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4 03:47:4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상위 문서: 아프가니스탄/역사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 د افغانستان تاري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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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 War in Afghanistan, U. S. War in Afghanistan

2001년 10월 7일 ~ 2019년 현재 진행중
(2014년~2015년 : 사실상 휴전기)
"You have the watches, we have the time."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다."[1]
- 탈레반 간부 무자히드 라만(당시 연령 28), 2011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1. 개요2. 진행 상황
2.1. 전쟁 이전(2001.9.11- 2001.9.26) : 전쟁의 발단이 된 9.11 테러2.2. 아프가니스탄 침공(2001.9.26~2002년 12월) :너무나 쉬웠던 출발, 전황은 미국쪽으로 기울고...2.3. 전쟁초기(2002년) : 안정화 작전으로 전환2.4. 전쟁 중기(2003~2009년) : 미국의 병크와 다시 살아나는 탈레반2.5. 전쟁 후기(2010년~2013년) : 교착되는 전쟁상황2.6. 전쟁 말기(2014년~2015년 ):결과는 도루묵 2.7. 사실상 휴전기(2015년 ~ 2016년) : 철군 보류, 그리고 탈레반의 부활 성공2.8. 전쟁 재시작 (2016년~ ): 탈레반만 신났다.2.9. 2017년~ : 트럼프 정권의 반격? + IS의 참가로 인한 혼란의 격화
3. 미국이 실패한 이유
3.1. 기묘한 침묵
4. 기타5. 사건 사고6. 매체에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1. 개요

미국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9.11 테러 직후 벌어진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 테러와의 전쟁이란 원대한 계획의 첫 단계로 펼쳐진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 Afghanistan)의 일부이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침략군이 실패한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주기 18주년을 맞이하면서 개전 당시의 병/부사관들의 세대교체가[2] 이루어지고 장교단도 물갈이가 되면서 “세대의 전쟁” (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고 있는 중이다.

2. 진행 상황

2.1. 전쟁 이전(2001.9.11- 2001.9.26) : 전쟁의 발단이 된 9.11 테러

9.11 테러라는 자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에 대해 분노한 미국이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어 박살내고자 한다는 것은 테러 당일부터 이미 명백한 일이었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과 같이 미국 영토는 공격 받은 적이 있으나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은 받은 적이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다.그마저도 200년전일이다. 본토도 그냥 본토가 아니라 미국의 랜드마크, 심장이라고 할 미국의 심장부 뉴욕이었으며 아예 110층짜리 두 건물 모두 붕괴되어 흔적도 없이 무너져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해 그 충격은 더했다. 미국 여론이 꼭지가 돌았던 이유 역시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본토는 총알 한발 안떨어질만큼 안전하다는 믿음이 911테러로 처참히 깨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미국 여론은 일제히 복수를 외쳤고, 정치권도 전쟁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북한 등 대표적인 반미국가들도 이 시기에는 미국의 눈치나 살피며 유감을 표하기에 바빴다. 이란의 신정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테러는 나쁜 짓이지만 그렇다고 복수는 옳지 않다는 정도의 입장이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이슬람권 국가의 대중은 "또 미국이 테러를 핑계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려 하는구나!" 라고 반미 시위를 했지만 젊은 학생들이나 떠들었지 각국의 정부는 미국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번질까 봐 벌벌 떨었다.

반미 테러조직들마저 CIA펜타곤에 앞다퉈 연락해서 자기들은 무고하며 다른 놈들이 수상하다고 밀고를 할 정도였다. 보통 이런 테러 조직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슨 사건이 터졌다 하면 자기들이 저질렀다고 주장하기 일쑤인데 9.11은 정반대였다. 워낙에 규모가 큰 사건이어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테러조직 박멸의 의지를 내보였고, 전쟁의 해악성이나, 윤리나, 국가 이미지나, 전쟁으로 인한 손익 따위를 따질 상태가 아니었다. 목표로 지정되는 순간 수장부터 말단까지 섬멸 당할 게 뻔했기에 그 누구도 미국을 도발할 생각이 없었다.

얼마 뒤 이 테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이 거느리는 알 카에다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자 미국은 복수전을 계획한다. 그리고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에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엄청난 전력을 인근에 집결시켰다. 이미 테러 당일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 전단이 집에 가던 귀국길을 유턴하여 인도양에 전개를 마쳤고, 뒤이어 수많은 해군 전력이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이 직접적으로 침공해올 루트가 없다는 것과 자신들의 후견국인 파키스탄을 믿은 탈레반은 이를 거절했다. 탈레반(그리고 아프간 부족회의)은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변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거절하면서도 오사마 빈 라덴에게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애당초 강제 추방도 아니고 그냥 권고인 점에서 보듯이 이 시점에 탈레반은 이미 미국의 공격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믿고 있던 후견국 파키스탄도 '쓸데없이 버티지 말고, 알 카에다를 내주는 게 좋을 것' 이라고 필사적으로 탈레반을 설득하려 했지만, 탈레반은 오히려 파키스탄조차 겁쟁이라고 비난하면서 거부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공격을 받는 것은 무서웠는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립 서비스를 했지만 미국의 분노는 그런 말장난으로 식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자 미국은 아프간 반군세력인 북부동맹[3]에 엄청난 자금 및 무기지원을 해주고, 파키스탄에게는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며 협박,[4] 단박에 영공 사용권을 얻어냈다. 파키스탄은 어차피 저항해봤자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함께 싸잡혀서 당할 것이 뻔하니 미국에게 길을 열어주고 돈이라도 받는게 차라리 나았다. 비록 파키스탄에 핵무기가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파키스탄의 핵전력은 도저히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이전부터 적대관계에 있는 인도가 미국 측에 서서, 이 참에 눈에 가시인 파키스탄을 완전히 갈아엎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아프간 북쪽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도 미국에 영토 및 기지사용권한을 주면서 아프간은 졸지에 포위된 상황에 놓였다.

친파키스탄 정책을 취하던 미국이 1997년 북부동맹의 리더인 아흐마드 샤 마수드한테 탈레반에게 항복하라고까지 권유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엄청난 격세지감. 실제로 당시 미국은 탈레반이 소련 괴뢰정권 붕괴 이후 내전이 계속되던 아프가니스탄의 질서를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질서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신정체제를 수립했다.

비슷한 정교일치 국가인 이웃나라인 이란마저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이는 이란은 독보적인 시아파 국가이며, 탈레반은 일단은 수니파로서 역사적으로 서로를 격렬하게 적대하였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소수 시아파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다.

미국은 즉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한다. 탈레반 정권이 미군의 공습에 붕괴될 것은 확실시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새 정부수반들을 모색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해줄 국제안보지원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 창설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요구하여, 침공 2달 후 결성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을 잘못 건드렸다.

2.2. 아프가니스탄 침공(2001.9.26~2002년 12월) :너무나 쉬웠던 출발, 전황은 미국쪽으로 기울고...

미군은 해군 5함대(엔터프라이즈 항모단, 칼빈슨 항모단, 키티호크 항모단, 루즈벨트 항모단)의 함재기 250대와 제9공군 산하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 디에고 가르시아에 배치한 막강한 공군력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가했다. 육군 총병력은 미군 5천명에 27개국의 다국적군(영국군 300명. 기타 26개국 쬐끔)으로 매우 적었다.

초창기 침공과정은 전적으로 특수부대 위주로 육군 제5특전단을 주력으로 하여 이를 지원하기 위해 160특수작전항공연대, 528특수작전지원대대, 112특수작전통신대대, 4심리전단, 96민사작전대대가 편성되었다. 또한 약간의 네이비씰과 델타포스 그리고 75레인저 연대 3대대가 투입 되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미군의 폭격을 유도하는 등 1만2천 명~1만5천 명 가량의 현지 북부동맹군을 지원하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탈레반군은 5~6만명으로 예측 되었다.

작전 지휘는 미중부사령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이였고,10월초에는 항구적인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름 하에 합동특수작전전술본부(the Combined Joint Special Operations Task Force, CJSOTF, CJTF-Mountain)를 구성하여 제5특전단 존 멀홀랜드 대령에게 임무를 부여 하였다. 그리고 예하에 두개의 TF를 만들어 북부 작전은 북부 합동특수잔전TF(Joint Special Operations Task Force-North, TF Dagger)가 담당하며 대부분은 5특전단은 여기에 배치 된다.

12월에는 14일에는 아프칸 남부에 해군 특수전단1팀을 중심으로 남부 합동특수작전TF(Joint Special Operations Task Force-Southm)가 구성되는데 미해군 밥 하워드 준장이 지휘하며 5특전단 1대대 A중대 81명을 파견 받았다.

2001년 10월 7일 공중폭격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2002년 1월말 까지 약 1만8천 소티의 공중폭격을 실시 했으며, 탈레반 전사 8천~12,000명을 사살하고 7천명의 포로를 획득 하였다. 이 기간 민간인의 피해는 1천명 가량이었다. 미군은 전사자 16명을 포함하여 39명이 희생되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지 15일 만인 9월 26일, 7명으로 구성된 CIA 특수작전단(SAD) '조브레이커' 팀이 최초로 아프간 국경을 넘었다. 이들의 임무는 아프간 내 반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과 접촉하여 그들의 협력을 얻고, 탈레반 지도부와 주요 군사거점의 위치를 파악하여 곧 다가올 대대적 침공의 밑바탕을 그리는 것이었다.

곧이어 그린베레 5특전단 소속의 두 개의 ODA팀이 합류했고 이들은 북부동맹의 도움과 정밀항공지원에 힘입어 아프간 주요 도시들을 상당수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소수의 특수부대가 지역 반군 세력과 연합하여 한 국가를 거의 전복시켜버린 이 대활약은 세계 특수전사에 길이남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목표중 하나였던 오사마 빈 라덴을 놓치고 만다.

미국의 공식적인 군사 개입은 10월 7일, 수도 카불을 비롯한 주요 군사거점 및 대도시들이 대규모 총공습을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단 하루만에, 아프간의 방공망과 통신망, 공군세력은 소멸되었다. 얼마나 미국이 분노했는지, 개전 전부터 전술핵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었고 나머지 핵강국들조차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작 핵으로 때릴 고가치 표적이 없어서 흐지부지되었다.

(애당초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북부동맹도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고, 미 항공세력이 북부동맹에 대한 대규모 근접항공지원에 나서며 탈레반 지상군은 순식간에 격멸당했다.[5]

결국 개전 한달여만인 11월 13일, 수도 카불이 북부동맹에게 함락되었으며 12월 7일에는 탈레반 세력의 최대거점인 남부의 칸다하르마저 함락되었다.[6] 알카에다와 탈레반 패잔병들이 국경도시인 토라 보라(Tora Bora)에서 재정비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미군은 12월 12일부터 5일에 걸친 혈전끝에 도시를 점령하나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12월 14일에 미국은 승리 선언을 하기에 이르고 이 시점에 이르러 사실상 탈레반 정권은 끝이 났다. 탈레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아프간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본 회의에서 12월 22일 새 임시정부의 수립이 결의되고, 하미드 카르자이가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지명되었다. 주요 도시 및 교통망은 미군이 완전히 장악했다.

10월 7일에 시작된 전쟁은 불과 2개월 7일만에 끝났다. 보기에 따라 2(현지시간)~3(미국시간)일 후에 북부동맹군이 알카에다 최후 거점인 토라보라를 완전 장악한 것을 전쟁 종료로 보기도 한다.(이에 따라 미국 위키피디아는 12월 17일로 본다.)

사실 2001~02년 즈음인 개전과정과 말기가 되면 미국은 이라크전을 할 생각에 아프간전에서의 마무리와 탈레반 소탕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않게 된다. 덕분에 탈레반의 주력들은 미군과 북부동맹군을 기망하며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서 다수가 도주하여 전력을 보존한다. 포위되어있던 빈라덴조차도 미군의 지상군 포위망이 없어서 도주가 가능했다.[7] 게다가 IAI(아프간 재건 임시정부)와 탈레반을 몰아내는데 역할을 한 군벌인 북부동맹간의 지원금 나눠먹기와 배분 문제를 두고도 다투는 바람에 아프간 정규군과 경찰 교육과 배치가 늦어졌다. 덕분에 아프간전은 미국 스스로 1년이 넘도록 개판오분전인 상황을 두고, 되도 안되는 이라크전 준비하느라 부시 행정부는 중부군 사령부를 들들 볶아대고 있었다. 게다가 항공폭격의 초기성과가 너무 좋았고 정밀타격과 적은 투입으로 최대 성과를 극단적으로 강요하던 럼스펄드 체제 속에서 미군의 항공폭격과 정밀타격의 한계는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당장 탈레반 주력들을 포위하고도 제대로 된 항공폭격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바람에 적이 도주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라크전 준비하느라 문민통제를 미국 역사상 최악으로 남용할 정도로 정신나가 있던게 럼스펄드 체제의 부시행정부였다.

한편 일방적 침략이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이 전쟁은 해방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미군을 환영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다수인 농촌의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의 몰락이나 미국의 진주에 별로 소감이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아프간인들은 국가보다는 부족에 더욱 큰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에 중앙정권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도시에서와는 달리 향촌지역에서는 탈레반 이전부터 이슬람원리주의가 득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레반의 막가파 정책도 조금 더 불편해졌을 뿐, 아프간인들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호의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이것이 탈레반이 몰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농촌) 아프간인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진주와 카르자이 정부수립은 그저 자신들과 별 상관 없는 중앙정부가 바뀐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농촌지역과는 달리 도시민들인 카불 시민들은 탈레반의 축출을 기뻐했다. 도시 지역은 왕정과 공산정부 시절에 상당한 수준으로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탈레반의 정책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을 야기했던 것이다. 탈레반이 쫓겨나자 즉각 시민들은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북부동맹군을 환영하였고 남자들은 탈레반의 강요로 길렀던 수염을 밀어버렸으며 여자들은 부르카를 벗어던지고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금지되었던 각종 음악과 노래와 춤이 등장했고, 탈레반에 당해왔던 시민들이 탈레반 병사들의 주검을 길거리로 끌고와서 모욕을 가하는 것이 우리나라 뉴스에 여과없이 방송되기도 했다.

2.3. 전쟁초기(2002년) : 안정화 작전으로 전환

2002년 1월에는 빈라덴 색출을 위해 카불이 점령된 이후에는 지상군 투입을 늘려 기존의 합동특수작전TF 산하 북부/남부 합동특수작전F 외에 TF-Rakkasan(101공수사단 3여단), TF-Commando(10산악사단 2여단), TF-58(미해병 15원정대), TF-64(호주군 SAS 특공대)등이 생긴다. 그리고 이를 통합지휘 하기 위해 제10산악사단이 주축이 되어 TF-mountain이 만들어 진다.

한편 다국적군도 속속 들어와 전년도인 12월 22일에는 영국군 300명이 들어 왔고, 2002년 2월 27일에는 한국군 의료지원단 동의부대 1진이 파병 된다.

3월1일부터 18일까지에는 '아나콘다 작전'이라는 대규모 작전을 실시하여 동부의 신카이 산맥의 아프칸군을 소탕하게 된다. 여기 까지 진행되니 더이상 아프칸에는 탈레반 세력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러자 합동특수작전TF가 개편되어 안정화 작전에 힘쓰게 된다. 2월~3월경에는 미 중부사령부 산하 연합지상구성군사령부(미제3야전군) 산하 10산악사단(TF-Mountain)이 중심이 되어 작전을 책임 졌다.

5월에는 완전히 개편되어 미중부사령부 산하에 CJTF-180을 만들어 댄 맥네일 중장이 이끄는 18공수군단이 작전을 책임지게 된다. 산하에는 연합특수작전TF, 연합민군작전TF, 아프가니스탄군사협력실(3특전단 1대대), CJTF-82(82공수사단)으로 구성 된다. 주력은 CJTF-82로 산하에 82공수사단 3여단, 82공수사단 1여단, 229항공연대 3대대, 82공수사단 항공여단으로 구성 된다.[8]

이후 2013년 10월에는 18공수군단의 임무가 종료되어 10산악사단으로 전환 된다. 즉 군단급 사령부를 사단급 사령부가 대체하게 된다. 10사단은 2003년 5월에 1,2여단과 함께 투입되어 작전을 실시 하였고, 사령부로서의 역활은 2004년 2월까지 하였다. 2004년 3월에는 25보병사단 3여단(+ 미해병 6연대전투단), 2005년에는 남부유럽사단(?)이, 2006년에는 다시 10산악사단이 아프가니스탄에 3번째로 투입되어 동맹군사령부 임무를 수행하다가 국제안보지원군의 지휘체계로 전환 되었다.

2.4. 전쟁 중기(2003~2009년) : 미국의 병크와 다시 살아나는 탈레반

2003년, 탈레반은 중흥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헤즈비-이슬라미(Hezb-i-Islami)와 탈레반이 손을 잡은 것이다. 헤즈비 이슬라미는 9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 미군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훈련도가 높고 무장 상태가 양호했었고, 이들의 가세는 탈레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외 파키스탄 등 여러 인접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무기와 전쟁 물자, 용병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초기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보충하는 건 물론 오히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로 지나친 파슈툰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좀 희석됐지만 애시당초 파키스탄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용병들의 수준도 탈레반보다 조금 낫다뿐 거기서 거기라...

설상가상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미군 전투병력 및 동맹국 병력 상당수가 이라크로 재배치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우선관심사는 이라크로 옮겨갔으며 아프간은 이미 안정화되었다고 판단,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기간을 모른 척할 탈레반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전력을 증강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면서 미국을 자극하는 대신 전력을 재건, 강화하고 각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에 전념한 것은 (탈레반 입장으로 보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통제력이 없고 답이 안 나오는 실패 국가였다.

그 뒤 미국이 이라크에 전념하느라 아프간 문제에 관심이 줄어든 틈을 타 수년에 걸친 전력 재건을 그럭저럭 끝마친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대 등을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50명 이상의 규모로 미군과 아프가니스탄군을 습격하고 2~5명의 소규모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릴라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들을 잡기 위해서 병력을 증파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라크 전쟁으로 있던 병력마저 빼가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주기로 마을의 주인이 미군과 탈레반을 왔다 갔다 하는것은 예삿일이고, 심심하면 탈레반의 습격을 받으니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미군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강했던 남부 파슈툰족 지역은 어차피 미군은 떠날 테고 정부는 답이 없으니 그냥 탈레반에게 잘 보이도록 하자며 탈레반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활동을 묵인하였다.[9] 결국 탈레반 세력은 다시 남부에 맹위를 펼치고 수도에서 게릴라 공격을 펼칠 정도로 부활했다.

게다가 도망치기 바빴던 알카에다[10]와 탈레반 잔존병들이 파키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테러단체 하카니 네트워크가 이들과 협력하면서 상황은 점점 막장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게 아니라도 아프간은 그 특성상 국경 통제가 힘들고 외부 지원이 용이하며 주변국들 대부분이 막장이었기에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된 전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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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군의 활동을 ISAF가 이어받아 약 8천명의 다국적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다. 이라크 전쟁으로 병력부족을 겪고 있는 미군은 이들을 적극 환영하며 여세를 몰아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탈레반을 타격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미 탈레반도 최소 수만의 대군을 확보한 상태라 이때부터 시작된 전투는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한 대규모의 전투로서, 전투만 일어났다 하면 ISAF측도 백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탈레반은 많으면 2천명까지 죽어나갔다.[11] 가운데서 쥐어터지는 민간인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탈레반은 이러한 사상자에 그리 크게 구애받지 않았는데 수천 명이 죽어나가도 각국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서민들이 용병이 되어 아프간으로 속속 들어오면서 얼마 가지 않아 보충되곤 했기 때문.

미국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ISAF병력 증파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반전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기에 주춤하고 있는 상황.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철수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여담으로 미국과 중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미국/중국산 무기를 막 뿌렸는데, 이 무기들이 지금은 미군을 노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2001년 당시 러시아군 관계자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군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때 소련군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미국은 보란듯이 탈레반 정부를 전복시키면서 코웃음 쳤으나,미국의 엄청난 삽질과 함께[12] 결국 러시아의 경고는 맞아떨어졌다. 소련과 미국 모두 초강대국답게 압도적인 무력으로 쉽게 이전 정부를 전복하고 괴뢰정권을 세우면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 때부터 끝도없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2.5. 전쟁 후기(2010년~2013년) : 교착되는 전쟁상황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미국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오바마는 군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라크를 과감히 포기하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소탕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빠져나간 미군들이 줄줄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재투입되기 시작. 한 때 10만 명 이상에 이르게 된다.

2010년 2월 13일, 미군은 육, 해병대 6,000명 이상, UAV 다수, IED에 대응하기 위한 다수의 폭발물 제거차량, 아파치 헬기 등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Operation Moshtarak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서방 언론에서 'decisive'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작전으로, 아프간 전체 영토의 8할이 탈레반 통제하에 들어갔을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가 있는지를 시험할 겸 진행된 공세였다. 작전이 망할 경우에는 패전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정도라고 판단되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연합군은 3일만에 목표인 마르자 시내에 진주하였으나, 마르자 시를 제외한 헬만드 주 제압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작전을 지휘한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대통령 등 행정부와의 의견차이와 실언 논란, 그리고 작전 실패까지 겹쳐 교체되었다. 거기다가 원래 마르자 지역을 장악한 후 칸다하르를 칠 계획이었으나 후속작전은 무기한 연기되고 있으며 거기다 아프간 군대의 수준은 차라리 없는 게 도와주는 것일 정도로 형편없다.[13]

전쟁 첫 7년 미군 전사자는 700명으로 많지 않았으나 탈레반이 전력을 회복하고 각 지역의 통제권을 재장학한 상황에서 전면 충돌에 들어간 2009년 이후 증가하였다. 2010년 6월 연합군 103명이 전사하여 월간 단위로 개전 이래 최다 전사자가 나왔다.

2001년 침공 당시부터 2012년까지의 미군 전사자(사상자가 아니라 전사자만) 수는 총 2,356명.[14] 그외 영국과 캐나다 등 연합군 전사자까지 모두 합치면 3,249명에 이른다. 유럽국가들은 나도 할 만큼 했음 하고 철군할 기세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탈레반의 자폭테러와 도발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1년 5월, 전쟁의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CIA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던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아프간에서 발을 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면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소말리아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탈레반이 권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탈레반이 그나마 1996년에서 2001년 집권 당시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한 집단임을 고려하면 그 여파는 이웃 국가들, 특히 을 보유한 파키스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되어 2011년 8월 6일 새벽,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31명이 탄 치누크 헬리콥터가 격추되어 타고있던 38명(아프간 정부군 포함)이 몰살당했다. 이 31명 중 대다수가 네이비 씰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인 DEVGRU 소속,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그 부대다. 하필이면 이런 기막힌 우연 때문에 빈 라덴의 복수라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하루만에 31명이 사망한 것도 운이 없지만, 미군 최고의 특수전부대원 수십 명이 한번에 사라져버린 것. 일반 미군 사망 수백 명보다 훨씬 뼈아픈 손실이며 미 특수전 사상 최악의 대참사 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부대원은 한 명도 없다고 발표되었다.[15]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군에 슬슬 전쟁 주도권을 넘기려던 미국에서 아직 철군하기에 위험하다는 의견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이 있든 없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2012년 4월에는 카불 곳곳에서 동시 다발 테러를 일으켜서 아프간 정부군은 29명의 사상자를 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긴급 피신했고 미군도 출동했지만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군에게 돌을 던지는 통에 미군에 대한 인식만 최악이라는 게 다시 한번 드러났다. 알 카에다는 모두 36명이 전사했지만 충분히 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이다. 반미의식이 확인되었고 정부군은 우왕좌왕했으며 미군은 사람들의 돌팔매질이나 당하는 바람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6. 전쟁 말기(2014년~2015년 ):결과는 도루묵

결국 미국은 발빼기를 위해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타진했고, 탈레반은 이를 수락했다. 탈레반과 미국은 2013년 6월부터 전쟁 발발 12년만에 카타르에서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여기서 배제된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반발중이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집단인데다 어차피 망할 자들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있다. 탈레반은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포로와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미군포로와의 교환을 주장한다고 한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미국이고 이런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는 1973년1989년에 이미 증명된 만큼 탈레반이 정말로 답이 없는 수준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결국 탈레반에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처음에 양측 입장차이가 커서 협상은 얼마 안가 결렬되었지만, 미국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개되었다.

2014년 6월 1일, 결국 2009년에 탈레반에 잡힌 유일한 미군 포로 보위 버그달(Bowe Bergdahl) 병장은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던 탈레반 간부 5명과 교환되어 풀려났다. [16] 공화당은 의회 허가없이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줬다며 난리지만, 일단 5년간 억류생활을 하던 자국 병사가 돌아온건 미국으로선 환영할만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버그달 병장은 전투중 포로로 붙잡힌게 아니라 기지를 나섰다가 억류되었고, 그를 찾겠다고 나선 미군들이 몇 명이나 탈레반과 싸우다 죽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나는 반전이 있었다. 친지에 보낸 마지막 이메일에서 군생활에 대한 환멸감을 썼는데, 이때문에 탈영혐의를 받게 된 것. 그래서 환영행사가 취소되는 등 내부적인 분위기가 안 좋은 상태. 일단 미군측은 버그달 병장이 5년간이나 사실상의 감옥 생활을 한 만큼 그걸로 벌은 충분히 받았다며 환영은 안 하더라도 처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조사 결과 버그달 병장은 단순 외출 중 피랍된 것으로 판단되어 다시 정상적으로 현역에 복귀하였지만, 2015년 3월에 적 앞에서 겁을 먹었고 탈영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었다. 더욱이 그의 생환에 깊이 관여했던 마크 밀리 장군이 2015년 5월에 차기 육군참모총장에 내정되자 논란이 재점화되는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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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7 수송기로 철군하는 미군 병사들

한편 철군은 탈레반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빠르게 진행되어 2014년 5월. 오바마는 결국 2016년까지 모든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철군안은 2014년까지 통상적인 임무 (순찰, 전투)등은 모두 종료하고 9800여명의 병력을 남겼다가 1년후인(2015년 기준) 2016년 이 병력도 모두 철군한다는 것이다. 이 협정을 양자 안보 협정(Bilateral Security Agreement)라고 한다. 물론 소수의 군사고문단은 남긴다지만 이게 얼마나 무의미한가는 한국전쟁 직전의 한반도. 그리고 1973년 이후의 남베트남으로 알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 미국도 국력의 한계를 느끼고 해외 개입은 적극 자제하고 있다. 당장 시리아 내전에서 개입을 최소화하고, 우크라이나2014년 크림 위기에도 그저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전부이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직접개입하는 대신 아베 신조의 보통국가화 추진을 묵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17]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철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명목상으로나마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한 베트남 전쟁만큼 굴욕적인 것이다. 사실상 쫓겨나듯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소련군의 철수를 그대로 반복했는데, 소련군(10년)보다 좀더 오래 버텼다는 것(2016년에 예정대로 철수한다면 15년)이나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미군은 실망스런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미군이 철수 움직임과 결정이 되자 한국군 역시 01~07년 12월까지 동의-다산부대 활동과 더불어서 2차 파병이었던 오쉬노 부대 역시 10~14년 6월을 끝으로 모두 철수하여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다만 현재 주 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 경비로 한국군 경비인력이 남아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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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한 미육군 해럴드 그린 소장.
한편 2014년 8월 6일,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위장입대한 과격분자에 의해 미군 해럴드 그린 소장이 피격되어 사망했다. 범인은 그린 소장뿐만 아니라 여러명의 ISAF 인사들을 저격, 사망케 했으며, 현장에서 사살되었다고 한다. 소장이 분쟁지역에서 사망한 것은 베트남 전쟁 이래 처음있는 일이라서 미국에서도 꽤 충격적인듯. 나름 정부군에서 가려뽑은 고위인사 호위병력이 저런식이라면 미군이 진짜 떠나면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얼마나 버틸지 답은 뻔한 상황이다.

2014년 10월 27일, 이 전쟁에서 미국의 최우방국이었던 영국이 13년간 453명의 전사자와 190억 파운드의 전비지출을 기록하고 헬만드주 마지막 기지였던 Bastion에서 최종 철수했다. 이로써 미군의 철수 또한 가시화되었으며 영국내에선 이 전쟁에 대한 정당성과 토니 블레어 전총리의 참전 결정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있다. 단 아프간 정부군을 위한 훈련교관과 기타 비전투요원들은 시간을 두고 철수 할 듯 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오면서 어부지리를 챙기려 하고 있다. 2014년 11월 중국은 무려 1000조원이 넘는 경제협력을 아프가니스탄 측과 맺기로 하며 접근중인데 증오로 남겨진 미국과 달리 중국은 반응이 좋은 편. 결국 미국은 중국이 좋아할 일을 만들어준 셈이다. article|default 중앙일보 기사

결국 2014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13년 아프간 전쟁 종료
다만 나토측에서는 1만 5천명 가량을 아프간에 2016년까지 주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10만이 넘는 병력도 아프가니스탄 평정에 실패한 상황에서, 게다가 상설이 아닌 한시적 주둔인 점에서 사실상 의미는 없어 보인다. 아마 2016년이 지나고 난 뒤 결국 탈레반이 재집권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

미국 일각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이어 미국이 이기지못하고 돌아간, 베트남 전쟁을 이은 전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2.7. 사실상 휴전기(2015년 ~ 2016년) : 철군 보류, 그리고 탈레반의 부활 성공

2015년 10월 15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보류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다시 미군을 재배치하는 것은 아니고 2016년 이후에 완전철군하려던 일정을 이후로 연기했을 뿐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은 9천여명 정도 남아 있다. 미국은 말로는 조기철군했다가 아수라장이된 이라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라고 천명하고는 있기는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이는 9월 탈레반이 정부군의 거점이었던 쿤두즈를 함락시킴으로써[18],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바로 "사이공 1975"가 재연될 만큼 탈레반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10만명의 미군으로 못해낸 탈레반 완전 소탕을 9천명의 병력으로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이는 그저 오바마가 자신의 임기동안은 자신의 재임치적을 흐릴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사이공 어게인"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자신의 임기동안만 탈레반 재집권을 막고, 이후에는 철수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것.

2015년 12월 22일 미군 사령부가 있는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자폭테러로 미군 6명이 전사했다. 이쯤되면 정말 1975년의 사이공과 비슷한 수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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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현재의 탈레반 점령지
2015년 탈레반은 헬만드주를 함락시키고, 아프가니스탄의 30% 영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보도가 났다. 헬만드주는 아프간에서 아편산지이기 때문에, 이곳을 장악하면 풍부한 자금줄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서방연합국이 떠난 이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사상자는 매년 늘고 있다. 2015년에만 7천여명의 전사자를 기록. 미군의 완전철수와 탈레반 재집권 이후를 대비해 아프간 정부군에 참여한 군벌들이 재무장을 시작했다지만, 미국이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위해 사병모집을 엄금하고 군벌의 사병들을 정부군에 편입시켰다가 모두 날려먹었기 때문에 탈레반이 처음 집권할 때보다 군벌 세력은 상당히 약화된 상태이다. 그러니까 미국은 나중에 탈레반이 골치를 앓을 수도 있던 군벌들을 본의 아니게 해체해 준셈. 현재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승기를 잡은 탈레반이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응할지는 미지수이며, 1975년 베트남에서 보았듯이, 설령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해도 얼마 안가 깨지고 탈레반이 결국은 아프간을 석권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 탈레반 세력이 다시 득세하자 바그람 지역의 공군기지 등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세를 바꿀 가능성은 없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지금 미국은 IS 같은 사이코들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패권장악도 용납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이걸 거부하면 아시아에서 중국을, 유럽에서 러시아를 막을 수 없다.

2016년 탈레반은 대담하게 사망한 지도자 뮬라 오마르의 이름을 붙인 "오마리(omari) 작전"이라고 이름붙은 춘계공세를 실시했고, 수도 카불 전역에서 테러 및 교전이 벌어졌다. 이 공세로 사상사 수백명이 나왔다. 탈레반의 주장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정보국 청사까지 진입했다고 한다. (아프간 정부는 부인) 이렇게 수도까지 잠입해서 교전을 벌일 정도면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호흡기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기사 이는 소련군이 철군한 1988년보다도 상황이 훨씬 나쁜데, 적어도 소련군 시절의 무자헤딘은 카불을 넘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기관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은 이날 보고서에서 아프간 전체 407개 군(郡·district) 지역 가운데 아프간 정부의 온전한 통치권이 미치는 곳은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233개 지역으로 57.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나머지 174개 군 지역에서는 탈레반 등 반군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부와 반군이 통치권을 놓고 다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반군과 교전으로 사망한 아프간 군인과 경찰은 올들어 11월 12일까지 6천785명을 기록해 2015년 전체 사망 군·경보다 3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자는 1만1천777명에 달했다.기사

2.8. 전쟁 재시작 (2016년~ ): 탈레반만 신났다.

카르자이의 아프간 정부는 부정부패와 무능력 때문에 민심이 떠났고, 날이 갈수록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현 아프간 정부가 무능하다고는 해도 구 탈레반 치하보다 객관적인 민생은 전쟁을 제외하면 상당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 아프간 정부가 민심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것은 서방의 지원액의 대부분이 아프간 민중보다는 정부인사들의 호주머니로 간다는것. 민생이 조금 나아져도 민심의 불만은 억누를 길이 없다.

미국도 민심을 얻는게 승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민생 지원책으로 뿌린 돈만 천억달러(무려 100조!) 이지만, 이 돈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아니라 부패한 아프간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 미국은 돈은 돈대로 쓰고 욕만 먹는 셈. 차라리 그 돈으로 탈레반을 달랬으면 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위에 서술하듯이 탈레반이 남았는데 대들 아프간 민간인이 대체 얼마나 될까? 이전처럼 따르며 살 수 밖에. 탈레반이 물러날때 좋아라하던 지역도 분명히 많았었다. 무작정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이 반미를 내세우고 탈레반 환영하고 극단 무슬림인 것도 아니었다.

아프간 정부는 스스로 이슬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프간 정식국호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다.) 실제로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어정쩡한 정책[19]만을 취하고 있으며, 만연한 부정부패에다가 미국의 괴뢰정부이기 때문에 시골의 보수적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차라리 탈레반을 더 낫게 본다고 한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부정부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생긴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결국 현 아프간 정부 역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여론에 동조하여 잔인한 투석형을 부활시키는 등의 종교적 극단화가 계속되고 있다.

탈레반 자체도 자신들의 첫번째 실패를 거울삼아 예전에는 엄격한 이슬람 법률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예전에는 율법에 따라 돌팔매질 처형으로 다스렸을 일들을 그냥 훈계만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등, 아프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변한 척을 하고 있다니 미국은 이래저래 낭패. 탈레반측의 잔혹행위만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종류의 산악 게릴라전이 다 그렇듯이 미군이나 아프간 정부군의 잔혹행위나 미군의 소탕전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민간인 피해 또한 심각하다. 특히 이런 종류의 전쟁을 하는데는 촌락민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탈레반이 세력을 떨칠수 있는 것은 아프간 정부군이나 미군의 문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아프간에서 널리쓰이는 드론공격의 피해자의 대부분은 무고한 민간인이라는 사실이 내부고발에 의해 폭로된바 있다. 기사. 미군소속 드론 조종사들이 이런 민간인 피해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PTSD에 시달리고 있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드론 공격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친미파의 주장과 달리 미군이 아프간에서 탈레반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기사 이런 형편에 아무리 탈레반이 막장이고 잔혹행위를 벌인다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기 힘들다.

탈레반이 저렇게 세력을 확장하여 막강한 미군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것도 종교적 광신이든 일시적으로 변한 척하는 사기극이든지간에 아프간인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며, 적어도 아프간 정부군보다는 민심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총칼로만 민중을 위협했다면 탈레반이 저렇게 세력을 떨칠 수는 없다. 결국 탈레반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탈레반보다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더 받는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지만, 부정부패에 찌든 군벌들이 난립하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자기 뱃속 채우는데 열중하니[20] 무수한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기에 그 썩어빠진 군벌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한 증오까지 발돋움해버린 셈이다....

2012년에 탈레반은 수도 카불 인근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자체 주지사를 임명하고 정부 행세를 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동안 인도주의적인 구호를 해온 NGO 단체마저도 아프간 정부가 아니라 탈레반과 손을 잡고 구호활동을 한다고. 탈레반 몰락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동 통신 회사마저도 미군 스파이의 활동을 막기 위해 탈레반의 명령에 따라 밤에는 서비스를 중지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통역요원 중 많은 수가 탈레반이라고 한다. 2011년 8월에 벌어진 헬기 추락으로 인한 네이비 씰 몰살 사건도 헬기에 함께 타고 있던 통역요원이 정보를 누설하여 계곡에서 매복하고 하던 탈레반들이 쏜 RPG-7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미군은 발을 뺄 명분을 얻게 되었다. 미국은 2014년 아프가니스탄 완전철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전황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탈레반과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즉 탈레반의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완화하켜 미국이 발을 뺄 명분을 얻으려는 속셈인데, 문제는 탈레반이 협상을 한다 쳐도 미군이 다 빠져나가면 태도를 돌변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2011년 9월 13일에는 수도 카불에선 4곳 동시다발 테러를 당했고 속수무책인 현 정부군과 경찰 대응 속에 앞으로도 이럴 일이 계속 터질 듯 싶음에도 미군은 2016년 철수를 결정하였다.

결국 미군은 25년 전 소련군의 전철을 밟게 되었고, 현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얼마나 개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결국 과거 무자헤딘에 전복된 친소 나지불라 정권의 말로를 반복할 것이다. 다만 아프간 구 북부동맹 인사들 상당수가 탈레반의 재집권에 맞서 무장을 재개하기 시작했기에 카르자이의 파멸과는 별도로 탈레반이 Again 1996을 이룰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 상당수가 여론 조사에서도 이 전쟁은 무익하고 미군이 철군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에 존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우익파들은 2014년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을 버리고 있지 않지만 기사 사실 미국이 아프간을 지금 와서 떠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미군이 철군하든 안하든 미국은 아프간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 논객 토마스 프리드먼은 컬럼에서 어차피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날 테니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호관계를 맺어 지금의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와 같은 사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즉 베트남 전쟁 재현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셈. 사실 아프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반미 세력이 장악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긴 막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냥 극단주의만 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중앙아시아 진출을 추진중인 중국과 손잡을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미국에게 돈을 갈취하던 군벌들은 막상 미국이 철군하는 걸 반대하지만 정 갈려면 가고...라는 태도를 취한다. 중국이라도 좋으니 다른 돈줄이 있다고 하는 것.

2012년 9월 힐만드 주에서 탈레반이 각종 관공서를 보란듯이 대낮에 공격하여 공무원 4명을 비롯한 다수 사상자를 냈으나 정부군은 우왕좌왕하며 1명도 잡지 못했다. 미군으로선 지금도 이런데 미군 철수한 다음에는 뻔할 노릇일테니 답답할 것이다.

카르자이 임기 말기가 되면서 다음과 같은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이 발 뺀 뒤 탈레반이 카르자이 정부를 전복한다. 하지만 구 북부동맹 출신 군벌들의 재무장과 외부의 간섭, 파키스탄의 애매한 태도[21] 등으로 인해 아프간 전체를 재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카르자이는 이제와서 미국을 비판하고 탈레반과 협상을 하는 등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탈레반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결국 무하마드 나지불라 꼴로 고자가 되서 조리돌림 당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22]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1970년 론놀 장군의 군사 쿠데타로 왕정 폐지 후 피비린내 나는 유혈내전을 겪으며 1975년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주 세력들의 폭정으로 자국민 백수십만 명이 학살당하다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되고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직후 UN의 개입으로 1993년 입헌군주제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캄보디아처럼 미군 철수후 아프가니스탄이 캄보디아처럼 옛 왕정으로 복고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2014년 투표율이 탈레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0% 이상에 이르는 등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입증됐다. 그러나 그것은 적극적인 반대가 아니라 소극적인 지지 철회일 뿐이며, 이들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탈레반과 목숨 걸고 싸울 각오가 되어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단지 탈레반이 다시 복귀한다고 쳐도 이전처럼 날뛰기가 좀 더 어려워질 거라고 기대하는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공은 출범하는 아슈라프 가니 행정부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친서방 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산적한 내부 정치 현안을 잘 극복하고[23] 탈레반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 나갈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일단 BSA에 가니 신임 대통령이 서명하기로 함에 따라,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미군 철수는 이루어질 예정이다.

최근 미국이 이란과 어느 정도 화해-협력의 의사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이슬람 수니파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존재를 통해 답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며 그렇다고 이스라엘[24]이나 터키[25]를 이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란에게 메소포타미아 일대와 양 스탄 모두를 맡기는 대신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관철시킬 경우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두어 중동을 안정은 시킬 수 있는 셈이다.[26]

이런 와중에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마르가 죽은 것도 무려 2년이 지나서 공개됐다. 즉 2년동안 미군도 제대로 죽었는지 정보도 찾지 못했다는 거다.

2015년 10월 2일에는 C-130기가 추락해서 미국 공군 6명 , 민간인 5명이 죽었다고한다. 미 국방성은 적의 공격에 격추된거 같지 않다고 하는데 탈레반은 자신들이 격추 시켰다고 주장하고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638683

10월 3일에는 미군 오폭으로 국경없는 의사회 병원에서 무고한 19명이 사망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272028&ref=A

오마르에 이어 지도자가 된 만수르가 탈레반 내부 회의중 의견 충돌로 같은 탈레반한테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탈레반측에서는 거짓 선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 지도자 만수르가 미군 드론에 의해 사망한것이 탈레반 고위 관계자한테도 공식 확인되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22/0200000000AKR20160522037500009.HTML?input=1195m

그런데 최근 아프간 탈레반 내부에서도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정과 내전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9. 2017년~ : 트럼프 정권의 반격? + IS의 참가로 인한 혼란의 격화

오바마 정권에 이은 트럼프 행정부도 아프간 문제때문에 골치를 앓는 중이다. 2017년 탈레반의 춘계공세가 심상치 않자 MOAB 폭탄을 사용하여 탈레반을 폭격, 어느정도 효과를 내려고 했으나, 탈레반의 진격을 저지하는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모양. 하지만 트럼프도 자기 임기중에 친미 아프간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쉽게 철군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리고 미국 친민주당 언론에서는 "군사작전의 목표는 탈레반의 진압이 아니라 협상이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느 형편. 이는 국내외 반전여론 및 베트콩의 수그러들지 않는 전의에 미국이 발빼려던 베트남 전쟁 말기와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그 결과 아프간 전쟁은 2018년까지 17년째 이어지면서 미국이 참가한 전쟁중에서 베트남 전쟁의 14년(1964년부터 아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미국은 1959년에 개입시작[27], 1973년 철군했다.)을 넘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는 전쟁이 되고 있다.

2017년 7월 미군병사 두명이 부비트랩에 걸려 사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not winning)있다며, 파견군 사령관 존 니콜슨 대장을 파면하려고 했으나, 백악관에 참모들이 말렸다고 한다.#

2017년 8월 최근에는 아프간에 4천여명을 추가파병한다고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변화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기사[28] 하지만 전세를 돌리기는 여단 규모인 4천명으로는 어림도 없고(2014년까지 2만명 정도였다.이 중 병력에 안 넣는 PMC 용병이 2만명 정도였고 이걸 다 합쳐 미국 주도 연합군은 약 4만명 정도.), 협상 촉진을 위해 탈레반을 좀 더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 이에 탈레반은 미군은 당장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2017년 11월 19일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과 함께 탈레반의 마약 제조시설을 대대적으로 폭격하여 10여곳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2017년 12월 27일 미군이 탈레반계 무장단체 하카니 네트워크의 사령관을 무인기 공격으로 사살했다.#
2018년 1월 1일에 아프간의 낭가하르주아친 지역에서 벌어진 교전에서 미군 1명이 전사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8년 1월 11일 미국 정부는 아프간에 미군 1,000명을 추가 파병하며 드론과 공격기와 같은 중장비들을 배치할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벽두부터 탈레반과 IS의 테러가 자행되면서 엉망이 되고 있다.[29]

2018년 1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의 테러를 비난하며 그들과 대화를 하지 않을것이며 탈레반을 끝내버릴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탈레반은 결전을 선언했다.#

2018년 1월말, 현 아프가니스탄 친미정부는 30%의 국토 통제력만 장악하고 있다는 보도가 났다. 소련군 주둔 말기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처지. #

2018년 2월 8일 미군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중부군의 주력을 아프간으로 배치하였고 공습을 강화하여 탈레반에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8년 2월 15일 탈레반은 아프간 평화회담을 제안했다. 미국은 탈레반측이 폭력을 중단해야 회담을 할수 있다고 발표했다.#

2018년 3월 28일 미군은 26일과 27일에 아프간 북부 주즈잔 주에서 IS 연계 무장단체를 야간에 급습하여 무장단체 지휘관과 대원들을 사살하고 영상을 공개했다.#

2018년 4월 8일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은 탈레반의 마약공장 11곳을 공습하여 파괴했다.# 또한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은 아프간 북부에서 아프간 IS의 최고위급 지휘관 카리 헤크마트를 드론 공습으로 사살했다.#

2018년 4월 26일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의 평화 협상안을 거부하고 춘계대공세를 선언했다.#

2018년 5월 15일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은 탈레반이 아프간 서부 파라 주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자 공습에 나섰다.# 그래서 5월 16일 탈레반은 서부 파라 주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파라 주 외곽으로 철수했다.#

2018년 5월 30일 미군은 아프간의 헬만드 주 무사콸라 지역을 공습하여 탈레반 지휘관 50여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에 탈레반은 부정하며 민간인 5명만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오는 20일까지 탈레반과 휴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과의 전투는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6월 17일 탈레반은 휴전 연장을 거부하며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9월 2일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과 함께 아프간 IS의 우두머리 아부 사드 에르하비와 IS 조직원 10명을 공습으로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3. 미국이 실패한 이유

미군과 ISAF는 벌어지는 전투마다 압도적인 교환비를 자랑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탈레반 수백명이 사상당하면서도 미군 병력의 손실이 전무했던 전투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30] 미군이 압도하는 것 같지만 전쟁으로 미국이 지출하는 비용은 ISAF가 지출하는 비용보다 압도적이다. IED같은 100달러도 안되는 무기가 100만 달러를 넘는 장비를 부수고, 다량의 전사자/부상자/PTSD환자와 이들의 가족을 평생 돌볼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

또한 고대-중세 전쟁과 다르게 현대 전쟁에선 적들을 잡고 몰살을 시키기가 어렵다. 물론 비행기나 미사일로 섬멸전을 할때도 있으나 사로잡힌 적병들은 수뇌들만 사형시키고 잔병들은 가둬 교화시키려고 하는데, 탈출하거나 다시 탈레반에 가입하거나 일반 시민을 꾀어낸다. 미국 입장에선 점령지에서 인종 학살을 하게 되면 국가 이미지에 타격도 있으며 아직 미국에겐 학살정도의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오랜 기간동안 내전을 치렀고, 1996년부터는 시대착오적인 탈레반이 국가를 중세로 되돌렸고, 2001년부터는 또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실패국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부족갈등, ISAF의 병력부족으로 인한 치안의 악화, 탈레반의 과격화, 아프간 신생정부의 무능과 부패, 미군의 삽질과 수많은 오인사격/폭격, 경제적으로는 오랜 전쟁으로 개판이 된 민생경제, 마약재배, 관료들의 부패 등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군이 아프간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데 있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호해준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고 동시에 이슬람 문화와 같은 파병 주둔국 지역의 문화적 이해가 서툰 미군이기 때문에 문화적 충돌에 의한 불신을 키운 점이 있다. 물론 현지인들의 이슬람 극단주의적 문제도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다. 오히려 수도권인 카불 지역은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세속적이라는 것. 탈레반 지배가 채 10년도 되지 않았던 지옥같은 상황에서 이들이라고 탈레반이 좋아서가 아니라 죽기싫어 따르던 점을 생각하자. 당장 이라크 전쟁을 봐라. 이라크도 초반 바그다드를 미국이 장악하고 후세인 몰아내자 엄청 기뻐하고 미군 환영했다. 하지만 미군이 저지르던 무수한 병크로 인하여 후세인도 극단주의도 싫지만 미군도 싫다며 저항세력으로 간 이들[31]처럼 미군이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큰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탈레반을 미국이 크게 뿌리뽑았을 결정적 기회를 이라크 전쟁으로 날려버린 거야말로 가장 큰 이유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당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느라 이걸 더 부추겼고 더욱이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져서 아프간은 뒷전이었다보니 탈레반이 급격하게 세를 성장하여 주민들을 위협하며 협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아프간 주민들이 과연 결국엔 떠날 미군을 믿고 지원할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군은 부족한 병력을 통제를 해야했었고 레드윙 작전처럼 소수의 특수전 병력과 항공폭격을 통한 타격을 시도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민간인들 희생도 대량으로 초래했다는 점이다. 항공지원에는 당연히 지원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게릴라전에서는 그렇게 효용적이라 할 수 없었다.[32] 이는 탈레반을 몰아내고 나서 소탕을 진행할때 나타났던 한계가 그대로 이미 노출되어있음에도 병력투자를 안하려고만 하는 부시행정부의 럼스펄드 체제의 고집때문이었다. 그렇다보니 항공폭격만 했다하면 마을 주민들이 떼로 죽어가니 주민들이 미군이라고 하면 학을 뗄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렸고 덕분에 미군 동조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가는데 탈레반 동조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괴상한 구도가 된 것도 이것이 단단한 한몫을 한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다시 병력투자와 함께 전개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을때로 늦어버린 상황에서 그걸 반전시킨다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소련 정권은 그나마 이념적 동조자를 모을 수가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건데 소련이 철군하고도 90년대 중순까지 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신론적인 사회주의 세력이 남아서 탈레반이라든지 각종 군벌과 죽어라 싸웠다. 괴뢰정부군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소련군과 연합작전도 가능했지만, 미국이 조직한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이나 북부동맹을 제외하면 이념적 동조자도 모을 수 없고, 정부군은 말할 수 없이 개판[33]이라서 미군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으니 미국이야말로 더욱 진퇴양난이다.

가장 문제인건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이라는 명칭의 현재 미국이 구성한 아프간군 자체가 워낙 의지가 없다. 아프간군 항목에도 있지만 이들이 여기에 지원하는건 탈레반보다 더 돈을 많이 줘서이지 국민의식이나 애국심이 있는게 아니다. 게다가 군대 자체도 호국이념에 대한 정신교육이 매우 부재하고 이해도 못하는게 현실이다. 당장 병사들 자체가 글을 읽을줄 모르니[34] 병기본교육을 이해를 못하는게 당연할수 밖에 없고 이를 가르쳐야할 장교나 부사관들도 군인으로서의 정신자세나 프로의식은 밑바닥 수준이다. 한국군의 건군초기 상황과 유사한 편인데 최소한 애국심과 국적의식이라도 있었던 우리와 다르게 이쪽은 부족집단생활에 익숙한 애들 투성이라 장교나 부사관이 지들 부족출신 아니면 관심도 안쓸정도로 의식수준이 결여되어있다.[35] 이러다보니 군간부가 부패하기 일쑤이고 그것 때문에 병사들이 탈레반과 내통을 하는 사태도 벌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다. 답답한 수준으로 치면 남베트남군보다 더한 바닥을 기고 있는 수준이 현재의 아프간군의 문제점이다.

아프간 정부의 부패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로 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두바이를 국빈방문했는데 짐속에서 현금으로 3천만 달러가 들어있는 트렁크가 발견되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국빈방문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데다, 아랍에미리트는 친서방국가로 어찌되었든 아프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라 그대로 묻혀버렸는데, 나중에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공개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3천만 달러 밀반출 정도는 얘기거리도 안되는 게, 카불 공항을 통해 공식적으로 신고하고 반출되는 금액만 한달에 2억달러라고. 내전 중인 나라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프간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경제재건과 민심안정 등의 명목으로 지원한 금액이 총 700억 달러를 넘는다. 군사부분은 제외한 순수 민간분야 원조만 해서 이 정도인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이런저런 루트로 유출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부족 간에 강약은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원래가 이슬람 원리주의자[36]이고, 적어도 탈레반을 호의적으로도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자 미군에 대한 지지세가 감소하고 있다. 미군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탈레반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중들은 더러워도 탈레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하듯이 초반 미군이 압도적으로 탈레반 몰아낼 당시 민중들이 좋아하고 죽은 탈레반 시체를 매달고 모욕을 가하며 고소해했던 걸 생각하면 아프간 민중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이건 이라크 전쟁때도 똑같았다. 여기서도 미군을 환영하고 후세인 동상을 부수고 그림을 태우며 사람들은 속시원해했지만 길어지는 전쟁과 덩달아 당하는 테러 피해, 게다가 미군의 행패 및 갈등으로 인하여 이라크 전쟁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반미적으로 돌아섰듯이 아프가니스탄도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탈레반이 집권하던 시절 폭정은 상상을 넘어섰던 걸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다. 당장 탈레반 항목만 봐도 극단주의에서도 아주 미친 극단주의자들이나 지지했지, 탈레반 정권 시기 대다수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것들은 거리에서 웃어도 처벌하던 놈들이었고 대중문화 자체를 싸그리 금지하던 최악의 싸이코패스들이었다. 면도해도 죽이고(!) 연날리기까지 알라의 하늘을 모독한다며 연날리던 아이들을 구타하고 패죽이며 2축구를 금지해서 거리에서 축구공을 찼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패죽인 것들이다. 그리고 축구경기장을 사형장으로 쓰던 놈들이었고 극단주의자에서 제대로 수꼴, 미친 극단주의자 격이나 좋아한다. 대중매체를 금지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이렇게 안한다! 오히려 여긴 이러면서도 때론 몇몇 대중매체를 허용하기도 하고(리야드 대형마트만 가도 비디오 게임 판매 및 DVD도 법적으로 허가한다[37]. 연날리기는 당연히 물론 IPTV,인터넷을 허용한다. ) 가정적으로 스트레스받을 여성들만 들어오는 카페도 허용한다든지 최소한 조금이라도 여성끼리 모여서 스트레스라도 풀라고 허용이라도 하고 외국산 물건도 자유롭게 들여와 걸리지만 않는다면야 해외방송도 보고 이런다. 걸린다고 해도 벌금형이나 관련 안테나나 위성시설 압수 정도만 한다. 탈레반처럼 이걸 빌미로 사형시키지 않았다.
아프간 인들도 미군이 쳐들어와 이것들을 일시적으로 몰아낼 당시 미군을 환영하고 보란듯이 그동안 꼭꼭 숨겨오던 영화나 음반들을 꺼내 팔고 속시원해하던 반응을 보면 전혀 아니다. 미국이 최소한 처음처럼 아프가니스탄에 총력을 다하여 탈레반을 분쇄했더라면 역사는 확실히 달라졌으리라 보는 분석이 많고 적어도 미군과 갈등으로 일부 테러라든지 충돌을 피할 수 없어도 탈레반이 박살난 상황에서 지금이 낫다.적어도 미군이 행패나 피해가 있을지언정 탈레반보다 엄청나게 낫다는 인식이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시기에 이라크 전쟁을 벌이며서 탈레반 부활을 시킨 미국이 이 부분에서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이렇게 갈 길이 멀어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대충 손을 떼고 나갈 수 없다. 이라크와는 달리 아프간 전쟁은 전쟁의 명분이 서있고 아프가니스탄이 우라늄을 비롯한 막대한 광물자원을 비롯한 가득 가지고 있기에 이 점으로 핵개발에 빼놓을 수 없는 요충지이자 아예 이웃 파키스탄이 핵 보유국이라는 점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승리할 경우, 인접한 파키스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38] 만일 핵 무기의 통제권이 탈레반에 넘어간다면(…). 따라서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반드시 이겨서라도 아프간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Covert Operation(비밀작전)의 횟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정치적 생명을 걸고 아프간전을 끝내려고 하는 민주당 행정부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태스크 포스 373의 존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선 장병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심각해지고 있으며 별의별 인간들이 병력 부족으로 군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쟁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전쟁터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장병들이 본토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건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장병들도 마찬가지. 미군 실전부대는 1년간 순환근무를 하는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웬만한 병사는 서너 번씩 이라크나 아프간을 다녀오면서 지옥을 경험하다보니 맛이 간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39]

미국 국방부의 의회 공개보고서인 2010년 10월~2011년 3월 분 1230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전반적인 치안이나 경제사정이 미약하게나마 좋아지고 친정부세력이나 아프간 군경의 규모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헬만드 지역과 칸다하르 지역은 여전히 유혈사태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7월 7일 캐나다군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철군하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슬슬 발을 빼려 하는 분위기니 미국만 환장할 듯.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은 한국에게도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바 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난지 몇년 지나서 미군이 고달퍼하던 시기였기에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고 이라크 전쟁 때와 달리 국내 언론에서도 몇몇 언론이나 작게 언급할뿐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일부 파병 지지자들은 산악전이 많은 북한에 대비하고자 산악전 실전 경험을 위하여 전투병을 투입하자는 의견도 냈으나 무시당했다. 일단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4계절을 빼면 북한과 비슷한 자연조건을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가 엄청났고 군 내부에서도 거론할 것도 없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게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온 채수문 중령은 평화유지군 자체는 필요하다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전투병 파병은 무척 부정적으로 봤는데, 전투병 파병은 너무나도 한국군에게 도움이 안된다. 탈레반이 숨어서 활약하는 산지는 오로지 헬리콥터나 의존해야 하는데[40] 한국으로서는 미군처럼 종일 헬리콥터만 타고 순찰, 전투를 하기도 벅차다며 수렁같은 전쟁에 빠져들기에 전투병 파병은 한국 경제까지 엄청난 손실이 갈 게 뻔했다. 산악전 경험이라고 하지만 그 필요 군비에 대하여 정계나 군도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극히 일부 주장이나 밀리터리 매니아 정도 의견으로 작게 거론되었을 뿐. 게다가 이 산악전 경험에 대해서도 의문시하거나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는데 자연 조건이 비슷하다고 해도 북한과 차원이 다른 2~6천미터 산들이 가득한 힌두쿠시 산맥 말고도 산지가 엄청난 아프가니스탄에서 북한을 대비한다는 건 한마디로 혹한기 훈련한다며 히말라야로 파병해 훈련하자는 거랑 차이가 뭐냐는 의견도 많았다.

3.1. 기묘한 침묵

이라크 전쟁은 명분이 매우 부족했고, 조지 W. 부시의 독단 및 정보조작으로 개전한 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개전에 대한 명분도 있었고, 개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시를 극딜한 오바마 행정부조차 이라크에서는 철군하면서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계속한다는 입장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전황 악화의 책임은 부시 정부와 공유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명분있게 철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오바마도 기회를 놓쳐버렸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을 공격할 좋은 구실이 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과는 달리, 공화당-민주당 모두 마땅한 출구전략이 없어 아프가니스탄 전쟁 책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4. 기타

탈레반이 이기건 현 아프간 정부군이 승리하건, 아프가니스탄은 장기적으로는 탈레반 치하와 비슷하거나 그와 거의 같은 수준의 꽉 막힌 원리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원리주의와 파슈툰족의 인습에 깊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젠 미국에서도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날이 힘을 잃고 있다. 원흉인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군이 사살하는데 성공하자 미국에서 이제 전쟁은 끝난 셈이다,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파병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라는 의견이 많이 늘어났으니 말 다했다.

전쟁 당시에 미군과 싸운 것은 탈레반, 알 카에다만이 아닌 우즈베키스탄, 체첸 같은 타 이슬람 국가에서 지원 온 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ISIL 도래 전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네트워크 사이에서는 서로간에 돕는 모습이 있었던 것(관련 기사). 체첸인의 경우 CIA SAD 소속 요원의 회고록으로도 그 존재가 증언되었다.번역본[41]

최근 야슈라프 가니(페르시아어: اشرف غني‎) 현(2018년 기준) 아프간 대통령이 개혁을 천명했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들을 차근차근 시행중이며, 탈레반의 테러 공격 방해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가는 아프간 국민들이 상당한 숫자가 되는 등, 그렇게 아프간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고 전망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담으로 미국 마약 단속국(DEA)도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의 반이 넘는 아편 및 헤로인의 생산지이고[42], 마약 판매 자금이 탈레반과 IS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과 아프간 군경도 마약 시설을 파괴하여 탈레반과 IS의 돈줄을 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과는 무척 엉망인데 2017년 미국과 유엔 공동 조사를 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양귀지 재배는 오히려 5년전보다 무려 87%가 늘어나 마약 근절은 커녕 더 확대되었다는 것만 입증되었다.

5. 사건 사고

여느 전장이 그렇듯이 미군들이 민간인에게 가한 가혹행위와 학살 사건이 터졌는데, 2010년에는 미군이 그룹을 이루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 다닌 킬 팀 사건이 벌어져 미군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2012년 1월에는 네 명의 미국 해병대원들이 전사한 탈레반 병사 세 명의 시체에 소변을 갈기는 동영상이 폭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일로 중동권을 비롯해 미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매우 커졌는데, 사실 미국인들조차도 "명예를 중요시 한다는 미 해병대가 적군 시체를 모독하다니!" 하고 굉장한 충격에 빠진 반응이었다. 결국 해당 해병대원들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1년 금고 또는 이등병 강등 후 불명예 전역과 같은 처분을 받고 군대에서 쫓겨났다.

2012년 2월, 미군이 "실수로"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쓰레기장에서 소각한 것을 아프가니스탄 측이 발견,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을 더욱 꼬아 놓았다. 초반에는 미군의 반응이 '이슬람 과격 저서들을 불태웠더니만 코란이 있더라... 그래서 뭐 대수냐?' 이랬다가 반발과 시위가 넘치고 미군 2명이 사살당하자 부랴부랴 책임자인 장교를 미국으로 전출시켰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는 미군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빚은 현지 주민과의 마찰을 다시 걱정해야 할 지경. 버락 오바마까지 나서서 사과했으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고려하면. 이런 종류의 전쟁이 대체로 그렇듯이, 외국군이 현지민과 사이가 나빠지면 거의 전쟁은 끝난 셈이다.[43] 미군으로서는 결정적 실책을 범한 셈. 하지만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고의적으로 한 행위도 아니고 작업과정에서 소각된 것에 대해서 살인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응한다는거 자체가 애초에 해당 지역 무슬림들이 가진 극단주의와 이기적 병폐문제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11일에는 미군 병사가 아프간 마을을 돌며 비무장 민간인 열여섯 명을 사살한 칸다하르 학살 사건이 벌어져 반미감정이 더 거세졌다. 피해자 중에는 두 살짜리 아기까지 있어서, 아기 부모가 '우리 아기가 탈레반이냐?'라며 울부짖으며 분노하는 인터뷰 영상이 전 세계에 퍼졌다. 원래는 성실하고 바른 군인이였다는데, 이 때문에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인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사회와 영구 격리. 미국 측은 피해 보상금을 내놓고 민심 달래기를 하고 있지만 별 효과는 없다. 애초에 이 사건이 터지기 1년전에 있었던 킬 팀 사건과도 마찬가지로 너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종신형이 아니라 사형을 시켜야 마땅하다는 것.

그리고 위에 나온 2012년 4월 카불 동시 테러에 미군들은 아프간 시민들의 돌팔매질을 피해야하는 상황에 처하여 미국 극우파들도 민심이 떠난 자리에 아무리 미국이 열심히 해봐야 반미만 거세지는 현실에 고민 중이다. 존 매케인이 철군 반대를 인터뷰했지만 기자에게 "그럼 철군 말고 대체 뭐 뾰족한 방법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을 못했다. 아니 그 방법이라는 게 없을 테니까.

미군은 자기들과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민정책을 끝내 주게 못하는 걸로 유명하니 미군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감은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며,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라는 미국식 사고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군 한 명이 민간인에게 잘못하면 이 일이 오직 그 미군 한 명에 국한된 문제라 생각하고 처리해버리는데, 문제는 이슬람 문화권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개개인의 차이가 아니라 '미군들' 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다른 판단이 서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미군의 공식 대응이 '한 개인이 저지른 사건' 수준에 머무르고, 이게 문화적 인식의 차이로 피해자 측에서는 점령군의 오만한 행위로 싸잡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미군의 대민정책 실패의 사례로 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모두 초기에 미군 병사들이 일으킨 문제들을 미군 당국이 '한 병사가 사고친 것으로 '미군의 이름과는 무관한 개인 단위의 사고'로 취급하다 반미감정이 엄청나게 거세진 케이스다. 단순한 사고로만 치부하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은 우리나라의 '여중생 장갑차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군이나 미국만 이런다고도 할 수도 없다. 과거 영국이나 소련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을 했을지언정 비슷한 문제로 반감을 얻어 게릴라전으로 시달리던 문제를 겪었으며 이런 사고에 대하여 미국처럼 한 개인이 저지른 일 수준으로 우습게 보며 대하다가 똑같은 분노와 저항을 얻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 대다수가 자국 문화 위주로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려다가 나중에 된통당하고 반감을 얻었던 것처럼 강자라서 남을 이해할 거 없다는 사고방식은 어디서건 흔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유독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미국의 대 아랍권 정책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다른 전쟁들보다도 이런 무지를 더 심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비참하고 한심한 인식을 가졌을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의 미국보다도 타국 문화 전문가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21세기 미국이 더! ~~그렇게 막장으로 보이는 20세기 초중반의 미군 군정 사령부들이 이 시기 미군과 비교하면 요순으로 보일정도.

원래 제국주의적 열강 국제 정치라는게 지들 민족만 세상에서 선택 받은 민족인양 아는 오만한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약소국의 '열등인종' 상대로 똥 싸는게 본질이라며 시니컬한 관점에서 봐도 현대 미국의 반지성주의적 대외 정책 실패는 특출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같은 열강들이 코 깨지는 사태로 일반화하기엔 똑같은 개삽질을 했어도 소련의 삽질은 소련군이 철군하고도 공산 아프간 정부가 6년이나 더 갈만큼 그나마 성과도 더 있었는데, 이때는 인터넷이고 NSA고 싱크 탱크고 현대 미국이 동원 가능한 어어어엄청난 정보 자산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소련 자국 내에서 유학하던 현지 좌익 몇명 챙겨 만든 공산 괴뢰 정부가 21세기의 온갖 엄청난 기술, 제도적 발전의 정점에 있다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계속 실패하는 '평화 전략'보다 차라리 더 오래 갔다는 걸 보고 뭐라 해야할까?

6. 매체에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 게임 메달 오브 아너(2010)는 아프간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탈레반을 선택해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난을 받았고 결국 탈레반이라는 명칭은 못쓰게 되었다.
  •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아프간은 게임 스펙 옵스: 더 라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제33차량화보병대대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다가, 두바이 사태가 터지자 대대장 콘래드 대령의 독단적 결정을 따라 두바이로 진입한 부대이다. 33대대의 대대장인 존 콘래드 대령은 카불에서 주인공 워커를 구해준 적이 있는 인물로, 명예 훈장도 받을 정도로 유능하고 인망 있는 인물이었으나 아프간에서 벌어진 한 전투에서 처참히 패배하곤 PTSD를 얻게 되었다. 그는 이로 인해 자신의 패배를 설욕하는 데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었고, 결국 두바이행을 결정하게 된다.

[1] '너희들은 결국 떠날 자들이다. 우리는 그 때 까지 버티면 그만이다' . 섬멸전을 수행하지 못하는 점령전에서 무기와 화력, 기술력의 우세가 정신력과 지구전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모순을 드러낸 말. 비전면장기전에서 전쟁수행이 섬멸양상이 되면 자칫 인종학살이 되기 때문이다. 해당 전역에서 미국이 보유한 명분은 거기 미치지 못한다는 것.[2] 조금만 더 있으면 9•11테러가 일어난 뒤에 태어난 미국의 청년들이 아프간 전장을 뛰게 된다.[3] 탈레반, 또는 이들의 지지세력인 파슈툰족에 반대하는 부족들이 결성하여 세운 단체다.[4] 커티스 르메이 전 미국 공참총장이 한 말은 아니고,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 고위 정보 당국자에게 건넨 말이라고 한다. #기사. 참고로 '부장관(Deputy Secretary of State)'은 미 국무부 직제 상 장관과 차관 사이에 있는 직책이다.[5] 단 이 시기까지 미군은 아프간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고 북부동맹을 지원하여 특수전부대 위주로만 작전을 벌였다. 산악 지대에서 탈레반의 게릴라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6] 나중에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되는 하미드 카르자이는 왕정복고파로서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있었고, 칸다하르 점령에 큰 역할을 했다.[7] 중부군사령부에서는 10산악사단의 증원배치를 요구했었으나 당연하게 럼스펄드는 퍽유를 날려주셨다.[8] 참고로 82공수사단 2여단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동원되어 북쪽에서 쿠르드 족을 도와 이라크군을 견제하는 역활을 한다.[9] 사실 탈레반 측도 몇몇 열성분자들을 빼면 주민들이 실질적으로는 자기들을 적극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지,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10] 알카에다는 테러집단과 무자헤딘 집단 두 종류로 나뉘는데 테러집단은 9.11 이후 미국의 추적으로 결국 와해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무자헤딘 집단은 건재했다. 나중에 알카에다는 아예 테러는 서방 내 무슬림 출신 불만분자들에게 테러 수법을 가르쳐 주고, 결정은 알아서 하게 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무자헤딘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11] 대표적인 전투로는 Mountain Thrust, Mountain Fury 작전이 있다.[12] 이라크 전쟁,막장 전후처리,지원하던 아프간 정부군도 개막장.[13] 애당초 제대로 된 군 조직이 없던 나라에 이 정도 기간만으로 군대가 자리 잡을 수 있을리가 없다. 당장 이라크도 군대 해체 후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다.[14] 이 수치는 5만명이 전사한 월남전에 비해서는 적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미군의 방탄복과 방탄장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음을 생각할때 결코 무시못할 수치이다. 게다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중인 미군 숫자 자체가 2010년대 초 10만 명이던 시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6-7만명. 이라크전 종결 덕분에 병력이 늘어나기 전에는 3-4만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 미군은 54만명이 주둔했고 그 중 다수가 오합지졸이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전투병력이었는데, 현재 미군은 전투병력이 오히려 소수이므로 비율로 따지면 베트남보다 낫다고 하기도 뭐한 상황. 게다가 미군의 발달된 "의술" 로 예전이면 전사였겠지만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식물인간 상태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중상자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소련군은 10년간 15,000명이 전사했으나 후반에야 수만~10만 명대의 군대를 동원한 미군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10만 명 안팎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실제 전장에서의 위험도나 인명 손실의 차이는 베트남 전쟁과 크지 않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로 베트남 전에서 미군 전사자는 5만 8천명이었고 북 베트남군 전사자는 85만이므로 전사자 비율은 1:14.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선 미군 전사자는 2300명이고 알카에다/텔레반 반군 전사자는 4만명. (미군이 철군한 2014년까지) 여기에 이라크 전쟁 미군 전사자 4500명과 이라크 반군 전사자 최대치 3만 7천명까지 더하면 6800명 : 7만 7000명, 1:11이 됨으므로 인명 손실률은 베트남 전쟁보다도 더 심해진다. 의외로 당시 소련군은 현재 미군과 비슷한 특수부대 중심의 작전으로 현재 탈레반보다 훨씬 강력했던 무자헤딘에 잘 맞서 싸운 셈.[15] 다만 이는 미군의 사기를 고려한 페이크일 수도 있다. 이런류의 의도적인 발표는 군사관련 발표에서 흔한 것이다.[16] 그런데 탈레반 포로 다섯명과 교환되는 내용은 2014년 말에 방송되었다.[17] 단 극우화에 대해서는 주변 동맹국들의 입장을 감안하여 반대한다.[18] 아프간 정부군이 탈환했다고는 발표하고 있지만, 서방의 분석가들은 탈레반의 게릴라전 전략상 적의 화력이 집중되기 전에 그저 물러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정부군은 승리한게 아니라 탈레반이 물러난 곳을 그저 재점령 했을 뿐이라는것. 또한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던 미군이 국경없는 의사회를 오폭하여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증가했기 때문에 탈레반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정치적 성과도 얻었다.[19] 예를 들어 법률로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를 포교하는 것은 금지지만, 미국의 눈치를 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입국을 눈감아주고 있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하면 사형이지만, 역시 미국의 눈치를 봐서 정신병자라는 핑계를 대며 국외 추방하고, 이러다가 결국 한국에서 현지사정을 전혀 모르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가서 샘물교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20] 바로 채수문 중령이 쓴 책자에서도 이런 사례가 나온다. 미국 측 주도로 가진 아프간 안정정책 회의가 있었는데 여기 나온 각 군벌 지도자들은 돈달라 이 소리만 하여 평화유지군 소속 간부들은 미국에게 구걸하러 온 거지들 회의냐?라고 어이없어 했다. 미국으로선 이 돈벌레들은 이가 갈리지만 그렇다고 이들과 적대하면 아프간에서 이들이 탈레반과 합쳐 반격하는 일이 터질게 뻔하니 그 미국이 구걸을 들어줘야 했다.[21] 2009년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난동으로 인해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프간 탈레반도 이 사실을 잘 아는지 자신들은 파키스탄 탈레반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22] 다만 이 사람이 미국의 원조금액을 엄청나게 빼돌렸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도피에 성공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매우 잘먹고 잘살 것이다. 나지불라 같은 경우는 종주국 소련이 망해버렸고 대부분의 국제사회의 나라들이 소련군, 친소련 정부군과의 전쟁, 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무자헤딘 반정부군 세력들을 정식 정부로 승인하고 소련이 세운 카르말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나지불라 정권을 자주성, 정통성이 없는 괴뢰정권, 속국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망명을 할 나라가 없었다는 불운이 있었다.[23]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선은 부정선거 시비에 휩쓸려 개표 연기와 재검표가 반복되었다.[24] 개입시켰다는 진짜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아랍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서방인들에 대한 것처럼 단순한 종교적 증오 뿐 아니라 인간적 증오다. 그리고 설사 이 모든것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현 영토보다 넓은 지역을 원활하게 통치할수가 없다. 현상유지는 매우 잘할수 있겠으나 그 이상의 팽창은 절대적으로 무리라는 말.[25] 최근 유럽 쪽으로 다시 관심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26] 물론 인도의 반발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나, 인도 입장에서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과 말이 세속정부지 사실상 탈레반과 사고방식에 차이가 거의 없는 파키스탄을 그냥 놔두느니 이란이 장악하게 하는 것이 이익이다. 핵무기가 미치광이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넘어가는 건 막아야 하니까.[27] 1959년은 미국 정부가 군사고문단 남베트남에 파병 했던 시점이다. 참고로 정규군은 1965년 3월 다낭항을 통해서 베트남에 상륙했다.[28] 한편 북한에 대해 트럼프는 김정은이 괌에 대한 "포위공격"을 취소한 것에 대해 북한이 현명한 결정을 했다며 긴장을 낮추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29] 시리아, 이라크에 집중되던 이목이 점차 상황이 정리되면서 아프간과 쿠르드 족에게 몰리는 모양새이다.[30] 사실 아프간 전쟁처럼 전략 자체가 잘못된 상황에서 아무리 압도적인 전술적 승리를 거두어도 이를 뒤집을 수 없다. 베트남 전에서 베트콩이 미군을 상대로 전술적 승리를 거둔 전투는 거의 없다. 미군은 전투마다 압도적인 승리를 했으나 결국 베트남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전술적 승리는 전략적 실책을 만회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전략적 성과 또한 장기적인 정치적 우세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극명한 예다.[31] SBS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미군 들어오던 날에 웰컴이라고 미군을 웃으며 대했소! 하지만 그들은 점령군, 지배자, 침략자였을 뿐이었지!" 라고 이들이 직접 밝혔다.[32] C4I체계가 원활한 미군도 이건 마찬가지이다.[33] 교육을 받았으면 장교. 글을 읽을줄 알면 부사관. 나머지는 병사 이렇게 수준을 뽑고 있는 상황이다. 창설초기나 지금이나 거의 다를게 없다.[34] 우리처럼 표준어가 있는게 아니라 워낙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글 교육이 어려운게 사실이다.[35] 공격하는 탈레반 소속이 자기네 부족일원이면 적극성도 안보일 정도이니 말 다한셈.[36] 역사 및 지리적인 요건도 큰 몫을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 항목만 봐도 척박한 산지이기에 이동도 어려운 터에 꽉 막힌 이슬람 골수파로 대대로 살아오던 결과가 컸다. 그나마 이동이 편한 대도시는 소련의 지배 및 이전 서구권 영향을 받아 좀 개방이 된 편이지만 다수 지역이 이렇다. 김혜자가 쓴 <꽃으로 때리지마라>를 보면 미군이 아프간 산지를 둘러보다가 정말로 오랫동안 이방인이 오지 않은 마을까지 발견했는데 명예살인은 기본이고 그야말로 꽉 막힌 지역이라서 이방인이 그 마을 여자에게 말만 걸었다하면 즉시 여자나 이방인인 미군이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였다고...[37] 심지어 인기 비디오 격투게임 시리즈인 철권 최신판에 자국민 캐릭터 샤힌이 등장했을때 신문에서 대서특필을 할 정도다.[38] 아프간 최다 종족인 파슈툰족은 파키스탄 서북부에도 많이 살고 있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치안 막장 국가 중 하나다.[39]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이런 대규모 전쟁을 치를 때는 징병제 부활이 일시적으로나마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시위와 조국 방위를 위한 것도 아닌데 죽으러 못가겠다며 징병 거부가 엄청났고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정계가 시도를 하지도 못한다.[40]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이자 만화가인 프랑스인 에마뉘엘 기베르와 프레데릭 르메르시에가 1980년대 소련과 전쟁중이던 아프가니스탄 산악을 의료차 들렀을 때를 그린 평화의 사진가(한국에서는 세미콜론을 통해 정발되었다)를 보면 산을 1주일은 계속 걷고 걷어서 다리에 물집 생기고 신발이 구멍나고 몸도 지쳐버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물품을 나르던 말이나 당나귀가 지쳐 쓰러져 죽은 것도 여러번. 현지인들은 하두 많이 겪어서 남자들도 대충 신발을 꿰맬 바늘과 실을 준비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곳도 그냥 걸어다니며 빵을 팔던 상인도 있었다고.....지은이들도 그 빵장수 사진 찍으며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먹고 산다고 느낌을 썼다...그렇게 그렇게 어렵게 마을로 가면서 의료 봉사를 하고 뭐 그랬는데 더 선배인 이들이 말하길 '그래도 이번은 가까운 편이야. 더한 곳에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아.'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가 이런 곳이다.[41] 출처 : Schroen, Gary, First In: An Insider's Account of How the CIA Spearheaded the War on Terror in Afghanistan, Presidio Press, 2005, ch.41(pp.279-284)[42] 무려 85%나 되며 그중에서 4%가 미국으로 유입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마약 단속국도 묵과할수가 없는 상황이다.[43] 모택동이 남긴 유명한 말이 한가지 있는데 "게릴라는 민중이라는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라는 거다. 즉, 민중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서 게릴라도 힘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미 민중의 마음이 미군을 떠난 상황이다.[44] 엔딩컷에서 미군 상층부에서는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이들은 3개월 안에 기적적으로 해냈다고 나온다.[45] 중동, 페르시아 만,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특수작전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냥 이슬람권 지역 담당 전문 부대라고 보면 될 듯.[46] 그린베레의 부대 단위 가운데 하나. A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Alpha , 줄여서 SFOD-A, ODA 또는 A-team)는 지휘관(팀장)인 대위를 비롯한 12명의 팀원으로 편성되어 실제 작전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