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3:59:43

박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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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6대 육군참모총장
박희도
朴熙道 | Park Hee-do
파일:amp044028.jpg
<colcolor=#fff> 출생 <colbgcolor=#fff,#191919>1934년 7월 22일 ([age(1934-07-22)]세)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거남리
본관 밀양 박씨
효암(曉岩)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6년 ~ 1988년
재임기간 제26대 육군참모총장
1985년 12월 16일 ~ 1988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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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00><colcolor=#fff> 학력 경북고등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종교 불교
임관 육군사관학교 (12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참모총장
주요 보직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제1공수특전여단
제26기계화보병사단
육군특수전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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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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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2. 생애

1934년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거남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34회)를 졸업했으며 같은 하나회 장성들인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이상 32회), 이종구(35회) 같은 인물들과 학맥으로 엮이기도 했다. 1956년 3월 육군사관학교(12기)를 졸업하면서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한 기수 선배전두환과는 생도 시절부터 깊은 친분을 쌓아온 사이로 전두환과의 인연으로 인하여 1960년대 중반에 하나회에 가입했으며 대령 시절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을 역임했다.

1975년 준장에 진급하자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의 추천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장에 부임했다. 사실 박희도가 준장으로 진급한 것도 정병주 장군이 진급 심사에서 박희도를 준장으로 진급시키는데 크게 도움을 줬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는데 노재현 당시 합동참모의장에게 시켜서 박희도를 몰래 만난 뒤 보복 작전을 지시했다. 작전 명령은 판문점 뒤에 있는 북한불법 초소 4개를 완파하는 내용이였다. 이에 박희도는 김종헌 소령을 특공대장으로 임명한 64명의 특공대원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차출해서 권총과는 별개로 개인화기를 지참시켰다. 이에 주한미군 겸 유엔군사령부[1] 사령관인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 대장이 이에 분노하여 박희도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박희도는 오히려 성질을 내며 "이보시오, 지금 이게 스포츠인 줄 아시오? 제대로 갖춘 개인화기도 없이 부하들을 사지에 보낼 수는 없소"라며 리처드 스틸웰 대장에게 반박하고 당초 계획대로 개인화기를 지참하고 작전을 실행했다. 미국 측에서 대단히 분노하여 박희도를 보직해임시킬 것을 강요했으나 박정희는 미국 측을 잘 달래서 사건을 무마시켰다. 사실 먼저 쳐들어온 쪽이 북한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작전 지시를 내린 사람이 박정희였기 때문에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비호를 받은 바 있던 박희도에게 1978년 11월,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북한 무장공비가 제1공수특전여단의 위수 지역인 서산 앞바다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군사 기밀까지 캐낸 후에 임진강을 건너 복귀하는 데에까지 성공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박희도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세호 대장에게 격렬하게 문책을 받았고 쪼인트를 까이는 등 말이 아니었다. 이세호는 말 그대로 머리 끝까지 빡쳐서 "박희도의 군복을 벗겨버리라"고 길길이 날뛰었다.[2] 이 상황에서 또다시 정병주가 나섰다. 정병주는 이세호에게 "박희도는 대통령께서 특별히 지시한 작전을 완수한 지휘관이고 하니 1번만 용서해 달라. 그 공으로 이번 과를 덮어달라"고 진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이 정도로 박희도를 정병주가 보호해준 덕분에 겨우 강제전역의 위기를 넘겼지만 1년 후 박희도는 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12.12 군사반란에 참여, 은인이자 직속상관인 정병주 사령관의 지시에 항명했고 그 반란의 결과로 정병주 사령관 역시 체포된 것이다.[3] 동서고금의 역사를 뒤져봐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정병주 사령관 정도의 은인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찾기 힘든 일이지만 박희도는 그런 인생의 최고 은인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철저하게 배신했다. 한마디로 한국판 테오도로 오비앙인 셈이다.[4]

그렇게 박희도는 반란의 1등 공신이 되었다. 박희도는 이 공로로 1979년 대한민국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당시 충정부대였던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에 부임했다. 이후 1년도 안 되어 2차 보직도 안 하고 중장으로 진급하여 하나회 선배 정호용의 후임으로 특전사령관에 부임했다.[5]

파일:hnh.jpg
하나회 내부에서도 박희도의 영향력이 상당했는지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군 수뇌부 인사가 발표된 뒤인 1979년 12월 14일 쿠데타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6]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에서는 노태우 바로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하나회 12기 멤버였던 특전사령관 박희도, 보안사령관 박준병, 수도경비사령관 박세직은 이른바 '쓰리 박'으로 불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희도는 12.12 군사반란 이전까지만 해도 육군사관학교 12기 선두 주자인 박준병, 박세직보다 진급이 1년 늦었지만 박세직이 일명 '박세직 사건'[7]으로 소장 계급에서 예편 당하고 박준병이 1984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차출되어 전역[8]하면서 1985년 박희도가 육군참모총장에 오르게 된다. 육군참모총장 시절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는데 2년 임기가 만료되었던 1987년 12월에 예편 수순을 밟아야 했으나 전두환에 의해 임기가 1년 연장되었다. 이는 노태우에게 정권 이임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전두환이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자 자신의 직계인 박희도를 유임시킨 것이다.[9] 이에 분노했지만 일단은 내색하지 않았던 노태우는 취임 이후 즉각 보복 인사를 행한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육군참모총장 신분이었던 박희도는 전군에 "무조건 노태우를 찍어라"라는 불법적인 명령을 하달했는데, 이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허나 정작 박희도는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전두환 직계를 숙청하기 시작한 노태우에 의해 1988년 6월 임기를 6개월 앞두고 보직해임되어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는 몇몇 하나회 인사들처럼 정계 진출도 시도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두 차례 총선 출마를 시도했지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공천이 거의 유력했다가 탈락했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사건 때문에 좌절되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12.12 군사반란에 대한 혐의로 인하여 징역을 살다가 석방되었으며, 이후 보수 불교단체인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상임회장을 역임했다.[10] 2014년 11월 28일 서북청년단 재건 총회에서 서북청년단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12월 대한민국불교도총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촉구를 주도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시위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아직 살아있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측 인사들 모임에 참석한 것이 언론에 잡혔다. 2021년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 등을 이끄면서 일부 노인극우 보수 세력을 휘하에 두고 사용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파일:박희도_민주화항쟁당시1공수여단장_폭동세력.jpg

2021년 전두환이 사망하자 그의 빈소에 방문했다.#

2022년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72주년 9.28 수도 탈환 기념행사에 등장하여 축사를 하였고#, 2023년 11월 23일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전두환의 사망 2주기 행사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당시 계엄군의 지휘계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직책에 있었음에도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계엄군 지휘자로 엮여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했다"며 "대통령이 남긴 큰 위엄을 받들어 역사 바로잡기에 정진하겠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살 날도 얼마 안남은 시기에도 극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상관 전두환은 열심히 모시면서 진짜 은인이자 상관이었던 정병주는 기억이나 하려나 싶다.[11]

그의 인생을 총평하자면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세상 누구에나 충성하는 소인으로 유취만년(遺臭萬年-더러운 이름을 만대까지 남기다)이란 이런 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대중매체에서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전인택이 연기했다. 제5공화국 드라마에서는 박희도의 내로남불을 제대로 표현했는데 평상시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군사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직속상관인 정병주 장군의 지시를 상큼하게 무시한다. 1공수여단의 출동을 막기 위해 온 특전사부사령관 이순길 준장을 무시하고 부대를 제멋대로 출동시키고, 더 움직이면 쏘겠다는 이순길 준장의 말에 아랑곳않고 부사령관께서 더이상 날 막는다면 불행한 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부사령관님도 죽습니다.라고 역으로 협박하는 모습은 압권.
  •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도희철[12]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배우 최병모가 연기했다. 이전까지는 냉혈한적인 모습을 주로 보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찌질함과 똥별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4. 둘러보기

12.12 군사반란 가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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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4일 12·12 군사반란 성공 기념사진
국군보안사령부 청사 앞
준장 남웅종 · 중령 김호영 · 중령 신윤희 · 중령 최석립 · 대령 심재국 · 대령 허삼수 · 대령 김진영 · 대령 허화평 · 대령 이상연 · 대령 이차군 · 준장 백운택
소장 박준병 · 대령 이필섭 · 대령 권정달 · 대령 고명승 · 대령 정도영 · 준장 장기오 · 준장 우국일 · 준장 최예섭 · 대령 조홍 · 대령 송응섭 · 대령 장세동 · 대령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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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우국일 준장은 군사반란 가담자로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국군보안사령부 참모장 자격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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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 하나회였던 우국일 준장이 12.12 군사반란 당시 한 일은 연희동 요정에서 접대업무를 맡았을 뿐 접대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그는 결백한 인물이었다.


[1] 해당 사건 당시는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전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총괄 작전권을 행사했다.[2] 이세호가 이렇게 화를 낸 배경에는 원래 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성격이 괄괄했던 이유도 있지만 이 일이 있기 1년 전이던 1977년 10월에 20사단 작전 장교 유운학의 월북 사건이 터져서 이 때 전군의 암호체계를 뜯어 고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3]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한 것은 제3공수특전여단최세창이었고 박희도는 국방부육군본부을 점령했다. 숨어있던 당시 국방부 장관 노재현도 확보하는데 성공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낼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진압의 희망은 날아갔다. 점령에는 당연히 병력을 통한 무력이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제대 2개월을 남기고 있던 국방부 헌병대 정선엽 병장이 총격전 중에 사망했다. 정말 애꿎은 죽음을 맞은 격으로 12.12 군사반란의 진짜 피해자인데, 언급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잊혀져버렸다.[4] 테오도로 오비앙도 자신을 적도 기니의 2인자로 앉혀 준 삼촌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대통령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후 삼촌을 처형하면서 집권했다. 다만 오비앙의 경우는 삼촌이 폴 포트도 능가하는 극악무도한 독재자였던 것과 쿠데타의 계기가 바로 삼촌이 자신의 막내동생을 처형했다는 것에 대한 복수심이었다는 점에서 참작의 사유는 분명히 존재한다.[5] 사령관 재임 중 제주 C-123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휘하 특전사 장병 53명이 희생되었는데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작전수행이 불가능하다는 보고가 여러차례 올라왔으나 모조리 묵살하고 안되면 되게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더 기가 차는 것은 자기 명의의 충혼비를 세운답시고 특전사 장병들의 월급을 각출하는 것은 물론 직접 자작한 시까지 써놓았는데 사고 발생 100일이 지나도록 시신수습은 커녕 사고가 났던 전투기조차 치우지 않아서 사고 현장에서 사고 피해자들의 손이나 발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박희도 본인은 2018년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30년도 넘은 일이라 기억이 잘 안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6]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7] 박세직이 2인자 및 후계자를 자처했다는 이유로 전두환의 진노를 사서 예편 당한 사건이었다.[8] 정치권 차출 목적 외에도 충복 박희도를 육군참모총장으로 고려한 전두환의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9] 이 외에도 3군사령관에 고명승, 기무사령관에 최평욱, 수경사령관에 김진영을 임명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이 상왕으로 군림하려 하는 태도를 내비쳤다.[10] 개인적으로 아주 독실한 불자라고 한다.[11] 옛날 직속상관이였던 장태완의 장례식에 참석한 장세동과 대비된다.[12] 뒤집어 보면 희도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