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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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부 박영환 | |||||||
증조부 박이찬 | |||||||
조부 박영규 | |||||||
부친 박성빈 (모친 백남의) | |||||||
박정희 (처 김호남 → 육영수) | 형 박상희 | ||||||
장녀 박재옥 (사위 한병기) | 차녀 박근혜 | 3녀 박근령 | 독자 박지만 | 질독자 박준홍 | 질장녀 박영옥 (질장서 김종필) | ||
상위 문서: 틀:박정희 |
<colbgcolor=#000><colcolor=#fff> 박지만 朴志晩|Park Jee-man | |
출생 | 1958년 12월 15일 ([age(1958-12-15)]세) |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 (現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고령 박씨[1] |
직업 | 기업인 |
현직 | (주)EG 회장 |
부모 |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육영수 |
형제자매 | 이복누나 박재옥 친누나 박근혜 친누나 박근령 |
배우자 | 서향희 |
자녀 | 장남 박세현(2005년 9월 12일생) 차남 박정현(2014년 1월 14일생) 삼남 박지현(2015년 4월 28일생) 사남 박수현(2015년 4월 28일생) |
학력 | 서울청운국민학교 (졸업) 배문중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
종교 | 불교 → 개신교 (예장통합)[2]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1년 ~ 1986년 (5년)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37기) |
최종 계급 | 대위 (대한민국 육군) |
병과 | 방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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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문의 후예이자 경제인.박정희와 육영수의 아들. 그리고 박재옥의 이복 동생, 박근혜, 박근령의 남동생, 그리고 (주)EG[3]의 회장이다.
2. 생애
1958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4]에서 당시 육군 제1군 참모장 박정희 소장과 후처 육영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재옥[5], 박근혜, 박근령 3명의 누나를 두었다. 1974년(고등학교 1학년)에는 어머니 육영수, 1979년(육사 3학년)에는 아버지 박정희를 잃었다.1977년도 육사 입교식에 참석한 뒤 육사 생도 정복 차림의 박지만을 만난 누나 박근혜(왼쪽), 박근령.
1977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해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 박지만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버지 박정희가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진다.[6]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매부 신동욱의 주장에 따르면 육사 졸업 직후인 당시 누나 박근혜, 박근령과 함께 성북동에 살면서 잠시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박근령이 신동욱에게 말하기로, 박근혜가 국을 잘 끓였다고 하는데, 박지만을 위해 북어국을 자주 끓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신동욱은 당시 박지만이 술을 많이 마셨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친하던 남매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은 박근령의 이혼이 계기였다고 한다. 1982년 박근령의 결혼 이후에 박근혜의 집에 자주 오던 최태민이 박근령에게 이혼을 부추겼고, 결국 결혼 후 1년도 못 가 박근령은 이혼한다.[7] 당시 사회분위기상 여성의 이혼은 손가락질 받았기에 박근령은 도미했고,[8] 이를 계기로 3남매 간의 교류가 끊기게 된다.
박지만 본인은 4학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생도대장이 아버지에 대해 심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환멸이 느껴져 전역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후광은 후광인지, 임관 후 장교로선 꿀보직인 빌딩 GOP 소대장을 지내는 등 매우 편하게 보냈다. 군복무보다는 직장생활에 가까웠다. 육사 생도 시절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제법 미남이었으나[9] 현재는 얼굴이 다소 뭉그러져 있는데, 그 이유는 전역하기 1년 전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벽에 차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다.#[10] 1986년에 5년차 전역을 신청, 대위로 전역한다. 전역 후 죽은 어머니가 세운 육영재단에 들어가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에는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마약 중독 및 의존 증상으로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수감되었다.[11]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이던 김대중을 지지하였다.[12] 박지만이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자신이 마약과 술로 찌들던 때 아버지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포스코의 설립자이기도 한 박태준이 후견인 역할을 하였는데 그가 DJ를 지지한 연유가 클 것이고 김대중 후보가 야당 의원이던 시절에 박지만씨가 마약 범죄로 구속되자 야당인 민주당에서 그의 선처를 호소한 것도 이유였다. [13] 그 이듬해인 1998년에는 다시 마약 사범으로 공주치료감호소에 수감되는 불명예를 겪었지만 김대중 정부에 의해 1년만인 99년 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14]
2000년, 삼양산업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EG로 변경하였다. 2004년 12월 14일에 16세 연하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했고, 2005년 장남 박세현이 태어난다. 2014년에는 차남 박정현, 2015년 초에는 쌍둥이 아들인 박지현과 박수현을 얻었다.[15] 그러니까 아들만 넷이다. 게다가 2015년 초반 시점에서 박지만은 58세. 굉장한 늦둥이다. 두 누나는 모두 자식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와 육영수의 직계 후손은 박지만의 아들 넷뿐이다.[16]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구속영장심사를 받는 지경까지 가자 박지만은 "근혜 누나가 최순실 그 식모 나부랭이 따위에게 속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누나를 최순실에게서 분리시키지 못한 죄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최순실이랑 떨어져야 되는데 과연 그럴까 걱정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박근혜가 파면당하고 검찰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할 때 부인 서향희와 함께 찾아갔다. "누나를 만나고 나온 박 회장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큰 누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청와대 경호실 측에 '누나 뒷바라지는 내가 할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박근혜가 구속된 이후 구치소를 방문하며 변호인단 구성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내인 서향희 씨가 직접 변호인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남동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도로 추정한다. 정작 박근혜 본인은 박지만과의 면회를 거부하는 등 이러한 지원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유영하만을 문고리 삼아 현실도피하고 있다. 참고로 그동안 도와주지 않은 이유는 '또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누나가 언론에 남동생을 무시하는 매정한 사람으로 비쳐질까봐'라고 한다.
박근혜가 2018년 4월 6일 재판 1심에서 징역 24년형을 선고[17]받은 후로는 언론과의 인터뷰나 언행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촌매형 김종필 전 총리의 장례식과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따금씩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재수 장군과는 절친한 사이라서[18] 가족들에게 이재수를 소개시키기도 했을 정도라 참석 안 할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복 누나인 박재옥의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3. 논란
3.1. 생도 시절 비행
이미 김재규는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외에도 박지만의 비행을 항소의 이유로 쓰고 있다. 그에 의하면, 품행의 단정이 요구되는 사관생도로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문란한 엽색행각을 서울 시내 호텔에서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육사 2기수 선배였던 노병천 예비역 대령[19]에게 먼지나게 쳐맞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 박정희에게도 많이 맞았다고.3.2. 마약 투약
박지만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을 투약한 것이 6차례 적발되었고, 이 중 무려 5번 구속된 전적이 있는 상습 마약사범이다. 특히 여관, 호텔이나 사창가에서 매춘부들과 수백 차례 마약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져 충격을 줬다.- 1989년 2월 27일, 경찰에 1983년부터 고등학교 친구 및 선후배와 서울 강남구 호텔 등을 돌아다니며 수차례 필로폰을 주사하거나 흡입했음을 자백했다. 이후 동년 10월 31일, 자수한 점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 1991년 3월 7일, 필로폰 상습 복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구속 이유는 1990년 7월, 11월, 12월 그리고 1991년 1월 4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코로 흡입하거나 정맥주사를 통하여 복용한 혐의이다.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다가 동년 8월 31일에 석방됐다.
- 1993년 12월 25일, 1992년 10월 부터 서울 영등포동,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들과 함께 50여회에 걸쳐 필로폰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동년 3월 25일, 치료감호를 선고받고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받다가 1994년 12월 24일에 마약중독 완치 판정을 받고 석방됐다.
- 1996년 11월 19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서울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하는 등 자신의 집, 사창가, 호텔 등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상습 투약을 한 혐의이다.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하였으며, 1997년 2월 25일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이 선고됐다.
- 1998년 2월 2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긴급 체포한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으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1997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주사기를 이용하여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이다. 1심에서 징역 6월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감형되어 벌금 800만원, 추징금 100만원, 치료감호가 선고됐다.
- 2002년 7월 25일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박지만에게 필로폰 투약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월 및 치료감호 그리고 추징금 260만원을 구형하였다. 기소 이유는 2001년 8월 부터 2002년 4월까지 서울시내의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12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윤락녀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이며, 2002년 5월 구속기소되었다.[20]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3.3. 군 인사 영향력 논란
그와 동기인 육사 37기가 육사 한 기수당 평균 6~7명 정도 배출하던 중장을 8명이나 배출하는 바람에 그가 군 인사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으나, 대장만 3명이 나온 32기, 34기도 있는 마당에 중장을 다른 기수보다 1명 더 배출한 것을 두고 인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오히려 그와 절친한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 취임한 지 1년만에 밀려나 전역 대기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것을 보면 영향을 끼친 건 맞는데 악영향이라는 소리도 나온다.[21]
또한 2015년 9월 대장 진급 발표심사에서 신원식[22], 이재수 등 박지만 라인은 전원 광탈했다. 박지만과 동기였지만, 그와 접점이 적었던 김영식 항공작전사령관, 엄기학 합참 작전본부장, 박찬주 육군참모차장을 비롯한 셋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더구나 김영식 중장은 한직을 받고 박찬주 중장은 병과가 기갑인데도 보병이 독식하고 가뭄에 콩 나듯 포병이 나온다는 대장에 진급했다. 더군다나 박찬주의 경우 건군 이래 최초의 기갑 대장이다.[23]
3.3.1. 군 인사 영향력 논란에 대한 반박
32기, 34기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2000년 이후 육사 24기, 26기, 28기[24], 29기[25], 30기[26]에서 대장을 3명 배출했다. 보통 대장은 기수당 2-3명 나오는 일이 꽤 있었으니 이걸 특이사항이라 하긴 어렵다.애초에 이재수 중장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과장, 2작사 인사참모처장,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인사사령관까지 오른, 전형적인 인사 직능의 장군이다. 때문에 군단장 보직조차 거치지 않았고 대신 인사 직능으로선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에 오른 것. 작전 직능이 아니고 군단장 보직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대장으로 진급할 가능성은 없었으니 전형적인 옷 벗기 자리인 제3야전군 부사령관으로 갔다. 기무사령관을 1년 만에 이임한 것만 빼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실 포병이 대장에 진급하려면
- 전포대장
- 포대장
- 대대장
- 단장
- 여단장
- 군단장
이 과정들을 모두 역임해야 한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공란이면 불가능하다. 이재수 중장은 군단장이 공란이라서 대장 진급을 못 한 것이니 대장 진급 누락은 당연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임국선 중장 역시 소위와 중위 시절을 특전사에서 부중대장으로 역임한 탓에 소대장이 공란이 되는 바람에 이 역시 대장 진급이 누락되었다.
전인범 중장의 경우는 정말 승승장구하던 군인이었다. 하지만 특전사령관 시절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로 하사 2명이 사망했다. 구타 가혹행위나 비무장 단순 군무이탈 행위도 지휘관에게는 진급에 치명적인 과사실이 된다. 그런데 이 사고는 그런것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큰 과사실인 사망사고, 그것도 2명이나 사망한 사고이다. 그것도 훈련 중에 일어난 인명사고다. 빼도 박도 못할 사고인 것이다. 이건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27][28]
김영식 대장은 5군단장과 항공작전사령관 자리를 거쳤다. 5군단장은 김현집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이성출 연합사 부사령관이 거쳐간 자리다. 항공작전사령관도 1대 사령관 김판규(육군) 중장은 1군사령관을 거쳐 참모총장에 올랐고, 9대 사령관 이희원 중장도 연합사 부사령관에 올랐으며 가장 최근엔 이순진 중장이 제2작전사령관을 거쳐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에 올랐다. 그게 한직이면 대한민국에 장교 보직은 죄다 별의 무덤이다. 대장이라는 계급의 특수성 때문에, 대장은 계급 자체만으로도 국군 최고의 영광이다. 대장 7명[29]은 하나같이 요직이다. 한직에서 맴돌 사람이었으면, 아예 대장이 되지 못한다. 한직 최고위 보직은 합동참모차장(중장 보직, 육군 한정 한직)과 교육사령관(중장 보직), 육군사관학교장과 국방대학교 총장, 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정도가 있을 뿐이다.
3.4. 정윤회 게이트 관련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윤회씨의 진실공방 이면에는 조 전 비서관과 가까운 박지만 EG 회장의 인맥과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문고리 권력’의 파워 게임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시각이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막후의 양대 파워 그룹이 그간 곳곳에서 충돌을 빚으며 치열한 암투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3.5. 5촌 살인사건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문서 참고.2017년 1월 1일 박지만의 비서실 직원인 주 모씨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2016년 12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57회 'VIP 5촌 살인사건의 진실'이 방영되어 여론의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갑자기 사망한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숨겨진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입막음용으로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시신의 외상은 없다고 경찰이 밝혔다. 유가족은 부검을 요청했다.
3.6.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
박지만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에 대한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을 진행하였다. 2009년 11월 6일 서울북부지법 민사 13부(서창원 부장판사)는 "채무자(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에 대한 서술이 출생에서부터 사망에까지 시간순서에 따른 구체적인 서술이며, 참고문헌이 확실하고 2009년 11월 5일 언론매체에 공개되어 배포금지에 대한 실익이 크지 않다. 채무자의 서술은 학문적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당사자와 그 유족의 인격권을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 등의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였다.4. 기타
- 육군사관학교에 1학년으로 갓 입교했을 당시 4학년 기파생도(육사 34기)가 "귀관들 중 본인은 입교하기 싫은데 강제로 입교한 인원이 있나? 있으면 조용히 손만 들어봐라."라고 물어봤을 때 유일하게 손을 든 인원이 박지만 생도였다.
- 원래는 꽤 훈남이었으나 대위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얼굴이 조금 뭉그러졌다. 지금의 얼굴은 상처를 없애기 위해 수술한 것이다. 왼쪽 얼굴이 오른쪽 얼굴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워 사진빨이 못 받는다고 하며 웃을 때도 근육이 땡겨서 잘 못 움직인다고 한다.
- 박지만이 소위로 임관하던 해에 다름아닌 전두환이 대통령을 하고 있었으며 전두환은 그런 박지만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박지만의 입장에서 최고의 땡보로 부대 배치를 해 줬다.
- 박지만은 슬하에 4남이 있다.[30] 항렬 상으로는 '배' 자 돌림이지만 '현' 자 돌림을 쓰고 있다.
- 장남 박세현: 2005년생([age(2005-01-01)]세)
- 차남 박정현: 2014년생([age(2014-01-01)]세)
- 3남/4남 박지현/박수현[31]: 2015년생([age(2015-01-01)]세)
- 40대 중후반에 결혼하고도 슬하에 4남을 뒀다. 특히 2015년생인 3남 박지현, 4남 박수현은 아버지인 박지만과 57년 차이가 난다.[32] 이쯤되면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만큼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심지어 고모와는 무려 63살 차이난다. 박세현만 가도 53살 차이.
- 더 놀라운 건 이게 4대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인 박정희도 할아버지인 박성빈에게는 엄청난 늦둥이인데 박지만 본인도 아버지 박정희와 나이차가 꽤나 심하다. 박성빈에서 박세현에 이르기까지 죄다 40살 넘게 차이난다. 이렇다 보니 증조할아버지인 박성빈과 증손자인 박세현은 134살 이나 차이나는데 둘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나이차가 된다. 게다가 박정현과는 143살, 박지현, 박수현과는 무려 144살 차이로 더 심하다.
- 할아버지 박성빈(1871~1938): 46살때 박정희 득남.
- 아버지 박정희(1917~1979): 41살때 박지만 득남.
- 본인 박지만(1958~): 47살때 박세현 득남, 56살때 박정현 득남, 57살 때 박지현/박수현 득남.
- 박세현(2005~)
- 박정현(2014~)
- 박지현/박수현(2015~)
-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으로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오히려 박지만은 '자기 누나를 잡아가두고, 이재수 장군[33] 등 주변 사람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사람을 절대 잊을 수 없고, 이런 사람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냐고 하며, 자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난 상태라고 한다.#[34] 박지만 본인도 실제로 직접 문화일보에 편지를 보내 정정했다. 대놓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아마 박지만 본인은 아예 정치적인 언급조차 금하고 있다.[35]
- 2023년 2월 16일에 전직 대통령의 아들들인 김홍업(김대중 前 대통령 차남), 김현철(김영삼 前 대통령 차남), 노재헌(노태우 前 대통령 아들)과 함께 사석에서 만남을 가졌다.[36] 이 자리에서 이들은 최근 극단화된 정치 지형에 대한 우려와 함께 통합과 화합의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아버지들 간에는 정치적인 아픔들이 있었으나 아들들끼리는 싸우지 말고, 앞으로 모임을 자주 가지자고 하였다.(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2023년 11월 14일에는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에 같이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동안 이들과의 모임 참석에 거절 의사를 밝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도 처음으로 참석해서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의외로 이 둘은 이 자리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자리였다고 한다.#
5. 대중매체
[37]
박정희의 아들로서 영상물에서는 제4공화국 및 제5공화국에 등장했다. 제4공화국에서는 장나라의 오빠인 장성원이 연기했으며, 제5공화국에서는 김남길이 연기했다.[38] 특히 김남길은 진짜 젊은 시절 박지만과 굉장히 흡사한 외모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효자동 이발사에서도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나온다. 주인공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다가 어른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주인공 탓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얄미운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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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혐의를 주도한 핵심인물이고, 기울기는 내부고발자 및 피해자이며, 위첨자 †은 게이트 사건이 드러난 시점에 사망한 사람을 뜻합니다. |
[1] 2016년 12월 30일 박진현(여·32·변시2) 변호사가 사임하고 배진혁 변호사(37·사법연수원 43기)가 합류하였다.[2] 제5기 헌법재판소 소장. 2017년 1월 31일 퇴임[3]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2017년 3월 13일 퇴임[4]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출신, 연수원 21기.[5] 판사 출신, 연수원 15기.[6] 판사 출신, 연수원 36기.[7] 검사 출신, 연수원 33기.[8] 검사 출신, 연수원 36기.[9] 로스쿨 출신, 변시 4회.
}}}}}}}}} ||[1] 직강공파 30세손, 혁거세 66세손 재○(在○), 환○(煥○), 인○(仁○)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이복 누나 박재옥이나 사촌형 박재홍 등은 항렬자인 재○(在○)를 썼다.(족보)[2] 청운교회의 집사이다.[3] 산화철 전문제조업체, 복합재료, 염산화수, 설비 엔지니어링, 대기수처리방지시설, 무역 등을 취급하는 회사라고 한다.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소재. 금산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금산은 명목상의 본사일 뿐 회장 집무실을 포함한 오피스 빌딩은 강남에 'EG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포스코의 명목상의 본사는 포항제철소지만 대치동 포스코센터가 실질적 본사인 거랑 같은 이치. 참고로, EG the1으로 유명했던 EG건설(현재는 라인건설에 인수)과는 관련 없는 별개의 회사이다. 코스닥에도 현재 상장되어 있으며 감옥에 들어가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관련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잠시 급등하는 테마주였으나 실제로 사면되고 나서는 테마주가 소멸하면서 주가가 하락추세였다. 하지만 하락 추세였다가 2차전지 관련으로 주가가 다시 상승했으나 2차 전지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다시 원상복귀 되었다.[4] 1975년 10월 1일 중구로 편입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태어나 어린 시절(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을 보냈던 집은 현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5] 박정희가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첫 번째 부인 김호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6] 육사 진학 자체는 아버지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 결정했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어디 갈 때마다 경호원이 붙는 등 속박된 청와대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직~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경호원은 계속 따라다녔다. 박지만은 이를 매우 싫어했으나 막을 수 없었다.[7] 물론 박근령과 시가의 갈등도 있었다.[8] 박근령이 출국한 부분 역시 최태민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9] 젊은 시절 자신 역을 맡은 김남길과 꽤 닮았다. 김남길은 이 드라마에서 이 배역으로 뜨기 이전 신인 시절에 제5공화국에서 박지만 역을 맡은 적 있다. 대사도 거의 없는 단역이였다.[10] 1985년 3월 23일 0시 5분에 피아트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제3한강교 교각을 들이받아 전치3주의 부상을 입어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11] 1989년 처음 마약을 사용하여 구속되었다.[12] 이로 인해 15년 뒤인 2012년 대선에서는 동교동계의 대표적인 인사인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된다.[13]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 각기 다른 당 후보들 지지해 눈길[14] 박지만씨 사면 3.1절 특사[15] 사실 박지만은 둘째까지만 낳고 그만 낳으려고 했지만, 부인이 밀어붙였다고 한다.출처.[16] 박정희 쪽으로만 따지면 장녀 박재옥의 자녀들이 있다. 이 쪽은 박정희에게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된다.[17] 이후 2022년 3월 24일 사면되어 현재 대구에 거주 중이다.[18] 중앙고 시절에는 친분이 없었으나 같이 육사에 입학한 이후 학교 측에서 둘을 붙여줬고 사관생도 시절 4년 내내 붙어다녔다고 한다.[19] 육사는 3학년 생도가 같은 중대의 1학년 생도를 밀착 지도하는데 같은 중대의 선임생도였었다. 노병천 대령은 육사 35기로 동기가 박선우, 신현돈, 황인무, 박남수, 류제승 등이 있었다. 과거 22사단에서 연대장을 지냈으며 육군대학 교수를 끝으로 전역했다.[20] 여담으로 치료감호를 청구했던 검사가 후일 인연을 맺게되는 조응천이다.[21] 어차피 이재수는 군단장 경력 없이 인사사령관만 6개월 하다 기무사령관으로 이동했고, 인사사령관을 지낸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인사 직능이었다. 한마디로 원래 대장 진급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며, 기무사령관 임기를 못 채우고 전역 대기직으로 이동한 것.[22] 2023년 현재 제49대 국방부장관.[23] 박찬주는 박지만의 동기라는 것보다 김관진/한민구 라인이였던 것이 대장 진급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24] 김관진, 박흥렬, 김병관[25] 김태영, 백군기, 임충빈[26] 이상의, 김근태, 이성출[27] 중장 진급이 3차여서 늦기는 했지만 이건 바로 밑 기수인 38기 유일 대장인 임호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의 예시로 반박이 가능하다.[28] 다만 당시 13공수여단장인 정재학 준장은 이후 소장에 진급에 성공해 50사단장으로 이동했으나, 일과 시간 이후에 회관에서 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시키는 등의 논란을 일으켰고, 이게 전국으로 보도되면서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을 거쳐 한직인 육군학생군사학교장으로 내쫓겼다.[29] 합참의장, 3군 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30] 박성빈이 박정희를 47세에 낳았고, 박정희는 박지만을 42세에 낳았으며, 박지만은 아들들을 40대 후반에 1명, 50대 후반에 3명에 낳았기 때문에 부자간, 조손간에 나이차가 상당하다.[31] 쌍둥이이다.[32] 할아버지인 박정희와는 98년 차이가 난다.[33] 박지만, 이재수 모두 같은 육군사관학교 37기이다.[34] 이언주가 직접 박지만과 만나 식사를 하며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언주도 이때부터 친홍인사로 분류되고 있었다.[35] 박근혜의 사촌오빠인 박준홍은 대놓고 홍준표 지지를 선언했으며, 항간에는 박근혜도 주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홍준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작은누나인 박근령은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윤석열이 대구 75.1%, 경북 72.8%를 득표하는 등 별 영향은 없었던 듯 하다. 사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지금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전부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오는데 그렇다고 박근혜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비판적이고 반대편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자신을 수사한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그나마 출당이라는, 비교적 약하게 대한 홍준표(실제로 홍준표는 박근혜를 처음부터 칼같이 출당시키지 않았다. 먼저 스스로 탈당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몇 번이나 정중히 권했지만 본인이 아예 묵묵부답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는 박근혜의 1심 판결이 유죄가 나와 출당 명분이 생길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자고 바른정당을 설득했다.)나 자신이 정계에 진출시킨 이준석을 지지할 수는 있다.[36] 언급된 기사들을 통해서 보면, 박지만이 김현철이 이사장으로 있는 '김영삼민주센터'에 거액의 기부금을 낸 것을 계기로 만났다고 한다.[37] 여담으로 사진 아래 개표 현황은 2005년 재보궐선거 당시 개표 상황이었으며, 보수 텃밭인 경상북도 지역에 열린우리당 후보가 앞서고 있는것이 상당이 의아할 수도 있지만, 막판에 한나라당 후보가 역전하며 4% 득표율 차로 당선됐다.[38] 알다시피 김남길이 현시점에서는 인기가 많지만, 2005년에는 새내기였다. 김남길이 스타덤에 오른 작품이 다름아닌 2009년에 방송된 바 있는 선덕여왕이다. 김남길은 2008년까지 무명이었다가, <선덕여왕>의 비담(선덕여왕)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