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0 00:12:46

행주대교

한강의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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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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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교
Haengjudaegyo (Way Bridge) | 幸州大橋

관리기관
행주대교 서울특별시
자유로 경기도 고양시
구조형식
프레스트레스트 케이블[1] 사장교
(PC[2] Cable-stayed girder Bridge)
프레스트레스트 콘크리트 합성상형교
(PC box girder Bridge)

1. 개요2. 구 행주대교3. 신 행주대교4. 연결5. 경유 시내버스6. 여담

1. 개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과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한강의 다리. 39번 국도 상의 다리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최서단에 있는 다리이다. 행주대교 남단은 올림픽대로의 종점이기도 하다.

한강의 다리 중에서 특이하게도 남북으로 횡단하는 교량이 아예 별개로 나뉘어 있다.[3]

2. 구 행주대교

1978년에 교량 폭 10m, 왕복2차로의 규모로 최초 준공되었다. 이 때는 고양이나 김포나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고 당연히 시로 승격되지 않고 군으로 남아있을 만큼 논밭만 있는 허허벌판에 가까웠던데다가 자가용 수도 별로 많지 않아 왕복2차로로도 충분히 교통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주변 지역에 일산신도시, 중동신도시신도시가 들어서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왕복 2차로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교통망 구축을 위하여 1980년대에 행주대교 신교량 부설계획이 수립된다. 신교량은 각각 3차로의 동일한 규모의 교량 두 개가 건설 계획되어 고양시와 서울특별시에서 각각 한 교량씩 담당하여 건설하였다.

파일:6000094291_20080919.jpg

신 행주대교와 2차 신교량까지 준공되고 난 후 구교량은 차량통행이 차단되고 인도교로 한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구교량의 노후화에 따른 통행안전 문제로 입구에 블럭담을 쌓아 교량 통행을 완전 차단하였다. 이후 2011년 배가 다닐 수 있게 일부 철거된 뒤 예산문제로 방치되고 있다가 고양시에서 옛 행주대교는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 다리로 변화시킨다고 한다.

3. 신 행주대교

최초에 고양시에서 서울특별시 방면으로 시공된 1차 신교량(신행주대교)은 주탑을 세워 콘크리트로 지지하는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로 1987년 착공하여 1992년 12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2년 7월 31일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의 부실시공으로 교량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오히려 수도권 일대의 교통난을 악화시켰다.[4][5]

파일:attachment/44444_1.jpg
▲ 우측의 구교량과 주탑과 상판이 모두 붕괴된 1차 신교량의 모습.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예고한 것이다.

결국 과다하중을 일으키는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 대신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 및 재시공하여 1995년 5월 총 3차선의 규모로 개통하여 구교량과 함께 사용되었다. 기존 구교량의 왕복 2차선 도로에서 확장되어 총 왕복 5차선의 도로폭을 가지게 되었는데, 신교량의 경우 고양->서울 방면이 서쪽의 두개 차로를 차지하고, 서울->고양 방면의 화물차량 전용차로 1개를 내주었으며, 구 교량의 차로 2개는 협소한 교량 규모와 노후화의 이유로 서울->고양 방면 승용차 전용차로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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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신교량(좌측 두 교량)과 구교량(가장 우측)이 함께 있던 모습.

1996년부터는 1차 신교량과 구교량 사이에 서울특별시에서 고양시 방면의 2차 신교량(제2신행주대교)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2000년 12월 16일 같은 3차선의 규모로 개통되었다. 1차 준공된 신교량과 똑같은 규모였으나 1차 신교량에서의 주탑과 케이블로 지지하는 사장교의 형태가 아닌 일반 교량의 형태로 시공되었다.

4. 연결

행주대교 자체가 39번 국도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쪽으로 직진하면 능곡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능곡고가차도를 통해 능곡시내를 우회하여 화정 방면으로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나들목의 헬게이트가 열린다. 행주대교를 건너자마자 개화IC를 통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데, 개화IC가 끝나기도 전에 48번 국도와 교차하는 고촌IC가 나타나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개화IC와 고촌IC가 연속되면서 진출입로가 자기 멋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여튼 이 구간을 통해 부천, 김포, 김포공항 방향으로 차량이 흩어진다.

다리 북쪽의 덕양산행주산성이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한강을 달리다 행주대교를 건너 행주산성 근방에서 국수를 먹고 오는 것을 하나의 코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행주대교 북단에서 행주산성 주변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5. 경유 시내버스

2019/11/22 기준 정보이며, 별도의 서술이 없는 한 전방향 경유이다.

6. 여담

구 행주대교에는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하여 흑역사가 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인 하나회 소속이던 제1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6] 준장수도경비사령부 소속 헌병의 관할이 아닌 구 행주대교를 지나가려 하였다. 결국 남단 쪽 검문소에 있던 제30보병사단 소속의 헌병들을 제압하고 육군본부로 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나 1공수여단장이다. 바리케이트 치워.


[1] 본래 콘크리트 사장교로 설계되었으나 시공중 붕괴사고로 인해 교량 하중을 줄이기 위해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되었다.[2] Prestressed Concrete[3] 다른 하나는 강동대교인데, 심지어 강동대교는 교량이 하남 방향, 의정부 방향 1,2차로, 3,4차로로 총 3개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4] 공교럽게도 바로 전날에 남해 창선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도 개탄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지만 2년여 뒤의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5] 이 사고가 발생하였을 당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때였는데다 건설중인 교량이 붕괴된 사고였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너무나 쉽게 잊혀진 사고였다.[6] 육군사관학교 12기 출신이었으며, 후일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