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지도주의(Dirigisme / Dirigism)는 온건한 형태의 경제적 개입주의를 넘어서 계획경제 비슷한 측면도 있을 정도로 국가(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시해서 돌아가는 일종의 혼합경제 체제를 의미한다. 넓은 범위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포함하나, 일반적으론 자본주의 틀 안에서 행해진 경우가 많다. 당연히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상극이다. 이 용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그들의 경제 정책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2. 사례
2.1. 프랑스
프랑스는 원래 다른 유럽 지역보다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혁명기를 거친 이후에도 경제적 자유주의보단 국가주도적 경제정책이 선호되는 편이었다. 심지어 프랑스 대혁명기 자코뱅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이는 이후 보나파르트주의에도 영향을 주었고, 벨 에포크 시대엔 좀 거리가 있었으나, 2차대전 이후 드골주의에도 영향을 주어 이시기 프랑스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유화와 국영 기업 건설, 국가 주도 산업 시설 투자 등을 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전후 복구를 위하여 지도주의적 경제 체제를 도입한 프랑스는 한 차례 5개년 계획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영광의 30년의 발판이 되었다.2.2. 소련
사실 지도주의란 말만 안썼을 뿐 20세기 들어 이런 형태의 정책은 소련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특히 스탈린 시기 급격한 공업화 정책 5개년 계획은 우크라이나 대기근같은 여러 부작용을 남겼음에도[1] 당시 농업국가 소련을 단기간에 공업국가로 탈바꿈시켰다는 평도 동시에 들었고, 소련은 단숨에 미국 다음가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며 당시 전세계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붐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반공 진영에선 필요한 부분만 모방해간 셈.2.3. 아르헨티나
순수한 형태의 페론주의, 즉 정통 페론주의는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지도주의에 좀 더 가까웠다. 다만 후안 페론의 경우 노동사회복지부 장관을 지낸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 정계 진출 이후에도 노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기득권층을 자극하는 정치인으로 이미지 코스프레하긴 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사회주의와 겹치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다만 오늘날 현대 페론주의의 양대 갈래인 키르치네르주의와 메넴주의는 각각 사회주의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이라서 정통 페론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조합주의적인 정통 페론주의는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선 비주류로 전락했고, 현재 페론주의를 내걸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인들은 실제 페론의 사상을 계승한다기보단 페론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을 일종의 경쟁력 있는 정치 상품으로 사용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2.4. 동아시아
20세기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 방식이 지도주의거나 지도주의에 가까웠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꽤 있다.대표적으로 일본, 대만, 한국 등 반공 진영 국가들의 경우 주요 정치인들은 사회주의와 거리가 있었으나[2] 말로는 시장경제를 떠들면서도 실상은 정부가 주도해서 계획경제에 기반한 정책을 펴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이렇게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소련에 다다르게 된다. 위에도 언급된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의 고도성장은 대공황 이후 혼란에 빠져있던 일본의 혁신 관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이들은 괴뢰국가 만주국에서 이 모델을 실험하였다. 중일전쟁으로 경제계획이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그리고 2차대전 패전 이후 잿더미가 된 일본 본토를 철저하게 정부가 지도하는 사실상의 계획경제 모델로 재건하면서 초고도성장을 달성하였다.[3] 그리고 이 모델을 다시 일본이 식민지 시절 육성해 놓았던 군인과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던 한국과 대만이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반대로 공산 진영 국가들의 경우 계획경제에서 시작했지만 착오를 겪으면서 결국엔 개방개혁 등 시장경제와 접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정반합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4]
3. 같이 보기
[1] 사회주의적 목적성을 생각해본다면 이미 뭔가 핀트가 어긋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정책을 편 목적 자체는 사회주의를 목적으로 한건 아니었고 오히려 반공주의 성향도 있었으나, 정책은 사회주의 정책에서도 꽤 영향을 받았고 실제 사회주의 정당에서 출발했다 변모한 케이스도 있는 등 내력은 상당히 복잡하긴 하다.[3] 이런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혁신관료의 우두머리인 기시 노부스케. 기시는 만주국의 경제를 책임졌던 인물이고, 전후에는 총리로서 현재의 일본 경제 시스템를 설계했다고 평가받는다.[4] 20세기 아시아에선, 경험의 차이인지 경제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나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지도주의나 경제적 개입주의를 해서 다 잘 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결국 방향성이 뭐건간에 그걸 실행하고 성공시킬 주체인 기업가랑 노동자 역량이 없으면 안된다는 소리. 냉정하게 보면 미국의 관심도나 원조 규모의 차이, 당시 동아시아에선 경제대국으로 치고 올라가던 일본과의 지리적 접근성 등에서 손익이 갈리는 점도 있었다. 21세기 들어선 중국과의 접근성과 더불어 경제적 자유주의가 과거보다 강조되는 추세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