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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aternalistic conservatism한 사회 내부의 많은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이에 따라 그 사회가 유기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사상. 사회 구성원들의 의무와 위계질서, 강자의 온정적 태도 등을 중시한다.
전통적 보수주의와 연관이 있는데 사회경제적 질서와 안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경제적 분배는 질서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점에서 좌파 진영과 구분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복지국가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19세기 독일의 비스마르크식 보수주의와 영국의 디즈레일리식 보수주의는 20세기 형태의 복지국가의 시초였다고 평가받는다.[5][6]
쉽게 표현하자면 '가부장제' 하면 떠오르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 같은 힘 있는 엘리트 등 강자들이 국가를 이끌어 자식 같은 (특히 노동계급을 비롯한) 국민들을 돌보자는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용어
본래 'paternalistic conservatism'이라는 문구는 직역하면 '가부장적[7](또는 가족주의적) 보수주의'가 맞지만 한국에서 '가부장적'이라는 단어는 가부장제와 연관되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온정적 보수주의'나 '낭만적 보수주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와 실질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지만 엄연히 다른 이념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한다.맥락에 따라 '사회적 보수주의'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북유럽이나 칠레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문화적 보수주의와 무관하게 사회복지를 중요시하는 보수주의자들을 'social conservative'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보수주의자들 중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면서도 성소수자권리 등 문화적 자유주의를 거부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사회보수주의가 아니라 이 문서에서 말하는 가부장적 보수주의를 의미한다. 물론, 온건 보수주의나 가부장적 보수주의라고 해서 반드시 문화적 자유주의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며, 가부장적 보수주의의 본래적 의미를 보더라도 사회보수주의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3. 성향
강자와 약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위계를 긍정하지만, 동시에 강자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절대적인 의무에 대해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낭만적이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본다.[8] 따라서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계급투쟁에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사회전통적 가치를 해치며 노사 분쟁을 일으켜 (그들의 시각에서) 사회분열을 일으키는 경제적 자유주의에도 비판적이다. 대안으로 사회적 조화나 합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산업적 동반자 관계를 지지하며, 자유방임주의에 반대하고, 지도주의와 같은 혼합경제를 선호하며,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다른 보수주의 사상들과 비교했을 때 우호적인 편에 속한다.[9]일반적으로 사회의 빈곤층에 대한 특권층이나 부유층의 가부장적 의무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사상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서 사회보수주의적 요소도 상당 부분 지녀왔으나, 현대에는 온정적 보수주의와 유사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온정적 보수주의라고 해서 반드시 문화적 자유주의에 우호적이라거나 사회보수주의적 요소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온정적 보수주의는 해당 문서에 설명되어 있듯이, 경제 문제에서 일부 진보적 요소를 수용한, 단순히 복지 친화적이고 약자 옹호적인 보수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어권 위키피디아와 나무위키에서는 가부장적 보수주의와 온정적 보수주의를 구분하고 있지만, 정치학 전공 서적들 가운데 정치 이념과 사상을 다룬 책들 상당수는 통틀어서 가부장적 보수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paternalistic conservatism'을 '가부장적 보수주의'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부권주의적 보수주의'로 번역한 경우도 있다. 본 문서에서도 '가부장적 보수주의'라는 번역이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바, 차라리 부권주의적 보수주의라는 번역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가부장적 보수주의의 경제정책은 사회자유주의와도 접점이 있지만, 자유주의의 분파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본적 뿌리가 보수주의에 있기 때문에 문화적 자유주의 철학에 부합하지 않기에 사회자유주의라고 보기 어렵고, 사회안정, 사회질서 유지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자유주의 분파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10]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약자보호를 지지하지만, 이것에 대한 관점은, 자유주의자나 좌파의 관점과 차이가 있다. 자유주의자나 좌파는 약자보호를 도덕의 문제나 당사자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가부장적 보수주의는 약자보호를 낭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비당사자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 가령 자유주의자나 좌파는 약자인 여성을 (차별로부터 정책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성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차별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강한 남자가 약한 여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나이의 미덕'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지점에서 좌파적 관점과 가부장적 관점이 구분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운동가 본인들도 실상은 마초로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11]
- 영국과 캐나다의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 중 중도~중도우파들[12]이 동성결혼 합법화, Bill C-16 등을 지지하거나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좌파나 자유주의자들 처럼 평등한 시민적 권리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온정적 태도를 기반으로 하나의 국민으로써 묶어 사회적 결속을 이루려는 목적에 더 가깝다. 따라서 사회보수주의와 가부장적 보수주의가 항상 비슷한 것은 아니며, 둘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이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글로벌한 기준에서 보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13]
4. 사례
중도, 중도우파부터 강경 우파,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4.1. 정당 및 계파
- 공화당(프랑스) - 자유보수주의자들도 적지 않지만,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이나 정통 드골주의자 또는 신드골주의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해당하는 기독교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만큼, 경제적으로는 '라인 자본주의', '라인-알프스 자본주의', '라인 모델', '사회적 자본주의'라고도 불리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사회문화적으로는 온건한 사회보수주의를 지지한다.
- 록펠러 공화당 - 뉴딜에서 비롯된 복지정책들의 상당수를 계승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보수주의로 칭해지기도 한다.[14] 이들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자유주의적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 공화당'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다른 예시로 공화당 소속 대통령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민주당 소속 해리 S. 트루먼 행정부에서 실시된 복지정책들의 상당수를 계승하는 입장을 취했다. 아이젠하워도 록펠러 공화당으로 분류해서 서술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는 사회문화적으로 온건한 사회보수주의자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보수당(영국) - 벤저민 디즈레일리, 스탠리 볼드윈,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R. A. 버틀러, 이언 길모어 등 과거의 일국 보수주의자들이 경제적으로는 노동당보다 정부의 개입 및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건전성에 신경을 쓰는 유연한 케인스주의적 입장을, 사회문화적으로는 온건한 사회보수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보수주의의 본래적 의미에 가깝다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등 오늘날 일국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복지 친화적이면서도 대처주의의 영향을 주로 받은 반면 사회문화적으로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거나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 자유민주당(일본)
- 굉지회 - 일본 자민당 내에서 보수본류라고 볼 수 있다. 원래 그 시작인 이케다 하야토 총리도 상당히 케인스주의적이고 복지 친화적인 입장이었다. 특히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걸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신자유주의를 탈피하여 정부가 노동과 복지에 적극 신경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조합에도 대단히 우호적인데 심지어 기시다 후미오는 일본 노조들의 '임금인상 투쟁'(춘계투쟁)까지 지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기준에서 보면 굉장히 진보적이다.# 한편, 보수방류의 시작인 기시 노부스케도 '쇼와의 요괴'라 불렸던 전범인 것과 별개로 국내정책에 있어서는 역시나 상당히 케인스주의적이고 복지 친화적인 입장이었다. 다만,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자민당 내 보수본류와 보수방류의 구분이 무색하게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으며,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방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와 그의 아베노믹스를 보더라도 보수방류가 케인스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4.2. 사상
- 삼민주의 (중국, 일부) -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한 국내에서 인식과 달리, 공산국가인 중국 뿐 아니라 서구 학계에서도 쑨원을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장제스, 후한민 같은 국민당 내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자들도 쑨원의 삼민주의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 프로이센 사회주의 - 우익사회주의 이념으로, 나치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4.3. 인물
- 리콴유 - 대표적으로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을 통해 전국민에게 저렴한 주택를 제공해서 주거복지를 이룩하였다. 밑에서 언급된 '아시아적 가치'를 처음으로 주장한 보수주의자이기도 하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독일의 보수주의의 한 획을 그은 지도자로 세계 최초의 근대적 복지국가의 설계자로 꼽힌다.
- 유진오 - 광복 이후 명백히 반공,우익 진영이였으나 사회주의 경제 정책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였다. 제헌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경제민주화에 중점을 두었다. 가령 유진오가 기초한 제헌헌법은 2020년대의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제헌헌법을 읽어보면 "이거 북한 헌법이냐?"라고 할 정도.
- 장제스 (국부천대 이전) - 위에서 언급된 '장제스주의'의 창시자. 반공주의자였지만 국공내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회주의 정책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이였고 본인도 자본주의를 서구 제국주의와 연관시키며 부정적으로 보는 등 반자본주의자였다. 물론 국부천대 이후 대만 섬만을 통치하게 된 시점부터는 미국 입김이 크게 작용함으로써 그간 지지했던 모든 사회주의/반자본주의적 아젠다를 정책노선에서 폐기하고 대만 식민지 시절과 같은 일본식 국가자본주의에 가까워졌다.
4.4. 기타 등등
- 군주제 사회주의(Monarchical socialism)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오토 폰 비스마르크 등이 대표적이다.
- 기독교사회노동자당(Christlich-soziale Partei) - 독일 제국 시절 프로테스탄트계 우익 정당으로 종교·문화·사회·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경제적으로는 노동친화적이고 사회주의스러워서 '교권사회주의'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실제로 노동 계층 내의 보수적인 사회관을 가진 이들을 공략했기 때문에 당대 기준 사회주의 정당인 사민당의 지지층과 겹치기도 했다. 또한 반유대주의 성격도 있었다.
- 아시아적 가치 - 리콴유가 제창한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권위주의 정치인들은 일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다소 미루면서도 그들을 달래기 위해 고용안정, 사회복지 등에 관심을 보였다.
- 폴크헴메트 - 스웨덴 내셔널리스트들과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처음 주창된 국민/민족적 단결과 복지 관련 개념이지만 한손 등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국민의 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학생 행동(Azione Studentesca) - 이탈리아의 학생조직. 이탈리아의 형제들(FdI)과 연계된 조직으로, FdI 내에서도 파시즘 성향이 두드러지는 초강경 극우 조직이다.
동유럽의 일부 우익 포퓰리즘적 주류 보수정당들도 이쪽에 가깝다.[17]
일본의 경제 발전 상, 사회 분위기, 정치 모델이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자민당을 비롯한 일본의 보수우파들은 정책 전반적으로 사회적 보수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국가가 국민들의 복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신경 써 왔는데, 이러한 일본의 정치 모델을 일부 학자들은 "가부장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며,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자유주의적인 구미식 "자유민주주의"와 구별짓기도 한다.[18]
5. 한국에서
가부장적 보수주의는 한국어로 직역할 시 그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뉘앙스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온정적 보수주의'로 의역하는 경우가 많아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5.1. 온건보수 계열
자세한 내용은 따뜻한 보수 문서 참고하십시오.한국의 중도우파 진영에서 나타나는 'paternalistic conservatism'은 한국어로 직역해서 '가부장적 보수주의'라고 칭허가는 뭔가 어감이 좋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식으로는 따뜻한 보수(주의)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보수진영에서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담론도 이쪽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 쪽 성향으로 볼 만한 인물 중 온건파에 가까운 이들은 친유를 꼽을 수 있고, 공정경제와 일정한 소득재분배를 옹호하는 김종인도 여기에 속한다.
5.2. 강경보수 계열
강경보수 진영 쪽으로 놓자면 박근혜 정부는 좌파나 자유주의자들 만큼 더 적극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전임 이명박 정부보다 사회보수주의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좌클릭했었다는 측면에서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군사정부였던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복지나 노동자 인권은 열악했으나, 대신 회사는 곧 가정이다라는 가족주의적 문화의 영향으로, 어떠한 직장에 들어가서 큰 문제없이 묵묵히 일하면 웬만하면 정년까지 보장된다는 '평생직장' 신화가 있었다. 물론 직장 내의 과도한 위계질서로 인해서 많은 부작용과 폐해가 있었지만, 고용환경은 안정적[19]이었기에 남자 가장 혼자서 가족 전부를 먹여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부장중심적이고 가족주의적인 노동환경과 사회분위기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20] 즉, 1997년 이전까지 한국의 경제·노동·가정환경도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가까운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21]
6. 오해
6.1. 가부장적 보수주의 = 사회보수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도 개입 및 간섭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보모국가나 셧다운제를 비롯한 게임규제 등에서 드러난다.그래서 사회보수주의와 종종 혼동되고는 하는데, 사회보수주의는 기존에 유지된 사회문화적 전통에 대한 보호, 다원주의보다 전통적 권력구조를 지지하는 이념이라면, 가부장적 보수주의는 경제적 이슈에서의 온정주의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이념이기에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보수적인 경우가 많기는 해도 전부가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둘은 접점이 있지만 구별되어야 한다.
예시를 들자면 사회보수주의자들은 보통 동성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일국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 중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조지 오스본은 동성결혼을 찬성하기도 했다.[22]
캐나다의 경우도 비슷한데, 가부장적 보수주의/중도우파 성향의 레드 토리는 재정보수주의/우익 성향의 블루 토리보다 경제적으로 더 온건하고 친노동적인 성격을 보이면서 사회문화적으로도 블루 토리보다 더 온건하거나 자유주의적이다.
7. 기타
자유시장경제를 중요시하는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가부장적 보수주의를 포함해 복지국가 형성을 위한 시장개입에 우호적인 보수주의자들을 우익 사회주의라고 지칭하며 비판하기도 한다.8. 같이 보기
- 관료제
-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 모든 가부장적 보수주의자가 권위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 계급협조
- 집산주의
- 국가주의
- 가족주의
- 분배주의
- 노블리스 오블리주
- 경제적 개입주의
- 진보적 보수주의
- 사회적 시장경제
- 협동조합주의
- 우익사회주의
- 에보 모랄레스 - 보수적 사회정책과 권위주의적 통치 때문에 일부 좌파들에게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시회주의자라고 보는 시각이 주류다.
-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 가부장적 보수주의와 상극이다.
[1] 프로이센 왕국 제28대 총리 (1862년 ~ 1873년 / 1873년 ~ 1890년) / 북독일 연방 초대 연방수상 (1867년 ~ 1871년) / 독일 제국 초대 수상 (1871년 ~ 1890년).[2] 제40·42대 총리 (1868년 / 1874년 ~ 1880년).[3] 제18대 대통령 (1959년 ~ 1969년).[4] 초대 연방총리 (1949년 ~ 1963년).[5] 사회주의자들은 지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억압하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늦게 사회복지 담론을 수용한다.[6] 자유주의자들(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경우 새자유주의 등장 이전까지는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반대했다.[7] 가장이 가족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8] '자연스러운'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라고 해서 모두 다 인위적 권위와 악의적 차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9] 경제정책으로만 따지면 사회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 꽤 유사한 경우도 있다. 다만 일반적인 사회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의 문화적 스탠스와는 많이 이질적이다. 또한 이들은 정치적 전통을 상류층/강자 기반이며 보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10]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상류계급이나 강자의 입장에서 노동계급이나 약자에게 시혜와 많은 온정을 베푼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11] 물론, 자칭 범좌파진영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인 스탠스를 보인다는 의미이지, (범좌파 남성 페미니스트 말고)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 그 자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우호적인 입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부장적 보수주의가 사회보수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좌파, 페미니즘 담론이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보수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를 무너뜨린다고 봐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12] 일국 보수주의, 레드 토리 문서 참조[13]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약자들에 대한 후견적, 동정적 태도를 보이는 보수주의이지 문화적 요소를 포함한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지니는 보수주의(소위 자유보수주의)와는 철학적으로 매우 다르다.[14] 실제로 모 서적에서는 록펠러 공화주의가 가부장적 보수주의와 같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써 언급되기도 했다. 자유지상주의적 우파와는 대조된다고도 나와있다.#[15] 이 맥락에서 가부장적이라는 것은 온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6] John Creighton Campbell, ed. (2014). How Policies Change: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Aging Socie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p. 363. ISBN 9781400862955. "... Prime Minister Kishi, who leaned toward statecorporatist notions that included paternalistic welfare policy, gave way to Ikeda Hayato, who was more inclined toward free-market liberalism. ..."[17] 법과 정의, 청년민주동맹 등. 이들은 강경 보수정당이지만 단순 경제, 복지정책만 놓고 봤을 때 좌파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18] Helen Hardacre, ed. (1998). The Postwar Developments of Japanese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BRILL. p. 10.[19] 물론 사회주의, 케인스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 경제적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한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20] 사실 외환위기 이전에도 이미 이런 가족주의적 직장문화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과 함께 재벌들이 호봉제 폐지와 개인별 성과연봉제 도입, 정리해고, 파견근로, 비정규직 도입 등 노동유연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도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이때는 날치기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로 엄청난 역풍이 불면서 무산되었지만 곧바로 들이닥친 외환위기로 인한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아무런 사회적 합의 없이 재벌들의 모든 요구가 일사천리로 관철되었다.[21] 잃어버린 10년 이전의 일본의 사회상도 이와 비슷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등 자민당 온건파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자본주의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22] 다만 데이비드 캐머런과 조지 오스본의 경우, 애시당초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편으로, 이와 달리 경제에 있어서는 강력한 재정보수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정부지출 억제, 감세, 규제완화를 추진하였다.