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20:44:04

김승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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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3대 합동참모의장
김승겸
金承謙 | Kim Seung-kyum
파일:김승겸_01.jpg
<colbgcolor=#801a24><colcolor=#fff> 출생 1963년 4월 12일 ([age(1963-04-12)]세)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재임기간 제29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년 9월 23일 ~ 2022년 5월 27일
제43대 합동참모의장
2022년 7월 5일 ~ 2023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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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1a24><colcolor=#fff> 본관 김해 김씨
학력 오산고등학교 (졸업 / 72회)
가족 배우자 김순애, 슬하 2녀
종교 개신교 (침례회)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6년 ~ 2023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42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제3군단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국군의 날 행사단장
제28보병사단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
제6군단 참모장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
제35보병사단 참모장
제1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
제2보병사단 제31보병연대 제2대대장
상훈 을지무공훈장 (1992년, 5.22 완전작전) }}}}}}}}}
1. 개요2. 주요보직3. 생애
3.1. 출생부터 임관까지3.2. 위관급 장교 시절
3.2.1. 을지무공훈장 수훈
3.3. 영관급 장교 시절
3.3.1. 소령3.3.2. 중령
3.3.2.1. 대대장 시절 일화
3.3.3. 대령
3.3.3.1. 연대장 시절 일화
3.4. 장성급 장교 시절
3.4.1. 준장3.4.2. 소장
3.4.2.1. 사단장 시절 일화
3.4.3. 중장
3.4.3.1. 군단장 시절 일화
3.4.4. 대장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강릉시 현무-IIC 미사일 낙탄 사고4.2. 합참의장 공관 리모델링 관련
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장성.

2020년 9월 21일 문재인 정부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고, 2022년 5월 25일 윤석열 정부의 첫 합동참모의장 겸 통합방위본부장으로 지명되었다.

2022년 7월 4일, 합동참모의장에 임명되었다. 합참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최초로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합참의장이 되었다.[1]

직능은 작전.

2. 주요보직

  • 소위
    • 제35보병사단 제105연대 제2대대 제6중대, 소대장 (1986.08. ~ 1987.08.)
  • 전역 2023년 11월

3. 생애

3.1. 출생부터 임관까지

1963년생,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출신으로 김영옥 예비역 중령의 아들이자 김영 예비역 대령의 조카다.

1982년 서울 오산고등학교(72회)[12]를 졸업하고 같은 해 육군사관학교(42기)에 입교하였다.

1986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3.2. 위관급 장교 시절

파일:김승겸2.jpg
▲ 1992년, 최세창 국방부장관에게 을지무공훈장을 받는 육군 대위 김승겸
초임 장교 시절 제35보병사단에서 소대장을 수행했고, 중위 진급 후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1특전대대 화지정찰중대장과 작전처 상황장교를 역임했다.

대위 진급 후, 역시 제1특전대대에서 1차 중대장을 지내다 2차 중대장직은 제3보병사단 제18보병연대 제4대대(전초대대=현, 수색대대)에서 전초중대장을 지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군 생활의 일대 전환이 될 사건을 겪는다. 중대장 이후 제3보병사단 제18보병연대 작전항공장교와 제18보병연대 제1대대 작전과장으로 근무한다.

3.2.1. 을지무공훈장 수훈

은하계곡작전에 대해 얘기하는 김승겸 예비역 대장. 국방홍보원

실전경험이 3번이나 있는 장군이었다. 그 3번의 실전 경험은 제3보병사단 전초대대 제13중대장 시절 1번("은하계곡 대침투작전"[13]), 사단장 시절 2번(14년도 북한 고사총 도발과 15년도 북한군의 포격도발)이 되겠다.

대위 시절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했는데,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5.22 완전작전(위에 설명한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에서 전초 제13중대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상단 프로필 사진에서 약장 중 최상단의 주황색 약장이 바로 을지무공훈장 수훈자가 달 수 있는 약장이다.

당시 김승겸 대위의 을지무공훈장 수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6.25 전쟁베트남 전쟁 이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여된 최초의 을지무공훈장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 중 셋 뿐인[14] 을지무공훈장 수훈자이다. 또한 미국 국방부가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Legion Of Merit"도 수훈했다.[15]

작전 성공 후 방송사 인터뷰를 받았으며영상, 투입되었을 당시의 일에 대한 회상을 1992년 동기회지에 기고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다룬 기사

합동참모의장에 지명된 후 은하계곡 완전작전을 함께한 당시 소대장들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언론 보도내용
영관급 장교시절 은하계곡이라는 닉네임으로 전역자들의 경험담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전역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3.3. 영관급 장교 시절

3.3.1. 소령

소령 진급을 1차에 한 후, 제57보병사단[16] 작전처, 교훈처에서 근무하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으로서 후배들을 교육하였고, 이후 제2보병사단 교훈처에서 근무하였다.

3.3.2. 중령

중령 시절 지휘관 보직으로 제2보병사단 제31보병연대 2대대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동 사단 작전참모를 지낸 뒤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전략라인에서 실무자로 근무하였다.
3.3.2.1. 대대장 시절 일화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이다. 즉 전설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2008년~2009년에, Bemil에 올라온 군 시절 대대장을 회고하는 글들이 포문을 열어 그로부터 그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단락에 적힌 썰들의 출처는 대부분 여기이다. 2008년 글 2009년 글#1 #2 참고로, 2번 링크에서는 직접 댓글까지 달았다. 아이디 '은하계곡'이 바로 김승겸 대장이다. 댓글 달 당시에는 대령이었다.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시절 부임과 동시에, 부대를 180도 바꾸어놨다. 행보관들 및 주임원사와 호형호제하던 전임 대대장과는 다르게, 무능한 간부를 경멸하고 병사들이 보는 그 앞에서 하사, 중사들을 연병장에서 완전무장으로 포복시키고 대강대강 하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했다. 미숙하다고 이등병을 배려하고 짬이 좀 된다고 상사와 소령을 밥대접을 하는 관행은 모조리 뿌리 뽑았으며, 뻘작업들 또한 전부 다 없애버리고 훈련에만 매진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즉각조치사격을 실시하였는데, "사로 내에서 빵야빵야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사로 위에 선 채로 분대장 명령에 따라서 3점사로 3탄창을 발사하였고 K3사수는 링크탄 한 탄통을 자동사격하였다.

또한, 부식창고를 개방하여 그동안 병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암암리에 빼돌려지던 부식들, 보급품들을 한꺼번에 불출하기도 했다. 당시 실제로 사단 교탄 소모량이 가장 많은 부대가 31연대 2대대였으며, 주기적으로 망실/정비를 요구하는 개인화기/공용화기는 바로 정비대로 입고하는 등 그야말로 FM에 수렴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한마디로 부대를 전임 정봉영 중령(ROTC)과는 달라도 180도 다른 스타일로 바꾸었으며 당시 32연대가 위탁하고 있던 KCTC대대급 훈련에서는 전갈부대와 박빙으로 싸웠다. 5중대에서 무려 전갈부대원 10명 이상을 사살하고 부상입힌 상병이 나왔다.(이후 32연대 위탁교육을 중지하고 31연대 2대대 3소대 전원, 17,32연대 병력 차출로 육군과학화훈련단 전갈부대가 독자적으로 창설된다)

이런 타이트한 전투훈련 위주의 부대관리가 순기능을 낳기도 했는데,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똥군기가 부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일 오전에 사격하고 오후에 축구하고 야간에 전반야, 후반야 하고 다음 날 중대 전술훈련하고 그 다음 날 주특기 훈련이라는 일정이 몰아치니 장병들은 모두 휴식시간에 정말로 지친 몸을 쉬게 해야 했으며 그 시간도 쪼개서 본인 장비 관리도 철저히 해야 했기에 똥군기가 시전될 정신적, 육체적 풍요로움도 시간적 여유도 있을 수가 없었다. 상병장들이 먹기 질린다고 이등병 사물함에 내던져지던 건빵은 그날에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FM 대로 따지자면, 야간 점호 시 취식물이 관물대에 있으면 안 되지만 건빵에 한해서는 어어... 하면서 넘어갔었다 훈련에서 견뎌내야 하기에, 주말에 구보를 하고 체력단련을 자발적으로 하는 부대가 그때 당시 2대대였던 것이다.

당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도 나왔던 노도 유격장을 가기 위해선 네 발로 기어야 하는 고바위의 대공기지를 넘어야 했는데, 5중대부터 중화기 8중대까지 밀고 끌면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단시간 주파에 성공했다. 여러가지로 후임 28사단장인 윤의철(육사 43기)과는 확실히 상반되는 지휘관이다. 윤의철이 밑도 끝도 없이 체력단련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김승겸은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겪었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죽이고 나와 내 동료들이 살아남는 법을 강조했다. 게다가 당시 소수 있었던 특전사 출신[17] 전역 대기 부사관들이 당시에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일반 보병 부사관들에게 특수전 및 여러 훈련 노하우를 전파해주는 등 분위기가 매우 진취적이었다.

뱀발로 신병이 전입을 오면 고참들이 "너 군생활 꼬였다."라고 으름장을 주기도 했는데, 그 주체가 다름아닌 대대장이었던 김승겸 중령이었다. 이유가 걸작인데, 나중에 별 달 사람이라고. 우스갯 소리였겠지만 저때 김승겸 장군은 중령이었던 걸 생각하면 흠좀무다.[18] 주특기 훈련 중에 초과달성을 하면, 그 소대 혹은 분대는 그날에 자유일과를 주었다. 하지만, 훈련을 나가야 하기에 자유시간은 사실상 정비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전적인 성향의 지휘관 답게, 우의를 제외한 병사들의 복제에 그리 참견하지는 않아서 훈련 때에 비니를 쓰거나 어느 정도의 사제 장비를 착용하거나 혹서기에 수통을 2~3개 결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엽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19]

이와 같은 일화도 있다. (위에 첨부된 글과 같은 글이다.)
대대장 취임 시 교육계의 다급한 한마디. "야, 이제부터 뻘 작업 없다. 무조건 훈련만 한다. X된 줄 알어."
1. 대대 사열대 플랜카드가 원래 "가족 같은 병영" 인가 그랬는데 "싸움터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자"로 바꿈.
2. 우천 시 병사들 우의 금지. 무조건 판초우의 착용.
3. 우천 시 훈련 없음 이런 거 없음 무조건 훈련.
4. 수송부에서 육공 끌어다 놓고, 소대 단위 전술적 탑승 훈련 수시 반복.
5. 수요일 오전은 무조건 사격. 영점, 축소사격 따윈 없고 사로에 북한군 타겟 세워놓고 전부 사로 위 서서 쏴 자세로 분대장 구령에 맞춰 점사로 사격. K3는 탄통 끼워놓고 탄통 모두 소진.
6. 비가 심하게 오거나 혹서기에는 내무실에서 MOPP 수트 입는 연습과 탄창에 클립탄 장전 훈련 실시. 군필자들은 알텐데, 클립탄 장전 훈련은 꽤나 드문 케이스.
7. 주에 거의 1회 정도 준비태세 훈련, 시간 오버되면 다시 내무실 정비 후 환복 후 재시작. 이를 리미트 안 걸릴 때까지 반복.
8. 안면 위장할 때 안면 뿐만 아니라, 손등, 팔 얼굴 이마 귀 목 밖에 드러나는 모든 살갗은 우드랜드 무늬로 위장.
9. 무조건 주당 전반야 후반야 실시.
10. 2주에 한 번씩, 훈련 앞두고는 주당 1번씩 20~30키로 급속행군 실시. 눈 오면 아이젠 차고 진행.
11. 탄창 갈아 끼울 때 무조건 소총 권총 손잡이 잡은 상태에서 검지 손가락으로 멈치 눌러야지 타손가락 사용 시 당장 발길질. (이건 타 부대 아저씨도 놀라던 점이며, "와, 그렇게까지 한다고?"라며 놀랐다.)
12. 대대 축제할 때 화끈하게 못 논다고 회식하던 중에 전부 취소시켜 버리고, 그냥 하루종일 오침.[20] 더 무서운 건, 그 와중에 축제 때도 전투력은 비면 안 된다고 분대당 소주 딱! 두 병을 배정했단 점이다.(쉽게 말해 소대본부+1,2,3분대 다 해서 21~25명 사이인데 다 합쳐서 소주 7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3. 훈련 때 파견 나온 62 브라보 포병대 관측장교(중위) 가 도대체 이런 훈련이 어딨냐고 고함을 지르다, 대대장에게 걸림. 결과는 뭐...
14. 간부들 전부 사격시키고, 자격 미달자는 연병장에서 해질 때까지 PRI 진행.
15. 이등병이라고 봐주고 병장은 봐주는 관행 철폐. 걸리면 무조건 죽음.
16. 누가 한번 국방부에 찔렀었는데 당당한 자세로 무사통과.
17. 한번 누가 잘못한 일이 있어 전 대대원 사열대 앞에서 유격훈련.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본인[21] 열사병 걸려 게거품 물음.
18. 병장 때 잘못 걸려 자갈밭에서 포복하고, 휴가 다 짬당함. (본인)
19. 전역 날 나[22] 에게 "야 XXX이 너 내가 밉냐?" 라고 물음. 그래서 어차피 전역인데 될 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네, 밉습니다!" 하니까, 웃으면서 레토나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미안하다. 잘 살고 밖에서 나 만나도 때리지 말고 아는 척이나 해줘라" 라고 함.
20. 이상하게 그 이름이 기억에 남아 도대체가 지워지질 않음. 육군 중령 김승겸...
21. 육사 훈육관 때 퇴교시킨 그때 당시의 4학년 생도가, 중사 계급으로 바로 옆 수색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당사자 수정)
22. 전 대대원의 체력의 엄청난 향상. K4는 K4 메고 산타고 902고지를 작업도구 메고 그냥 쉬엄쉬엄 걸어 올라감.
23. 본인은 포반이었는데, 실사격은 섭섭치 않게 하고 압권인 게 야간사격 때 들러리로 나가 K3 사격하는데 조명탄 띄워줌. 군생활 하면서 박격포 사격 백린연막 빼고는 다 쏴봄. 지금 당장 쏴보래도 제원만 있으면 쏠 수 있음. 지금 생각해도 조명탄 터질 때 기관총으로 예광탄 연사는 진짜 장관이었음. 요즘 스타워즈어벤져스에서 그 비슷한 걸 볼 수 있음.
#추가.
5-1. 과장이다. 애초에 탄통을 다 때려 갈 정도로 멀쩡한 K3와 예비 총열이 없었기 때문. (윗 글 작성자이고, 과장 아님. 양씨 성 가진 일병이 타겟을 완전히 박살내서 포상휴가 받음. 예비총열은 총기와 같이 보관하기 때문에 존재했고, 한 탄통 사격한다고 총열 교체가 필요한 것도 아님. 본인 01-76061274 군번, 당시 5중대 소속.)
7-1. 주 1회 매주 준비태세 훈련은 사실 좀 과장이고, 3주에 한 번 정도로 기억함. 간혹 한 달 이상 조용하면 대대원들은 항상 긴장에 떨어야만 했다.
8-1. 혹서기에 팔에 위장하기 싫으면 간단한 차선책이 있었는데, 아예 소매를 내리면 됨. (추가: 초반에는 무조건 팔 위장, 후반기에 갈수록 팔에 위장하거나 팔을 내리거나는 개인 자유. 그나마도 팔에 바르기까지는 보급이 딸리는 위장 크림, 그리고 보급 비누가 워낙 저질이라 정비가 길어진다는 보고가 올라가서 그랬다는 썰이 있었음.)
9-1. 이것도 사실 좀 과장이고, 역시 3주에 한 번 정도. 물론 마일즈 이런 거 걸리면, 2주 내도록 전반야 후반야 돌기는 했다.
24. 흔히 있는 공용화기에 대한 편의가 없음. 타 부대에서 종종 있는 군장에 K3 결속 이런 건 상상도 하지 못하고(사실 이 것은 타 부대에서 K3를 군장 위에 올리고 행군하다 민간트럭에 총이 치인 사고사례 때문임), 작전 및 행군 시에는 무조건 좌우좌우좌우. 이런 식으로 지향사격 자세로 가야 함. 특히나 소산할 때마다 목에 걸린 총 멜빵 빼서 비껴 거느라 K3 사수들은 죽을 맛(같이 훈련 뛰는 타 부대 아저씨들은 K3가 굳이? 하며 납득하지 못 했다).
25. 제일 중요한 건데, 중대 밖 부대 내 이동 시 큰 걸음 필수. 경계근무 이동 시에도 얄짤 없고, 종교행사, 식사 이동시에는 군가 추가. 파견 인력도 예외가 없어서, 작은 걸음으로 밥 먹으러 가다 걸려서 얼차려 돈 사례도 있음. (훈련 나갈 때마다, 옆 동네 백두산부대 아저씨가 "큰 걸음 부대 ㅋㅋㅋ" 라고 놀리는 건 덤.)

그리고 대대장 임기 종료와 동시에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로 영전하였다.

3.3.3. 대령

대령 시절 지휘관 보직으로 제1보병사단 제12연대장[23]을 역임하였다.

이후, 참모 보직으로 제35보병사단 참모장[24]을 잠시 지낸 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로 이동하여 육군의 합동작전을 총괄하는 육군 대령 참모 보직 중 최고 요직인 합동작전과장을 역임하였다. 보통 준장 진급 들어갈 시기에 1년만 하는 보직이지만[25] 드물게도 2년간 합동작전과장을 역임하다 준장 1차 진급에 성공하였다.[26]
3.3.3.1. 연대장 시절 일화
연대장 시절에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1보병사단 12연대장 시절 일화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단락의 썰은 주로 1사단 갤러리가 출처다. #1 #2 #3
* GOP 순찰 시 소초 생활관에 들어와서는 "야! 연대장 온다고 생활관에 이상한 거 뿌리지 마라!"[27]
* 실제로 보면 체격도 좋고 키도 크고 자세도 꼿꼿하며 눈매나 용모가 빈틈이 없다. 누가 봐도 지휘관 그 자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바짝 긴장시키는 아우라가 있다. 당시 도라대대 장병(특히 소초, CP 상황병)이었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 것이다.
* 매주 화요일~목요일 저녁만 되면 15연대 통일대교 근무병들의 예통에 전 소초 병력이 촉각을 곤두세움. "연대장님 통일대교 남단 통과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부대가 미친듯이 바빠지기 시작함. 그 이후에는 캠프 그리브스, CP, AOP, 백학 방향인지를 놓고 상황병들이 바짝 긴장함. 그것이 어느 소초로 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 보통은 소초 상황실만 들르지만 가끔 철책선을 직접 순찰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초병들이 예통 받으랴 브리핑 구절 외우랴 수하 연습하랴 늘 정신이 없었음. 의외로 근무중인 병사들에게는 엄하게 대하지 않고 어깨 한 번 툭 쳐주고 감(대신 소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매우 엄격함).
* GOP 소초에서 똥줄 타며 브리핑했더니 아무 말 없이 어깨만 딱 한 번 짚고 내려감.
* 연대장 덕분에 최우수 소초로 선발된 소초는 소초 전체 포상 나감.
* 연대장님 관사에 모셔다드리고 출발하다가 그만 연대장 사모님 승용차를 레토나로 박음. 당시 운전병은 병장이었는데 연대장에게 욕 먹고 연대장은 수송대장 (준위)을 호출함. 그날 회식운행이 있었는데 수송관이 관사에서 내리면서 "1호차 운전병이 사고나 내고!" 악수 청하고 껄껄 웃으며 관사로 들어감. 일주일 뒤에 사모님은 차 바꿈.
* 이 분이 내린 명령이면 이 한 몸 불살라 적진에 뛰어들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듦. 연대장을 보면서 나도 육사 갈걸 하는 병사도 있었음.
* 연대장님 이임식에서 아쉬운 마음에 우는 장병들도 있었음.
* 장병들의 특급전사 달성을 지시해놓고 연대장 본인이 제일 먼저 연병장을 돌고 있음. 으아아악
* 남아공 월드컵 때 소초 연등하고 있는지 하루도 안 빼놓고 순찰 나감. 본인이 공관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 것 같다고 소초 순찰 마치고 연본 앞 길가에서 대기하다 축구 끝나고 복귀함. 우루과이 전이었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민통선 내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월드컵 경기 시청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2002년 때처럼 북이 축제 분위기를 틈타 도발을 시도해 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페바에 있던 운천, 마정 장병들이 신나게 월드컵을 보고 있을 동안 GOP와 GP에서 근무하는 도라대대 장병들과 수색대원들은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추가로 연대장 본인은 경기일에 직접 소초 순찰을 나갔다. 그리고 실내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 것 같아서(...) 축구 끝날 때까지 본부에 안 돌아갔다. 하지만 휘하 병사중 유명유튜버인 승냥이 탈영사건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 소초 순찰 뿐만이 아니라 수색대대원들의 수색-매복도 직접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많았다. DMZ진입 할 때 병사들의 간격, 진형, 위치, 수색대 투입 당시의 주변 부대의 경계작전 상태 (더 자세히는 보안사항) 등을 직접 체크하곤 했다.
* kctc훈련 중 예하대대와 직할대들이 계속 패배함. 당시 감독관 평가는 이러했음. "대한민국 최고의 장교가 최고의 전술로 지휘하는데 부하장교들과 병력들이 따라가지 못함." 이후 참가 대대인 마정대대의 김택수 중령이 kctc 끝나고 연대장실에 불려가 1시간 동안 갈굼을 당함.
* 교회 집사님이었는데 교회에서 유일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가족들이 한 달에 한 두 번 같이 예배 보러 왔음. 딸이 2명 있었는데 첫 째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했고, 딸의 이름은 (밝히진 않지만) 과거 무장공비 소탕 작전의 이름을 따서 지었음.[28] 사모님이 굉장히 착하셨고 내조를 잘 했음. 기독교 신자로서 믿음도 특출하여 새벽에 혼자 예배당을 찾아 새벽기도를 하기도 함. 12연대 이임식 때 따님 두 분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다들 웅성웅성거렸음.
*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 장교들도 사격 훈련을 시켰고, 본인이 앞장서서 모든 훈련에 임함. K5 권총 사격 기준 미달인 장교는 계속 사격 훈련을 시켰는데 이때 부족한 총알은 사단에 연락해서 충당 했음. 당시 사단장이었던 신현돈 장군의 신임이 굉장히 두터웠음.
* 당시 연대본부에 근무했던 병사들은 진심으로 연대장을 무서워하기보다 존경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간부들은 연대장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두려워했음. 특히 연대장 주특기가 작전이었고 육사 작전 교본을 만든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기에 작전과장 및 작전장교는 매일 밤샘 근무와 주말이 없이 일했음. 하지만 거의 맨날 못 한다고 갈굼 당함. 다만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장교들도 두려워 했지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
공통적인 평으로는 업무 능력이 두말할 것 없이 우수했고, 잘생기기도 했는데, 호랑이 같은 눈빛에다 키와 덩치가 무척 커서 위압감이 엄청난 엘리트 장교였다고 한다. 또한 드러나는 일화로 볼 때 군대의 FM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29]

연대장 역임 후 제35보병사단 참모장과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을 역임했으며 여느 합동작전과장이 그렇듯 2012년 하반기 군 인사에서 준장으로 1차 진급하였다.

3.4. 장성급 장교 시절

3.4.1. 준장

준장 시절,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30], 제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 학장을 지냈다.

3.4.2.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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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국군의 날 행사단장 시절 제병지휘관을 맡은 모습
2014년 9월 소장 1차로 진급하여 제28보병사단장을 지냈고, 재임 중 서부전선 포격도발에 완벽히 대응하여 대통령 치하 방문까지 받는 치적을 쌓았다. 그럼에도 2016년 5월 사단장 보직을 마치고서는 특이하게도 한직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으로 이동했다. 이걸 조현천을 위시한 알자회에게 찍히는 바람에 받은 보직이라 보는 시각이 있는데, 육사 39기 김용우나 40기 김병주, 김운용, 이종섭 등의 선배들이 과거 군 내 사조직인 알자회의 실체를 폭로하고 가입자를 동기회에서 제명할 때 그 역시 동기들과 함께 알자회 퇴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행사단장 보직을 마치고 바로 16년 11월 요직인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이동한 걸 보면 이는 끼워맞추기식 비약으로 봐야 한다.사실, 국군의 날 행사단장이 한직이기는 한데, 인사관리상 그냥 끌어쓸만한 타이밍이 되는 소장이라 잠시 근무했을 확률이 크다. 2016년 상반기에 41기 소장들은 그 해에 중장 진급에 들어갈 타이밍이라 행사단장에 부르기 좀 그랬고, 42기 소장은 여럿 있었지만 그중 허수를 감안해야 하는 게 2차 진급해서 사단장 부임한 지 얼마 안 지난 소장들은 지휘권 보장 문제가 걸려서 사실상 후보군에서 빠졌다. 이렇다 보니 행사단장에 부를 법한 사람들은 당장 사단장을 이임해도 될 만큼 1년 반 이상 지휘관을 한 소장 1차 진급자들뿐이었고, 그 중에 김승겸 소장이 선택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자회가 건재하던 2016년 11월에 요직인 연합사 작전참모차장으로 이동한 건 설명이 어렵다. 공교롭게도 연합사 작전참모차장 당시 모셨던 임호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알자회 출신이었는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출범 및 같은해 8월 反 알자회 성향인 김병주 제3군단장이 대장 진급 및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한달 반동안 직속상관으로 모시다가 2017년 9월 인사에서 중장 진급 및 후임 제3군단장에 영전한다.
3.4.2.1. 사단장 시절 일화
파일:28사단장 김승겸.jpg
▲ 2015년, 28사단장 시절 대통령 부대 방문 수행[31]
제28보병사단장 취임 때는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으로 부대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태였다.[32] 하지만 어수선한 28사단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서부전선 포격 사건 도발에 대응하여 완전작전을 한 것으로 평가받음으로써 군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즉 병영문화도 쇄신하고, 완전작전까지 해낸 엄청난 능력자라는 것이다.

빡셀 땐 한없이 빡세지만 편할 땐 가장 편했던 사단장이었기에 인권은 뒷전이고 오로지 강한 훈련만 요구한 후임자인 윤의철(육사 43기)이 휘하 장병들에게 악명을 떨치는 바람에[33] 김승겸 장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병, 간부를 가리지않고 항상 공평하고 청렴하게 대했다고 한다. 사단장이 먼저 살갑게 병사들에게 다가오는 경우는 없지만 전역 직전의 병사들을 마주할 때엔 그간 수고 많았다는 의미로 악수를 시전했으며, 8.20 완전작전이 끝나고는 간부식당에 지시해 대규모 회식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때 병사들도 고생많았다며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김승겸 사단장은 28사단의 병영문화혁신을 위해 취임 당시 28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하였는데 위병소 근무 인원만을 제외한 모든 간부, 기간병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모든 부조리의 시작은 신교대에서 출발한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부조리를 행하는 사람은 교관, 조교를 가리지 말고 모두 내보내라" , "신교대 인원이 부족하여 신병교육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는 강경한 자세로 부조리 척결에 나섰다. 신교대는 다음 세대의 군인을 양성하는 조직이므로 교관들과 조교들은 우수한 인원으로 가려뽑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을 한번에 많이 교체하면 당장 신병 양성에 타격이 가는데, 이걸 감수해서라도 부조리를 없애겠다는 것.

이날 이후 실제로 많은 조교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훈련병들의 설문으로 인해 전출을 갔고, 필수인원부족으로 인해 조교들은 몇 달 간 야간근무를 두 번씩 들어가고 교육인원 부족으로 타 중대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게 누가 훈련병들한테 건수 잡힐 짓 하래? 교관들은 그나마 전출당하는 일은 적었으나 대신 감찰이 자주 떴다고...

엄중한 상황에서 주요 회의간(화상회의) 웃고있는 모습을 보인 지휘관에게 ‘화상회의에서 나가라, 안나간다면 내가 나간다’ 라며 일갈한 사례도 있다. 실제 해당 지휘관이 화상회의를 나가지 않고 사죄하자, 본인이 대신 나가버렸다. 찍혔네 이와 같이 군기엄정은 지휘막론하고 적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단장 보직 종료 후 제67주년 국군의날 행사기획단장으로 임무수행하였고, 이후 연합사 작전차장으로 영전한다.

3.4.3. 중장

파일:3군단장 김승겸.jpg
▲ 2018년, 3군단장 시절 김승겸 중장
2017년 9월 정권 교체 후 이뤄진 첫 장성급 인사에서 중장으로 1차 진급하여 육군 제3군단[34]을 역임하였다.[35]

2019년 5월 육군참모차장[36]으로 보임되어 직무를 수행하였다.

2020년 9월 서욱 육군참모총장국방부장관으로 취임과 동시에 전역하면서 잠시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를 하기도 하였다. 직후 이어진 대장급 인사에서 진급에 성공하였다.
3.4.3.1. 군단장 시절 일화
사단장 시절 윤 일병 사건 뒷처리를 맡았던 탓인지, 군단장 시절 인권과 사고예방에 대해 간부들에게 수없이 강조하였다.

관련한 내용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잘 쉬어야 업무도 잘한다. 아무리 급하다고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해야 할 만큼의 중요한 업무는 없다. 시간상 도저히 완료가 안 될 업무는 과감히 보고하고 일정을 조정해라.(불필요한 야근, 주말 출근에 대해)
2. 행정소요 최소화할 것. 보고서, 회의자료 작성은 지양.[37]
3. 병영에서 자행되는 내무부조리나 불합리한 관행은 개인 이익보다는 속칭 총대를 메는 '총대 의식'을 갖고 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감, 군기, 접적지역 경계심 등의 이유가 있지만 결국 핑계다. 제일 문제가 간부들의 무관심이다. 용사들이 용사를 교육하면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간부들이 관심도 없고, 확인/지도하는 시스템이 없다. 등[38]
4. 악기상 시 작전지역 순찰, 보수 등을 위한 무리한 옥외활동을 금지할 것. 시설물은 파손되면 조치하면 됨. 인명사고 예방이 가장 중요함.[39]
5. 예하부대 이발기구 보유 관련 보고받았는데, 간부가 물자 적정 보유량을 잘 알지 못하자 물자보유 기준을 모른다는 건 간부들이 부대관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함. 과거 윤 일병 사건 시절 해당 대대에서도 행정보급관이 진급대상자들에 대해 계급장을 신청하지 않아 용사들이 '사비'로 구매한 바 있음. 그런 세부적인 것에서 간부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무관심함을 알 수 있음.
6. 싸우는 방법을 이등병부터 간부들까지 전 인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처럼 안전도 동일한 개념으로 적용해야함. 이에 대한 최종 확인 책임은 간부에게 있음. 안전은 생명과 전투력 유지와 관련이 있음.
7.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다고 인식하지 말 것. 사고발생 시 부대의 노력이 분산되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부대의 주요 과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함. 통상 후속조치한다고 난리치는 것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그런 무책임함 때문에 군이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임.
8. 군대는 인성과 인격을 갖춘 인원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기에 올바르지 않은 인격을 가진 인원이 서열이 올라갈수록 병영부조리, 불합리한 관행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 과거 용사들 선후임의 차이에 따라 전투화를 바닥에 놓고 닦는지 들고 닦는지에 따라 달랐는데, 간부들이 현 상태를 보아야함.
9. 음주사고는 살인행위임을 인식해야함. 무분별한 폭음으로 인해 개인뿐 아니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의 인생까지 풍비박산 낼 수 있음.. 등

그러면서도 현행작전부대들의 전투준비태세와 완전작전태세를 거듭 강조하였다.[40] 특히, 군단장 시절 불시 현장지도, 불시 상황조치훈련 등을 자주 하였는데, 일례로 군단 사령부 전 참모들을 대동해 전방 GOP 사단을 대상으로 말단 소초부터 불시 상황을 걸어서, 사단급 불시 GOP 상황조치훈련(FTX)를 직접 주관하여 실시한 적도 있다.(해당 사단장도 모르고 있다가 상황조치를 하러 사단 지휘소로 급하게 들어왔었다는 후문이 있다. 전 사단 병력이 예기치 않게 불시에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었다.) 한번은 예하 사단에서 호국훈련을 실시했는데 화상으로 현황 보고받던 중 실제로 사단장을 혼내기도 했다. (사단 내 전원 조용...) 또 다른 일화로는 예하 사단 모 연대에서 KCTC훈련 후 사후강평 중 모 대대장이 예하 1개 소대가 적(전갈부대)의 화력지원에 전멸하였는데 당시 상황이 안개가 많이끼어 10m 앞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정확한 위치에 화력지원을 했는지 조작아니냐는 식으로 전갈부대장(대령)과 설전을 벌였는데 그 자리에서 대대장을 꼼짝 못 할 정도로 혼낸 상황도 있었다. 다만 사후강평 이후에 그 대대장의 부하를 위하는 마음을 존중한다면서 안아주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전방 현장지도 간 지휘기(헬기)를 타고 전속부관과 이동 중에 탑승석 방향 출입문이 하늘 위에서 개방되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부관이 헬기가 착륙할 때까지 문 옆에서 군단장을 잡고 있었는데, 이 일로 감동을 받았는지[41] 차후 군단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충성심"의 사례로 언급하면서 교육을 했다.

그리고 군단장 시절 부하(간부,병사)들을 챙겨주는 일이 정말 많았다.
* 전방 현장지도 시 경호 병력으로 수행하는 군사경찰 특임중대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주고 매번 현장지도가 끝나면 고생했다고 악수해주었다. 당시 군단장 임기간 매번 전방 현장지도 경호임무를 수행했던 부하(하사)의 경조사를 직접 챙겨주기도 하였다.
* 휴가 복귀 전에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대신 계산해주고 탕수육까지 시켜주고 가기도 했다.
* 군단사령부 본부대와 지휘관 경호를 전담하는 군사경찰단 특임중대 인원들에게 주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었다.
* 군인교회에서 활동하는 군종병들도 살갑게 챙겨주었다.
* 심지어는 군 병원에 외진 나온 군단사령부의 병사를 알아봐 준 사례도 있었다.
* 그리고 산악회관과 산악코스텔 등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면 퇴장 전에 주방까지 들어가 관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는데, 특히 군단장 이임 전 간부식당에서의 마지막 식사 후에도 주방까지 들어가 취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시전했다.
군단장 시절 정말 병사들을 많이 생각해주고, 챙겨준다는 것이 병사들에게까지 느껴졌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유해지긴 한 듯. 나이도 나이지만 진급하는 과정에서 보직이나 계급별로 요구하는 역량이 달라진 것도 크다. 영관급 장교는 중간관리직이지만 장성급 장교는 정무직이기 때문이다.[42]

3.4.4. 대장

3.4.4.1.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년 9월 21일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틀 후인 9월 23일, 이·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하였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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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연합사부사령관 시절 김승겸 대장
▲ 취임식

2020년 9월 23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재임 중 로버트 에이브럼스, 폴 라캐머러 한미연합군사령관의 카운터파트로 근무하며 신뢰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을 겸임하던 시절과 달리 저 자리는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넘어갔고, 현재 연합사 부사령관에게 남은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외교관으로서 주한 미군의 최고 사령관인 연합사령관과의 라뽀 관계 형성이라 할 수 있다. 김승겸 장군은 통역장교[44] 영어실력으로 갈굴 수 있을 정도로 영어에 능통하여 더더욱 군사외교관 자리에 적격이었다. 사실 역대 연합사 부사령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파일:KSK 환송회.jpg
▲ 환송회에서, 폴 라캐머러 한미연합군사령관과 함께.
2022년 5월 26일, 합참의장 지명을 받고 연합사를 떠나는 김승겸 대장의 환송회가 열렸다. 후임 부사령관은 안병석 육군 대장 (육사 45기).
3.4.4.2. 합동참모의장
▲ 합참의장 후보 지명 보도[45]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조용히 임기를 수행하던 와중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첫 군 부대 방문지로 한미연합사를 선택하며 한미동맹 중요성을 역설하였기에 연합사 부사령관인 김승겸 대장이 차후 중용될 수 있다는 시그널이 엿보였는데, 결국 윤석열 정부 출범 15일 만인 2022년 5월 25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대장이 전부 전역하는 와중 윤석열 정부의 첫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되며 홀로 현역에 남게 되었다.[46] 이로써 권오성 대장(육사 34기) 이후 9년 만에 연합사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지 않고 영전한 케이스가 되었으며 정승조 대장(육사 32기) 이후 9년 만에 육사 출신 합참의장이 배출되었다.[47]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지작사령관에게 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 지위를 넘기고 난 뒤로는 군사외교관 역할만이 남아 중요도가 많이 줄어든데다, 야전 중시 경향 강화 + 육참총장의 1차보직화로 인해 연합사 부사령관은 과거 육참총장 사관학교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대부분 그 자리에서 군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2차 보직에 진출했다.[48] 한편 합참의장에는 육사 중심의 육군 견제론을 위해 그간 합참의장에 10년 가까이 육사 출신이 지명되지 않았었다.[49]

인사청문 대상자로서 재산 13억원, 교통법규 위반 3회[50]를 신고했다.# 원 구성 협상에서 양당의 치열한 공방으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대통령의 재요청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못하여, 합참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51][52] 이래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합참의장이 되었다.
▲ 취임식

2022년 7월 5일 17시, 용산 청사에서 대통령에게 보직 신고를 하였고, 바로 합참으로 이동해 18시 연병장에서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갖고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그간의 화려한 경력과 달리 합참의장 취임 이후 연이어 경계 실패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군 수뇌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군 수뇌부에 대해 교체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53]

2022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당시 대응을 놓고 2023년 1월 각군 작전사령관 및 군단장 대상 회의에서 사건 발생 후 대응 조치 미흡, 훈련 부족, 지휘관의 의지와 열정 부족 등을 지적하였다.기사

2023년 2월 15일,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로부터 2022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당시 상황 전파와 작전 발령 지연 및 격추 실패 등에 책임을 물어 1군단장 강호필, 수도방위사령관 김규하, 공군작전사령관 박하식, 지상작전사령관 전동진, 합참 작전본부장 강신철 등에게 서면 경고 조치가 내려졌으며 김승겸 합참의장에게는 구두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

또한 "결전태세"라는 명목으로 신분, 각 병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쓸데없는 허례허식이 늘어났다는 지적이 있다.[54] [55] 또한 여러 실책으로 군단장까지의 매우 좋았던 평판을 상당 부분 깎아먹고 있다. 일례로 육사 2기수 선배이자, 전임 군단장이었던 김병주 의원에게 강압적인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까이기도 했다. #

근본적으로는 다소 호불호 갈렸던 원래 스타일이 합참의장이라는 높은 자리와 맞물려 욕을 먹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56]

결국 2023년 10월, 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이 차기 의장으로 지명되었다. 현역 중장을 바로 합참의장으로 올리는 파격 인사의 배경으로 정부의 현 군 수뇌부에 대한 불신이 지목될 정도로, 김 의장의 직무 수행에 대해 불만족스럽게 보는 대통령실의 의중이 이런 파격 인사로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 그렇게 국회는 또 청문회 보고서 검토 기한을 초과하면서 김명수 의장 취임이 확정되었고 김승겸 의장은 38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하였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강릉시 현무-IIC 미사일 낙탄 사고

현무 낙탄 사고에 대해 은폐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엠바고 자체는 미사일 발사 대응 훈련에 걸려있었던 것이 맞으나 낙탄 사고가 발생한 것에까지 걸려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고 발생일 시민들의 목격담 및 처음 상황을 보면 이미 낙탄 사고가 발생하여 육안으로 확인이 되던 상황에서 추가적인 발사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낙탄 사고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고가 언제 이뤄졌는지도 군 당국이 밝히고 있지 않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사고 후에도 훈련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낙탄 지점 인근 장병들을 3백 미터 밖으로 내보냈고, 비정상적 비행 이후 1시간 대기하는 것이 규정"이라며 "추진제 연소 확산의 우려가 없는 등 위해 요소가 없다고 판단해 재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

4.2. 합참의장 공관 리모델링 관련

[단독] 합참의장 공관 개보수비 1억…'브론즈 컨셉' 화장실에 7천만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37/0000351959?sid=100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984929?sid=100

5. 여담

  • 웃는 얼굴은 교회에서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57]이며, 신장[58], 체격에 얼굴마저 날카로운 미남으로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 하지만 영관급 시절에는 휘하 병사들에게 살갑거나 인간미적 요소는 그리 없었다. 전형적인 맹장 스타일. 체격이 크고 특유의 살기 넘치는 위압감에 차가운 인상이라 다가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역병들에게는 "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라고 농담을 걸기도 했다고 한다.[59] 대대장 시절 용접을 하고 있는 병사에게 "뭐 하냐? 밖에선 뭐 했냐? 어디서 배웠냐?" 라고 묻자 병사는 대학생이고 군대와서 배운 거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대답은 "여기서만 하고 전역하면 전공에 열중하라"였다고. 그리고 통제불능 수준의 부조리에 마냥 둔감하진 않았는데, 대대장이던 시절에 깡패로 유명했었던 어떤 모 행보관을 현부심 판정을 내버려서 전역시켰다.
  • 키는 180cm정도 되며 윤석열 대통령보다 약간 크고 5기수 후배인 손식 대장과 동일하다.#
  • 자신의 운전병을 "아가" 라고 지칭하는 등 굉장히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이 아닌데, 나이가 들면서 유해진 듯으로 보인다.[60]
  • 가족으로 배우자와 슬하에 2녀가 있다.
  •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이 글에 나와있다.#[61]
  • 제28보병사단장으로서는 이세호, 소준열, 이재관, 신일순[62], 김현집 사단장 이후의 6번째 대장 진급자이다.[63] 전임 제3군단장이었던 김병주 예비역 대장(육사 40기)[64]에 연이어 진급한데다, 비록 후임 군단장인 박상근 중장(학군 25기)은 대장 진급을 하지 못하고 예편했지만 그 후임인 전동진(육사 45기), 신희현(학군 27기) 군단장이 2022년 5월 군인사에서 동시에 대장에 진급하여 최근 군단장 5명 중 4명이 대장이 된 어마어마한 진급률을 갖게 되면서 제3군단장 역시 대장 진급에 있어 제1군단, 제5군단과 함께 요직 코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육사 42기의 선두주자로서, 대장까지 모든 계급으로의 진급을 1차에 했다. 기사 이건 능력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가능한 일로 극히 드문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 1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김인종(육사 24기), 신일순(육사 26기), 김근태(육사 30기), 이성출(육사 30기), 정승조(육사 32기), 김승겸(육사 42기), 안준석(육사 43기), 전동진(육사 45기), 고창준(3사 26기)뿐이다.
  • 그의 대장 진급 배경에는 넘사벽 아이템인 을지무공훈장[65], 중위부터 중장까지의 진급을 모두 1차에 한 것, 군복무를 하면서 소대장을 완료하자마자 바로 특전사 복무를 해서 대위(진)때 이미 강하조장을 획득한 데다가, 필수적인 보직들 역시 지휘관을 제외하면 중령 이내에 어지간한 보직들을 다 완료했으므로[66], 보직의 제한에서 굉장히 자유로웠던 점[67],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의 임관동기인 3사 21기[68]나 학군 24기[69]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었다는 요소들이 있다. 결국 육사 42기 내 선두주자인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과 경쟁하였는데, 본인과 함께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이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육사 1기수 후배인 안준석 국방개혁비서관 역시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여 지상작전사령관에 취임하였다.[70]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하게 되었다. 육사 출신에다가 과거 정권에서 내내 중용되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없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실전 경험도 있고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하여 도발 시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장군이 바로 김승겸 대장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71]
  • 훈장, 표창 등을 매우 많이 받았다.참고 게시글 당장 최상단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약장이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다. 약장에 밀려서 본인이 얻은 공수 강하조장휘장이 안 보일 정도다. 김 의장의 정복에 부착된 약장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10번째줄 : 을지무공훈장
9번째줄(왼쪽부터) : 보국훈장 국선장 / 美 Legionnaire급 공로훈장
8번째줄 : 합참의장표창 / 육참총장표창,
7번째줄 : 육군대장표창 / 육군중장표창,
6번째줄 : 육군소장표창 / 교육기관우수학생기장 / 적십자기장
5번째줄 : 6.25 40주년기장 / 근속10년기장 / 건군50주년기장
4번째줄 : 근속20주년기장 / 육군전술우수대대기장 / 대대장역임기장
3번째줄 : 합동전문자격 / 합참근무기장 / 연대장역임기장
2번째줄 : 근속30주년기장 / 사단장역임기장 / 군단장역임기장
1번째줄 : 전투경력기장 / 6.25 70주년기장 / 명예로운 경력기장

6. 관련 문서



[1] 제21대 국회 후반기 원내 구성이 법제사법위원회국회의장 선출 문제로 여야 대립이 이어지며 한 달 넘게 되지 않아, 청문회를 할 국방위원회 상임위원이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결국 후보 지명 40일 만에 대통령 재가로 임명되었다. 다만, 후술하듯 FM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장군인데다 을지무공훈장까지 수훈받은 인물인지라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무탈하게 통과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을 때, 윤 대통령을 그동안 비판해온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야당에서 길게는 수십 년 전의 일까지 들춰내어 물고 늘어지면서 탈탈 털리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김승겸 의장 임명 강행 당시 민주당이 비판했던 부분은 그저 청문회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 되었으며 임명 자격에 대한 적합 여부나 과거 행적 등 김 의장 개인의 됨됨이에 대한 논란은 거의 없었다.[2] '91년 2월부터 9월 사이 7개월의 기간이 비는데, 국회에 제출된 김승겸 합참의장 임명동의안 자료를 보면 그 시기 육군보병학교 고군반을 간 것으로 나온다.[3] 이 보직을 하고 있을 때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4] 육사 42기는 1994년 8월에 소령 1차 진급 발표신문기사[5] 소령인데 웬 대대 작전장교 보직? 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작전과장에 해당하는 보직이 당시 명칭은 작전장교였다.[6] 영상 41:08 쯤에 나온다. https://youtu.be/wUjzXyCirDo[7] 연대장 재임 때 직속부하였던 2대대장이 강호필 現 지상작전사령관이다.[8] 합참 대령 보직들 중에서 준장 진급률이 높은 요직으로, 역대 과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 이 직위를 역임한 사람들로 정승조(육사 32기-대장 전역), 이홍기(육사 33기-대장 전역), 신현돈(육사 35기-대장 전역), 김종배(육사 36기-중장 전역), 신원식(육사 37기-중장 전역), 김왕경(육사 38기-준장 전역), 장경석(육사 39기-중장 전역), 구홍모(육사 40기-중장 전역), 박철희(육사 41기-준장 전역), 김승겸(육사 42기-대장 전역), 안준석(육사 43기-대장 전역), 김정유(육사 44기-소장 전역), 전동진(육사 45기-대장 전역), 김홍석(육사 46기-소장 전역), 강호필(육사 47기-현직 대장), 이승오(육사 49기-현직 중장), 강현우(육사 50기-현직 소장), 안찬명 (육사 51기-현직 소장), 우석제 (육사 52기-현직 준장), 김홍식 (육사 53기-현직 준장)이 있다.[9] 준장 진급은 매년 1월 1일이다.[10] 28사단장 출신 대장 진급자는 이세호, 이재관, 신일순, 김현집, 김승겸 사단장 총 5명이다.[사유] 전임자 서욱 국방부장관 임명[12] 최상목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과 동기. 일반적으론 하하의 출신학교나 FC 서울 유스로 유명하다. 육사 48기의 박후성 소장이 고교-사관학교 6년 후배인데, 김 의장이 제28보병사단장을 지낼 당시 박 소장이 예하부대인 제80보병연대장에 취임했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재직 중이던 2022년 말 박 소장이 휘하 핵·WMD대응본부장으로 취임하며 재회하였다.[13] 제6보병사단제3보병사단 경계와 가까움[14] 제1연평해전에 참전한 안지영 해군 대위(23년 기준 대령)와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검문검색대 공격1팀장 김규환 해군 대위(23년 기준 중령)이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하였다.[15] 그 이상 등급의 훈장도 있기는 한데 미국인만 수훈 대상자다. legion of merit는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 장교들에게 주로 수여되기 때문에, 이걸 받은 군인들은 태반이 미국통이다. 전인범, 이종섭 등.[16] 2011년 해체[17] 지금도 일반 보병부대에 가면, 월계공수휘장을 달고 있는 부사관들이 종종 있다. 이들은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하여 특전사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특전여단에 남지 않기로 하고 일선 보병부대로 전출 명령을 받은 인원들이다.[18] 결국, 2022년에 제복군인 최고 서열 1인자에 올랐다.[19] 국군과 달리 미군은 전투조끼 FLC Vest에 수통(집)을 2개 결속하게 되어있다.[20] 어떤 것이든 어중간하게 하는 것을 경멸하는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이다.[21] 이 게시물의 작성자를 뜻한다.[22] 역시 이 게시물의 작성자이다.[23] 연대장 보직 중 제1경비단장과 동렬의 상당한 요직이다. 전임자는 김운용 예비역 대장(육사 40기)이다. 비슷한 시기 육사 동기 안영호 예비역 중장이 11연대장을, 1기수 후배 김정수 예비역 중장이 15연대장에 재임중이었다.[24] 소위 시절 35사단에서 소대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25] 거의 무조건 1차로 준장 진급하는 자리였고, 역시 합참 작전라인의 쟁쟁한 후배들이 보직을 이어받으려 대기하고 있기에 인사가 그렇게 운영되었다. 장경석 예비역 중장(육 39)이 盧-MB 정권 교체 이후 밉보여서 이 자리에서 진급에 실패했는데 이 일이 뉴스까지 날 정도로 합동작전과장의 진급 실패는 예외적인 일이다. # 2021년에 안찬명 합동작전과장(육사 51기)의 진급 실패가 뉴스에 났다. 안찬명 대령은 후속 보직으로 역시 요직인 제1군단 작전처장으로 이동했다가 2022년 11월 인사에서 준장으로 진급하였다.#[26] 후임 과장인 안준석(육사 43기)도 대장 진급에 성공하여 지상작전사령관을 역임하였다.[27] 의외로 이런 연대장이 꽤 있다. 연대장들도 초임 시절에 소대장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28] 무장공비 소탕작전의 이름은 위에도 서술됐다시피,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이므로, 이 본문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딸의 이름이 김은하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29] 휘하 2대대(도라대대)장인 강호필 중령도 작전 직능으로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는데, 1사단장과 합참 작전부장을 거쳐 중장 진급 후 제1군단장을 역임하고 합참 작전본부장에 재임하다가 대장달고 합참차장 보임후 육사동기인 손식이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되는 바람에 지작사령관으로 재직중이다. 유명 유튜버인 승냥이 탈영사건 당시 직속상관들이었는데 김승겸은 연대장 강호필은 대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30] 말년 장포대가 아닌 초임 준장이 이 보직을 경험한 케이스는 대부분 이름만 올려놓고 장군 진급자 대상의 교육을 받으러 바쁘게 돌아다닌다. 전인범이 1사단 부사단장, 박정환 前 육군참모총장은 22사 부사단장 출신.[31] 서부전선 포격 사건 이후 격려 및 치하 목적이었다. 사진 속 등장인물은 좌측부터 한민구 국방장관, 박근혜 대통령, 김승겸 당시 28사단장, 박근혜 뒤에는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32] 사건으로 인해 전임자인 육사 40기 이순광 예비역 소장이 보직해임되고 후임으로 부임한 것이었다. 이순광 장군은 비슷한 시기에 보직해임된 육사 동기인 前 22사단장 서상국 장군(임병장 사건), 前 17사단장 송유진 장군(성추행 사건)과 더불어 해당 기수에서 잘나가는 선두주자였다. 참고로 김승겸 장군의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전임자들은 모두 육사 2기수 선배인 40기 인원들인데, 이중 연대장 전임인 김운용과 군단장 전임 김병주는 저렇게 사건으로 인해 잘나가던 동기들이 정리되고 정권 교체 이후 또 한번 군 인사가 물갈이되며 둘 다 진급이 늦은 편이었음에도 모두 대장까지 진급했다.[33] 김승겸 본인이 28사단장 당시 만들어 놓은 수많은 각종 휴가와 혜택들을 윤의철이 전부 없애버렸다가 강건작 소장(육사 45기)이 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도로 부활시켜놨다.[34] 전임은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예비역 대장, 현 국회의원(육사 40기)이고, 후임은 학군 출신 박상근 예비역 중장이다.[35] 사실 3군단장은 제1군단, 제5군단장에 비해 요직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최근 군단장 5명인 김병주-김승겸-박상근-전동진-신희현 중 무려 4명이 대장 진급에 성공하며 저 두 보직을 뛰어넘어 80%의 진급률을 보이며 새로운 요직으로 떠올랐다. 현재 합참의장과 지작사령관, 2작사령관이 모두 3군단장 출신이다.[36] 전임은 대장 진급 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한 최병혁 대장(육사 41기)으로 이분 역시 김승겸과 비슷한 시기에 제22보병사단장을 역임하면서 임기 내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수습했고 무사히 별들의 무덤을 벗어났다.[37] 영관급 실무자들이 보고서 하나로 야근을 하고 피곤해하니 아예 그런 거 쓰지 말라고 한 것.[38] 실제 김승겸 장군 본인이 28사단장 부임 전에 해당 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건을 들여다보면, 본부포대장, 행정보급관, 대대장, 주임원사 모두 병력 관리감독에 관심이 없었다. 줄여서 말하면 간부가 일을 안 하니 병들이 자기가 나서서라도 일을 해결하겠다라는 생각으로 나서서 사고를 낸다는 것이다.[39] 특히 GOP 등 전방 순찰에 대해 강조한 사항임. 실제로 GOP는 비 많이 오면 비탈이 무너지거나 해서 길이 도저히 못 지나다닐 수준으로 망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40] 본인부터가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자기 경험을 반영시킨 모양.[41] 위험한 상황이긴 했다. 이미 이상 상황이 발생했으니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지 말란 법도 없고.[42] 비슷한 사례로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 역시 제3보병사단장 때는 장난 아니게 빡센 성격이었지만 특전사령관으로 진급한 이후에는 복무여건 개선 방안을 찾으려고 했으며, 초대 군사안보지원사령관으로 이동해서는 과거 기무사 시절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점에서 호평이 있다. 반대로 계급별로 요구하는 역량이 달라지는 걸 무시해서 상당한 물의를 빚은 사례도 있는대 대표적으로 김승겸 바로 후임 사단장이었던 윤의철. 28사단장 때도 모자라 7군단장과 육군교육사령관 시절에도 특급전사 강요 및 똥군기로 깽판치다 결국 합동참모차장으로 이동했으며, 그 후유증의 수습을 각각 후임 사단장, 군단장인 강건작, 허강수가 도맡아 했으며 후임 교육사령관인 박상근 역시 취임하자마자 이를 수습해서 정상으로 만들고 전역해야 했다. 김승겸 중장은 육군참모차장이라는 요직으로 영전한 이후에도 윤의철 군단장(육군교육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가 다시 합참차장에 보임된 후, 인사사령부 연구관에 잠깐 앉아있다가 전역.)의 사건사고 보고를 계속 듣게 되었다.[43] 전임자는 육군참모차장 보직을 물려준 최병혁 대장이다. 또한 3군단장 보직을 물려준 김병주 예비역 대장도 이 보직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44] 이전 버전에는 통역병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연합사의 장성, 특히 투스타 이상은 기본적으로 통역장교 한 명이 무조건 붙어다니기에 통역병에게 통역을 시키기는 커녕 병사가 통역하는 걸 볼 일 자체도 거의 없다. (육, 공군 기준) 일단 통역시험을 통과하고 오지만 통역병과 통역장교는 지원요건과 시험 난이도, 합격 후 받는 교육의 수준까지 차이가 크다 보니 통번역 실력도 대부분 넘사벽인지라, 하다못해 통역장교가 부재중이라도 다른 통역장교에게 부탁하지 통역병은 최대한 굴리지 않으려 한다. 아래에 링크된 썰도 그렇고 정황상 장교를 갈군 게 맞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인재를 통역 퀄리티로 지적할 수 있는 본인의 영어실력도 그야말로 비범하다 보면 된다. 아래 링크 글에 나온 KSK 이니셜 드립과 통역장교 갈군 썰은 해당 시기 연합사 근무했던 장교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45] 타이틀이 '9년만의 육사 출신 합참의장'이다. 최윤희 의장(해사 31기), 이순진 의장(3사 14기), 정경두 의장(공사 30기), 박한기 의장(학군 21기), 원인철 의장(공사 32기) 등,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육군, 특히 육사를 견제하기 위해 합동참모의장은 해공군 출신이 강세를 보였으며, 육군 출신이 맡더라도 비육사가 맡아왔었다.[46] 후임 부사령관은 안병석 육군참모차장이 진급하여 이동하였다. 참고로 김승겸 대장의 전임 연합사 부사령관인 최병혁 예)대장(육사 41기)과 김승겸 대장 본인도 육군참모차장 직에서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47] 정승조 부사령관이 합참의장, 후임 권오성 부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한 뒤, 이후의 박선우(육사 35기), 김현집(육사 36기), 임호영(육사 38기), 김병주(육사 40기), 최병혁(육사 41기) 부사령관은 모두 당 보직을 끝으로 예편하였다. 다만 제3야전군사령관을 이미 역임하고 2차 보직으로 부임한 김현집정승조 같은 예외처럼 뒤이어 대장 보직을 또 받을 확률이 나머지 네 사람보다 당초 훨씬 낮았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달랐다.[48] 다만 참모총장으로의 영전이 없는 것은 여전한 터라 사실상 과거의 '육참총장 사관학교' 별칭은 내릴 때가 되었다. 현 안병석 부사령관도 총장으로의 영전 가능성은 적다. 문재인 정부 이후 육군총장이 된 인사 중 김용우서욱, 박정환은 모두 대장 진급과 동시에 총장을 1차 보직으로 받았다. 남영신 총장은 지상작전사령관 출신이고 전임 서욱 총장과 동기임에도 군에 혁신을 남기기 위해 50여 년 만의 비육사 총장으로 만들겠다는 군 통수권자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케이스.[49] (최윤희(해군)-이순진(3사)-정경두(공군)-박한기(학군)-원인철(공군))[50] 속도위반 2회, 신호위반 1회. 이 와중 함께 청문회를 치를 박순애 사회부총리 후보자와 김승희 보건부장관 후보자에 비해 논란이 없는 수준이기에, 청문회 일정을 다룬 기사에서도 언급조차 잘 되지 않는다. 군인, 특히 장교들은 매 진급 선발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진급철에는 투서까지 오가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을 뚫고 군인으로서 청문대상(국방장관, 합참의장)까지 오를 정도면 청문회에서 낙마할 만한 문제점이 있기가 힘들다. 진급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업무능력과 성품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전부 다 들어가기 때문. 4성장군쯤 되면 위법 사항을 다 털어도 아예 안 나오거나, 나와도 30년 동안 운전 중 실수로 속도위반이나 신호위반으로 한두 번 딱지 떼인 수준이다.[51] 2006년 말. 군의 반발로 원래 중장과 대장에 전부 적용하려다가 대장만 하기로 후퇴했다가 대장 중에서도 합참의장만 하기로 다시 후퇴하였다. 알다시피 인사청문회를 한번 거치면 별별 내용으로 털리는 게 일상이라, 민간의 후보자들도 청문회가 무서워 고사하는 사례가 많고 특히나 상명하복 체제에서 군을 지휘해야 되는 장군 및 제독 입장에선 청문회로 위신에 상처가 갈 경우 영이 안 설 수 있단 반대의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52] 다만, 미군은 원래 한국이 하려 했던 것처럼 중장 이상부터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단, 개인의 비위사실이나 신상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검증은 사전에 검토하고 비공개로 한다.[53] 그러나 23년 10월, 결국 임기 2년을 채 못채우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현 대장들에게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54] 이 부분에 대해 군튜버 캡틴 김상호는 본인은 옛날에 인민군 간첩 잡았다고 하면서 자랑하고 결전태세를 강조하면서 정작 일선 간부들이 결전태세를 취하고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놨다며 비판했다. 특히 쓸데없는 경연대회와 복잡한 훈련규정만 없애줘도 초급간부들은 알아서 전술연구하고 건의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는데 그런 지원자체를 안해주니 초급간부들이 이탈하는거라며 일갈하기도 했다.[55] 결국 허례허식이었는지, 김 의장의 전역과 동시에 ‘결전태세’라는 용어는 사라졌다. 대신 이종섭 장관의 후임자인 신원식 장관이 붕짜자 붕짜 ‘즉강끝’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냈다.[56] 한국은 공직자 자체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인데, 특히 고위공직자에겐 더해서 조금이라도 갈리면 바로 비판이 쏟아지듯 들어온다.[57] 2018년에 장로가 되었다.[58]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전임자 최병혁 대장(185cm)과 나란히 섰을 때 약간 작았고, 키가 178cm인 윤석열 대통령보다 살짝 큰 것으로 볼 때 180cm 전후로 추정된다.[59] 영관 장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듯. 군단장 시절은 인간미가 넘쳤다.[60]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당시 운전병이었던 전 모 씨에게 "아가~"라고 지칭했었는데 이때 당시 운전병의 나이는 25살이었다고 한다.[61] 이 글에 함께 서술된 강신철 장군과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62] 신일순 前 대장과는 제28보병사단장-제3군단장-육군참모차장-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보직이 겹친다.[63] 이세호 사단장의 전임이었던 서정철 사단장까지는 준장 계급으로 사단장을 역임했으나 서정철 준장이 부하에게 살해당한 뒤로 상비, 지역방위사단장의 계급이 소장으로 격상되었으며, 이후 김승겸 사단장에 이르기 까지의 사단장들 가운데 지일환(육사 13기), 김길부(육사 20기), 김종천(육사 28기), 박종선(육사 34기) 사단장은 중장으로 전역하고 그외 대부분의 사단장들은 소장으로 전역하였으며, 본인 이후의 윤의철(육사 43기), 강건작(육사 45기), 이두희(육사 46기) 사단장까지 4연속으로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다.[64] 육사 28기의 박흥렬 군단장(육군참모총장 역임 후 2008년 대장 예편.) 이후 아주 오랜만에 나온 제3군단장 출신 대장 진급자다.[65] 이건 바로 티가 나는 공적이다. 이 공적은 김승겸 대장이 다른 육군 장성들과 확연히 구분 되는 요소가 되었고, 합참의장 영전에도 기여한다.[66] 심지어 훈육장교도 있다.[67] 그의 군생활을 학생으로 따지자면 방학이 시작한 지 3일 만에 밤을 새워가면서 방학숙제를 완벽히 완료해 놓고 방학을 즐기는 셈이다. 군 생활 초반에 이룰 걸 미리 다 이뤄놓았으니 진급이 빠른 건 둘째치고 군 생활이 여타의 장성들에 비해서도 편할 수밖에 없었다.[68] 육사 40기와 같은 1984년에 임관하였으나, 학사 학위 위탁교육 과정으로 인해 사실상 육사 42기와 임관동기이며 이 기수에서 소장으로 예편한 인물이 장달수육군3사관학교장, 소강원 前 제1야전군 부사령관이다.(다만, 임기제 진급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급은 불가능했다)[69] 이 기수에서 이미 소장 예편한 박신원 육군기계화학교장과 정재학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이 있으나 정재학 장군은 50사단장 시절의 논란으로 소장에서 군 생활이 끝나는게 사실상 확정되었고 박신원 소장은 기갑 병과여서 보병 병과가 주류인 육군 내에서 진급 가능성이 낮은 편이었다. 의외로 기갑은 진급이 보병, 포병에 밀리는 상대적 한직이다.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현역일 당시에 육군 역사상 처음으로 기갑 병과로 임관한 육군의 역대 장성들 중에서 대장 진급을 했지만 이는 특이한 경우이고, 대장 진급을 했지만 대장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밑으로 밀리는 제2작전사령관에 그쳤는데다가 그것마저도 본인이 스스로 일으키게된 구설수 속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되었다.[70] 얼마 지나지 않아 군수 직능이었기 때문에, 진급이 늦어 군수사령관만 지내봤기에 2차 보직인 참모차장으로 이동한 박주경 중장을 제외한 나머지 동기들은 연구관을 거쳐 전역했다.[71] 어차피 대장은 1차로 임명된 여섯 명 중 하나가 2차보직인 합참의장으로 빠지는 거 빼면 더 올라갈 곳도 없는 제복군인의 최정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장들은 4성까지 단 것에 만족하고 전역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즉 그냥 갈 사람이 간 거다. 사실 가만히 있어도 임기인 2년을 다 채우는 것은 드물다. 이순진 전 육군 대장도 합참의장을 22개월 했는데 이것도 길게 한 축에 든다. 보통은 인사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날 때마다 빨리빨리 물갈이한다. 대우는 분명히 장관급인 대장과 차관급인 중장은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니 인사청문회를 받아야 하나 합동참모의장을 제외하면 아무도 인사청문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꼼수이나(참여정부에서는 장성들도 인사청문회를 받게 하려 했으나 군의 반발로 합동참모의장만 대표로 받는 걸로 마무리.) 인사적체보다는 훨씬 낫고, 후배들도 진급할 기회를 주긴 해야 하니 이젠 다들 당연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