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03:40:33

한강철교

한강의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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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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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 배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C-D-A-B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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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파일:koraill_ogo.jpg
구조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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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ren Truss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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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교 더블 워런 트러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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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鐵橋 / Hangangcheolgyo(Railway Bridge)

파일:attachment/IMG_1723.jpg
가로로 본 모습. 미니어처로 보일 수 있겠지만 틸트 시프트(tilt-shift) 효과를 사용하여 미니어처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파일:한강철교.png
세로로 본 모습. 왼쪽부터 C선, D선, A선, B선이다.



1. 개요2. 역사3. 구조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용산역)과 동작구 노량진동(노량진역)을 잇는 길이 1,110m의 철도 전용 교량이다.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1]로 총 4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간은 '용산구 이촌동 172-1'번지 쪽 도로부터 노들로 쪽 까지이다. 관리는 전구간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담당한다.

2. 역사

원래 미국인인 제임스 모스가 경인선 건설과 함께 부설권을 획득했다. 당시 계약은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보도 전용 다리를 옆에 같이 건설하게 되어 있었다.

1897년 3월 29일에 기공식을 올렸다. 그러나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모스는 이 부설권을 일본에 넘겨 버리고, 일본은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보도 전용 다리는 부설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2] 우여곡절끝에 1900년 7월 5일 단선으로 개통된다. (A선)

이어 경부선이 개통되고 교통량이 늘어나자, 1912년 A교의 상류 쪽에 단선철교를 하나 더 놓는다. (B선) 그리고 일제시대에 여러 노선의 개통으로 서울을 기점으로 하는 열차 운행이 늘어나면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944년 8월 1일 복선으로 된 철교를 하류 쪽에 하나 더 놓게 된다. (C선)

1950년 6월 28일 6.25 전쟁이 터지고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서 서울 사수할 거라고 구라를 치면서 3개의 다리를 모두 폭파했다. 하지만 한강대교와는 달리 약간의 파손만 입었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육군이 도섭판을 깐 후 T-34전차를 영등포로 직접 투입할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목표물이 되는 바람에 반복적인 폭격으로 많은 부분이 완파돼서 교량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다.[3] 이후 서울을 탈환한 다음 1951년 미 육군 공병대에 의해 A교만 임시복구, 열차가 임시로 통행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열차 운행이 늘어나면서 A선 하나만으로는 통행이 어렵게 되자 1957년 7월 C선을 완전복구하여 복선 운행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열차 통행이 점점 늘어나자 C선 하나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방치되어 있던 A선과 B선도 1969년 6월에 완전히 복구하여 복복선으로 운행하게 된다.[4]

1980년대 후반 들어 경인선 철도가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경인선을 복복선화 하는 공사가 진행된다. 이미 복복선화 되어 있던 용산-구로 간은 3복선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맞춰 한강철교도 A선과 C선 사이에 복선철교로 D선을 새로 건설, 1994년 12월에 개통된다.[5] 이로써 지금의 한강철교가 완성되었다.

3. 구조

현재 한강철교를 이용하는 열차는 각 선별로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B선 북단에서 용산삼각선이 분기하고 그 직전에 A선에서 B선으로 옮겨탈 수 있는 건넘선이 있다. 경부선을 따라 올라오다가 경원선으로 진입하는 열차[6]는 A선으로 한강철교 북단까지 온 뒤, 한강철교 위에서 신호를 기다려 평면교차를 통해 용산삼각선을 따라 경원선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경부선 일반열차 선로를 따라 올라오는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평면교차로 1호선 급행 선로로 바꿔탄다. 선로 구조상 노량진역에는 바꿔탈 수 있는 건넘선이 없기 때문.

B선은 중간에 굽어지는 곡선이 있어 이 교량을 지나는 열차는 무조건 서행한다. 1호선 동인천, 천안 급행열차의 용산~노량진 소요시간은 이 다리 때문에 D선으로 강을 건너는 완행열차보다 더 걸리며 간혹 완행이 급행을 추월하는 하극상도 생긴다(...).

D선 수도권 전철 1호선 노량진~용산 구간 주행영상

4. 기타

현재 1994년에 개통한 D선의 철교를 제외한 A,B,C선의 철교만 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현재 북단 보수공사로 그 밑을 지나가는 강변북로의 통행속도가 느려졌다.

2015년 12월 10일 철교 남단 부근에서 불발탄이 발견되어 11일 새벽에 해체작업을 했다. 폭탄은 6.25 전쟁에 미군이 사용하였던 AN-M65 폭탄이다.

5. 관련 문서



[1]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을 한강대교라고 알고있는 경우가 있는데 한강대교는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인도교이다.[2] 이 보행용 다리는 한강대교를 건설하면서 해결된다.[3] 6.25 전쟁 당시 폭격기에서 투하한 것으로 보이는 불발탄이 40여년 후 D선 교각 터파기 공사때 발견되기도 함.[4] 이때 A선과 B선의 트러스를 전면교체하고, A선 트러스 일부는 완도대교 건설에, B선 트러스 일부는 수색철교 건설에 쓰였다. 수색철교는 90년대 안전조사 결과 붕괴위험이 크다는 판정이 떨어져 1993년에 통행이 금지되었고, 1995년에 철거되었다. 뒤이어 수색철교 옆에 있던 수색교가 8차로로 확장되면서 흔적까지 완전히 없어졌다. 구 완도대교 역시 새로운 다리가 지어지면서 2012년 철거되었다.[5] 가장 최근에 건설된 관계로 이것만 도상교량이다.[6] 화물열차가 대다수고, 임시 여객열차가 이 선로를 이용한다. 예외는 육군훈련소 신병배출열차. 엄연한 무궁화호 정기여객 열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