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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1.1. 통일 이전
1.1.1. 프로이센 왕국군
일반적으로 프로이센 왕국 시절에는 영국의 레드 코트와 많이 비슷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프로이센의 이 블루 코트는 영국의 레드 코트, 러시아 제국의 그린 코트, 오스트리아의 화이트 코트에[1] 대응되는 당대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겠다.[2][3]
바로 위의 GIF에서 보다시피 청색 프록 코트에 흰색 조끼와 삼각모의 조합이 표준이었다.[4] 그러나 모자의 경우 시대 흐름에 따라 삼각모에서 이각모와 샤코, 피켈하우베로 바뀌었으며, 프록 코트 또한 점점 단순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미술사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군복이기도 한데, 비싼 청금석을 대체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해준 인공 염료, 프러시안 블루는 이 무렵의 프로이센 군복과 색상이 유사하다고 명명된 것이다.
이와 별개로, 프로이센의 후사르 기병대는 매듭 장식으로 멋을 낸[5] 제복을 입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쓴 털모자가 특이해서 나름 유명하다.[6] 그림의 주인공은 독일 제국군의 육군원수였던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으로, 자신이 프로이센 기병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해서 독일이 3번 망하는 걸 보는 그 순간까지도[7] 저 군복을 입고 다녔다.
덧붙여서, 프로이센의 예비군인 란트베어(Landswehr)는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검정 내지 남청색 군복을 입었다. 이들은 커다란 철십자 문장이 박힌 샤코나 쉬르뮈체(현대 정모의 원조)를 착용해서 현역들과 쉽게 구분되게끔 했다.
1.1.2. 바이에른 왕국군
한편 프로이센과 함께 근대 독일의 양대 산맥이자, 별도의 정체성[8]을 가지고 살아온 바이에른은 독자적으로 군 복식을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바이에른군의 군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독일 군복과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군복 색상의 경우에는 바이에른 왕국기의 색상이자, 지배 가문인 비텔스바흐 가문의 상징색인 연한 하늘색을 채택했다. 이 색상은 통일 이후에 전 독일군이 들회색(Feldgrau) 군복을 채택할 때까지 존속했고, 왕정 폐지 이후에도 한동안은 바이에른 지역의 예복 색상으로 살아남았다.[9] 다만 1780년대에는 잠시 오스트리아군처럼 하얀 군복을 입은 적도 있었다.
군복과 함께 착용하던 헬멧의 경우에는 원래 오스트리아군이나 프랑스 기마병들처럼 신로마 양식의 퀴레시어 투구를 착용했으나, 통일 직전부터 프로이센처럼 피켈하우베가 쓰이기 시작했다. 다만 여타 제후국처럼[10] 프로이센의 국가수리가 아닌, 바이에른의 사자 문양을 달았다. 당연히 피켈하우베 옆에 부착된 코케이드도 프로이센의 흑-백-흑 배열이 아니라 바이에른의 백-청-백 조합이었다.
추가로 칼라장의 경우. 타 독일군처럼 로마 숫자 Ⅱ(2) 형태의 칼라장을 사용했으나, 바이에른만의 독자적인 형식도 있었다. 위 사진에서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왕세자가 착용한 게 그것으로, 통일 이후에도 바이에른군 내부에서 틈틈히 쓰였다. 해당 칼라장은 1차 대전 전후에는 바이에른 경찰에서만 사용되었고, 냉전기 독일 경찰청이 복식을 현대화하면서 폐지되었다.
1.2. 독일 제국 시절
1.2.1. 제1차 세계 대전 전기
▲ 벨 에포크 시절 스타일의 독일 제국 군복. 사진의 인물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수로, 그를 비롯한 고위 장성들은 위장성이 대두된 1차 대전 후반에도, 위 사진과 같이 붉은색으로 멋을 낸 군복을 입었다.
독일 군복만의 개성이 비로소 정립된 시기이며, 독일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넒었던 때의 군복인지라 이후 시대 못지 않게 종류가 다양했다.
코케이드를 적극 활용했던 것도 이 시기 독일군의 특징. 각각 정모와 피켈하우베에 두 개의 코케이드를 달아, 소속 제후국이 어딘지를 나타내었다. 하나는 독일 제국 국기에서 따온 흑-백-적이었으며, 하나는 각 제후국의 깃발을 딴 코케이드를 다는 식이었다.
기병대의 복장은 프로이센 왕국의 것을 약간 개선해서 입었다. 제국의 기병대는 소속마다 제복의 스타일이 조금 달랐다. 후사르 기병대는 전반적으로 프로이센 시절 그대로였지만[11], 통일 이전의 털모자는 예복용으로 변경되었고, 후사르의 상징인 백골(토텐코프) 문양을 붙인 정모를 사용했다. 울란 기병대의 경우, 정복 겸 전투복은 프록 코트 형식이었고, 피켈하우베에 직사각형 장식을 달아서 로가티프카처럼 만든 것을 쓰고 다녔다.
아프리카 식민지 주둔군과 휘하 식민지인 병사(아스카리)들은 흰색 내지 카키색 군복을 입었으며, 예복으론 청회색 제복을 입었다. 군모로는 현대의 부니햇처럼 챙이 넒은 모자를 썼으며, 챙에 흑백적 코케이드를 달아 독일 소속임을 나타냈다. 간혹 피스 헬멧을 쓰기도 했다. 훗날 창설되는 돌격대의 유니폼은 재고로 남은 이들의 군복을 재활용한 것이다.
이 때가 전성기였던 독일 해군은 나비 넥타이와 더블 단추 형식의 코트를 입었으며, 해당 복식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까지 유지된다. 해군은 육군처럼 각 제후국에서 차출한 것이 아닌, 황제의 직속이기에 정모에 코케이드를 흑-백-적 하나만 달았다. 대신 독일 황제의 왕관과 월계관 문장으로 코케이드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위 해군에서 차출된 독일 해병대 또한, 이때가 전성기였다[12]. 주로 열대 지방에서 싸웠던 상황상, 이들의 복장은 전체적으로 아프리카 식민지군과 비슷했다. 다만 해군 하정복용 견장을 부착해서 육군에서 파견된 병력과 차이점을 두었다. 마찬가지로 황제 직속 병력이었기에, 약모나 헬멧에 흑백적 코케이드 하나만 달았다.[13]
1.2.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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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초반기의 독일군[14] | 철모가 도입된 제1차 세계 대전 중후반의 독일군 |
이후 이 들회색은 두 번째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기를 넘어 지금까지 독일군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자리잡는다.
또한 이전 시기와 달리, 점차 단추가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어 갔다. 이는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단추를 가림으로서 위장성을 고려한 것으로, 슬슬 대두되기 시작한 전술적인 위장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보다 실용성 있게 상부에도 주머니가 추가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위장성이 고려된 디자인이 전군적으로 확대, 보편화된 것은 전쟁 발발 이후인 1915년 경으로, 개전 초기까진 여전히 붉은 파이핑에 단추가 노출되어 있는 보다 고전적이며 화려한 디자인의 군복이 주류였다. 또한 주머니의 개수는 전쟁 후반에나 가서야 4개로 늘어나는 추세였고, 사실상 완전히 디자인에 반영된건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대에나 이르러서이다.[16]
군모의 경우, 전쟁 초반에는 19세기 중반부터 쓰던 피켈하우베가 여전히 제식이었다. 다만 크기가 이전 시기에 비해 작아지고 위장피를 적극 활용해 시인성을 줄이는 등, 여러 개량을 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황동과 가죽이 주재료라 생산단가에 비해 방어력이 약해, 전쟁 중반부터 슈탈헬름에게 서서히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이 당시 독일군들은 피켈하우베 외에도 챙을 제거한 수병 모자를 병종 가리지 않고 애용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프로이센 왕국군이 채택한 것이[17] 1차 대전이 본격화되면서 전 독일군에 퍼졌다. 일종의 병사용 정모로써 주로 외부 활동이나 가벼운 작업을 할 때 썼다고 한다. 현대 한국군 병사의 베레모와 비슷한 용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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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1차 대전 영웅인 바로 그 붉은 남작이다. | 1차 대전 시절의 헤르만 괴링. |
이 때쯤에 유행했던게 크러셔 캡이라는 건데, 장교 모자 안에 들어있는 보형물을 제거하고 일부러 구겨서 비뚤게 쓰는 게 유행이었다. 이 유행은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지속된다.
세부 디테일에 있어선 차이점도 꽤 있었지만 계급장의 배치나 특유의 회녹색 컬러는 상기하였던 대로 후일 나치 독일 시대의 독일 국방군이 사용한 제복과도 많은 유사성이 있었다. 원더우먼에서 (물론 재현 오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제복의 디자인을 꽤 괜찮게 재현했다. 이 시기부터 후대에 나치 독일 시대의 독일 국방군과 현대의 독일연방군에서 사용되는 붉은 바탕에 금색 자수가 된 장성용 칼라장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3.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사진의 인물은 쿠르트 폰 슐라이허.
국가방위군은 1차 대전 말기의 군복을 개량한 복식을 입었다. 색상은 1차대전 당시의 군복과 비슷했지만, 제정 시기에는 생략되곤 했던 가슴주머니가 정착되었다.
위와 아래 시기의 군복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정모의 디자인. 크라운(관) 부분이 납작해졌고, 월계관으로 장식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가수리를 주름테 부분에 달았다.
해군의 경우, 왕관과 코케이드 대신에 독일 국장을 정모에 달았다. 그걸 빼면 제국 시기에서 별다른 차이는 없다.
1.4. 나치 독일 시대
4군 체제[19]에 여러 전선에서 싸웠고 전쟁 내내 복식이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군복의 종류와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거기에 장교들의 군복 상의는 지급되는게 아니라 피복수당으로 양복점에서 맞춰야 했기 때문에 제복의 재질과 색상이 천차만별이었다. 즉 위의 그림은 극히 일부의 복식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흔히들 떠올리는 장교복, 국방군과 친위대가 섞여있다.[20]
나치 독일의 악행과는 별개로 이 시기 독일군 장비나 군복 등이 멋지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는데, 이는 애초에 독일군을 멋있게 보이게 하기 위해 히틀러의 지시 하에 철저하게 멋져 보이도록 디자인되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십수년 동안이나 "유명 패션 디자이너 휴고 보스"에 의해 디자인됐다고 알려졌으나 당시 휴고 보스사는 단순히 독일군에게 군복을 납품만 하던 업체였고#, 독일군복의 디자인은 그저 1차대전 당시의 군복을 멋드러지게끔 살짝 개량했을 뿐인 물건이었다.[21] SS의 검은색 제복도 휴고 보스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이것 역시 예술가이자 친위대 고위 장교였던 카를 디비치 교수[22]와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발터 헤크가 함께 디자인한 제복이다.[23] 지금까지 휴고 보스가 디자인했다고 잘못 알려진 이유로는 휴고 보스가 남성의류 디자이너로는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다가, 카를 디비치가 1985년 사망할 때까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숨죽이며 살았기 때문이다. 주장하지 않았다기보단 전범으로 처벌될까봐 그럴 엄두도 못 낸 거겠지만.
장교용 군복은 현대 남성복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지금 봐도 멋진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했으며, 사병들의 군복 역시 초창기 한정으로 상당히 멋있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나치의 제복 모습 일례로 국내에 작전명 발키리가 개봉되었을 때, 아무래도 초반부 북아프리카 전선과 동부전선을 제외하면 대개 배경이 나치 독일 국내인만큼 군복도 일반적인 전투복차림의 후줄근한 사병들보다는 칼라가 빳빳한 정복차림의 장교들이 주로 많이 나왔는데, 이를 보고 많은 관객들이 "와 독일군 군복 되게 이쁘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후반에 독일군 대령이 윈터스에게 항복하는 장면[24]에서도 항복하는 사람의 옷이 항복을 받는 사람의 옷보다 훨씬 멋있다는 말이 많았다.
국방군의 계급장. 계급을 나타내는 부착물이 세분화되었고, 필수가 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신분에 따른 각각의 계급장의 보다 상세한 형태에 관해서는 독일 국방군/계급 문서의 설명을 참조.
이전 제정 시기만 해도 장교의 계급장은 위관/영관/장성급으로 나눠진 게 전부였고, 사병은 부대에 따라서 계급장이 아예 없곤 했었다. 허나 나치 시기엔 이등병부터 원수까지 각자의 계급장을 달고 다녔으며, 군복 생산에 할당된 재정이 바닥나는 와중에도 이를 생략하지 않았다. 다만 이럼에도 계급장을 떼고 다닌 케이스도 있는데, 타국군 소속이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독일 군부에 편입된 장성들이 종종 그랬다. 대표적인 이가 안드레이 블라소프와 루스커이 예뇌. 이 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유로[25] 합류했을 뿐, 독일 군부에 별다른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아무런 계급장이 없는 독일 육군 군복을 입고 다녔다.
독일 군복 중, 위장무늬가 적용된 일부는 전후에 한반도에 흘러들어가, KLO 부대를 포함한[26] 대한민국 국군이 일부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을 잘 보면 친위대가 왼팔에 부착했던 독수리 오바로크까지 그대로 있다.[27] 후방 침투 및 유격전 상황에선 위장성이 몹시 중요하기에, 미군 측이 이전에 노획한 독일 위장복을 지급한 것.[28][29]
1.4.1. 육군
종종 독일 국방군 그 자체로도 여겨지는 육군의 정복은 SS의 검은색 예복과 함께, 나치 시기의 독일 군복하면 대중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복식이다.나치 독일 육군의 정복은 앞선 제정~바이마르 시절의 육군복을 최종적으로 개량한 형태였다. 활동성을 위해 목을 감싸던 칼라를 곧게 폈고, 팔 부분을 어느 정도는 걷을 수 있게 소매를 좀 더 넒게 만들었다.
전투복의 경우, 육군 자체가 변해가는 전장 상황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던지라 그 종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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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6 Tunic | M40 Tun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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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2 Tunic | M43 Tun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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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4 Tunic |
육군은 전기에는 M36 튜닉을 입었다. 이 복식은 바이마르 시기의 것과 유사했지만, 상술했다시피 칼라 부분을 개량했다. 1차대전 당시에는 군복의 칼라를 목까지 채우는 게 정식이였으나, 나치 독일의 군복은 칼라를 제대로 펴서 쇄골까지만 오게 했다. 또한 칼라색이 군복의 색보다 짙게 한 것은 덤. 재질은 여전히 울이었고, 계급장은 어깨에 달았다.[31]
1940년 이후에는 M40튜닉으로 생산라인이 대부분 교체되는데, 36에 비해서 칼라 색을 상의 색상과 다시 통일시켰고, 옷도 조금 더 펑퍼짐하게 만들었다. 이후 이 옷은 나치독일이 망할 때까지 죽어라 입는다. 다만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M36을 더 입었다.
1944년 후반에는 확실히 자원이 부족했는지 옷감을 아예 확 잘라버린다. 허리선까지 자르고 소매는 그대로 뒀다. 목 끝까지 잠궈놓던 단추도 바꿔버린다. 전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겠지만...
사진의 인물은 빌헬름 카이텔.
다만 이런 원단 절약은 사병과 부사관에만 해당되었고, 장교들은 품위 유지를 위해서 전쟁 말기까지 M36을 고집했다. 게다가 프로이센 시기부터 장교들은 군복을 보급받지 않고, 땨로 피복수당을 받아서 양복점에서 맞춰 입는 게 관례였던 탓에, 옷감 재질과 색깔이 통일되지 않고 달랐다.
위 사정 때문에 장교들마다 입고 있는 복장의 연식이 달랐으며, 같은 모델의 정복이라고 해도 제작 과정에서 옷 주인 취향이 반영되다 보니, 디자인의 차이가 미묘하게 컸다. 심지어 양복점마다 약간의 원단 차이가 있어서 색상[32]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었다.
복장 통일성 문제가 제일 심각했던 계급은 아이러니하게도 부하들에게 통일된 소속감을 주어야 하는 장성급들이었다[33]. 냉전 이전의 독일군이 다 그랬지만, 독일 국방군은 특히 장성급의 옷차림을 잘 터치하지 않았다. 때문에 옷의 라인과 단추의 숫자부터, 정모 장식물의 색상까지 장군들마다 취향껏 고르고 입었다. 심지어 바이마르 시기의 정복에 국방군 휘장만 붙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명목상 대장의 정복과 원수의 정복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도[34], 원수에 진급한 이들은 기존에 입던 대장의 정복에 원수 계급장만 붙인 경우가 허다했다.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가 대표적.[35]
물론 같은 시기 영국군과 미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만, 독일군은 장성급의 복장 불량이 일상적이었단 점에서 매우 심했다.
위 내용들과는 별개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는 환경 특성 때문에 원수부터 사병까지 카키색 내지 연한 올리브색[36] 열대복을 입어야 했다. 이 열대복은 더운 사막에 맞춰서 양모 대신 면으로 제작되었고, 햇빛에 뜨거워질 수 있는 금속제 부착물을 최대한 배제한 물건이었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더위를 버티기 힘들어서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싸우던 장병도 많았다.
권위를 중시했던 육군 상층부는 장교가 반바지를 입고[37] 지휘하는 일을 참지 못했고, 결국 북아프리카 군단 장교들을 위한 열대용 정복을 개발해서 지급했다. 사진에서 통조림을 먹고 있는 에르빈 롬멜이 입고 있는 게 그것.[38] 이 정복은 카키색 원단으로 만든 건 물론, 통풍을 위해서 오픈 칼라식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기존 정복과 달리, 칼라장이 세로로 붙여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라이프지에 실린 M35 튜닉을 입은 독일군의 사열식 모습.
일부 사병[39] 및 부사관, 위관과 영관급 장교들에게는 바이마르 시기의 군복을 살짝 고친 M35 튜닉이 행사용 예복으로 지급되었다. 이 복식은 옛 프로이센-제정 군복이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소매장이 달려있었고, 칼라장과 벨트 버클 또한 야전용보다 컸으며, 무엇보다 각자의 주특기를 상징하는 색으로[40] 꾸며져 있었다.
장성들 또한 M35 튜닉이 지급은 되었지만, 이들은 상술했듯이 평상시에도 취향대로 꾸민 정복을 입고 다녔기에, 여기에 장식물만 몇개 더 달고 행사에 나가는 걸 선호했다. 다만 예외도 있어서,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는 영관급용 N35 튜닉을 살짝 고친[41] 걸 입고 나서길 좋아했다.
오토바이병용 트렌치코트도 지급되었었는데, 고무나 가죽 등 방수 소재로 만들어 매우 무거웠지만 하단을 접으면 커버올 형태로 변해서 매우 편리했다. 참고.
1.4.2. 해군
사진의 인물은 알프레트 잘베히터.
장교용 해군 정복의 경우, 제정과 바이마르 시기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바로 넥타이. 상술했다시피 그 이전까지만 해도 셔츠의 칼라를 세우고 나비 넥타이를 하는 게 정식이었는데, 1930년대 바이마르 시기부터 접힌 칼라에 보편적인 형태의 넥타이로 규정을 바꾸었고, 이게 독일 국방군 시기에서야 정착된다.[42]
타국의 해군과 마찬가지로 동계용과 하계용이 있었다. 다만 이 당시 독일 해군의 주요 항구 내지 전장은 추운 북대서양이었기에, 하계용은 그리 많이 입지 않았다. 끽해야 이탈리아 해군 및 일본 해군과 합동 작전을 펼칠 때나 입었을 정도. 다만 하계용 흰 정모는 햇빛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주 쓰곤 했다.
▲ 함장만 흰 정모를 쓰는 전통을 묘사한 영화 특전 U보트의 한 장면.
특히 U보트 승조원들은 함장만 흰 정모를 쓰고 다른 간부들은 검은 정모를 써서 함장의 권위를 표현했던 전통이 있었다.
사병의 경우, 타국 해군처럼 세일러복과 챙이 없는 수병 모자를 착용했다. 여담으로 나치 해군은 영국 해군처럼 수병용 연미복을 제작 및 보급하기도 했으며, 위 사진 속 수병이 입고 있는 게 바로 수병용 연미복이다.
독일 제국 해병대를 계승한 육전대는 세일러복 차림으로 싸우기도 했으나, 주로 피 코트를 입고 전장에 참여했다.
1.4.3. 공군
사진의 인물은 알베르트 케셀링.
2차 대전기 독일 공군은 넥타이 차림의 푸른 군복을 입었다. 다만 하늘의 강렬한 햇빛을 고려해서 해군처럼 흰색 하계용 군복이 있었으며, 야전용 들회색이나 북아프리카 전선용 카키색 정복도 존재했다. 덧붙여서 스페인 내전 당시에 콘도르 군단 조종사들은 스페인 군복을 입었다.
육군 항공대에서 갓 독립한지라, 육군과 차별점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계급장을 정해서 부착했다. 후술하겠지만 해당 계급장은 현대 독일 공군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독일 공군은 파일럿들을 위한 비행복을 만들어 지급했는데[43], 좁은 조종석 안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도록 디자인되었다. 이 비행복은 워낙 활동성이 좋아서 공군 소속 방공포병이나, 공군 야전사단 같은 육상 병력들도 전투복으로 애용했다. 위 사진도 야전사단원의 복장을 재현한 것이다.
나치 독일 공군 소속의 공수부대(팔시름예거)[44]는 특유의 전투복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낙하산에 걸리지 않게 귀부분을 자른 슈탈헬름을 썼으며, 공군 정복 내지는 비행복 위에 위장무늬 덧옷을 입었다. 또한 전쟁 말기에는 폴고레 공수사단으로부터 전해진 이탈리아군 위장복, MAB 38 탄창을 수납할 수 있는 조끼를 입고 싸우기도 했다.
1.4.4. 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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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5. 동독과 서독
1.5.1. 독일연방군(Bundeswehr)(서독)
독일 연방군 군복 변천사
서독군 초기[45]
서독군 중기
초기 연방국경경비대 장교용 정복
육군 정복
정복. 다른 국가들과 달리 상의는 연회색, 하의는 어두운 진회색으로 상하의 색이 다른 것이 특징.
서독군은 이전 독일군과 다르게 굉장히 많이 바꿨는데, 전투복의 경우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우려먹던 프로이센식 전통 복제(服制)를 거의 깨버리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전투복이 나치 시절 전투복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현대화를 한 것이다.
계급장에 관련해서는 독일군/계급 문서를 참조. 특히 육군 및 공군 장성들의 칼라장은 독일 국방군 시절 육군 장성들의 칼라장의 양식을 계승한 것을 사용했다.
헬멧의 경우에는 서독 초기 슈탈헬름이 쓰였으나 미국이 대대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에게 원조한 M1 헬멧을 사용되면서 후엔 M1 헬멧을 카피한 FWQC 헬멧이 M62라는 제식명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70년대 이미 플레크타른을 개발했으나 플레크타른 무늬 패턴이 SS의 위장복과 비슷한 탓에 군복에 전면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방탄복과 헬멧 커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경향은 서유럽권 국가에서도 나타나는데 대개 위장복을 사용하던 나치 독일의 기억 때문에 위장무늬 사용을 꺼려 채용 자체를 늦추게 하는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서독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은 상당기간 단색 전투복을 사용하였다.[46] 플랙탄이 군복에 적용되는 것은 통일 이후였다.
초기 연방국경경비대 병사용 정복[47]
초기 연방국경경비대 전투복[48]
반면 준군사조직인 국경경비대의 경우 초창기부터 독일국방군 시절의 슈탈헬름과 장교복을 그대로 전용했으며[49], 스플린터 위장무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나 1954년 이후로 다른 군복들과 통일되었다. 국경경비대는 슈탈헬름을 재생산하여 색상만 달리 한 채 사실상 거의 그대로 사용했는데, M826 케블러 헬멧으로 대체되기 이전까지 사실상 냉전기 전 기간동안 사용되었다. 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독과 동독의 특성상 국경지대에 NATO군이 배치되었다는 오해로 인한 불필요한 긴장을 막아야하는 서독의 입장에서, 슈탈헬름은 동독군이 NATO군과 독일 국경경비대를 구별 가능케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던지라 서독은 이를 고려해서 국경경비대에 계속 M35 슈탈헬름을 사용케 한 것이었다.[50]
1.5.1.1. 해군 (Ma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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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군 창설 당시의 피복류 공개 영상에서의 마리네 피복의 모습[51] |
창군 초기에는 전쟁해군과 국가해군 때처럼 동계정모와 하계정모가 구분되어 있었고 코케이드를 국가독수리의 자리에 모표는 전쟁해군의 모표에서 가운데 코케이드만 앵커로 변경된 모양이었다.[52]거기에 2차대전기 받은 훈장을 하켄크로이츠가 제거된 신형으로 패용할 수 있어서 전쟁해군기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동계 정모가 폐지되고 정모의 크라운부분, 모표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화하게 되어 현재는 사실상 전쟁해군의 정모와 유사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1.5.2. 국가인민군(NVA)(동독)
국가인민군 지상군 예하 프리드리히 엥겔스 근위 연대 소속의 근위병. 총기는 SKS 시모노프 단축형 소총.
정복의 경우엔 서독군이 미군식으로 복제를 갈아엎은 것과 달리, 동독군[53]은 정통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국방군/친위대 시절의 디자인을 유지했다. 기껏해야 국가수리 문장을 지우고, 장성용에 한해서 색상을 소련군의 그것과 비슷하게 바꾼 정도. 정복과 함께 쓰는 정모 또한 소련식 정모를 참고한 탓에 크라운이 평평해진 걸 빼면 디자인 자체는 그대로였다. 게다가 장성들은 소련 장군들처럼 주름테가 붉은 정모를 착용했는데, 붉은 주름테의 원조가 원래 프로이센/독일임을 생각하면 결국 이것도 전통으로 회귀한 셈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통일 이후, 주인 잃은 동독군 정복이 나치 제복으로 개조되어 영화 촬영 등에 쓰이곤 했다[54].
다만 정통성 운운은 주로 정복까지만 그렇고, 전투복은 냉전 당시 소련군의 것을 참고하여 새로 디자인되었다. 그래도 위장무늬나 철모 등은 소련식보다는 동독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자적인 형태를 채택했다.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서 동독군의 전투복은 소련식과 독일식의 두 가지 양식이 혼합
일례로 동독군 특유의 위장무늬는 소련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 독자적인 디자인이었다[57]. 작은 갈색줄이 무수히 그어진 스트릭타른(Strichtarn), 혹은'레인(빗줄기) 패턴'이라 부르는데[58] 2차 대전 당시에 국방군에서 사용되었던 스플린터 위장무늬를 뿌리로 한다.
가까이서 본 실물 레인 패턴 위장무늬. 꽤나 모던한(...) 느낌을 준다. 독일이 바우하우스 때부터 모더니즘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라란 걸 생각하면 묘하다.
레인 패턴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1
레인 패턴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2
그 밖에도 바가지 머리처럼 생긴 철모가 유명한데, 해당 물건은 슈탈헬름의 개량형이다. 대전 말기에 경사장갑을 차용한 프로토타입을 그 뿌리로 두고 있는데, 아돌프 히틀러의 반대로 당시에는 도입이 무산되었다. 그러다 전후 동독군이 재발굴하고 채택한 것. 일설에 따르면 초기 동독군은 기존 슈탈헬름을 그대로 쓰려고 했으나, 소련 측의 당연한 반대로 새 철모를 모색해야 했고, 그러다 찾은 게 상술한 프로토타입이라 한다.[59]
공산권 특유의 계급견장을 사용했지만 80년대 후반쯤엔 견장 착용 대신 옛날 국군의 계급장처럼 양팔 어깨 아래에 다는 형식으로 바뀌었으나 몆년 안가서 통일되었기에 자주 보이는 편은 아니다.
참고로 동서독 통일 이후에 동독군 철모는 다수가 튀르키예군에게 넘어가 튀르키예군에서 한동안 쓰였다.
1.6. 독일 재통일 이후 독일연방군
독일연방군 근위대대 소속 장병들(Wachbattalion)(위)[60]
독일연방군 남방사단(Süd Division) 소속 KFOR 병사들 (아래)
독일 해군 장교, 상급부사관 정복(왼쪽), 수병 정복(오른쪽)
간부와 병 모두 동일한 함상복을 착용한다. 카키색 함상복의 경우 해외파병 시에만 일시적으로 착용하게 된다.
공군 정복은 노란색 바탕 옷깃장을 사용하는 등 옛 루프트바페의 전통이 일부 남아있다.
통일 후 독일연방군은 서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정복을 유지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2014년부터 육군 정모가 폐지되고 베레모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한편 전투복에는 서독 시절인 1976년에 개발된 플레크타른 위장무늬가 도입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 등 사막 지대에 적합한 트로페타른(Tropetarn)이라는 위장무늬도 함께 도입됐다.
동서독 통일 이후부터 독일은 독일연방군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군복을 유지해 나갔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복은 동독이 했던 대로 프로이센 스타일이 가미되어 과거의 전통으로 회귀한 모습을 보인다. 전투모의 경우 베레모를 사용하고 있는 것 외에도, 산악병 등에서 독일국 시대의 야전모를 부활시켜 혼용하고 있다.
계급장에 관련해서는 역시 독일군/계급 문서를 참조. 특히 육군 및 공군 장성들의 칼라장의 경우 서독 시절에도 그러했듯 독일 국방군 시절 육군 장성들의 칼라장의 양식을 계승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일단 과거의 서독과는 한 가지 확실하게 차이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방탄모. 냉전 시절 동안에는 M1헬멧을 기반으로 쉘에 직접 독일식의 가죽부유대를 장착하고 3점식 턱끈을 부착한 M62 헬멧을 사용하며 슈탈헬름을 닮은 모양새의 헬멧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던 독일군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난 이후부터는 미군의 PASGT 헬멧의 디자인을 참고해서 3점식 턱끈을 부착해 만들어진 방탄모인 M826 헬멧[61]을 도입하게 되면서 비록 예전의 원조 슈탈헬름을 그대로 쓰는 건 아니긴 하지만 과거의 슈탈헬름을 닮은 모양새의 헬멧을 다시금 채용하게 되었다. 그 이후 독일군에서는 이렇게 새로 도입한 헬멧을 실전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의장용으로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현 독일 연방군의 의장대나 군악대와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모습들로서 예를 들자면 아래 사진과 같다.
위 사진은 독일 육군의 전사자 장례식, 아래 사진은 대 분열(귀영)식에 참가한 독일 공군 군악대의 연주 장면을 촬영한 모습. 프로이센 시절 제복의 스타일이 다소 가미된 현 독일 연방군 제복과 과거의 슈탈헬름을 닮은 모양새의 헬멧이 조합된 모습이 뭔가 이채롭다. 사진의 화질이 좋지 못해서 알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사진 속의 저 헬멧은 예전 독일군에서 사용되던 원조 슈탈헬름은 아니고 냉전이 끝난 이후 도입된 PASGT 형태의 방탄헬멧에서 헬멧 커버를 벗겨서 의장용으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62]
개인 군장은 IdZ 군장이 보급 중이다.
2026년부터는 멀티캠 종류의 물티타른 패턴으로 보급되며 ksk같은 일부 부대는 그전부터 수령하여 보급되고 있다.
[1] 프랑스 역시 왕정시절에는 화이트코트를 차용했으나 공화정시기로 넘어가면서 주로 블루코트로 바뀌게된다.[2] 트렌드이기도 했지만 나름 이유가 있는데 이는 이 코트를 사용할 당시에 사용하던 총의 명중율이 매우 뒤떨어졌다. 그래서 1자형 대열로 맞춰 사격하는 것이 가장 위력이 있었기에 현대의 각개전투가 아닌 집단을 형성한 전투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군복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혼잡한 전투중 적으로 오인해 사격을 할 위험도 있었기에 피아식별을 위해 눈에 잘 띄는 색으로 통일을 하였다. 당연히 이 트랜드는 총의 화력과 명중률이 높아지면서 각개전투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눈에 띄는 코트색은 과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부 카키색 같이 카모플라쥬로 바꿔나갔다.[3] 덧붙이자면 레드코트고, 블루코트고간에 당시 군복은 동시대 민간인 신사들의 표준적인 복장에서 색깔만 통일한 것이라 비슷비슷한데, 이러한 외투를 통칭 프록 코트라고 한다. 이것은 후일 신사들이 입는 옷이 되기도 한다.[4] 정예 보병인 척탄병의 경우에는 삼각모 대신, 위 삽화에 나오는 은빛 뾰족한 모자를 쓰고 전투에 임하기도 했다.[5] 일본에선 이런 디자인의 제복을 늑골복이라 부른다. 얼핏 보면 사람의 갈비뼈와 유사하기 때문. 국내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아, 종종 늑골복이라 부르기도 한다.[6] 모자에 그려진 해골 문양은 훗날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와 슈츠슈타펠이 물려받는다.[7] 프로이센 왕국에서 태어나서 독일 제국의 해체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 나치 독일의 파멸까지 다 보고 향년 95세로 사망한 인물이다.[8] 일단 종교부터 프로이센은 개신교지만, 바이에른은 가톨릭을 주로 믿어왔다. 언어 또한 오스트로바이에른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로이센에서 통용되던 중부식 독일어나 저지 독일어와는 많이 달랐다.[9] 이와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작센 왕국군이다. 이들도 프러시안 블루 색상이 아닌, 자신들의 상징색인 밝은 초록색을 군복 색상으로 채택했다.[10] 각자의 국장이나 왕실 문장을 달았다.[11] 사진 속 코트 안쪽을 보면, 늑골복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12] 중국에 세운 조차지와 오세아니아의 식민지를 담당했던 게 이들이다. 또한 의화단의 난과 헤레로족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 부대 취급을 받았다. 지금도 해병대가 독일 해군 소속으로 있지만, 제정 시기에 비하면 초라하다.[13] 육군은 소속 제후국을 상징하는 코케이드도 같이 달았다.[14] 총검술을 사용한 근접전을 중시하여 상당히 긴 Gew98 소총의 대검이 돋보인다.[15] 영어로 Field Grey[16] 이 바이마르식 4포켓 디자인은, 이후 나치 독일식 제복 디자인의 근간이 되어 계승된다.[17] 당장 전 단락에 독일 제국 해병대도 이런 수병 모자를 쓰고 다녔다.[18] 단, 로가티프카는 안 썼다.[19] 육군, 해군, 공군, 친위대.[20] 구분법은 칼라에 붉은 바탕에 금색 백엽 장식이 들어가 있으면 국방군 장성급, 칼라에 로마숫자 II 모양이 들어가 있으면 장성급 이하의 국방군 장교(부사관 칼라장은 II자 모양 바깥에 흰줄이 더 들어간다.), 칼라에 검은 사각형에 한 쪽은 흰색 백엽, 다른 쪽은 SS가 써져 있으면(혹은 밑의 무장친위대의 계급장 그림처럼 둘 다 검은 사각형에 흰색 곡엽이 들어갈 수도 있다) 친위대 중에서도 대령 이상 계급, 흰색 마름모와 그 밑에 흰 줄이 있는 칼라장은 중령 이하 친위대 계급이다.[21]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이센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스타일이다.[22] 교수(Professor)라는 호칭은 히틀러가 부여한 호칭이다.[23] 제복외에도 친위대용 단검과 예도 등 여러 가지 나치의 상징물들을 만들었다.[24] 대령이 목에 걸고 있는 것은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이다. 철십자 훈장 중에서도 천 명도 안 되는 인원에게만 수여된 것으로, 상당한 전공을 세운 장교임을 짐작할 수 있다.[25] 블라소프는 스탈린 정권에 대한 환멸과 소련 공산당에 대한 반감 탓에, 예뇌는 극단적인 파시스트라 나치의 힘으로 조국을 극우화하고자 합류했다.[26] 사실 KLO 부대는 정확히는 국군이 아니라 미군 소속의 부대이다.[27] 사진상의 군복은 Dot 44 패턴의 친위대 군복 상의다.[28] 인터넷에 떠도는, 중공군으로부터 포로정보를 얻은 소련 정부가 왜 독일군, 그것도 2차대전의 앙숙이던 무장친위대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했냐고 항의했다는 건 아마 군복 때문에 생긴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29] 초창기 순수 독일 혈통을 강조하던 친위대는 점차 징집 기준이 완화되고 나중에는 아무나 총만 들 수 있으면 징집하였고, 소련군 포로 중에서 넘어온 아시아계까지 있어서 무장친위대원 중에 아시아계도 꽤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오해할 만도 하다.[30] 육군의 병사는 오른쪽(보는 사람 기준 왼쪽)가슴 주머니 위쪽에 독수리 장식이 붙어있지만, SS는 왼쪽(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팔 어깨 약간 밑에 달려있다. 상당히 유명한 구분법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칼라의 계급장이 SS는 기본적으로는 시겔 문자 한 쌍이 있었지만, 사단마다 다르기도 하여 여러 면에서 국방군과는 차이가 많았다.[31] 이건 국방군 기준이고, 친위대는 견장, 칼라장 모두 계급장으로 사용되었다. 국방군의 칼라장은 부대 소속과 병사/부사관/장교/장군/원수를 구분하게 해줄 뿐 정확한 계급은 알려주는 표식은 아니었다.[32] 사실 이건 양산된 군복도 위의 튜닉들에서도 보이듯 공장과 시기마다 약간씩 다르던 판이라고 한다. 농담으로 필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라는 짤이 나올정도. 이것도 2차대전 때 그나마 통일된거고, 1차대전 때는 제후국마다 원단 보급을 따로 해서 더 차이가 났다고 한다.[33] 이들의 복식을 (예복과 정복이 혼합된) 준예복이라는 혼종이라 칭하기도 한다.[34] 신형을 기준으로 원수의 정복은 카라가 더 길었다. 원수의 칼라장이 더 길었기 때문.[35] 이 사람은 원수 진급 이후에도, 한동안 대장의 견장을 계속 착용하고 다녔다.[36] 전쟁 초기에는 연한 올리브색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게 점점 바래지면서 카키색 비스무리하게 되었고, 전선 말기에는 아예 카키색 복장을 지급했다.[37]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반바지는 애들이나 입는 거란 생각이 강했다.[38] 다만 롬멜도 서부전선에 참여한 시기에는 보편적인 원수의 정복을 입고 다녔다.
[39] 주로 의장대나 행사에 자주 참여해야 하는 수도 방위 병력들이 많이 입었다.[40] 보병은 흰색, 공병은 검정, 산악병은 초록, 통신병은 노랑, 포병은 빨강, 기갑은 분홍이었다.[41] M35 튜닉에 소매장을 떼고, 장성급용 붉은 견장을 달았다. 이렇게 입은 채로 히틀러, 그리고 무솔리니와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42] 에리히 레더처럼 이전의 복식을 고수한 자도 있었다.[43] 당연히 이거 하나만 입고 나가는 것은 아니고, 방한 자켓과 조종사 헬멧을 쓰고 나갔다.[44] 독일어 음차 표기인 '팔시름예거' 외에도 이를 직역한 '강하엽병'이란 표기로도 불린다.[45] 독일 국방군이 사용한 스플린터 위장 무늬를 참고하여 군복을 제작했다.[46] 오스트리아처럼 돈 때문에 시범적으로 사용하다가 폐지한 사례나, 리자드 패턴이라는 위장무늬를 사용하던 외인부대의 반란으로 인한 기억으로 파병부대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한 프랑스의 사례는 예외.[47] 독일국방군 시절 정복의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했지만, 반장화 형태의 미국식 전투화가 도입됨에 따라 바지와 전투화의 착용방식은 독일연방군처럼 미군식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48] 독일연방군과 같은 단색 전투복을 착용했지만, 그 위에 스플린터 위장무늬를 적용한 야전상의를 입은 것이 독일연방군과의 차이점이었다. 반장화 형태의 미국식 전투화가 도입됨에 따라 바지와 전투화의 착용방식은 역시 독일연방군처럼 미군식으로 바뀌었으며, 그 외에도 베레모가 도입된 것을 볼 수 있다.[49] 서독 국경경비대는 독일제국군이 살아남았다면 그 당시에는 그 모습으로 행동했을 거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정도의 디자인을 지닌 군복을 채택했었다.[50] 결과적으로 동독군이 구 나치 시절 독일 국방군의 튜닉에 소련 철모의 영향을 받은 M1956 헬멧을 조합한 모습을 취한 것에 비해, 서독 국방경비대는 완전히 정반대로 헬멧은 구 나치 시절 슈탈헬름에 의복은 당시 미군 군복의 영향을 받은 물건을 착용하는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51] 좌측 부터 동계용 사병용 정복 및 정모, 부사관 튜닉 및 정모, 장교 튜닉 및 정모[52] 전쟁해군 정모에서 국가독수리와 코케이드를 엥커로 바꾸면 초기 독일연방군 해군의 정모가 되는 정도였다.[53] 육해공군 및 슈타지 포함.[54] 리인액트 용도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디자인이 비교적 흡사한지라 약간의 개조와 부착물만 바꾸어도 얼추 구색은 갖출 수 있기 때문. 그리고 동독이 망하면서 많은 양의 재고가 풀렸기에 지금까지도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기도 하다. 2차 대전 진품들은 물론이고, 모조품들조차도 수요가 높은지라 꽤 고가에 거래되는 까닭에 생긴 풍조. 물론 어디까지나 그나마 쓸만한 대용품일 뿐 세부적으론 대전 당시 디자인과 차이가 많은 편이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추구한다면 절대 비추이다.[55] 그래서인지 밀덕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군복들 중 하나다.[56] 비단 동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도 비슷한 성향을 띄기는 했지만 동독이 특히나 독일만의 고유의 개성을 고집한 편이었다.[57] 같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소속의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도 비슷한 패턴을 사용하긴 했다.[58] 표기언어만 다른 같은 뜻이라 보통은 영문명으로 쓴다.[59] 기존의 슈탈헬름은 방탄능력을 기대할 만한 곡선이 적은 디자인이었기에 좀 더 곡선적으로 만들어서 방탄능력을 늘려 보고자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보호면적이 감소되었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었기도 했다. 그 특이한 외형 때문에 성능과는 별개로 그다지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며, 기존의 슈탈헬름에 비해서 머리와의 밀착이 좀 덜 되어 있는 구조여서 머리 위에서 살짝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걸리적거림이 심해 착용자의 움직임에 방해를 주는 결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60] 이들의 경우 예외적으로 전통에 관한 연방군 규정에서 면제받아 하노버 왕국에서부터 이어져온 수장을 착용하는 전통을 이어받았고 프로이센 제1근위연대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을 허가받았다.[61] 덧붙여 공수부대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가해진 파생형인 M828 헬맷을 함께 채용했다고 하나, 이 M828 헬멧의 실사용례는 드물다.[62]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독일연방군에 제식 채용된 M826 헬멧과 디자인이 약간 다르다. 헌병대가 쓰는 검은색 플라스틱 하이바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