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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민족(ethnic)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내셔널리즘인 에스닉 내셔널리즘의 사례가 많지만 미국 내셔널리즘, 프랑스 내셔널리즘, 싱가포르 내셔널리즘, 대한민국 내셔널리즘, 중화민국 내셔널리즘 같은 국적자/시민권자(citizen)를 중심으로 한 시민 내셔널리즘의 사례도 있다. 주요 3대 이념의 분파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 기타(내셔널리즘 · 생태주의 · 포퓰리즘) |
1. 개요
페론주의(스페인어: Peronismo)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사회 및 경제 정책 등의 방향을 일컫는 단어이다. 페론 자신이 붙인 이름은 아니며, 페론은 자신의 정책 사상에 대해 정의주의(Justicialismo)라는 표현을 사용했다.페론주의는 혼합정치를 대표하는 이념으로 학자들에 따라 가부장적 보수주의, 사회주의나 좌익대중주의, 경제적/사회적 진보주의, 지도주의, 파시즘(제3의 위치) 등 매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다양한 평가 속에서도 모두가 동의하는 점은 페론주의가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1]
2. 상세
흔히 페론주의 정책이라고 하면 좌파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지만, 이는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따져보면 부분적으로는 맞고 부분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페론이다 보니 잘 모르는 기자들도 아르헨티나 관련 기사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승전페론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갖다쓰는 것에 가깝다.일단 페론이 정책적으로는 노동자 임금 인상과 사회 복지 정책의 대대적 확충 등으로 빈부격차를 줄이고[2], 원주민 차별 해소[3]와 가톨릭계의 반대에도 이혼 합법화 등 세속주의를 대변하여[4] 좌파스런 정책을 대폭 수용했던 건 사실이다. 외교적으로도 제1세계가 아닌 제3세계 중립 성향으로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도 사이가 좋고 우호적이었으며 이들과도 교류가 잘 이뤄졌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페론 정권 시기.[5]
허나 페론의 개인적인 성향은 좌파라고만 하긴 상당히 애매한 인물로, 사실 후안 페론이 젊었을 적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도 있는 데다가, 1946년 집권 후 소모사,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등 반공주의 성향의 독재자랑 꽤나 친하게 지내면서 본인 집권기엔 오히려 공산당을 탄압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대표적인 흑역사라 할만한 나치의 남미 도주를 허용하면서 나치 인사를 돈을 받고 일부 받아들이기도 했고[6], 더군다나 1956년에 쿠데타로 쫓겨난 이후에는 파라과이와 파나마, 스페인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하는 등[7] 우파 독재자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8]
다만 페론이 군부정권에 쫓겨났다 보니 70년대 들어 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자 아르헨티나로 귀국하면서, 명예회복을 할 생각에 여러 성향의 당원들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성향이 급속히 다양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페론 사망 이후 80년대 민주화 직후부터 90년대까지는 좌우 성향의 당원들이 빅텐트 형식으로 정의주의당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었지만[9],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경제위기 속에서 당내 노선 갈등을 겪다 분열이 일어나면서 2003년 대선을 앞두곤 정의주의당내 각 계파들이 따로 후보를 내는 사실상 분당 가까운 상황까지 연출된다.
2천년대 이후부턴 키르치네르주의가 이른바 신페론주의로 각광받으며 페론주의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사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페론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비페론주의자들이[10] 반페론주의를 외치지만 말만 앞설 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무리한 노선 수정 결과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생성해낸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말이 자조적으로 나온다.
3. 분파
3.1. 주류 페론주의
3.1.1. 키르치네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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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정의주의자당 좌파 세력인 키르치네르 부부 등이 내세운 사상으로, 21세기 들어선 페론주의에서도 가장 최주류이다. 다만 자세히 파고보면 내용 차이는 있어[11], 그냥 키르치네르주의라고 하거나 페론주의의 장단점을 보완한 21세기형 신페론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3.1.2. 메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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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정의주의자당 우파 세력의 주류이다. 명칭 자체는 카를로스 메넴에게서 따온 것이지만 메넴과 무관한 신자유주의적 페론주의자들도 있어 '연방 페론주의'라고 지칭되는 경우도 많다.
3.2. 비주류 페론주의
3.2.1. 정통 페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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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초기 페론주의의 성격을 계승한 이념이다. 페론의 제34대 대통령 임기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주의적 성격이 더 가미되었던 반면, 제24~25대 대통령 임기는 반공주의에 기반해 가부장적 보수주의 내지 유사 파시즘에 가까운 면모도 보였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반대파 탄압 등 권위주의적 요소는 24대 취임 이후 25대로 가는 동안 두드러졌고, 이 기간에도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은 노동자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기득권층을 비난하는 연설을 자주 했다. 노동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업고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구 파시즘 정권보다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 강했고, 구 지배층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12]
3.2.2. 혁명 페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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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970년에 대두된 사상으로 후안 페론과 페론주의를 혁명적 사회주의적으로 해석한 이념이다.
4. 같이 보기
[1] 다만 내셔널리즘도 형태가 천차만별인지라, 페론주의가 지향한 내셔널리즘 방향성이 무엇이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적이다. 다시말해 페론주의가 극우적 국수주의(파시즘)라고 정의해야 할지, 좌익 내셔널리즘으로 정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차가 크다.[2]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의 가장 일관된 지지 기반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조합 세력이었다.[3] 어머니가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페론 본인부터가 아르헨티나 소수층인 메스티소였다.[4] 이때 가톨릭계와 등 지면서 페론의 입지가 이전보다 약해져 군부 쿠데타의 빌미를 준다.[5] 이는 페론의 아내 에바 페론이 강하게 지지한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노동자들의 대변인으로 이미지 코스프레하던 페론은 여성들의 인기까지 얻게 된다.[6] 다만 이는 약간 오해가 있는게, 페론은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군에 패배한 스페인 제2공화국의 난민들을 비롯한 유럽 각지의 좌파쪽에 더 가까운 망명객,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피해 유럽에서 남아메리카로 도망친 유대인과 집시들도 곧잘 받아주었다.[7] 헌데 이때 만난 체 게바라랑도 사이가 좋긴 했다.[8] 이런 애매한 노선은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제툴리우 바르가스와도 유사점이 있다.[9] 심지어 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시절엔 신자유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페론주의와는 거리가 먼 우파 정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10] 우파 군부세력부터 좌파 민주화 세력까지 분포도 다양한 편이다. 특히 군부세력은 쿠데타로 페론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후 경제도 포클랜드 전쟁도 말아먹으면서 체면을 구긴다.[11] 예를 들어 페론주의가 강조하던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해외투자 유치 등에도 적극 나서는 식.[12]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손명희, 최희영 옮김, 교양인, 2005) 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