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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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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大韓民國 海兵隊
ROK Marine Corps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Korea_Marine_Corps.svg.png
병력 약 29,000명(2018년 기준)
169페이지 참조
창설 1949년 4월 15일
사령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1]
역할 상륙작전, 해안/강안/도서 경계, 방어
사령관 중장 이승도
지휘체계 해군본부해병대사령부
마스코트 해병이
웹사이트 대한민국 해병대 홈페이지
파일:해병이.jpg
파일:해병이2.jpg[2]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If anyone could become a marine, I would never have chosen a marine!)
무적해병 상승해병 귀신 잡는 해병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For Justice And Freedom) - 대한민국 해병대의 모토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
태극기 휘날리며 국토통일에
힘차게 진군하는 단군의 자손
나가자 서북으로 푸른 바다로
조국건설 위하여 대한해병대
나가자 해병대


1. 개요2. 수뇌부3. 역사4. 편제5. 문제점
5.1. 인적 자원의 질 문제5.2. 해병대 특유의 악습5.3. 작전능력 부족5.4. 과다한 병력 규모
6. 한국 해병대의 흑역사7. 구조
7.1. 독립 문제
8. 임무와 능력9. 기타
9.1. 강제로 해병이 되는 케이스9.2. 경례 구호 9.3. 해병대와 해군의 헌병9.4. 해병대 출신 유명인
9.4.1. 연예계9.4.2. 스포츠9.4.3. 정재계9.4.4. 기타
9.5. 폐지 및 해체?
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1. 개요

국군조직법
제2조(국군의 조직)
국군육군, 해군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제3조(각군의 주임무 등)
②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
한국 해군의 전략기동부대. 처음에는 철수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장비를 긁어모으고, 해군에서 차출한 약 400여 명(장교 26명, 부사관 84명, 병 300명) 정도의 병력밖에 없었다.[3] 이후 꾸준한 확장을 통해 현재는 2개 사단과 2개 여단, 독립부대(연평부대)를 거느린 군단급 부대이며 병력은 대략 28,000명 정도다.[4]

해병대의 최선임 제복군인중장 계급인 해병대사령관이다.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됐던 1973년부터 1987년까지는 해병대사령관이 아닌 제2해군참모차장이라 불렸다.

2. 수뇌부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주임원사
파일:MJI_crop2.jpg 파일:JKD_crop.jpg 파일:20180730_111326360_17989.jpg 파일:1553255248662.jpg 파일:1519265764602.jpg
문재인 정경두 심승섭 대장 이승도 중장 전종익 원사

3. 역사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 해군의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만주군 간도특설대 창설 멤버 출신인 신현준이었다.[5]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50년 8월 17일, 해군과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중 김성은 중령이 이끄는 1개 대대경남 통영에서 북한군 대대 병력을 무찌르고 통영 탈환에 성공하였다. 그 후 이 작전에 대한 취재차 해병부대를 방문한 미국 뉴욕 헤럴드트리뷴지의 마거릿 히긴스 기자가 "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쓴 신문기사가 게재된 걸 계기로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고, 현재는 그 얘기가 여기 저기서 널리 홍보까지 되고 있다. 하지만 히긴스 기자가 정말 그런 기사를 썼다는 걸 증명할 실제 기사의 존재 여부가 확인된 적은 없다. 히긴스 기자의 종군 기사들을 모두 모아놓은 저서에도 그런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6.25 전쟁에서의 히긴스 기자의 활동을 집중해서 다룬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히긴스 기자의 다른 보도내용들은 모두 미국 기사 원본들이 화면으로 함께 소개되는 형식으로 나왔지만, '귀신잡는 해병' 관련 내용만은 기사 원본이 안 나오고 그냥 한국 해병대 출신들의 카더라 인터뷰로만 나왔다. 심지어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도 그 별명이 히긴스 기자의 기사에서 유래된 거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고 히긴스 기자가 정말 그런 기사를 썼었는지 여부와 정확한 실제 유래가 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통영상륙작전 이후 경인지구작전, 서울수복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해병대는 이승만 대통령의 큰 신임을 얻었고 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개 해병대 대대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생일케이크글 전달한다. 이 케이크를 전달받은 대대장이 후에 제6대 해병대사령관이 되는 공정식이다. 1951년 6월에는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로부터 도솔산 지구전투를 인수받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 공산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도솔산 지구전투의 승리로 이승만 대통령은 해병대에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한다.

1961년 김포에 주둔하며 최전방 경계 및 방어 임무를 맡고 있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6][7]의 병력이,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서울로 진입하였다. 김포를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북한의 남침 위험이 상존하는 요충지인 김포를 거의 비워두고 쿠데타를 위해 서울로 진격한 것은 위험천만한 반역행위였으나[8] 쿠데타에 가담한 해병대 장성들은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 출세를 하게 된다.[9] 어찌보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드립의 원조'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은 육군이었으며 육사 5기생[10]과 육사 8기생들이 5.16 군사정변의 핵심 세력이었다. 그 후로 후술하듯이 박정희 대통령은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는 등 실권을 약화시켰고[11], 박정희가 60년대에 해병대에 일시적으로 주었던 혜택[12]은 사실상 생색내기 수준의 논공행상에 불과했다.

이 때 독립된 군이던 해병대가 해군 밑으로 들어갔다는 허위주장을 일부 해병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는 창설 이래 해군에서 독립했던 역사가 없다. 해병대사령관이 해군참모총장보다 먼저 대장 계급을 단 사실이 논란이 된 것도 이 때문으로, 해병대가 독립된 군이었다면 "하급기관의 장이 어떻게 상급기관의 장보다 계급이 높냐"며 따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의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시 "1973년 이전으로 되돌린다" 하여, 분명 해병대사 해체 이전부터 해병대는 해군 예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베트남전을 위한 한국군 전투부대 파병이 결정나자 비둘기 부대에 이어 해병대의 청룡부대와 육군의 맹호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13] 자세한 것은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서 참조. 파병 병력을 꾸리기 위해 1사단 병력을 바탕으로 청룡부대라는 별명이 붙여진 제2여단을 창설했고, 베트남 파병이 종료되어 한국으로 철수한 뒤로는 이 2여단이 김포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지역 경계/방어 임무를 맡게 된다[14]. 그 전까지 김포 지역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해병대 5여단은 2여단과 경계임무를 교대한 뒤 포항의 해병대 1사단으로 돌아가서 예하 부대들에 흡수되면서 없어지게 된다.

국군 월남파병이 끝난 후 군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다. 이 시기엔 공식적으론 해병대라는 명칭조차 못썼고, '해군해병'이 정식명칭이었다. 그리고 해병대사령관은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계급 역시 중장으로 돌아갔다. 병과도 해군보병, 해군포병, 해군기갑 등으로 서류상 등재명이 바뀌었고, 병들은 해상병(수병)/상륙병(해병)으로 구분됐다. 박정희 정부는 지상군 병력인 해병대는 축소시킨 대신 해군에는 많이 투자를 했는데, 당시에는 없는 형편에 기어링급 구축함을 도입하여 최초로 미사일 운용 함정을 들여오기도 했으며, 이 기어링급은 1990년대까지 해군 주력함 중 하나였고 나중에 KDX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으로 대체되었다.[15]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7년에 다시 해병대 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많은 해병대 출신들이 해병대사령부를 없앤 대통령이 전두환이라는 잘못된 소문을 퍼트려 왔는데, 실제론 오히려 정반대로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시켜준 게 바로 전두환이었다. 심지어 당시에 정부가 해병대사령부 부활을 추진하자 해군 측에서 적극 반대했는데도 부활을 관철시켰고, 결국 해병대사령부 부활 쪽으로 전두환의 의중이 굳혀지자 해군 측에선 사령부는 어쩔수 없이 재창설시키더라도 부대 명칭은 '해군상륙군사령부'로 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원래 부대명칭이 부활하는 것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부는 결국 '해군'자를 떼어내고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명칭으로 부활시켜주는 큰 선물을 해줬다. 해병대사령부를 다시 창설하더라도 만약 해군 측의 주장대로 했으면 부대 명칭은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상륙사단 등이 될 뻔했던 것이다.[16] 이런 해병대 부활 당시의 상세한 뒷이야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4. 편제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Korea_Marine_Corps.svg.png대한민국 해병대의 부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해병대사령부.png해병대사령부 예하부대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01218211339.jpg
제1사단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01218211357.jpg
제2사단
파일:ROKMC_6bde.jpg
제6여단
파일:external/s20.postimg.org/9thmarine.png
제9여단
파일:연평부대.jpg
연평부대
파일:해병대 교육훈련단.png
교육훈련단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Korea_Marine_Corps.svg.png
군수단
합동부대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10620110707.jpg
서북도서방위사령부
파일:Flag_of_the_Republic_of_Korea_Marine_Corps.svg.png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

연대급 이하 부대는 고유명칭을 쓸 수 없고, 통상명칭이나 상징명칭을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 해군 산하에 있는 해병부대들도 있다. 이들은 해병대사령부가 아닌 해군작전사령부 밑에 있으며, 지휘도 해군으로부터 받는다.
  •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항만방어전대 예하 해병대 육상경비대 -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경비와 항만 방어를 위해 해병대 육상경비대라고 불리는 대대급 해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약칭 해병육경대라고 부른다.부산광역시 강서구와 진해 해안의 경계근무를 해군 경계헌병과 공동 전담한다.
    각 해군부대들의 경비중대등 경비부대에는 옛날엔 해군 헌병이 아닌 해병대원들이 들어갔었다. 몇몇 예비역들이 자신들이 해군의 개냐며 기지경비 업무를 맡지 않게 해 달라고 우긴 게 관철됐는지(?) 현재는 진해 해군기지를 경비하는 해병대 진해육경대를 제외하면 그 외의 해군기지 경비업무는 없어졌다. 당시에는 해군에는 자체 헌병이 없었고, 해병 헌병이 해군기지에서 해군 장병을 단속했다. 어차피 해병대가 해군 예하이므로, 해병 헌병이 해군 헌병 역할을 맡으며 해군을 단속하는 자체는 상식적인 일이긴 하다.
    일부 해병대 예비역들의 그런 불만은 원래 해병대의 주 업무 중 하나가 해군 내의 지상전 수행과 경비 임무였다는 것을 간과한 억지이다. 정작 그 예비역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미 해병대는 해군기지 경비도 맡고 있다. 지금도 일각에선 해군 경계헌병을 뽑지 말고, 다시 해병대 보병들을 경비중대에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래도 지상전 교육을 더 받고 소총 등 육전용 병기에 익숙한 보병이 경계 근무에 더 적합하다는 것으로, 해병대 예비역 내에서도 숫자 늘리고 좋지 않냐며 이 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고로 해군 헌병 장교 역시 임관/전과 후 받는 초등군사반 교육을 해병대에서 받는다.

경계근무 등 지상작전 경험이 없는 해군 경계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대위급의 장교가 각 함대에 경비대장 혹은 지상작전담당이라는 직책으로 파견, 경계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컨트롤을 하거나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청해부대 등의 해군함정의 해외파병시에도 해병대원이 항상 함께 파병이 되며 주 임무는 정박시 경계 임무를 수행한다.

  • 도서 지역의 해군 조기경보전대들 산하에 해병소령이 지휘하는 예비군 관리대가 편성되어 있다. 여기는 해군과 해병이 함께 근무한다. 해병대사령관이 사령관을 겸임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해군본부 직할이다. 1982년 해군이 육군으로부터 도서경비를 이관받으면서 조기경보전대 및 항만방어전대를 창설하고 휘하에 해병소령이 지휘하는 예비군 관리대를 넣었다. 울릉도에 배치된 해병대 병력은 독도를 넘보는 일본에게 적게나마 경고가 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해병대 병력이 인근에 주둔하면 본토에서의 증원이 가능하다. 해병대 제1사단은 울릉도와 가까운 포항에 배치되어 있고 최근 동해안에 해안선 돌발상황에 대비한 신속대응부대도 배치했다. 이 신속대응부대는 서해안에도 배치되었다. 그런데 만약 독도가 적에게 점령당해서 다시 탈환해야 할 경우 섬 자체가 너무 작아서 대규모 전투부대가 들어가지는 못하고 어차피 해군 특수전전단이나 해병수색대 같은 소규모 특수전부대나 수색부대로 탈환해야 한다.[18]

해병 부대의 명칭은 1973년에 사령부가 폐지된 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론 못쓰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과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호칭되었다가[19], 1987년 해병대사령부기 재창설된 이후엔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군을 해병으로 대체한 "해병 제1사단", "해병 제00대대" 등으로 부대 공식표기명이 바뀌었으며 공식문서와 부대깃발에도 표식을 변경하였다.

5. 문제점

5.1. 인적 자원의 질 문제

해병대 창설 때부터 1958년까지 초창기 10년 동안은 지원이 아닌 전원 징집으로 신병을 충당하였다.[20][21] 그러다가 1958년부터는 지원제 위주로 선발하기 시작했고, 1967년부터 지원제와 징병제를 병용하였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의 해병대에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닌 강제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렇게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를 병행했던 시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서 징집기수, 지원기수가 되었고,[22] 따라서 전체 해병의 약 절반이 징집 해병이었다.

강제 징집이라고 서술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는 육군과 해병대가 평준화되어있어 징병연령이 되어 입대할 장정이 육군으로 입대할지 해병대로 입대할지를 추첨으로 결정했다고 하는게 맞다. 공군과 해군은 전원 경쟁입시제로 신병을 선발한 반면 해병대는 무시험 추첨으로 육군 대신 해병대로 영장이 나와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역별 징집기수 제도 외에도 비공식적이고 비정기적인 해병대 징집 케이스들도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운동권들 및 과거에 무척 많았던 병역기피를 위해 숨어지내던 사람들을 잡아낸 뒤 "빡센 군대 갈래, 아니면 깜방 갈래"라며 군대 가서 고생 좀 하고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반강제식으로 해병대로 입영시켜버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유명인들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실제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코미디언 임희춘씨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훈련병 때의 소대장을 찾아 출연했을 때 사연을 밝혔는데, 당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 소속이라 영장을 못받아 늦은 나이까지 군대를 안 갔는데, 60년대 초반에 병역기피자 일제 단속에 걸려서 체포된 뒤 해병대로 강제 입영됐다고 한다.[23] 60년대 초반이면 공식적으론 징집기수제가 없을 때였지만[24] 그 때도 비공식적이고 변칙적인 강제징집 해병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부터 징집기수를 대폭 줄여나가서 90년대 중반부터는 징집기수는 1년에 두 기수로 줄어들었고, 2003년엔 이 약간만 남아있던 징집기수제마저도 완전히 폐지됐다. 과거보다 갈수록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나서 더 이상 굳이 강제징집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 2003년부터는 상근을 제외하면 전원이 지원자이다.

과거엔 해병대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전체 해병 인원 중 절반만을 지원으로 뽑았는데도[25] 지원자가 충분치 않아서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론 해병대의 이미지도 많이 개선되고 언론홍보도 많이 하면서 지원자가 많아져서 경쟁률이 높아지자 2000년대 중반경부터는 해병 선발에 체력테스트(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도 도입됐다. 그리고 고교 생활기록부도 선발에 중요해졌다. 이렇게 요즘의 해병대는 합격하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체력테스트조차 없고 그냥 지원만 하면 대부분 무사통과식으로 합격됐으며, 뺑뺑이로 육군 대신 해병대 영장이 나와 입대하기도 한 과거의 해병대 선배들 시절과는 천양지차이고, 따라서 요즘 해병대 입대자들의 질적인 수준이 예전의 해병대원들보다는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요즘에 이렇게 지원자가 많아진 건 어디까지나 해병대 '병'의 얘기고, 해병대 부사관은 여전히 지원자가 적어서 우수 자원 선발은 커녕 인원 유지조차 늘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모병관이 툭하면 병 지원자들한테 "넌 병으로 지원하지 말고 해병대부사관으로 지원해라"고 꼬실 정도. 스펙이 낮아서 불합격 가능성이 높거나 합격 가능성이 간당간당한 지원자들에게 "넌 해병부사관으로 지원하면 백퍼 합격이니 부사관으로 지원해라"며 꼬신다. 이렇게 '병'과는 달리 해병대 부사관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해병대는 병이다'라는, 즉 해병대는 '병'이 주인이고 중심이라는 병폐적인 인식, 해병대 부사관이 실무에서나 예비역 커뮤니티에서나 해병대 병들에게 그다지 대우를 못 받고 소외되어 있는 해병대 문화 및 해병대 부사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이 그 원인이다.

연예인 등 해병대 출신 유명인들이 인터뷰에서 해병대에 왜 갔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원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는 지원이 아니라 징집기수들이다. 주변 현실에서도 자기가 지원해서 간 게 아니라 징집당해서 끌려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해병대 출신은 별로 없다. 굳이 징집이란 걸 밝혀서, 용감하게 빡센 부대에 지원했던 싸나이라는 이미지를 굳이 엎어버리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병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해병대에 징집기수라는 게 있었는지도 아예 모르고 당연히 다 지원해서 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해서 갔다고 굳이 속이지 않더라도 지원한 걸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현재는 징집기수가 완전히 없어졌고 약 98%가 지원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26]. 과거엔 지원자가 많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론 대학생 비율이 늘어나면서 복학시기를 맞추기 위해선 육군보다 빨리 갈 수 있는 해병대를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꾸준히 지원자가 늘어나서 현재는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전엔 체력검사도 아예 없었고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지만 지금은 체력테스트(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가 생겼고 거기다 고교 생활기록부도 좋아야 합격 확률이 높아지는 등 여러모로 들어가기가 과거완 비교도 안 되게 어려워졌다. 이상은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해병대 '병'의 경우다. 해병대 부사관은 여전히 지원자가 적어서 부사관 인원 확보 및 유지에 늘 곤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5.2. 해병대 특유의 악습



(해병 잡는 해병)

나름대로 정예병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상당히 마초이즘적이며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점들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쳐야 하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게 문제다.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는 해병대의 상징 그 자체 심지어는 전역 이후에도 예비군 훈련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민방위 때나 일반 사회에서 만났을 때도 선후임 따지다가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잦다. 이 때문에 나온 문구가 "해병(또는 후임) 잡는 해병대", "빤스를 남긴 해병대"일 정도로 세간의 인식은 나쁘다.

과거 해병대 시절에는 해병대의 자부심이 과한 나머지 마치 집단세뇌라도 당한 듯한 비정상적인 마인드로 인해 잘못된 문화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유의 허세 부리기, 받지도 않은 훈련을 받았다고 뻥치거나 실제보다 훨씬 과장해서 거짓말하기, 과거 역사를 조작, 왜곡하고 심지어 구라소설을 창작해내면서까지 해병대를 미화하거나 치부를 숨겨서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타군을 근거 없이 비하하고 해병대가 타군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피해망상적 카더라를 퍼트려 타군을 적대시하도록 후임들을 세뇌시켜서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자부심과 결속력을 키우는 문화 등의 문제점들을 낳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과거엔 해병대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이미지가 무척 안 좋았었다. 오죽하면 해병대 대신에 개병대라는 멸시 비하어로 부르는게 일반적이었을 정도.

2015년을 기점으로 해서 현재 해병대의 모든 부대는 해병대사령부의 지시로 일명 "오리지널 단어" 사용을 엄금하고 3군 공통 용어로 대체했고 특히 해병대 특유의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 기수열외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현재 2017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동안 해병대에 잔존해있었던 악습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일부 막장 선임들이 태형을 자체적으로 부활시키거나 식고문 악습을 하는 등 아직도 교묘한 악습이 남아있다. 어쨌든 간에 전혀 변화가 없을 거 같던 해병대 병영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으며 특히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2011년 교육훈련단장 차동길 준장(예비역)의 강한 의지로 파격적인 정책들을 써 가며 병영문화 혁신을 밀어 붙여 해병대교육훈련단에서 잔존하던 악습을 많이 없앴다. 하지만 정작 군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을 생활관에서 보내기 때문에 악습을 아예 없애는 것은 거의 힘들다. 왜냐하면 윗선에서 아무리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 해도 실무(자대)에서 함께 지내는 선임들의 직접적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에, 해병대 특유의 악습과 구라소설, 역사왜곡썰 등의 상당수가 여전히 후임들에게 세뇌/전파되고 있다. (예전보단 어느정도 나아진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2019년 5월 2일 또 폭행사건이 발생했다.(사진에 피해자의 상처 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접속에 주의할 것.)
글 내용에는 각목과 진압봉 등 도구를 이용해서 폭행을 가하고 명치를 때렸다는 내용까지 나올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또한 '이전부터 폭행은 많지만 다 적을려면 길고 피해자도 많다'며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폭행하였음을 암시한다.

5.3. 작전능력 부족

한국군의 육군 위주의 전력 때문에 해병대에 대한 예산지원은 언제나 뒷전이며 해군의 정책에 밀렸었으나 독자적으로 예산을 받아쓰게 되었다.[27]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제작해도 여전히 자체수송능력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미 해군의 도움 없이는 상륙작전 1회에 고작 1000여 명 정도를 투입할 수밖에 없으며 상륙 시 한번에 투입가능한 전차 대수가 한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독도함 기준으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전차가 고작 2대이다.[28] 공격이 방어의 3배여야 승산이 있다는 법칙도 있고 상륙작전의 특성 상 선두는 지뢰밭으로 걸어들어가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야한다.

해병의 상륙전력 구성 자체가 한미연합작전을 상정하고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 육군이나 공군과의 공조보다는 미해병대나 미해군과의 공조가 많은 편이며 오히려 이쪽이 훨씬 빠르고 쉬운 편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게 전부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즉,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북도서를 방어하는 해병 부대(6여단, 연평부대)는 장비 확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전원 방탄복을 구비하고 있고 보병의 경우 거의 전원이 특전조끼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보병의 경우 야간투시경의 보급이 폭넓게 이뤄졌으며 신형헬멧의 경우 병과 가리지 않고 교체가 되었다. 특히 김포시인천광역시를 담당하는 해병대 제2사단은 열악한 근무 요건으로 악명이 잦았다. 오죽하면 2011년 강화도 총격사건의 원인을 지나치게 많은 격오지로 인한 전투피로증으로 보고 최대한 격오지를 줄이라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지시가 있었을 정도. 사실 해군의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수도권 전 해안경계를 넘겨 받으면 끝나긴 하지만 이쪽도 부대가 작은 규모이고 무엇보다 NLL에 인접한 지역 특성상 육상에도 경비병력이 필요해서 할 수 없이 해병대가 해안경계를 맡는다. 어차피 해군 인방사든 육군이나 경찰이든 어딘가에 이 임무를 이관한다는 건 2사단이 상륙사단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병력을 그 이관받는 쪽에 넘기고 해체될 운명에 처해질 뿐이므로, 별자리 포함 장교 TO가 왕창 사라지는 걸 해병대가 바랄 리 없으므로 이관에 적극적이지 않다.

거기다 독도함은 아직 탑재할 헬리콥터가 없었다. 가끔 행사할 때 쓰는 건 육군 헬리콥터를 빌려오거나 해군이 소유한 일반 UH-60를 쓰는 정도. 바다에서 운용할 장비는 염분이나 바닷바람 등의 문제 때문에 별도처리를 해야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데, 지금 독도함에서 운용 중인 해군의 UH-60은 그런 장비 따위가 없어서 제대로 굴려먹질 못한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시작해서 2020년까지 수리온 상륙헬기를 해병대 단독소속으로 36대 이상 배치, 2개 기동대대를 만들고 추가되는 공격헬기로 1개 대대를 추가하여 해병대 직할항공단을 창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관련기사 1 관련기사 2 그러나 운용능력을 제대로 갖추려면 도입 후에도 상당기간이 걸리는 만큼 단시일 내에 능력 확보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2018년에 마린온 헬기 시험비행 중에 추락 전소하여 조종사와 정비사 등의 해병대원들이 사망한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가 발생한 것도 불운한 악재이다.

2007년 12월엔 민간인 한 명이 강화 초소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해병대원 2명을 차로 덮치고 흉기로 찔러서 그중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겐 중상을 입힌 뒤 총과 실탄, 수류탄, 유탄 등을 탈취해 도주한 강화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 1주일 뒤 경찰에 붙잡힌 범인 조모 씨는 애인과 헤어진 것에 대한 화풀이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과다한 경계근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해병대원들이 저지르는 많은 사고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2016년에도 서해 대청도에서 근무하던 해병대 이병이 섬 경계근무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생활관에다가 수류탄을 투척하여 폭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관련기사

5.4. 과다한 병력 규모

병력 규모면에서 전 세계 해병대 중 미 해병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29]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해군이 보유한 상륙수송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규모이다. 이는 유사시 미 해군의 상륙수송능력에 기대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수의 부대가 상륙전이 아닌 지역방어 등을 위한 부대라고는 한다.

미국 본토가 아닌 전 세계가 작전 무대라서 해군과 해병대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미군을 제외하면 해병대가 비대칭적으로 지나치게 대규모인 국가는 대한민국 국군 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라는 적국과의 휴전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과 역사적 원인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긴 한데 6.25 전쟁 시기에 기술군인 해군을 키우기 어려운 와중에 그나마 양성하기 쉬운 데다가 3면이 바다인 한반도 특성상 상륙작전 및 도서지역 방어, 해안선 방어 등으로 수요가 많던 해병대 인원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미국이나 한국의 해병대와는 달리 해군의 소규모 특수부대 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병대라고 번역은 하지만 실질적으론 해군 UDT/SEAL이나 해병수색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30]

한국군보다도 바다 건너 전투병력을 투입해야할 일이 더 많은, 즉 한국군보다 작전지역이 훨씬 넓다 못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강대국들도 해병대 인원은 한국군보다 매우 적다. 세계 3위 러시아 해군의 경우 정식 명칭은 '해군 보병'이고 해군 소속의 5개 연대 16,000여 명으로 구성되며, 러시아 해군 각 함대마다 1개 연대씩, 태평양 함대에는 2개 연대가 배속되어 따로 활동한다. 영국 해군의 경우 1개의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 편제로 총 7,420명의 정규군과 예비군 970명으로 구성된다. 세계 4위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우 공식 명칭은 '해군 육전대'로 4,000여 명의 병력이 중국 해군 3개 함대에 각 1개 여단씩 배치되어 있다. 단 중국 인민해방군은 군 조직개편을 통해 육군 병력을 줄이고 해군육전대 병력을 10만 명으로 대폭 증강하기로 했다.

중화민국군의 경우 1997년 국군정실방안으로 복무제도가 바뀌기 전까지 35,000명의 비대한 해군 육전대 병력을 운용했다. 대만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본토 수복이었으므로 그 선봉인 해병대에 투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본토 수복 임무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하고 2개 여단 규모, 9000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운용 개념 또한 해안선, 도서지역 방어와 침공에 대응하는 전략기동군으로 나뉘는 등 한국군과 거의 유사하다.

한국 해병대의 상륙병력 투사능력이 비대한 규모에 비해 기형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는 애초에 투사능력 대부분을 미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이다. 독도급 강습상륙함 실전배치, 수리온 해병대 사양 개발 배치 및 해병대 항공대 창설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기는 한다.

즉,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현재 한국 해병대의 병력과 편제는 대만, 중국, 러시아처럼 주변국에 대응하거나 단순히 해안선 및 도서방어 용도로는 매우 대규모이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하듯이 전 세계에 전력을 투사할 일도 없고 그럴 여건도 절대 안 된다. 한국과 직접 맞대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제외하고는 매우 실효성이 떨어진다

6. 한국 해병대의 흑역사

  • 창설 멤버들
    해병대 창설멤버였던 장교부사관들 중 상당수는 일제 시절 일본 육군과 해군 및 만주군에서 일제에 충성하던 황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었다. [31]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과 2대 사령관 김석범, 3대 사령관 김대식 등도 모두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죽이던 임무를 수행하던 간도특설대 출신들이었다 # #. 그것도 초대 사령관 신현준과 3대 사령관 김대식 등은 간도특설대의 창설멤버였고, 2대 사령관 김석범은 간도특설대의 부(副)대장이자 조선인으로서는 부대 최선임의 간부였으며 항일운동가들을 직접 체포, 심문하고 학살하는 일까지 담당하는 열성적인 활약을 보여서 일제로부터 훈장[32]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주도적인 친일 및 항일탄압에 앞장섰던 핵심 인물들이었다. 초창기 한국 해군에 있던 옛 일본군이나 만주군 경력자들의 대부분을 해병대 창설시 해병대로 보내버려서 해병대 초창기 간부들의 압도적인 다수가 일본 황군/만주군 출신이었다.[33] 이런 영향들로 인해 해병대에는 오늘날까지도 각종 용어나 문화에서 왜색문화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 제주 4.3사건
    제주 4.3사건 때 제주지역 계엄군이었던 해병대도 민간인 학살을 벌였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국방부나 해병대 측에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대민활동을 했다고 서술하나, 이건 상부에서의 형식적인 "명령"만 그렇게 하달되었지 실제로는 민간인을 사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4.3사건 기간 동안에 해병대로 입대한 청소년들 중에 제주도 출신이 유독 많았다는 것이다. 4.3 사건 기간 동안 가족과 지인 등 가까운 주변인들도 쉽게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자, 마을에 남아있으면 누구든 빨갱이로 몰려서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과 억울함에 휩싸여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라는걸 증명함과 동시에 민간에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많은 제주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국군에 자원 입대했는데, 당시 제주도에 주둔했던 군대가 해병대였기 때문에 자연히 해병대로 입대한 이들이 많았다. [34] [35]
  • 군사정변 참여
    조국을 수호해야할 군인으로서 해병들이 자신들의 라이벌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특전사와 사이좋게 손잡고 5.16 쿠데타를 일으킨 과오를 범하였다. 그것도 김포 최전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현재의 2사단) 병력을 빼돌려서 서울로 진격하게 하였다. 만약 북한이 사전에 정보를 알았거나, 쿠데타 직후 해병대 병력이 김포로 아직 복귀하지 않았을 때 이 기회에 김포 쪽으로 남침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실로 큰 일이 날 뻔 했었다. 게다가, 이들은 쿠데타에 대해 상급 기관인 해군본부에 단 한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쿠데타 지휘부에는 자신들이 해군을 완벽하게 설득해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생구라를 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쿠데타 성공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이성호 제독(중장)을 만나 약속된 협조를 요구했다가 내막을 알 리 없던 제독으로부터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반란이라니, 뭐하는 짓거리냐?"는 욕만 들어먹었고, 옆방에서 이를 듣던 육군 영관급 장교들이 "해참이 이제와서 말을 바꾼다. 죽여버리자!"며 권총을 빼들고 난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성호 제독은 상황을 읽은 전속부관이 그를 잡아끌고 잽싸게 차에 태워 해군본부로 피신시켜 화를 면했고, 이후 해공군만으로는 대세를 바꾸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병대 장군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상관을 죽음에 몰아넣을 뻔한 가히 하극상에 준하는 범죄를, 그것도 일종의 허위보고를 통해 저지른 것. 이 사건 이후, 해군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쿠데타 세력들이 박정희 장군에게 해군을 음해하여 감찰토록 했는데, 감찰 결과 해군이 전군에서 가장 부정이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36]. 그 때문인지, 육군 출신임에도 박정희는 재임 기간 내내 해군 함정이나 부대를 꽤 자주 방문하는 등 해군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고[37], 기어링급 구축함 등을 들여오는 등 해군의 전력도 매우 크게 향상됐다. 단 해군 산하의 해병대는 사령부를 없애고 해군의 참모부로 격하시켜 버렸는데 아무래도 5.16 쿠데타 당시 진상을 안 뒤에 괘씸죄가 걸렸을 수가 있다. 그리고 상급부대인 해군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 예하인 주제에 별 4개를 해병대사령관이 달고다니는 모양새도 안 좋고 이래저래 상관 팔아먹은 댓가로 해병대를 말아먹은 셈이다.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해병대 장교 129명이 공군 비행학교를 습격했다가 비행학교에서 근무하는 공군 300명에게 얻어터지고 엉망이 되어 도망가고 심지어 해병대 장교 한 명은 도망치다가 사망한 사건. 말로는 일당백이라고 이빨까지만 실제론 1:2 정도에도 깨진 것. 그것도 공군 장병들은 새벽에 자고 있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기습당했고, 지상전투병과 인원들도 아니고 항공기 및 지상 기술행정관련 등 비전투병과 인원들이었다. 전 군에서 가장 부드럽고 신사적이라는 공군 장병들에게 야비한 기습을 했는데도 해병대가 패배한 것.
    무엇보다 전시에도 아니고 평시에 그것도 자고 있는 아군을 야습한다는 상황 자체가 참 비겁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의식이 깨지 않던 시절에 일어난 엄연한 장교단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현재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등에 육공군 장교들이 파입되고 합동 근무를 하는 등 타군 장교와 해병대 장교들이 접촉할 기회가 많고 정신교육도 철저히 시켜 현역 장교들이 타군을 비하하는 경우는 없다. 아니 그전에 그 육공군 장교가 자기 상관으로 오는 경우도 많아 이들에게 찍히면 군생활이 상당히 피곤해지기에 알아서 조심하는 추세다.
  •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총소리가 들리자 다른 생활관에 있던 해병들이 누가 쏘는 건지도 모르고 무작정 팬티바람으로 집단 근무지 이탈 후 부대 주변 민가로 도망쳤다. 총격이 벌어진 그 생활관 내에서도 혼자서 범행 해병의 총을 붙잡고 총을 뺏으려고 싸움을 벌이고 있던 권혁 이병 옆의 다른 선임해병들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무서워서 차마 보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바람에 결국 권 이병이 총을 뺏지 못하고 둘 다 총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평형 상태만 계속되다가 총이 아래로 발사되어 권 이병이 고환에 총상을 입고야 만다. 그래서 권 이병의 아버지는 그때 단 한 명만 도와줬어도 총을 쉽게 뺏었을테고, 그러면 아들이 고환에 총알을 맞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선임 해병들을 원망하는 글을 해병대 가족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권 이병이 총을 뺏진 못했지만 범인을 밀어서 문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걸어 잠궜고 그러고 나서야 쓰러졌다. 총을 맞았던 하반신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는 걸 깨닫고 방 안의 선임 해병들에게 자신을 지혈시켜 달라고 부탁했으나 해병 선임들은 그저 덜덜 떨며 보고만 있을 뿐 지혈할 줄 모른다며 그 도움요청마저 거절하였다. 구급법도 모르나 보다. 게다가 권 이병이 아니었으면 자기들이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 자기들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도 그처럼 도움을 전혀 안 주고 무작정 회피하려고만 했다는 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해병대 장성들은 권혁 이병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다고 사탕발림한 후 시간이 지나니 싹 잊고, 네 돈으로 사회 병원가서 치료받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배상해 준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는 이미지를 많이 구겼으며 그 뒤에도 악성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바람에 유낙준 해병대사령관[38]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짤렸고 최악의 사령관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 사령관인 이호연 사령관이나 이영주 사령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 병영문화 개선에 과감히 나섰고 실제로 2015년경 이후부터는 해병대 병영문화가 과거 해병대에 비해선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건 해병대 '부대'와 직접 연관된 사고는 아니지만, 해병대라는 명칭이 붙어 있고 실제 사고에 책임이 있는 캠프교관들도 모두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었기 때문에#, #, 어쨌든 해병대의 이미지에 타격이 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해병대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해병대 캠프는 포항의 제1사단이 운영하는 캠프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해병대 사령부측의 허락 없이 생긴 사설 업체들이다.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 해병대 사령부 측에서는 '해병대 캠프'를 상표등록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한다.
난립해 있는 많은 사설 해병대 캠프들도 대부분 해병대 출신들이 교관이긴 하다. '해병대' 체험 캠프이기 때문에 타 군 출신보다는 당연히 모군인 해병대식 훈련과 훈육방식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는 해병대 전역자들을 우선적으로 교관으로 채용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설 해병캠프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서 교관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다 보니, 교관으로서의 실질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고 해병대 출신이기만 하면 무작정 채용해왔던 안일한 행태가 결국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터지고 만 것이다. 참고로 정식 1사단 해병캠프의 교관들은 전문적인 교관인 DI와 수색대 간부 등 숙련된 현역 간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위험요소 등을 잘 인지하고 있다. 1사단 정식 캠프의 교관 중엔 현재는 DI가 아니라도 과거에 DI(교육훈련단 훈련교관)를 역임했던 경력의 군인도 많다. 다행히 해병대사령부에서 사고 직후 상표권 등록을 하여 이제 더이상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쓸 수 없다. 참고로 해병대 현역간부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설 캠프를 되게 싫어했다. 그 이유는 해병대 정식 캠프도 아닌 주제에 해병대 이름으로 돈을 벌고, 해병대 출신들 중 함량 미달인 자들도 수두룩하게 민간해병캠프의 교관, 조교를 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늘 있고 훈육방식도 서투르고 엉망인 등 제멋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고도 끊이질 않아서 해병대 사령부는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매의 눈으로 노려보던 참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지자 바로 상표권 등록으로 제동을 걸어버렸다. 물론 사령부 말 더럽게 안듣는 해병대 예비역들의 꼬장을 볼 때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해병대사령부에게도 골칫거리였던 존재들인 만큼 앞으로는 예전처럼 우후죽순으로 사설 캠프가 난립하지는 못할 것이다.

7. 구조

한때 사령관이 해군참모총장과 계급상 동급[39]인 대장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월남전 철수 후인 1973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고, 부대는 '해군 상륙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령관 역시 대장에서 다시 중장으로 계급이 환원되며,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직책명이 바뀌었다. 대장의 별 네 개 중 하나가 앵카에 박혔다는 설도 있다.

그러다 1987년,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하게 된다. 이후 꾸준한 법령과 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해군과 해병대의 정원과 조직은 별도관리가 되고 있다. 또한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서 해병대 사령관이 해병대를 직접 지휘하고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해병대 사령관의 계급은 중장이지만, 1998년부터 해병대 지휘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해병대사령관을 한국군 최선임 중장[40]으로 예우하도록 관행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해병대에서는 중장 보직이 하나뿐이라, 해병대사령관을 마치면 그냥 전역하게 된다. 합동보직의 경우 육해공이 차지하고 있고, 해병대사령관이 중장 의전 1위이다보니 해병대사령관을 마치고 합참이나 국방부의 다른 중장 보직으로 옮기기도 그렇다.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한 다음에 육군참모총장으로 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대장으로 진급하려면 합동보직인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만 있는데 합참의장은 대장 1차 보직으로 갈 수 없는 자리다. 한때 합참차장이 대장계급으로 격상되었을 때, 해병대에서는 은근히 합참차장에 해병대사령관이 보임되어 해병대장을 오랜만에 볼 수 있기를 고대했으나, 합참차장직이 다시 중장계급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해병대 장교를 따로 선발하는 과정은 학사장교[41]학군단[42], 단국대학교 해병대 군사학과밖에 없으며, 해군사관학교 졸업자가 임관 전에 함정, 항공, 상륙 중 상륙 관련 병과를 선택해 선발되면 해병대가 된다. 이들은 임관식 후 포항에서 해병대 관련 교육을 받고 보병, 포병, 기갑 등 해병대 전투병과(소위 때부터 해병대 기행병과를 가려면 다른 군종과 마찬가지로 OCS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전부 중~대위 때까지 전투병과로 보내다 전과 신청해 합격해야 한다.) 중 하나를 부여받는다. 단 한국해양대학교 해병대 학군단의 경우 학군단 선발 단계에서 기행병과를 선택할 수 있다.

7.1. 독립 문제

해병대의 원래 기원은 선원들의 선상반란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과다. 이후 배 위에서의 백병전, 해군기지 경계. 육상 전투부대 등으로 역할이 확대되어 온 것이다.

일부 해병대 예비역들은 '해군으로부터의 해병대 완전독립과 사령관의 대장 보임'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고작 2개 사단 + α 병력으로 대장직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한때 잠시 해병대 사령관이 대장이었던 것 자체가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것에 대한 일시적 보상일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병력 인원이 파병기간 동안 증가되었기 때문도 있지만, 이것은 월남 파병이 종료된 후엔 당연히 원래대로 원상복구되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일부 해병들은 한때 사성장군이 수장인 끝발 있는 부대라고 생각하며 으스대다가 한 방에 해병대사령부가 없어졌던 쓰라린 경험을 상기하며 지금과 같은 중장 보임이 적합하다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대장 계급을 부여받은 전 해병대사령관을 대장 계급장에 집착하다 해병대 말아먹은 원흉이라 여기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해병출신들이 과거엔 해병대가 해군으로부터 독립된 부대였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리, 실제론 해병대는 해군으로부터 독립했던 적이 한번도 없다. 국군조직법 중에서 국군이 3군 편제이고 해병대가 해군 소속임을 분명히 한 제2조 1항 "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라는 조항은 해병대 창설시부터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참고로 수장이 사성장군이란 것과 육해공군 3군과 독립한 부대라는건 전혀 별개의 얘기다. 해병대는 3성 장군 시절이든 한때의 4성 장군 시절이든 간에 항상 해군 산하의 부대였지 해군에게서 독립된 부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대한민국 해군 수뇌부를 상당히 안 좋게 보고 있다. 요근래 해병대용 상륙수송헬기 도입을 앞두고 불행히도 해군과 해병대가 서로 자기관할이라고 싸웠던 적이 있어서 해병대 측의 피해의식에 일조하고 있다. 일단 양측 다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명분[43]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속사정은 밥그릇 챙기기로 보인다. 해군의 경우엔 수십대의 헬기가 늘어날 경우 해군항공부대의 급이 올라가 소장급 지휘관 자리가 생기고 해병대는 준장급 자리가 새로 생긴다. 육군과 달리 해군/해병대의 규모로 볼 때 준장이나 소장급 지휘관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목숨거는 것도 나름 이해는 간다. 한국군은 육군만 유일하게 장성이 수백 명이지 다른 군의 경우는 장성의 숫자가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심지어는 해병대를 해군에서 완전히 떼어내 제4군으로 독립시켜 별도의 해병사관학교를 두고, 해군의 상륙함 전력도 해병대로 이관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44]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에 해병대 전우회의 한 간부는 해병대에 73년 이전처럼 독자적인 권한이 있었다면 더욱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거라며 강력히 주장하며, 해군이 해병대를 지휘하는 것은 수영선수 출신이 축구감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언론에서는 육군, 공군, 해군의 삼군이 아닌 해병대를 포함한 4군 체제로 말해야 하며, 참모회의 등에서 해병대기를 삼군기와 나란히 두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력히 독립성을 설파하였을 정도였다. 단지 해병대의 인사, 군수, 행정 자치권을 강화시켜주는 조치에 의거해 전역증 발급 등 일부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을 해병대사령관이 위임받아 대행하게 해 준 것일 뿐이다.

전세계 해병대 중에서도 단연 제일 잘 나가고 파워가 있다는 미 해병대도 그 정도까지 해군에서 독립한 건 아니라는 실제 예가 있어 위와 같은 독립 주장은 성사될 가능성이 없다. 원래 해병대라는 개념 자체가 해군에서 분리된 거에다 상륙 함선도 해군이 운용하며, 상륙 작전 시에도 해병대가 상륙하기 전까지는 해군이 지휘한다. 또한 파워게임이 되기 십상인 예산쟁탈전의 특성상, 오히려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하면 타군에 비해 모자란 장성 숫자 때문에 예산 수준이 더 안습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세계 해병대 중에서도 가장 끗발이 세고 독립성이 강하다는 미해병대도 해군에서 완전히 독립된 부대가 아닌데, 하물며 한국은 주어진 각종 환경과 여건이 너무 달라서 한국 해병대가 독립된 군이 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규모가 작은데도 억지로 별4개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병대의 규모는 육군으로 치면 군단급, 육군의 군단장, 군단급 규모를 가지고 있는 수도방위 사령관등도 역시 별3개. 그리고 별4개가 된다고 해서 독립적인 군이 아니다. 물론 편제조정 등으로 해병대사령관을 해병참모총장으로 격상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건 되려 해병대에게 손해'다. 왜냐하면 겨우 2개 사단밖에 안 되는 인원인데 계급을 하나씩 다 격상하면 말단 전투원이 하사가 되는데 그러면 그에 맞게 편제를 뜯어고치게 되고 결국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위 계급으로 소대장이나 대령 계급으로 중대장을 하게 되는 꼴인지라 계급이 올라가는 대신에 규모가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해군 소속이지만 반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스스로 앞가림을 해야만 하는 해병대의 특성상 규모가 어느정도 이상 커야지 위상이 보존되는 것인데, 규모가 대폭 작아지면 국군에서 해병대의 비중과 발언권도 약해져서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육군의 1군, 2군, 3군 사령관 역시 별4개이지만 그들도 모두 육군 소속이지 개별적인 독립 군종이 아니다. 미 해병대의 경우 역시 육, 해, 공, 해병 이런 병 자체가 다른 하나의 독립된 군이 아니라, 국내와 비교하면, 1군, 2군, 3군과 같은 형태의 군에 비교될 수 있다. 미 해병대도 미 해군 소속이다.[* "실제론 미 해병대는 미 해군 소속이 아니며 국방부 산하 해군청의 문민통제를 받는 것이며 육, 해, 공군, 해안경비대와 함께 미군을 구성하는 5군 중 하나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는 현 해병대의 규모가 커져서 그렇게 보일 뿐 인사명령 등에 있어서 해군과 해병대가 따로 명령이 나지 않는다는 점, 해군 법무실과 군종실 등이 해군과 해병을 불문하고 함께 근무하며 법무, 군종 분야에 있어 해군과 해병대를 가리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는 점 등을 통해 독립된 군종으로 간주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은 국방부도 아니고 국토안보부 산하 조직인 해안경비대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설명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설명이 달라지는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으나, 해안 경비대 역시 전시에 대통령령이 떨어지면 국방부 해군청 산하로 파견 되는 등 해군과 분리해서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해군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해군과 해병대의 인사권이 독립되어 있다고 하나, 이는 해참과 해병대 사령관이 각각 자군의 인원을 관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산하 부대의 인원에 대한 독립된 인사권을 수행한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 해병대 사단 예하 의무대의 군의관이나 의무병은 해군 인원이나 해병부대원이므로[45] 해병대사령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며, 항공모함에 배속된 해병대 경비소대원은 해군참모총장의 인사권 안에 있는 식이다.

육군의 1군을 예를 들면 1군에는 제1군수지원사령부가 1군의 보급등을 담당한다. 그러나 해병대의 경우 규모가 군단급이기 때문에 보급등을 해군으로부터 받게 되는 차이. 다만, 해병대 자체가 해군의 지상병이지만, 대부분의 수병들과는 다르고, 오히려 육군에 가깝기 때문에 보급이나, 전투지원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좀 더 이치에 맞는다고 보여진다.[46] 해병대는 해군의 육상군 전력으로, 물을 통해서 침투, 후퇴 등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보면 결국 같은 지상전을 펼치는 지상군 전력이다. 단, 상륙전을 수행하지 않게 된다면 해병대가 따로 있을 가치는 없어진다.

현재의 군개혁도 육군 중심적인 데다가 장군들 숫자가 많은 육군이 더더욱 자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해공군이 크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기본 임무장비 대부분이 육군과 겹치는데 과연 육군이 자기네 기계화사단에 배치할 장비를 순순히 양보해줄 리가 만무하다. 자주포인 K9이 해병대에 먼저 배치된것도 서해교전으로 인한 정치적 결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병대 기갑부대는 M48 전차, 가장 구형인 90㎜포를 장비한 전차들도 아직 운용중이다. 규모가 엄청난 미해병대조차도 예산 문제로 미육군이 M1A1전차를 굴리던 걸프전에서 M60 전차를 사용했다. 해군과 함께 가야 하는 해병대 특성상, 해상 전력에 우선 투자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공군이 항공부대 우선으로 예산을 편성하지 지상 경계부대인 헌병을 우선 키우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이후 해병대의 인사권 독립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4군 체제로 독립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육군을 보더라도, 48만의 머릿수를 총괄하는 육군참모총장 입장에서 고작 자기의 1/20도 안 되는 병력을 지휘하는, 상륙전문이라지만 어쨌든 총들고 전차타고 장갑차 타고 싸우는 게 주임무인 해병대의 사령관을 자기와 동급취급하는데 반응이 어떨까?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해병대가 아닌 육군이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는 데다가 해군에서 독립해서 나오면 육군에 비해서 장점이라고 할 해군과의 육군과 비슷하게 바뀌게 되는데 그러면 그 인원을 육군으로 돌리고 일부 육군부대를 상륙전 전문부대로 훈련시키는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더군다나 일단은 육군소속이니 장비도 최소한 다른 육군부대와 동급으로 갖추게 될것이다.

위에 나오듯 한때 해병대 사령관이 각군 참모총장과 동일 계급인 대장으로까지 진급할수 있었던 건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일시적 보상이었다. 해군이 해병대 사령관의 대장 진급에 반발한 이유는 엄연히 서류상 예하 부대장이 상관이 중장 계급임에도 위계 서열 체계를 무시한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지 타군 최고 지휘관만 대장 달아줬기 때문이 아니었다. 몇몇이 이걸 해병대 독립군설의 근거로 내세우는데, 무리한 이야기다. 해병대 사령부 재창설 시에도 분명히 "1973년 이전 체제로 되돌린다."고 하였고, 이는 창설 이해 계속 해군 산하에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 게다가 독립시켜서 국가전략기동군으로 해병대를 운용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면 애초에 상륙전부대로서의 해병대 개념은 팔아먹는 셈이 된다. 애초에 한반도의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부대인데다가, 전략기동군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유용한 것도 아니다. 당장 한반도를 벗어난 곳으로 투사할 능력은 둘째치고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적인 평화유지임무 외에 독자적으로 군대를 해외에 투사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그럴 능력도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함부로 독자적으로 군대를 해외에 투사했다가 꼬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에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2011년 10월 국군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해병대 사령관이 해병대의 인사, 군수권을 해군으로부터 완전히 넘겨받았다. 이를테면 위에 언급된 전역증 같은 것도 해병대 사령관 명의로 나간다는 것. 해병대 사령부는 절대 독립을 원치 않고 해병대사령관의 군정에 대한 재량권을 늘려줄 것을 원했을 뿐이며 따라서 이는 독립이 성공했다고 보면 안 된다.
국방위, `해병대 독립법안' 첫 논의
'해병대 독립'..38년만에 해군에 통폐합 이전으로

해병대 장교들은 해군사관학교나 사관후보생 등 해군과 통합교육을 받는 과정들이라 기수가 같아 해군장교들과 동기이며, 편제에 대해 정확한 교육을 받아 해병대 독립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고, 해병대는 엄연한 해군 소속의 부대라는 것을 알고있다. 당연히 상부인 해군에 대해 모군이라 생각하며 육군 출신이 해군을 깔 때 해군 출신들과 같이 화내주기도 하고 육군과 해군의 알력 다툼에서도 해군 편을 들어준다.

모든 병장 출신 해병 예비역이 다 세간의 비난처럼 "몰상식"하거나 과격한 건 아니고 이들 중에도 소위 말하는 '체질'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면 제 정신인 사람도 있다. 이런 예외적인 해병들은 해병대 내무생활에서 선임으로부터의 이빨교육을 통해 대대로 내려오는 왜곡된 카더라들에 세뇌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 있다. 사실 최근 젊은 세대의 해병들은 예전의 광신도급 골수해병들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갈수록 이전보단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자원과 고학력자들이 많이 오는데다가[47] 아예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부터 해군, 해병대 일체화 교육으로 개념을 똑바로 배워서 오고 위탁교육도 같이 받는다. 단지 문제는 바로 이러한 왜곡된 역사를 퍼트리고 세뇌시키는 소위 이빨교육의 총 본산인 과격한 "체질" 출신들이다. 해병대에서 쓰이는 체질이라는 은어는 "해병대 체질"에서 나온 단어로, 해병뽕에 단단히 세뇌돼서 해병대를 마치 절대적인 종교처럼 여기고 해병대 외의 조직은 적처럼 생각하며 자신들의 기준에서 볼때 해병대 문화에 잘 맞지 않는 듯이 보이는 해병들은 배신자 취급까지 하며 학대하는 골수 해병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48]

이전 시대의 해병들에 이 체질들이 많았고, 지금도 해병대전우회나 온/오프상의 각종 해병대 커뮤니티를 주도하며 해병대사회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도 바로 이 골수 체질 해병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젊은 세대 해병대 출신들 중 일부는 이전 세대 예비역들이 해병대 망신 시킨다며 극혐하고 아예 이전 세대 예비역과 섞일 만한 전우회 등도 안 가며 기피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2018년 현재는 이런 오도된 골수 체질 해병은 많이 사라졌다. 장교와 대원 간 학력 격차도 대원들이 다들 대학 재학 중에 오면서 줄어들었다. 즉 요즘의 해병대 현역들은 해병대에 자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 자부심을 기초로 타군을 미워하거나 해군을 싫어하는 경향이 예전보단 훨씬 덜한 편이다. 타군 전우회도 비슷하지만 해병전우회 연령층이 유달리 빨리 고령화되어 가는 것도 이런 식의 자군이기주의에 혐오감을 느낀 젊은 예비역 해병들이 전우회 가입 등 이들과 엮이는 걸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군 중 상륙부대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과거 역사가 있는데, 60년대 육군에 해병대 역할을 하는 육군 상륙사단이 잠시 존재했던 적이 있었다. 1967년에 육군은 기존의 사단들 중 3개 사단을 지정해 특정한 작전에 특화된 사단으로 전문화시키자는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였다. 그리고 1968년 1월 23일부로 육군 2사단을 산악사단으로, 5사단공수사단으로, 11사단을 상륙사단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이 3개의 특화 사단 체제가 오래 가진 못했는데 최대 규모의 공비 사건인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이에 관련된 지휘관들에 대한 평가, 문책과 향후 대간첩작전 대비 개선책 마련에 군 수뇌부의 모든 신경이 쏠리는 바람에 특화사단 운용 쪽엔 예산과 관심이 뜸해졌고 결국 특화사단 유지를 포기하고 일반사단으로 원위치됐다.

2018년 7월 경 국회 국방위원회가 해병대 4성 장군 진급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국방위원장 안규백 의원을 선두로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 및 합참의장 혹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자리 등 4성 장군 보직으로의 전출이 가능하도록 검토중임을 밝혔다. 그러다가 2018년 9월 안규백 의원이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러한 개정안에 국방부는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2019년 2월 경 열린 국방부 주재 고위 정책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대한민국 국방부가 이러한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을 합의하였다고 한다. 국방부가 개정안에 찬성함에 따라 해병대 4성 장군이 연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8. 임무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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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이 조종하면 후임은 떨어져 나오는 볼트와 너트를 주우면서 구보로 뒤따라 간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해병대 전차전력은 절반가량이 K1 전차로 대체되었으나, 나머지는 최근까지 M48A3K를 사용하고 있었다가 작년 말쯤 K1E1 전차로 전량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해병대 연평부대는 육군보다 먼저 선행양산형 K-9 자주곡사포를 지급받았다. 대신 K-2 흑표 차기 주력전차는 포신이 너무 길어서 상륙함 탑재에 적합하지 않고 중량도 좀 무거운 편이라 해병대에선 성능개량형 K1A1을 원하는 거 같다. 같은 맥락으로 K-9 자주곡사포보다는 상륙전을 수행해야하는 제1사단의 경우도 K-55A1을 선호한다. 차체 크기도 차이가 크며, 중량도 2배 가까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량의 경우 상륙하는 지형이 해안 같은 경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중장비와 화력 쪽으로는 제1사단만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 해병대에 크게 떨어지고 영국 해병대보다는 좀 많은 정도. 그런데 영국 해병대는 미국식 해병대와는 많이 다른 성격의 부대로서, 경보병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 편제이기 때문에 비교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영국 해병대 경우는 1960년부터 대부분의 전투부대를 말 그대로 "코만도"화 시켰기에 일반적인 해병대보다는 오히려 경보병부대와 비슷한 면이 많고, 미해병대는 말 그대로 '미군'이라서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원정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타군들이 미해병대를 MARINE (My Ass Riding In Navy Equipment/난 해군 장비 타고 있다)라는 식으로 열약한 지원을 비꼬는데도 웬만한 다른 나라의 육군보다도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나 영국 해병대 등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고, 한국의 실정과 현실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

해병대 제1사단의 보병대대(유격, 상륙기습, 공정대대로 특화)는 그래도 훈련을 꽤 하는 편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륙사단인 1사단 얘기고 경계부대인 해병대 제2사단과 도서부대들은 훈련량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06년부터 매년 KCTC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해병대가 드디어 2010년에 전갈대대를 패배시켰다는 취지의 "KCTC 무패신화 무적해병대가 깼다" 라는 제목으로 국방일보 기사가 났고 이를 몇몇 일간지에서 재인용 기사를 냈지만 이는 오보였다. 일부 병력이 3참호까지 도달한 건 맞지만 생존 병력이 너무 적어서 전투 속행 불능 판정을 받아 그것으로 훈련이 종료되어서 3참호선 넘어에 있는 최종 대항군 본부 점령까진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병대가 점령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이에 과학화 훈련단이 기사에 나온 "깼다" 와 "진입(점령)" 등의 표현이 사실과 다름을 지적하며 국방일보에 항의했고 이 기사 표현들이 잘못되었음(오보)을 해당 국방일보 기자가 인정하였다. 훈련에 직접 참가했던 해병대 대대장도 그 보도가 자신의 브리핑 인터뷰 내용을 잘못 이해한 국방일보 기자의 오보였음을 인정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사실 과학화 훈련이란게 대항군 대대와 승패를 가리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훈련부대의 훈련상황을 실전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대항군 대대를 운용하며, 훈련간 발생된 훈련부대의 전술조치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행되는 훈련으로서 승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훈련이다. 전갈부대는 전장 환경을 훤히 알고 있고 여러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극초반에도) 바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전갈부대의 승리가 훈련의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훈련부대를 훈련시키고 실전과 유사한 경험을 많이 쌓고 돌아가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훈련부대측이 요청하면 훈련부대 전사자 중 일부 인원을 다시 살려주기도 하고 공격 강도도 적절히 조절해주면서, 되도록이면 훈련이 바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49]
해병대 자체적인 과학화 훈련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한때 있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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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국회 국방위의 해병대 국정감사에서 해병대가 일반육군보다도 사격훈련량이 적다는 사실이 탄로나기도 했던 걸로 보아, 주로 수색대를 앞세운 대외적인 홍보와는 달리 일반해병대의 실제 훈련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는 주장들도 있다. 그런데 2011년에 이렇게 국방위 의원들에게 해병대의 부실한 사격훈련 실태에 대한 지적과 꾸지람을 들었는데도, 2013년의 해병대 국감에서도 해병대 전투병의 사격량이 육군 전투병 사격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인가된 교탄의 일부만 사용했다는 사실이 지적되는 등 여전히 해병대 사격훈련이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던 김장수 국방위 의원은 해병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군내에서는 "해병대는 육군보다 20년 이상 관리능력이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혹평했고, 이에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동감한다며 실상을 인정하기도 했다.

보병, 통신, 해병대만의 장비인 상륙장갑차, 야전포병 등을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주특기 교육을 할 수 있는 체제가 돼있지 않아서 상당수의 병과가 타군에서 위탁교육을 받는 형편이다. 기갑, 방공, 공병, 헌병 병과와 화학, 정보 및 일부 통신 주특기는 육군에 위탁되며 보급, 조리, 경리, 전산 등 병과는 해군에 위탁된다. 후반기교육을 육군으로 갈 경우 경례 구호가 헷갈려 어벙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육군에서 쭉 충성으로 경례를 하다 해병대 부대에 와서 다시 필승으로 경례를 할려고 하니 헷갈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래도 육군 후반기 교육장은 자율적인 분위기인 곳이 많은지라 군기가 빠져서 오는 경우도 있다. 반면 같은 군인 해군으로 갈 경우 경례 구호 등을 헷갈릴 걱정은 없다. 해군도 해병대 못지않게 분위기가 빡세기 때문에 이쪽으로 간 대원들은 상대적으로 교육훈련단에서의 군기를 잘 유지하는 편이다.

전방에 배치된 해병대 제2사단과 6여단의 경우 해병대 제1사단에 비해 위수/경계의 비중이 높고 훈련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워낙 넓은 섹터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 경계 근무만 서기에도 인원이 모자란 판이다. 오죽하면 한국 해병대는 미국으로 치면 미해병대보다는 오히려 해안경비대에 더 가깝다는 씁쓸한 한탄까지 있을 정도. 물론 해병대가 해안 경계를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교리상 해군의 보병부대인 해병대는 상륙도 상륙이지만 본래 해군기지 육상경비를 위해 만들어졌다. 어느 나라나 해군에 지상전부대는 다 있으며 목적은 해안가의 육상경비이다. 한국군만 원래 해병대 경비대대가 들어가던 항만방어대대/전대에서 해병대 예비역의 꼬장질 땜에 해군기지 경비 임무가 사라졌고 해군 경계헌병이 대신 해안경계를 서며 휴전선과 가까운 강원도 동해안에는 육군이 들어가서 해병대가 해안경계를 서는 것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반론을 제기하자면 제2사단 역시 임무에 엄연히 "서해안 및 수도권 도서지역 경비"와 함께 "의명 서해5도지원" 그리고 "연안 상륙작전"이 들어가 있다. 해안경비투입 기간이 끝나서 예비대 차례가 된 부대와 기갑, 상륙장갑차, 포병 등 해안에 안 들어가는 지상전 부대들을 중심으로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해병대가 제1사단과 제2사단, 그리고 제9여단에서 각각 동,서,남해안 전개 신속대응부대를 운용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적군의 해안선 침투나 도서 강점 등의 상황에 있어 바다를 잘 아는 지상군인 해병대가 단 시간내에 대응할 수 있는 셈.

반면 해병대 제1사단보병은 해안경계근무가 2사단 및 도서부대보다는 적은 편이며, 1사단의 보병대대 중 기습대대는 고무보트(IBS) 훈련, 공정대대는 공수훈련, 유격대대는 유격훈련, 이런 식으로 각 대대의 특성에 따른 훈련을 받는다. 이렇게 해병대 1사단 예하의 보병연대는 각각 기습(IBS), 공정, 유격 대대로 특화되어 있다.[50][51] 해병대 1사단 보병대대의 특화대대 체제는 1970년대에 해병대 1사단장과 해병대사령관[52]을 지냈던 이동용 장군이 만든 것이다.[53] 이동용 장군이 1사단장과 사령관을 지내던 시절, 1사단에 IBS(고무보트)훈련과 공수훈련을 도입한 뒤 기존 1사단 보병대대들을 고무보트/공수/유격 이 3가지 중 하나로 특성화시켜서 각각 해당하는 훈련을 받는 특화대대 체제로 가자는 구상을 했고, 이에 따라 1974년에 해병대 1사단의 보병 대대들이 기습(IBS)대대, 공정대대, 유격대대로 각각 전환되었다. 이렇게 이동용 장군은 한국해병대 1사단의 훈련 도입과 편제 개편 면에서는 큰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무척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데, 조현병(정신분열증)에다 간질병을 앓는 장애인아들살해한 뒤 운전기사와 함께 아들의 시신을 대청호 호수에 유기하여 실종된 것처럼 위장했다가 아들의 시체가 떠올라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결국 자살했다. 사건수사 기사 수사결과 기사

물론 1사단도 2사단에 비해선 경계근무 부담이 적은 편이라는거지, 1사단 보병들도 포항에서 울산까지의 해안방어 경계근무를 서고, 포항제철 등 임해공업지역의 주요시설과 포항공항 등을 경비하는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로서의 경계근무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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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60분초 공비침투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물론 1사단이 경계를 맡는 경상북도포항-경주-울산 해안선은 후방 해안선이라서 격오지도 적고 해서 김포.강화군보다는 여건이 낫다. 과거에 북한 간첩의 침투, 월북시도, 귀순사례 등이 많았던 해병대 2사단과 6여단 및 연평부대와는 달리 1사단에선 실제상황은 일어날 일이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예전엔 1사단 섹터에서도 북한의 간첩 침투 사례가 종종 있었다. 예를들어 감포 60분초 사건같이 북한간첩에 의해 해병대 1사단의 경계가 뚫리고 해병대원들이 전사하는 사건도 있는 등 가끔 동해남부로도 침투를 종종 시도했었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이 증강되기도 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와 수교를 한 상태라 조선족 등으로 위조여권을 이용해 들어오는게 더 쉽기 때문에 몰래 침투하는 공비 침투는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동해를 방어하는 해군 1함대도 놀고있는 건 아니고 출항시 전투배치 훈련 등으로 적 함정 침투에 항상 대비하는지라 만에 하나 침투를 시도할 경우 1함대의 구축함이나 호위함,초계함,고속정 등에 의해 제대로 박살날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 해군전력이 급성장하여 이것을 도저히 북한이 어떻게 뚫고 후방으로 내려오기 힘든 현재는 후방 해안경계가 과거만큼의 큰 의미는 없다. 부산광역시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경계병을 볼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편하다. 이런 지역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해군 3함대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이 해안경계를 수행하며 나머지도 해군 및 해경함정만으로도 상당 부분 커버돼서 육군은 명목상으로만 남아 있다. 실제로 대부분 후방해안은 철책도 제거하고 상당수의 육군 경계병력들이 사실상 철수했다. 해안경계 협약도 해군과 해경만이 맺는다.

아무튼 이런 해안경계 뿐 아니라 포항과 경주의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 및 국지도발 대비 역시 해병1사단이 담당하는데 이는 육군의 향토사단 대신 해병대 제1사단이 포항시 내륙작전을 맡기 때문이다. 포스코 등 항만방어는 1함대예하 항만방어대대도 맡아 공동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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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장갑차 돌격 훈련

언론에 의해 보여지고 만들어진 해병대의 빡센 훈련 이미지는 실상은 전체 해병대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전체 해병대 중에 1~2% 밖에 안되는 인원인 해병대 수색대의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병대가 언론에 해병대를 홍보할때, 주로 수색대의 뽀대나는 훈련모습을 위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은 그런 멋진 훈련 모습이 마치 해병대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물론 유격,상륙기습,공수로 특화된 포항 1사단 보병대대도 훈련을 나름 열심히 하긴 하지만, 메스컴에 나오는 해병대 홍보영상들 속의 빡센 훈련은 거의 다 해병수색대의 훈련 모습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티스토리를 통해 해병대의 일반부대들도 홍보를 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이 빡센 군생활을 보냈다는 점을 남에게 어필하기 위해, 자신은 받지도 않은 훈련을 받은 것처럼 떠벌린다든지, 군생활을 심하게 과장해서 허풍을 떨거나 소위 이빨사진[54] 등을 증거로 제시하는 예가 흔하다. 전방 해병부대의 경우 1사단에 비해 경계임무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내무생활이 주가 되어 주로 후방부대의 특성이라고 알려진 구타 및 가혹행위가 후방의 상륙사단인 1사단에 비해 더욱 심각한 편이다.

2006년 10월에는 국방장관 및 여러 육해공 장성들과 국방위 국회의원들까지 초청해 놓고 벌인 해병대의 대규모 상륙훈련 시범중 결정적인 순간에 VIP들 앞에서 엎어지고 넘어지는 망신을 당한적이 있었다. 아래는 그 굴욕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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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군장을 지고 표면이 고르지 못한 곳을 뛰어다니는 와중에 넘어지는 사람이 나오는 건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각종 높으신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런 대형사고가 터지는 건 해병대가 군기 빠졌다고 그토록 비하해대는 타군에서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별 두 개 짜리만 떠도 조그만 실수조차 차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데다가, 그럼에도 만에 하나 억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을 경우 실수 유발자는 부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고문관으로 찍힌다는 걸 감안할 때 위 사진의 주인공들은 군인 입장으로서는 초대형 사고를 친 셈이다.

부연하자면, 실제 최초 상륙작전을 펼치는 1군은 사진과 같은 완전무장을 하지 않는다. 단독무장으로 우선 교두보를 확보한 뒤에 완전무장한 해병들이 뒤이어 상륙한다. 또한 위의 사진과 같은 상륙함은 어디까지나 교두보가 확보된 뒤에 도착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투중에 함정을 정박시키는 것은 자살행위이기 때문. 따라서 위의 사진과 같이 상륙함에서 완전무장상태로 상륙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최초 상륙군에 의해 교두보가 확보된 이후의 상황인 것이고, 따라서 상륙함에서 뛰어 나오는 것은 VIP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한 것이지 실제로 상륙함에서 뛰어서 내리는 경우는 없다.

9. 기타

9.1. 강제로 해병이 되는 케이스

해병대 창설기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지원이 아닌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굉장히 많아서, 전체 해병의 절반 이상이 해병대로 영장이 나와서 해병대로 징집되어 입대하게된 비지원자들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징집기수를 차차 줄여나가기 시작해서 2003년에 완전 폐지, 현재는 상근예비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지원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병대에는 의무 병과가 없다. 대신 해군 의무병과에서 해병대로 파견근무를 한다. 즉 해병대로 배치받는 해군 의무병들은, 원래는 해군에 지원해 의무병이 되고 배를 탈 거라 생각하고 해군으로 입대했으나 생뚱맞게 해병대로 끌려가서 원치 않는 해병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병대를 좋아하긴 커녕 해병대의 군문화를 싫어했던 이들이 원치도 않게 해병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는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다.[55] 이 때문에 해군 의무병은 타 군의 의무병에 비해 인기가 없다. 따라서 의무관련과가 아니더라도 의무병 지원이 가능하며 입대 비수기에는 비전공자의 합격도 많이 되는 편이다.

그런데 배 타다가 해병대로 온 해군들은 해병대 근무가 함정근무보다 편하다고 한다. 특히 전투임무가 없는 교육훈련단이나 사령부 등은 훨씬 편하다.[56] 의무병뿐 아니라 해병대 의무대 내의 의무부사관과 군의관, 간호장교들도 다 해군이다.

해병부전을 위한 피복들을 따로 지급해 주는데, 부대나 시기에 따라 빨간 명찰에 육군과 함께 쓰는 계급장 등을 지급해 해병대원들과 완전히 똑같게 만들기도,[57] 그냥 해군의 피복과 부착물을 쓰게 하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예외 중 1%가 바로 이들이다. 그 이유는 미 해병대도 의무병과는 해군의 의무병을 끌어다가 쓰기 때문이다.[58] 단, 일병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면 다시 해군부대로 돌아갈 수 있다.[59] 단지 해군부대에 갈 경우 선임수병이 너무 많아서 짬찌 생활을 다시 할까봐 해군부대가 아닌 해병대에 남는 인원들도 있다. 적어도 해병부대에서는 선임해병 대접은 받고, 포항병원이나 해의원 등 해군부대를 가면 선임 수병들 등쌀에 상병 달고도 막내 노릇을 해야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해병부대라고 다 힘들진 않고 교육훈련단 의무실이나 사령부 의무대 등은 교육행정부대라 괜찮은 편이라 잔류하는 수병들이 대부분이다. 교육훈련단 의무실은 돌아가면서 훈병들 야외 훈련때 의무지원 하는것만 좀 힘들며 이마저도 구급차에 탑승해서 따라다니니까 잠을 생활관서 못자고 구급차나 텐트에서 자는것만 불편하다. 물론 같이 온 의무부사관 군의관 등 간부도 고생한다.

해병부대로 전입한다고 반드시 해병대와 사는 것은 아니다. 연대 의무중대[60] 급 이상에만 배치되면 해군끼리만 군생활을 한다. 따라서 해병대원은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 병기병, 통신병, 보급병, 운전병 등의 지원 특기들 외에는 접촉할 일이 없다. 만약 전투대대 단위까지 내려가면 중간에 2차 발령[61] 안나는 한 사실상 군생활 2개월 더 하는 해병대가 된다.

해병으로서의 대접은 본인 하기 나름이나, 본인이 열심히 하면 대부분 같은 본부중대안에서는 깍듯하게 해병대로 대접한다. 다만 똑바로 일하는데도 일부 무개념 해병들이 무시하기도 한다. 분위기 험악하던 시절에는 의무병이 끗발 없을 때는 해병 선임들이 말끝마다 욕설을 섞고 구타하는 게 일상이라 괴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끗발이 차기 시작하면서 해병대 전투복을 일부러 입지 않고 해군 피복을 입고 다니면서(보통 훈련이나 동초근무 등이 아닌 비전투 일상근무나 근무 외 시간에 샘브레이, 당가리나 해군 체육복을 입는 식) 후임 해병들을 작살내며 화풀이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도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해병대가 해군 소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해병대는 원칙적으로 해군 소속이라서 이런 특과병과는 해군에서 오는게 원칙이다. 이외에도 법무군종같은 병과도 다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배속된다. 병은 다른 해병대 행정병과 동일하게 해당 해병부대의 보병 병들 중 차출한다.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에는 각각 예하 사단 항공대에서 UH-1H을 운영중인데, 과거에는 조종사 전원이 해군 조종사였지만 2008년에 35년만에 해병대 조종사가 다시 양성되면서 현재는 해병대 조종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아직까지도 모두 해군 소속이며, 과거에는 사단 항공대로 해군 항공병이 배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고 해병대 병이 배치되고 있다.
(현재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해군 정비사 + 해병대 정비사로 구성되어있다.)

해병대 징집기수제가 폐지된 현재 마지막으로 남은 비지원병 1%는 상근예비역이다. 포항시, 김포시 북부, 강화군, 옹진군, 제주특별자치도, 가덕도 등지에는 육군부대 대신 해병대 부대가 예비역 자원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중 일부를 특수한 기준에 따라 상근예비역으로 차출되어 근무하게 된다. 이사 등으로 거주지가 바뀌는 상근병은 새 주소지 부근에 해병부대가 없으면 주소지에 따라 육군이나 해군으로 전군 조치되어 잔여 복무 기간을 채운다. 반대로 육군이나 해군 상근도 같은 사유로 해병대 상근으로 바뀔 수 있다. 복무 기간 자체는 상근병의 경우 소속군에 관계없이 육군병과 동일하다. 그리고 울릉도에도 해병상근이 있다. 울릉도영종도 등 도서 지역 예비군 관리대의 대장은 해병소령이다. 물론 해군과 해병대 상근은 현역과 동일한 중대에서 동일하게 극기주 등 빡센 훈련을 받으며, 중대가 구분되는 육군과는 다르다. 따라서 현역 해병 및 수병들도 상근병을 같은 기수의 해병 및 수병으로 대접해준다.

9.2. 경례 구호

해병대도 어쨌든 해군 소속 부대인만큼 경례구호도 해군과 같은 '필승'이다. 다만 해병대도 헌병이나 전차승무병, 자주포조종병등의 특기를 받고 육군종합행정학교육군기계화학교, 육군포병학교, 제2수송교육연대 등의 육군 예하 교육기관에서 위탁교육 받는 동안에는 육군의 경례구호인 '충성' 구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해병대 중에서도 육군 특전사에 각종 위탁교육 받으러 갈 일이 많은 해병수색대의 간부들과 각 교육대의 교관들은 특전사에서 교육받는 동안엔 특전사 경례구호인 '단결'을 사용한다. 타군의 교육기관에 가서 교육받을 경우엔 당연히 그 부대의 경례구호를 따라서 모든 교육생들의 경례구호를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과거에 해병대의 경례구호는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해병'을 경례구호로 썼던 적도 있었고, '충성'을 경례구호를 썼던 시기도 있었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해병대에서도 예하 부대들마다 경례구호가 달랐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해병부대들에서는 경례구호로 '충성'을 썼지만 해병대 2여단[62]은 '청룡'을 경례구호로 쓰는 등 부대상징을 경례구호로 쓴 해병부대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이후 갈수록 해군과의 통합성이 중시되어갔기 때문에 경례구호도 해군과 통일시키기 위해 1976년경에 해병대의 경례구호도 해군과 같은 '필승'으로 바뀌었다. 이 이후론 더 이상의 변화 없이 지금까지 수십년간 '필승'을 써왔기 때문에 해병대의 경례구호는 해군, 공군과 마찬가지로 '필승'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9.3. 해병대와 해군의 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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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해군을 모체로 하여 떨어져 나온 부대인만큼, 지금도 해병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용어와 군 문화의 상당수가 해군에서 유래된 것들이고 병과도 해군에서 빌려왔던 것과는 반대로, 대한민국 해군의 헌병 병과는 해병 헌병에서 분리되었다. 그래서인지 옛날 해군 헌병은 성향이 좀 해병같고, 해군과 해병 헌병의 제복이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63] 그래서 해군 헌병과 해병대 헌병의 복장은 상당히 비슷하다. 예복이나 행사복 복장을 보면 마크와 명찰만 빼면 거의 똑같다. http://www.instiz.net/pt/3399899 마크도 구분하기 힘들다

근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해군 헌병들은 해군 헌병대가 해병대 헌병대에서 분리된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고, 분위기도 해병대와 별 연관이 없다. 원래 해병대의 기원이 배 안에서 선상반란을 막는 등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적과 조우 시 적 함정으로 건너가 육박전을 벌이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육전수병들이었단 것을 생각하면 해군헌병의 기원이 해병대에 있는건 당연하다. 참고로 해군 헌병에는 일반 치안유지를 맡는 군기헌병과 조기경보전대[64] 항만방어전대[65], 기지 외곽초소 경비 등을 맡는 경계헌병으로 나뉘는데 경계헌병은 해병대로 대체하고 없애라는 주장이 많으며 해병대 예비역중에서도 병력 증강하고 좋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경계헌병의 임무는 해병대 보병이 전담했다.

헌병에 의한 해병대원들의 단속과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군기 순찰도 신촌, 홍대거리, 서면역 같이 전혀 안 뜰거 같은 곳으로도 잘 뜬다. 한 예로 해병대 제2사단의 군기순찰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헌병의 지원을 받아 신촌홍대거리 등에 뜨기도 하고 해병대 제1사단의 군기순찰이 해병대사령부 헌병단 및 3함대 헌병과 함께 서면역이나 남포역 등지에 뜨기도 한다. 그래서 깽판 치면 거의 100% 그 자리에서 잡히고 자인서 쓰거나 심하면 영창으로 직행한다. 특히 해군 헌병이나 간부들은 해병대와 서류상 동일 군종이므로 타군은 웬만해선 안잡는 그런 것도 없고 복잡한 인계 절차도 없어 거리낌없이 잡는다. 한국 해병대의 명찰은 빨간색이라 한 눈에 띈다. 그리고 전투화가 육면 가죽으로 되어 있다.

9.4. 해병대 출신 유명인

60~70년대에 해병대의 병 복무기간이 2년이고 육군이 3년이어서 연예인들이 기간이 짧은 해병대로 입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해병대의 병 복무기간은 육군과 동일하다. 김흥국은 언론 인터뷰 등에선 해병대가 복무기간이 짧아서 지원했다고 말하지만, 김흥국의 401기는 지원기수가 아니라 징집기수이기 때문에 저 인터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징집기수 해병들은 자신이 징집당해서 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얘기를 꾸며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장교'의 경우는 해병대가 육군보다 의무 복무기간이 짧기 때문에 이 짧은 복무기간을 이유로 해병대 장교로 갔던 경우들이 꽤 많았다. 전도봉 전 해병대사령관도 복무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해병대 장교를 선택했다고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이렇게 해병대 병의 경우 육군과 복무기간이 같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전엔 해병들의 절반가량이 징집기수[66]였기 때문이다. 즉 징집기수들은 육군으로 영장이 나올 수도 있었던 이들이기 때문에 육군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복무기간을 육군과 똑같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병대 중에서 징집기수들만 복무기간이 더 길게 하는건 말이 안 되므로 해병대 병 전체의 복무기간을 육군과 동일하게 통일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징집기수제는 실무에선 끌려온 놈들이라고 무시당하거나 원하지도 않은 인원을 멋대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해병대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등 문제가 큰 제도였기 때문에 전술한 대로 2000년대 이후론 징집기수 제도가 없어졌다. 원래 해병대는 형식상으로 해군소속인지라 대한민국 해군 수병의 복무 기간을 따라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육군과 더 비슷한 지상군인데다가 과거엔 징집 기수도 많았던 관계로 육군과 복무기간을 동일하게 했던 것이다.

다만 장교의 경우는 과거엔 해병대 장교의 복무 기간이 가장 짧아서 이를 이유로 해병대를 선택한 장교들이 많았다. 같은 군이면서도 해군에 비해 3개월 짧았고 배도 안 탔다. [67]

9.4.1. 연예계

해병대에 들어간 연예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가수남진김흥국, 서수남, 윤항기[68] 등이 있다. 또 2008년, 이정이 절친한 선배 김흥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해병대에 들어갔다.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도 해병대 출신이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훈련병 때의 소대장을 찾아 출연했을 때 해병대로 들어가게 된 사연을 털어놨는데, 지원이 아니라 강제로 끌려간 징집해병이었다고 밝혔었다. 과거엔 징집해병들이 전체 해병대의 절반 이상일 정도로 많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남들에게 굳이 자기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밝히는 해병 출신들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볼 때 임희춘이 자기가 강제징집으로 해병대에 갔음을 솔직하게 밝힌 드문 경우이다. 참고로 인터뷰 등에선 자원해서 해병대에 갔다고 이빨 까는 김흥국도 실은 징집기수이다.[69]

임희춘 외에도 임혁필, 홍훤, 곽범 등이 해병대 출신 개그맨이다.

배우 정석원해병대 수색대 출신이다. 연상녀인 가수 백지영과의 결혼 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2018년에 호주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것이 들통나서 긴급체포되었다.

성우 중에는 김승준, 양석정 등이 유명하다.

연기자로는 임채무[70], 김상중, 조상구, 최필립, 송재희 등이 있다.

악동클럽의 멤버인 권세은도 해병대 1017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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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방영 직후라 인기 최절정에 있던 현빈이 해병대 입대 지원을 했다. 해병대 입대 테스트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29점으로 2011년 3월 7일 입대했다. 직업군인인 형의 권유가 해병대 입대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1년 기준 해병대 입대 지원자 중 최고령이라고(…)... 워낙 인기 최절정에 있던 때라 입소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중계되었으며, 훈련소에서의 생활과 훈련 모습도 TV에서 방송되고 해병대 홍보물마다 현빈이 모델로 나오기 시작하자 네티즌들은 특별대우받는 스타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일반적인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놔두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첫 근무지는 최전방인 백령도였으나… 몇 개월 뒤에 은근슬쩍 경기도 화성시의 해병대 사령부로 근무지를 옮겨서 결국 모병 홍보병으로 죽 근무하였다. 해병대측에서도 현빈같은 인기스타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해병대 홍보에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빈 입대 한달 후인 2011년 4월에는 클릭비 출신인 오종혁이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네임밸류가 다소 낮아서 그랬던 건진 모르지만 현빈에 비해선 다소 많이 묻힌 감이 있었다(…). 오종혁은 원래 해병수색대를 지원했으나 출결 때문에 떨어진 뒤에, 일단 해병대 군악대로 입대하면 수색대로 전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입대 뒤엔 약속이 안 지켜질 뻔 했으나, 해병대 고위간부들과 심지어 해병대사령관에게까지 끈질긴 탄원과 청원을 한 끝에 결국 해병대사령관의 특별명령에 따라 수색교육을 받고 원했던 수색대로 전입하는 데 성공해서 해병수색대 소속이 된 것이다. 관련글. 거기에 2013년 1월 전역을 앞두고 훈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전역하고자 2월까지 전역 연기를 하기로 했다. 이것으로 오종혁은 까임방지권 확정.

2014년 4월에는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았던 윤시윤이 해병대에 입대, 김포 2사단 통신병으로 실무 배치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대했다고 한다.

2017년 9월 18일에는 악동뮤지션이찬혁이 해병대에 1226기로 입대하였고 경북 포항 소재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2019년 3월 18일에는 유키스이 해병대에 1244기로 입대했다.

2019년 4월 15일에는 샤이니민호가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2019년 6월 8일에 방송된 아는형님에 출연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만난 적이 있었다.[71]

9.4.2. 스포츠

야구인 중에는 과거 해병대 야구단 출신인 강병철 감독과 김인식 감독, 정동진 감독, 그리고 상근예비역으로 갔다 온 권오준도 있으며, 권오준의 대학 2년 후배인 kt 위즈윤요섭이 2011년부터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다. NC 다이노스의 투수 민태호도 해병대 출신이다.

축구계에서는 허정무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제주유나이티드김원일, 이용수, 김한원, 김호가 대표적이다.

위의 운동선수들 중 옛날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각 군마다 있었던 군 운동선수팀 출신들이다.[72]

격투기 선수로는 김동현, 임재석 등이 있다.

e스포츠 출신 인물로는 前 프로게이머 전태규2011년 9월에 해병대 신병 제 1149기로 입대했다. 전태규의 할아버지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었다고… 그밖에 전태규의 전 팀동료이기도 했었던 김봉준도 해병대 1155기로 복무했었다. 또한 인간본좌 김동건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를 앞두고 삼성 칸에 코치로 부임한 과정에서 해병대를 제대했음이 밝혀졌다.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kt wiz의 응원단장인 김주일도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9.4.3. 정재계

정치인 중에서는 홍사덕이 해병대 병 130기다.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2년에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또한 바른정당 당대표인 정병국성균관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하다가 해병대 병 416기로 입대하여 헌병으로 복무하였다. 기초단체장 중에서는 정찬민용인시이 있다.

재계에서는 김석원쌍용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병 223기로서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동생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또한 해병대로 병역의무를 수행했다. SK그룹에서도 해병대 출신이 세 명 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병 258기), 그 아들 최성환 씨[73] 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사건으로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M&M 회장 최철원이다. # 정작 이 분은 면제...

9.4.4. 기타

강사 중에는 공부방법론 강의로 유명한 강성태가 있다.

각종 거짓말과 문제점이 드러나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황라열도 해병대 출신이다.

미술계에는 석정현이 해병대 출신이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와 세월호 참사 때 다이빙벨 투입을 주장하며 논란을 낳았던 이종인은 해병대 포병 출신이다.

그리고 해병대 4기 할머니가 웹에서 아주 유명하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해병대 3·4기 전우회 부대방문 포스트도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는 해병대 4기와 함께 모병된 해군 여군으로 해병대 4기와 달리 해군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해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영화 감독 김기덕도 해병대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했다.

타블로에 대한 헛소문을 지어내고 퍼트려서 괜한 소란만 일으킨 왓비컴즈도 해병대 운전병 출신이다. 카페 등에서 사진 인증도 했다고 한다.

차범근의 막내아들이자 차두리 동생인 차세찌도 해병대 출신이다.

한국 역사상 개인이 가장 많은 민간인을 살인한 기록을 갖고 있는 희대의 살인마 우범곤도 해병대 출신이다.#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범인 3명 중 문도석은 해병대 병 불명예 전역자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중정부장의 부하로써 참여한 박선호와 이기주도 해병대 출신이었다. [74] [75]

아프리카 BJ로는 감스트, 김봉준, 케이(BJ), 전태규, 신상호가 있다.

유튜버 동네형 박성주도 해병대 출신이다. 영상에서 해병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76]

대한민국의 유명한 존속살해범인 이은석(범죄자)의 아버지가 퇴역 해병중령이다.

유튜버중에는 조섭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해병대 예비군복을 입은 사진을 인증한 적이 있다.

더블비 박민규도 해병대 출신이다.

Dan Jeong 댄 정 헤비 웨이트 맨몸운동 유튜버.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군 복무를 해병대 통역 장교로 보낸 만큼 영어에 상당히 능통하다

9.5. 폐지 및 해체?

가능성도 낮고, 아직 한참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정의당이나 참여연대 등에서 지나치게 높아 문제가 되고 있는 현역 판정률을 비판하며[77] 병 인원수를 30~40만명 정도로 감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정의당이나 참여연대 등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럴 경우 국군의 공세능력을 어쩔 수 없이 일부 거세하게 되는데(방어를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그 경우 해병대 및 상륙전력 역시 최소한으로 감축하거나 폐지 및 해체하자는 주장이 있다. 한마디로 국군은 상륙작전 포기하고, 상륙작전은 미군에 의존하자는 것. 어짜피 상륙수단 확보도 힘들어서 현실적으로 국군은 제대로 수송할 능력도 갖추기가 어려우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의견이긴 하다. 하지만 감축 자체는 언젠가는 불가피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최대한 자동화 및 무인화 & 차량화하여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현재의 50~60만명 수준에서 30~40만명 수준으로 감축시 공세능력을 일부 거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감축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면 여성징병제 없이는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사실 어렵다. 자세한 내용은 여성징병제해당 문단 참조.

참고로 해당 문서 내지는 다른 감축관련 이슈에서 감축 없이 50만명 유지 가능하다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나저러나 좋은 결말은 아니다. 다음의 2가지를 제시하는데,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1. 복무기간 연장, 2. 현역판정률 100%.[78] 1년 9개월로 늘리면 만사 해결되는 것도 아닌게, 여전히 정신과 관련 기준을 강화한 현재 수준인 86~87% 수준의 현역판정률을 기록한다. [79]

10. 관련 문서

상륙함 종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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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담중에서도 좀 떨어져있다.[2] 마스코트 해병이, 품종은 진돗개이다. 공식 마스코트가 라는 점에 대해서 개병대 관련 의견, 너무 나약하게 생겨 싫다는 의견, 귀엽고 대민친화적이며 한국산 품종인 진돗개라 좋다는 의견이 대립한다.[3] 초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신현준은 해병대 창설 직전엔 해군 통제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신현준이 일제강점기 만주군 육군 예하 간도특설대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했던 경력 때문에 (그로 인한 민족적/도덕적 흠결은 차치하고) 어쨌든 육상작전 지휘 경험이 인정되어서, 해군이 운용하는 육상 전투부대라고 할 수 있는 해병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물론 해병대의 필요성을 처음 건의하고 창설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4] 해군의 총 병력을 약 67,000명으로 추산하는데, 해군39,000명과 해병 28,000명을 합산한 수치다.[5]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이후 당시 해군 장교로 있던 신현준이 해군본부에 "우리도 육전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바다를 통해 진압병력을 빠르게 기동시켜서 일이 커지기 전인 초기에 진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를 설득력 있다고 판단한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해병대 창설을 승락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 창설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건의한 인물인 신현준은 해군본부의 창설 허가가 나자 해병대 창설을 직접 맡아서 주도했고 해병대 초대 사령관이 된다.[6] 1959년 2월 26일에 해병대 제1사단 1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제1임시여단이 김포지역에 계속 남아서 주둔하게 되어, 그때까지 경기 서북부에 주둔하면서 서부전선을 지키다가 1959년에 포항으로 이전하게 된 해병대 1사단 대신 서부전선 방어를 맡게 되었다. 이후 1사단에서 새로 창설된 제5여단이 김포 경비를 제1임시여단과 임무교대하여 1967년부터 김포 방어를 맡았고, 1임시여단은 1사단으로 복귀/흡수되었다. 1972년에 월남 파병을 종료하고 돌아온 제2여단(청룡부대)이 김포에 주둔하게 되면서 이때부턴 2여단이 김포 경계임무를 맡게 되었고, 67년부터 김포를 지켜왔던 5여단 병력은 1사단으로 흡수되면서 5여단은 없어진다. 2여단은 1981년에 2사단으로 증편된다.[7] 당시 김포 해병여단 여단장김윤근 준장이었는데,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처형당한 육군준장 김윤근 장군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8] 이렇게 전방에 배치돼 있는 부대를 쿠데타를 위해 빼돌리는 짓은 이후 12.12사태 때 9사단 예하 29연대에 의해 다시 되풀이된다.[9] 이후 해병대 출신자들의 고위간부 승진은 해병대의 독자적인 용어체계 사용 등 대책없는 병크들을 불러일으킨다.[10] 당시 제6군단 포병여단장 문재준 포병대령, 박치옥 당시 제 1공수특전단장, 채명신, 김재춘 등이 있음[11] 그 이유에 대해 박정희가 해병대를 너무 키워놔서 앞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로 밝혀진 것은 아니고 해체 이유에 대해서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도는 하나의 추측성 카더라일 뿐이다. 월남 파병 종료 후 경제적인 군조직 재정비가 당시 군조직 개편과 축소의 공식적인 명목이었다.[12]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한 것 등[13] 원래는 육군만으로 파병부대를 꾸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파월 결정이 나자 해병대가 왜 우린 빼냐고 항의했고, 육군 역시 파병 병력 늘어나는 거 자체는 좋은 일이라 그냥 수락했다.[14] 2여단은 1981년에 2사단으로 증편된다.[15] 이후 해군은 전.노 두 대통령의 시기가 끝난 뒤인 김영삼 정부 때부터 KDX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그리고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 구축함 획득에 성공했다.[16] 해병대는 엄연히 해군 소속이었고 해군의 지휘 하에 있는 조직인데다가 더구나 그 당시는 해군에의 종속성이 심할때라서 해병대에 대한 해군의 영향력과 입김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부대명도 해군측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하려고 했던 것이다.[17] 2사단 청룡과 6여단 흑룡은 확실한 별칭인데 반해, 1사단은 해병들 사이에서도 해룡이라는 의견과 황룡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뭐가 맞는지 확실하지가 않다.[18] 물론 인접한 울릉도에 중대급으로 해병대 포병이 배치된다면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예 해병대 정규전 전투부대가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고 1개 소대 정도는 입도 가능하다. 애초에 독도경비대 전경들이 1개 소대이다.[19] 하지만 공식문서상이 아닌 일상에서의 해병들은 옛 습관대로 해병대라고 불렀다.[20] 휴전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인데다가, 한반도 도서 지역 전체를 일일이 병력을 보내 지켜야 해서 해병대의 규모가 커야 했기 때문으로, 이때는 해병대가 해군보다 인원 수가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후진국 해군들일수록 해군 내 해병대나 육전대 등 지상전 전담 부대의 규모가 크다. 함정보다 단가가 싸게 들기 때문이다.[21] 단 제주도인들로 구성된 3,4기엔 강제징집 뿐 아니라 자발적 지원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22] 학사장교와 비슷한 맥락이 됐다. 학사장교의 경우는 초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가며 보병, 비보병이 되었다.[23] 그 뒤 해병연예대에서 근무했다.[24] 해병대 징집기수제는 67년에 생겼다.[25] 나머지 반은 징집으로 충당[26] 2%는 상근예비역, 그리고 해병대에서 근무하는 해군의무병들이다. 자세한 건 밑에서 설명.[27] 미국 해병대도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사용할 데가 없다. 미국 해병대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위기를 겪었었다.[28] 독도급 상륙강습합은 3척 운용할 예정이다.[29] 중국군이 해군육전대의 규모를 10만 명 대폭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해병대는 3위로 밀려날 전망이다.[30] 단, 스페인 해군은 유렵에선 비교적 대규모 해병대를 보유한다. 애초 원조가 이쪽이다.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해군 소총부대라 불리며 상륙작전보다는 군항 지역의 육상 해안경계, 도서방어에 더 주력한다. 해군기지가 있는 항구나 섬 등을 적군에 점령당하면 이들이 탈환해야 한다.[31] 물론 육군의 창설 멤버들 중에서도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자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군 초창기 설립 당시 일본군 출신자가 없는 군을 찾는 게 더 힘들것이다.[32] 훈6위 주국장[33]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해군이 조선인을 해군의 핵심인 항해병과로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한국인 중엔 일본해군 항해병과 경력자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초창기 대한민국 해군에 있었던 일본 해군 출신자들은 일본 해군에서 근무할때 해군의 주축인 항해병과가 아니라 해군에선 주변적이고 보조적인 존재였던 육상근무자들 뿐이었기 때문에, 한국 해군 수뇌부는 일본군 출신이 아닌 민간 상선사관 출신들이 장악하게 된다. 일본군/만주군의 육군 출신자들은 물론이고 일본해군에서 복무했더라도 해군 육상경비대 등 육상근무자들은 항해와 함정에 대해서 문외한인 비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해군의 핵심 수뇌부가 되기는 어려웠고, 배와 항해에 대해 잘 아는 민간 상선사관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초창기 한국해군에 있던 일본해군의 육상경비대 등 육상근무 경력자들과 일본군/만주군의 육군 출신들은 해병대의 창설멤버로 보내버렸다. 해병대는 형식상 해군 소속이지만 실질적으론 해상이 아닌 '육상'에서 싸우는 지상군이기 때문에, 초기 해군에 있던 일본해군 육상경비대 등 육상근무 경력자나 육군출신 간부 등 바다보다 '육지'에 익숙한 인원들을 해병대 창설멤버로 보낸 것이다. 그래서 해군 초창기에 해군에 있던 일본군과 만주군 경력자들이 해병대 창설의 주역이 된다.[34] 비슷한 예로, 2차세계대전 당시 주미 일본인들도 미국의 탄압속에서 '나는 미국인이다' 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유럽전선에 지원하였다. 체첸출신 러시아군병들도 마찬가지. 이런 예들은 위태로운 처지에 몰린 인간의 생존본능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고, 전쟁사의 비극으로 볼 수도 있다.[35] 그러나, 당시는 일반 주민들이 정보도 얻기 힘들고 워낙 정신 없던 아수라장일 때라서 제주도민을 학살한게 정확히 어느 부대/조직들인지 일일이 알려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해병대라는 부대에 대해 특별히 반감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그당시에 해병대로 입대한 제주도민들이 많았고, 그 후로도 해병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제주도 거주 예비역들이 예비군 훈련을 제주도 제방사의 해병부대에서 받기 때문에 친근한 부대라는 인식이 많다.[36] 당시엔 이미 예편해 있던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도 부정축재 의심자로 명단에 올랐는데, 박정희가 "내가 그분을 잘 아는데,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넘기기도 했다. 실제로 부정축재의 근거도 없었다.[37] 대통령 별장도 있는 진해를 하도 들락거려서 당시 전국 도로들 중 진해 도로가 가장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38] 20대 총선에서 남양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했다.[39] 초대 대장 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이 중장이던 시기에 진급해서 직책상 하급자인데 계급상 상관인 괴랄한 사태가 벌어졌다.[40] 대장이 7명이므로 현역 의전 서열 8위가 된다.[41] 해병대 군장학생이 존재하는데, 이 과정은 육군과는 달리 3학년 때도 지원가능하다. 3학년 때 지원한 해병대 군장학생의 경우 의무복무기간이 일반 학사장교 3년에 장학금 수혜기간 2년을 합쳐 5년.[42] 공식적인 해병대 학군단은 한국해양대제주대에만 있고 이 외에도 전국대 학군이 있는데 이는 원래 전국 대학의 육군 학군단 소속인 후보생 중에서 지원을 받아 선발하며(단기 자원만 지원이 가능하며 군장학생은 지원이 안된다.) 선발되면 육군에서 해병대로 전군되어 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육군 학군보다 의무복무기간이 4개월 단축되는데 이것 때문에 은근히 경쟁률이 있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들도 많이 지원했다. 2015년 해병대 전국대 ROTC는 경쟁률이 꽤 된다. 모집병과는 보병(기갑 특기 포함),포병, 공병, 통신 등 전투병과는 물론 비전투병과인 정훈, 헌병, 여군까지 모집한다. 육군 학군장교 복무기간과 해병대 전국대 ROTC는 상관없다. 어차피 육군 군장학생은 육군이 준 장학금을 받은 관계로 해군 전군이 안 돼 해당사항도 없다.[43] 해군은 이미 기존에 있는 인력과 시설을 활용하면 되니 운용예산이 절감된다고 하고 있고 해병대는 도입목적자체가 해병대 상륙수송용이니 당연히 자신들이 관할해야 하며 해군이 관할하면 상륙수송용 외의 용도로도 쓰이게 되는 걸 우려하는 듯하다.[44] 미국 해군 상륙함이 해병대 소속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해병 출신자들이 많다.[45] 소속 다르고 지시만 해당 부대에서 받는 파견이 아닌 아예 서류상으로도 부대원이 되는 배속 형태로 근무한다. 육공군과 달리 타군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46] 2012년부터 해군 군수사에서 담당하던 해병대에 대한 보급 업무를 해병대 상륙지원단이 이관받았다. 해병대 상륙지원단은 현재는 해병대 군수단으로 개편되었다.[47] 대학 휴학시기나 육군 입영일자 본인선택이 꼬이는 바람에 급한대로 논산 대신 포항에 입대하는 이들도 있다.[48] 그래서 요즘엔 이게 꼴보기 싫다면서 해군부대에서 복무한 해병의 경우 (일반 해병부대 출신들에게는 굉장히 배척받는다. 아무래도 구성원의 머릿수가 달라 문화가 많이 다르기 때문) 해군용 전투복을 전역때 가지고 나와 예비군 같은데 갈때 해군 인척(...) 하거나 육군 출신 지인의 육군 전투복을 빌려 입고 육군인척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비군 군복 대여서비스가 활성화 되서 굳이 저런 노력까지 않하더라도 충분히 신분세탁(...)이 가능해졌다.[49] 물론 이도 훈련부대가 계속 해보려는 강한 의지가 있고 훈련부대 지휘관이 어필을 할 때의 이야기지, 그렇지 않고 그냥 성의 없이 임하면 초반에 싱겁게 종료될 수 있다.[50] 1사단에 3개의 보병연대가 있고 각 연대에 3개의 보병대대(특화대대)가 있으니, 총 9개의 보병대대가 있는 것이고 특성화별로 나눠보면 기습/공정/유격 대대가 각각 3개씩 있는 것이다.[51] 1사단 외에는 현재 6여단의 제63대대가 기습대대의 편제를 갖추고 있다.[52] 당시의 명칭은 사령관이 아니라 해군 제2참모차장[53] 그 전인 1960년대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기존 보병사단 3개를 공정/상륙/산악 사단으로 각각 개편시킨 특화사단 체제를 몇년간 시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서 힌트를 얻고 벤치마킹하여 해병대 1사단에 응용해서 도입시킨 것이다.[54] 빡세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지나치게 가혹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여 찍은 사진. 당연히 군사보안에도 저촉된다. 게다가 상당수는 부대 앞 마크사에서 1장당 몇백원씩에 파는 사진이다.[55] 물론 그들 중에서도 해병대에 잘 맞는 성격이라 해병대 문화에 적응을 잘 하고 해병대 군생활을 즐겁게 잘 하는 이들도 소수 있긴 하다.[56] 반면 해병수색대에 배치받은 의무병은 빡센 수색교육을 받기도 한다.[57] 어떤 경우는 해병들이 휴가나 행사시에 입는 정모와 근무복도 주기도 한다.[58]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서 주인공이 해군 의무부사관으로 해병대와 같이 이오지마에서 굴러다닌 사연이 나온다.[59] 이건 의무병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해군은 6개월 이상 함정이나 도서지역, 격오지, 해병부대 등에서 근무한 수병에 대해 육상의 후방 부대로 발령을 갈 기회를 준다. 보통 함정 근무자나 해병대는 7~80%, 도서나 격오지는 4~50% 정도가 발령을 간다. 해군은 덕분에 함정이나 도서 등은 일이병이 수두룩해 일이 힘든 대신 남게 되면 선임이 거의 없어 내무 생활이 빨리 편해지고, 육상은 일이 편한 대신 상병장이 수두룩한 역피라미드 구조라 끗발 세우기 힘들다. 한 번 배치받으면 거의 무조건 그 부대에서 군생활을 해야 하므로 누군 끝까지 고생하고 누군 끝까지 편한 육공군보단 어느 정도 공평한 셈. 그러나 애초부터 육상에만 근무하는 직별인 헌병은 해당사항 없다.[60] 중대급부터 개별부대로 취급된다. 게다가 의무중대의 경우 중대장이 대부분 군생활에 별 욕심없는 군의관이 많기 때문에 상급 지휘관들도 의무중대를 함부로 건들기 어렵다.[61] 물론 해병으로 간 의무병은 2차 발령을 쓰기만 해도 바로 간다. 심지어는 2차 발령을 쓰지 않았는데도 발령나는 경우도 있다. 의무병 상당수를 해병대로 우선 보내기 때문에 해군소속 병원부대들은 항상 의무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62] 훗날의 2사단[63] 해군과 해병 헌병의 병과 마크(헌병 근무복과 행사복에 다는 배지의 모양)이나 흰색 헬멧, 그리고 동/하 행사복의 형태가 동일하다.(단추에 새겨진 무늬와 명찰색만 다르다.)[64] 섬지역에 주둔하는 해군의 도서 방어 부대로 섬은 육군이 아닌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이나 해병대가 지키는것이 원칙이라 서북 도서에는 해병대가 후방 지역의 섬에는 해군이 주둔한다. 정확히는 1982년 도서 방어가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되었다,[65] 부산항 등 항만지역에서 해안경계를 맡는 부대[66] 시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6,70년대엔 주로 홀수 기수가 징집기수인 경우가 많았다. 80년대 이후론 홀수기수 못지 않게 짝수기수가 징집인 경우도 많아서 홀/짝 기수로만 징집기수인지 여부를 알긴 어렵다.[67] 게다가, 이제는 세계적인 해군국인 현재의 대한민국 해군과 달리 60/70년대 옛날 시대 해군은 미국에서 중고로 구해 온 고물 배를 운용해서 함정생활이 매우 열악했다. 말 그대로 배타면 진짜 죽을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좀만 풍랑이 불어도 배에 물이 새거나 하는 건 흔했다. 기어링급 구축함은 물 새는 배로 유명했고 쥐가 수병의 살을 갉아 먹기까지 했다! 당연히 배 안에서의 구타도 심해 기어링급은 과거 곡소리 배로 악명 높았고 노후화된 포항급 역시 현재 악성 사고사례의 기본 진원지이다. 반면 해병대는 배를 안 타서 상대적으로 생명의 위협까진 느끼진 않았기 때문에 해군 대신 해병대를 선택할 유인이 있었다.[68] 여동생은 가수 윤복희이다.[69] 해병대 징집기수는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흥국의 기수인 401기는 서울징집 기수다.[70] 진짜 사나이 해병대 편에서 나레이션을 맡기도 하였다.[71] 당시엔 이찬혁은 5월에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이었고 민호는 옆 부대로 배치되었다. 근데 연예계에선 민호가 선배이고 나이도 5세 더 많은데, 해병대에선 이찬혁이 훨씬 선임이라 난감해 했다..[72]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생기기 전엔 A급 운동선수들이 육군, 공군, 해군/해병대의 각 체육종목팀으로 입대해서 군생활 동안 해당 종목 운동선수로 계속 활동했었다.[73] 06년 군번[74] 박선호는 예비역 해병대 대령이었다. 참고로 박선호는 김재규가 중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김재규가 맡은 반의 중학생이었다. 김재규가 아끼던 제자였던 박선호는 졸업 후에도 계속 서로 연락하고 만나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이 인연으로 김재규가 중정차장이던 시절에 박선호를 중정으로 취직시켜줬던 것이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박선호 등 부하들에 대해 "그들은 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관대한 처분이 있기를 바란다" 라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결국 교수형당했다.[75] 박선호가 죽인 경호실요원도 해병대 출신이었다. 박정희 때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축소시키면서 구조조정으로 인해 갑자기 예편당한 해병대 간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인원들 일부를 경호실이나 중정에서 채용하게 되면서 들어간 인원들이었다.[76] GTA온라인 업데이트로 나온 군복을 보고 군복을 보여주거나 군대예기를 하는등의 표현도 볼수있다.[77] 실제로 이건 자한당이나 민주당같은 다수 정치집단이나 군 조직 스스로도 문제가 있음은 인지하고 있다. 별다른 건 아니고, 군대 보내면 안 될 사람을 억지로 쑤셔 박았다가 사고가 워낙 많이 터져서... 단지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억지로 버티자는 걸 주장할 뿐이다.[78] 1차적으로, 정치적인 충격이 큰 이슈인 복무기간 연장이 쉽게 가능할리도 없고, 2차적으로, 100%에 가까운 현역 판정율을 유지해서 아픈 사람들을 징집해서 머릿수만 채운다고 한들 그게 제대로 돌아가긴 어렵고(징병제 실시하는 다른 외국은 바보라서 우리나라 3~4급 판정자 정도 상태의 사람들을 군대로 안 끌고가는 거 아니다.) 군사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자기 보직에서 신체적 한계로 1인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당사자 입장에서도 질병&장애의 악화 및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하며, 같은 선후임 입장에서도 고문관 잔뜩 들어오는 게 과연 좋을까?)[79] 저 통계자료는 정신과 및 신체 관련 검사기준이 다시 강화되기 이전에 작성되었다. 한마디로 1년 9개월에 50만명 유지하려면 한두달에 한번 꼴로 군내 부적응자 및 사고 관련 뉴스 뜨던 그 시절과 같은 수준의 기준으로 징병해야 한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