 지위는 권력 사용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게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의 권력을 박근혜한테 얻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단기적 이익 및 개인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수층의 상징인 박근혜를 통한 막대한 비선권력과 지하경제를 통해 얻은 자금으로 편파적인 정치적 결정을 밀어붙이는 방식만 고수했다. 거기에다가 오랜 세월 동안 박근혜를 정신적으로 종속시키기 위해 취했던 모든 조치는 역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거물급 정치인주인님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인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최소한의 자기 보신이 가능한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박근혜심각한 비상 사태가 터져도 대처는커녕 그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할 능력 자체가 없었고, 잘 꾸며진 애완용 노예마냥 최순실의 명령만 기다리며 누군가 보살펴주길 기다릴 뿐이었다. 이는 최순실이나 그녀의 측근이 일국의 대통령의 행동에 일일이 손을 쓰거나 정밀한 일정을 짜야 하는 위험성을 가저왔다.

이렇게 제6공화국 이후에도 남아 있던 대통령의 높은 권한이 오직 최순실과 직계혈족의 기호를 만족시키거나 차후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정작 그 책임자는 최소한의 자의지나 판단 능력도 없던 결과 박근혜 정부의 대부분 경제 및 정치적 결정은 외부의 시선에선 지극히 비합리적이거나 영문을 알 수 없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순실은 이에 따른 사후조치를 취하긴 커녕 오히려 즉흥적 인사관리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유지하는 안전장치를 하나둘 제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누적된 결과 연쇄적 나비효과로 인해 자기 자신이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즉, 비선인 최순실이 정치인임을 가정한다고 해도 그녀의 행보는 탐관오리 및 무능한 관리자로서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이 대중에 공개돼선 안 됐을 비선실세였음에도, 처신을 조심스럽게 하거나 장기적으로 이를 정당화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지도자로서 4년간 한 일은 이제까지처럼 열심히 부정한 재산을 축적하고 세탁해서 은닉한 것 뿐이었고, 최순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핵심 인사들조차 검증되지 않았고 극도로 개인적인 사람들로 선정한 뒤 개인 감정에 치우쳐 그들의 처우와 직위를 멋대로 결정하는 등, 한 나라의 지도자는커녕 단기적 이익에 눈이 먼 임대업 종사자가 영세 임대인을 대하듯 운영하고 있었다.

결국 이 사람도 상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로 최태민이 얻은 비정상적인 재산과 권력에 중독돼서 어렸을 적부터 자기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착각한 철부지일 뿐이다.[16] 만약 최순실이 박근혜와 관련 없는 평범한 사회인이었다면, 민주 사회의 정치계에는 발도 내밀 수 없는 최악의 정치 관계자였던 셈.

4.1. 파멸적인 인사관리

가장 큰 문제는 최순실이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하면서 국가 정책을 마음대로 주물렀음에도 자기 자신은커녕 휘하 인사들도 무능력한 이들로 구성하게 만든 것이다. 비록 본인이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해도 적절한 인사를 배치함으로서 무마할 수 있으며, 최순실 본인도 자신이 국정관련 보고서를 접한다고 해도 해당 사안을 검토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7]

떄문에 당시 비선국정 운영은 최순실 본인에게 보고서가 오면 그걸 자기 주변 사람들한테 조금씩 나눠준 뒤 적당히 지시만 내리면, 주변과 박근혜 휘하 인사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인 최순실 본인이 정치적 정당성은커녕 공개석상에 얼굴만 보여도 치명적인 정치적 위기에 빠질 사이비 교주의 딸이자 졸부 아줌마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로 인해 자신과 직접 접촉하는 핵심인사는 고영태차은택 같은 약점을 잡기 쉬운 극도로 개인적인 사람이거나, 문고리 3인방과 같은 권력욕에 눈이 멀대로 멀어 비선조차 눈 감아줄 수 있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전자나 후자 모두 실질 국정 운영 능력 및 경험 수준은 바닥을 길 수밖에 없었고, 국정의 실질적 제1목표인 최순실 일가의 국정사유화를 은밀히 추진하려다 보니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왕년의 법꾸라지 하나 추가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정부 당시 대부분의 실정이 일어난 이유는 최순실 주변 사람들의 열악한 능력 때문이었다. 한국의 외교 정책이 어떤 때는 중국 열병식에 참가하고 AIIB에 가입하는 등 친중으로 가다가, 얼마 후에는 돌연 일본과의 위안부 졸속 협상을 맺고 국민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일본과의 정보 공유 협정을 강행하는 등 친일로 가는 식으로 오락가락했고, 경제와 문화는 창조경제라는 간판만 내려놓고 우왕좌왕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 가계

  • 조부 최윤성(1892 ~ 1945)
  • 조모 미상
  • 외조부 미상
  • 외조모 미상
  • 시조부 미상
  • 시조모 미상
    • 시부 미상
      • 배우자 김 모씨(? ~)
        • 장남 김기대(1983 ~)
  • 시조부 미상
  • 시조모 미상

6. 여담

  • 조순제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최순실은 박근혜 옆에 사람이 오래 붙어있는 것을 못 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최순실은 삼성동 집을 관리할 때도 집사들을 수시로 교체하는 등 박근혜가 정을 못 붙이도록 하여 자신에게만 의존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
  • 오유에서 자기 재산만 수십조에 달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 굉장히 탐욕스러운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부리는 부하 직원한테는 월급 200만 원도 주기 아까워할 만큼 인색한 성격이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 # 결국 최순실 본인이 부하 직원들의 내부 고발로 인생이 파탄난 걸 보면, 자신이 가진 부를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줘야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 구치소에 수감된 사이에 일반인과 접견한 횟수가 무려 200회에 가까운 198회로, 변호인 접견까지 포함하면 553회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구속 수감된 수감자들 중에서 가장 많다. # 참고로 같은 주범인 박근혜는 일반인 접견 수가 단 한 명도 없는 것과 대조적. 심지어는 지지자들과 그녀의 측근인 조원진조차 접견을 거부했다.
  • 2019년 7월 18일, 최순실이 구치소 목욕탕에서 넘어져 이마 봉합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 28바늘을 꿰맸다고 한다. 최씨측은 “구치소 안에서 움직임이나 운동량이 적다 보니 하체 힘이 부족해져 넘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6.1. 모욕죄 인정 판례

최순실의 이름이 국가공인 모욕 표현이 되었다(...) 비록 1심이라해도 전과까지 합쳐져 실형이 선고된 판례도 있다(법률뉴스)(2017고단1823). 사실상 대한민국의 금지어로 지정된 셈이다. 취급이 심히 안습하다고 할 만 하지만 어차피 이 인간이 한 짓거리를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다.

7. 어록

  • 2016년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 나라 위해서 열심히 뜻 모은 것 아니냐.
- 최순실 #
10.31 = 국민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12.19 = "독일에서 왔을 때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새벽까지 많은 취조를 받았다. 이제 재판에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 (직권남용·강요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 2017년
1.5 = 억울한 부분이 많다. 재판부가 밝혀주기를 바란다. (직권남용·강요 혐의 첫 재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에 관한 의견을 묻자)
1.31 = "내가 모든 걸 앞장서서 한 것처럼 돼 억울하다. 기업에 내가 1천억 원을 얘기했다는 건 너무 황당무계한 얘기다."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 등 증인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며)
3.13 = "국정농단의 일당으로 여기 앉아 있는 게 국민한테 죄송하고 마음이 착잡하다. 제가 안고 갈 짐은 안고 가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열린 재판에서 심경 내비치며)
3.17 = "국가적 불행 사태와 대통령 파면이라는 원죄에 국민께 사과드린다. 재판장님께 얼굴을 들 낯도 없고 살아갈 이유도 모르겠다." (박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한 심경 드러내며)
4.17 = "저는 의리와 신의를 지키고 그분을 존경했다. 이 나라에서 뽑은 사람들이 있는데 대통령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재단 강제모금 사건 재판에서 검찰 측 피고인 신문을 받으며)
4.17 = "그만 좀 물어봐라. 똑같은 질문을 똑같이 물어보면 내가 정신병이 들겠다." (검찰의 피고인 신문 도중 유사 질문에 짜증 내며)
5.15 = "저를 파렴치한 도둑으로 몰고 가면 이 땅에서 살 수가 없다. 이제 정의사회이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새로 대통령이 탄생하셨기 때문에 제대로 밝혀야지, 의혹보도만 하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억울함을 강조하며)
5.19 = "검찰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자백하라고 추궁당했다. 검찰은 개혁 대상이다." (재단 강제모금 사건에서 변호인 측 피고인 신문을 받으며)
5.23 = "40여 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다. 이 재판이 정말 진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주고, 나라를 위해 살아온 대통령으로 남게 해줬으면 좋겠다." (뇌물 혐의 재판에서 공범인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서)
5.29 = "유연이는 삼성 말 한 번 잘못 빌려 탔다가 완전히 병신이 됐고 승마협회에서도 쫓겨났다. 애를 죽이려고 하지 말라." (딸 정유라의 강제송환 소식을 들은 후)
7.26 = "특검이 저희 딸을 데려가서 먼저 신문한 건 딸로 저를 압박하려는 것이고 제2의 장시호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특검이 딸과 제 목줄을 잡고 흔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증언 거부하며)
9.12 = "역사는 진실이 오고 시대가 오기 때문에 꼭 밝혀진다. 그렇게 억지 쓰지 말라." (자신에게 불리한 딸 정유라의 증인신문 조서가 검찰 측 증거로 제출되자)
10.19 = "한 평 되는 방에서 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화장실도 다 열려 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감내하며 재판에 임해왔다. 지금 약으로 버티는데, 고문이 있었다면 웜비어와 같은 사망 상태에 이를 정도로 견디기 힘들다. (추가 구속영장 발부는 피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며)
11.9 = "고영태의 기획에 검사들이 일부 가담하거나 JTBC가 기획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1년 동안 해왔다. 저는 오늘 이 태블릿PC를 처음 봤는데 이런 건 쓰지 않았다." (법정에서 태블릿 PC를 검증한 후)
11.16 = "1평짜리 독방에서 너무 비참하게 살아서 재판도 받고 싶지 않다. 인민재판과 다를 게 뭐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3차 구속영장 심문 절차에서)
11.24 = "못 참겠어. 죽여주세요. 빨리 사형을 시키든지 나 못 살겠단 말이야. 억울하다고요." (재판 휴정 직후 갑자기 오열하며)
12.7 = "대통령과 나는 상하관계에 있다. 그런 것을 청탁할 만큼의 사이가 아니다." (삼성 뇌물 사건 프레젠테이션 공방 절차에서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를 부인하며)
12.13 = "동반자라면 내가 대통령과 같이 살았다는 거냐 연애를 했다는 거냐. 투명인간처럼 살아야 했는데 어쩌다가 노출돼서 이렇게 됐다." (마지막 증거조사 마무리 후)
12.14 = 한 번도 사익이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는데 검찰에서 1천억 원 대 세금과 벌금을 물리는 것은 사회주의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더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징역 25년, 벌금 1천 185억 원, 추징금 77억 9천 735만 원을 구형하자 최후 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면서)
  • 2018년

참고 자료

8. 관련 사진

파일:천하의_개썅년.jpg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2044179_STD.jpg
파일:20160921230216346593_99_20160921230405-1.jpg

옛날 어린이집 부원장 시절의 모습. 최상단의 모습이 2000년대 초중반 쯤의 모습이며, 그 당시 최순실이 가르쳤던 아이들은 지금쯤 고등학생 내지는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파일:27127_53141_5613.jpg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사진. 언론에서도 자주 쓰고 풍자용으로도 쓰인다.

파일:/image/421/2016/10/31/2209448_article_99_20161031153706.jpg

2016년 10월 31일 검찰 출두 당시 모습. 뒤에 있던 민중연합당의 시위로 취재라인이 무너져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비선실세라는 사람의 해명은 안 나오고, 질질 짜는 모습만 나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최순실 대역설이 나돌기도 하였다.

파일:external/img.hani.co.kr/53_1482150877_00503435_20161219.jpg

2016년 12월 19일 법정.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작은 목소리로 의기소침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카메라가 꺼지자 목소리가 커지고 고개를 들고서 사진과 같이 주위를 째려봤다.

파일:external/img.newspim.com/20170125112445_w.jpg

2017년 1월 25일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강제 구인되면서 반성은 커녕 억울하다고 외치는 장면. '특검이 민주적이지 못하다', '너무 억울하다'고 외치는 장면으로, 문제의 염병하네 발언이 나온 그 장면이다.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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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56년 6월 23일.[2] 첫 번째 남편 김 모씨 소생.[3] 두 번째 남편 정윤회 소생.[4] 정식 학부생(대학에 입학 시험을 치르고 들어와 졸업해 학위를 수여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내고 수업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청강생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청강생 문서 참고. 참고로 최순실은 정작 청강생 신분에서도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5] 재판에서 판사가 직업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6] 2014년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해당 발언은 2015년 1월에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내용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박 前 경정의 말을 '황당한 권력 서열 강의' 정도로 치부하였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실로 드러났다.[7] 개명 후 이름으로 법원, 헌재 재판 등에서는 본명(최서원)을 많이 사용하나 국회 국정 조사에서나 언론, 일반인 등에게는 개명 전 이름인 최순실을 훨씬 더 많이 기억하고 사용한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재판 및 심판 자체에서만 법적인 이름 최서원으로 불릴 뿐, 검찰과 특검, 변호인 등 수사 관련하는 사람들에게도 호칭은 최순실이다. 헌재에서도 최순실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의 공식 수사 명목 또한 "박근혜 정부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규명 수사"라, 특검의 공식 발언에서도 최순실이라 부른다. 특이한 점은 이와 달리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와 조카인 장시호는 무슨 상황이든 개명 후 이름으로 불린다는 부분이다. 이는 최순천, 최순득과 이름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수십 년 동안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데다가,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박근혜정부 출범 시기)의 이름도 최순실이었던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국민 감정의 문제도 있는데, "국정농단을 일으킨 주제에 무슨 세련된 이름(서원)을 쓰냐. 그냥 촌스러운 기존 이름(순실)으로 부르자" 이런 심리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듯. 물론 그 전 이름인 최필녀가 최순실보다 더 촌스럽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최필녀는 너무 오래전 이름이라 생명력을 가질 수 없었다.[8] '비선 실세'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씨가 창시한 '영세교'는 어떤 종교?[9] 2007년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벽히 지배했다(had complete control)'는 내용이 있다. 주한 美대사관, 2007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은 한국의 그리고리 라스푸틴... 朴 후보를 지배" 이 보고서와 그간의 정황 김종필과 김현철의 최태민 사생아 발언 등으로 2007년 경선 청문회에서 사생아가 있느냐는 핵직구 질문이 던져질 정도로 박근혜와 내연관계라는 의혹도 있어 왔다.[10] 박근혜 친동생들인 박지만, 박근령 1990년 "누나(언니)를 최태민에서 구해주세요" 대통령에 탄원서.[11] 박근혜의 남동생인 박지만이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2014년 정윤회 게이트 때 한 말이 유명하다. 여기서 물은 최순실 "박지만도 '최순실 통하라'는 말 듣고 살았다", 박지만 "누나, 최순실-정윤회 얘기만 나오면 최면 걸려".[12] 유신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도 박정희에게 여러 차례 최태민을 내칠 것을 진언했다고 하나, 박정희는 최태민을 사실상 방치했다. 오히려 최재석은 박정희와 최태민이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항목 참조.[13]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기업에 헌금 강요, 후견인 자처 등 부친인 최태민의 수법 그대로라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 40년 전 최태민 수법 그대로.[14] 사실 세계일보에서 10월 26일 최순실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이미 7월 17일 TV조선에서 최순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최순실은 카메라를 보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기사. 그런데 정작 해당 영상은 TV조선 내부에서 묵혀두고 있다가 JTBC 태블릿 PC 보도 다음날인 10월 25일에 공개된다.[15] 좋은 뜻으로 묘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16] 당장 최순실에 대해서 조사하던 사람들과 예전부터 그녀를 알던 지인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최순실은 '강남에 가면 흔히 있는 교양 없는 졸부 아줌마'라는 평을 내린다.[17] 최순실을 추척해 온 주진우 기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최순실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최순실이 한 권의 책이라도 읽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한다. # 국정 운영 능력은커녕 기본적인 교양도 의심받는 셈.[18] 최순실의 모친인 임선이가 전 남편인 사이에서 낳은 딸. 조동찬의 사망 시점을 고려하면 1941~1947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 조순제와는 달리 아예 성씨를 최씨로 갈아버렸다.[19] 장유진에서 개명.[20] 2015년 이혼.[21] 최순실이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정유라한테서 떼내려고 할 정도니 사위 대접이나 받을지는 의문이며, 최순실이 정유라신주평이 결혼하는 조건으로 정유라로부터 재산 상속 포기각서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주평 본인이 인터뷰에서 2016년 4월에 정유라와 성격 차이로 결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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