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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군대. 1920년에 튀르키예 공화국 탄생과 동시에 창설되었으며 오스만 제국군을 계승하고 있다.튀르키예는 유럽 기준으로든 서아시아 기준으로든 이란, 이스라엘과 더불어 주요 군사강국이며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서 미국 다음으로 병력 규모가 큰 나라다. 특히 세계 10위권내에 들 정도로 강한 육군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튀르키예가 냉전 시대에 남동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의 대공산권 최전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군대에 비해 정작 경제력이 중진국 수준으로 좋지 않다 보니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유지하며 장비 수준이 좋지 않은 게 단점이다. 특히 튀르키예의 경제력이 비교적 취약하고 장비도 노후화된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
징병제로 대규모의 육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병력 규모는 50만명이다. 제복군인 최선임 총참모장도 육군 출신들이 기용된다. 특히 튀르키예는 육군에 대규모를 투자하고 있다. 튀르키예군은 이란군, 이스라엘군, 사우디군[3]과 함께 서아시아의 군사강국이다.
튀르키예가 좋지 못한 경제력에도 이렇게 강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튀르키예의 안보 상황과 관련이 있다. 튀르키예 주변에 있는 국가를 나열하면 러시아, 시리아, 이란, 이라크, 조지아, 그리스가 있고 약간 떨어진 곳을 포함하면 레바논, 이스라엘까지 있다. 즉, 냉전 시기에는 소련,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국경을 맞댄 그리스와는 에게 해의 영유권을 두고 언제 전쟁해도 이상하지 않은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냉전 이후에도 그리스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며 옆 국가 시리아, 이라크는 혼란스럽고 튀르키예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며 조지아는 러시아와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다가 전쟁까지 했던지라 주변 정세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튀르키예군은 대부분의 군사 장비 수준이[4] 한국군의 1990년대 수준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튀르키예 국방부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어 F-5는 곡예비행대와 LIFT 부대에 배치된 소수를 제외하고 퇴역시켰고 F-4E 48기를 대폭 개량하여 운용하는 등 현대화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붓고 F-4E와 F-16 일부를 대체할 F-35A 도입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나 S-400 대공미사일 도입과 관련하여 미국과 마찰을 겪다가 튀르키예 정부가 미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S-400을 도입하자 반발한 미국에서 F-35A를 판매 취소함으로써 튀르키예군은 최종적으로 퇴출되었다.
일부에서는 최근 몇 년의 튀르키예군 신장비 개발이나 구매라는 단편만 보고 튀르키예의 국방력이나 예산 집행에 감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금이 딱 튀르키예군이 무기를 교체하는 시점이라[5] 이러한 면이 부각되는 것일 뿐이다. 에르도안이 이끄는 현 튀르키예 정부는 육해공군 전반에 걸쳐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비증강안을 내놓았으나 정작 튀르키예의 경제력이나[6] 기술력, 특히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이후의 군내부의 기술관료들이 대거 숙청되었으며 인권탄압과 ISIL 및 시리아 등의 군사개입, 쿠르드 무장단체들과의 교전에 따른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이러한 계획안이 실행될지는 의문점이 남아있다.
2. 수뇌부
통수권자 | 국방장관 | 총참모장 |
총참모장 | ||
튀르키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훌루시 아카르 | 야샤르 귈러 |
육군사령관 | 해군사령관 | 공군사령관 | 헌병사령관 | 해안경비대사령관 |
육군사령관 | 해군사령관 | 공군사령관 | 헌병사령관 | 해안경비대사령관 |
우미트 둔다쉬 | 아드난 오즈발 | 하산 퀴췩아크위즈 | 아리프 체틴 | 뷔렌트 올자 |
3. 역사
3.1. 오스만 제국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군 문서 참고하십시오.3.2. 제1차 세계 대전과 튀르키예 공화국 설립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잃은 영토를 되찾아보겠다고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삼국동맹국에 끼었다. 튀르키예 육군은 사실 러시아군과의 전적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갈리폴리 전투에서는 상륙한 영국군 및 영연방 연합군-프랑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고, 영국 해군 전함을 6척이나 격침시키기도 했다. 이때 작전을 입안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작전 실패 책임을 지고 해군장관에서 물러났고 이 승리로 튀르키예군 지휘관이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7]러시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러시아에게 엄청난 영토를 할양받았지만, 삼국동맹국이 패하면서 모두 잃어버리고 오스만 제국은 해체된다. 이후 케말 아타튀르크의 활약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영토확장의 야욕[8]을 드러내며 침공했고,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발발한다. 아타튀르크는 급히 해체된 군을 긁어모아 침략에 대항했고, 그리스군을 격파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이 추축국에 합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9] 그러나 튀르키예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까지 중립을 고수했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10] 한편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당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점령한 옛 오스만 제국 영토에 대해서도 협상을 벌였는데, 아랍인이 다수인 시리아, 이라크 지역은 포기하되 그중에서도 키프로스와 튀르키예인, 쿠르드인이 다수인 모술 지역(오늘날 이라크령 쿠르드 자치구)에 대해서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고유영토임을 인정받았지만 아타튀르크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영국과 맞설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이 지역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쿠르드인 등 소수민족들이 튀르키예 민족국가를 형성하는데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차피 장기간의 전쟁으로 튀르키예도 사정이 나쁘다보니 더이상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다.
3.3. 냉전
냉전 시기에는 나토 동부의 핵심 군사력을 맡아 소련을 견제하는 최선봉이었다.[1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친미로 기울면서 소련의 가상적국이 되었다. 유사시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봉쇄하여 소련 해군의 흑해 함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위치였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소련은 튀르키예에 설치한 미군의 미사일 기지의 철수를 합의조건으로 삼기도 했다.[12]튀르키예군은 6.25 전쟁에 전투 병력을 파병했고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파병의 배경에는 소련의 위협이 있었다. 당대 소련은 튀르키예에 있어 최대의 위협이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에 가입을 희망했지만 초기 회원국들은 전부 기독교(천주교/개신교) 문화권이었던 만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의 가입을 거부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 참전이 결정되었고 튀르키예는 파병을 대가로 1952년 나토 회원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튀르키예군은 참전 유엔군 중에서도 용맹을 떨쳤고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총검 돌격을 시행, 엄청난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금양장리 전투는 튀르키예군의 대표적인 전과 중 하나이며 전쟁 중에도 보육원을 만들어 전쟁고아들을 볼보기도 했다. 참고로 이때 파병된 튀르키예군의 상당수는 쿠르드족 출신이었다는 설도 있다.[13] 많은 쿠르드족들이 참전한 이유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은 파병군을 확충하기 위해 직업군인 중 희망자와 복무중인 현역장병 가운데 복무기간을 1년 단축하고 추가로 위험수당 및 파견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각 부대마다 희망자를 뽑아 한국으로 보냈다. 이때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인 중부와 동부지역의 병사들이 제대해도 딱히 일은 없고, 군대에서 한 몫 잡자는 심정으로 많이 지원했고 실제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대부분의 고향은 중부지방과 남동부지방이다. 그리고 남동부지방 인구의 상당수가 쿠르드인이다. 하지만 전사자 대부분의 출신지가 튀르키예인의 인구비율이 월등히 높은 서부지방이며 관련해외자료 또한 희박하기에 진위여부에 문제가 있다.[14]
일각에서는 튀르키예군이 한국전쟁에서
1974년 그리스 군부가 키프로스를 그리스에 합병하고자 군대를 파병하면서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 주민과 충돌하여 벌어진 키프로스 전쟁에서 키프로스 섬 북부를 점령하고 괴뢰정권(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세운 역사가 있다. 이는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되었으나, 아직도 튀르키예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면서 괴뢰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소련과 국경을 맞대는 최전방으로써 미국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때 튀르키예는 M48 전차 3,008대와 M47 전차 1,000대, M113 장갑차 3,000여대를 운용하는 육군 대국이었다. 당시 한국군보다 월등히 우수한 전투력을 지녔으며 공군력의 경우에도 F-102 요격기 50여대와 다수의 F-104 요격기와 F-5 전투기 200여대, 그리고 1974년 한국군보다 한 발 앞서서 F-4 전폭기 중 최신형 F-4E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군보다 양과 질에서 우수했던 군대였지만 대부분이 미국과 서방의 전폭적인 원조에 의존했던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이 자체적으로 튼튼한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시작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누리는 동안 튀르키예의 군사정권은 낙후된 산업구조와 부패한 정치체계를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군사력의 차이도 뒤집어지게 된다.[16]
3.4. 쿠데타
튀르키예군은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세속주의 수호자 노릇을 했으며 정부가 종교적으로 문제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렇게 튀르키예군이 세속주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스만 시절 이슬람교에 경도되었다가 나라가 근대화에 뒤져서 유럽과 러시아한테 얻어맞고 살다가 망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튀르키예 군부는 쿠데타 이후 세속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긴 후 복귀한다. 1960년, 1971년, 1980년, 1983년에는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했고, 1997~1998년에는 군부가 경고만 먹고 물러섰으나 해외에선 이것도 쿠데타급의 준쿠데타로 규정하고 있다.2003년 에르도안 집권 이후에도 2007년에 정의개발당 소속이자 당시 외교부 장관이던 압둘라 귈이 튀르키예 대통령으로 당선 될 상황에 처하자, 튀르키예군은 튀르키예군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압둘라 귈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글을 올리면서 경고했다.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당시 튀르키예군 참모총장이던 야사르 뷰우카느트는 에르도안 총리와 두시간동안 면담을 해야했다. 튀르키예군의 쿠데타를 이슬람 근본주의 탓만 할 수도 없는게 군부역시 순수한 의도로만 쿠데타를 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민간정부가 자신들의 세력을 억누르려고 하기에 뒤엎는 다른나라 막장 군부들이나 하는 짓과 비슷한 짓도 많이 했다. 1960년 쿠데타로 축출시키고 기어코 교수형까지 시킨 아드난 멘델레스 총리가 반군부 움직임을 보였다가 당한 좋은 예이다. 결국 80년대 와서 멘델레스는 복권되었다. 또한 1980년 케난 에브렌(Kenan Evren) 장군의 쿠데타 당시에 형식적으로 극좌, 극우정당 둘을 강제해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세속주의 수호를 변명삼아 수많은 자유주의자들과 군부비난자들을 체포해 고문 및 구금하기도 했다. 튀르키예의 작가인 아지즈 네신도 이 당시에 군부에게 밉보여서 유배되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 역시 "다른 색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튀르키예군의 쿠데타로 인해서 사람들이 잡혀가고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그만큼 튀르키예에서 군부 집중권력은 심각했으며, 여러 기업 및 경제적 특권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튀르키예를 군부 국가라고 유럽 나라들이 호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곳도 민간정부의 입김이 세지는 편이며 2010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17] 출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ip Erdoğan)[18] 총리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군인들을 강제예편했는데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 심지어 군부에서 육군사령관 후임을 정해서 올렸는데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반려된적도 있다. 결국 정부의 의중에 부합하는 사람이 후임 사령관이 되었고 미국대사는 이례적으로 튀르키예 정부의 군부인사를 지지한다는 공개 발언을 하였다. 20세기 후반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2011년 현지 신문에 실렸는데, 연 2회 개최되는 정부와 군부의 협의회시 2010년까지는 총리와 참모총장이 같이 상석에 착석했으나 2011년부터는 총리만이 상석에 앉은 사진을 대조하여 1면에 실음으로써, 튀르키예의 문민통제로의 변화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군부는 이슬람교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집권여당 정의개발당에 반해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튀르키예인들도 케난 에브렌 시절의 군부의 병크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당시 군부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했던 탓이 크다. 언론에서는 군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정의개발당의 약 10년에 걸친 장기집권이 민간정부 우위가 강화되고 있는 한 원인으로 보인다. 정의개발당은 2001년 창당, 2002년 단독집권 이래 꾸준히 50~60%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며 3선째 집권하고 있는지라 아무리 튀르키예 군부가 막강해도 함부로 날려버리기엔 눈치보인다. 또한 정의개발당의 전신인 복지당이 정권을 잡았다가 군부를 위시한 세속주의 세력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정당해산을 시킨적이 있어서 정의개발당도 군부를 위축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있다. 사실상 군부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되어 내각으로 전해지는 기구였던 국가안보위원회[19]를 개편하여 장성급이 맡던 사무총장을 민간인으로 바꾸고 또한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요청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에르게네콘(Ergenekon)'[20]이라는 반정부 쿠데타 모의 단체에 대한 존재 의혹 및 수사가 가열화되면서 튀르키예군 수뇌부가 크게 흔들리고있다. 이 사건은 2007년 이스탄불의 한 주택에서 수류탄 27발이 발견된데서 시작되었는데, 수사결과 검찰은 정의개발당 집권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군부 및 친 군부 기득권층들로 이루어진 에르게네콘이라는 반정부 단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튀르키예 검찰 발표에 따르면, '에르게네콘'이라는 단체가 이슬람사원을 폭파하고 그리스 공군이 튀르키예 전투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혼란과 소요를 일으켜서 정의개발당 정권을 위기에 무능한 정권으로 보이도록 한 뒤, 전복시키려 했다고한다. 이 쿠데타 계획은 이른바 '대형해머작전'이라하며, 쿠데타계획이 담긴 문서가 실제로 확인되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장. 반면 피고 중 한명인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 사령관 등은 보도된 문서는 정기 세미나에서 논의한 가상전쟁시나리오라고 쿠데타 기도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검찰 측에선 수많은 전현직 군장성과 친 군부, 혹은 야당 성향 언론인 등을 에르게네콘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때렸다. 2011년 당시 현역 군장성 365명 중 66명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 중.(…) 전직 합참의장 등 전현직 4성장군들도 예외없이 기소되고 심지어 체포되는 등, 정부측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아무래도 국가 전가전복 혐의가 걸려있다보니 걸려있는 형량도 하나같이 세다. 2013년 3월 19일에 있던 에르게네콘 사건 13차 공판에서 검사측은 주요 연루자 64명은 무려 종신형을, 나머지 96명도 최고 15년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군부 및 세속주의 야당 일파에선 되려 정의개발당이 세속주의 일파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2008년 3월 14일, 세속주의 성향의 알츤카야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튀르키예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으므로 당을 해산하라고 헌법소원을 낸적이 있는데, 결국 헌재는 이 소원을 기각시켰지만 동시에 정의개발당에 들어가는 정당 국고보조금을 반으로 삭감시켰다. 그러니까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 일파에선 에르게네콘 사건이 2008년 헌법소원 사태에 대한 일종의 사법 보복이라는 것.
그리고 보복이고 뭐고를 떠나 근 10년을 집권한 정의개발당이 아예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에르게네콘 사건은 정의개발당의 권력 독점을 위한 반대파 숙청 및 개헌 정국을 만들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정의개발당이 지지율이 높다 하나, 아직 단독 개헌을 이뤄낼 만큼 의석이 충분하진 않기 때문에 지지율 몰이를 할 건수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도 상기에서 언급했듯 튀르키예 현지에선 대체로 일단 튀르키예 군부를 좋게보진 않는지라(...) 정부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은 없는 듯 싶지만, 점점 늘어가는 공공장소 히잡 착용 여성이나 이슬람 교육 및 친이슬람 정책 등 종교화가 가속화되는 상황과 대통령제로 이행할 것을 주장하며 언론, 인터넷을 탄압하는 등 권력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 총리에게 점점 우려를 보내는 시선이 적지않다. 게다가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 총리의 측근들이 부패 수사에 휘말리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총리와 아들이 현금 10억달러 은닉 방법을 상의하는 내용의 녹취파일이 공개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2013년부터 뒤늦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튀르키예 국내에서도 정의개발당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가 발생했다. 다만 이 역시 튀르키예 군부 및 구 기득권층에 대한 지지와는 거리가 먼 상황.[21]
유럽 연합도 지금까지는 튀르키예 군부의 정치개입에 대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반대해왔으므로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에 대해 반민주주의 성향의 지하조직을 소탕하여 문민지배를 확립하는 계기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그러나 검거대상이 군부에서 정부를 비판해오던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에게로 확대되자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수사가 아닌가 하는 튀르키예 국내외의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
2013년 8월 5일 에르게네콘 선고 공판에선 일케르 바시부 전 튀르키예군 총사령부 사령관까지 구속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 외에도 퇴역장성 5명, 퇴역 대령 2명 등 17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퇴역장성 및 언론인, 변호사, 대학총장 등 275명에게 중형을 판결했다. 판결을 앞두고 튀르키예 정부에선 법원일대를 전면봉쇄했지만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서 대대적인 세속주의, 군부 지지 시위가 일어나서 경찰과 충돌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9일 항소심에서 총 275명에 달하는 피고들 중 237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사령관, 하밀 이브라힘 프르트나 전 공군사령관, 외즈덴 외르넥 전 해군사령관, 퇴역 장성 출신인 에르긴 알란 민족주의행동당 의원 등의 군부 주요인사들이 18~20년형을 받았다. 36명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88명은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항소심에서 1심판결을 파기했다.
2013년 12월 정의개발당 에르도안 총리 측근들에 대한 비리수사가 시작되고 총리의 측근이 한 언론에 '비리 수사는 쿠데타를 유발하려는 음모'라고 기고하자(...) 튀르키예군은 홈페이지에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개재했다.
2014년 3월 7일 일케르 바시부 전 튀르키예군 총사령관이 석방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변호인측이 제기한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방법원이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기각했으며 종신형을 선고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석방 이유를 밝혔다. 에르게네콘 사건 자체가 증거없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결정이 튀르키예 헌재에서 나온 것.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결국 2010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고, 2014년 8월 10일 치러진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총리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뽑혀 절대권력을 유지하면서, 문민통제라는 미명 하에 정의개발당 정권에 목줄이 잡힌 튀르키예군의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이 2015년 선거에서 패배, 조금 숨통이 트인듯 하다. 그리고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ISIL이 마침내 튀르키예에서 테러를 일으키자 공식적으로 이들을 조져버리겠다는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ISIL에게서 원유를 구매하는 등 IS에게 우호적이고 잘싸우고 있는 페쉬메르가의 독립을 막으려는 행동이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튀르키예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예측이 강했지만, 2016년 7월 15일 드디어 군부는 에르도안을 몰아내기 위해 튀르키예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재빠르게 튀르키예 TRT와 CNN TURK, 정의개발당 당사, 보스포러스 해협, 광장, 기타 주요 장소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고 튀르키예군 참모총장을 구금하고 성명까지 냈다. 에르도안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 국민들의 힘으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하였다. 쿠데타군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항복하였고 앙카라와 카르스 마르마스 등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하였다. 앙카라에서 소수의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이번 계기로 튀르키예군은 숙청되었고 알레비와 세속주의 장교들은 해임되거나 감옥에 갔다. 에르도안은 귈렌파의 저항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세속주의자와 귈렌파 숙청에 있다.
쿠데타 실패로 튀르키예군은 이번 계기로 문민통제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그러나 튀르키예군의 98%는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가 실패할수밖에 없었고 사실 쿠데타 숙청이 과한 측면이 있어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특히 쿠데타 숙청을 빌미로 에르도안 정부의 인권, 언론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2016년부터 PKK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PKK의 저항이 워낙 거세다보니 튀르키예군도 사상자가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 측은 군인과 경찰,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무엇보다 숙청의 여파로 튀르키예군은 공군의 조종사 부족이 심각해졌으며 주력 전투기인 F-16 조종사를 육성할 교관이 전무하다고 한다. 미국에 교관 4명을 요청했으나 미국이 거절했고 파키스탄 측으로부터 교관 3명을 구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미국의 방해로 어려운 실정이다. 거기다가 1,350명의 공군 조종사 중 680명이나 제거된 상황이라[22]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23] 그래서 튀르키예 정부는 대책으로 민간 항공기 조종사들한테 재입대할 것을 명령했다. (링크) 문제는 이게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데다 튀르키예 공군은 민간 항공사들에 비해 급여가 낮고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3.5. 시리아 내전
평화의 샘 작전 당시 국경을 넘어 시리아 영내로 진입하는 튀르키예군의 BMC 키르피 MRAP |
그간 ISIL의 공세에 튀르키예 국경까지 밀려나던 시리아 쿠르드족 자치정부 로자바가 세력을 회복하면서 유프라테스 강 너머의 만비즈 강을 건너게 되고 북부 시리아를 통일할 기세를 보이자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을 개시하여 자라블루스를 시작으로 알-바브로 공세를 시작했다. 튀르키예군은 현재 러시아와의 협상과정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직접적으로 적대하고 있지는 않으나, 드물게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FSA와 시리아군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고 로자바의 지원세력인 PKK를 견제한다는 이유로 FSA가 시리아민주군을 공격하도록 방조하는 등 실책이 누적되고 있다.[24]
코넷 대전차미사일에 피격되어 격파된 튀르키예군의 레오파르트 2 전차 |
그러나 알-바브 공략에서 튀르키예군은 IS의 반격에 레오파르트 2를 대거 손실하는 등 큰 피해를 입으면서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는 졸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난 쿠데타 미수사건의 대숙청으로 세속주의적인 군 장교단이 대거 잘려나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튀르키예군이 자국군을 투입하는 대신 알레포 일대의 FSA 및 반군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려 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명목상 대외 개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침략이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면 당연히 국내 여론이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국군 피해를 줄이고 추가로 전쟁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시리아 반군을 고용해서 일단 형식적으로는 시리아를 침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전에 개입하는 형태를 취했다. 문제는 이 시리아 보병들의 전투력이나 사기가 형편없었다. 일례로 IS가 자폭장갑차량을 앞세워 돌격을 감행하면 대전차포와 총으로 쏘는 척하다가 얼마 안가 다들 겁먹고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자폭차량들이 기갑대열 곳곳에서 터지면서 삽시간에 전투불능이 되거나 승무원들은 어떻게 살아남아도 기동불능상태가 되었다. 그 뒤로 근접한 IS의 대전차부대원들에게 로켓포 공격을 받고 모조리 리타이어 하는 일이 무한반복되고 있다.
2월 24일경 다에쉬의 퇴각으로 튀르키예군과 FSA는 알-바브의 완전점령을 선포했으나 이미 타이거 대령의 혼성부대가 남쪽에서 튀르키예군의 예상진로를 미리 점령하는 방식으로 차단기동을 해버리면서 사실상 진로가 막혀버렸다.
2016년부터 ISIS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FSA로 튀르키예가 분류한 시리아 난민 지원군이라는 민병대를 지원하는 게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 민병대는 주로 쿠르드 주거지역의 민간인 습격때 모습을 보이는 부대로 튀르키예군에서만 쓰이는 기동차량인 코브라가 다수 목격되었다는 쿠르드 시민보호기동대의 발표가 있었다. 또한 튀르키예군의 사막색 도색을 한 M113 역시 이 친 튀르키예 민병대에서 운용되는 모습이 보인다.
2018년엔 국경 인근 아프린(Afrin) 지역에서 쿠르드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격, 포격을 진행했던 튀르키예군 특수부대가 민간인 학살활동의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중 사살되었다.
2019년 미군이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철수하자 반군 지원과 PKK 토벌을 위해 평화의 샘 작전을 게시하여 시리아 북부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들리브 주에서는 친튀르키예 괴뢰 반군이 장악했으며, 심지어 러시아군은 튀르키예군의 콘보이나 기갑수색대를 직접 폭격하는 강수까지 두며 튀르키예군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시도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공군의 공대지 위협과 공격에 튀르키예 육군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튀르키예 공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당시 쿠데타의 주역이던 공군 조종사들을 숙청해 군대에서 추방하는 바람에 공군 조종사 인원이 매우 부족해졌다.[25] 더 나아가 러시아제 S-400 방공체계 도입을 시행하면서 이에 반발한 미국에 의해 무기금수조치를 받고, F-16 조종사 훈련을 모조리 금지당하고, F-35 프로그램에서 퇴출되는 등, 미국의 미움을 크게 사며 튀르키예 공군은 매우 취약해진 상태가 됐다.
3.6. 제2차 리비아 내전
2020년 1월 2일. 튀르키예 의회가 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안을 승인하였다. 찬성 325대 반대 184로 튀르키예군을 1년 기한으로 리비아에 파병해 벵가지 정부와 교전을 하게 된다. 군사 전문가와 기술팀이 리비아의 합법 정부(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될 것이라 한다.2월에 튀르키예군 2명이 사망했다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밝혔다.#
4. 구성
4.1. 육군
자세한 내용은 튀르키예 육군 문서 참고하십시오.4.2. 해군
자세한 내용은 튀르키예 해군 문서 참고하십시오.4.3. 공군
자세한 내용은 튀르키예 공군 문서 참고하십시오.4.4. 헌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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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복 차림 |
튀르키여의 헌병대 잔다르마(Jandarma)는 오스만 제국 시대, 탄지마트 개혁의 일환으로 1839년 설립되었다. 유럽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설립시기가 빠르며, 이름이나 조직 구조는 프랑스 헌병대에서 따왔다. 도시는 경찰이, 농촌 및 정부기관의 치안은 잔다르마가 담당하는 것 또한 프랑스와 똑같다. 평시에는 내무부 소속으로 국경 경비, 국내 치안 유지, 주요 시설 경비, 교통 단속 등의 임무를 한다. 유사시에는 튀르키예 육군의 지휘하에 들어간다. 잔다르마의 사령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일원이다. 평판은 일반 경찰에 비해 훨씬 더 깨끗하다고. 신고전화번호가 서로 다르므로 튀르키예에서 경찰을 부를때는 두 번호 다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참고로 경찰은 국번없이 155, 헌병은 국번없이 156이다. 2016년 현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와 PKK의 테러로 인해 이들을 도심 한복판에서도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헌병 관할지와 경찰 관할지의 경계점에서 검문검색을 하기도 하고, 대테러임무에 관련해 경찰 혹은 육군과 공동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
튀르키예의 잔다르마에는 27만명 가량의 대병력이 복무중이며, 1,400대가 넘는 장갑차량과 수십 대의 전투헬기까지 보유해서 전투력만으로 사실상 웬만한 주변 중소국의 지상군은 씹어먹고도 남을만 하다. 미국으로 치면 경찰업무를 겸임하는 주방위군 수준. 개인화기는 AKM, M16A1, H&K G3, H&K MP5등등 세계의 유명 화기를 죄다 보유하고있다. IS준동 이후 더욱 근무가 강화되어서 이스탄불이나 앙카라같은 대도시에서는 조별로 소총을 휴대하고 수상한 사람을 곳곳에서 감시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4.5. 해안경비대
5. 기타
육군, 해군, 공군, 헌병대, 해안경비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군과도 교류가 많아서 훈련기 KT-1을 구매하기도 했고, 한국의 K-9 자주곡사포를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으며[26] 현대로템에게 전차 기술을 받아서 알타이 전차를 생산하기도 했다.이렇게 튀르키예군이 한국군과 교류가 잦은 것은 비슷하게 미군의 무기체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비슷하게 육군에 치중하고 있고, 또한 종교적-역사적 이유로 나토계 유럽국가들이 튀르키예와 군사교류를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 때문에 각 유럽국가들은 쿠르드족 탄압에 이용될 수 있는 육군장비에 대한 수출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이래서 한국이 K-9 자주포를 수출하자 유럽의 인권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이스라엘과도 군사교류가 잦은 편이지만 2010년 6월 4일 벌어진 가자지구 구호선 총격사건으로 튀르키예인 9명이 희생당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어 군사협력은 중단되었고 이스라엘은 그리스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리스가 그동안 아랍연맹과 꽤 우호적이라서 종전 튀르키예와 같은 수준까진 아니다. 같은 나토국이지만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앙숙이며 같은 이슬람이지만 아랍연맹과 튀르키예도 사이가 나쁘다.
튀르키예군의 복무 기한은 12개월인데 외국에 취직하거나 3년 이상 외국에 거주할 경우 3주간 출퇴근 복무로 대체해 준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튀르키예 선수들이 다 이런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고졸 이하 학력도 병역이 면제되고 해외노동자에 대해 10000튀르키예 리라(2013년 1월 기준으로 630만원)의 돈을 내면 병역을 면제 해주기도 하며 게이도 병역면제된다.[27] 대학생은 사병으로 복무하면 6달만 복무하며 학사장교로 복무하면 1년을 복무한다. 다만 학사장교는 월급이 나오며 제대할 시기에 정식장교가 되고 싶으면 일정 교육을 받고 준장교로 임명된다. 참고로 일반 사병들의 봉급은 2000년대 중반 이전의 한국군이 그렇듯이 어린이들 용돈 수준(...)이다. 게다가 이렇게 널널해 보이는 튀르키예의 병역제도는 청년층 인구 비중이 높은 튀르키예의 인구구조에 힘입은 면이 있다. 즉, 청년층 인구가 많다보니 입영자원도 많아서 여유있게 징병하는 것이다. 한국도 청년층 인구가 많던 70-80년대에는 현역 입대율이 절반 남짓이었고 대학생은 3~6개월 가량 복무기간을 깎아주기도 했다.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징병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많다 보니까 유럽에서 튀르키예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가 군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이민간 사람이 많아서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식의 유머가 돌아다니거나 튀르키예의 대학입시가 치열한 이유가 남학생들이 군대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나올려고 한다는 웃픈 유머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오스만 제국 시절을 고려하면 세계 최초로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를 창설해 항공기 운용 전담 부대를 운용한 군대다. 공군의 라인업이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F-16, F-4, F-5를 운용해 왔다.
쿠르드족 독립주의자들과 전쟁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가끔씩 튀르키예 육군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 소수민족 탄압국가들이 그렇듯이 튀르키예군도 쿠르드족에 엄청난 인권탄압을 저지르고 민간인에게도 꽤 많은 피해를 끼치는 편이다. 머룬 베레(밤색 베레)라는 특수부대도 보유하고 있는데, 쿠르드 독립세력 체포 및 암살 같은 해외공작도 수행하는 것으로 봐서는 특수부대 겸 특무기관을 겸하는 것 같다.
군부 쿠데타 실패 이후 장교단 대규모 체포로 인해 F-16을 포함한 주요 항공전력 교관이 부족하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한국에 훈련위탁을 요청중이며 미국 측은 이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다.
군장비 현대화 재원 마련 명목으로 1만5000리라(한화로 약 350만원) 정도만 내면 ‘병역 면제’를 해주는 제도를 3개월간 시행한다고 한다(!). 터키, 350만원 내면 ‘병역 면제’ 3개월간 시행 왜? 그 때문에 미필자들이 군 면제 자금을 마련하려고 자동차 등을 급매물로 내놓는 등 ‘급전’ 마련에 다들 분주하다고 한다(...).[28]
흔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상징하는 구호로 알려져 있는 알라후 아크바르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들 때문에 안 좋은 쪽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마찬가지로 이슬람권이면서도 시리아 정부군이나 YPG, 페쉬메르가 등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무슬림들일지라도 전투시에나 환호할 때 '알라후 아크바르'라는 구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튀르키예군만은 예외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6.25전쟁 때에도[29] 그렇고, 현대전에서도 사기증진과 단합을 위해서 전투 전 혹은 전투 중에 단체로 외치기도 한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와는 달리 멀쩡한 지역강국이고 군사강국인 튀르키예군 장병들이 매우 현대적인 첨단 장구류 및 각종 중장비를 갖추고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는 모습을 보는 건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평소에 "알라후 아크바르" 자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보면, 굉장히 어색하고 우스우면서도 원래 알던 극단주의자들과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진다는 게 주로 공통된 평이다. 페쉬메르가나 쿠르드 계열과는 달리 과거 세계 최대 이슬람 제국이자 근본 그 자체였고 지금도 그러한 자존심이 남아있으며 여전히 남동유럽과 서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는 군대 이니만큼 극단주의자들 눈치 안 보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쓰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2023년 첫 비행을 목표로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무인전투기의 세부 성능이 공개됐다.#
6. 튀르키예군의 계급표
장교(Subay)
원수 Mareşal(마레샬) OF-10
대장 Orgeneral(오르게네랄) OF-9 [30]
중장 Korgeneral(코르게네랄) OF-8
소장 Tümgeneral(튐게네랄) OF-7
준장 Tuğgeneral(투으게네랄) OF-6
대령 Albay(알바이) OF-5
중령 Yarbay(야르바이) OF-4
소령 Binbaşı(빈바쉬) OF-3
대위 Yüzbaşı(유즈바쉬) OF-2 [31]
중위 Üsteğmen(위스테으멘) OF-1
소위 Teğmen(테으멘) OF-1
장교후보생 Asteğmen(아스트테으멘) OF-D
부사관(Astsubay)
경력 상사 Kıdemli Başçavuş (크뎀리 바쉬차우쉬)
상사 Başçavuş (바쉬차우쉬)
경력 중사 Kıdemli Üstçavuş (크뎀리 위스트차우쉬)
중사 Üstçavuş (위스트차우쉬)
경력 하사 Kıdemli Çavuş (크뎀리 차우쉬)
하사 혹은 병장 Çavuş (차우쉬)
병(er)
튀르키예에서 병 계급은 구분되지않으며 단지 분대장(onbaşı)과 병(er)으로만 구분된다.
튀르키예군 계급장
7. 출신 인물
- 네지데트 외젤
- 훌루시 아카르
- 바르톨로메오스 1세 -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 타흐신 야즈즈 - 6.25 전쟁 참전용사이다.
- 케난 에브렌
- 제말 귀르셀
- 제브데트 수나이
- 파흐리 코루튀르크
- 유수프 디케치 - 헌병대 부사관 출신.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10미터 공기권총 혼성 부문. 은메달리스트. 해당항목 참조.
8. 대중매체
- GR 자이언트 로보에서 GR-2에게 덤볐다가 모조리 털린다.
- 전쟁영화 머룬베레 시리즈
- 머룬 베레: 이름없는 영웅 (Bordo Bereliler Suriye) 2017년작[32]
- 머룬 베레: 보이지 않는 전사 (Bordo Bereliler 2: Afrin) 2018년작[33]
- Squad 플레이어블 팩션으로 등장한다.
- 영화 레드 이글스(원제 Anadolu Kartalları)는 터키 공군의 조종사들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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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르 튀르크 아스케르 도으아르[2] 굉장히 오래된 튀르키예어 관용구다.[3] 다만 사우디는 세계 3위의 국방비에도 GFP는 2~30위권이기 때문에 실제 군사력은 이란, 이스라엘, 튀르키예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다. Global Firepower 항목을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GFP 순위는 말그대로 참고용일 뿐이지 단순 혹은 직접비교에는 적합하지 않은 자료이며, 최상위권 순위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워낙 변동이 잦은지라 신뢰성을 꾸준히 의심받는 자료다. 애초에 국력이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단순 비교는 무리다. 튀르키예가 사우디, 이란보다 존재감이 강한 이유는 준수한 재래식 전력과 이를 징집제로 뒷받침 하는 대규모의 병력들이 있기 때문이다.[4] 경제력 순위가 19위로 10위인 한국의 44% 수준이다. 참고 인구가 8천만이 넘기 때문에 1인당 GDP도 많이 차이가 난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31,762$, 튀르키예가 9,042$이다.[5] 일반적으로 지상군과 해공군 전력은 30~40년을 주기로 교체된다. 한국군이 1980년대에 도입한 해군의 포항급과 울산급을 FFX로 교체하고 팬텀기를 F-35와 KF-X로 교체하는 것처럼 말이다.[6] 가장 큰 난관이다. 현재 튀르키예는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있어 군사력에 계속 대규모로 투자할수가 없는 상황이다.[7] 이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 지배 하의 아르메니아가 러시아 편을 들었는데, 튀르키예군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60만~ 150만)하여 문제가 되었다.[8]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그리스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및 이즈미르(스미르나)를 포함한 아나톨리아 서부를 수복하려고 했고, 이스탄불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며 사태를 관망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그리스의 명백한 침략행위를 묵인했다.[9] 이는 튀르키예와 소련이 건국 직후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동병상련의 상황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련을 처음으로 국가로 인정한 나라가 튀르키예였다. 하지만 소련이 나중에 카르스를 비롯한 과거 러시아가 손에 넣었다가 소련 초기에 돌려준 지역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자 20만에 이르는 튀르키예군을 소련 국경에 배치하여 결사항쟁의 의지를 보이자 스탈린도 포기하고 물러섰던 적이 있다.[10] 튀르키예 정치인들이 은퇴한 케말 아타투르크에게 당시의 외교 정세에 대해 자문했을 때 아타튀르크는 "히틀러는 미친 놈이고 무솔리니는 자기 국민들 손에 목이 매달릴 놈이다. 그리고 곧 큰 전쟁이 있을 텐데 이 전쟁을 끝내는 건 미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예언이나 다름없는 말이었고, 이 말을 들은 튀르키예 정치인들은 그 말에 따라 추축국과 거리를 두고 중립을 유지했다.[11] 나토 국가 중 소련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나라는 노르웨이와 튀르키예뿐이었지만 노르웨이-소련 국경은 그 길이도 짧고 북극권 안쪽에 있어서 전면전에 돌입하기도 힘든 환경이라 전면전의 위험이 낮았기 때문에 사실상 나토와 소련의 유일한 접경지는 소련-튀르키예 국경이었다.[12] 미국은 튀르키예의 기지를 철수하긴 했지만, 대신 지중해에 SLBM을 실은 전략원잠을 배치하는 걸로 튀르키예를 달랬다.[13] 하영식, [이슬람 극단주의 광기 공포와 슬픔의 현장] <2>쿠르드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 매일신문[14] 튀르키예군 전사자 명단, https://www.koresavasiveizleri.com/sehitlerimiz/[A] 삭제됨[16] 케난 에브렌이 튀르키예 경제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긴 했지만 부실한 경제와 높은 실업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17] 야당을 "꾸란으로부터 멀어져가고있다"고 묘사하는 등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다른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국가들 수준은 아니다.[18] '모스크는 나의 요새'라는 시를 대중앞에서 낭독했다가 종교·인종혐오를 부추겼다고 4개월동안 복역한 전력이 있다. 여러가지로 기민당처럼 종교와 무관한 정파라고 보기만은 어렵다.[19] 대통령, 총리, 총사령관, 법무·국방·내무·외무장관 및 육·해·공·치안군 사령관이 참여하는 기구.[20] 튀르키예인들의 선조들이 도피했다는 중앙아시아의 전설상의 계곡 이름. 튀르키예인들의 조상들이 이를 근거지로 세력을 길렀다고 한다.[21] 참고삼아 튀르키예의 정치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2014년 3월경 이뤄진 지방선거에서 앞선 엄청난 스캔들과 논란, 반정부 감정에도 불구하고 정의개발당은 45.6%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해 세속주의 정당인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득표율 27.9%를 크게 앞섰다. 수도 앙카라를 포함 81개 주 광역지자체장 자리 중 50개 주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정의개발당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흐지부지되는...가 했더니 2014년 5월경 발생한 소마광산 폭발사고에서 정의개발당 정부의 사고대처에 있어서의 무능력함과 각종 망언 등으로 반정부시위에 다시 불이 붙었다.[22] 모두 투옥되거나 해외로 도주했다.[23] 물론 튀르키예 공군이 쿠데타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고 엄연히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한 책임은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권력 강화와 군부 견제를 위해 무더기로 숙청한 에르도안의 책임이 크다.[24] 시리아 민주군은 다에쉬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최전방에 서있는 부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같이 받고 있다. 더군다나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의 진행을 위해 미국의 공습 지원을 받는 대신 쿠르드인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미국의 통수를 치는 행위를 벌이면서 미국에서도 한때 공습 지원을 끊으려 들기도 했다.[25] 전역 후 민간 항공사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전직 파일럿들에게 재입대를 통보했을 정도로 조종사가 부족해졌다.[26] 그런데 튀르키예 정부는 이를 자체 개발한 것으로 선전했기에 많은 튀르키예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으며 튀르키예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K-9과 엮이기를 죽도록 싫어한다. 자국 위키 등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며 영문 위키에선 서브 시스템만 일부 수입해서 자체 개발했다는 논리로 반달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 등의 자주포 관련 순위 영상에서는 Where is the T-155? 라고 외치기도 한다.[27] 다만 진짜로 게이로 밝혀져 면제받는 건 당사자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슬람권에서 게이가 받는 대우는 거의 유럽에서 네오나치가 받는 대우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군대 가기 싫은 사람들은 게이 포르노 동영상을 보내면서까지 군대에 안 가려고 하는데 군대 빠지려고 게이인 척하는 것까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건 아니라서 가능한 수법이다. 그래서 튀르키예군도 어떻게든 병역기피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아예 직책까지 만들었다는 듯하다.[28] 사실 튀르키예 정부는 2011년과 2014년에도 '기여 군 면제 제도'를 시행했었다. 이렇게 징수한 세금은 장비 현대화 등을 위한 국방 예산으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인기용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도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29] 금양장리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이 중공군이 점령한 고지를 향해 알라후 에크베르(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단체로 돌격해 쓸어버린 유명한 일화가 있다.[30] 해군은 뒤에 general대신 amiral(아미랄)이 붙는다. 가령 해군대장은 Oramiral(오르아미랄)[31] 튀르키예어로 binbaşı, yüzbaşı는 각각 1000인대장, 100인대장 이라는 의미이다. 옛 튀르키예어의 전통이 그대로 계승된 셈. 마찬가지로 분대장은 onbaşı(십장)이라고 부른다.[32] 2016년 터키 군부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후 주인공이 소속된 특수부대가 테러조직의 동향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 파견되나 함정에 빠지고 나서 적의 대군들에게 맞서서 싸우는 장엄한 전투를 그린 실화를 각색한 작품. 한국에는 4년뒤인 2021년 3월 21일에 극장 개봉했다. 참고로 아래에 있는 2탄보다 늦게 소개가 되었다.[33] 전작의 사건으로 부터 몇개월 뒤 IS와 연계된 또다른 테러 조직이 밀반입한 핵탄두 2개를 찾아서 저지한다는 내용으로 주인공 부대와 테러리스트들과의 사투를 그렸다. 한국에서는 어째서인지 위의 1탄보다 먼저 소개가 되었으며 2019년 8월 2일에 IPTV로만 공개되었다.[34] 편제표, 1996년 편제[35] 편제[36] 본 문서 250 페이지[37] 기지 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