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2 17:41:29

서독

독일의 역사 Die Geschichte Deutsch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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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파일:독일 국기.png 파일:독일 국장.png
국기[1] 국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West_Germany_1956-1990.svg.png
1949년 ~ (1990년)
위치 중부유럽
수도 베를린(명목상), (사실상)
면적 248,577km2
인구 1950년 50,000,000명
1990년 63,300,000명[2]
정치체제 공화정, 연방제,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대통령
정부수반 총리
주요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
언어 독일어
종교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주요사건 1949년 건국
1990년 통일 관련 조약 체결→통일
통화 독일 마르크
이전 체제 연합군 점령하 독일
자르 보호령
독일민주공화국
(↑독일의 재통일)
이후 체제 통일 독일(체제 연속)

1. 개요2. 행정구역3. 인구4. 영역5. 경제6. 군대
독일어Westdeutschland
영어West Germany
프랑스어Allemagne de l'Ouest
일본어西ドイツ[3]
중국어西德

1. 개요

1949년부터 1990년 10월 3일 이전, 즉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있었던 시절 독일연방공화국의 통칭이다. 통일은 서독의 일방적인 동독 흡수통일독일민주공화국이 소멸하고 독일연방공화국이 옛 독일민주공화국을 이루는 5개 주의 연방 가입을 받아준 것이다. 따라서 현 독일 건국 역사도 통일 시점이 아닌 서독 건국일을 따른다.

동북쪽에 위치한 독일민주공화국과 대조하는 표현으로 서독 또는 서부독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독일민주공화국이 없어진 뒤의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해선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때에 따라 "구 서독 지역" 같은 표현은 쓸 수도 있겠지만, 뉴스 보도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조금 더 에둘러서 "구 연방주 지역"(Alte Bundesländer)이라고 부른다.[4] 독일민주공화국이 존재하였을 당시든, 없어진 지금이든 독일연방공화국 국기[5]국장, 국가(독일의 노래 3절)[6]도 같다. 약자는 BRD로, 독일민주공화국 측에서 서독을 지칭할 때 해당 약자를 사용했다.

서독의 법적 수도는 베를린이나 실질적 수도는 이었다. 베를린은 공식적으로 동/서독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연합군 4개국의 관할지역인데다 그마저도 동독에 둘러싸인 월경지였기에 실질적으로 수도로서 기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작은 도시 본에 정부 중앙기구들을 입지시켜 서독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했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하여 많은 문서에서 서독의 수도를 본으로 표기하고 있다. 통일 이후에는 본에 있던 연방 기관들이 대거 베를린으로 이전했다.[7] 하지만 여전히 본에는 일부 행정기관들이 잔류하여 서독의 수도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2. 행정구역

처음에는 9개 주였다가, 1957년 자를란트 주가 서독에 복귀하여 10개 주가 되었다. 서베를린은 연합국의 점령지 취급.

3. 인구

이 시기에는 서독은 인구가 과거처럼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지만 동독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서유럽 전체에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정체되었을 때도 상당히 증가하던 독일이 이후에는 인구가 증가하는 모습이 달라지게 되었다. 독일은 이 시기부터는 원래 태어나는 인구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기 시작했지만 이민 인구가 많이 와서 그나마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이민은 지속적으로 받았는데도 인구 증가는 크게 줄어서 이민을 오는 인구가 없으면 인구가 줄게 되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인구 참조.
시기 자연 증감 이민 증감 인구 증감
1960년 +170,000명 +290,000명 +460,000명
1980년 −120,000명 +240,000명 +120,000명

출산율은 1970년 대체출산율 이하로 떨어졌고, 1972년부터 순감소를 기록, 1985년에는 합계출산율 1.28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가 그 이후 회복 추세에 있었다.

4. 영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65px-Map-Germany-1945.svg.png

나치 독일 멸망 후 분할된 연합군 점령하 독일 지도. 미국·영국·프랑스 관할 지역을 합쳐 서독이 되었다. 베를린은 본래 전부가 소련 점령 지역이었으나 독일의 전통적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미·영·불 3개국이 압력을 넣어서 분할한 결과 서독의 월경지가 되었다. 브레멘 주는 미국 점령 지역의 월경지로 영국 점령지에 둘러싸여 있다.[8] 지도에서 프랑스가 점령한 파란색 땅 서쪽으로 옅은 노란색(거의 흰색으로 보임)으로 칠해진 땅이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의 자를란트 주이다.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1947년 독일에서 분리돼 프랑스의 보호를 받는 자르 보호령이 되었다가 1956년 서독으로 겨우 복귀해 자를란트 주가 되었다. 참고로 동독보다 더 동쪽에 있던 지역들은 각각 폴란드소련(그 중에서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로 합병됐다. 이 중 소련에 합병된 지역은 동프로이센쾨니히스베르크를 위시로 한 북쪽 1/3 지역으로, 합병 이후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련이 해체된 오늘날도 같은 이름으로 러시아에 속해 있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서독의 영역은 구 바이마르 공화국 영토의 53%를, 현 독일 영토의 69.6%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utschland_Bundeslaender_1949.png

1949년 당시 동독(빨간색)·서독(파란색·연두색)과 자르 보호령(보라색). 연두색으로 칠해진 지역은 서베를린이다. 이 지도에서는 동·서독 각 주(Land, 복수형: Länder; 영어: state)[9][10] 의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참고로 동베를린의 경우 명목상 소련군 관할지역이었기에 '주'가 아닌 '특수지역'으로 간주되었으며 동독 영토를 그릴 때 서베를린 부분에 '구멍'이 나야 올바른 영토 표시가 되지만, 동독에서 자국 영토를 그릴 때는 종종 이걸 무시하기도 하였다. 다만 반대로 서독까지 그려놓고 '독일민주공화국 전도'라고 하는 일은 없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utschland_Bundeslaender_1957.png

자를란트 주의 서독 복귀 이후 동독(빨간색)과 서독(파란색·연두색)의 영역. 동독은 땅이 크지도 않은 데다가 중앙집권형 국가가 되어서 주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었다. 그래서 이 지도에서는 동독의 주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 동독은 대신 주보다 크기가 작은 '구(Bezirk)'를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두었다. 참고로 동독의 주는 통일 직전에 부활했고(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어졌던 5개 주 그대로 부활했으나 경계선은 변화하였다. 별도의 특수 지역이었던 베를린(동베를린)은 통일 후 서독의 베를린(통일 전 통칭 서베를린)에 합쳐졌다.) 주로서의 실제 기능은 통일 이후에 회복되었다.

5. 경제

한때는 미국과 소련에 뒤이은 전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었으며 일본이 추월한 이후에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을 유지했다.[11] 경제 규모는 유럽에서 소련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국민 소득도 유럽을 통틀어서 최상위권을 자랑했다. 심지어 동독마저도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 국민소득이 소련을 포함하여 가장 높았다.

동독과의 격차는 냉전이 한창 진행될 때부터 통일 직전까지는 인구로는 서독이 4배, 실질 기준으로 경제 규모로는 6배, 1인당 경제 규모는 1.5배 정도였다. 나중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것은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를 1:1로 환산한 고정 환율제의 결과였다. 실제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질 환율을 감안했을 경우 서독과 동독간 1인당 경제 규모 격차는 그보다는 늘어난다. 경제 수준이 별 차이가 없던 한국과 북한[12]과는 다르게 동서독은 시작부터 불평등한 상황이였다. 영국이 점령한 독일 최대의 항구 함부르크, 제 1의 공업지대 루르와 쇼미더머니의 미국이 점령해 전후 복구를 재빨리 마치고 오히려 더 발전한 바이에른 등을 가진 서독과 달리 동독이 차지한 메클렌부르크, 포메른 등은 융커들이 주도하는 농업 중심 경제를 유지해 서독에 비해 산업화가 뒤떨어진 지역이었다. 오히려 동독이 서독의 1인당 경제 규모를 이렇게까지 따라잡은 것도 중간은 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구 독일 제국부터 나치 독일 내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지역은 동부 프로이센 지역이었지만 그곳은 신생 폴란드에 넘어갔다. 그리고 원래 중부 독일이었던 동독 지역은 그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력이나 자본이 전부 서독으로 가 버렸다.

6. 군대

파일:서독군 코스프레.jpg
(서독군을 재현한 모습)

서독의 군사력은 미국, 소련을 이어서 몇십년 전처럼 세계 3위였으며 막강한 육군력과 공군으로 서유럽의 방어를 담당하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강군이었다. 게다가 병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계화부대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물론 미 공군의 항공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개전 초 소련군 수백만명의 대군을 거의 서독군이(혼자서) 막아야 했다.

서독 육군의 주 총기로는 HKG3 자동소총이나 MG3 다목적 기관총, H&K MP5 기관단총 같은 자국산 총기들을 운용하였지만 HKG3와 MP5를 개발, 운용하기 전에는 벨기에 FN FAL 자동소총과 이스라엘 UZI 기관단총을 G1, MP2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기도 했었다.

(독일 연방군 문서 참조)


[1] 통일 독일과 헷갈리지 않기 위해 독수리가 그려진 문장을 넣은 정부기를 사용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통일 독일도 이 깃발(정부기) 쓴다. 파일:서독.png[2] 독일/인구 참조.[3] 또는 西獨逸/西独逸(모두 にしドイツ), 약칭 西獨/西独(せいどく)[4] 반대로 구 동독 지역은 "신 연방주 지역(Neue Bundesländer)"이라고 부른다.[5] 원래 동·서독의 국기는 동일하게 흑적금 삼색기였으나 이후 동독이 국기에 동독 국장을 추가한 형태로 수정해서 구분됐다.[6] 독일의 노래 3절을 국가로 채택한 건 1952년이었다.[7] 물론 베를린이 동독의 수도였던만큼 정부청사로 쓸건물은 있었지만 상징성 문제와 건물 자체의 노후화. 안전성 문제 등이 겹쳤기 때문에 건물을 새로 신축했다.[8] 미국의 점령지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지역이기 때문에 항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브레멘이었다. 브레멘 주 자체도 월경지를 가지고 있는 땅이라, 지도에 둘로 찢어져서 칠해져 있다. 프랑스 점령지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여기는 프랑스 본토와 직접 접한 곳이니 항구가 없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국경만 넘으면 금방이니까..[9] 2차 대전 이후 새로 그은 것이라 그 이전과 차이가 있다.[10] 그러나 네덜란드가 1949년부터 1963년 까지 니더라인 지방의 엘텐 지역을 점거했었다[11] 서독과 일본의 인구 차가 거의 2배 정도까지 차이가 나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이다.[12] 원래 북한이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다고도 하지만 6.25전쟁으로 다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