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0%, #E30A17 20%, #E30A17 80%, #AF001F);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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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대훈장 수훈자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 1949년 | 8월 15일 | 이승만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0년 | 8월 13일 | 윤보선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3년 | 12월 5일 | 12월 17일 | 박정희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7년 | 6월 23일 | 육영수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79년 | 12월 7일 | 12월 17일 | 최규하 | 대통령 | 대한민국 | ||
| 홍기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80년 | 8월 29일 | 전두환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 이순자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노태우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 김옥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김영삼 | 대통령 | 대한민국 | ||
| 손명순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김대중 | 대통령 | 대한민국 | ||
| 이희호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008년 | 1월 28일 | 1월 31일 | 노무현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권양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013년 | 2월 12일 | 2월 22일 | 이명박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김윤옥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월 19일 | 2월 27일 | 박근혜 | 대통령 | 대한민국 | |||
| 2022년 | 5월 3일 | 문재인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하인리히 뤼프케 | 대통령 | 서독 | 외국인 최초 수훈 |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빌헬미네 뤼브케 | 영부인 | 서독 | 외국인 최초 수훈 |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이스마일 나시루딘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틍쿠 인탄 자하라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푸미폰 아둔야뎃 | 국왕 | 태국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시리낏 끼띠야콘 | 왕비 | 태국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5일 | 장제스 | 총통 | 중화민국 | ||
| 1968년 | 5월 10일 | 5월 18일 | 하일레 셀라시에 | 황제 | 에티오피아 |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반티에우 | 총통 | 남베트남 |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티마이아인 | 제1부인 | 남베트남 |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하마니 디오리 | 대통령 | 니제르 |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아이샤 디오리 | 영부인 | 니제르 |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 대통령 | 엘살바도르 |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 영부인 | 엘살바도르 |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오마르 봉고 | 대통령 | 가봉 |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조세핀 봉고 | 영부인 | 가봉 |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대통령 | 세네갈 |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 영부인 | 세네갈 | ||
| 1980년 | 5월 11일 |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 국왕 | 사우디아라비아 | |||
| 1980년 | 5월 14일 |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 1981년 | 6월 25일 | 수하르토 | 대통령 | 인도네시아 | |||
| 1981년 | 6월 25일 | 시티 하티나 | 영부인 | 인도네시아 | |||
| 1981년 | 6월 29일 |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81년 | 6월 29일 | 틍쿠 아프잔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81년 | 7월 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대통령 | 필리핀 | |||
| 1981년 | 7월 6일 | 이멜다 마르코스 | 영부인 | 필리핀 | |||
| 1981년 | 10월 13일 | 로드리고 카라소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 1981년 | 10월 13일 |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 영부인 | 코스타리카 | |||
| 1982년 | 5월 10일 | 사무엘 도 | 대통령 | 라이베리아 | |||
| 1982년 | 6월 7일 | 모부투 세세 세코 | 대통령 | 자이르 | |||
| 1982년 | 6월 7일 | 보비 라다와 | 영부인 | 자이르 | |||
| 1982년 | 8월 25일 | 압두 디우프 | 대통령 | 세네갈 | |||
| 1982년 | 12월 21일 | 케난 에브렌 | 대통령 | 튀르키예 |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 대통령 | 수단 |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 영부인 | 수단 | ||
| 1983년 | 9월 10일 | 후세인 1세 | 국왕 | 요르단 | |||
| 1983년 | 9월 10일 | 누르 | 왕비 | 요르단 | |||
| 1984년 | 4월 9일 | 하사날 볼키아 | 국왕 | 브루나이 | |||
| 1984년 | 4월 21일 | 할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다우다 자와라 | 대통령 | 감비아 |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치렐 자와라 | 영부인 | 감비아 | ||
| 1985년 | 5월 17일 |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 대통령 | 파키스탄 | |||
| 1985년 | 5월 20일 |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 1986년 | 9월 4일 | 4월 10일 | 엘리자베스 2세 | 국왕 | 영국 | ||
| 1986년 | 9월 4일 | 4월 16일 | 보두앵 | 국왕 | 벨기에 | ||
| 1987년 | 4월 7일 | 아메드 압달라 | 대통령 | 코모로 | |||
| 1988년 | 11월 3일 | 이스칸다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88년 | 11월 3일 | 자나리아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20일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대통령 | 서독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 프랑스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다니엘 미테랑 | 영부인 | 프랑스 | ||
| 1990년 | 6월 21일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대통령 | 파라과이 | |||
| 1990년 | 11월 5일 | 괸츠 아르파드 | 대통령 | 헝가리 | |||
| 1991년 | 9월 13일 | 아즐란 샤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91년 | 9월 13일 | 투안쿠 바이눈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91년 | 9월 25일 |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 대통령 | 멕시코 | |||
| 1992년 | 8월 13일 |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 대통령 | 과테말라 |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피델 라모스 | 대통령 | 필리핀 |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 영부인 | 필리핀 | ||
| 1994년 | 11월 7일 | 11월 21일 |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 대통령 | 칠레 | ||
| 1994년 | 12월 5일 | 12월 9일 | 레흐 바웬사 | 대통령 | 폴란드 | ||
| 1995년 | 2월 7일 | 2월 16일 | 이슬람 카리모프 |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 | ||
| 1995년 | 2월 21일 | 3월 6일 | 로만 헤어초크 | 대통령 | 독일 | ||
| 1995년 | 3월 28일 | 4월 3일 | 젤류 젤레프 | 대통령 | 불가리아 | ||
| 1995년 | 6월 26일 | 7월 7일 | 넬슨 만델라 | 대통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 1995년 | 9월 26일 | 9월 29일 | 카를로스 메넴 | 대통령 | 아르헨티나 | ||
| 1996년 | 7월 23일 | 9월 4일 | 알바로 아르수 | 대통령 | 과테말라 | ||
| 1996년 | 7월 23일 | 9월 11일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대통령 | 브라질 |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 국왕 | 스페인 |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 왕비 | 스페인 | ||
| 1996년 | 11월 26일 |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96년 | 12월 10일 | 12월 15일 | 레오니드 쿠치마 | 대통령 | 우크라이나 | ||
| 2000년 | 2월 22일 | 3월 3일 |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 대통령 | 이탈리아 | ||
| 2000년 | 2월 22일 | 3월 6일 | 자크 시라크 | 대통령 | 프랑스 | ||
| 2006년 | 3월 1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대통령 | 알제리 | |||
| 2007년 | 3월 26일 |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 2007년 | 3월 28일 |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 2009년 | 5월 1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대통령 | 카자흐스탄 | |||
| 2009년 | 11월 12일 | 알란 가르시아 | 대통령 | 페루 | |||
| 2012년 | 5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 국왕 | 스웨덴 | |||
| 2012년 | 11월 21일 |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 | |||
| 2018년 | 10월 8일 | 10월 15일 | 에마뉘엘 마크롱 | 대통령 | 프랑스 | ||
| 2019년 | 6월 12일 | 하랄 5세 | 국왕 | 노르웨이 | |||
| 2021년 | 6월 14일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대통령 | 오스트리아 | |||
| 2021년 | 6월 16일 | 펠리페 6세 | 국왕 | 스페인 | |||
| 2021년 | 6월 16일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왕비 | 스페인 | |||
| 2021년 | 8월 25일 | 이반 두케 | 대통령 | 콜롬비아 | |||
| 2021년 | 9월 21일 | 보루트 파호르 | 대통령 | 슬로베니아 | |||
| 2023년 | 7월 13일 | 안제이 두다 | 대통령 | 폴란드 | |||
| 2023년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 2024년 | 11월 16일 | 디나 볼루아르테 | 대통령 | 페루 | |||
| 2025년 | 10월 29일 | 도널드 트럼프 | 대통령 | 미국 | 미국인 최초 수훈 미국 대통령 최초 수훈 | }}}}}}}}} | |
| <colbgcolor=#e30a17> 튀르키예 공화국 제7대 대통령 아흐메트 케난 에브렌 Ahmet Kenan Evren | |
| | |
| 출생 | 1917년 7월 17일 |
| 오스만 제국 알라셰히르 | |
| 사망 | 2015년 5월 9일 (향년 97세) |
| 튀르키예 앙카라 | |
| 재임기간 | 제7대 대통령 |
| 1982년 11월 9일 ~ 1989년 11월 9일 | |
| 학력 | 튀르키예 포병사관학교 (학사) (1934-1938년) 튀르키예 군사참모대학 (박사) (1946-1949년) |
| 최종 당적 | |
| 배우자 | 세키네 에브렌(결혼:1944년~1982년)[1] |
| 자녀 | 3녀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교 (세속주의) |
1. 개요
튀르키예의 군인, 정치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한 튀르키예 공화국의 제 7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이다.2. 초기 생애
1917년 오스만 제국 알라셰히르에서 알바니아계 아버지와 불가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38년 포병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958년부터 1959년까지 튀르키예 여단으로 대한민국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61년에 육군참모장이 되고 1964년에는 장군으로 승진했다. 1977년에 육군참모총장으로 승진하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튀르키예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3. 1980년의 쿠데타와 집권
튀르키예군의 최고 사령관 자리에 오른 에브렌은 1970년대 후반 튀르키예에 만연한 극도의 정치, 사회, 경제적 불안정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튀르키예는 뷜렌트 에제비트가 이끄는 중도 좌파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CHP)[2]과 쉴레이만 데미렐 총리가 이끄는 정의당(AP, Adalet Partisi)을 주도로 한 우파 연합 국민전선, 네즈메틴 에르바칸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의 이슬람계 정당 국민구제당(Millî Selamet Partisi,MSP)의 세 세력이 대립하는 가운데 수많은 정치적 암살과 테러, 범죄가 횡행했고 1970년대 후반 5년 동안에만 총리직이 3번 교체되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에브렌은 1979년 말 직속 부하에게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케 함으로써 최초의 행동을 보인다. 1980년 초 두 번째 보고서가 작성되고, 점점 상황은 극을 향해 고조되고 있었다. 당시 데미렐 총리는 1979년 이미 군부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튀르키예 국가정보국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상태였지만 강대한 튀르키예 육군의 지휘권을 쥐고 있는 에브렌에게 내각이 대응할 수단은 현실적으로 전무했다.
1980년 9월 12일 오전 에브렌과 군부는 행동을 개시한다. 군권을 장악하고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정부 기관들을 압박하는 그 앞에 총리와 관료들은 무력했다. 데미렐 내각을 몰아낸 그는 국가안보평의회(NSC)를 세우고, 의장으로써 2년간 국가원수 대행으로 권력을 잡는다.[3] 이 때 이전의 의회를 해산하면서 "튀르키예에 자유는 너무 큰 사치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리스는 1974년 키프로스 전쟁에서 튀르키예의 행동을 눈감아준 서방세계에 대한 반감으로 NATO에서 탈퇴했다가 안보 위협이 증대되면서 재가입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나토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만 회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튀르키예가 계속 반대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해성같이 등장한 케난 에브렌은 그리스의 나토 재가입을 찬성하는 대가로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로부터 정권을 용인받을 수 있었다. 당시 튀르키예 담당 CIA 국장인 파울 헨즈(Paul Henze)는 케난 에브렌의 쿠데타를 아예 대놓고 찬성하는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튀르키예 좌파들이 미국에 대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1982년 11월 그는 국가안보평의회의 이름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1982년 11월 9일 7년 단임제 임기의 7대 튀르키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전까지 튀르키예의 정치는 의원내각제로 돌아가고 있었으나 에브렌의 개헌은 모든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하고 내각과 총리를 대통령의 수족으로 채우는 대통령제 헌법이었다.
알파고 시나씨에 의하면 당시만 해도 케난 에브렌에 대한 튀르키예 국민들의 지지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헌법 개헌 당시 무려 93%의 지지도가 나왔는데 이것도 군부에 의한 조작이 아닌 국민들의 진심어린 동의에 의한 지지도라고 한다. 1970년대 말의 극심한 정치혼란에 튀르키예 국민들이 완전히 지쳤기 때문이었다. 케난 에브렌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는 이후 잔혹한 고문이 폭로되면서 깨지게 된다.
4. 대통령직 재임
케난 에브렌이 정권을 잡은 기간은 모든 독재정치가 그렇듯이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튀르키예인들은 그의 재임기를 튀르키예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잔인했던 시기로 정의한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250,000명에서 최대 650,000명까지의 민간인이 에브렌 정권 하에서 구속되었으며[4] 이 중 14,000여 명이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50여 명이 처형되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암살과 숙청 등은 이것의 수십 배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과 영장 없는 구속, 고문 역시 횡행했는데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군과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으며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그는 기존 수권 정당과 정치인들[5]의 활동을 모두 금지하고 관제 야당만을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허용했고, 초월적인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신헌법으로 어렵게 유지되어온 튀르키예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반면 에브렌에게는 튀르키예의 경제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살려낸 지도자라는 상반된 수식어 역시 붙는다. 1970년대 후반 튀르키예의 경제는 공화인민당과 정의당, 민족주의행동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면서도 그 어느 당도 해법을 내놓지 못해 점점 파탄의 경지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케난 에브렌은 취임 후 강력한 통화 정책을 기반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최소화하고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통해 튀르키예의 경제와 산업을 세계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중서부 지방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동남부 아나톨리아를 개발하여 근대화시킨 것도 에브렌 집권기의 일이다.
1982년 12월 튀르키예 대통령 최초로 방한해서 전두환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이후 2004년 당시 총리이자 현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방한에 이어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튀르키예 방문으로 23년 만의 국가원수 답방이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 9일에 7년의 임기를 마감하고 대통령직을 퇴임한다.
5. 퇴임 이후와 말년
에브렌은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후 지중해 연안의 마을에서 아마추어 화가 생활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법 살인과 불법적 고문, 시찰, 숙청을 감행한 에브렌에 대해 튀르키예 국내외에서 처벌 여론이 들끓었지만 군부의 영향을 받는 세속주의 성향의 정부 아래에서 그에 대한 처벌 여론은 흐지부지되어 있다가 이슬람주의 성향의 정의개발당(AKP)이 집권하는 문민 정부가 들어선 후 본격적으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케난 에브렌에 대한 법적 처벌을 검토했지만 실제 기소는 2012년에 와서야 이루어졌고, 2014년 국가 전복 모의와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군 계급 역시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이때의 에브렌은 이미 96세의 노령이었고 건강도 나빠서 재판에 제대로 출석하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이듬해인 2015년 97살의 나이로 앙카라의 국군수도병원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다.
6. 평가
강경한 세속주의자였으나, 군부의 무력에 기댄 권위주의적 세속주의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하여, 오랜 세월 터키를 강력하게 지배해오던 케말주의가 위기를 맞는 원인이 되었다.비슷하게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강경한 세속주의자였던 제말 귀르셀이 대통령 취임 후 군부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친이슬람 성향 정치인도 적당히 포용하고 정국을 끌고가면서 케말의 뒤를 잇는 제2의 국부 이야기까지 들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
7. 여담
전두환 전 대통령과 평행이론 수준으로 유사하다. 1980년에 쿠데타를 일으켰다거나, 헌법 개정과 어용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했다거나, 관제야당만 허용하는 사실상 일당독재를 했다거나, 기존부터 만연했던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켰다거나, 이들의 임기가 해당 국가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잔인했던 시기로 회자된다거나, 90대까지 살았거나, 7년 단임 임기였거나, 심지어 임기가 종료된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6] 심지어 컬러 방송을 도입했다는 것과[7] 뉴스 오프닝 음악으로 같은 음악[8]을 썼다는 것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인 출신 독재자끼리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9]오스만 제국 시기 태어난 마지막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튀르키예판 리메이크의 시대배경은 1983년으로 케난 에브렌이 일으킨 1980년 튀르키예 쿠데타부터 총선 전까지 3년간 펼쳐진 계엄령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당시 튀르키예군 헌병대(잔다르마)에 의한 고문 및 사법살인 문제와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살벌하게 묘사된다.
[1] 1922년 ~ 1982년(향년 59세)[2]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세운 정당이며 1950년까지 여당이였다.[3]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유사한 것으로, 가장 강력한 숙청과 인권 탄압은 세속주의를 훼손하는 불순분자를 솎아낸다는 명목 하에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4] 1989년 튀르키예 인구가 5500만 명도 되지 않았다.[5] 쿠데타 이전의 총리들이던 쉴레이만 데미렐, 뷜렌트 에제비트와 제3당 국민구제당의 당수로 부총리를 역임하던 네즈메틴 에르바칸 등이 그 피해자이다.[6] 전두환은 짧게 수감생활을 한 후 사면되어 자연인으로써 온갖 논란과 분노만 야기하다가 죽었고, 에브레는 수감 당시 100세 가까운 노인이여서 병원으로 옮겨졌기에 감옥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7] 전두환: 1980년(시험 방송은 1976년 시작), 에브렌: 1984년(시험 방송은 1981년 시작)[8] 맨 오브 라만차 메들리의 시작부. 들어보기 한국에서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1980년 말~1981년 초, 터키에서는 TRT의 Haberler(소식)에서 1984~1986년 쓰였다.[9] 그나마(?) 에브렌은 전두환처럼 대놓고 국민 학살은 저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