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7 16:02:52

슈츠슈타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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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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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텐코프 엠블렘(장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innish_SS_volunteers_in_Gross_Born.jpg
SS Marschiert in Feindesland und singt ein Teufelslied.
Ein Schütze steht am Wolgastrand und leise summt er mit,
Wir pfeifen auf unten und oben und uns kann die ganze Welt.
Verfluchen oder auch loben grad wie es jedem gefallt.
SS(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하고 악마의 노래를 부른다.
한 소총수가 볼가 강가에서 나직이 흥얼거린다.
우리는 누구든 신경쓰지 않고
온 세상은 그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를 저주하거나 찬양할 수 있다.
Wo wir sind da geht's immer vorwärts,
und der Teufel, der lacht nur dazu.
Ha, ha, ha, ha, ha, ha.
Wir kämpfen für Deutschland,
Wir kämpfen für Hitler.
Der rote kommt niemals zur Ruh.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전진뿐이고,
악마는 이를 보고 웃기만 한다.
하, 하, 하, 하, 하, 하.
우리는 독일을 위해 싸우고,
우리는 히틀러를 위해 싸운다.
빨갱이들은 결코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 무장친위대(Waffen-SS)의 군가 《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한다

1. 개요2. 창설 및 확장3. 세부조직
3.1. 일반친위대3.2. 무장친위대3.3. 특수작전집단3.4. 비밀국가경찰
4. 계급5. 이야기거리
5.1. 제복5.2. 문신5.3. 참전자들
6. SS 관련 주요 인물7.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말하기도 두렵습니다. 그들이 뭘 위해 죽은 겁니까? 가령 영국군은 "우린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싸웠어. 독재와 맞서 싸웠다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대체 뭘 위해 싸운 겁니까? 그들에게는 무거운 죄의식이 가득했습니다. 이 대재앙을 부른 죄책감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위르겐 기르겐존, SS 비킹 사단 소속 참전자

나치 독일에 존재했던 준군사조직(나치 친위대)이다. 무장친위대 역시 슈츠슈타펠 소속이다. 나치라는 단어에서 보통 사람들이 바로 연상하게 되는 검은 제복[1]하켄크로이츠 등의 빨간 완장 찬 패거리가 바로 이들이다. 인종말살정책를 포함해 온갖 전쟁 범죄를 앞장서서 저질렀다는 점에서 악명이 높다.

본래 명칭은 바펜 슈츠슈타펠(Waffen-Schutzstaffel)이기에 흔히 약자 SS로 표기하고 에스에스로 부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슈츠슈타펠의 심볼은 룬 문자(시겔, 로마자 S와 동일한 발음)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로 다른 것을 SS라고 칭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매우 껄끄러워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2] 다만 일부러 쓴 예외가 있는데, 하드락 그룹 KISS의 로고이다.[3]

슈츠슈타펠은 나치의 악행을 다 저질렀고 정규군이었던 독일 국방군은 깨끗했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사실 국방군도 나치인건 나치인지라 슈츠슈타펠 못지 않게 만만치 않은 전쟁범죄 만행들을 자행해왔다. 국방군 무오설 참조. 모든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도 국가가 아닌 당에 충성한다.이건 너무나도 당연한게 공산주의국가의 군대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공산당의 당군이기때문이다. 친위대는 반공이지만 이 점에 있어선 상당히 유사하다. 때문에 전후 독일 국방군은 '국군'이지만 친위대는 '사병'이니 친위대는 나쁘고 국방군은 착하다라는 인식을 만들어 서독군이 탄생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친위대는 전원이 당원이라는 소리가 한국 밀리터리 사이트 등지에 사실인 것처럼 올라와있는데 실제로 친위대에 입대한 이들 중 당원이 된 이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았다. 되려 국방군에서도 당원인 경우가 친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4]

재미있게도, SS 빠들조차 무장친위대 선옥론, 알게마이네 선옥론 같은 주장을 하는 패거리로 나뉘어 넷상에서 다투는 경우가 많다. 무장친위대 선옥론자들은 "무장친위대는 전방에서 정규전 치르느라 바빠서 전쟁범죄 저지를 일이 없고, 학살은 전부 아인자츠그루펜 등 알게마이네가 한 짓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편인데, 수용소 운용 병력이 토텐코프 사단 등 야전부대에서 차출됐고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영국 육군 포로 학살과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의 캐나다 육군 포로 학살 및 아르덴 대공세 때의 말메디 학살 등은 전부 무장친위대가 저지른 짓이므로 그냥 헛소리다. 이쪽은 밀덕들 중 야전 분야를 좋아하고 의장용 군복 등을 싫어하는 부류들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알게마이네 선옥론자들은, 알게마이네 SS는 분명 아인자츠그루펜의 존재 등으로 인해 커버쳐 줄 구석이 없다시피함에도, "유대인 학살 등은 개전 이후에나 일어났기 때문에 적어도 그 이전의 SS들은 죄가 없거나 가볍다."는 희한한(?) 주장을 한다. 특이하게 이 소리 하는 이들은 개전 이후의 알게마이네까진 애써 커버치지 않는데, 이유인즉슨 그들이 빠져든 간지나는 검은 군복은 개전 이전까지만 입었기 때문으로, 그냥 큰 생각 없이 군복 멋진 거에 빠져서 그걸 입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검은 군복 입던 알게마이네 SS들은 이미 개전 이전부터 강제수용소를 운용하며 자국민을 탄압해왔던 범죄 조직이고, 전후 재판에서도 개전 이전의 짓거리들까지 처벌 받았다. 이 헛소리는 국내에서 이를 주도해서 떠들던 한 고딩 밀덕이 다른 밀덕의 사진을 불펌하고 모욕적인 말을 썼다가 고소당하기 직전 합의금 물어준 사건이 난 뒤 조용해진 편이다.

2. 창설 및 확장

SS는 그대로 번역하면 경호대라는 뜻이며[5] 원래는 아돌프 히틀러 개인의 신변 경호 및 총통관저 경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원래 SS는 돌격대(SA)의 하부조직으로 290명이라는 소규모였으며 계급 체계도 돌격대의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하인리히 힘러가 SS를 맡으면서 별개의 집단처럼 운용되기 시작하였다.

집권 후 히틀러는 집권에 큰 공을 세운 SA를 쓸모 없어진 사냥개 취급하여 토사구팽해버린다. 그 이유는 돌격대 대장인 에른스트 룀이 공공연히 '내가 없었으면 히틀러도 없었다'라며 떠들고 다닌 데다가, 규모가 너무 비대하여[6] 히틀러에게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SA는 제2의 혁명을 일으켜 귀족-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기를 원하는 반자본주의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이 때문에 히틀러를 지지한 보수층은 히틀러가 SA를 빨리 해체할 것을 원했다.

게다가 에른스트 룀은 프로이센 귀족 출신들이 좌지우지하는 독일 국방군을 SA에 흡수시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국민의 군대라는 의미에서의 '인민군'을 창설하려고 했다. 그전의 군대는 군의 고위층이 너무 구 프로이센 귀족층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군의 쿠데타 위협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독일군 지도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프로이센의 높으신 귀족 나으리들로 구성된 국방군 참모부는 바이에른 촌뜨기 위관 출신인 데다 동성애자 사회주의자인 이 국방장관이 되는 것도, 돌격대 지도부가 자신들과 동급이 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원수는 돌격대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정부를 비토하겠다고 경고하였다.

한편 군이 정부 위에 존재하던 독일의 특성상 나치의 군사력을 담당하던 룀의 추종세력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돌격대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히틀러가 룀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역으로 제거될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히틀러는 있을지도 모르는 SA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수층과 군부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SA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결국 히틀러는 룀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힘러와 하이드리히에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전차 승무원 출신이자 폭력배였던 요제프 디트리히에게 SS를 이끌고 가서 해치울 것을 명령한다. 장검의 밤 사건으로 룀과 그를 따르는 세력이 전멸하면서 SA는 급속히 세력이 줄어들기 시작하고(그 뒤에도 일개 경호 및 의장 등을 위한 조직으로 존재는 했지만), 대신 SS의 세력이 급격히 커져 1933년부터는 정식으로 정부 조직으로 들어가 경찰권까지 접수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종전시까지 모든 독일의 경찰 공무원들은 자신의 경찰 계급과 동급의 SS 계급을 함께 부여받았다. 다만 이들은 사실상 SS가 아닌 데다 강제로 입대한 SS 대원은 개별 전범 행위가 없으면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후에도 전범 처리는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SS 장관 하인리히 힘러는 히틀러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며 우상숭배를 하듯 받들어 모셨고, 게다가 나치당 초기에는 사무에 능력 있던 인텔리였기에, 히틀러의 총애를 얻어 2인자 헤르만 괴링의 뒤를 이어 독일의 사실상 3인자로 군림했다.

고대 게르만 전설이나 판타지 등에 관심이 많던 힘러는 인종학적으로 우월한 독일 민족을 주장하고 체계화시켜 SS 대원은 3대에 걸친 신상증명서와 외모가 우수해야 했으며 온갖 게르만 의식과 고대문자 등을 심벌처럼 사용케 했다. 특히 SS의 본거지인 베벨스부르크 성 곳곳에 새겨진 슈바르체존네가 대표적이다.

펠릭스 슈타이너 장군이 친위대 초기에 아름다운 저능아들이라고 비꼬았다는 말은 실제로 없는 일이라고 한다.

3. 세부조직

3.1. 일반친위대

Allgemeine Schutzstaffel (알게마이네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가 창설되면서 기존의 '일반' 친위대 조직은 "알게마이네 SS"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형식상으로 양자가 완전히 독립된 것은 아니지만 무장친위대가 국방군 총사령부의 작전 지휘를 받는 육/해/공군과 동급의 사실상 제 4의 군대가 되면서 알게마이네 SS와는 사실상 별도의 조직처럼 되었다.

더구나 병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무장 SS 내에 연합군 포로 중 전향자로 부대를 창설한 것은 물론, 심지어 점령지에서도 현지인 부대를 창설하는 등 '완벽한 게르만 인종'이라는 지원요건까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이를 두고 알게마이네 SS의 고위급 장교들이 무장친위대를 '친위대 같지도 않은 놈들'이라고 투덜댔을 정도였다.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포로로 잡힌 SS 부대원이 통역을 통해 "우린 폴란드인입니다"라고 하자 미군이 "SS 주제에 폴란드는 개뿔!" 하고 흥분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군도 마찬가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볼 수 있듯 체코슬로바키아인들까지 징집한다.

그러나 이건 친위대 내부의 구분에 불과하며 연합군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친위대고 전쟁범죄와 각종 만행을 저지른 작자라는 점 역시 똑같이 인정받아, 강제 입대한 자를 제외한 하사 이상 SS 대원들은 전원 전범으로 기소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무장 SS 출신들도 이들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겼는데 한 것도 없이 후방에서 폼이나 잡아댔으면서 자기들 무시하고 전시엔 포로로 잡히기 전에 도망이나 다닌 것들이라며 치를 떨기도 한다.

이들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고 포로 학살 등도 무장 SS가 저질렀으며 혹여 활동했어도 전쟁 이전에 활동했는데 무슨 전쟁 범죄가 있냐면서 알게마이네 SS들을 커버치는 '알게마이네 SS 선옥론'을 외치는 일부 정신 나간 인간들도 있다. 이건 명백한 헛소리인데 그 악명 높은 아인자츠그루펜에 알게마이네도 상당수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무장친위대보다도 배는 더 악질이라고도 볼 수 있고 (윗 문단에서 알다시피) 알게마이네가 나온 배경이 우생학 그 자체인 만큼 토텐코프(수용소 전문부대)와 함께 같은 독일민족까지 학살하고 다녔다. 게슈타포야 악명높고 브란트게브하르트를 휘하로 둔 T-4 프로그램의 총책임자 필립 보울러(Philipp Bouhler)가 알게마이네 소속임을 안다면 알게마이네 선옥론 따위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국내에서 이런 헛소리를 떠들고 다닌 이는 어느 알게마이네 군복류를 모으던 (당시)고딩 밀덕으로, 다른 밀덕 사진을 무단 도용해 모욕적인 글을 썼다 형사 고발되어 이를 무마한답시고 부모가 나서 당사자에게 사과와 합의금을 전달하게 만드는 추태를 연출한, 좀 모자란 인간이다.

3.2. 무장친위대


Waffen Schutzstaffel (바펜 슈츠슈타펠)

3.3. 특수작전집단


Einsatzgruppen(아인자츠그루펜)

3.4. 비밀국가경찰


Gestapo(게슈타포)

4. 계급

슈츠슈타펠/계급 문서 참조.

5. 이야기거리

5.1. 제복

파일:SS1.png 초창기 SS의 제복은 검은색을 메인으로 만들어졌다. 파일:SS2.png 루돌프 헤스12인치 피규어
파일:SS3.png M43 야전모를 쓴 친위대 병사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lvc35d16uQ1qg5z8jo1_500.gif 친위대의 위장전투복

전쟁 이전에 쓰던 검은색 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친위대 소속이었던 카를 디비히(1899 ~ 1985)라는 인물로, 디자인 학교 교수였던 이력을 발판으로 제복 뿐만 아니라 친위대 단검 등 여러 물품을 멋지게 고안했다. 세간에는 슈투트가르트 근교 작은 의류회사를 운영하던 휴고 보스가 제복을 디자인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보스와 그의 공장은 단지 제복 생산에 관여하였을 뿐이다. 당시 휴고 보스는 하청업체 수준의 영세한 회사였다. 물론 휴고 보스도 열성적인 나치당원이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 후임 휴고 보스 사장이 제복 생산에 대해서 사과하고 그에 대한 배상금도 기부했다.

흔히 알려진 SS의 검은색 제복과 빨간 완장의 이미지는 일반친위대(Allgemeine SS)와 '토텐코프페이반데'(SS-Totenkopfverbände)의 복장으로, 이 복장은 1939년에 전쟁이 본격화되고 이들이 무장친위대(Waffen SS)로 전환하면서 폐지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간기에만 쓰였던 복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흔하게 매체에서 알려진 것처럼 2차세계대전시기의 무장친위대가 입고 등장하면 고증 오류가 된다.[7] 주로 고증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라이트한 영화나 게임 등의 매체에서 그렇게 나오는 편이다. 이에 심지어 이들 매체에선 단순히 간지가 난다고 검은색 정복에 2차세계대전 시기 철십자 훈장까지 달고 나오는 판이다. 이러한 제복은 실제로 간지도 나고 SS친위대의 특징을 부각하기에는 좋지만 역사적 고증의 디테일은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검은색 제복이 등장하려면 전간기 독일 내전이나 장검의 밤 사건과 같이 나치가 막 독일을 장악해 갈 시기의 배경으로 나오는게 맞다.

히틀러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본받아 제복 문화를 좋아했으며, 굳이 제복을 안 입어도 될 만한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제복을 입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나치독일 시기에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 교사, 기관사, 상선사관, 법관, 외교관 등 독일 내 거의 모든 공직자들이 직책에 맞는 군모와 제복을 입고 직급에 맞는 계급장까지 달았다.

괴벨스장애인인 데다가 선전장관이었기 때문에 전혀 제복이 어울리지 않지만, 괴벨스조차도 군복스러운 당원 정복 등을 입고 나온 경우가 많다. 아들도 친위대에 입대시킨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도 제복 입고 나온 사진이 많다. 단, 이 시기엔 소련 등 여러 국가들도 외국에서 자국의 국력 과시 역할을 기대하여 고급 외교관들에게 화려한 제복을 지급하는 경향이 컸기에, 나치 독일만 유별났던 건 아니었다.

SS는 SA의 갈색 제복을 그대로 입었으나, SA 간부들이 장검의 밤으로 숙청된 이래 SS가 SA를 넘는 조직이 되어 SA와 차별성 및 우월감을 나타낼 필요성이 대두되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 재무장에 나서면서 "남성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의 군복이 필요해져, 이들의 주문에 의해 카를 디비히 교수가 디자인한 검은색 군복이 채택되었던 것. 히틀러는 이 군복을 통해 친위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적군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목적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셔츠는 SA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갈색이 제식이었으나, 개인이 임의로 흰색 셔츠를 속에 받쳐 입기도 했다. 넥타이는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설마 그럴 사람은 없을테지만, 유럽에서 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많은 국가에서 체포된다. 표현의 자유이건, 코스프레건 뭐든 간에 예외없다. 이 복장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이기 때문. 게다가 프랑스, 폴란드같이 나치에게 특히 시달렸던 나라에서는 체포되기 전에 시민들한테 흠씬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 혐오의 대상이자 무서울 것 없이 망나니짓 하고 돌아다니는 네오 나치들조차 이 제복을 함부로 입고 다니지 않는다. 영국 등 일부 법적으로 관대한 국가의 경우 직접 나치즘에 찬동하는 언행이나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이상 법적 처벌은 못 하지만, 대신 시민들의 욕설이나 물리력 행사를 각오해야 한다. 보통 리인액트먼트의 경우 제한적인 장소에서 친나치적 퍼포먼스가 없이 착용할 경우 정도가 많이 허용되는 수준이고, 독일 같이 규제가 강한 곳은 영화 촬영용 복장조차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마크류가 있으면 떼어서 따로 보관하다 촬영 장소에서만 부착해야 할 정도다.

파일:152553.jpg
한때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경호실의 제복을 SS를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유용원 기자가 취재를 정리해 공개한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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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전쟁이 임박할 무렵 SS를 사조직에서 정규군화시키는 데 성공한 SS 장관 힘러가, "검은 제복이 간지는 나는데, 옛날에 전투력은 형편없으면서 병정놀이한다고 비아냥거리던 시절이 생각나니 검은 제복은 예복으로 빼고 정복으로는 군인다운 회색 옷으로 바꿔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위와 같은 회색 정복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위와 같이 넥타이를 멘 정복도 야전에선 소용이 없었고, 종전 때까지 소수 실전에서 쓰이긴 했지만, 주로 후방에서 예복으로만 사용된다. 대부분 실전에서는 후술할 M36 제복이 사용된다.

SS로부터 피복을 지급받은 인원들은 회색 제복으로 대체 지급되었고, 전쟁 후반기엔 양복점에서 사비로 맞추어야 했으며,[8] 회수된 검은 제복은 이후 창설된 외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SS 대원들이나 현지 친독 민병대 등에게 약간의 개조를 거쳐 지급되고, 종전 시기엔 국민돌격대에게 지급된 잡다한 군복들 중 하나로 소모되었다.

파일:zqwcgqq3b2711.jpg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자, 실전에서는 친위대도 국방군처럼 독일군의 양산형 제복인 M36 제복을 도입하였다. 그렇기 때문이 야전에서는 독일 국방군과 동일한 옷에, 칼라탭과 독수리 장식의 위치가 다른 것으로 국방군과 구분할 수 있었다. 실전에서 주로 쓰였기 때문에 무장친위대 장교의 기록 사진을 찾아보면 대부분 이 형태이다.
...그리고 벤 양은 나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군인들이 팔에 새 문장이 달려있었는지 모자에 새 문장이 달려 있었는지 그 러시아 군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요구한다. 즉 그들이 국방군이었는지 아니면 SS였는지 말이다. 그 러시아 군인은 질문의 의미를 금방 이해한다. 러시아 마을에 있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9]

회색 군복을 입은 독일군의 소속이 국방군인지 친위대인지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가문장(독수리 장식)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국방군은 국가문장을 오른쪽 가슴에 부착하고, 친위대는 왼쪽 팔뚝에 부착하기 때문이다.[10] 이는 당대에도 널리 사용되는 식별법이었다. 베를린의 여인에서는 화자인 독일 여성과, 그녀와 대화하는 소련군 병사 모두가 이 식별법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소련-동유럽의 경우 저 독일군이 친위대냐 국방군이냐 구별하는 게 목숨줄을 쥔 경우도 있어서...

다만 깔끔한 검은 제복을 버리고 칙칙한 회색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저항이 없지 않아, SS 본부로부터 먼 외곽 지역에선 1943년 무렵까지 규정을 무시하고 슬쩍 착용한 경우도 존재한다. 전쟁 후반에 들어가면서 국민돌격대가 구성되어 어떻게든 입혀야 할 군복이 필요해지자 반납되거나 지급이 중단돼 쌓인 검은색 제복 재고품 위에 국민돌격대 완장을 수선한 다음 전선에 내보낸 사례도 있었다.

파일:external/www.wwii-photos-maps.com/Waffen-SS%20%20076.jpg
일선에서 흙먼지 속에서 뒹굴어야 하는 무장 SS의 경우 육군과 별 차이가 없는 형태의 회록색 전투복을 지급받았고, 당연히 전쟁 말기로 갈수록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 흑복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져 갔다.

파일:external/www.dws-xip.pl/ss3.jpg

정규군 중 최초로 부대 단위로 위장복을 채택한 세력이다.[11] 꼼꼼한 독일인들답게 초창기에는 Platanenmuster와 Rauchtarnmuster, Palmenmuster, Eichenlaubmuster 같은 춘하/추동에 맞는 색상의 2가지 위장복을 만들었다가, 이후 예산 절감 등을 위해 점박이(Dot) 형태의 4계절용 위장 무늬인 Erbsenmuster를 만들었다. 이 무늬들은 현대에 써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위장력이 좋았다. 현재 독일연방군이 전군 공용 위장무늬로 채택하고 있는 점박이라는 뜻의 독일어인 플렉탄(Flecktarn)과 비슷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독일 패망 5년 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는 KLO 부대가 이 군복을 그대로 입었다. 몇몇 사진을 보면 미국에서 KLO 부대에 보급할 때 일일이 떼어내기 귀찮았던건지 슈츠슈타펠 계급장도 안 뗀 그대로 있다.

다만 위장무늬 전투복이 나치와 그 선봉장인 무장친위대 그 자체를 상징해버린 나머지(육군과 공군 지상부대도 위장무늬를 사용했으나, 무장친위대가 사용한 것과는 다른 Splittermuster와 Sumpftarnmuster, Leibermuster(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서 동시에 사용함)를 사용했다), 위장무늬에 대한 서독군의 거부를 야기해 대다수의 서독군은 민무늬 군복을 사용했고, 국경 수비대 등 소수만이 육/공군용 무늬와 유사한 것과 사용했다.[12] 하지만 위장복의 필요성은 존재했기 때문에, 1976년에 플레크타른 위장무늬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위장무늬가 무장친위대가 사용한 Erbsenmuster와 유사했기 때문에 1980년대에 방탄모 덮개와 방탄복에 제한적으로 적용되었다가, 독일 통일이 일어난 1990년에야 군복에도 적용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서독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게서도 나타났다.[13] 신기술이 반드시 발전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례. 여담으로 친위대들이 사용한 Eichenlaubmuster 위장무늬는 훗날 러시아군에서 참고하여 '파르티잔 패턴'이라는 이름으로 특수부대에서 사용된다.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Erbsenmuster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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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승무원복은 초기에는 물자 부족으로 육군의 것을 같이 사용했으나 이후의 복장은 육군의 것과 재단 형태가 조금 차이난다. 이 검은색은 구 프로이센의 육군 경기병의 검은 군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전차 승무원복 색으로 채택된 바 있는데, 정비하면서 많이 묻는 기름때 등을 가려준다는 장점도 있었으나 하차전투시 위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인해 전쟁 중후반기엔 덧입는 회록색 작업복이나 위장무늬 피복이 채용된다. 전차가 아닌 자주포하노마크장갑차 승무원용으로 같은 디자인에 색만 회록색인 피복을 지급한 것은 육군과 동일하다. SS용 전차 및 장갑차 승무원복은 루프트바페의 전차 및 장갑차 승무원들에게도 지급됐다.

그 외에 1943년 9월 이탈리아에 주둔한 기간에 이탈리아군의 군수창고를 접수, 이탈리이군의 Telo mimetico 위장무늬 천으로 독자적인 복장을 만든 SS 제1기갑사단(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 LSSAH) 등과 같이 사단 내에서 독자적으로 위장복을 만들어 지급한 사례도 있고, 이탈리아 해군에 수출됐던 크릭스마리네가죽[14]을 대거 노획, LSSAH와 SS 제12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말기에는 일부 육군사단의 전차 승무원의 방염복으로 지급한 경우도 있다. 가죽이라는 특성상 방염효과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 가죽옷은 미하엘 비트만요아힘 파이퍼가 입은 사진 덕분에도 유명하다. 하디 크루거 항목에서, 무장친위대 사단장 역을 맡은 배우가 입고 있는 옷도 그 옷이다.

5.2. 문신

친위대 소속 군인들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특징적인 문신이 있었다. 왼쪽 팔의 겨드랑이와 닫는 부위 쯤에 1cm가 좀 안되는 크기로 자신의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긴 Blutgruppentätowierung(혈액형 문신)이 그것.

이 문신의 용도는 물론 큰 부상을 입었는데 군번줄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 군의가 신속히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문신의 위치가 왼팔의 높은 곳인 이유는 팔다리가 달아날 정도의 부상을 입더라도 왼팔 어깨죽지 부근은 붙어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거기가 날아가버릴 정도의 큰 부상이라면 어차피 죽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

그런데 국방군 소속의 장병이 친위대 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경우에 이 문신을 새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꽤 실용적이긴 하니까.

전쟁이 끝나고 독일이 패망한 후에는 연합군이 이 문신의 존재 여부로 친위대 소속이었던 자들을 색출하는 데 사용하였는데, 위의 언급대로 국방군 장병들 중에도 문신을 새긴 자들이 많다 보니 억울하게 잡힌 사람도 꽤 나왔다고 한다.[15]

5.3. 참전자들

SS 출신 참전자들은 전후 SS가 완전한 범죄 조직이자 흑역사로 거듭난 덕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제 편입된 자들을 빼고는 일체의 참전군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거부당하고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기 일쑤였다. 후일 파울 하우서 장군이 HIAG(SS 참전용사 상조회)를 설립하였지만 이쪽도 극우파, 역사 수정주의자들로 몰려 감시당하다가 해체됐다.

하지만 SS 참전자들은 나치 이념과 관계 없이 '정예'라는 외양에 혹해서 지원했다는 사람도 있고, 강제로 징집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국방군이 무죄고 SS는 유죄라는 식의 논리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짙게 깔려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 다 전쟁범죄의 주체이고 SS가 나치즘에 쩔어있던 것 이상으로 국방군 역시 나치즘에 경도되거나 나치에는 반대하지만 군국주의자였던 사람들 투성이이기 때문에, 한 조직만을 흑역사화하는 식의 논리는 불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 영상. 당시의 참전자들에 의하면 SS는 뭔가 새로운 정예병이라는 선망의 시선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잔인할 정도의 훈련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탈영하다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영상에서 SS의 전쟁범죄를 여과 없이 언급하며 군 이외에 SS를 따로 만든 것을 까고 있는 국방군 장교조차도 SS가 전투력으로서는 아주 훌륭한 정예병이었고 항상 최신 장비를 지급받았기 때문에 근처에 SS 부대가 있으면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정도이다.[16]

다만 나치 독일의 장및빛 선전과 달리, 무장친위대를 실질적으로 정예군으로 볼 수는 없었다. 전쟁 초반기의 무장친위대는 동유럽 침공 시절부터 온갖 전술적 병크를 저질러대, 국방군으로부터 '잘생긴 저능아들'이라고 까였으며, 후반기에 편성된 부대들은 전투력이나 장비수준이 국방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뿐 정예라고 보기 어려운 부대들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SS 제17기갑사단 괴츠 폰 베를리힝엔이다.) 거기에 전황이 기울어지자 급급하게 편성한 외인부대들이나, 숙련도가 없이 투입된 징집 자원들은 도리어 없는게 나을 형편을 보여줬고, 학살과 각종 범죄만 저지르고 다녀 SS의 악명에 일조한 부대도 있었다. 대표적인 놈팽이들이 디를레방어 여단과 카민스키 여단이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역시 이들을 깐 적이 있다. 무장친위대보다는 차라리 팔슈름예거가 더 정예군의 정의에 부합한다.

당연히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SS 출신 참전자들은 좋은 대우를 못 받는다. 하지만 반대로 독일보다 폴란드와 소련에게 더 시달린 바 있는 발트 3국(독일령 연간에는 동방 국가판무관부)에선 대우가 괜찮다. 사실 이 나라들에서 친위대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소련에게 매우 시달린 역사가 있으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이와 관련된 문제로 주변국인 폴란드, 러시아 등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같은 이유로 똑같이 러시아와 폴란드에 시달리던 우크라이나에서도 초기에는 평가가 좋았다. 적어도 초기에는. 당시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이들을 러시아와 폴란드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킨 해방자들로 평가했고,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이들과 손을 잡고 그동안 자신들을 못 살게 부렸던 소련인들과 폴란드인들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아인자츠그루펜 때문에... 그 외에도 남미 같은 제3국으로 적지 않은 SS 참전자들이 이주를 했는데 심지어 이란 같은 중동으로 이주한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선 독일이 아닌 영국, 프랑스, 미국에게 시달린 역사가 있기 때문.

얼마 전인 2013년에 히틀러 지하 벙커의 통신부사관이었던 로후스 미슈 SS 통신상사가 죽기 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련과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SS 전차 승무원으로 참전한 바 있는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친위대 입대를 후회한 바 있다.

친위대 출신들은 전후 서독 사회에서 국방군 참전자들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았다 사회적인 차별은 물론이고 심지어 연금 지급대상에서 초기엔 제외되었다. 그러나 악질 전범만 친위대에 가입한 게 아닌 이상 반발은 필연. 친위대 참전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여론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는 반응이 많았다. 친위대 참전자들의 대다수가 악질 전범이나 나치 추종자라기보다는 엘리트 대우를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범으로 확정되어 연금지급이 원래 불가능한 자들을 제외한 단순 친위대 참전자들은 정식으로는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사실상 군인으로 대우하여[17] 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처음엔 국방군이었다가 친위대로 이적한 사람들에게만 주다가 친위대원 전체로 확대되었고, 소련 해체 후에는 발트 3국 출신의 친위대 참전자들에게도 지급되었다.

전후에 세워진 서독군에서도 SS 출신 병사들이 존재하였다.[18][19]

게다가 친위대는 주로 파르티잔 토벌에 굉장히 능숙하였기에 남미로 탈출하고 용병으로 뛰면서 현지의 공산 게릴라들을 사냥하고 다닌 친위대 장교와 하사관 출신들도 있다.

반면 소련에게 피해를 받은 발트3국에선 SS 출신 참전자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편이고, 나치 독일 자체를 해방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끔 이런 행사도 연다.[20] 독일러시아 입장에선 어그로

2차 대전 한참 진행 당시 포로가 된 친위대원들의 사진을 보면 거의 99%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들을 찍은 사진들이다.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 친위대원들을 찍은 사진은 정말 찾기 힘든데,[21] 이유는 소련군이 이들을 잡으면 무조건 사살했기 때문이다. 장교가 굳이 지시할 필요도 없이 SS가 소련에서 저지른 학살이 정말 장난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련군 병사들에겐 이들에 대한 원한이 쌓일 만큼 쌓여 있었다. 설령 총살을 피하고 시베리아로 끌려갔어도 살아서 돌아온 이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기껏해야 프리츠 크리스텐 정도.

다만 전쟁 말기에는 사실상 승패가 갈렸고 초기 광신 나치들은 다 죽고 그냥 엘리트 삘 나니까 입대하거나 강제편입된 자들이 대다수가 되면서 전범 색채가 조금 희석되는데, 이 때부터 잡힌 SS들은 그래도 정규군에 가깝다고 봐서 항복을 받아주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전쟁 말기 사실상 패망 직전일 때, 전범 색채가 희석되어 대다수가 징집 자원에 가까운 대원들로 구성되어 더 이상 복수의 대상이 되기 어려울 때나 항복을 받아줬다고 보면 된다. 물론 개중에는 전범이 아님에도 어쨌건 나치 사상에는 충실하여 끝까지 저항한 자들도 있기는 했다.

SS 대원들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오래 수감되어 포로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고, 국민돌격대 등의 포로들은 대부분 전쟁 끝난 직후, 정규군 포로들도 몇 년 안에는 대부분 풀려난 반면 이들은 195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석방이 시작되어 가장 오래 갇힐 경우 1955년에야 독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1955년 소련에서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온 독일군 포로들의 대표를 맡은 인물은 영화 몰락에도 등장한 바 있는 에른스트 귄터 셍크로, SS 중령이었다. 그나마 그는 군의관이었기에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힐 수 있었다.

6. SS 관련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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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슈츠슈타펠 로고.png 슈츠슈타펠의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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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 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 카를 항케
최상급 집단지도자 파울 하우서 요제프 디트리히
상급 집단지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테오도어 아이케
집단지도자 헤르만 페겔라인 하인리히 뮐러
여단지도자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쿠르트 마이어
빌헬름 몽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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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울 하우서 - 무장친위대의 아버지.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초대 사단장이다. 무장친위대의 몇 안되는 개념인이었다.
  • 요제프 디트리히 - 파울 하우서와 함께 무장친위대의 최고참 중 한 명으로, 제1SS기갑사단 LSSAH의 초대 사단장이었다. 전후 HIAG의 회장직을 맡았다. 파울 하우서나 빌헬름 비트리히같이 적극적으로 개념인스러운 행보를 보인 바는 없지만 딱히 막장스럽지도 않았다.[22][23]
  • 카를 항케 - 마지막 친위대 국가지도자. 저지 슐레지엔 관구장 재임 당시 약 1,000명을 처형하여 브레슬라우의 교수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힘러의 배반이 확인된 이후 독일 경찰청장과 국가지도자를 승계받으나 이미 패전은 확정된 상태였으니 제대로 해본 건 없다. 브레슬라우 공방전 이후 프라하로 탈출하여 제 18 SS 의용척탄병 사단 호르스트 베셀에 숨었으나 이 부대는 체코를 탈출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다. 이후 SS 포로수용소 복역 중 탈출을 꾀하다가 사살되었다는 공식 기록이 있으나 일설에는 체코인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낸 후 구타하여 죽였다고 한다.
  • 하인리히 뮐러 -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흔히 "게슈타포 뮐러"라 불린자다.
    동부전선 학살에 일조한 인물이다. 또한 2차대전 종전 이후 유일하게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최고위 나치 인물이다.
  • 하인츠 지크프리트 하이드리히 - 위의 하이드리히의 남동생으로 유태인과 집시를 구한 위대한 영웅. 특히 셸렌베르크가 "형놈과는 달리 인성이 괜찮네"라며 칭송까지 했다. 1944년 11월에 자살.
  • 후고 블라슈케 - 아돌프 히틀러의 치과주치의
  • 테오도어 아이케 -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의 초대 사단장이다. 광신적인 나치 신봉자로 포로학살과 인종범죄로 얼룩진 토텐코프의 악명은 이 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장검의 밤에른스트 룀을 살해하였으며 다하우를 비롯한 초기 강제수용소 경비부대를 맡을 당시 수감자에게 노골적인 학대를 할 것을 명령하였다. 다만 부하들한테선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과 구데리안 같은 명장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같은 편에게 나름 신망은 있었던 듯하다.
  • 카를 베커 - 무장친위대 소속으로 그도 히틀러와 나치 지지자였으나 '홀로코스트와 인종차별에는 무관심했었으며, 오히려 돈을 받고 이들을 구해줬다. 괴링과는 달리 전 재산을 빼앗지는 않았으며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이 사람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후에는 사업가가 되어 독일 최대의 거부가 되었다.
  • 쿠르트 게르슈타인 - 친위대 장교이자 무장 친위대 위생학 연구소의 구성원으로, 베우제츠와 트레블링카에 있는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대량 학살을 목격하였다. 스웨덴의 외교관 예란 본 오테르(Göran von Otter)와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교황 비오 12세를 포함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원들과도 접촉하여 국제 사회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리고자 하였다. 1945년에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른바 <게르슈타인 보고(Gerstein Report)>를 썼으며,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 하디 크루거 - 그 영화배우 맞다. 16살에 아돌프 히틀러 학교에서 아역배우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징집되어 니벨룽 사단으로 보내졌다.
  • 펠릭스 슈타이너 - 다운폴 초반에 히틀러가 "슈타이너는 유능한 인물이야. 다른 군과 합류해서 밑으로 내려와 포위망을 형성만 하면 다 해결될거야" 라며 언급했던 그 인물 맞다. 훌륭한 지휘력과 판단력을 지녀서 제3SS기갑사단을 지휘한 경력이 있는 고위 장교였으며, 소련이 베를린 코 앞까지 들이닥친 전쟁 말기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 히틀러가 그를 제11SS기갑군사령관으로 임명하지만 압도적인 소련의 물량 공세와 베를린 공방전 이전에 히틀러가 벌인 벌지 전투로 사실상 궤멸상태라 할 수 있는 독일군 상황상 새롭게 부임한 11기갑군은 말 그대로 이름 뿐인 군대이기 때문에 제대로 싸우기도 힘들었으며 기름도 없어서 전차도 돌릴까 말까인 상황에 히틀러는 9군과 합류하여 소련군 전선에 돌출된 3개의 사단을 포위 및 섬멸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슈타이너는 이미 베를린 방어에 할당 및 배치한 병력을 다시 불러들이면 수비진 두께가 얇아지기 때문에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을 최대한 쥐어짜내도 많아야 무장마저 빈약한 2개 대대급 병력만 지휘할 수 있다는 현실에 슈타이너는 빌헬름 카이텔과 같은 상급자에게 공세를 하려면 크릭스마리네에서 차출한 수천 명의 해군 육전대가 도착해 역할을 교대해야 가능하다며 이 작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히틀러에게 재고 요청[24]을 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씹어버린다. 결국 슈타이너는 무리인 작전이라 판단하여 포기한다.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 기소되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고 1966년 5월 12일에 사망한다.
  • 빌헬름 비트리히 - 무장친위대에서 가장 유능했던 기갑 지휘관. 발터 모델과 함께 아른헴에서 제2SS기갑군단을 이끌고 영국 공수부대를 개발살내며 마켓 가든 작전을 무산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파울 하우서와 함께 무장친위대의 몇 안되는 개념인이다.
  • 아몬 괴트 - 폴란드의 크라코프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다. 재미로 사람을 쏴죽이는 등 인간 도살자였다. 이러고도 전후 자신의 죄는 힘러가 시켰다는 헛소리나 지껄였다.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쳤다.
  • 귄터 그라스 - 전후 독일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양철북의 작가이다. 일설에는 유겐트에서 친나치 발언만 좀 했다고 하지만, 미국 문서에서도 확인된 마당에... 공군에 징집되었다가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17세 시절에 멋모르고 한 일이라서 1990년대에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주 큰 파장은 없었다. 무장친위대는 원칙상 자원입대에 복무기간도 국방군보다 배는 더 길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한다. 무장친위대도 병력이 부족하면 국방군에게서 병력을 넘겨받기도 했다. 무장친위대 군복의 좌완에서 가끔 보이는 V자가 3개 겹쳐진 표식이 바로 국방군이 친위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때 부여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라스가 소속된 부대가 1945년의 심각한 병력 부족의 상황하에서도 최우선으로 재편되었던 제10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의 기갑부대인 것 등을 보면, 국방군에서 징집한 인원이 친위대로 넘어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강제 징집된 국방군 출신들은 나중에나마 무장친위대 취급을 면하기도 했다.
  •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 소속이자 '폭풍 속의 씨앗'의 저자. 출판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긍정적이진 않지만 부정적이지도 않으나, 회고록인 '폭풍 속의 씨앗' 자체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당시의 전황을 잘 묘사했지만 악명높은 토텐코프 사단 옹호 등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편이라 어느 정도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 프리츠 크뇌힐라인 - 토텐코프 소속 장교. 1940년 프랑스 전투 중 르 파라디에서 영국 노보크 연대 병사 89명에 대한 학살을 주도했으며 학살의 증인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를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도망치는 여자들까지 조준 사격했다. 브루네거가 이때 "저들은 여자잖습니까" 라고 항명하자 이 이후로 그에게 온갖 명령을 하며 그를 죽이려 들었다. 종전 후 영국에 인도되어 르 파라디 학살의 책임을 지고 1949년에 사형당했다.
  • 루돌프 회스 ^ -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소장으로, 수백만이 죽은 인종청소의 가장 큰 주범이다. 의도적인 살해가 아니라 병과 기아 등 어쩔 수 없는 죽음이 대부분이었다고 되도 않는 변명을 하기도 한 진정한 쌍놈. 죽기 전에 목숨을 구걸할 요량이었는지 자기가 저지른 짓이 인류에 대한 범죄임이 분명하며 사죄한다는 식으로 데꿀멍하는 내용의 서찰을 쓰고 죽었으며, 나치 독일의 범죄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악마였기 때문에 목 매달린 자리는 현재까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연합군이 그의 죄악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아우슈비츠 근처까지 끌고 가서 교수형에 처했다고 하는데, 나치의 핵심 전범들조차 그런 대우는 받지 않은 점에서 얼마나 죄가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프리츠 크리스텐 - 두브로프카의 대전차포. 홀로 50mm 대전차포를 조작하여 T-34 여러 대를 격파하여 친위대 최초로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 요제프 크라머 ^- 안네 프랑크가 있던 수용소의 수용소장. 포로식량비를 착복했으며 수용 능력의 8배가 넘는 8만 8천여 명을 쑤셔넣은 결과 티푸스가 창궐, 매일 250~300명씩 죽어나갔다. 그러나 처리를 못해 쥐가 시체를 먹고 산 사람까지 공격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3만 7천여 명에 달했다. 당연히 영국군에게 잡힌 후 열나게 두들겨 맞고 총살당한다. 이때는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 카를 게프하르트 - T-4 프로그램 계획 및 그가 저지른 생체실험은 멩겔레를 초월한다. 전후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부하인 카를 브란트와 함께 헌병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신나게 얻어맞아 인사불성이 된 채로 교수형. 왜 같은 나치들도 폭행했냐면 그들에게조차 이놈이 벌인 행각이 자신들에게조차 생각도 못할 끔찍한 행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태인, 소련군 포로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지만 나치당원 중에서도 인간적인 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T-4 프로그램은 자국민에게 적용되었던 만큼 자국민을 죽이고 생체실험한 놈을 좋게 대해줄 리가 만무했다. 타치바나 요시오가 같이 수감된 장군들과 그 부하들에 얻어맞은 이유랑 같다.
  • 카를 브란트 - 상관인 게브하르트와 함께 T-4 프로그램 및 생체실험을 자행한 멩겔레, 카를 게브하르트와 함께 이 항목에서도 손꼽히는 인간말종. 멩겔레의 상관으로 멩겔레의 미친 실험에 자주 조언 등을 하기도 하였다. 독일인을 주로 죽인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놈이 인간말종인 건 변함 없다. 그리고 전범재판 자체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응징 목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자국민 학살자도 처벌 대상에 들어갔으므로 결국 그 역시 전범으로 분류되어 헌병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게브하르트와 함께 처형되었다.
  • 일제 코흐 - 악행에 있어 이르마 그레제와 친구 먹는 개쌍년. 이년은 감옥에 갇혀있다가 자살했다.
  •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 - 36 SS 장갑착탄병 사단 디를레방어의 사단장. 바르샤바 봉기 당시 폴란드 주민과 유태인들을 대량학살한 무장친위대가 자랑하는 인간쓰레기. 게다가 전과마저 엄청나게 화려해서 어린 여중생을 강간한 전력까지 가진 놈이다. 맙소사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자기가 저지른 학살을 파울 하우서가 지시했다는 개소리나 지껄이고 앉았다. 결국 수용소에서 연합군 헌병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사형 집행도 못 받고 죽었다. 오토 스코르체니와는 사이가 엄청나게 안 좋았다.
  • 위르겐 기르겐존 - 제5SS기갑사단 비킹 소속의 병장. 위의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를 말한 주인공. 무장친위대 소속 중 몇 안되게 진심으로 뉘우치고 전후에 사민당원으로 활동하였다.
  • 프리츠 랑앙케 - 판터 에이스로 다큐 '지상 최대의 전차전'에 등장한 바 있다. 2012년 사망.
  • 에른스트 바르크만 - 잘 알려진 판터 에이스. 전후 자신이 SS 참전자인 것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의 고향에선 대우가 좋았다. 전후 소방서장이 되었다.
  • 카를 니콜루시 레크 - 판터 에이스로 비킹 사단 출신. 코르순 포위전 당시 판터 D형을 타고 전투 중 후퇴하여 부대로 복귀할 것을 지시하는 무전을 받았지만 무전수에게 무전기를 끄라고 지시(!), 소련군에 대한 반격을 감행하여 다수의 전차와 중화기를 파괴하고 독일군의 돌파구를 만드는데 일조하여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 발타자르 볼 - 애칭 발티. 미하엘 비트만의 포수로 볼 역시 100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한 에이스였다. 비트만이 격파당할 당시 부상으로 본국으로 후송된 상태였기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전후 90년대까지 생존하였다.
  • 카를 프리치 -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가오 잡다가 정작 종전 후 재판에서 나는 그런 적 없다고 살려달라고 온갖 진상을 있는 대로 부렸다. 심지어 자기를 비난하는 검사 다리를 붙잡고 오줌이나 질질 싸면서 살려달라고 칭얼대었다. 결국 기관총으로 맞아 육체가 조각조각 날아갔다. 심지어 성가를 부르다 펠릭스 슈타이너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자세한 건 콜베 항목 참조.
  • 막스 지몬 - 토텐코프 사단장. 테오도어 아이케 사후 토텐코프의 사단장이 되었다. 그 역시 광신적인 나치 신봉자였다.
  • 오토 귄셰 - 영화 다운폴에서 히틀러에게 헤르만 페겔라인의 탈주를 보고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26] 전후엔 회사원으로 일하다 2003년 사망했다.
  • 헤르만 페겔라인[27] - 힘러의 부관이자 히틀러의 인척. 에바 브라운의 자매와 결혼했기에 히틀러와는 동서지간 인척이 된다. 힘러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으며, 1941년 그의 휘하 부대들이 벨라루스에서 민간인 1만 7천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불과 며칠 전, 몰래 총통벙커를 빠져나와 중립국으로 도망가다 친위대 국가보안국에 잡혔고, 히틀러의 분노를 사 결국 처형당했다. 헤르만 페겔라인의 남동생도 고위급 무장친위대 장교였는데, 동생 쪽은 전후에도 살아남았다. 바람둥이, 기회주의자에 민간인 학살에도 책임이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양심은 있는 놈이었다. 하인츠 구데리안의 회고록에 따르면, 바르샤바 봉기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된 카민스키 여단과 디를레방어 여단의 도를 넘은 잔혹성과 범죄행위에 대하여 총통에게 직언해 카민스키의 처형과 디를레방어의 보직해임에 일조했다. 또한, 바르샤바 봉기 당시 봉기군 지도자였던 부르 코모로프스키와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만나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봉기가 진압된 후에 그는 페겔라인의 도움을 받아 강제수용소가 아닌 페겔라인의 별장에서 지낼 수 있었다. 히틀러의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에도 자신이 출세와 재물을 좋아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었다고 한다.
  • 빌헬름 몽케 - 친위대의 규모가 작았던 초기부터 친위대에 몸담았던 인물로, 무장친위대의 가장 젊은 장성 중 하나였다. 다운폴에서 총통 경호 친위대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영화에서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베를린 수비에 전념하고 괴벨스에 의해 강제징집된 민간인들인 국민돌격대가 무기도 없이 억지로 투입되어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있다며 직언할 정도로 그나마 정상적인 판단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 베를린 방어군 사령관 헬무트 바이틀링과 함께 베를린을 향한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 보지만 결국 히틀러는 자살하고 나치 독일은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군생활을 마치게 된다. 포로를 학살한 적이 있으나 숫자가 적고 전시에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되어 기소되진 않는다. 이후 2001년에 90세의 나이로 죽는다.
  • 에른스트 귄터 솅크 - 친위대 의사. 소련에서 독일로 마지막으로 송환된 포로들의 대표를 맡았다. 영화 다운폴에선 상당한 개념인으로 묘사된다.[28]

7. 창작물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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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악역으로 나오며, 국방군이 일반몹이라면 슈츠슈타펠은 정예몹 포지션으로 그려진다. 국방군 무오설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임하는 개념인 국방군 병사와 사악한 나치 광신도 친위대원을 대비시키는 클리셰도 있다.

울펜슈타인 3D에서는 독일군과 달리 좀 어두운 파란색 제복을 입고 주인공을 발견하면 "흠빠골~"혹은 "훗바보~!!"(Schutzstaffel의 몬더그린)을 외치며 MP40을 두다다다 발사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습득하게 되는 MP40과는 질적으로 다른 건지 텅텅텅거리는 주인공의 MP40보다는 발사음이 묵직하고, 데미지도 상당히 괴악하다. 가까이서 맞을수록 데미지를 더 많이 받게 되는 울펜슈타인 특성상 근거리에서 이런 공격을 연속으로 맞으면 3초도 안 되어서 화면이 시뻘개지고 끔살당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래서 상당히 주의해야 할 적이다. 다행인 것은 총을 꺼내들 때 딜레이가 있고 한 번 공격을 맞으면 다시 총 꺼내들 때의 딜레이를 보여주므로 연사되는 무기로 잡으면 무난하다. 여러 명을 상대할 때는 두들겨 맞는 SS, 뒤쪽에 있는 SS[29]가 총을 발사하는 게 고스란히 플레이어를 향한 데미지로 들어가므로 주의할 것. 권총으로 잡을 수도 있지만 버튼을 연타하는 감각이 요구되고 위력도 낮기 때문에 비추천. MP40이 없는 상태에서 잡으면 죽을 때 MP40을 드랍한다. 같이 얻게 되는 약간의 탄약수는 랜덤. 버전에 따라서 6발 고정인 경우도 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에서도 당연히 등장하지만 보통의 병사들보다 좀 더 강한 무기를 들고 나오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긴 실제로도 큰 차이는 없긴 했고... 단, 몇몇 미션에서는 위장복 사양의 SS가 몇명 나오긴 한다.

울펜슈타인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으나, 이들이 베일의 힘에 노출되면 울펜슈타인판 언데드 '데스포일드(Despoiled)'가 된다. 이 녀석은 꽤 강적으로, 한마디로 은엄폐와 총기 사격, 마법 사용을 하는 언데드라고 보면 된다. 언데드답게 체력이 비상하게 높으며, 사용하는 마법 구체 투척 공격은 꽤 아프다. 일반 국방군 버전은 없는 걸 보니 SS만 이렇게 되는 듯.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 46년형과 60년 형이 등장하는데 두 종 다 권총밖에 부장이 없지만 헤드셋으로 일반 슈츠슈타펠 군인들을[30]부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주요 등장 나치들도 전부 슈츠슈타펠 소속이다. 아마도 교전지가 딱 친위대만 배치할만한 지역에서만 싸워서 그런 건지,(빌헬름 슈트라세의 성, 아이젠발트 수용소, 강제노동수용소, 달기지 등등) 아니면 친위대가 국방군을 먹어서 그런건지는 불명

둠 2: 헬 온 어스에서도 울펜슈타인 SS들이 등장한다. 숨겨진 울펜슈타인 3D 레벨을 패러디한 맵에서 등장하는데, 원작의 레벨에서 적이 등장하는 위치에 난이도에 따라 최대 4명까지 몰려다닌다. 비밀레벨 안에 숨겨진 2차 맵에선 사이버데몬과 함께 다수가 등장하는데 오히려 사이버데몬이 열받아서 플레이어보다 먼저 팀킬하게 만드는 잡몹 그 자체다. 공격은 원작처럼 기관단총을 연사하는데 원작보다 더 어설프고 결정적으로 거리에 따른 데미지 차이가 전혀 없어서 화력 자체는 형편없다. 물량공세를 논외로 친다면 SS가 차지하는 위치는 타 둠2 몬스터와 비교할 경우 샷건 가이헤비 웨폰 듀드 중간 정도의 위치. 게다가 공격받을 때의 비명소리도 좀비맨의 그 사운드를 재탕했다. 더욱 안습한 건 다른 몬스터와 동일하게 자기들끼리도 싸우는데 여러 마리가 나오면 어설픈 적중률에 자기들끼리 쏘다가 거의 죽어나가니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사망시의 비명은 울펜슈타인의 그것과 흡사하지만 원작 PC판에는 없는 소리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메인 악역은 친위대 보안대 소속의 '유대인 사냥꾼' 한스 란다 연대지도자(대령)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 캠페인이 들어간 게임이라면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초반에는 독일군이 나오다가 후반 베를린 전투까지 진행하면 등장하는 것이 전통. 월드 앳 워에서는 국회의사당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은 부상자까지 총 들고 뛰어나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표현해준다. 월드 앳 워의 SS는 보통 국방군이 회색 제복을 입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새까만 제복을 입고 있어 쉽게 구분 가능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참고로 여기서의 SS 친위대원들은 군복이 검은색 톤의 제복과 암녹색 톤의 제복 이 2가지로 나뉘어진다.

아이언 스카이에서는 월면 나치로 나온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2부 전투조류에 등장하는 루돌 폰 슈트로하임은 원작에서 슈츠슈타펠 소속으로 등장했으나, 그가 슈츠슈타펠이라는 설정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죠죠 발매 25주년 기념 애니메이션에서는 독일국방군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제복은 여전히 슈츠슈타펠 제복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확장팩 어포징 프론트에서 새로 등장한 진영 판저 엘리트(전차군단)은 마켓 가든 작전 당시 연합군을 막아낸 SS 부대를 모티브로 했다. 근데 어째서인지 정예인 SS의 장비가 오히려 국방군에 비해 어설프고 전투력도 딸린다.

파일:external/www.imfdb.org/Fury_MP40.jpg
퓨리에서 후반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근데 최종보스치곤 너무 엉성하다


제 1 SS기갑사단장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My honor was loyalty[31]라는 영화가 알렉산드로 페페(Alexandro Pepe)의 감독하에 제작되어 2016년에개봉했다. 페이스북


헬싱라스트 바탈리온이 바로 이들이다.

SS의 경우 대부분의 매체에서 국방군보다 훨씬 더 나쁜 놈들로 나오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한 예로, 머나먼 다리[32]켈리의 영웅들에선 나름 공정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일본의 전쟁만화가인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단편이나 종합이 아닌 순수하게 SS만 다룬 작품만 기재한다면 불꽃의 기사, 강철의 사신, 해피 타이거, 장갑척탄병, 비트만 전기 1943 등이 있다.

영-독 합작 영화 조이 디비전에서도 꽤 등장하는 편. 주인공의 회상에서 그들을 구해준 부상당한 SS병사와 영국 자유군단 소속의 SS중사가 등장한다.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렸다[33]에서 1943년 게토 봉기 당시 SS병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슈타이너 중령과 그의 병사들이 형벌부대로 격하된다. 후속작인 독수리 날아오르다에선 조지 워싱턴 여단 소속의 SS대위가 등장.[34] 나중엔 아일랜드로 망명한다. 동시에 힘러의 부관인 베르거 SS소령과 힘러와 대척하는 발터 셀렌부르크가 등장. 힘러와 베르거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는 완전히 나치즘에 잔뜩 중독된 인물이자, 개념까지 상실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슈타인브레너. 나이는 19살밖에 안 되었으면서 계급은 병장이나 되고, 일개 사병인 주제에 친위대라는 것만 믿고 국방군 지휘관들한테 깝쳐댄다. 근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국방군 주임원사, 소대장, 중대장은 슈타인브레너가 친위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도를 넘은 오만방자함을 보이면서 거들먹거려도 눈감아준다. 아니, 정확히는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

독일에서 제작한 영화 아우슈비츠에서도 당연히 등장한다. 다만 모든 SS가 나쁘게 나온 것은 아니며,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유대인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고 괴로워하는 중년의 SS 병사가 나온다.

사울의 아들에서도 탈출한 유대인 존더코만도들을 잡으러 갔다가 폴란드 소년을 잠시 붙잡았다가 풀어주는 병사가 막판에 등장하며 몰락에서도 자주 등장. 여기서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SS 장교들과 병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9번째 날에서 주인공 베른하르트 신부를 회유하려는 게슈타포 소위 게하르트도 끝내 신부를 사살하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 커다란 노트[35]에서도 목에 깁스를 한 SS 소령이 나오는데, 작중 주인공인 헝가리인 쌍둥이 형제를 구타한 헝가리인 형사를 권총으로 쏴죽이고, 쌍둥이들을 치료해준 뒤, 그들이 잠들었을 때 떠난다. 대사는 별로 없는데, 엄청난 임펙트를 남긴 인물.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블랙북에서 보안대(SD)[36] 소속 문츠 대위는 신사적이고 여주인공이 유대인임을 알면서도 눈 감아주고 평화를 원하는,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개념인으로 나온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에 출판된 SS 출신 참전자들의 회고록은 총 3권이다. 귄터 그라스의 양파 껍질을 벗기며와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폭풍 속의 씨앗, 오토 슈코르체니의 슈코르체니.

심슨 가족몽고메리 번즈가 SS소속 이라는 설정이 있기도 하다. 번즈가 체포되어 소지품 검사를 할 때 SS카드가 나오기도 했으며, FPS게임을 하다가 자신이 죽이고 있던게 나치라는걸 알자 "잠깐, 내가 나치를 쏘고 있었어? 이건 내가 기억하던 거랑은 다른데?" 라고 하기도 했다. [37]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 일본군 헌병과 함께 저항군의 적으로 등장한다.


[1] SS 대원들의 정복이었다. 원래는 프로이센 기사단의 복장 색인 검정색에 가까운 진한 남색을 본뜬 것이다. 프러시안 블루가 바로 그 색깔이다. 해골 마크도 마찬가지다.[2] 이 때문에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패니(Swallow Sidecar Company)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금의 재규어로 사명을 바꾸었다. 서양에선 S를 곡선이 아닌 SS 마크(룬 문자 시겔)처럼 각지게 표기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S는 꼭 곡선으로 표기해야만 한다. 한국에 과거에 존재했던 기업집단인 쌍용그룹의 로고가 SS마크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로고 교체를 검토한 적도 있다고 한다.[3] 독일에서는 Z를 좌우로 뒤집은 모양으로 쓴다.[4] SS : Schutzstaffel 1934-1945 인용[5] schutz : 보호, 방어/staffel : 대형, 편대, 제형[6] 한창 때는 300만명이 넘었다.[7] 제식 형태는 아니지만 2차대전시기에도 무장친위대 고급 지휘관들이 예복의 목적으로 입은 소수의 사진 자료가 있기는 하다.[8] 전쟁 후반기 독일 장교들은 제복 상의를 자세히 보면 색깔이 진회색, 회백색, 회녹색, 청회색 등등 특별한 이유 없이 제각각이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를 보면 이러한 표현이 잘 되어있다.[9] 이는 국방군과 친위대의 국가문장(독수리 장식) 부착위치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정확히는 모자의 독수리 장식(국가문장)은 독일 전군 공통이다. 차이는 군복 상의에서의 부착 위치와, 모자에서 국가문장 아랫쪽의 부착물이다(국방군은 코케이드, 친위대는 토텐코프(해골)).[10] 사실 더 엄밀히 따지면 국가문장의 독수리 도안에도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11] 참고로 최초의 위장무늬는 1929년에 이탈리아에서 발명한 Telo mimetico다. 다만 최초에는 telo tenda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만 사용되었다. 최초의 독일군 위장무늬는 1931년에 발명된 Splittertarnmuster(Buntfarbenmuster)다.(제1차 세계대전 중에 병사들이 개인적으로 슈탈헬름에 위장무늬를 칠하기도 했다.) 이것도 초기에는 zeltbahn이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만 사용되었다.[12] 반면 동독군에서는 구 프로이센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Russisches tarnmuster와 Flachtarnenmuster, Strichmuster를 제식 채택했다.[13] 영국에서는 공수부대와 특수부대, 해병대 등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명된 브러시스트로크 패턴을 적용한 데니슨 스목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영국군은 민무늬 군복을 입었다. 1960년에 DPM(Disruptive Pattern Material)이 개발되었지만, 특수부대 등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에야 일반부대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1947년에 데니슨 스목에 영향을 받은 리자드 패턴이라는 위장무늬를 개발하고, 1953년에 전군에 위장무늬 군복을 제식 채택했다가, 리자드 패턴을 적극 사용한 외인부대가 저지른 전쟁범죄와 1961년에 벌인 반란 때문에 민무늬 군복으로 되돌아갔고, 1980년대 초반까지 파병부대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91년이 되어서야 CEC(Camouflage Europe Centrale)라는 위장무늬를 전군에 제식 채용했다.[14] 주로 기관실이나 잠수함 등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방염복으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이 거의 유사한 것을 독일 해군도 기관실 근무자 및 잠수함 승조원 중 사병들에게 지급했다. (장교용은 디자인이 달랐다.) 이 외에도 44년 즈음이면 거의 힘을 잃은 크릭스마리네의 군수물자를 대신 지급하였다.[15]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회고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16] 실제 국방군 육군 정예부대인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병사였던 기 사예르의 회고록 잊혀진 병사에서도 친위대 부대가 투입된 곳은 그 어디든지 항상 전선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만큼 손실도 막심해서 부대의 재편성을 위해 자주 후방으로 철수해야만 했다고. 저자가 동프로이센에서 소련군에 포위되어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 위기에서 구해준 이들도 무장친위대였다.[17] 다시 말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들의 규모가 워낙 크고 실제 전쟁 중에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부대인 것처럼 활동한 게 현실인지라 사실상 군인 대우를 한 것이지, 정규군으로 공식 인정한 게 절대 아니다. 그래서 연금은 지급됐지만 전공은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국방군은 어쨌건 군인으로 전쟁을 치른 게 맞다고 봐서 전쟁 중에 공을 세운 사실 자체는 인정해줬다. 물론 이건 현재 독일 정부가 나치 독일을 전범집단이긴 해도 합법적으로 집권한 세력으로 인정하고 그 통치내용 중 일부 반인륜 범죄 행위나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결정을 제외한 나머지 조치의 합법성을 존중하여, 전쟁과정에서의 반인륜 범죄가 아닌 전쟁 행위 자체를 죄로 규정히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18] 존 르카레의 히트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영국 정보부를 괴멸시킨 문트도 히틀러 유겐트 출신이란 설정.[19]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인공과 같이 수업을 듣는 법학도들 중 무장친위대 출신 아버지를 둔 이들도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20] 재밌는 점은 오히려 발트3국에선 소련의 낫과 망치 표식이나 깃발을 사용하면 경찰에 연행된다.[21] 그나마 가장 알려진 것이 베를린 전투 당시 국방군 장교와 함께 소련군에게 항복한 SS 친위대원의 사진이다. 그래도 이렇게 전쟁 막판에는 SS 항복자가 늘었는데 이유는 후술.[22] 부하인 요아힘 파이퍼의 학살을 묵인한 적이 있긴 하다. 이게 걸려서 전후에 징역형을 살았다. 무장친위대 상급대장씩이나 돼서 겨우 징역형이나 받았다는 건 사실상 별 껀덕지가 없다는 소리다[23] 막장으로 유명한 무장친위대 내에서도 요제프 디트리히 라인과 파울 하우서 라인은 꽤 개념이 있는 편이었다고 한다[24] 역사에서는 당시 독일군 육군 사령관 빌헬름 카이텔 장군이 작전 지시를 하였다 했으나 작전 최종 승인은 히틀러의 몫이었다.[25] 영미권 중장에 해당[26] 패러디물에선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다 보고하는 포지션이다. 가령, 자기가 지금 보고중이라는 사실을 보고한다든가(..)[27] 몰락 패러디에서 히틀러의 만악의 근원 기믹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28] 클라우제비츠 작전 실행 후 모든 친위대는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자신은 국방군 의사이기도 하고 국방군은 아직 철수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자신은 남아서 민간인들을 돌보겠다고 상관에게 직언한다.[29] 혹은 다른 적도 마찬가지[30] 설정집에서는 무자비하며 호전적인 병사들이라 나온다. 다만 상대가...[31] 독일어로 하면 Mein Ehre Heißt True. 슈츠슈타펠의 모토이다.[32] 이 경우는 제2 SS기갑군단 군단장인 빌헬름 비트리히가 파울 하우서와 함께 SS중에서 손에 꼽히는 개념인인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33] 번역이 제각각인데 독수리 내리다, 독수리 내려앉다로도 불린다. 원서 제목 그대로 번역하면 '독수리 내려앉다'지만, 날개치며 내렸다가 더 멋지다는 이유로 많이 쓰인다.[34] 겨울전쟁 당시 용병 조종사로 투입되었다가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독일과 핀란드에 선전포고하면서 본의 아니게 포로가 된다. 이후 협의를 통해 동부전선에서만 복무하는 걸로 딜했다.[35] 몰락에서 괴벨스, 9번째 날에서 장 베른하르트를 연기한 것으로 유명한 울리히 마트데스가 주연으로 나온다.[36] 영화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 대령이 여기 소속이다.[37] 하지만 심슨이 옴니버스로 진행되기에 늘 그런건 아니다. 에이브 심슨의 회상씬에서 보면 같이 참전한 미군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