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11:55:23

한남대교

한강의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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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1968년 12월 21일 (한남IC 개통)
1969년 12월 25일 (한남대교 개통)
관리
파일:서울시설공단.png
길이 / 폭
길이 919m, 폭 51.2m(12차선)
구조형식
구교 3경간 연속 강판형교
(Continuous Steel plate girder Bridge)
신교 강판형교
(Steel plate girder Bridge)
강합성상형교
(Steel Box girder Bridge)
접속도로
강남대로 (41번 서울특별시도)
파일:attachment/DSC03907.jpg

1. 개요2. 역사3. 구조4. 교통
4.1. 이 다리를 경유하는 버스 노선
5. 기타6. 옛 명칭: 제3한강교
6.1. 가요
6.1.1. 기타
6.2. 영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혜은이의 제3한강교 도입부.

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강남구 압구정동[1]/서초구 잠원동[2] 사이를 잇는 길이 915m, 너비 27m 6차선 도로였던 구교, 그리고 하류 방향에 길이 919m, 폭 25.5m의 신교를 추가한 다리로 한강에서는 네 번째로 건설된 교량이다. 경부간선도로와 연결되어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의 진입 관문 역할을 한다. 또한 북으로는 한남대로-삼일대로로, 남으로는 강남대로로 이어진다. 경부고속도로-한남대로로 이어지는 아시아 고속도로 1호선의 일부.

전 세계의 교량들 중에서 왕복 차로 수가 가장 많은 대교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교량들 중에서 가장 왕복 차로 수가 많은 대교는 미국 뉴저지의 왕복 15차로의 Driscoll Bridge이다.[3]

경부고속도로의 옛 종점이기도 하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부터 2002년까지는 한남IC의 일부였다. 현재는 경부고속도로의 종점이 양재IC로 단축되어 경부간선도로의 종점이 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부고속도로 입구라고 아직 부르고 있다. 나들목 구조물은 남단 바로 아래 쪽에 있는데, 별개의 구조물이다. 한남동이 아닌 압구정동에 있지만 한남나들목이라 이름 붙은 이유는 한남대교의 남단에 있기 때문이다.

2. 역사

본래 한남대교의 위치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져오던 나루터로 한강진으로 불리었다. 한양의 남소문을 빠져나와 한강진을 건너 현재 강남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는 길은 전통적인 영남대로의 루트 중 하나였으며, 근대화 이후에도 당연히 이 일대는 교통 수요가 많았기에 교량 부설 예정지 중 하나였다.

구교의 길이는 915m이며, 너비는 27m로 이 가운데 보도가 3m를 차지했다. 6차로 교량으로 1966년 11월 27일 공사에 착공, 3년 1개월 만인 1969년 12월 26일 오전 11시에 준공하였다.[출처]

한남대교의 건설 목적은 서울 강북 주민의 전시 피난용 다리 역할이었다.

개통 이후 경부고속도로강남대로 등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 역할을 하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판에 구멍이 뚫리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였다. 원인은 다리 관리 부실로 인한 노후화. 한남대교는 2등교로 32톤 이상 화물차는 통행이 금지되었는데,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기 편리하므로 무거운 화물차가 이 다리로 자주 다녔다. 또한 이 무렵 교통량이 크게 증가하여 한남대교 위에서 연일 교통 체증이 일어났는데 이 또한 노후화를 가속했다. 이 때는 교통량이 너무 많다 보니 차로를 조금씩 줄여서 7차로를 만든 뒤 정중앙 차로를 가변차로로 운영했지만 그래도 교통 체증은 여전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뒤 교량 안전점검을 하자 한남대교도 붕괴 위험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또한 이 구간 교통체증도 워낙 심해서 옆에 같은 넓이의 새 교량을 건설, 최종적으로 왕복 12차로로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1996년 12월부터 기존 교량의 하류에 너비 25.5 m, 길이 919 m인 새 교량을 건설하여 2001년 3월 개통했다. 이후 기존 다리를 2등교에서 1등교로 올리기 위해 상판을 전면적으로 다시 갈고 구교와 신교를 합쳐서 너비 51.2 m 왕복 12차로로 확장하고, 경부간선도로에서 올림픽대로 김포방향으로 직결하는 고가도로를 만드는 등 대공사를 벌여 2004년 8월 9일 재개통하였다.

3. 구조

상부구조의 주된 형식은 강상형이다. 형하고가 필요한 북단의 강변북로중앙선 상부구간과 남단의 올림픽대로 상부구간은 강판형교로 설치하였다.

4. 교통

서울의 양대 중심지인 사대문안강남, 그리고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와 모두 연계된다. 서울지방병무청사회복무연수센터를 연결하는 버스는 무조건 여기를 지나간다.

1969년 12월 26일, 한남대교가 개통되고 경부고속도로1970년 7월 7일에 전 구간 개통되어 국내 전 지역이 일일생활권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서울의 강남 지역에 대규모 헬게이트개발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된 교량이다. 지금도 교통방송에서 하루동안 전하는 '한남대교 남단의 교통상황' 횟수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서울 최고의 교통요지.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가장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 포인트이다. 2018년 기준으로 한강을 지나는 교량 중에서는 진출입량이 무려 20만대(정확히는 양방향 210,198대/일)가 넘어간 유일한 교량이다.[5] 한남대교 하나만 막아놓아도 서울, 아니 전국적인 교통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 구간에서는 성산대교와 함께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교량. 과거에는 경부고속도로-한남대교-한남1고가차도-남산1호터널-삼일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 루트를 거치면 전국의 고속도로와 신호 없이 바로 광화문으로 통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그 중요성이 더 높았다.

북쪽으로는 한남대로에서 이어지는 삼일대로(남산1호터널)와 소월로, 독서당로, 장충단로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강남대로경부고속도로에 연결되어 서울 도심강남, 더 나아가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곳곳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심에서 출발하여 성남시/분당신도시, 용인시, 수원시, 동탄신도시 등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들은 대부분 이 다리를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또한 광주, 전주 등 호남 지방에서 출발하여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도 한남대교를 경유한다. 예전에는 경유하지 않았으나 논산천안고속도로에 있는 정안알밤 휴게소환승휴게소로 지정되면서, 논산천안선 진입의 편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어 일어난 현상이다. 따라서 강일IC로 진입하지 않고 한남대교 및 성수대교를 경유해 서울TG를 찍고 간다. 반대로 동서울터미널에서 호남 지방으로 갈 때에는 성수대교를 주로 이용한다. 하지만 호남권 노선이 아니어도, 가끔 대구대전 등지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갈 때 강일IC 대신 한남대교와 성수대교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경부고속도로중앙버스전용차로 때문이기도 하다.[6]

한남대교 북단 하부에는 경원선(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한남역이 있다. 경원선으로 인해 한남대교 북단은 강변북로와의 연결이 성수대교나 한남대교 남단에 있는 입체 교차로처럼 원활하지 못하다. 도심 쪽에서 동호대교 방면으로 빠지는 램프와 동호대교 방면에서 도심이나 강남으로 연결되는 램프가 없다. 단 도심 쪽에서 반포대교 방향으로는 갈 수 있으며, 위에 나열한 경우도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갈 수 있다.

또한 2009년 7월 1일에는 한남대교 전망대를 개장했는데, 신사동에서 남산으로 올라오는 방향에만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강북에서 오려면 신사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되돌아와야 하며, 버스들 대다수가 사람이 안 보이면 쌩 통과하므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4.1. 이 다리를 경유하는 버스 노선

5. 기타

초기에는 4차선으로 계획되었으나, 비슷한 시기 북한에서 6차선 교량을 평양에 개통시키자 부랴부랴 6차선으로 다시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평양의 다리보다는 미묘하게 더 넓은 정도로(...) 지금은 아예 폭 51미터짜리 쌍둥이 다리로 커버렸으니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방송인 송해의 외아들이 이 곳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3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지만 결국 요절했고, 이 사건 이후 송해 본인은 한남대교 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7]

2004년 상류쪽 다리의 재개통 직전에 서태지Live Wire MV를 찍었다. 2분 40초경부터 아직 차선도색이 되지 않은 포장상태의 상판이 나온다.

2008년, 前 해태 소속 야구선수 이호성의 시신이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곳이 야갤러들의 성지가 되었다.[8] 자세한 내용은 이 항목을 참조하라.

2009년 즈음까지만 해도 다리 남북단에 호랑이 석상 2쌍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사자상이라고 불렀지만, 몸통에 줄무늬를 묘사한 흔적이 있었으므로 호랑이가 분명했다. 1992년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한남대교에 있는 호랑이 석상의 이빨을 만지거나 끓인 물을 마시면 운수가 트인다고 밤중에 망치로 이빨을 떼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 그러나 2010년쯤에 해태 석상을 먼저 남단에 세우고 나중에는 북단에도 세웠다.

2015년 영화 강남1970에 1969년 즈음[9] 한남대교가 나온다.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 초반 1980년 5월 배경의 한남대교가 나온다. 그런데 그 시절인데도 지금처럼 교량이 2개로 나온다. 완벽한 고증 오류. 아무래도 그냥 촬영 당시(2016년)의 한남대교 모습 그대로에 다니는 차량들만 옛날 차들로 하고 일부 주변경관과 이정표의 글씨체를 그래픽으로 손 보는 정도로 끝낸 듯.

6. 옛 명칭: 제3한강교

개통 당시에는 제3한강교로 불렀는데, 한강을 연결하는 교량 중에서 네 번째로 지어졌지만, 광진교를 제외한 인도교 중에서 세 번째로 지어졌기 때문이다.[10] 1985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하면서 너무 많아진 한강상의 교량명을 정리하였고 이때 이 다리도 한남대교로 바뀌었다.

6.1. 가요

혜은이가 1979년 발표한 노래. 길옥윤이 작사, 작곡했다.
[11]
  • 가사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채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저속하고 청년들의 방황을 조장한다는 이유 금지곡이 될 뻔해서, 지금 불리는 건전한 가사로 바꾸게 되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6.1.1. 기타

6.2. 영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1979년에 상영한 영화에 대한 내용은 제3 한강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가요가 인기를 끌자 만든 영화. 원미경, 이계인 주연으로 1979년에 상영하였다. 흥행은 중박 정도. 당시에는 이렇게 가요가 인기를 끌면 해당 가수를 출연 시켜서 가요 제목을 가진 영화를 제작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당대의 인기 가수였던 남진 , 나훈아도 자신의 히트곡과 같은 제목의 영화에 출연했다. 최후기에 이상은의 담다디가 히트하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을 즈음하여 이후로 이런 경향은 없어진다.


[1] 강남에서 강북 방향[2] 강북에서 강남 방향[3] https://web.archive.org/web/20120323215304/https://www.tollroadsnews.com/node/1492[출처] 1969년 12월 26일자 경향신문동아일보[5] 2018년 서울시 교통량조사 보고서[6] 상봉대전 노선도 중앙버스전용차로 때문에 아스트랄한 경로로 간다.[7] 비슷한 케이스로는 인디가수 요조가 있다.[8] 한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므로 누군가가 투신하여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면, 투신장소는 (반포대교의 동쪽에 있는) 한남대교나, 그보다 더 동쪽에 있는 다른 다리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9] 한남대교를 건너는 장면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축하하는 구조물이 보인다.[10] 참고로 제1한강교는 한강대교, 제2한강교는 양화대교이고, 완공 순서로 정렬하면 한강대교-광진교-양화대교-한남대교 순.[11] 해당 영상은 1982년에 제작된 <고향의 노래>라는 관제 영상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금지곡이 될 뻔한 원래 가사로 제작되었다. 거기다 개사된 이유가 저속하고 청년들의 방황을 조장한다는 점 때문이었으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라는 내레이션까지 나온다.[12] 감독이 추천한 3장면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